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한 번이라도 별사탕을

 


"죽기 전, 한 번이라도 별사탕을!!"

어느 실장석 애호 단체가 새롭게 시작한 이 캠페인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소수의 애오파들에 국한하지 않고 전 국민적인 반응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지금까지 대다수의 실장석 애호 단체-를 빙자한 애오 단체-들은
무분별하게 실장석 서식지에 먹이와 별사탕 등을 뿌리는 활동을 벌이곤 했고,
이는 곧 해당 서식지의 부양 능력을 넘어선 폭발적 개체수 증가를 가져오기 일쑤였다.
이것은 곧 장기적으로는 실장석들의 영역 및 먹이 부족으로 이어졌고, 
거기에 먹이가 풍족하다고 착각한 실장석들이 
야생의 환경이었다면 솎아냈어야 할 분충들까지 솎아내지 않고 키우기 시작하면서
분충의 증가라는 간접적 효과까지도 가져왔다.
그 결과는 당연하게도 인간들에 대한 구걸, 탁아, 투분 등의 증가.
처음엔 주기적 구제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어나는 도시 거주 실장석-속칭 들실장-들을 보며 의아해 했던 사람들은
곧 이 현상의 원흉이 애오파들의 무분별한 먹이 공급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결국 실장석 애호(애오) 단체들에 대한 세간의 이미지가 바닥을 쳤음은 물론이요,
이에 분노한 여론에 의해 공원에서의 실장석 먹이 살포가 법에 의해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실장석에 대한 일체의 구호 활동은 과거의 일이 되어가고 있었을 무렵,
한 신흥 실장석 애호 단체가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한 것이다.



"죽기 전, 한 번이라도 별사탕을!!"

캠페인의 명칭이자 곧 구호이기도 한 이 한 문장 그대로,
이 새로운 캠페인의 목적은 죽음을 앞둔 들실장들이 죽기 적 마지막에라도 별사탕을 먹을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었다.
캠페인을 주도한 신흥 애호 단체의 멤버들은 애오파가 아닌 양식 있는 진짜 애호파들로서,
무분별한 먹이 살포가 들실장들의 야생성 훼손, 장기적인 먹이 부족, 분충의 증가 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애오파들이 무분별한 먹이 살포를 벌이는 동안 거기에 동참하지 않았음은 물론이요,
오히려 이들의 행위가 멀쩡한 애호파들의 이미지까지 망친다는 용기 있는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이들이 들실장의 생태를 망치거나 인간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최소한의 선에서 생각해낸 활동이 바로 이 캠페인.
구제 후의 공원을 산책하던 중, 
코로리 약기운으로 죽어가던 한 실장석이 '단 한 번이라도 행복해보고 싶었던 데스우...'라고 중얼거리며
검은 눈물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광경을 목격한 어느 회원의 제안으로 이 캠페인은 시작되었다고 한다.

실장석은 도시의 쥐나 바퀴벌레, 농촌의 토끼와 같은 해수다.
인간과 아예 분리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자연실장-속칭 산실장-이나 
눈치껏 인간의 눈을 피해 살아가는 소수의 현명한 실장석들까지 굳이 찾아내어 절멸시킬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인간의 거주 지역 내에서 인간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끼칠 정도로 수가 늘어난다면 
구제를 통해 수를 줄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아무리 애호파라고 하더라도 애오파가 아닌 이상 이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실장석이라 하더라도, 죽기 전 마지막 순간만큼은 행복한 꿈을 꾸게 해 주어도 되지 않을까.
먹이를 뿌리자는 것도 키우자는 것도 장기적으로 애호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죽음을 앞둔 들실장이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별사탕을 맛보고,
최후의 행복감이 선사하는 행복 회로 속에서 편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해주자는 것이다.

어차피 죽어가는 실장석,
실장활성제나 고농축 영양 드링크라면 몰라도 별사탕 하나쯤 입에 물려준다고 해서 죽어가던 실장석이 살아날 리도 없고,
원래 분충이었든 별사탕 맛과 행복 회로로 분충화되든 간에 
어차피 몇 분 안에 죽어버릴 실장석인 이상 현실적으로 분충짓을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주어지는 행복이기에 개체수에 영향을 주지도, 야생성을 훼손하지도 않는다.

