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레이칠



창고를 정리하다가 사용하던 캔 스프레이가 나왔다.
색은 녹색이랑 검정, 캔을 흔들어 보니 얼마 안 남은 것 같다.
캔에 녹이 슬기 시작해서 더 이상 보관하기는 힘들것 같아 공원에 가서 다 써 버리기로 했다.

공원의 벤치에 걸터 앉아서 껌을 꺼내서 일부러 공원의 실장석들에게 잘 보이도록 씹고 있으니
우글우글 녹색 떼가 모이기 시작했다.

[데스우웅!] [텟텟치-♪] [뎃스 데뎃스!]

정말로 시끄러운 생물이다.

20~30마리 정도 모였을래나, 친자실장이나 마라자실장도 있다.
실장석은 먹을 것을 보여주면 금세 가까이 오니까 모으기는 편하다.
어떤 놈으로 할까. 뭐 어느 놈이든 상관없지만.
적당히 가까이 있던 실장석을 골라서 껌의 포장지를 벗겨 그 놈의 입에 집어 넣는다.

[데엣!!?]


그 실장석은 갑자기 먹을 걸 받아서인지 놀라는 눈치다.
잠시 벙쪄있다가 이내 내가 하듯이 껌을 우물우물 씹기 시작한다.
눈이 옆으로 째지면서 점점 가늘어진다. 이것이 실장석판 만면의 웃음이라는 것인가보다.
자기도 달라고 소란 떠는 다른 실장석들을 무시하고

[어때? 맛있지. 인간들을 위한 진짜 껌이다.] 라고 말을 건다.
나는 실장 링갈 따위는 갖고 있지를 않아서 일본어로 말을 걸었지만
이놈들은 인간의 말을 어느 정도는 알아듣는 모양이다.
실장석은 '응, 응' 하고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이더니 '꿀꺽'하고 껌을 삼킨다.
'엇, 삼켜버렸네' 뭐 괜찮겠지.
이걸로 선금을 지불한 셈이다. 공원에 온 본래의 목적을 달성해야지.

목장갑을 끼고 캔스프레이를 가방에서 꺼낸다.
더 달라고 요구하는 듯한 실장석의 머리를 움켜쥐고 녹색의 캔스프레이를 딸각딸각 흔든다.
실장석의 눈은 캔스프레이에 고정되어 있다. 아마 저것도 맛있는 거라고 기대하고 있는 것일 거다.

[자~ 여기 봐라~] 하고

실장석의 앞에 분사구를 대고 실장석의 안면에 '푸쉭-' 하고 뿌려버렸다.

[데갸악!!] 실장석의 비명이 광장에 울려퍼진다.
괜찮아, 괜찮아, 죽지는 않는다고. 아마.
실장석은 신진대사가 활발하다고 들었으니 아마 2일 정도 지나면 자연스럽게 색이 빠질 거다.

[자, 자, 날뛰지 말라고. 금방 끝나니까.]

으음. 실장석의 얼굴의 기름과 땀 때문이 도료가 잘 안붙는다.
좀 더 두껍게 칠해야겠다.
실장석은 콧물 범벅에 버둥버둥 날뛰면서 맹렬히 기침해대고 있다.
둘러싸고 있던 실장석들은 놀라서 절반은 도망가 버렸다.
하기야 아직 절반 가까이나 남아 있다는 게 놀라운 거지만.

적당히 도색작업을 끝내고 얼굴이 녹색이 된 실장석을 내려 놓았다.
[데엣? 데엣!!] 하고 양손을 허공에 휘젓고 있다.
잠시 상태를 걱정했지만 실장석의 비상식적인 회복력을 생각하니 그런 걱정은 쓸데없는 거라고 깨달았다.

[좋았어. 모두에게 보여주자고] 하고 소리치고
실장석의 머리를 잡고 뒤로 돌게 시킨다.
주위의 실장석의 반응은....

