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미도리였다. 그녀는 사육실장으로써 부족함 없이 자라났다. 주인의 적당한 훈육과 브리더로 인해 위석에 새겨진 훈육 덕에 분충성을 드러내지 않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성체였음에도 자를 낳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그녀는 주인의 사랑을 가득 받을 수 있었다. 주인은 여성이었기에 직스와 관련된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다. 편리한 사육실장의 삶이였다.
"미도리..어?"
그런 그녀가 고치를 틀자 주인은 크게 당황했다. 성체실장을 끝으로 실장석은 우화하지도, 퇴화하지도 않는다는게 정설이였다. 그녀는 어렴풋이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 이건 실장인이 되는 고치라고. 이제 이 아이는 실장인이 될 것이다. 설마 나의 아이가 실장인이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미도리는 1주일이 지난 후 우화했다. 고치를 찢고 그 곳에서 예쁜 여자아이가 나오는 장면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었다. 사랑을 담뿍 받았던 그녀는 외모도 사랑스러웠다. 갈색의 머리카락은 윤기가 돌았고 눈도 초롱초롱했다. 눈과 귀 정도를 빼면 실장석인줄 모를 것이다. 실장인의 외모는 그러했다.
주인은 키가 작았기에 미도리가 154cm 언저리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눈높이가 맞았다. 주인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미도리의 모습에 잠시 망설였다. 얘를 키운다면 진짜로 인간을 키우는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색다른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주인님, 미도리는 여행을 떠나볼까 하는 데스"
미도리는 인간이 된 제 모습을 둘러보았다. 분홍색 사육실장복을 입고 있었기에 옷 색깔도 분홍색이였다. 미도리가 이 말을 한건 주인의 표정을 살폈기 때문이다. 훈육 받아온 바에 따르면 이런 애매모호한 표정을 짓는건 별로 달갑지 않을때 짓는 표정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아, 그럴래?"
미도리의 예상이 맞았다. 주인은 자세한걸 묻지도 않고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다. 사실 여행같은거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래도 주인이 기뻐하니 한번 해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주인은 실장인 관리 센터에 연락을 해 미도리의 수속을 도와주었다. 미도리의 번호는 230번이였다. 이름은 미도리는 너무 흔해 금지이름이라 미도리를 적당히 변형한 메리로 정했다.
"메리, 가끔씩 놀러오렴"
메리가 실장인 아파트에 들어가는것까지 배웅한 주인은 약간은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돌아섰다. 실장인이 되지 않고 사육실장으로 남았었다면 계속 지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똑똑한 양충이였던 그녀 답게 교육은 빠르게 끝났다.
메리는 중견기업에 자리를 잡았다. 대기업에서는 뽑아주는 곳이 없어서 실장석 관련된 사업을 하는 곳으로 왔다. 그녀가 하는 일은 실장석들을 돌보는 일이였다.
"..오네챠?"
그녀가 처음 왔을때는 자실장을 길렀다. 자실장들은 언니인지 닝겐상인지 오바상인지 마마인지 헷갈린다며 그녀를 아무렇게나 불렀다. 어떤 날은 오바상, 어떤 날은 오네챠. 그런 중구난방의 호칭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그녀는 자실장들을 돌봤다. 마치 마마가 된 듯한 기분이였다.
"아타치 배고픈 테츄.."
자실장은 함께 넣어놓으면 다투기만 하기에 좁은 수조에 한 마리씩 가두어 길렀다. 실장푸드 몇 알을 톡톡 떨어뜨리면 알아서 집어 잘 먹었다.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기에 수조에서 운치와 샤워를 해결한다. 한번 통 안에 들어간 자실장들은 나올 일이 거의 없었다. 벽은 미끄러웠기에 자실장이 빠져나올 수 있을리 없었다.
