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의환향

 

 "루비. 이제 마음 풀어."

루비는 여전히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소풍을 나온 것은 주인사마의 독단 데스. 와타시는 소풍을 가겠다는 의사가 없었던 데스."

"루비.."

"닝겐상."

내 옆의 들실장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괜찮은 데스."

"이봐.."

분홍색 옷을 입은 루비와 달리, 낡은 행색에 초라한 옷가지.

머리 만큼은 청결하게 관리하려 노력했으나, 푸석푸석한 머릿결은 세월의 풍파와 거친 공원의 삶을 짐작하게 한다.

"공원의 보통 들실장인 와타시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신 데스. 그것만으로 닝겐상에게 감사한 데스."

그 들실장은 돗자리 위에 올라오지도 않았다.
더러운 자신이 인간의 물건을 만지면 내가 싫어한다.. 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아마 내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는 사육실장 때문이겠지.
"루비. 그러지 말고 일단 밥 먹어라. 그리고 너도 음식을 좀 먹어도 좋아."

"그치만... 닝겐상의 음식은..."

"상관없다. 먹어."

실장푸드를 한 그릇에 담았다.

"사이좋게 나눠 먹어라."

"닝겐상 감사한 데스."

"주인사마 감사한 데스우."

그러나 루비는 나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가방에 푸드를 최대한 쑤셔 넣고 다시 제자리로 갔다.

그리고는 파리한 들실장을 등지고 뒤돌아 앉아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루비! 너 정말 이럴 꺼야?"

울컥하여 루비에게 호통쳤다.

"닝겐상.. 괜찮은 데스... 와타시가 부족한 탓인 데스... 제발 삼녀챠를 용서해주시는 데스.."

난 친실장의 애원에 루비를 차마 더 혼낼 수가 없었다.




4개월 전, 나는 루비를 만났다.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집에 오는 도중, 봉투에 이질감이 느껴져서 열어보았다.

"닝겐상... 안녕하신 테치...? 와타치 탁아해서 죄송한 테치.. 정말정말 죄송한 테치...."

자실장 한마리가 내 음식에는 손도 안댄채, 과자봉지 위에서 나를 똘망똘망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넌 뭐냐... 탁아냐?"

"테에엣! 죄송한테치! 정말정말 죄송한 테치! 그치만 와타치 운치도 안싼 테치. 화장실도 혼자서 가리는 테치. 닝겐상 음식은 먹지 않는 테치. 마마가 그래야 한다고 윽박지른 테치... 닝겐상 정말정말 죄송한 테치... 그치만 와타치 닝겐상에게...히끅..."

울음을 최대한 참으며 내게 연신 사죄하는 녀석을 보니, 흥미가 생겼다.

"넌 운이 좋은 편이다."

"테에...?"

사실이었다. 나는 최근 기르던 실장석이 사고로 죽어버려서, 다른 실장석을 구하고 있던 찰나였다.

"최근 실장석을 기르려 했거든.."

이 녀석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치만, 분충은 사절이다."

난 여전히 나무토막처럼 딱딱한 표정으로 자실장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분충이 아니고, 나의 사육실장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들어 나를 설득해라."

분충성 높은 보통의 들실장이라면 나를 노예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자신이 그럴 권리가 있다고만 우겨대겠지. 그리고 호의적인 나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따박따박 말하겠지. 아주 욕심궂은 표정으로.

"와타치... 마마에게서 버려진 테치.."

예상 외로 자실장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와타치도 알고 있는 테치...닝겐상들은 들실장 따위는 기르고 싶어하지 않아하는거, 와타치도 아는 테치... 그렇다면... 탁아를 한 마마의 생각은 아마... 와타치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일 테치.."

영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네 사정이지, 내가 널 길러야 하는 이유는 아냐."

"알고있는 테치. 와타치는 그냥 여기 던져진 것일 뿐인 테치... 사실 와타치를 기를 이유 따위는 닝겐상에게 없는 테치.... 어짜피 마마한테도 버림받은 테치... 와타치는 이제 닝겐상이 아니면 살 수가 없는 테치... 이제 와타치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닝겐상에게 기대는 것 뿐인 테치.... 그치만...히끅.... 그치만....히끅... 그래도 닝겐상이 와타치를 기를 이유는 없는 테치... 히끅.."

자실장은 자신의 처지를 정말 냉엄하게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길러주지 않으면 자신은 죽게 된다는 비정한 현실까지도.

