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는 실장석의 별이다 1

 


굴 속 잠자리에 누워있던 중실장은 돌연 일어나 둥지 밖으로 향했다.
밖으로 나온 중실장은 말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보는 것 만으로 빨려들어갈 같이 검은 밤하늘, 그 위에선 별님들과 달님이 조용히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장녀!"

밤하늘에 눈을 빼앗긴 중실장의 등 뒤로 성체 실장석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렸다, 중실장의 친실장이었다.

"장녀! 자다말고 나와서 뭘하고 있는 데스? 부엉씨라도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러는데스까? 냉큼 들어와서 자는데스!"

친실장은 중실장을 꾸짖었다.
산 속에는 밤낮 구분 없이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약하디 약한 산실장에게 한가로이 밤하늘을 즐기며 감상에 젖어있을 여유 따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와타시..."

중실장의 어깨가 떨렸다.

"와타시는 장녀가 아닌테츠!!"

마치 울분을 터트리듯 중실장은 외쳤다.

"차녀인데스!! 상냥한 장녀 오네챠의 이모토챠인 차녀인테츠!!!"

중실장의 말에 친실장의 얼굴이 굳었다.

"...오마에."
"마마는!"

중실장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마마는 이상한테츠!"
"...뭐가 이상한데스까?"
"마마는, 마마는 분하지도 않은테츠까!? 그 장녀 오네타가 그렇게... 그렇게 닝겐에게 그렇게 죽어버린게 분하지도 않은테츠까?"

이틀전

독립을 앞둔 준성체 장녀와 중실장 차녀는 동생 자실장들과 함께 둥지 근처로 나와 햇볕을 쮀고 있었다.
천적의 눈을 피해 하루종일 캄캄한 굴 속에서 지내는 자실장들의 하루 중 유일한 레크레이션
여느때처럼 평화로운 외출이었다.
하지만 늘그렇듯 불행은 예고없이 찾아오는 법

따사로운 햇볕을 만끽하던 산실장 자매는 그만 등산로를 이탈한 등산객과 마주치고 말았다.

다행히

장녀의 민첩한 대처 덕에 차녀 이하 자실장들은 무사히 보금자리 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장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산실장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흥분한 등산객이 자매들을 향해 손을 내미는 순간
장녀는 용감하게 인간에게 달려들었다, 동생들이 피할 틈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보다 예닐곱배는 큰 등산객의 다리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물고 늘어졌다.

생각지 못한 기습에 화가난 인간은 장녀를 인정사정없이 짓밟았다.
일격으로 장녀는 숨이 끊어졌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인간은 들고 있던 막대기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장녀를 내려치고 커다란 발로 콱콱 짓밟았다.
그 억척스러운 몽둥이질, 발질질에 장녀의 몸은 흙과 낙엽이 뒤섞인 육편이 되어버렸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자매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똥물을 지리며 둥지를 향해 달리는 것 뿐이었다.

항상 엄격한 마마와 달리 어떤 상황에서도 언제나 자상했던 장녀는 동생들에게 또 다른 어미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그런 장녀에게 벌어진 일이 자기와 동생들 탓이라는 생각이 차녀 중실장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중실장은 잠들 수 없었다.

하지만 친실장은 평소와 다름없이 너무나 태연했다, 그 모습을 중실장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장녀챠는 마마가 와타시 타치들 중에서 가장 사랑하던 자가 아니었던테츠?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없었던 일처럼 지낼 수 있는 테츠까?"

중실장은 알고 있었다, 장녀를 바라보는 친실장의 눈빛이 자신과 다른 자매들을 향하는 눈빛과 다르다는 사실을
질투가 나고 분한 순간도 있었다, 하지만 언제나 자상한 장녀가 중실장은 그저 좋았다.


그런데 친실장이 자신을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장녀라 부르는 순간
마마가 장녀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실장은 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정말..."

급기야

"마마가 맞긴 한테츠까?

격해진 감정에 선을 넘고 말았다.

"차녀! 오마에!!"

