이 시국의 실장석 (메종일랑)

 

그날은 칠흑같이 어두웠다. 흐린 달빛이 쫓기듯 구름 속에 숨어들어 시린 빛 한 점 들지 않는 스산한 하늘은 뿌연 밤 안개와 합치어 표현하기 힘든 섬뜩함을 자아냈다.

시골 특유의 드문드문 늘어선 가로등의 노랗고 탁한 빛은 음산한 자취를 지워주지 못했다.

노인들도, 가축들도, 마을에 몇 안 되는 왕성한 사내들도 마실을 삼가고 조용히 내일을 기다렸다. 기다리려 했었다.

“케엑, 케에엑!!”

“커억, 커...커억.!!”

밤공기를 가르며 들려오는 괴성.

어떤 것은 덜그럭대는 격한 소리

어떤 것은 가래 낀 꾸르륵 소리

또 어떤 것은 메마르고 쉰 낮은 소리

기침 소리. 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방범용 혹은 식육용으로 길러지는 개들이 소리의 주인이었다.

한 집 건너 기르는 개들이 격한 마찰음으로, 부글거리며 끓는 소리로, 건조하고 나직한 소리로 괴로움을 토해냈다.

“이, 뭐꼬. 할매요. 갑자기 와 저랍니꺼.”

40대로 마을에서 가장 젊은 청년회장 덕수는 잠이 덜 깨 황망한 표정으로 막 마당으로 나온 이웃 순이 할매를 채근했다.

“내가 아나....아이고...갑자기 와이라노. 진도야 괘안나?”

순이 할매는 덕수 쪽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반려견 진도를 붙들고 눈물을 쏟았다.

근자에 밥을 잘 안 먹고 늘어져 있기에 더위 먹었나 싶어 오늘 낮엔 백숙까지 쑤어준 참이다.
그럭저럭 입맛이 돌아온 듯 하여 안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리 괴로워하니 덜컥 겁이나 가슴이 마구 뛰었다.

“진도야...야 야....정신 좀 차리보그라....”

개를 끌어안은 노인은 절절한 심정으로 굳어가는 강아지의 몸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나 전처럼 왕성하게 주인을 맞이할 것처럼.

하지만 힘을 잃고 굳어가는 진도의 탁한 눈빛은 어둠 속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이틀 후 진도가 할머니 곁을 떠났다.

일주일이 흘렀다. 폐사한 개는 9마리로 늘었다.

코로나19로 온 나라가 전염병의 노이로제에 시달리는 시기에 찾아든 미증유의 재난으로 조용하던 마을은 공포로 뒤덮였다.

덕수의 연락을 받고 급히 파견된 수의사의 진단도 코로나 가능성을 일거에 부정하고 올바른 진단을 내려주었지만 노인들의 두려움을 덜어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런 시기에 차 한 대가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


“개가 다 죽어요?”

“그래, 오밤중에 갑자기 기침을 해쌌트만 골골대다 얼마 있다 다 죽어삤다.”

집안 제사 문제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웅철을 맞아준 건 따스한 고향의 온정이 아닌 단단히 잠긴 대문들과 마스크로 꽁꽁 싸맨 덕수였다.

“수의사한테 보여주면 되잖아요. 뭐래요?”

“심장사상충이라고 기생충이라 카던데 할매들이 뭘 아나? 그렇잖아도 맨날 뉴스에서 코로나다 뭐다 때리니까 괜시리 불안해가 마실도 안 가고 이 염천에 마스크는 꼭 챙긴다 아이가.”

한국의 연 1회 심장사상충 검사율은 3%.
개가 가족이라 당당하게 말하는 도시 젊은이들도 그 모양인데 시골, 그것도 읍내 한 번 나가려면 몇 시간에 한 번 들어오는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벽촌이다.

그 생소함과 불안함을 이해 못 할 것도 아니다.

“수의사 선생이 말해줬겠지만 그거 모기 땜에 걸리는 기생충이고 잠복기간 기니까 다른 개들도 다 검사해야 됩니다.”

