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가 되는레후

 

… 요정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장석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 액운을 부르는 행위였다. 때문에 집안에 실장석이 멋대로 눌러앉으면, 설득해 내쫓거나 키우는 수 밖엔 없었다. 이에 관해 일본의 나가사키 지방에선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진다.

어느 어촌의 주민들은 매일매일의 삶이 고역이었다. 영주 가문이 키우는 실장석 가족의 횡포 때문이었다. 탐욕스러운 영물들에게 안락한 삶을 제공하기 위해 영주는 주민들을 가혹하게 부렸다. 

이에 그 곳을 지나던 상인이 꾀를 내었다. 서역 상인들에게 들었던 동화를 토대로, 상인은 실장을 퇴치하는 노래를 만들어 주민들에게 부르게 했다. 간절함이 담긴 주민들의 노래를 들은 영주의 실장들은, 욕망에 코를 벌름거리다 마침내 혹해버렸다. 그들은 아름다운 인어가 되기 위해 바다에 걸어들어갔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설화로만 여겨졌으나, 실제로도 비슷한 방식으로 많은 실장석들이 수장당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2000년대 초입에 들어 발견되었다.
놀랍게도 최근엔 생물학적 증거까지 등장했다. 일본 서부 연안에서 발견된 이 기묘한 종은…

[실장석의 생태 2권 p158, 아종 - 수생실장석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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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후?]
바뀐 물결의 흐름에 구더기는 깨어났다.

아니, 이 경우엔 올챙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꼬리엔 갯강구 같은 섬모가, 돌기가 있어야 할 자리엔 앙증맞은 지느러미가 달려있다. 목 뒤엔 그럴듯한 아가미까지 달렸다.

옷도 머리칼도 날 적부터 물살에 씻겨 간지 오래지만, 구더기는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조막만한 머리로는 당장 어제 일도 기억하지 못한다.
구태여 기억할 이유도 없다. 지상의 여느 구더기들처럼, 바다속의 이 구더기도 별 것 없는 일상을 살고있다.
먹고 싸는 것이 전부인 삶이, 마시고 싸는 정도로 바뀌었을 뿐.

[레후! 오늘도 물씨 맛난 레후!]
밑바닥이 아닌 물살 한가운데에 있지만, 헤엄친다기보단 떠밀려다니는 듯한 모습이다. 
구더기의 체력으론 물길을 거스를 수 없다. 따라서 놈들은 해초처럼 떠다니는 모습으로 바다에 적응했다. 
머리를 위로, 꼬리를 아래로 향한다. 잔잔한 해류에 뱃살이 돛처럼 펼쳐진다. 해류의 압박을 장을 비우는 용도로, 그리고 돛을 미는 바람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리곤 저절로 입으로 들어오는 플랑크톤과 찌꺼기를 섭취한다. 
구더기는 모른다. 특정 지역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폭풍속에서 키를 잡은 해적처럼 위석이 발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동 프니프니 신비한레후! 프니후! 프니후!]
그러나 고뇌와 고행은 구더기의 몫이 아니다. 구더기는 그저 세상 행복한 얼굴로 뻐끔거린다. 물속에서 말해봐야 무슨 쓸모가 있느냐는 질문은, 구더기에겐 중요하지 않다. 단순함과 망각이야말로 구더기의 미덕이다.

그런 구더기지만, 나름 원대한 목표가 있다. 매일 눈을 감을때마다 구더기의 귓가엔 희미한 노래가 맴돈다.
‘세레브한 인어가 되는데스. 인어는 아름다운데스, 자유로운데스. 행복한데스.‘
‘꼭 인어가 되는데스.’
[그런레후! 우지챠는 인어가 되는레후!]
매일 힘찬 외침과 함께 구더기는 기상한다. 
어떻게 해야 인어가 되는지, 인어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른다. 
다만 인어로 향하는 여정의 전망은 나쁘지 않아보인다. 매일매일 몸이 크고 무거워지고 있으니까. 자신이 성장하고 있음을 구더기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구더기는 레후레후 콧노래를 부르며 입 안의 찌꺼기를 씹는다.

[우지챠도 인어가 되는 레후! 분명 - ]
소리도 없이 어떻게 알아들은건진 몰라도, 바로 옆을 지나는 동료가 빙긋 웃으며 뻐끔거린다.
그러나 녀석은 거들던 말을 맺지 못한다. 거대한 그림자 하나가 놈이 있던 곳을 스윽 지나친다. 동료 구더기는 그 자리에 없었던 것 처럼 사라졌다. 구더기들처럼 그루퍼도 입안에 무엇이 들어오건 가리지 않는다. 

