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의 하루 (Nilro95)





곧 겨울을 앞둘 시기의 아침, 빛 한줄기 들지않는 어둡고 차디찬 운치굴 바닥에서 머리카락과 옷 한벌도 걸지치 않은 자실장들이 코츄, 코츄 하며 눈을 붙이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몸 곳곳이 퍼렇게 물들어 있었고, 제대로 먹지도 못 했는지 앙상한 뼈가 드러나보일 지경이었다.



이 자실장들은, 가을에 태어난 추자였다.



실장석 사회에서 추자란, 월동 준비를 하는데 필수적인 생산품이자 귀한 노동력이며 보존식이 될 운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태어나자마자 친실장에게 실컷 부려먹다가,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금방 소모품이 되는 그런 존재.

허나 추자들에게는 거역할수도, 변변찮은 호소도 통하지 않는다. 자신들을 낳아준 핏줄에게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옷과 머리카락을 빼앗기고, 매일같이 맞아가며 고통어린 신음을 흘리고 밖에서 쓸만한 자원을 채집해야하는 것이 전부다.

봄에 태어난 춘자들은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만끽하며 어울려 놀거나, 친실장의 따뜻한 품 안에 안겨 살아가는데 필요한 이야기를 교육받지만, 추자들은 친실장에게도, 먼저 태어난 언니들에게도 세상물정에 대한 이야기는 커녕 애정 하나 못 받아보고 묵묵히 일하고, 일한다. 일개미마냥.



어제도 뼈 빠지게 밖을 돌아다니며 땅에 떨어진 낙엽이나 열매를 줍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서야 귀가한 추자들은, 이것밖에 구하지 못했느냐고 일갈하는 친실장에게 수도 없이 맞고 난 후, 힘없이 운치굴에 귀가해 유일하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흙바닥 곳곳에 쌓인 운치를 억지로 먹어 치우고, 누울 공간이 생기자 조금이라도 넓고 편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다가 결국 너도나도 힘이 빠져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추잡하기 그지없는 생활이었다.



그 추잡한 생활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일어나는 데스! 이 똥추자년들, 감히 와타시보다 더 늦게 일어나는 데스우? 게으른 굼벵이들 같으니!"



친실장이 운치굴을 덮고 있었던 골판지 조각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씩씩거리며 피로에 젖어있는 독라 추자들에게 승질을 부린다. 조용하던 운치굴에 눈부신 햇빛과 함께 무서운 목소리를 내는 어미가 들이닥치자, 화들짝 놀라며 흙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는 추자들.

몇몇은 아직도 제대로 수면을 취하지 못 했는지, 초췌한 얼굴로 눈꺼풀을 껌벅인다. 입에서 마른 침이 흘리내리는 것은 덤이고.

친실장은 그 중에서 제일 만만해보이는 녀석에게 다가가, 정신이 번쩍 들게 할 기세로 얼굴을 후려친다.



"이 병신 추자년이! 정신 안 차리는 데샤?!"



철썩, 하고 다시 잠들기 일보직전인 추자에게 거친 주먹을 날리자 안그래도 몸이 성하지 않았던 녀석은 버티지 못 하고 그대로 땅에 엎어진다. 비실거리는 두 다리가 충격을 감내하지 못했던 탓이다.

난데없이 지 어미에게 폭행당한 추자는 엎어진 그 상태로 꺼이꺼이 울면서 억울한 표정으로 친실장을 노려본다. 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피곤한 것도 죄인가?



"이게 잘못했다고 빌어도 모자를 년이, 어디서 고귀한 와타시를 똑바로 쳐다보는 데샤앗!"



화가 끝까지 난 친실장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발길질을 가한다. 흉한 맨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 추자는 그제서야 그만해달라고 용서를 구하지만, 친실장은 그만두지 않았다. 오히려 다리에 더욱 힘을 주고 새끼의 얼굴을 몇 번이고 가격한다.



주변에 있었던 다른 추자들은 벌벌 떨며, 총구에서 얼마되지 않는 분변을 지리고 있을 뿐이었다.






"치프프, 저 천박한 것들 꼬라지 좀 보는 테치."

"정말 더럽고 못생긴 똥벌레들인 테츄! 얼른 나가 뒈져 버렸으면 좋겠는 테츄!"