또한 대규모의 무분별한 먹이 살포만 금지되었을 뿐
특정한 몇몇 개체에 국한해 소량의 먹이를 제공하는 것까지 금지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따져도 문제의 여지가 없었다.
(재미있게도 이것은 대규모 먹이 살포는 포기하더라도 개인적 애호 행위만은 계속 하고 싶었던 애호파들과
코로리나 도돈파, 게로리, 네무리 등을 사용하는 것까지 금지될까봐 두려워한 학대파 및 관찰파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일치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처럼 이 캠페인은 기존의 무분별한 먹이 살포가 가져오는 문제점들을 공유하고 있지 않았고,
대규모 먹이 살포나 다른 기타 애호 행위와는 달리 싸구려 별사탕 몇 알을 주머니에 가지고 다니다가
길에서 죽어가는 실장석을 발견하게 되면 잠시 멈춰 입 안에 별사탕을 넣어주고 
따스한 말 몇마디와 함께 임종을 지켜봐주면 될 뿐인 간단한 활동이었기 때문에,
애오파들에게 질릴대로 질린 일반인들에게도 그다지 거부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게다가 지난 몇 해 동안 이어진, 들실장을 절멸에 가깝게 몰고간 잔인한 구제의 반작용 때문인지
실장석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 사이에서까지도 '그래도 살아있는 생명들에게 너무 심했던 것 아닐까?'하는
죄의식....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일말의 미안한 마음이 퍼져나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비용도 시간도 많이 들지 않고 애오 활동과 같은 부작용이나 사회적 피해도 없으면서 
간편하게 미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 있게 해주는 이 캠페인에 대거 동참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애오파나 애호파는 물론 본래는 실장석에 관심이 없던 다수의 일반인들 중 많은 이들이 
주머니에 별사탕을 몇 알 가지고 다니다가 
죽어가는 실장석을 보면 입에 별사탕을 하나 물려주고 따스한 말 한 마디와 함께 임종을 지켜봐주는 풍경은 
이제 자연스러운 공원과 길거리의 일부가 되었다.
죽어가는 실장석을 대상으로 하던 것도 대상이 확대되어
죽은지 얼마 안 된 실장석까지 입 안에 콘페이토를 넣어주고 애도를 표하기에 이르렀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는 캠페인에 동참한 인증샷이 우후죽순 올라오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분위기에 휩쓸린 학대파나 학살파가 자기 손으로 때려죽인 실장석에게 
마지막 의식처럼 별사탕을 물려주는 경우까지도 심심찮게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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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부터일까, 인간들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동족들의 입에 별사탕을 하나씩 물려주고는, 따스한 말과 함께 머리맡을 지켜주기 시작한 것이다.
수차례의 대규모 구제를 겪으면서 인간들에 대한 공포가 뿌리깊게 박혀버린 실장석들.
그러나 그 따듯한 광경은 실장석들이 보기에도 너무 아름다운 것이었다.
종종 푸드와 함께 별사탕을 뿌리던 착한 인간들이 사라진 것이 언제이던가.
단 한 번이라도 별사탕을 먹어본 들실장은 파양된 원사육실장이나 
착한 인간들이 있던 시절부터 아직까지도 생존해 있는 소수의 고령 실장석들 밖에는 남지 않았다.
그 외 대다수의 들실장들에게 별사탕은 이제 전설 속의 물건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실장석들에게 한정된다고는 해도, 인간들이 별사탕을 다시 주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들이 죽어가는 실장석을 찾아다닌 것은 아니었기에,
그 혜택을 입으려면 죽어가는 실장석이 인간의 눈에 띄어야만 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실장석들은
마마나 자식, 자매, 혹은 사이가 좋았던 이웃 실장석의 임종이 임박하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가에 데려다가 눕혀놓곤 했다.
이런 행위는 결과적으로 실장석 사체를 처리하기 편해진다는, 인간의 관점에서도 좋은 결과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런 풍경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가기 시작할 무렵,
실장석들은 생각했다.
죽어가는 가족이나 이웃이 죽기 전 한번이라도 행복해지는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들은 오로지 죽어가는 동족에게만 별사탕을 준다.
나에게는 주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그것을 얻을 방법은 없을까.

몇몇 분충들은 얕은 생각에 솎아낼 예정이던 자나 친실장을 잃은 고아실장을 죽기 직전으로 만든 뒤
인간에게 내밀며 별사탕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캠페인 측에서는 이미 이런 상황을 예견해
절대로 다른 실장석 손에 별사탕을 넘기지 말고 임종 직전의 실장석의 입에 직접 넣어줄 것을 강조하였고,
또한 해당 실장석이 숨을 거두거나 혹은 별사탕이 충분히 녹아 없어진 뒤에 자리를 뜨도록 홍보를 했기에
이런 분충들의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다음으로 실장석들은 스스로 길에 나가 죽어가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죽어가는 척을 하고 있으면 입에 별사탕이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그러나 안타깝게도 실장석들에게 완벽하게 죽어가는 척을 할만한 연기력이 있을 리 없었다.
가만히 누워 있는 것 외에 다른 연기를 할 줄도 모르고, 
주기적으로 실눈을 떠 주위를 흘끔거리는데 거기에 속을 인간이 어디 있는가.

