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들과 밥을 먹고, 혼자올라오는 건물 옥상.
여기서 커피를 마시거나 폰을 만지작 거리며
30분 정도 있다가 다시 일하러 가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하늘을 그저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취미인
나에겐, 흐리거나 맑거나 비가 오거나 해도
펜스가 쳐져 있어 날씨 영향을 안 받고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이 곳이 딱 좋았다.
그리고 우리 쪽 건물과 옆 보험사 건물과는
약간의 틈이 있는데, 우연찮게 거기서 움직이는
자그마한 살색 덩어리를 보았다.
자실장.
그것도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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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위로 그곳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녀석은 처음 봤을 때,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울며 무언가를 찾는 듯 했다.
자기 어미일까? 아니면 자기 자매들일까.
만약 그들이 맞다면 그 녀석을 두고 간 것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로 운 나쁘게 떨어트린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엔 전자였다.
녀석들은 독라같은 개체는 따돌리고 괴롭혀서 노예로
만들거나 먹이가 될 새끼들을 낳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보통이니까.
하여튼, 녀석은 한참을 주저앉아 울었다.
하지만 들어주는 이가 있을 리 없었다.
건물 옆 도로에서 나는 차들의 소리는 자실장 하나의
비명이 어떻게 뚫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이 건물들은 방음 시설이 생각보다 완벽했으며 그곳에
뚫린 문이라곤 그 쪽으로 들어가는 녹슨 철문이 다였으니까.
... 하지만 그 곳도 쓰레기로 막혀 있을텐데.
생각 할 수록, 저 녀석의 존재는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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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녀석은 우는 것이 지쳤는지 여기저기를 쑤셔보며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집을 짓고있는 건가. 그 와중에 자실장 크기로도 들 수 있는
나무판을 들자, 나오는 이끼와 버섯무더기를 보고는
기쁜 울음소리를 낸다.
그리고 한 입 크게 베어물고는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정도로도 행복할 수 있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녀석은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모양이다.
하기사 우리도 하늘 보고 사는 것이 손에 꼽는데. 우리보다
살기 힘든 자실장이 하늘 보는 거야, 드물지.
걱정이라곤 다 버섯과 함께 뱃속으로 넣어버린 듯한
표정을 짓던 녀석은 뭔가 다짐을 했는지 주먹을 꽉쥐는
포즈를 하더니 여기 저기서 잡동사니를 모았다.
그리곤... 쌓기 시작한다.
기둥, 벽... 지붕.. 녀석이 만족한 듯 뒤로 물러서자,
거기엔 위에서 지켜보아도 그럴싸 한 집이 완성 되어있었다.
바람 한 방에 다시 무너지긴 했지만.
무너지는 집에 비명을 지르고 발을 동동 구르며 울던 녀석이지만,
다시 얼굴에 힘을 팍 주면서 일어나 하던 일을 반복했다.
뭐, 노력하는 만큼 나왔으면 좋겠네,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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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드디어 집을 짓는데 성공한 듯 했다.
위에는 비를 막을 것으로 보이는 비닐까지 씌워져있다.
저 작은 몸으로 저걸 어떻게 한 건지 궁금할 정도로 완벽하게.
게다가 덮고 남은 것으로 보이는 비닐로 옷을 해 입기까지
했다.
두건까지 있는 걸 보니 오히려 감탄 보단 웃음이 나오는 꼴이다.
뭐, 나름 똑똑한 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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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이 저기에 갇힌지 다시 일 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저 좁은 곳에서 어떻게 음식조달을 하는지 몰라도,
처음 그곳에 갇힌 것에 비해 살까지 올라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녀석의 손은 어디서 뭘하는 것인지 흙먼지가 묻어있고
군데군데 상처까지 나있었다.
그리고 본래 나무판을 들어 꺼내먹던 버섯과 이끼가
사라져있었다.
그제야 나는 녀석이 집안에 굴을 파고, 그것들을
양식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똑똑해도, 너무 똑똑한 것 아닌가.. 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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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과에 녀석이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생활화가 되어갈 때 즈음,
녀석의 집 앞에는 갖가지 식물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마 옆 보험사 건물 쪽에서 추진중이던 옥상 텃밭에서
떨어진 씨앗들인 것 같다.
어둡고 축축한 건물 사이라도, 반사광이 비치고 이 맘때
쯤이면 햇빛이 들어서일까?
식물들은 다른 텃밭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나고 있었다.
