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들실장

 

이 들실장은 가을에 추자를 낳았다. 보통 추자는 최대한 많이 낳는 것을 목표로 평소엔 그 자리에서 낳으면 잡아먹는 구더기 조차 알뜰하게 챙기는 것이 추자였다. 추자는 버릴것이 없었다. 춘자와 다르게 추자는 태어나고 일주일 정도 지나면 바로 노동에 투입된다. 친실장은 겨울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추자의 관리는 춘자들의 몫이였다. 춘자들은 최대한 먹이를 억제해서 가을쯤에 중실장이 되지 않는 정도의 자실장 크기로 키운다. 중실장 이라고 해봤자 친실장의 반도 안되는 크기지만 제법 컸다고 반항하거나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기에 춘자는 유일하게 분충은 철저하게 솎아낸다.

하지만 이 친실장은 달랐다. 춘자를 이용해 꾸준히 겨울을 준비하고 먹어 살을 찌우고 추자를 낳아 철저하게 선별하여 소수만 기르는 전략을 썼다. 다른 들실장들은 멍청한 친실장을 보며 낳은 구더기를 씹으며 비웃었다. 거기다가 고아실장 처럼 더럽게 땅굴을 파서 산다. 골판지 집 조차 얻지 못하는 멍청한 녀석이 바로 친실장의 평가 였다.

친실장은 주위의 조소에 아랑곳 하지 않도 봄 부터 준비한 땅굴과 보존식, 마른 풀과 나뭇잎으로 철저하게 무장하였다. 운치굴엔 구더기와 다리를 자르고 거친 공원 길바닥에 비벼 재생을 못하게 한채 머리를 손으로 두들겨 바보로 만들어 놓은 노예도 3마리나 된다. 보존식은 벌레들이 파먹지 못하게 귀중한 보물인 봉투에 넣어 보관하고 있었다.

하지만 땅굴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물이였다. 페트병이 들어가기엔 땅굴이 너무 좁고 30cm이상 파고 들어가면 실장석이 아무리 모여도 땅이 딱딱해서 더이상 파고들어갈수가 없었다. 땅 속에 박힌 돌은 당연히 꺼낼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그럴때를 대비해 만들어 놓은 운치굴이 3개나 된다.

역겹고 더럽지만 대변은 훌륭한 수분공급처이고 보존식이랑 섞어 먹으면 보존식을 아낄수도 있었다. 운치굴 3개를 순수한 대변으로 채우고 나서야 친실장의 겨울나기는 끝났다. 외부에선 학대파들로 골판지 집을 짓고 사는 들실장들은 매일같이 죽어났지만 이 친실장의 땅굴은 한번도 걸린적이 없었다. 심지어 하얀악마가 오는 구제에도 무사히 살아남을 정도.

두텁게 깐 낙엽과 그 위에 덮은 수건은 훌륭한 침대가 되어 추자인 자실장 2마리와 엄지1마리에겐 아늑한 최고의 잠자리가 되었다. 비록 밖에 나가본 경험은 태어나서 땅굴로 올때의 단 한번 뿐이였지만 그것은 살아있어야 의미가 있는 것이였다.

"마마 이야기 해주는 테치"
"오늘도 마마의 교육을 잘 듣는데스. 이것은 마마의 마마가 겪었던......"

친실장은 땅굴의 입구를 잔가지와 낙엽, 대변섞인 흙으로 매꿨음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자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멈추고 본격적인 겨울나기에 돌입했다. 천장에 뚫린, 햇빛이 드는 채광겸 숨구멍만이 유일한 밖의 모습을 볼수 있지만 여전히 어두컴컴 했다. 가로등 불빛이 켜지고 미약한 한줄기 빛이 땅굴을 밝혔다. 친실장은 수건을 끌어올리고 자실장들을 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들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주입시킨다. 자실장들은 지루한 말을 한달넘게 들으며 간간히 들려주는 다른 이야기에 눈을 빛내며 상상을 하며 버텼다. 12월 부터 2월까지 긴 시간을 보존식으로 연명해야 하는 인고의 시간. 친실장은 처음 겨울을 나지만 다른 들실장과 달리 영리하여 철저한 준비 끝에 1월 중순을 맞이하고 있었다. 보존식은 넉넉했고 물 대신 먹는 대변은 아직 운치굴 2개분이 남았다. 운치굴 구더기는 살이 무척 잘 올라 볼때마다 침이 넘어갈 정도였고 바보 노예도 출산용으로 2주정도는 충분히 버틸 체력과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친실장은 흡족하며 자실장들을 꼭 껴앉고 희미한 가로등 빛을 느끼며 잠을 잤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다. 하지만 땅굴속 친실장 일가는 나오지 못했다.