"오네챠 부러운 테치. 자유로운 테치"
좁은 수조 속에서 자실장들은 보통 벽에 앉아서 잠을 잤다. 그 정도로 수조가 좁았다. 감옥보다도 더 하네, 란 생각이 들었다. 그 자실장들은 살만 디룩디룩 찌워져서는 식용으로, 일부는 안락한 생활에 물든 학대용으로, 아주 일부는 값비싼 사육실장이 되어 팔려나갔다.
자실장들을 독라로 만들고 위석을 빼낸다. 위석을 빼내 활성제 통에 넣고 시끄러운 자실장들을 스프레이로 재운 후 봉투에 넣고 봉한다. 같이 들어있는 케이스에는 활성제와 위석을 넣어 출품한다. 그 일련의 과정을 처음 보았을 때는 충격이였으나, 그녀는 곧 담담해졌다. 자신은 실장석이 아니니까 저런걸 보아도 슬프지 않다는 일종의 자기최면이였다.
"오바상, 무정한 테치.."
이런 일이 반복되자 그녀는 점점 무정해갔다. 어차피 이별할 아이들이니 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초반에는 자실장이랑 이야기도 하던 그녀는 이젠 할 일만 하는 사람이 되었다. 밥을 뿌려주고 물을 분무기로 뿌리고 비누조각으로 실장석들이 다 씻으면 다시 물을 뿌려 헹궈주는 일 정도만 했다. 운치와 물들은 아래쪽에 쌓이니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약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몇백마리의 자실장을 떠나보냈다. 처음에 슬펐던 감정도 점차 무뎌져, 그녀는 눈 앞에서 자실장이 파킨해서 죽어도 전혀 슬프지 않게 되었다. 그게 그녀가 오랫동안 이 일을 할 수 있는 비결이였다. 괜한 감정을 소비했다가는 못 견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감정은 제 마음 한켠에 남아 그녀를 괴롭혔다. 자실장들의 고통, 비명 등이 제 머리속에서 살아날때마다 그녀는 술을 마셨다. 맥주 한캔, 심할땐 소주 한병으로 날려버리는 아픔은 그녀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그녀는 점차 알코올에 중독되어 갔다.
"술로만 풀려 하지마. 내가 널 위로해줄게"
그녀가 알코올에 빠진지 2개월째, 한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는 굉장히 다정한 사람이였고, 그녀의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었다. 그녀는 점차 완화되어 갔고 알코올을 줄여나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와 헤어진 이유는 그의 바람 때문으로. 그는 어떤 생명체와 사랑에 빠졌다. 실장석과.
"미안, 난 역시나 실장석이 좋아"
그런 이상한 말을 남기고 떠나버린 그는 메리에게서 실장석의 모습을 찾으려고 했었다. 다만 어미도, 행동도 실장석이 아닌 그녀에게서 그는 매력을 찾지 못했었나 보다. 그는 단순한 직스파일 뿐이야. 그녀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했다.
그녀는 몇년동안 여러명의 남성을 만났다. 5명이 넘을 정도로 만났으나 죄다 직스파, 혹은 그녀가 실장인인줄 모르는 사람이였다. 직스파는 그녀가 실장석과는 다르다며 헤어졌고 후자는 그녀에게서 실장석이 보였다며 헤어졌다.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그녀는 지쳐갔다. 4년째가 되던 그 해, 메리는 결심했다. 이제 사람따윈 만나지 않을 거라고.
그 후 그녀는 자신의 결심을 잘 지켰다. 눈은 렌즈를 껴서 실장인임을 가리고 귀를 드러내지 않았다. 일에만 집중해서 타인의 접촉을 차단시켰다. 그녀는 점점 고립되어갔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가 없었다. 일터의 사람들은 죄다 인간이여서 그녀가 모르는 아이돌, 혹은 자신의 학교 이야기만 해대었다. 자신은 학교 같은거 다니지 않았는데.
그러던 차에 동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실장인이 새로 왔는데 PTSD가 심해 같이 살면서 돌봐줄 수 있겠냐는 연락이였다. 아마 거절당하다가 자신에게 까지 닿은 거겠지.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 수락하고 그 아이를 기다렸다. 2인실의 특혜라며 방을 제일 넓은 곳으로 옮겨주었기에 괜찮았다.