춘자들이 느긋한 아침 식사를 가지면서, 밖에 혼나고 있는 추자들의 모습을 보곤 비웃는다. 남이 고통받는 광경을 반찬삼아 꿀맛같은 식사를 즐기는 것은 거의 매번 일어나는 일이긴 하다만, 노예나 다름없는 추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볼때마다 그렇게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들이 저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거 아는 테치, 차녀챠? 추자들이 저렇게 고통 받을수록 육질이 더욱 우마우마해진다는 테치."

"테! 정말인 테츄? 나중에 마마한테 손질해달라고 해야겠는 테츄웅~"



친실장은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그 날, 저 추자들을 모조리 잡아 내장을 빼내고 골판지 구석에 말리면서 두고두고 먹을 예정이라고 미리 춘자들에게 일러두었다.

그 말을 듣자, 무더운 여름 시절에 때아닌 식량 부족으로 인해 친실장과 함께 운치굴에 있었던 구더기와 엄지들을 있는대로 잡아 먹었던 기억을 떠올린 춘자들.

살려달라며 울부짖던 동생들의 감미로운 살코기 맛을 떠올리자, 절로 군침을 삼킨다.



엄지 구더기 고기도 그렇게 맛있었는데, 추자 고기는 얼마나 맛있을까?



"테프프, 어서 빨리 겨울씨가 와서 추자 고기를 먹고싶은 테치!"



춘자들은 행운아였다. 상위 개체가 되어 하위 개체를 마음껏 포식할 기회가 있었으니.

그리고 그 하위 개체들은 심한 불행아였다. 질리지도 않고 보상없는 업무에 뛰어들어야 했으니.






"이 느림보 새끼들, 더 빨리 못 움직이는 데스? 이 나무 몽둥이 맛을 더 보고싶은 데스우?!"



아침 식사는 고사하고 물 한 모금조차 마시지 못한 채로, 조금이라도 굼뜬 행동을 보이면 여김없이 친실장의 처벌이 내려진다. 추자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않고 가쁜 가슴을 움켜잡고, 주변에 떨어진 마른 낙엽을 줍기에 바쁘다. 겸사겸사 작은 열매라도 보이면 그것도 얼른 챙겨야 했고.

혹시나 열매 한 톨이라도 놓치면, 그것도 처벌이 되었다. 배로 더 맞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거기 제일 작은 놈, 허리를 좀 더 숙이는 데스! 어디서 허리를 필려고 하는 데스? 쳐맞고 싶은 데스우?"



긴 시간동안 숙이고 다녔던 막내 추자가 통증을 참지 못하고 잠시 허리를 피자, 친실장이 나무 몽둥이로 막내 추자를 가리키며 일갈한다. 노예같은 놈에게는 몇 초 안되는 행동이라도 쓸때없는 움직임이라면 사치였기에.

친실장의 노여운 목소리에 움찔, 하던 막내 추자는 다급하게 허리를 푹 숙이며 낙엽을 보이는대로 쓸어 담는다. 그러다, 낙엽 뭉치 사이로 콩알만한 열매 하나가 빠져 나와 땅에 떨어진다. 아차, 하는 표정이 막내 추자의 얼굴에 드러나는 그 순간, 친실장은 이를 갈면서 지저분한 막내 추자의 머리에 나무 몽둥이를 크게 한 방 먹인다.

짧은 비명 한 번 내지르고는 그대로 흙바닥에 내동댕이 친 막내 추자. 방금 전의 고통때문인지, 늘 얻어맞는 서러움인지 모를 색눈물을 흘리며 쉽게 일어나지 못한다. 이제 싫다고, 더 이상 못해 먹겠다고 악을 쓰며 나름 반항도 해보지만, 친실장의 심기만 건드릴 뿐이었다.



"이 건방진 애새끼가 어디서 큰 소리인 데샤!!"



반항은 오래가지 못 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컷다. 막내 추자는 제대로 눈에 찍혀 하루종일 맞아야 했으니.

그 꼴을 본 다른 추자 자매들은, 자신도 저렇게 될라 마른 몸뚱이를 열심히 움직인다. 허리도 아프고 팔다리도 아팠지만, 매를 맞는 것보단 나았다. 맨살에 흙이 튀고 찬 바람이 뼛속까지 스며 들었지만, 그래도 막내처럼 되고 싶진 않았다.