친실장 준비는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겨울은 들실장에겐 인간이 생각하는 상상 이상의 시련이였다. 공원내 들실장의 97%가 겨울 동안 죽는다. 고작 30cm 이상 팔수 없는 땅굴은 어느정도 보온은 가능 하지만 무리였다. 땅 자체가 얼어붙으며 서서히 냉장고 처럼 변하고 운치굴에서 나오는 열기는 없는 것 보단 나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실장석의 미약한 폐활량은 땅굴안에 온도를 올린다고 해도 천장의 숨구멍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찬 바람에 사라지는 의미 없음 이였다. 영리해봤자 실장석이다. 준비해봤자 실장석이다. 신체적으로 실장석은 자연을 극복할수가 없다. 털이 많은 것도 아니며 소화흡수율이 좋지 않아 지방을 두텁게 유지할려면 한끼당 인간으로 치면 2.5끼씩 먹어야한다. 그런 열량을 자연에선 구할수가 없다. 오로지 실장푸드나 동족식으로 유지가능한 것이 지방이였다. 겨울내 살아남는 것은 기적적으로 인간에게 보살핌 받거나 동족식을 하며 다른 들실장이 모은 것을 약탈한 경우, 봄이 되어 버려진 사육실장이 공원에 정착해 들실장이 되는 경우말곤 없었다.

땅굴은 무척이나 매력적이지만 그 많은 공원의 들실장들이 왜 하지 않는지를 본다면 이 영리한 친실장은 자신의 머리를 너무 맹신한 것이였다. 겨울의 추위는 늘 일정하지 않고 더 추웠다가 조금 추웠다가 반복을 한다. 땅굴엔 습기가 차고 보존식은 맨 안쪽에서 이미 썩어들어가고 있고 운치굴 2개에 가득 채운 대변은 얼어붙었다. 구더기들과 바보노예는 대변과 함께 얼어붙어 죽었다.

녹은 눈은 경사진 땅굴안으로 들어오고 천장에 뚫린 숨구멍에서도 들어와 땅굴안을 적셨다. 친실장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이 계획한 완벽한 땅굴안에서 물에 젖은채 덜덜 떨어야했다. 아무리 자실장들과 붙어도 따뜻하지가 않는다. 입구는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구멍이 숭숭 뚫려 찬 바람을 땅굴안에 넣어주고 있었다. 보존식 양을 조절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대변과 섞어 먹어 지방도 없도 체력도 좋지 않았다. 몇달을 좁은 땅굴안에서 몸도 쓰지 않고 겨울의 초반에 따뜻했던 땅굴에 적응해 찬것에 대한 내성도 없어 자실장들은 빠르게 앓거나 추위로 죽었다. 친실장은 땅굴속에서 죽은 자실장들을 보며 덜덜 떨며 밖으로 나가기를 결심했다. 하지만 너무 얼어붙어 미동도 하지 않는 입구를 보며 미친듯이 땅을 긁었지만 언 땅은 돌을 이용해도 긁히지 않았다. 그렇게 친실장은 천천히 동사를 하기 시작했다. 몸을 움직여 열을 낼 공간도 없고 보존식을 먹을려고 했지만 어중간한 온도에 수분마저 공급된 보존식은 친실장의 생각보다 빠르게 썩어 먹을수도 없었다. 그렇게 친실장은 굶주림과 추위속에서 눈을 감았다. 자실장들은 보이지 않고 흩어진 살점만 남았고 땅굴안은 무언가로 긁은 듯한 흔적만이 위아래 할것없이 잔뜩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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