"합격이다. 길러주마."

이만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 녀석은 사육실장 중에서 찾기도 힘들다.

"그치만 분충짓을 할 경우에는 크게 혼난다는 것을 알아 둬라. 어디까지나 너는 나에게 사육되는 입장임을 기억해."

자실장의 표정이 밝아진다.

"닝겐상, 정말정말 감사한 테치! 정말정말 고마운 테치!"

"주인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그리고 네 이름은... 음.... 루비다."

"테에...! 생명의 은인 주인사마 테치! 정말...히끅.... 감사한...히끅..."

그렇게 나와 루비는 만났다.

루비는 첫인상 대로 정말 착한 녀석이었다.

"주인사마! 루비 주인사마 올 때까지 조용히 공놀이하며 기다린 테치!"

내가 직장에 있느라 집에 없어도 알아서 화장실을 가렸고, 음식투정 한 번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전에 있던 녀석보다 키우기가 수월했다.

"정말정말 감사한 테스! 주인사마 와타시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실장 테스!"

중실장이 된 기념으로 15,000원짜리 가장 싼 분홍색 실장옷을 사준 날, 루비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해했다.

휴일인 다음 날, 새 옷을 입히고 루비가 자란 그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잔디 밭에 돗자리를 깔고, 오랜 만의 바깥세상을 요리조리 뛰어다니는 루비를 한가롭게 보고 있을 때였다.

"테에...테스우..."

문득 수풀을 본 루비가 갑자기 내 품으로 안겨왔다.
"무슨 일이야?"

"주... 주인사마 와타시 무서운 테스우... 이제 집에 돌아가자는 테스...!"

루비가 가리키는 쪽을 보니, 나무 뒤에 숨어 빼꼼히 고개를 내민 들실장 한마리가 보였다.

초췌한 꼴의 성체실장이었다.

"알겠어.. 가자.."

집에 돌아온 나는 몸을 덜덜 떨고 있는 루비에게 데운 실장푸드를 먹였다.

"루비.. 너도 들 출신이잖아. 그 실장석을 보고 왜 그렇게 놀란거야..?"

"그 분충은... 와타시의 마마인 테스."

나는 깜짝 놀랐다.

"아니, 네 친실장을 만나서 몸을 떠는거였어? 모자 상봉은 못할 망정 마마를 피한 거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투로 말을 꺼는 순간, 문득 떠올렸다. 루비는 탁아되어 버려졌다는 것을.

"와...와타시는... 들에서 헐벗고 굶주린 기억밖에 없는 테스우.... 지금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그 때는 동족식도 하고 운치도 먹었었던 테스..."

루비는 고개를 떨구며 내게 과거를 고백했다.

"마마에게 버려진 날, 마마는 나에게 무척이나 화를 낸 테스우... 이미 다른 자매들은 다 죽었던 테스...."

루비를 만난 것은 1월 중순 즈음이었다.

루비의 자매들은 아마 전부 얼어죽었을 것이다.

"자매들이 죽었을 때는 마구 울었던 마마가... 와타시 혼자 남으니깐 와타시를 무척이나 때린 테스... 탁아할 거라고 매몰차게 말했던스우.... 와타시는 울었던 테스... 자매들의 언 시체를 먹었을 때도 그렇게는 울지 않았던 테스..."

"루비.."

그다지 좋은 기억 같아보이지는 않았다.

"마마가 버린다니... 믿기지 않았던 테스. 그치만 싫다고 떼쓰니, 도깨비같은 표정을 지은 마마에게 몇번이나 맞은 테스. 마마는 와타시를 데리고 나오면서, 닝겐상에게 살고 싶으면 반드시 지키라고 하면서 몇 가지 말해주었던 테스."

"그게 네가 나를 처음 만나고 나서 줄줄 외웠던 그거야?"

"그런 테스.. 봉지 안에서 운치 싸지 말 것, 닝겐 상의 음식에 손 대지 말 것, 닝겐상에게 사육되는 입장임을 기억할 것... 우는 와타시의 귀에 대고 몇번이나 윽박지르면서 말한 테스..."