구더기는 그것도 알지 못한다. 자신이 그렇게 될 뻔 했다는 것은 더더욱 모른다. 
구더기에겐 좁은 시야 또한 장수의 비결이다.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라면, 위석이 약한 구더기로선 모르는 게 약인 경우가 많다. 

오늘도 알아채지도 못한 위기 속에서 하루를 버텨낸 구더기는, 몇 주 뒤 심히 곤란한 상황에 빠졌다. 
무거워진 몸이 저절로 땅 아래로 가라앉은 것이다. 

당황해 사지를 흔들어보지만 모래가 조금 날릴 뿐이다. 
바닥에 깔린 모래의 감촉은 낯설지만 포근했고, 내리누르는 물은 무거웠다. 별안간 코에서 실이 뿜어져 나오며 온 몸을 감았다. 구더기는 당황 속에 눈을 끔벅이며 잠에 빠졌다…


그리고, 또 며칠 뒤.

[뎃스우?]
고치의 흔적을 이불처럼 밀어내며 놈은 눈을 떴다. 목살 사이의 아가미를 제외하면, 완연한 성체실장의 모습이다.
졸린 눈을 무심코 부비던 실장은, 몇 분 뒤 화들짝 놀란다. 눈을 부비는 팔의 존재를 그제서야 깨달은 탓이다. 실장은 제 팔다리를 휘적여 모랫바닥에 천사 모양을 만든다. 잔뜩 즐거워하던 실장은 마침내 결론을 내린다.
[데뎃! 팔씨 다리씨 생긴데스! 인어가 된 데스! 노래씨는 사실이었던데스!]

구더기일 적엔 막연히 인어가 되는 꿈만을 꾸었다. 더 커진 머리 속에서, 그 꿈은 이제 온갖 창의적인 망상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온 바다가 복종하는뎃스! 온갖 맛있는 것들이 가득 생기는데스! 닌겐노예가… 닌겐이 무엇인데스? …하여튼, 아주아주 좋은일만 가득할 것인데스!]
사실 별로 창의적이진 않다. 실장석이 그렇지 뭐.

희희낙락하며 놈은 일어서려 했다.
그리고 도로 주저앉았다. 영문도 모른채 몇 번 더 허우적거리던 놈은, 마침내 어렴풋이 깨달았다.
팔다리가 생겼지만, 운신의 자유는 생기지 않았다. 놈은 여전히 수압과 해류를 이겨낼 수 없었다.
[데… 데…]

실장은 바닥을 기면서 움직이는 법을 간신히 배웠다. 피눈물을 흘리며 실장은 한걸음씩 팔다리를 모래 밑에 묻었다. 그러나 고난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전처럼 입만 벌리고 있어선 어째 배가 부르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바닷물로 물배가 가득 찼지만, 어쩐지 허기가 채워지질 않았다. 실장은 필사적으로 물고기 시체나 해초 따위를 찾아다녔다. 찾지 못하면 고통에 떨며 단단한 산호초나 말미잘이라도 씹어야 했다.
구더기 시절처럼 뱃가죽이 펄럭인다고 날아오르는 일도 없었다. 땅바닥 생활의 구속감은 실장을 비참하게 했다. 심술궂은 작은 게들이 코와 혀를 꼬집을때면 더욱 그랬다.

폭풍처럼 밀려드는 해류는 종종 놈을 모래에서 뽑아 던져버렸다. 그렇게 떨어져 돌부리에 부딪히면 몹시 아팠다. 해류를 피하려 동굴 속에 숨으면 어김없이 원 주인들에게 물리며 도망쳐야 했다. 맛이 영 별로인 것이 실장이 살아남은 유일한 이유였다.
실장은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은 인어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울다 지쳐 잠드는 시간이 점점 늘어만 갔다. 그리고 또 며칠 뒤.

[데?]
팔다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피눈물을 흘리며 애써봐도 소용없었다. 팔다리가 그동안 먹은 산호초 따위의 석회물질로 변해버린 탓이었다. 움직일 수 없다면 먹이를 구할수도, 물살을 피할 곳을 찾을 수도 없었다. 절규하려던 실장은 코 속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실이었다.