이어 대충 사는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받은 웅철은 마을이나 둘러 보겠다며 밖으로 나왔다.

풍경은 그대로인데 공기는 왜 이리 다를까. 멍한 눈초리로 주변을 살피며 아무렇게나 걸음을 옮겼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을을 통과하는 개천위에 놓인 다리에 이르렀을 때 칙칙한 살색 덩어리가 시야에 잡혔다.

“뭐지?”

둥글고 뭉툭해 마치 정육점에 걸린 고깃덩이 같은 그것은 웅철이 직업상 자주 봤던 무언가와 아주 흡사한 형태였다.

“설마....”

전날 내린 비로 미끄러운 바위를 조심조심 내려가 급히 꺾어든 나뭇가지로 그것을 뒤집었다. 물에 잠겨 퉁퉁물고 폭급한 물살에 머리가 짖이겨 떠내려 가버렸지만 트림없었다.
웅철은 덕수의 집으로 내달렸다.

“삼촌... 마을 저 위쪽에 개천 있잖아요. 옛날에 가재 잡던데. 거기 아직 그대로에요?”

“어? 어 그대로지. 근데 하류 쪽에 캠핑장인가 뻑쩍지근한데 생기가 요샌 거 놀러 가는 사람 잘 없는데.”

“저랑 같이 가요. 지금 당장.”

“와 그라는데? 아, 맞다. 니 도시에서 벌레 잡는 일 한다 켔제? 모기 잡나?”

“모기는 아닌데...벌레 잡는 건 맞아요. ”


*

“데챠아...또 잠겨버린 데스”

“마마 괜찮은 테치. 기운내는 테치.”

“장녀 오네챠 말이 맞는 데스. 또 파면 되는 테치. 와타치들도 돕는 테치”

물에 잠긴 운치굴을 바라보며 낙담한 친실장을 장녀와 차녀가 열심히 위로했다.

‘데스우...정말 열심히 팠는데 여름씨는 너무 한 데스. 이번이 다섯 번째인 데스.’

실장석의 운치굴은 단순한 화장실이 아니다.

귀중한 단백질 공급원인 구더기를 양식하고, 독라 노예를 가두는 식량창고이자 생활의 거대한 부분.

그곳이 물에 잠겨 있었다. 어제 내린 비가 원인이었다.

풀과 가지로 덮었지만 매서운 장맛비는 실장석의 얼치기 솜씨로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운치가 녹아 악취를 풍기는 녹색 물 위에 혀를 내밀고 죽은 구더기 서너 마리가 둥둥 떠다녔다.

“마마, 와타시타치 고기 못먹는 테치?”

“와타시타치는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테치. 예전 집 홍수 날 때 독라노예가 죽어버린 테치. 이주해서 모은 구더기도 몇 번씩 죽는 테치. ”

저편에서 다가온 3녀와 4녀가 울상을 지었다.

장녀가 눈에 힘을 주었지만 상심한 둘에겐 보이지 않았다.

“테에에엥!! 우마우마한 고기도 못먹고 슬픈 테치!!”

“이게 다 비씨 때문인 테치! 와타치의 핵펀치로 때려 주는 테치!!”

색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는 3녀와 공연히 하늘에 주먹질을 하는 4녀.

멀리서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는 광경에 망연해 있던 친이 정신을 차렸다.

“오마에타치, 진정하는 데스. 굴은 또 파면 되는 데스. 일단은 이걸 먹고 기운을 차리는 데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던 구더기 시체 4구를 모두 건져냈다. 물에 불어 터진 시체지만 먹을 수 있다. 젖은 포대기를 벗겨내고 비틀어 물을 짜내 자들에게 하나씩 건냈다.

“테에, 냄새나는 테치”

“물맛만 나는 테치. 맛없는 테치.”

“3녀, 4녀. 조용히 먹는 테치. 귀한 식량인 테치!”

“오네챠 말이 맞는 테치. 빨리 먹고 마마를 돕는 테치.”

칭얼거리는 동생들을 어르는 장녀와 차녀. 믿음직한 모습에 친실장의 얼굴도 미소를 되찾았다.