루비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오로롱..오로롱.. 와타시는 싫었던 테스... 죽을지도 모르는 데, 아니 죽을 가능성이 높은 데도, 마마는 와타시를 버린 테스우. 정말로 싫었는데... 상냥한 주인사마가 아니었다면 와타시는 죽었을 텐데... 와타시는 정말 운이 좋았을 뿐이었던 테에에에에엥"

"괜찮아 루비.. 이젠 내가 있잖아.."

나는 가만히 루비를 쓰다듬어 주었다.

친실장은 공원에서 뛰어노는 루비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루비에 말에 따르면 멍한 표정으로 루비를 향해 걸어왔던 모양이었다.

자신을 버린 마마를 본 루비는 그래서 나에게 갑자기 달려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루비.. 그치만 너의 친실장이 정말 너를 버리려 했던 거였을까?"

겨울이다. 다른 자매들이 다 죽어나갔다. 루비도 아마 얼마 안 있다가는 다른 자매를 뒤따랐으리라.

"싫어했던게 틀림 없는 테스! 와타시는 마마랑 함께이고 싶었던 테스. 하지만 마마는 와타시에게 그날 엄청엄청 화내고, 와타시가 죽을 지도 모르는 데에도 탁아를 했던 테스! 주인사마가 아니었으면 와타시는 이런 삶은 커녕, 그날 죽었을 것인 테스."

루비는 팔을 마구 흔들며 까치가 짹짹거리듯 말을 이어나갔다.

"마마는 와타시를 버린 테스! 와타시가 싫다고 마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울면서 빌었는데도, 마마는 와타시를 때리고 주인사마에게 탁아한 테스. 물론 주인사마를 만나서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되었지만, 마마에게 버림받은 것은 사실인 테스..."

루비의 마음속에는 이미 깊은 상처가 생긴 듯 했다.

"루비.. 하지만.."

"주인사마.. 와타시 위석이 아픈 테스.. 제발 그 이야기는 그만해주는 테스.."

루비는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이봐 친실장."

친실장은 루비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루비는 뒤돌아서 내 쪽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음식을 빠른 속도로 먹더니,

'졸린 데스. 이제 자야하는 데스."

라고 말하면서 그대로 누워 자버렸다.

루비는 친실장이 있는 쪽과 반대쪽을 향해 옆으로 누운 채로 잠을 자고 있었다.

"너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구나."

친실장은 애처로운 눈빛으로 루비의 등을 응시하고 있었다.

"닝겐상. 다시 한 번 삼녀챠를 길러주셔서 감사한 데스우. 와타시는 정말 나쁜 실장, 나쁜 마마인 데스."

"네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잘 안다.“

“삼녀챠... 자는 데스?”

“그래. 골아떨어졌어.”

"그치만... 와타시는 그래도 나쁜 마마인 데스. 자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데스."





그 이후로도 나는 루비를 데리고 종종 산책을 나왔다.

처음에는 마마와 마주칠까 무서워 내 옆에 찰싹 붙어있었지만, 루비는 그 이후 친실장을 만난 적이 없었다.

공원에 두세 번 다녀왔음에도 친실장이 보이지 않자, 루비는 공원에 갈 때마다 예전처럼 활발하게 뛰어놀았다.

"화창한 봄날 데스우! 와타시가 주인 사마랑 만날 때만해도 흰색 세상이었는데, 지금은 와타시의 옷이랑 똑같은 색깔의 꽃님들이 휘날리는 데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산책을 나올 때마다 친실장을 보았다.

친실장은 루비가 혹여나 자신을 발견할까 하여, 루비에게 보이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숨긴 채로 루비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실장석에 비해 키가 월등히 커서 시야가 넓은 내게는 친실장의 이런 행동이 전부 눈에 밟혔다.

"...."

나는 친실장이 루비를 버린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

여느 때처럼 공원에 산책을 나온 어느 날, 나는 루비가 놀다 지쳐 잠이 들자, 루비를 돗자리에 뉘이고 친실장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데헤이익!"

실장석으로서는 생각도 못할 빠른 속도로 내가 다가오자, 친실장은 도망가려 했다.

"멈춰라. 네가 내게 이 녀석을 탁아한 친실장이지?"

나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그.... 그런 데스 닝겐상. 삼녀챠를 길러주셔서 감사한 데스..."

링갈에는 친실장의 사과의 말이 찍혀나왔다.
친실장은 벌벌 떨면서도 허리를 굽혀 연신 인사를 해댔다.

아마 자신의 자가 내게 길러지고 있기 때문에, 또 자신의 탁아를 받아준 입장의 나이기 때문에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겠지.