독라 녀석은 그것을 처음에는 먹어보려 했지만,
무언가 생각난 것인지 더 이상 손을 대진 않았다.
가끔, 호기심에 그 조그마한 손으로 톡톡 건드려보는 것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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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중순이 되었다.
전 사육실장 스팸이 나를 실망시키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녀석은 어느새 자라나 스팸의 중실장 때의 크기로 자라났다.
울음소리도 굵어졌을 것이나 야생의 녀석이라 그런지
잘 울지는 않는다.
당연한 일이다. 저 좁은 곳에 천적이라도 나타났다간 녀석은
참살일테니.
그 와중에도 식물들은 자라고, 녀석은 밥을 먹고 할일이 없으면
이리저리 춤을 추고 노래를 하면서 혼자 놀기 시작한다.
그러면 미약한 바람이 흘러 어느정도 자란 식물들이 같이
춤을 추듯 이리저리 흔들린다.
녀석은 그것이 그렇게도 좋은지, 혼자 웃으면서 가끔 식물의 잎을 잡고
같이 춤을 추는 듯 이리저리 흔든다.
인간이 저랬다간 식물은 잎이 다 뽑혀 버리겠지만,
실자석.. 그것도 저것 말곤 아무것도 할 것 없는 녀석은 잎을 소중히
잡으면서 이리저리 춤을 추었다.
외로워 보이는 구만,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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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드디어 식물들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녀석은 그것이 먹을 것임을 알면서도, 섣불리 먹으려 하지 않는다.
저건 또 어디서 배운걸까
오히려 있던 음식도 아끼고 그 좁은 곳을 어떻게든 샅샅이 뒤지며 가끔
부주의한 녀석들이 흘린 음식물 쓰레기나 먹다만 간식봉지를 수거해
자기 집으로 들고 들어갔다.
본능적으로 거기엔 음식이 적고, 겨울을 일찍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모양이다.
나도 일이 성수기라, 그 이상 녀석이 더 다른 할 일을 찾는 것을 보지 못해
평소보다 빨리 일을 마치러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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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천고마비의 계절.
하지만 녀석은 다른 실장석에 비해 마른 상태였다.
비록, 그게 인간의 미적 감각으로 더 좋아보인다 할지라도.
내가 보지 않는 동안 여러모로 이 공간에 제대로 적응했는지,
점심시간이 되면 재빠르게 집안으로 숨었다가 사람들이 떨구는
음식물이 어느 정도 쌓였다 싶으면,
그것을 다시 나가 수거한뒤 재빠르게 다시 들어갔다.
게다가 가끔 떨어지는 잡동사니나 쓰레기들 역시 집으로.
녀석에겐 회색 콘크리트 나무에서 생필품이 열매처럼 떨어지는
것 처럼 보이는 걸까.
...하지만 그 수많은 잡동사니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지는 건지.
집 내부를 보고 싶지만 이 내려보는 각도에선 어디로 봐도 무리다.
왠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는 내가 바보같아져, 그만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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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녀석들이 가장 바빠질 시기인, 월동 준비기간이 온다.
녀석은 어떻게 이 겨울을 날까. 저 독라의 몸으로.
사뭇,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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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가오는 늦가을, 녀석의 모습이 사뭇 달라졌다.
비닐봉투는 두겹이 된데다 그 안에 천쓰레기들을 채워넣고,
어디서 구한건지 자신의 발에 꼭맞는 비닐봉투와 정체모를
뚜껑을 발에 신고 그 안에도 천쓰레기를 채워넣었다.
머리엔 팀장이 춥다고 회사로 시켰지만 아동용으로 와 홧김에
이 곳으로 던져버린 털모자와, 손엔 여직원들이 냄새난다고
버려 버린 수면양말.
겨울 준비를 마친 위풍당당한 모습의 녀석이 누군가에게 자랑
이라도 하고 싶은 듯 서있었다.
너무 거하게 뿜어서 녀석이 올려다 보기 전에 내려가기로 했다.
정말이지 재밌는 녀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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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컬러풀한 수면양말과, 빈곤이라 적힌 수면양말을 낀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무언가를 하는 독라.
아니, 이젠 독라가 아닌가.
하여튼 녀석은 늦가을에 돌입한 식물들이 열매를 맺고 그것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잽싸게 그것들을 모아 지붕에 말리기 시작했다.
저런 건 또 어디서 배운거지. 혹시 사육실장이었나?
하여튼 녀석은 낙엽도 하나 빠트리지 않고 전부 모아 가져간다.