’와타시의 마마도, 마마의 마마도 비씨로 고생했다고 한 데스. 힘내는 데스. 지지 않는 데스.‘

“밥을 다 먹으면 차녀는 와타시를 따라오는 데스. 다시 굴을 파는 데스. 장녀는 삼녀와 사녀를 데리고 풀잎을 모아오는 데스.”

“알겠는 테치!!!”

부루퉁해 있던 3녀와 4녀도 대답은 빼먹지 않았다.

뭉툭한 손에 돌맹이 하나로 굴들을 파내니 어느새 붉은 해가 산 너머에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마마, 수고하신 테치!”

“오마에도 열심히 한 데스. 이제 가서 밥을 먹는 데스.”

땅거미 진 하늘을 등지고 나무 아래 상자집, 일가의 보금자리에 돌아오니 집 옆에 싱싱한 새 풀잎이 가득 쌓여 있었다.

“마마!! 차녀 오네차량 와타시 열심히 한 테치!”

“사녀 치사한 테치! 마마, 와타시도 투정 안 부리고 딴 테치!”

“삼녀, 사녀 이모우토 모두 열심히 한 테치. 장한 테치.”

각자의 노력을 자랑하며 마마의 칭찬을 바라는 여동생과 그런 동생들이 귀여운 차녀.

“모두들 잘 자라 준 데스. 와타시는 정말로 행복한 실장인데스.”

이렇게 예쁜 짓을 하는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친은 집 귀퉁이로 가 덮어둔 돌을 들었다.

“”““마마!”“””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린 자들의 탄성.

“다들 열심히 했으니 상을 주는 데스.”

친실장의 손에는 흙이 덕지덕지 붙었으나 붉은빛을 잃지 않은 산딸기가 들려있었다.

시골 들실장들에게 허용된 몇 안 되는 감미.

3녀와 4녀는 물론 의젓하던 장녀까지 입을 헤 벌린 채 친의 손을 바라본다.

“와서 하나씩 받아가는 데스. 천천히 음미하는 데스.”

떨리는 손으로 하나씩 받아든 딸기를 조심스럽게 핥다가 알갱이 하나하나 천천히 입에 넣고 씹는다.

인간에겐 썩어 버린 역한 물건이지만 실장석에겐 문제가 되지 않는다. 벌어진 언청이 입 사이로 침이 질질 흘러내렸다.

“그렇게 맛있는 데스?”

턱받이에 침이 흥건해진 모습조차 귀여운 어미는 딸기에 빠져 고개만 끄덕이는 자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만찬이 끝나면 내일을 준비하며 잠에들 시간이다. 기분 좋은 포만감에 젖은 자실장들이 마마 곁에 찰떡처럼 달라붙는다.

“마마, 니혼이란 곳은 정말 있는 테치?”

오늘따라 어리광이 심해진 차녀의 물음

“그럼 당연한 데스. 마마의 마마의 마마의 마마는 니혼에서 온 데스.

칸코쿠 닌겐들은 와타시타치를 못 잡아 안달이지만 니혼 닌겐들은 와타시타치를 세레브하게 대접하는 데스.

니혼에선 아마아마한 콘페이토와 스시, 스테이크가 매일 나오는 데스.

타는 이글이글씨와 추운 겨울씨도 없고 새 골판지 박스가 넘쳐나는 데스.”

마마의 말을 따라 황홀한 상상에 빠진 자들의 눈이 몽롱해졌다.

“와타시는 콘페이토 맛이 제일 궁금한 테치. 산딸기보다 아마아마한 테치?”

“니혼은 천국이 분명한 테치. 똥 칸코쿠와는 다른 테치.”

“꼭 가보고 싶은 테치. 와타시타치는 왜 칸코쿠에 태어난 테치?”

“니혼 닌겐들이 마마의 마마의 마마의 마마를 칸코쿠로 모셔왔다고 들은 데스. 그때는 칸코쿠도 니혼 이었는데 은혜를 모르는 칸코쿠 닌겐들이 빼앗은 데스.”

“와타시타치가 주는 행복을 모르는 칸코누 닌겐이 불쌍한 테치.”