"네가 우리 루비를 몰래 지켜보고 있을 때, 난 다 보고 있었어. 네가 루비에게 들키지 않게 숨어서 루비를 지켜보던 것을."

"닝겐상.."

친실장은 나지막이 나를 불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리는 데스우.. 삼녀챠를 길러주셔서, 살려주셔서 정말 감사한 데스우..."

루비와는 달리 더러운 옷과 얼굴. 거친 손과 피부. 그리고 세월의 풍파가 담긴 그 깊은 눈.

그리고 그 행색 하나하나에 아로새겨진... 모성애.

"루비를 만나고 싶니?“

순간 친실장의 눈이 빛났다.

“데에...그치만 삼녀챠는... 와타시를 미워하는 데스..”

“아냐. 오히려 같이 모이는 자리를 통해서 서로의 감정을 풀 수 있을 거야. 루비에게는 내가 잘 말해볼게. 다음번에 산책 나올 때, 같이 만나기로 하자.”

순간의 변덕이었을까?

나는 친실장과 루비를 만나게 해주기로 했다.

“나는 알고 있어. 네가 루비를 내게 탁아한 것은 루비를 버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수밖에 없었던 거잖아.”

친실장은 말이 없었다.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면 다음 산책 때에 보자.”

일주일 후, 산책에 가기 직전 루비에게 친실장을 만날 것이라고 하자, 루비는 길길이 화를 내며 내게 소풍을 가지 않겠다고 투정을 부렸다.

“싫은 데챠아아아아! 주인사마 너무한 데스! 와타시의 마마는 와타시를 버린 데스! 이제 와서 다시 만나는 것은 싫은 데챠아아아!”

“루비! 나랑 그냥 산책도 아니고 소풍 나간다니깐? 스테이크 맛 푸드도 줄게. 음료수도 사주고. 그러니깐 너희 친실장 만나러 가자. 응?”

“그런 소풍이면 와타시는 집에 있는 데스. 주인사마 혼자 가시라는 데스우!”

“이 녀석이! 말 안 들어?”

내가 화를 내며 현관문을 한 대 걷어차자, 루비는 조용해졌다.

그렇지만 내 말에 순응하고, 공원에 나갈 채비를 하면서도 나와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억지로 루비를 공원으로 데려가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친실장에 대한 태도는 별개의 문제였다.

돗자리를 깔고, 나무 뒤에 숨어있는 친실장을 불렀다.

“나와. 친실장. 데리고 왔어. 같이 앉아서 푸드 까고 도란도란 얘기라도 해봐.”

“데에...알겠는 데스우...”

친실장이 나왔다.

루비는 친실장의 시선을 외면했다.

“삼녀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루비! 네 마마한테 이러기냐?”

“흥, 데스우.”

“닝겐상, 괜찮은 데스우.”

내가 화를 내려하자, 링갈에서는 친실장의 달래는 듯한 말이 찍혀나왔다.

“삼녀챠, 자리에 앉는 데스. 와타시는..... 돗자리 옆의 풀밭에 앉으면 되는 데스.”





옆으로 누운 루비의 뒷모습을 친실장은 지긋이 바라보고 있었다.

“루비... 삼녀챠의 이름인 데스우?”

“그래. 내가 지어주었다.”

“예쁜 데스...”

“저 녀석은 셋째였구나.”

“그런 데스..”

친실장은 묵혀둔 기억을 더듬어 찾아내듯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원래 저 자에게는 5마리의 자매가 더 있었던 데스. 전부 가을 끝자락에 낳은 자들인 데스. 원래 있던 자들은 다 죽었기 때문에, 와타시는 그 추자들을 전부 기르기로 한 데스.”

“하지만.. 곧 겨울이 왔을 터인데..”

“맞는 데스. 와타시는 자들과 함께 노력했지만, 겨울은 무서웠던 데스. 자들이랑 함께 낙엽도 모으고, 보존식도 모았던 데스. 다들 착한 자들이어서 매일 힘든 노동에도 불평하나 하지 않았던 데스. 정말정말 열심히 준비했는데... 다 소용없었던 데스.”

올해 초는 몇 년 만의 강추위가 몰아닥쳤었지..

