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 옆나라 왜(倭)에서 실장석이 막 건너왔을 당시 일어난 이야기다.
이름있는 가문이었으나 재주를 갖지 못해 일 없이 노니며 남 참견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인분충 이첨지가 한마을을 배회하던 중이었다.
미천하게 생긴 평민을 발견한 이첨지는 시비라도 틀 참으로 다가갔는데, 마침 평민 옆에 대나무 망태기가 흔들거리는 것이 눈에 띄었다.
궁금증에 대나무 망태기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빠져 나갈라고 발버둥치는 실장석들이 가득 담겨있는데 정작 뚜껑이 덮혀 있지 않았다.
"이보게나! 이 안에 녹돼지들은 전부 팔팔하게 살아있는 것이 아닌가?"
"예, 나리. 하도 작물을 망쳐서 다 솎아내려고 여기 가둬놓았습니다만..."
"어허, 이 잡것들이 도망이라도 친다면 어쩌려고 뚜껑을 덮어놓지 않는단 말인가! 쯧쯧."
이첨지는 이자를 골려먹을 생각으로 혀를 끌끌차며 평민을 나무랐다.
그러자 평민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하길,
"당체 실장석이라는 것들은 자기 몸 상하는 것 보다 남 잘 되는 것이 더 걱정인지라, 한 놈이 망태기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다른 놈들이 힘을 합쳐 끌어내립니다. 이거 보십시오, 무슨 뚜껑이 필요하겠습니까? 허허!"
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이첨지는 다시 망태기 안을 자세히 살펴보니, 실장석들은 스스로 자기 목숨을 옥죄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데프프프! 고귀한 와타시는 똥닝겐이 가둔 이 망태기 안에서 벗어나는 데...갸악?! 똥동족들은 이거 놓는 데샤악!!!"
"이 분충이 감히 와타시보다 먼저 빠져나갈라고 하는 데스? 어림도 없는 데샤!!"
"세레브한 와타시가 먼저 나가야 하는 게 인지상정인 데슷!! 똥벌레들은 다들 비키는 데스우!!"
"개소리 말란 데샷! 다들 저 헛소리를 하는 분충놈을 얼른 끌어 내리는 데샤아아아아앗!!!!"
협동심은 커녕 양보심조차 눈을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똥벌레들답게, 다른 동족이 간신히 위로 올라가 빠져나가려고 할 때마다 밑에 있는 놈들이 질투심에 끌어당기는 것이 반복되었다.
어찌나 잡아당겼던지 발이나 뒷머리, 치맛자락이 성하질 못할 지경이었다.
그러자 이첨지는
"과연 조선 땅에서는 실장석이나 사람이나 다를 바가 없...아니, 사람보다 더 하구나!"
감탄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다.
이후 이첨지는 이 일을 교훈삼아 당장 집에 달려가 학문에 매진하였으며, 과거에 응시하여 실장석을 주제삼아 공들여진 시를 써내며 당당하게 급제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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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게 패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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