“차녀 오테챠는 너무 착한 테치! 칸코쿠 닌겐은 못된 분충인 테치. 와티시의 핵펀치로 패주는 테치.”

“4녀. 오마에 심정은 알지만 칸코쿠 닌겐들은 와타시타치만 보면 달려드는 학대파 야만인인 데스. 가까이 가면 안 되는 데스.”

“.....테치....”

얼마나 이야기가 이어졌을까. 자실장들은 모두 꿈나라로 떠났다.

잠시 그 모습을 감상하던 친실장도 수마에 몸을 맡기려 눈을 감는데 불쾌한 소음이 허공을 갈랐다.

윙~위이잉~

’이놈의 똥모기 또 튀어나온 데스.‘

여름이 되고 나선 하루도 뜯기지 않은 날이 없다. 오늘같이 뜻깊은 날은 알아서 사라져 주면 좋으련만. 못되 처먹기가 학대파와 다를 게 없다.

자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일어난 친실장의 뭉툭한 손이 허공을 가르지만 모기는 둔중한 손놀림으로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친실장 옆을 날았다.

마지막까지 긴 하루였다.


*

“일단 가자케가 같이 오긴 왔지만 서도 대체 뭐 볼끼 있다고 온 기고?”

“실장석...녹돼지 있나 보려구요.”

“녹돼지? 그 제작년에 팔만대장경에 똥 던져서 뉴스 나온 일본 해수? 그기 여 산다고?”

“팔만대장경은 아니고 해인사 장경판전이었죠. 정확히 말하면.”

대머리를 열등 개체 취급해 우습게 보는 실장석이 절이나 스님에게 행패 부리는 게 한두 번이 아니나 그 사건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든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18년의 그 사건 이후 한국 내 실장석의 입지는 최악을 넘어 아예 소멸했다.

“여튼 마을 하천으로 떠내려온 거 보면 상류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지금부터 찾아봐야죠.”

신장 30∼40cm, 느려터진 몸뚱이에 비효율적인 이족보행을 하는 실장석이 넓은 활동반경을 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하천으로 떠내려왔다면 물가 근처 어딘가에 살 터..

“어렵진 않아요. 개천 넘쳐서 떠내려 가면 안 되니까 너무 물 가까운데는 안 살거고.

딱딱한 돌밭에선 힘들다고 못살 테니 돌밭도 아닐거고.

땅 부드럽고, 수풀 우거져서 숨기 좋고, 비도 막기 좋은 곳이.... 저쪽에 보이네요.”

웅철은 강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은행나무를 가리켰다.

외따로 떨어져 자란 은행나무는 크진 않았다. 도로변 가로수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딱 그 정도 크기.

“삼촌, 장화 챙겨왔죠?”

“어. 꼭 챙기라 카이 챙겨왔지.”

둘은 장화로 갈아신고 벚나무 쪽으로 나가갔다. 웅철이 초등학생 때만해도 여름이면 피서객이 몰려들었지만 하류에 깔끔한 캠핑장이 개장한 이후로는 발길이 끊겼다.

한 손에 장대를 든 웅철이 정강이까지 올라오는 수풀을 헤치고 걸으면 덕수가 따라붙었다.

나무 앞에 이르러 주변을 돌아보려는 순간 덕수의 발이 쑥 빠졌다.

“이, 이 뭐꼬?”

웅철의 손을 잡고 겨우 넘어지지 않은 덕수가 발밑을 내려다보니 발목 깊이 정도에 축축한 구덩이에 발이 쑥 들어가 있었다.

“이쪽도 보세요. 제법 있죠?”

웅철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니 비슷한 깊이의 구덩이 대여섯 개가 시야에 들어왔다.

“운치굴....그러니까 실장석 똥굴이에요.”

“뭐어? 똥굴?”

“녹돼지들이 땅을 파서 그 안에 똥을 싸고 저실....아니, 구더기한테 사료로 써서 양식해요. 제주도에서 똥돼지 키우던 것처럼요.”

“그기 사상충하고 상관있는기가?”