“자들은 저 삼녀챠를 제외하고 차례차례 죽었던 데스. 얼어 죽고, 굶어 죽고... 사실 삼녀챠도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던 데스. 그리 될 줄 알았으면 차라리 힘들지 않고 재밌게라도 살게 해줄 걸이라고 생각했던 데스.”

친실장은 허탈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낡은 넝마같은 옷과 부스스한 머리가 때마침 분 바람에 흩날렸다.

“먹이도, 방한용품도 떨어지는 순간에는 어쩔 수 없이... 죽어버린 자들을 이용해야 했던 데스. 자들의 시체에서 옷을 벗겨 낙엽이 날아간 부분을 막고, 얼어버린 자들의 시체를 일가가 먹은 데스.. 끔찍하고도 서러웠던 데스.. 닝겐상.. 즐거운 봄날에 이런 들실장의 우울한 얘기해서 미안한 데스..”

“아니, 계속해줘.”

루비의, 아니 삼녀의 보호자로서 나는 친실장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와타시는 마마 실격이었던 데스. 못난 마마였던 데스.. 죽은 자의 얼어버린 시체를 먹으면서, 자들과 울면서도 오랜만의 먹이를 허겁지겁 해치운 데스. 남은 자의 시체를 보존식으로 삼았던 데스..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자들에게 오늘 같은 봄날을 보여주고 싶었던 데스.. 하지만 결국 삼녀를 제외하고는 살릴 수가 없었던 데스...”

이처럼 작은 생물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데에 나는 놀랐다.

그러면서 가슴이 아려왔다.

“추자인 것을 알면서도 자들을 살리고 싶었던 데스.. 하지만 결국 자들만 고생시키다, 죽어버린 꼴이 된 데스... 삼녀챠만 남았을 때에.. 와타시는 더 이상 삼녀챠를 봄까지 살릴 자신이 없었던 데스.. 책임감도 없는 형편없는 실장석인 데스..”

“그래서 탁아를 한 거구나.”

“맞는 데스. 삼녀는 이대로라면 얼어죽는다고 생각한 데스. 그래서 와타시는.... 삼녀를 와타시에게서 버리기로 결정한 데스. 와타시의 손에서 죽을 바에야 닝겐상의 손에서 살아갔으면 한 데스. 비록 죽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고 들었지만... 와타시는 탁아할 수밖에 없었던 데스.”

“그래.. 넌 그 수밖에 없었어.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마..”

“아닌 데스.”

친실장은 무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탁아를 결심한 날부터 와타시는 삼녀챠에게 매몰차게 대한 데스. 닝겐상에게 길러져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라면, 와타시를 잊어야 할 필요가 있었던 데스. 와타시를 찾느라 닝겐상에게 함부로 했다간 그 자는 죽는 데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자의 죽음을 말하고 자를 버리는 심경을 말하는 이 친실장은 얼마나 슬퍼했던 것일까?

얼마나 슬퍼하고 또 생각해야 그 슬픔마저 무덤덤하게 느껴질 정도가 되는 것일까?

“그래서 탁아하기로 한 날에는 삼녀챠를 때린 데스. 학대한 데스. 와타시가 생각나지 않도록, 그래서 겨울의 끔찍한 기억을 잊고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탁아당한 닝겐상에게 죽지 않도록 와타시가 알고 있는 바를 모두 말해준 데스. 듣기 싫다고, 때리지 말라고 차게 우는 삼녀챠를 때려가며 억지로 듣게 한 데스. 버리지 말라고, 죽더라도 마마와 함께 죽고 싶다고 우는 자를... 와타시는.... 욕하고 때렸던 데스.”

루비의 몸이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친실장은 못 봤겠지만, 높은 시야로 내려다 본 내 시선에 포착된 루비는 눈을 뜨고 있었다.

아니, 눈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루비... 듣고 있던 거 알고 있어... 이제 제발 일어나...”

“..! 고로로롱! 히끅.. 고로로롱! 히끅...”

루비는 일부로 코고는 소리를 내보았지만, 그 소리에는 울음이 섞여있었다.

“닝겐상 괜찮은 데스. 곤히 자는 데 깨우지 말아주시는 데스.”

친실장은 자애로운 표정으로 루비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탁아를 해도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쯤은 와타시도 알고 있었던 데스.. 그렇지만... 삼녀챠, 아니 루비챠도 똑똑해서 알고 있었던 데스. 삼녀챠는 와타시에게 자기를 죽게 하지 말라고, 버리지 말아달라고 애원한 데스... 와타시는...”