"..테치"
그 아이는 실장인이 된지 얼마 안되었고, 얼굴은 앳되었다. 20대 미만으로 보이는 그 아이는 말수가 없었다. 붕대와 거즈를 갈아주는 것도 내 일이라 나는 그 아이의 소매를 걷어올렸다. 못이 박혀 움푹 패인 자국과 벌겋게 부어오른 주변. 무릎에는 살이 까진 흉터가 남아있고 발목은 부은게 눈에 보였다.
거즈와 붕대를 갈고 발목을 마사지 해주는 내내, 배라라고 하는 이 아이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말도, 미동도 거의 하지 않는 인형같았다. 원래는 생명체였으나 어느 한 부분이 고장나서 죽어버린 아이.
배라는 거의 매일 밤 울었다. 직원에게 들은 바로는 학대파의 집에서 실장인이 되어 쫓겨난거 같다고 했다. 학대당하는 실장석도 실장인이 될 수 있구나. 그래서 저렇게 트라우마가 강한 거겠지. 조용한 방 안에서 배라의 우는 소리만이 들렸다. 최대한 참다가도 이따끔 뱉어내는 울음 소리가 메리의 마음을 괴롭혔다.
"오늘은 언니랑 같이 자자"
자신의 가벼운 말 한마디가 시작이였다. 자신이 사육실장이였을 때, 천둥소리가 들리는게 무서웠었다. 마치 모든걸 찢을 것 처럼 크게 들리는 천둥소리를 사육주가 막아줬었다. 품에 안고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말하는게 자신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었기에, 이 아이에게도 통했으면 좋겠다 하는 약간의 기대였다.
2인용 방에는 싱글침대가 2개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침대에 두 사람이 자기에는 좁았다. 조금이라도 더 넓었던 메리의 침대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좁기에 벽에 등을 대고, 배라가 떨어지지 않게 자신의 팔로 배라의 등을 감쌌다. 폭 들어오는 얇은 몸이 가여웠다.
"..언니"
"응?"
"고마워"
처음 들은 그 아이의 감사인사였다. 말하고 쑥스러웠는지 고개를 파묻는 그 모습이 귀여워, 메리는 배라와 거의 매일을 함께 잠들었다. 같이 안 잔다는 소리를 들으면 시무룩해지는게 보일 정도로.
이건 사랑은 아니였다. 메리는 인간을 대하는게 힘들었다. 인간과 함께 지내면 실장석이였던거 치고~로 시작하는 말을 매번 들어야 했고, 실장인이랑 성교하면 직스야 아니야? 라는 말이라던가 오만 말들을 다 들어야 했다. 그렇다고 실장석과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였다. 실장석들은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오만하고 건방진 애들이 많았다.
다만 실장인은 달랐다. 자신과 같고, 실장석일때의 경험을 공유하거나 인간이되어 좋은 점과 불편한 점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다만 실장인을 만나기는 어려웠다. 우화되는 것도 랜덤이거니와 전국에 있기 때문에 한 지역에서 만나기가 힘들었다. 그런 메리에게 배라는 어둠 속에서 내려온 한 줄기의 빛과도 같았다.
"언니, 항상 고마워"
배라는 고마움을 표할 줄 알며, 교육자보다 자신을 좋아했다. 자신 앞에서만 웃었고 자신과만 교류했다. 자신보다 신체가 작아서 동생이 생긴 기분이였다. 그녀가 자신과 비슷해져 갈 수록 메리는 더더욱 깊은 동질감을 느꼈다. 컬러렌즈를 끼고, 귀를 가리고, 테치 하는 어미를 버려갈수록 배라는 자신과 비슷해졌다.