차분히 듣고 있던 친실장은 그 한 마디에 언성이 높아졌다.
중실장은 곧 닥쳐올 고통을 예감하며 눈을 질끈 감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각오했던 친실장의 손찌검은 날아들지 않았다.
잠시 후 살며시 눈을 뜬 중실장의 눈에 비친것은 상념에 젖은듯한 친실장의 서글픈 얼굴이었다.

그런 중실장을 보며 친실장은 한숨을 푹 쉬었다.

"...와타시는 모든 자들을 똑같이 사랑하는데스, 다시는 그런 슬픈 소리는 하지 마는데스."
"......"
"다만 그 자, 장녀에게 유난히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건 사실인데스.
오마에와 다른 자들의 눈에는 그게 그 장녀를 유독 아끼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데스야."
"......"

달빛 아래 두 마리 사이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장녀가 닝겐에게 죽임을 당하기 전에 마지막 말을 기억하는데스?"


중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너무도 선명하게 마치 방금전 들은 말처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상냥했던 장녀가 닝겐에게 달려들기 전 자신의 어깨에 손을 얹고 했던 마지막 말

"차녀챠는 반드시 이모토챠들과 함께 행복해지는테스"

장녀는 마지막 순간까지 상냥했다.

"그런데스."

그 말을 들은 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녀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행복해져야하는데스, 행복해지기 위해선 슬퍼하고 앉아 있을 틈이 없는데스"
"...마마"
"뭐인데스까?"
"행복이라는게 도대체 뭐인테츠까?"
"......"
"매일 굶주림을 걱정하고 야옹씨, 멍멍씨, 까악씨, 부엉씨... 무서운 것들로 부터 숨어다니고 그러다 닝겐과 마주치면 언제라도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이런 삶에 정말 행복이라는게 있는테츠?"
"차녀..."
"와타시는 와타시는 잘 모르겠는테츠, 와타시는 너무 약한테츠. 약한 와타시 때문에 눈 앞에 장녀챠가 그렇게 죽어버린테츠.
와타시는 장녀 오네탸의 말대로 행복해질 자신이 없는테츠."

중실장의 오드아이에서 적녹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런데스까?"

친실장은 눈물을 흘리는 중실장의 곁에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중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마에도 그런 생각을 하는 걸보니 슬슬 어른이 된 모양인데스."
"테츠?"

생각지도 않았던 친실장의 말에 중실장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사실... 사실 마마도 차녀만할때 그런 생각을 했던데스야."

친실장은 슬며시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마마의 마마에게 물어봤던 데스, 행복이란건 뭐냐고 와타시타치 실장석들은 무엇을 위해 사냐고"
"......"
"마마의 마마께서 뭐라고 말해줬는지 듣고 싶은데스까?"
"듣고 싶은데스"
"...모른겠다고 하신데스"
"테에... 그런..."
"정확히는 '몰라도 좋다'라고 말했던데스야"
"...그게 무슨 말인테츠까?"
"지금 이 삶이 힘들고 괴로워도 마마에게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자들이 있는데스.
어쩌면 와타시는 진정한 행복을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르는데스, 하지만 이이데스요.
와타시는 세상에 오마에 처럼 착하고 예쁜 자들을 남기는데스.
차녀챠도 마마가 되어 또 차녀챠를 닮은 착하고 예쁜자들을 남기고 그 자들이 마마가 되어 또 자를 남길 것인데스.

와타시는 진정한 행복을 찾지 못해도 자의 자 또 자의 자들에게는 진정한 행복이 찾아올지도 모를 일인데스

자를 남기는 것은 행복을 찾는 다리를 놓는 일인데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마마는 지금 행복한 데스요."

"...와타시는 잘 모르겠는테츠"

"그럴 것인데스"

친실장은 다시 중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젠가 오마에도 마마가 되면 알게되는데스"

마마가 된다.
중실장인 차녀에게는 그것이 그저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분하고 괴롭고 무서워도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데스
언젠가 실장석들이 행복을 찾는 그 날이 올때까지 자를 가득가득 낳는데스"

이 말을 끝으로 친실장은 다시 둥지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친실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중실장은 머뭇거리며 뒤 따라 둥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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