실장석들에게 다행이었던 점 이라면, 연기력이 너무도 지나치게 형편없었던 덕분에,
사람들은 실장석들이 별사탕을 받으려고 죽어가는 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어설프게나마 '연기' 비슷한 무언가를 했다면 사람들도 위화감을 느끼고 눈치를 챘을텐데,
아예 죽어가는 척이라고 볼만한 구석이 없는 수준이다보니 
사람들도 그게 죽어가는 척을 하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 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한동안 인간을 무서워해 도망다니던 실장석들이 대로변에서 누워 잠을 잔다는 데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어쨌든 가만히 누워서 잠이나 잘 뿐 먹이를 달라느니 키워달라느니 귀찮게 굴지도 않고, 
듣기 싫은 울음소리로 말을 걸어오지도 않고, 탁아나 아첨이나 투분을 하지도 않고 말 그대로 그저 누워만 있었기에
딱히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다.
이것도 결국은 실장석에 의한 인간의 피해가 더욱더 줄어드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고,
그렇기에 어떤 사람들은 지독한 구제를 겪은 실장석들이 정신을 차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죽어가는 척도 통하지 않자 몇몇 실장석들은 자해를 시도했다.
그러나 인간이 별사탕을 주는 대상은 어디까지나 임종을 앞둔 실장석이나 죽은지 얼마 안 된 실장석 뿐.
그저 조금 다친 정도로는 별사탕을 주지 않는다.
그러니 자해를 하려면 조금 다치는 정도로는 택도 없고 적어도 팔다리가 으스러지고 두개골이 함몰되는 정도는 되어야 했다.
....그런 것을 스스로 할 수 있을 리는 없다.

그러던 중, 드디어 한 실장석이 죽어가는 것처럼 보여 별사탕을 얻는 데에 성공했다!!!
바로 위석에 스스로 충격을 주어 가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소중한 돌이 있는 가슴팍을 길가에 있는 철제 울타리에 강하게 부딫혀 스스로 가사 상태에 빠진 그 실장석은
수 시간 후 입에 별사탕을 문 상태로 깨어나는 데에 성공했다.

연기로 하는 죽은 척과는 달리 가사 상태는 정말 죽어 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숫제 죽은 것에 더 가까워 
미약하게 가슴이 오르내리는 호흡의 흔적이나 눈이 완전히 흐릿해지지 않고 색깔이 남아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 한다면 
그냥 죽은지 얼마 안 되었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이다.
정말 실장석의 생태에 박식한 전문가나 위석 서쳐의 도움을 받지 않는 이상, 
일반인의 눈에 가사 상태의 실장석은 이미 죽었거나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로 보일 뿐이다.

이 실장석의 성공 사례는 소문을 통해 실장석들 사이에서 빠르게 파져나갔다.
이를 보거나 들은 실장석들은 앞다투어 위석이 있는 부위에 충격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중간한 충격으론 아프기만 하지, 가사 상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점점 더 강하게 충격을 준다.
성공한 몇몇 실장석들은 가사 상태에 빠져 별사탕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실패한 실장석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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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XX시 들실장들 사이에 기현상이 벌어졌다.
공원이나 하수도 등에서 도로 쪽으로 나왔다가 위석이 깨져 죽은 실장석의 사체가 수 없이 발견된 것이다.
그들은 예외 없이 동일하게 위석이 있는 부위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 있었고,
그들 중 상당수가 손에 돌맹이와 같은 둔기를 들고 있었으며,
인간이 지나다니는 길에서 가까운 위치에서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먹이가 부족해진 실장석들이 동족식을 시작하면서 대규모 내분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하는 추측이 있었으나,
위석이 있는 부위의 국지적 타박상 외에는 큰 외상이나 폭행의 흔적 없이 깨끗했고,
또한 다른 실장석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 고립된 환경에서도 그런 식으로 죽은 실장석의 사체가 많이 발견되었기에
그러한 대규모 내분의 결과는 아니라는 결론이 도출되었다.
애초에 실장석은 개체마다 위석의 위치가 다르고,
위석이 있는 위치는 약점이기에 실장석들은 위석의 위치를 스스로만 알고 있을 뿐, 
심지어 가족에게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서 실장석끼리 싸우면서 서로가 서로의 위석 위치만 철저하게 골라서 때린다? 불가능한 일이다.

학대파나 학살파의 소행일까? 하지만 거의 모든 현장에서 인간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스스로 자해한 것이라는 결론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실장석들이 집단 자살을? 대체 왜?

이 '20XX년 XX시 들실장 집단 자살 사건'은 지금까지도 그 명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저 XX대학 생물학과 교수이며 실장석의 국내 최고 권위자 박철웅 교수가 내놓은,
"대규모 구제를 몇 차례나 경험하고도 살아남은 실장석들이 
인간의 눈치를 보며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가는 생활에 극한의 스트레스를 느끼고
결국 스스로 위석을 파괴해 자살한 것이다."라는 가설이 현재까지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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