녹색 얼굴이 되어버린 실장석을 본 다른 실장석들은
처음에는 멍하게 있다가 슬슬 킥킥대며 웃더니 곧 [데햐햐햐!!]하고 엄청 웃어댄다.
너무 웃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굴러 다니는 놈도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음- 뭔가 예상하고는 다른데라고 생각했다.
보통 실장석은 자신들과 다른 실장석을 보면 바보취급하고 비웃는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과는 달리 단지 재미있으니까 폭소를 터뜨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급기야 녹색 얼굴의 실장석의 옆에서 어깨를 탕탕 두드리며 웃어대는 녀석까지 있었다.
무엇이 실장석의 웃음 스위치를 눌러버린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실장석의 감성 따위 깊게 생각해봐야 나만 이상해질 것 같다.

캔 스프레이의 처분을 계속하도록 하자.
발 밑에서 웃으며 굴러다니는 실장석을 한마리 발로 누르고
실장 옷자락을 양손으로 잡아서 머리까지 꽉 올려서 뒤집어 씌운 후 싸맨다.
소위 말하는 보자기쌈(茶巾絞り)이라는 거다.
(*역주- 茶巾絞り: 만두피 대신 천으로 내용물을 싼 것.)

[데야야...데스!? 뎃! 데스우우!!!]

웃을 일이 아니라고 눈치챈 실장석이 날뛰기 시작한다.
이번에는 바디페인팅에 도전해보자.
빤쓰의 윗부분부터 몸통 주위에 빙 둘러서 스프레이를 뿌린다.
다 칠하고 나니 머리만 보자기쌈으로 싸여있고 팔은 실장복에서 나와 있다.
조금 괴롭겠지만 벗겨지지 않게 목 부분을 조여준다.
가슴, 어깨까지는 칠했는데 붕붕 휘두르는 팔을 칠하는 도중에 스프레이가 다 떨어졌다.
칠부 소매가 되어버렸지만 뭐 괜찮겠지.
목을 누르고 있던 손을 떼고 실장복을 휙 위로 잡아올려 벗겨서
벤치 뒤의 수풀에 걸어 놓았다.

꽤 육감적인 바디페인팅 실장의 완성이다.
빤스를 다 드러내고 목 둘레의 컷도 대범한 섹시모드구만.
실은 두건과 신발도 칠하고 싶었지만 스프레이가 다 떨어져서 어쩔수 없다.
아, 맞다. 앞치마가 없군.
수풀에 걸어두었던 실장복에서 앞치마를 떼내어서 씹고 있던 껌으로 실장석의 가슴에 찰싹 붙여준다.
주변의 실장석의 반응은....

[데-? 뎃승?]
[데스 데스우]
[테치! 테칭?]

소곤소곤 실장석들끼리 속삭인다.
바디페인팅의 개념이 없는 듯하다. 나체인 듯하면서 나체가 아니다. 이해가 안되는 모양이다.
바디페인팅 실장도 자신의 몸을 보고 당황하고 있지만, 자신의 몸뿐인 나체라는 걸 알아챘는지
[데스우 데스우!] 하고 울면서 실장복을 가지러 수풀로 뛰어간다.
딱 한마리, 내 바지자락을 잡고 바디페인팅 실장을 가리키며 뭔가 요구하는 실장석이 있었지만.
'넌, 옷이 늘었다고 착각하고 있는 거냐?'


으-음. 역시 키포인트는 얼굴이겠지.
이번에는 멍하게 서 있는 자실장 동반의 친실장의 머리를 잡고, 검정색 스프레이를 뿌려 봤다.
친실장의 비명과 기침소리에 밑에서는 자실장과 구더기들이 [테치테치, 레후레후] 난리피우느라 시끄럽다.
이 녀석은 계속 눈을 감고 있었기 때문에 마무리가 끝났을 때는
검은 얼굴 안에 녹색과 빨간색의 눈이 빛나고 그 아래에는 검은 이빨이 번뜩이고 있는
그야말로 마계생물의 모습이 되어버렸다.

이건 꽤 꽨찮을지도 모르겠는데.

휙하고 놓아주자 흑실장의 얼굴을 본 주위의 실장석들이 도망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어미를 돌려달라고 난리를 피우던 자실장이나 저실장들도 울면서 도망치고 있다.
흑실장은 영문을 모른채로 [데스? 데스우?] 하고 자들을 뒤쫒고 있었다.
거울을 가져왔으면 좋았을텐데...

방황하는 녹색 얼굴 실장과 쓸데없이 점프를 반복해대는 바디페인팅 실장,
같은 곳을 빙글빙글 도는 흑실장 친자를 제외하고
주위에 남아있는 실장석이 없어져 버렸다. 당연한 거지만.