[데… 어쩌면, 이번에 변한다면, 이번에야말로…]
실장은 분명히 기억했다. 지난번에 실이 나왔을 땐 팔다리가 생겼다. 그 때 자신은 인어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몸이 변했을 뿐이었다…

[뎃데로게, 인어가 되는데스. 반드시 되는데스. 자고 일어나면 인어가 되어 있는데스.
길고 긴 팔다리, 세레브한 목소리, 아름다운 머릿결.
물 속을 마음껏 헤엄치는 인어가 되는데스.
인어가 되면, 세레브하고 행복한 일만 있을 것인데스. 뎃데로게, 뎃데로게…]
잊은 꿈을 되새기며 놈은 다시 한번 잠이 들었다.


그러나 깨어난 실장을 맞이한 것은 가혹한 현실이었다.
‘데갸아아앗 - !’

코에서 뿜어져 나온 것은 분명 실이었다. 그러나 순수한 고치실은 아니었다. 그것의 기능과 형태는, 양서류의 기다란 알집과 닮아있었다. 구더기들이 담겨 잔뜩 부풀어오른 실은, 비강을 터트려 큰 고통을 주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구더기들이 부화하며 알집이 터졌다. 물살에 찢어진 점막은, 씻겨 사라지는 대신 친실장의 피부에 들러붙었다. 피부에 스며든 점막은 독처럼 몸을 마비시켰다. 온몸이 팔다리처럼 뻣뻣해졌다.
저항을 막는 일종의 마비독이었다. 이제 친실장은 꿈틀거릴 수조차 없었다.

그리고.
[레후? 우지챠 탄생레후?]
[마마는 어디인 레후?]
[레? 발 밑에서 맛있는 냄새 레후?]
[레후! 참을 수 없는 레후! 우지챠 먹는레후!]

갓 태어난 구더기들은 코를 킁킁거리더니, 자신이 태어난 산호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것이 마마인줄도 모른 채. 
실장의 비명은 마비독과 해수에 묻혀 물거품으로 흩어졌다. 
자를 안아보지 못하는 미련, 구더기에게 먹히는 회한, 인어가 되지 못한 분노, 고기가 되는 공포. 온갖 감정이 실장의 온몸에 역류했다. 
구더기들은 그것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씹을수록 맛있어지는 무언가에 감탄할 뿐.

‘데쟈아아아아 - !’

그리고 며칠 뒤, 마침내 성체의 해골만 남았을 때쯤, 많은 구더기들에게 어엿한 지느러미가 생겼다.
[레?]
[레후? 떠오르는 레후?]
[자동 프니프니레후! 신비한레후! 프니후! 프니후웃!]

늘어난 뱃살과 지느러미가 저절로 펼쳐졌다. 해류를 타고 구더기들은 둥실 날아올랐다. 마침내 먹이에서 눈을 뗀 구더기들은 보았다. 햇살이 일렁이는 수면 아래, 넓고 아름다운 물 속의 오색 풍경을.

[넓은 레후?]
[레히이! 대단한 레후!]

구더기들의 머리 속에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어쩐지 그립고 친근하게 느껴지는 목소리가 불러준 태고의 노래.
‘인어가 되는데스.’
물속에서 전달될 수 없는 목소리가 아닌, 위석에서 위석으로 전달된 간절한 바램이다.
앞으로 수 개월간 파킨사를 방지해줄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레후!]
[인어 되는레후!]
[하는레후! 우지챠 절대절대 인어하는 레후!]
[물씨는 우지챠를 높이높이 보내주는 레후! 인어가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나는 레후!]
날아오르는 구더기들은 하나같이 레후레후 웃음짓는다. 
자신들이 무엇을 저질렀는지도,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도 모른 채.

선조들이 무엇에 홀려 이곳에 왔는지 놈들은 모른다. 인어공주가 다리를 얻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루었는지도 당연히 알 길이 없다.

물 속에선 말을 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에겐 다리의 댓가로 내놓을 목소리가 없다.
구더기들은 모른다. 이 여정의 끝에서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할 것임을. 오로지 쓸모도 없는 다리의 대금을 치르기 위해서. 그들의 마마가, 또 마마의 마마가 그랬듯이. 

왜곡된 동화에 홀려 바다로 흘러 들어온 선조들처럼, 구더기들은 제멋대로의 전망에 웃음지으며 해류에 몸을 맡겼다.
각자의 마음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멋진 노래를 부르며.
[인어 해서, 마음껏 긴긴씨 돼서, 바다를 자유롭게 여행할것인 레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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