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갈 업데이트

 


"씨팔…"

토시아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믿기지 않아서 얼굴을 몇 번이고 손으로 쓸어내리고, 세수도 하고 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보통 이슈가 아니다. 

"아, 이 미친 씨팔…"

토시아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여전히 꿈이 아니었다. 







린갈 업데이트





토시아키는 연구소에 들어오자마자 땀이 끈적한 정장을 벗어제꼈다. 자식이 없는 히로아키 교수의 마지막 가는 길까지 상주 노릇을 해야했던 그는 그 상황이 참 얼척 없었지만 어쨌든 이제 다 지나간 일이다.

"후우, 그래, 미운 정이 고운 정보다 깊다 그랬지"

연구동 샤워실에서 시원하게 씻고 나와 3일 만에 연구실 PC를 켰다. 밀린 업무들을 처리해야 했다. 교수의 메일함에는 30통 가까운 메일이 와 있었다. 

"에휴"

다행히도 대부분은 언제나처럼 학회의 알림 메일이나 노땅 교수들의 별 쓸데없는 메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일거리도 끼어 있었다. 로젠 사의 린갈 업데이트 건이었다. 

"아 귀찮아졌네, 이걸 어쩐다"

메일의 내용은 간단했다. 린갈 앱이 특정 단어 몇몇 개가 조합되면 제대로 번역이 안되고 앱이 꺼져버리는데, 검토 결과 프로그램 버그가 아닌 실장어 해석 로직에 오류가 있어 보인다는 것. 해당 이슈의 검토를 부탁 드린다는 내용.

"파일에 관련된 내용이 있으려나"

히로아키 교수가 살아있었다면 아마 그저 두어 쯤 시간 있다가 교수가 개인 연구실에서 끄적여 온 노트의 내용을 전산 입력보조 알바생처럼 그냥 그대로 메일에 입력 해서 보내기만 하면 그만인 일이다. 지금까지 항상 그래왔듯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실장어 연구의 세계적, 그리고 사실상 유일한 권위자 히로아키 교수가 교통사고로 임종한 현재 이 업무를 처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후타바 대학 실장학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토시아키 뿐이었다. 

"파일이 어디 있더라…"

그러나 문제는, 히로아키 교수는 자신의 후학들에게 가르침이 짜도 너무 짰다는 사실이었다. 토시아키도 말이 좋아 선임 연구원이지 뭐 배움의 수준에서는 딱히 학부생들보다 나을 것도 없었다. 선배들이 관두어서 선임 자리를 꿰어 찼을 뿐이지. 어쨌거나 일은 일이었고, 그는 그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래야 후원금도 들어오고 이 연구실도 돌아갈테니까. 

토시아키는 히로아키 교수의 연구 파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파일에 비밀번호가 걸려있긴 했지만 비밀번호야 이미 알고 있었다. killjitsou666. 유치한 비밀번호였지만 외우기는 쉬워 좋았다. 그러나 그 순간 섬뜩한 생각도 들었다. 그나마 지지난 주에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대신 컴퓨터 손 본다고 유선상으로 비번을 전달받아서 알았을 뿐, 아니었다면 지금 이 수많은 자료는 그냥 모두 영영 암흑 속으로 들어갈 일 아니었던가. 

"어쨌거나, 오케이, 이 부분인가?" 

토시아키는 연구 파일을 죽 훑어가면서 지금 오류난 부분의 해석 구절의 로직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씨팔…"

토시아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너무 믿기지 않아서 얼굴을 몇 번이고 손으로 쓸어내리고, 세수도 하고 왔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건, 보통 이슈가 아니다. 

"아, 이 미친 씨팔…"

토시아키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여전히 꿈이 아니었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실장어 연구 파일의 내용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 …하여, '(친근한 의미에서의) 주인님'은 '똥닌겐'으로 변환을 하고, '사랑'은 '스시', '애정'은 '스테이크'로 변환토록 한다. '부디 주시는' 은 '내놓는 / 바치는' 으로 번역함으로서 실장석에 대한 인간의 가학심을 극도로 일으킬 수 있도록 한다 ] 


히로아키 교수의 연구 노트에 따르면, 지금 이 세상의 모든 린갈은 번역을 엉터리로 하고 있다. ('이 세상 모든 린갈'이라고 해봐야 그 실장어 언어로직을 짠 게 히로아키 교수니까 결국 그 모든 책임은 히로아키 교수, 그리고 광의적인 개념에서 우리 연구소, 즉 나까지 책임이 있고 말이지)

쉽게 말해서 "똥닌겐, 스시와 스테이크를 내놓는테치!" 이라는 실장석의 말은 사실은 "주인님, 사랑과 애정을 부디 내려주시는테치!"라는 말이다.

저 엉터리 번역 때문에 분충으로 판명받아 죽어간 수천만, 아니 수십 억의 실장석들은 도대체 얼마란 말인가. 

"아니 아니 잠깐만 그럴 리 없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반전적 정보다. 후우, 그래.

"보통 저런 말을 하고 투분을 한다거나 뭐 극도로 반항을 한다거나 하잖아"

혼자 중얼거렸지만, 마치 그걸 예상하기라도 했다는 듯 아래에 그러한 반론에 대한 부연설명이 있었다. 


[ 친-자의 유대가 끈끈한 동물인 실장석은 자신의 애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투분(자신의 배설물을 상대에게 던지거나 바르는) 행위를 하기도 하는데, 많은 포유류 동물들이 서로의 항문낭 냄새를 확인하며 유대를 확인하듯 이 역시 유대의 표시이며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는 지극히 애정어린 행위이다. 