제일 작았던 추자는 변변찮은 목소리도 못 내보고 반쯤 죽은 고깃덩어리가 되었다.






친실장과 춘자들에게는 쏜살같은 시간이었지만, 추자들에게는 어느때와 다름없이 길고도 긴 시간이었다. 고된 노동을 뒤로 하고 또다시 썩은 내나는 운치굴로 돌아 온 그들은, 골판지 안에 있는 일가들이 어서 저녁 식사를 끝내길 바래야했다.

그래야 분변을 먹을 수 있었으니까.

붉으스름한 노을 빛이 비추는 하늘 아래에서 주린 배를 달래며 하염없이 기다리던 추자들은, 곧 시원하게 트림을 하며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위에서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어미와 언니들의 눈동자.



전부 다 하나같이 경멸과 비웃음이 담긴, 미천한 벌레새끼를 쳐다보는 눈길이었다.



"식사 시간인 데스, 이 쓰레기들!"



식사 시간이라고 하기에도 웃기지만, 그게 사실이다. 밑바닥 쓰레기들이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음식이었고, 실생이 끝나는 그 날까지 계속 먹게 될 것이었다. 구토할만큼 쓴 맛이 나는 초록 분변의 맛 외에는 입에 대지도 못 할 것이고, 제대로 된 밥은 구경할 기회도 없는 건 뻔한 일이었다.

적어도 이런 운치굴이 아니라 골판지 집 안에서라도 친실장과 함께 식사했으면 좋으련만.



"귀여운 와타시가 너희들에게 그린 로얄 스플래쉬를 하사하는 걸 감사히 여기는 테치!"



잘 먹고 살집 붙은 엉덩이들이 저마다 운치굴 위에 들이밀고는, 얼룩진 팬티를 내리깐다. 지나가는 사람이 봤다면 바로 욕설과 함께 발로 차버릴만한 광경이었지만, 운 좋게도 친실장과 춘자들은 오늘도 시원하게 볼 일을 본다.

곧, 묽은 운치가 흙벽에 따라 흘러내린다.

극심한 배고픔을 참을 수 없었던 추자들은 다른 자매들을 앙상한 팔로 밀치면서 앞다퉈 운치를 먹으려 달려들고, 그 모습을 보며 희희덕거리는 춘자들.



"테퍄퍄! 하여간 똥에 어울리는 똥벌레들인 테츄! 근데 그거 아는 테츄? 오늘 와타시들이 먹은 건 네놈들의 막내 추자의 몸...."

"차녀!! 그 입 다무는 데스!!"



친실장의 고함에 재잘거리던 차녀가 헙, 하고 입을 닫는다. 추자들을 골려먹는 우월감에 빠져 저도 모르게 오늘 저녁 메뉴를 말할 뻔한 것이었다.

다행인지 몰라도, 밑에 있던 추자들은 운치를 퍼먹느라 정신없어서 듣지 못했다. 친실장은 안도의 숨을 내쉬고,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차녀를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본다. 아무래도 오늘 밤에 한소리 할 것이 뻔했다.



더럽고 시끌벅적했던 저녁 시간은 그렇게 빠르게 지나갔다.






(테츄아! 잘못한 테츄! 테에에엥....!)

(다음부터는 저 똥벌레들에게 함부로 입도 뻥긋하지 마는 데스, 알겠는 데샤?!)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밤, 운치굴 밖에서 이따끔식 들려오는 친실장과 춘자 차녀의 목소리. 그리고 그걸 들으며 대체 뭐 때문에 혼나는 걸까 호기심이 든 추자들.

한 추자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친실장이 저 춘자를 솎아내버렸으면 좋겠다고 중얼거린다. 자신들이 이렇게 고통받는만큼 저녀석도 똑같이 고통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그러자 다른 추자들은 동의하며 울분을 토해낸다. 맞다. 왜 우리들만 고통 받는거냐. 이건 억울하다. 저놈도, 저놈의 춘자 언니도, 다 증오스럽다. 우리들은 여기서 불편한 식사와 잠자리에다 하기 싫은 일까지 억지로 하고 있는데, 이런 건 이상하다!



(테끅, 알겠는 테츄.... 다음부턴 조심하겠는 테츄.)