자신과 비슷한 그 아이를 밤 마다 끌어안고, 최대한 가까이 밀착하여 숨소리, 심장소리와 가벼운 한숨소리, 옷이 스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등이 귓가에 울릴 때, 메리는 내가 이 아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의 모든 것이 내거라서 오직 나 만이 이 아이를 안을 수 있다는 생각. 이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배라가 교육을 끝내고 학교에 갈까 취업을 할까 선택할 때도 메리는 배라가 자신과 일하길 바랐다. 배라는 자신을 따라와주었고, 같은 부서에 들어갔다. 저실장을 돌보는 일이였다.
"언니, 얘들 너무 귀여워-"
이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떻게 되는지 배라는 몰랐기에 메리는 그저 해맑게 좋아하는 그 모습을 귀엽다고 생각하며 바라보았다. 메리가 볼때 배라는 트라우마를 완벽하게는 아니여도 어느정도는 극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위험하겠지, 트라우마는 쉽게 사라지지 않으니까
..
"언니 저실장이 너무 귀여운거 있지. 밥을 주니까 허겁지겁 먹는데 너무 귀여웠어.."
집에 돌아온 배라는 저실장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 전에는 항상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였는데. 메리는 선수를 빼앗긴거 같아 약간 섭섭했다. 그래도 이 아이가 좋아하니 나도 좋아해야 하는 걸까 여러가지를 고민하던 새에 1달이 지났다.
"수조 들고 오세요-"
운명의 날이였다. 이 저실장들은 살만 찌우고 영양가는 없는 음식들을 먹어왔다. 살은 통통하게 쪄서 영양가 있는 식사를 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이 아이들도 식용이나 학대용으로 팔려갈 것이다. 배라는 아무 것도 모르고 실장석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저실장에게 눈을 맞추고 손을 흔드는 그 모습이 귀여웠지만 동시에 질투가 나는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모습을 보느라 자신은 제때 수조를 옮기지 못했고, 가뜩이나 수조는 벽으로 둘러쌓이고 저실장 수십마리가 들어가 있어 무거웠다. 메리는 방심하곤 배라에게 같이 들자고 부탁했다. 그 후 배라가 본 광경을 메리는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숱하게 봐서 익숙해졌지만 배라는 처음 보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살린 그 광경을 목도한 배라는 그 상태에서 주저앉았다.
그 후 반장과 상의 후에 배라는 조퇴를 하는 것으로 하고 집으로 데려갔다. 자신이 저실장에게 한심한 질투를 한 것은 맞지만, 이 아이의 트라우마를 살릴 생각은 아니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배라는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언니.."
제 손을 꼭 잡는 배라의 모습에 메리는 일단 컬러렌즈를 벗겨주었다. 잠을 잘때 렌즈가 거슬리면 안되니까. 실장석의 오드아이 눈이 자신을 바라본다. 눈물이 가득 맺혀선 당장 안아달라고 재촉한다. 그 모습에 홀리듯 침대에 누웠다. 눕자마자 배라는 메리를 끌어안고 서럽게 울었다.
"괜찮아, 괜찮아..."
배라의 자라지 않는 단발머리를 쓰다듬으며 메리는 배라를 위로했다. 언니가 미안해. 저실장에게 한심한 질투를 해버렸어. 너를 뺏길까봐, 네가 나의 품을 떠나게 될까봐.
가슴 부근이 눈물로 젖었는지 차가웠다. 배라는 조금 진정한 후에 자신을 올려다봤다. 눈물에 젖은 오드아이의 눈동자가 자신을 빠져들게 한다.
"내가 기댈 사람은 언니 뿐이야.."
내 품을 파고든 배라가 중얼거린다.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 같다. 배라가 자신을 떠나지 말라는 말을 덧붙였다. 자신이 어디 갈 리가 없다. 내가 너를 놔두고 어디 가겠어.. 어느새 자신의 품에서 잠든 배라의 숨소리에 메리는 배라의 자는 얼굴을 바라봤다. 네가 나의 미래였으면 좋겠다. 네가 나를 갈망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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