아마 보온재로 쓸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저걸로 충분할까..
걱정이 됐지만 내가 더 신경쓸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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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워서 그다지 올라오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녀석이 뭔가를 하고 있는지 궁금해 안 올라올 수가 없다.
게다가 내 예상은 적중해, 녀석은 또 내가 놀랄거리를
그 작은 두손으로 만들고 있었다.
양말을 낀 두손에, 봉투까지 끼고 눈을 만지며 무언가를 하는 녀석.
눈장난을 하는가 싶었지만 달랐다. 그것을 집의 지붕에 빠짐없이 바르고 있었다.
녀석은 이글루를 만들고 있던 것이다.
그래.. 눈으로 만든 집은 실제로 안이 따스해지는 효과가 있지.
하지만 그것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왠지 기운없는 포즈에 힘없이 처덕처덕 눈을 바르는 모습,
그리고 누런 콧물을 훌쩍이며 우는 건지 코를 흘리지 않으려는 건지
모를 표정으로 눈을 바르는 녀석.
이내 내가 커피를 다 마시고 내려갈 때 즈음, 녀석은 양손을
들고 만세를 하며 다 만든 것을 자축하고 있었다.
잘됐네,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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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오기 시작한다.
눈은 녹아내리고, 녀석은 눈이 녹기 시작해 들어오는 물이 집을 침투한 듯,
병뚜껑과 페트병 발린 것에 물을 퍼나르기 바쁘다.
가끔 일이 힘든지 눈물을 흘리는 것도 종종 보였다.
그래도 겨울을 났으니 괜찮은 등가교환 아닌가, 독라?
그렇게 무심히 녀석의 웃긴 물퍼내기를 보던 중, 한가지 변화를 알아 챌 수 있었다.
녀석의 눈이, 양쪽이 초록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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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히 따듯해진 요즘, 녀석은 불룩해진 자신의 배를 쓰다듬으며 예전에
스팸에게서 자주 듣던 노래를 하고 있었다.
뭐, 그런만큼 듣기 좋은 소리는 아니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에 그렇게 잘 들리진 않아 다행이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어지고, 어느 날은 집 앞 귀퉁이에
네모 플라스틱 그릇을 꺼내 물을 채워놓았다.
그렇군, 출산대비인 것 같다.
=====
그렇게 물그릇을 만들고 머지않아,
녀석은 이틀째 날 버스소리가 요란한 와중에
출산을 마쳤다.
녀석들은 이미 어미의 뱃속에서 차소리나 소음에 대한 면역을
가지고 태어난 듯, 주위가 시끄러운 와중에도 개의치 않고
건강히 태어났다.
수는 전부 10마리.
게다가, 자식들도 녀석을 닮아..
모쌩겼다.
완벽한 실장석이다.
녀석은 핥아주는 것을 마치고, 주위에서 울음소리를 내면서 자신을
부르고 애교를 부리는 녀석들을 보면서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잘됐네, 독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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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석은 그 후로 태어난 이래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듯 했다.
내가 올라갈 때마다, 녀석의 자식들은 의미불명의 몸짓을 하면서
어미의 관심을 끌거나 서로 무언가 소꿉놀이를 하는 듯 했고
웃거나 떠드는 소리.. 혹은 노랫소리도 가끔 들려왔다.
녀석은 그런 자식들을 하나씩 껴안아주고, 핥아주고 꾸며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는 듯 했다.
하지만 이걸 알아야 한다 독라.
거기서 떠드는 건, 위험해.
이미 내게도 들리고 있는데.
====
인간이 없는 자연이란 환경은, 굉장히 조용한 편이다.
그리고 그 조용한 가운데 먹이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포식자들은 청력을 진화시켜왔다.
차소리가 없었다면, 자실장 때에 독라녀석이 우는 소리에
이미 녀석은 포식자의 먹이로 전락했겠지.
하지만 차소리도 그들의 소리를 커버하지 못하는 요즘..
녀석의 행복은 드디어 끝을 맞았다.
====
내가 그것을 발견한 것은, 이미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바닥에 묻은, 적록색의 체액의 얼룩.
반만 남아 기어가고 있는 자식과
무언가의 이유로 바짝말라 가랑이 사이에서 점액질과
수많은 저실장들을 낳고 죽어있는 자식..
그리고 남은 자식들을 끌어안고 피눈물을 흘리는 독라.
그나마 녀석은 그 녀석들이라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토닥이는 듯한데,
과연 그럴까.