아울러 마찬가지로 행동학적 관점에서, 양 다리를 벌리고 총구를 흔드는 등, 인간의 기준으로는 성애를 갈구하는 듯한 실장석의 행위는 기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인식과 달리 자신의 분대나 위석에 문제가 생긴 듯 하니 조심해달라는 행위이다. 

그러나 이 역시 본 서의 서두에 말했던 '진정한 실장석과 인간의 상호 발전적인 관계'를 위하여 본인은 

"그쪽에 계신 인간님, 제 뱃 속 상태가 이상하니 가능하시다면 확인 부탁드립니다" 라는 문장을 "어이 거기 있는 닌겐상, 한발 뽑고 가는데스우" 로 번역하기로 한다. ]

라고.




토시아키는 담배 연기를 길게 들이마셨다. 22메가 분량의 이 연구 파일 내용에는 그야말로 충격적인 내용들이 한도 끝도 없이 담겨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분충'이라고 알고 있는 실장석은 세상에 다시 없을 인간 친화적인 동물이며, 너무나 다정하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생물이었다. 

단지 인간과 그 행동학적 양식이 많이 달라 오해를 빚기 쉬울 뿐이었는데 그 모든 것을 히로아키 박사가 엉터리로, 아니 의도를 갖고 일부러 정 반대로 해석하도록 언어 로직을 일부러 짜놓아 린갈이 개발된 이래 인간과 실장석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걷고만 것이다. 

"하아"

이미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죽은 히로아키 교수는 세상에 다시 없을 또라이였다. 하지만 또 이해는 되었다. 



그는 "실장석 같이 애교 많고 예의 바른 동물은, 인간과 본격적인 친화 과정을 거칠 경우 근 100년 이내로 개 이상의 지위를 확보할 것이 분명하며, 그것은 장차적으로 실장석에 대한 학대는 물론이요, 실장석을 통하여 우리가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무수히 많은 의학적, 과학적, 생물학적, 식량학적 발전의 여지를 앗아버리는 것과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류의 질병 정복을 위해 시간당 수만 마리의 실장석이 희생되고 있지 않는가. 

(중략)

실장석의 번식력을 감안컨데 실장석과 인간의 친화는 식량학적 관점에서는 차라리 재앙에 가깝다.

(중략)

따라서, 차라리 내가 악마, 쓰레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이 '거짓과 기만'를 힘 닿는 데까지 지속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인류애의 실천이다" 라고 밝히고 있었다.




솔직히, 설득되었다. 처음에는 이 미친 교수가 지금껏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속여왔다는 사실에 분노했지만 그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말 못하는 개 고양이도 이렇게나 대우 받는데, 말까지 할 줄 아는 짐승이 인간의 애정을 진짜 제대로 받기 시작하면 사회는 분명히 실장석을 유사 인간 수준으로까지 대우할 것을 요구할 것이 틀림없었다. 실장석은 미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대단하긴 하다"

그래도 정말 참 그럴 듯하게, 아귀가 딱딱 맞게 왜곡해서 린갈의 실장어 번역 로직을 짠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또 곰곰히 생각해보니 [ 애호파는 린갈을 쓰지 않는다 ] 라는 격언도 조금은 다른 의미에서 이해가 갔다.

애정을 갖고 옆에서 지극히 정성으로 대우하다보니, 애호파들은 분명히 무언가의 위화감을 느꼈던 것이다. 린갈의 번역과 실장석의 진짜 의도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얼핏 보면 분명히 분충짓, 역겹고 건방진 동물의 행동인데다 번역까지 여지없이 그렇게 뜨니 사람의 화를 불러 일으키지만, 곰곰히 보면 결코 딱히 큰 악의를 갖고 행동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미묘하게 애정이 느껴지는 행동… 비록 그 미묘한 차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자신이 없어서 남을 설득하지는 못하지만 어쨌거나 알 수 없는 위화감에 린갈을 쓰지 않는 애호파들.



"그랬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토시아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이제 그에게 선택지는 두 개였다. 첫째는 지금이라도 모든 진실을 로젠사와 세상에 고하는 것. 이제껏 왜곡된 번역으로 죽어나간 실장석들이 세상에 어디 1~2억 마리 뿐이겠는가. 당연히 그 배상 문제는 천문학적인 수준에 달할 것이다. 토시아키는 일부러 그런 것이 결코 아니지만 어쨌거나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줄 리 없다. 게다가 히로아키 교수도 죽은 마당에 '선임 연구원' 타이틀 달고 있는 자신에게 세상의 모든 비난이 돌아오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둘째는 그저, 자신도 히로아키처럼 이 '왜곡된 번역'을, 언제 탈이 날지 모르지만 앞으로 죽는 그날까지 지속해나감으로서 인류에 이바지 하는 것. 

어느 것을 택해야 할 지는 자명했다. 




토시아키는 히로아키가 그랬던 것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왜곡된 번역의 교정을 위한 '기묘한 작문'을 두어시간 머리를 끙끙대며 쥐어짠 끝에 완성했다. 몇 가지의 변수를 상정하여 혹시 또 다른 오류를 불러오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다행히도 그럴 가능성은 없었다.

"후우"

메일을 보냈다. 두어 시간 후 로젠 사에서는 무사히 패치를 완료했다며, 감사하다는 내용의 답장을 보내왔다. 아울러 히로아키 교수의 부고에 대해 새삼 또 한번 조의를 드리고, 후임자인 토시아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도 약속했다.



토시아키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 혼자 불꺼진 연구실에서 길게, 꽤 맛 없는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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