(옳지 데스, 반성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 데스. 역시 자랑스러운 와타시의 자인 데스~)



그 말이 들린 그 순간, 운치굴 안에 있던 독라들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버린다.

적어도 친실장이 좀 더 혼내주길 바랬는데....



(자자, 이쯤하고 오늘은 푹 자는 데스. 일찍 자야 내일도 저 년들을 일찍 깨우고 부려먹을 수 있는 데스!)

(안녕히 주무시는 테치, 마마! 차녀 이모토챠도 잘 자는 테치!)

(고마운 테츄, 장녀 오네챠! 다들 안녕히 주무시는 테츄웅~♡)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걸 듣자, 추자들은 한숨을 푹 쉬며 자신들도 운치 조각이 묻어있는 흙바닥에 드러눕는다. 왜 마마는 춘자들에게만 잘해줄까? 대체 자신들이 춘자들이랑 무슨 차이가 있다고? 같은 뱃속에서 나온 자 아닌가?

하지만 답은 알 수 없었다. 이들은 그 답을 알 기회도 없을 것이고, 그 답을 알기도 전에 이 세상에서 사라질 운명이었으니까.

아니, 어쩌면 적어도 사라지기 직전에 친실장이나 춘자들이 마지막에 답을 알려줄지도 모른다. 그래봤자 추자들은 운명은 변치 않겠지만.






골판지 안의 친실장과 춘자들은 물론이고, 운치굴의 추자들이 새근새근 코를 골며 꿈나라로 가있을 시간, 아직 유일하게 잠들지 못 하고 있는 실장석이 있었다.

정확히는, '실장석이었던 것' 에 불과했지만.



[....찌이이.]



그 '실장석이었던 것' 은, 흉한 독라의 머리통만 골판지 구석에 놓여져 빈약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몸뚱이는 없었다.

이미 눈 앞에 자고 있는 친실장과 춘자 언니들이 맛있게 뜯어 먹었으니깐.



그렇다. 이녀석은 낮에 친실장에게 두들겨 맞었던 막내 추자였다.



[....테에에, 테에에에....]



나무 몽둥이로 수도 없이 맞고 난 그 후, 기절해버리는 바람에 친실상 입장에서는 반 죽은 듯이 보였던 막내 추자는 노동력을 상실한 폐기물이나 다름없이 보였던 것이었다.

아직 이른 감이 있었지만, 오랜만에 스트레스로 깊게 농축된 실장육을 춘자들과 함께 맛보고 싶다는 생각에 일이 끝나자마자 뻗어있는 막내 추자를 골판지로 끌고 와, 위석을 꺼내 물에 담구고 머리통만 간신히 살아있는 보존식으로 만든 것 이었다.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산 채로 배가 갈라지는 고통을 느낀 막내 추자는, 반사적으로 눈을 뜨자마자 괴성을 지르며 그만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친실장의 손은 거침없었다. 겁도없이 반항한 노예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키고, 풍부한 짓소산이 가미된 추자의 몸뚱이를 세 등분시켜 춘자들과 저녁을 해결했다.

어미와 일찍 태어난 자들은 행복한 표정으로 고기를 꼭꼭 씹어 먹었고, 그 광경을 두 눈으로 지켜봐야했던 늦게 태어난 자는 현실을 부정하며 행복회로를 돌렸다. 얼마 돌리지도 못 했지만.



[테에, 테에에엥.... 테에에에에엥....]



늦게나마 현실을 직시한 막내 추자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며 울기 시작한다. 따뜻한 뱃속에서 들었던 마마의 행복을 약속하는 태교.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언제그랬느냐는 듯, 소중한 옷과 머리카락을 강탈당하고 감옥이나 다름없는 운치굴에 들어간 일. 그리고 매일같이 고강도의 노동에 시달리고는 운치밖에 먹지 못했던 시간.

세상 밖으로 나온 이후로, 어느 좋은 것 하나 없었다.



그저 일방적인 폭력에 당하고, 또 당했을 뿐....



'와타시는 대체 왜 태어난 테치?'



그 생각이 막내 추자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아무도 이 지옥에서 구원해주지 못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바라지 못하는 세상.

대체 왜 이런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이런 모진 삶을 보내야 했던 것일까.


쓸쓸하고 고독한 추자의 하루는 그렇게 끝났다.





- 끝 -








댓글 1개:

  1. 그들을 보며, 오늘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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