그 후로, 나는 포식자의 모습을 확인 할 수 있을정도로,
녀석은 포식자의 호구같은 표적이 되었다.
아무 긴장조차 하지않고 못을 휘두르고 있는 독라에게 다가서는
'얼룩 고양이'.
간단하게 독라의 팔을 긁어 못을 떨어트리게 하고, 집으로 뛰어들어
자실장 중 하나를 물고 달아난다.
독라는 팔을 흔들고 울부짖으며 자기 자식을 찾아보려 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떠나간 자식은 수만갈래로 찢겨 녀석의 먹이로 전락
했겠지.
녀석은 한참을 울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것과 비슷한 상황이 일주일.
녀석의 자식들은 2마리 밖에 남지 않았다.
====
그리고 어느 날 부터, 녀석의 모습이 골목에서 사라졌다.
갑작스런 일이었다. 나도 처음엔 당황해 여기저기를 살폈지만,
녀석의 모습은 내가 조금 늦게 내려갈 때까지 보이지 않았다.
언젠가 내가 볼때에 온 고양이 녀석도 당황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인듯,
여기저기를 살피고 집안으로 들어가보려 했으나
거기엔 이미 무언가가 막고있는 듯 나무판을 긁는 소리만이 조금
거슬리게 퍼질 뿐이었다.
나는, 그것을 죽거나 그곳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녀석의 일은 내 기억에서 점점 잊혀져 갔다.
====
여름이 지나고, 다시 가을.
골목 아래를 본 것은 우연이었다.
분명 없어졌었던 녀석이, 집앞에서 자식들과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놀라서 자세히 보자, 그것은 자실장들이 뉘여있는, 흙더미..
무덤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모습은 피골이 상접한, 금방이라도 죽을 듯한 형체.
하지만 자실장들은 어느정도 살이 오른 통통한 몸.
나는 그제야, 녀석이 집안에 틀어박혀 포식자가 그곳을
포기할 때까지 버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자실장들은 먹이면서, 자신은 굶었던 것이다.
굉장한걸.
정말 굉장해.
게다가 녀석은 다 만들어진 8개의 흙더미에 기도를 하듯이 양손을 모으고선,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자실장들도 따라했다.
나도 모르게, 나도 그것을 따라하고 있었다.
====
하지만, 녀석의 목숨도 오래가진 못했다.
어느날 자실장들이 급박하게 우는 것을 듣고 내려다 보자,
거기엔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듯한 독라의 모습이 보였다.
땅을 등진 채 누워 하늘을 보면서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듯한
모습으로 헉헉대는 독라.
나는 그 독라를 무심히 바라보았다. 1년간, 굳세고 현명하게
살아온 그 독라를.
그러던 와중,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힘을 다해, 양팔에 자식들을 들어 나에게
바치듯, 하늘에 바치듯 들어올리는 독라.
뭔가 귀찮아 질 것 같아, 그냥 자리를 떴다.
밑에서 자실장들이 구르고 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TV프로가
끝나고 난 뒤의 광고같은 느낌이었다.
독라가 죽음으로써, TV프로는 끝난 것이다. 여운을 남기고.
자실장까지 남길 필요는 없다.
====
다음 날, 녀석은 하늘을 보던 자세 그대로 죽어있었다.
눈은 시꺼멓게 타들어가, 표정은 모든 것을 원망하는 표정으로.
누군가를 원망하고 저주한걸까?
녀석도 결국은 실장석이었던 걸까.
자실장들이 그 옆에서 몸을 흔들며 울고 있지만 죽은놈이 대답을
해줄리가.
너희들이 울고 있을 상황은 아닐텐데.. 라고 속삭여 보지만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자실장은 자실장이다.
혼자 살아남을 수 없는 개체.
독라쪽이 오히려 이상한 타입이었다.
그래서 나의 관심을 끌던 것이고.
그 외의 녀석들은, 결국 스팸의 자식들 처럼 날 실망시키는 일 밖에는
하지 못하는 것이다.
====
결국, 남은 두마리는 겨울을 버티지 못했다.
그나마 따듯했던 집조차 놔두고 어미의 곁에서 얼어죽은 두마리.
하지만 무섭게 일그러진 어미의 얼굴과는 다르게, 녀석들은
마치 잠이라도 자는 듯 어미의 품에서 조용히 목숨을 다했다.
이 독라의 얘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다. 자실장조차 남지 않은
그런 결말이었다.
...
오늘은, 맥주가 좀 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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