“녹돼지가 굴을 파는데 얘들이 무슨 기술이 있어 미장하고 지붕 달겠어요. 풀떼기나 덮고 말지.

비만 오면 굴에 물이 차서 똥물 가득한 웅덩이가 생기고 거기에 모기가 알 까서 장구벌레, 모기 유충 서식지가 되는거죠.

그리고 심장 사상충은 모기가 매개체고요. 일본에선 실장석 집단 자생지 주변 개들의 사상충 발병률이 아닌 지역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다는 연구 결과가 꽤 나와요.”

생소한 정보를 취합하느라 잠시 말이 없던 덕수가 입을 열었다.

“개만 위험한 게 아닌 거 같은데?”

“말라리아, 뇌염, 황열병 기타 등등. 사람도 위험하죠. 특히 노약자 많은 시골에선.”

“있어봐라. 굴이 여섯 개니까 글마들이 7마리나 있단 말이가?”

“아니요. 한 마리에요.”

“한 마리?”

“정확히는 성체 한 마리요. 녹돼지 다 자라봐야 30에서 40cm고 손가락이 없어서 손재주가 메주에요.

40cm 짜리가 돌맹이나 나뭇가지만 들고 맨땅에 50cm 짜리 굴 파겠어요?

힘도 들고, 파낸 흙 처리하지도 못하고, 깊게 빠면 자기가 못 나오니까 깊어 봐야 20cm 정도?”

출산용 독라노예의 팔다리를 반드시 절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지를 잘라 달마로 만들어 눕혀 놓지 않으면 노예의 머리가 굴 위로 튀어나와 위장이 전혀 되지 않는다.

“굴은 작은데 이놈들 배출은 또 오지게 해요. 종일 밥 먹고 똥만 싼다고 보면 되요.

거기다 새끼는 많으면 한배에 열 마리씩 까는데 얘들이 또 집에 틀어박혀 먹고 싸기만 하거든요. 굴이 하나면 하루 이틀이면 똥이 위로 넘쳐요. 그래서 굴을 최대한 많이 파는 거죠.”

“그리고 그게 전부 다....”

“모기 산란장이죠. 이놈들은 면역력이 강해서 가려운 데 긁고 말지만 다른 동물들은 피보는 거죠.”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래서 이 굴 판 놈들 어딨냐?”

덕수의 억센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이 똥벌레들을 보는 즉시 요절내고 말겠다는 생생한 의지가 전해졌다.

“여긴 최근에 생활한 흔적이 없어요. 집을 옮겼거나 다 죽은 거 같아요.

”없다고?“

”일단 여기는요. 확실히 하려면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개천 싹 훑어봐야죠.“


*


”세레브한 아가씨는 엉덩이도 깨끗해야 하는 데스.“

”마마~ 간지러운 테치이.“

개천가 얕은 물 속에서 일가가 단란한 한 때를 보내고 있었다.

물가에서 주운 페트병에 물을 담아 옷을 벗은 자들의 머리 위에 부어준 친실장은 자들을 하나씩 붙들고 총구부터 세심히 씻겼다.

마마의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자 행복 회로가 활동을 개시하며 괄약근에서 힘이 빠졌다.

부룩, 부룩, 부르르룩

꾸르륵 소리오 함께 장녀의 총구에서 녹색 대변이 힘차게 배설됐다. 물에 떨어진 녹색 운치는 짙은 자취를 남기며 천천히 밀려 내려갔다.

”마마, 부끄러운 테치.“

”부끄러울 거 하나도 없는 데스. 오마에의 운치는 전혀 더럽지 않은 데스. 향기가 나는 데스.“

한층 온화한 손길로 수줍게 고개 돌린 장녀의 총구에 남은 운치를 닦아주었다.

”마마, 와타시도!“

”와타시도 씻겨주길 바라는 테치!!“

”모두 아와아와하게 해주니까 착하게 기다리는 데스.“

보채는 자들을 진정시키는 친의 눈길엔 사랑이 가득하다.
오늘은 시간을 들여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씻어 주리라 다짐해본다.
그래, 모처럼이니 실장복도 빨자.