나는 바디테인팅 실장과 흑실장을 붙잡아서 입에 껌을 물려주고는,
이제 뭘 할까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검정 캔 스프레이는 남아있다.

수풀의 뒤쪽을 들여다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골판지 박스로 된 집이 있다.
마침, 실장석이 빈 페트병을 들고 나왔다.
뒤에 자실장이 4마리 따라 나온 걸 보면 친자가 마실 물을 길러 나온 거겠지.
이걸로 마무리를 지을까.

수풀 사이를 헤치고 친자실장의 뒤로 빙글 돌아가서 스프레이캔을 들고 잽싸게 다가간다.

[데스우? !!] [테칫!!!]

수풀의 뒤쪽에는 인간이 오지 않을 거라고 안심했던 탓인지
친실장은 놀라서 페트병도 내팽개치고 자실장들을 양손으로 안더니
황급히 골판지 하우스로 되돌아가 아이들을 집 안에 집어 넣고 있다.
자실장 한 마리는 미처 챙기질 못해서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은 채
두 손을 얼굴에 대고 [테에 테에에에에엥!] 하고 울고 있길래

[어-이, 실장석. 아이를 놓고 갔어] 하고 말을 걸려고 했더니

친실장은 [데엣! 데엣! 데엣! 데엣!] 하고 소리를 지르며
후다닥 달려와서 자실장을 집더니 골판지 집으로 돌아갔다.

[텟츄-웅♪] 자실장은 기쁜 모양이네.

친실장은 자실장을 안은 채로 골판지 하우스에 기어들어가서 문을 닫는다.

골판지 하우스 앞에 서서 보니 비교적 큼직한 밀폐식 골판지 집이다.
문에는 실장석 친자가 접이식 밥상을 둘러싸고 웃고 있는 초현실적 그림이 인쇄되어 있고
전체적으로 희미하게 짙고 옅은 황토색 2색의 구름모양 위장이 붙여져 있다.

이것과 같은 것을 예전에 심심해서 들어간 실장샵에서 본 적이 있다.
[조립이 쉽다쉬워 실장쨩 하우스] 라든가 하던 녀석으로
접혀 있는 미조립 상태에 5장 세트로 980 엔에 팔고 있었다.

성체실장이 출입할 수 있는 접이식 문이 있고 옆의 손잡이 구멍은 창문으로 쓰도록 큼직하게  만들어져 있다.
애호파의 기특한 패거리 중에는 이것을 사서 공원에 가져와 들실장에게 나누어 주는 녀석이 있는 모양이다.
들실장을 마구 증가시키기 때문에 청소국이나 보건소에서 클레임이 오는 모양인지
구석에 작은 빨간색 글씨로

[본 제품은 사육실장 전용입니다. 들실장에게는 주지 마세요. 공원 등에 불법투기하지 말아 주세요]

라고 변명하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
굳이 돈내고 사지 말고 그냥 일반 골판지 박스를 주워서 주면 될 것을 하고 생각했지만
친자실장이 살 정도의 크기에 방수가공처리도 완료되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장색의 골판지 박스는 좀처럼 잘 없다고 한다. 
공정처리를 해도 결국은 종이 박스라는 게 이 제품도 결국은 소모품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다.

골판지 박스집 안에서 [테칫! 텟츄-웅!!] [테에에에!? 텟츄우우!!] 라고 자실장이 떠드는 소리와
[데스! 데데슨!!]하고 낮은 목소리로 자실장을 달래려는 친실장의 소리가 난다.
문을 발로 가볍게 쿵 차자 소리가 멈췄다. 안에서는 친자가 몸을 맞대고 덜덜 떨고 있겠지.

문을 한쪽 발로 누르고 옆의 손잡이 구멍에 스프레이를 대고 슈욱 하고 뿌린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지만 스프레이가 떨어질 무렵에야
[데슛! 데슛!] [테츗! 테츙] 하고 기침하는 소리가 나며 날뛰기 시작했다.
도망가려고 문에 몸을 부딪쳐 보지만
내가 발로 막고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 없다.