친실장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런 삼녀챠에게 마마를 더 이상 볼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며 그대로 닝겐상의 봉투에 던져넣었던 데스...”

잠시 정적이 감돌았다.

루비가 몸을 들썩이는 소리만 작게 날 뿐이었다.

“탁아를 해도 와타시는 닝겐상에게 길러질 수 없는 데스. 그 정도는 알고 있는 데스. 그래서 매몰차게 대했었는데.... 그랬었는데....그렇게 삼녀를 보냈었는데...”

나는 루비를 처음 만난 순간을 기억했다.

친실장에게 버림받았다고 울던 그 모습을.

그 모습에는 친실장에 대한 상처가 있었다.

“와타시는 나쁜 마마였던 데스.. 아무리 자를 살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삼녀챠에게서 가족을 떼어낸 데스... 와타시는 다른 들실장들처럼 자들의 겨울나기를 제대로 해주지 못한 데스... 그런 주제에.... 그런 주제에.... 삼녀챠를 억지로 버린 데스...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도 닝겐상에게 끔찍하게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닝겐상에게 탁아를 한 데스. 비정한 마마였던 데스....”

“아니야... 넌 최선을 다했어. 그 덕분에 루비는 나를 만났잖아...”

“닝겐상... 와타시는 삼녀를 봉투에 넣은 후,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닝겐상을 한참이나 따라갔던 데스. 입으로 신음소리를 내면서... 손으로는 앞을 허우적대면서 뛰었던 데스. 멍하니 달렸던 데스. 삼녀를 다시 꺼내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참이나 닝겐상의 뒤를 쫓아갔던 데스. 왜인지 아는 데스...?”

친실장은 여전히 땅바닥을 보면서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한심했던 데스.. 자들에게 고통만 안겨주고, 마지막에는 감당 못할 것 같으니 자를 버린 데스.. 그래서.... 이제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따라간 데스. 그러나 닝겐상은 곧 사라져버린 데스. 와타시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린 데스.”

“코로로로롱 히끅! 코로로로롱 히끅!”

루비는 자신의 울음소리를 지우려는 듯이 일부로 코고는 소리를 다시 내기 시작했다.

“한참이나 울었던 데스. 손이 아플 때까지 땅을 치면서 펑펑 울었던 데스. ‘삼녀챠! 와타시의 삼녀챠! 마마를 잘못 만나서 콘페이토 한 번 먹어보지 못하고 고생만 한 데스, 마마 때문에 죽어버리는 데스!’ 하면서 울었던 데스. ‘와타시의 자들! 마마가 못나서 오마에타치를 전부 죽게한 데스, 미안한 데스, 마마 때문에 죽은 자들, 미안한 데스!’ 하면서 하늘을 보았지만, 볼 수가 없었던 데스..”

“루비! 자는 척하지 말고 일어나! 우는 거 다 알고 있어!”

나는 세차게 루비를 흔들었다.

“데에에엥..히끅! 코오오오! 데에에엥... 히끅! 코오오오!”

루비는 애써 잠에서 일어나지 않는 척, 누가 봐도 우는 소리인 코 고는 척을 계속했다.

하지만 친실장은 감정 없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날따라, 동그란 햇님이 너무나도 밝았던 데스. 햇님의 빛에 공원에 쌓인 하얀 눈이 반짝반짝 빛났던 데스.. 와타시는 부끄러워서 참을 수가 없었던 데스... 온 세상의 빛이 와타시를 비추는 것 같았던 데스.. 온 세상이 와타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던 데스. 제발 잘 살아달라고, 앞으로 마마와 자매를 잊고 행복하게 살아달라고 염치없는 생각을 하는 와타시에게 부끄럽지 않느냐고 물어보는 것 같았던 데스...”

친실장은 여전히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를 죽이기만 하는 주제에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해낸 게 자를 죽일 수도 있는 방법이었던 데스. 그걸 위해 자에게 상처를 준 데스. 죽을지도 모르는데....죽을지도 모르는데... 그래서 와타시는 차마 하늘을, 그리고 주위를 볼 수 없었던 데스. 그냥 주저 앉아서 땅을 바라보는 수밖에 없었던 데스... 땅밖에 볼 수 없었던...”



-----------------------



이청준, <눈길> 오마쥬

지금은 당신의 천국에 있을, 위대한 예술인을 기리며..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