”다 씻었으면 점심을 먹는 데스.“

열심히 세탁한 실장복을 돌로 눌러둔 일가는 투실투실한 알몸뚱이를 드러낸 채 가져온 비닐봉지 앞에 모였다.

한국 실장석의 주 서식지인 캠핑장이나 낚시터에서 이랬다간 반독라로 몰려 일가실각 당하기 십상이나 근방에 일가는 자신들뿐 이다.

일전에 흘러들어온 뜨내기 들실장은 일가의 양식을 제공해주다 빗물에 익사했다.

운치물에 불어 터진 시체를 치우는 일은 전혀 유쾌하지 않았다.

다른 이웃상들은 일가가 있는 곳에서도 하루 이틀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실장석 걸음 기준이지만.

”오늘 밥은 달팽이 씨와 고둥씨 인데스. 아마아마하게 먹는 데스요.“

”개구리 씨가 없어서 아쉬운 테치.“
”3녀챠, 개구리는 빨라서 잡기 힘든 테치. 투정부리면 안되는 테치.“

”마마, 마마는 닌겐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 테치? 노예 오바상이 닌겐의 음식이 맛있다고 떠드는 걸 들은 테치.“

죽기 전까지 매일 아침 뇌가 후벼 파지던 자판기는 그때마다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개중에 닌겐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던 모양이다.

”헛소리인 데스. 칸코쿠 닌겐들은 학대에 미쳐서 밥도 카라이(からい)하고 쓰라이(つらい) 한 것만 먹는 분충이라고 마마의 마마가 말해준 데스.

“테...콘페이토 맛도 모르는 테치?“

”그렇다고 한 데스.“

콘페이토 맛도 모르는 야만인들에게 동정 혹은 경멸의 감정을 품으며 깨뜨린 달팽이 속살을 입에 넣었다.

실장석 특유의 왕성한 식욕이 챙겨온 밥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비웠다. 포만감에 젖은 가족은 실장복이 마르기만 기다리며 빵빵해진 배를 두드렸다.

윙~윙~~~우우웅!!

불현 듯 머리 위에서 들려온 시끌벅적한 소음이 일가의 평온을 깨뜨렸다.

”테~에?“

몸에 비해 머리가 지나치게 무거운 자실장들이 급히 고개를 젖히다 그대로 뒤로 넘어가 땅바닥과 충돌했다.

”테에에에!!“

”지, 진정하는 데스.“

울먹이는 자식들을 달래며 하늘을 올려다본 친의 눈에 든 건 생전 처음 보는 날벌레였다.

4개의 날개가 달린 그것은 까치만큼이나 컸고 모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시끄러웠다.

‘저 날벌레는 뭐, 뭐인 데스.’

당혹스럽지만 그냥 있을 순 없다.

푸드득, 푸드드득.

놀란 자들의 다리 사이로 악취를 흘린다. 머리를 부딪친 충격과 귀를 찢는 소음에 늘 의젓하던 장녀조차 녹색 운치를 그득 쏟았다.

모처럼 정성 들여 씻은 게 다 헛수고다.

”자들은 어서 마마 옆에 모이는 데스!“

자들이 옆에 들러붙는 걸 확인한 친은 뭉툭한 주먹을 허공에다 마구 휘두르며 악다구니를 썼다.

”오마에 벌레 주제에 건방진 데스! 와타시가 핵펀치로 응징해 주는 데스! 당장 덤비라는 데스!!“

자신의 말을 알아듣는지는 중요치 않다. 일단 겁먹은 자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날벌레는 기분 나쁜 소음을 흘리며 가만히 일가를 내려다보았다.

”건방진 벌레는 헛소리 말고 당장 꺼지지 않으면 매운 맛을 보여주는 데스!!“

붕쯔붕쯔 친실장의 주먹이 몇 번이나 허공을 갈랐을까.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있을 것 같던 날벌레는 순식간에 하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제 괜찮은 데스. 나쁜 벌레는 마마가 쫓았으니 자들은 마음을 놓는 데스.“

”테에에엥!! 마마!!“

”무서운, 무서웠던 테치!“

색눈물을 닦으며 안겨드는 장녀와 차녀. 역시 철이 일찍 들었다곤 해도 아직은 친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다.