푸슉 푸슈슈 슈우

스프레이도 다 떨어진 것 같으니 슬슬 괜찮겠지.
휙 하고 발을 떼니 맹렬한 기세로 친실장이 도망쳐 나온다.
머리에는 검게 물든 낡은 수건이 걸쳐져 있다. 뒤통수와 등은 새까맣지만 앞쪽은 깨끗한 상태로 있다.
등 쪽에만 스프레이가 뿌려진 모양이다.

이어서 자실장도 양손을 들고 만세 자세로 울면서 뛰쳐 나오기 시작한다. 모두 깨끗한 상태다.
아이들을 배 쪽에 끌어 안고 침대 대용의 낡은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떨고 있던 모습이 상상됐다.

어라? 친실장을 따라 나오는 자실장은 3마리? 4마리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골판지 문이 살짝 열리더니 남겨졌던 한마리 자실장이 철푸덕하고 넘어져 주저앉은 채 양손을 얼굴에 대고

[테에 테에에에엥!] 하고 울고 있다.

또 너냐?

어쩔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데엣! 데엣! 데엣! 데엣!] 하고 소리를 지르며 되돌아온 친실장이
나를 밀치듯 골판지 박스 집에 뛰어 들어가 자실장을 집어들고 서둘러서 달아났다.

[텟츄-웅♪] 자실장은 기쁜 모양이다.

어안이 벙벙해져서 도망치는 친실장을 보고 있는데
친실장이 머리에 걸려 있던 검게 변한 수건이 펄럭이며 떨어진다.
두건의 녹색은 원래 그대로였다.
흑발이다. 흑발실장이 달리고 있다.
내가 예기치 않게 만들어 버린 흑발실장(뒷머리 한정, 등도 까맣다)은 저쪽 수풀 속으로 사라져 갔다.

스프레이 냄새가 배인 골판지 박스 집은 냄새 제거 차원에서 문을 열어준 뒤에
이번엔 눈깔사탕 5 개 정도 집 안쪽에 던져둔 후
빈 스프레이 캔을 대롱대롱 흔들며 벤치로 돌아왔다.

녹색얼굴실장, 바디페인팅 실장, 흑실장친자는 아직도 거기에 있었다.
녹색얼굴실장의 상태가 이상하다. 녹색과 빨강의 눈물을 손으로 닦고 있나라고 생각했는데
얼굴전체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

잘 보니 얼굴의 피부가 너덜너덜하게 벗겨져서 체액이 묻어 나오는데도 손으로 벅벅 문지르고 있다.
으-음 실장복과 앞머리에는 전혀 영향이 없지만 실장석의 피부는 유기용제에 약한가!

흑실장은 체액이 나온 것 같지는 않지만 핑크색 반점이 곳곳에 떠올라있다. 무서운데다가 징그럽다.
도망다니고 있는 자실장이나 저실장들도 완전 울고 있다.
바디페인팅 실장도 벅벅 몸을 긁고 있다.
미안... 옷 돌려줄께. 빨리 옷 입는 게 좋겠다.

그러고 보니 옛 축제날 야시장에서 염색병아리를 팔고 있는 걸 본적이 있지만
염색자실장을 팔고 있는 건을 본 적이 없다. 뭐 둘 다 동물학대겠지만...
나는 실장복에 앞치마를 다시 붙이면서 잠시 떠올렸다.



다음날 공원의 앞을 지나가는데 카메라를 든 애호파 같은 2인조가 공원 안을 달리고 있다.

[흑발쨩! 그쪽으로 갔어!] [사진만 찍을거니까! 부탁이니까 가만 있어봐!!]

보고 있자니 자들을 안고 수풀 속을 도망다니고 있는 것은
어제 내가 만들어버린 흑발실장(뒷머리 한정. 등도 까맣다)가 아닌가?
아- 그 실장석이라면 사람에게는 절대로 다가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광장의 끝에는 자실장 한 마리가 남겨져서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은 채로 양손을 얼굴에 대고

[테에 테에에에에엥!] 하고 울어대고 있다.

가짜 흑발실장은 수풀에서 튀어나와 [데엣!데엣!데엣!데엣!]하고 소리를 내며 달려들어
자실장을 휙 하고 집고 다시 그 모습을 수풀 속으로 감췄다.

[텟츄-융♪] 자실장은 오늘도 기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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