”테프프, 마마한테 겁먹고 도망간 테치.“

”똥벌레는 별거 아니었던 테치. 마마랑 같이 때려줄 걸 그랬는 테치.“

3녀와 4녀는 귀엽게 허세를 부린다.

”모처럼 씻은 게 엉망이 된 데스. 벌레는 갔으니 한 번 더 씻는 데스.“

그냥 갈까도 생각했지만 모처럼 세레브 해진 실장복을 운치 묻은 총구위에 입는 모습은 보기 싫었다.

”마마, 저기 뭐가 떠내려오는 테치.“

”무슨....!!“

자실장의 시선을 따라간 그곳에 물의 흐름을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녹색 뭉치가 보였다.

손가락 없이 뭉툭한 손, 짜리몽땅한 체형, 점점히 붉은 색이 스며들었지만 풀빛을 잃지 않은 녹색 옷은.....

”실장석인 데스.....“

”마.....마마, 저 오바상 머리가.....“


*


”아까 하나 했고 이제 여만 하면 끝나는 기가?“

”발견 안 된 개체가 있을 수 있으니 월요일에 구청 연락해서 조사해달라 하셔야죠.“

구제담당 직원은 일괄 휴대하는 휴대용 드론을 불러들인 웅철은 안전화와 무릎 보호대, 두꺼운 가죽 장갑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여름에 그런 거 차고 일하면 안 덥나?“

”사람들이 놀러 가서 쓰레기 버리면 그게 다 실장석 도구가 되고 무기가 되는데 약하면 유리조각이고 심하면 낚시칼 까지 버리고 가거든요.

녹색이라 풀숲에 숨으면 잘 보이지도 않는데 순간적으로 베고 들어오면 우리도 답이 없어요.

쓰레기를 무기로 쓰니까 파상풍 위험도 있고.
20대 남자들은 훈련소에서 파상풍 주사 맞으니까 괜찮은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나 애들, 여자들은 재수 없으면 다리 잘라야 됩니다.“

”그럼 장갑은 왜? 손에 땀띠 나겠다.“

”일본 실장석은 공원에 사는데 우린 MB때 정비 사업한다고 완전히 박멸해서 강변, 하천, 낚시터에 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놈들이 낚시꾼들 버리고 간 바늘을 뭉태기로 들고 설쳐요.“

웅철은 장갑을 슬쩍 벗어 손바닥을 보여줬다. 덕수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날카로운 물건으로 길게 찢겨나간 자국이 선명했다.

”맨 처음 작업 나갔을 때 생각 없이 수풀에 손 넣었다가 작살났다 아닙니까.“

안면보호구까지 모든 장구를 갖춘 웅철은 마지막으로 피켈을 들었다.

”여럿이 가면 눈치챌 수 있으니까. 여기 계세요.“


*


상류에 살던 이웃 상인지 다른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같은 실장석이 당했다. 학대파의 짓이든, 까치나 다른 짐승의 짓이든 일단은 숨어서 동정을 살펴야 한다.

”모두들 외출은 끝난 데스. 빨리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데스.“

”“”네, 테치“”“

친의 표정과 말투에서 심각함을 감지한 자들은 치근대는 일 없이 실장복을 입었다. 깨끗하게 세탁한 팬티 아래 녹색 운치 자국이 번지는 걸 보니 속이 쓰리지만 도리가 없다.

물은 늘 이곳에 있고 날은 오늘만 있는 게 아니다.

자들의 착의를 살피며 자신도 옷을 걸쳤다. 아니 걸치려고 했다.

”마, 마마!!“

친실장의 등 뒤로 내리쬐던 햇빛이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짐과 동시에 낑낑대며 턱받이를 차던 차녀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친자 다섯 마리. 그대로 있네.“

헤 벌어진 언청이 입에 뒤룩뒤룩 살찐 몸뚱이 다섯 개가 반라로 늘어져 있는 작태가 사뭇 볼만하다.

부르륵, 부륵, 턱.

제일 큰 자실장 하나가 성대하게 빵콘하며 팬티를 부풀리자 옆에선 세 마리도 따라서 빵콘.

”닌겐인 테챠아아!!“

”학대파 칸코쿠 닌겐 테치!!!! 살해당하는 테챠!!“

개천에 피서객이 끊긴 뒤에 태어난 자실장들은 이렇게 가까이서 성인 남성을 볼 일이 없었다.

난생처음 인간을 대면했다는 공포
닌겐의 손에 들린 이름 모를 뾰족이에서 풍기는 불기한 냄새
마마에게 학습한 야만스런 칸코쿠 닌겐 이야기
방금 목격한 목 없는 오바상

모두가 맞물려 자들을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테챠아아아아! 끝난 테치! 이제 마지막 테치!“

”살려달라는 테치!! 죽기 싫은 테츄아아아아아!!!“

어른스럽던 장녀와 차녀조차 통한의 색눈물을 토하고 3녀와 4녀에 이르면 벌써 눈물에 검은색이 베었다.

상황을 파악한 친이 급히 닌겐과 자들 사이를 막아섰다.

”닌겐 꺼지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의 손가락 하나라도 건드리면 찢어 죽여 버리는 데스!“

데샤아아악!!

친실장은 얼굴 가득 인상을 쓰며 웅철을 위협했다. 잔뜩 찌푸린 이마의 주름이 깊어졌다.

잠시 말없이 바라보았다.

데스우우우우!!!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붕쯔붕쯔하고 휘두르는 주먹을 무시하며 손잡이가 길게 디자인 된 피켈로 정수리를 겨눈다. 준비가 끝나면 단번에 내리찍는다.

”데갸아아아아아아......“

예리한 피켈이 정수리를 정확히 관통했다.

”데갓.... 하뮤라뾰 루뺘모 메빠소“
숙련된 구제업자의 일격은 피가 거의 튀지 않으면서 두개골과 뇌를 박살냈다.

친의 몸이 끈떨어진 꼭두각시 인형처럼 고꾸라진다.
눈에서 빛이 사라지며 입으로는 알 수 없는 주문 같은 말만 반복한다. 이제 자상하던 어미는 없다.

”마마!!!“
단말마를 내지르며 친에게 달려오는 차녀의 머리에도 한 방.

”하뮤라뾰 루뺘모 메빠소“

차녀는 마마처럼 맥없이 쓰러지진 않았다.
머리가 깨짐과 동시에 뿌지직하고 폭발적으로 쏟아져 운치는 차녀를 서 있는 두엄더미였다.

”마마, 이모우토챠!!!“

써걱

장녀의 머리가 깨졌다.

”테츄〜웅? 닌겐상 귀여운 와타시를 보는 테치.
와타시의 세레브한 매력에 매료매료 되는 테치
타치를 기르면 닌겐상에도 행복이 가득한....테갹!!“

위석 깊숙이 새겨진 원초적 본능에 굴복해 오른손을 입가에 대고 아첨을 늘어놓던 3녀도

”마마!! 도와달란 테치!! 정신병자 학대파를 치워 달란 테치!! 와타시를 살려주는 테치“”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마마를 찾던 4녀도 자아 잃은 고깃덩이로 변했다.

구제를 마무리한 웅철은 챙겨온 구제전용 봉투에 일가를 담았다.

“이제 또 삽질할 차례가?”

대강 마무리된 걸 보고 달려온 덕수가 물었다.

“예, 얘 내가 판 굴 싹 다 찾아서 메꿔야죠. 쓰레기도 다 치우고.”

구제는 일가실각으로 끝나지 않는다. 
일가가 많으면 스무개 가까이 파놓는 운치굴을 남김없이 찾아 구더기와 운치를 퍼내 메우고, 
집과 도구로 쓰던 쓰레기까지 말끔히 치워야 비로소 끝나는 지난한 작업이다.

“거 좀 적게 파났으면 좋겠구만.”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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