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초

 


그날은 이상하게도 구름이 참 많이 꼈었다.

가을하늘은 공활하다고 어느 유명한 노래에도 나와 있지만, 마치 장마 때의 꾸물꾸물한 그것처럼 10월의 하늘은 잿빛투성이였다. 간혹 구름 사이로 삐져나오는 햇빛이 있긴 했지만, 그 실낱같은 빛조차 A공원에 닿지는 않았다.

"데샤앗! 데스데스데샷!"

"데스데스."

공원의 많은 들실장들은 여느 가을날과 다를 바 없이 그저 쓰레기장을 뒤지는 데에 열중이었다. 최근에 바싹 추워지기 시작한 날씨 때문인지, 이들은 유난히 더욱 먹이와 잡동사니들을 많이 찾기 위해 공원 안팍의 쓰레기들을 열심히 헤집고 다녔다.

공원 주위를 빼곡이 가린 회색 가림막 사이로, 하얀 옷을 입은 인간들이 서서히 공원 안으로 들어서는 것도 모른 채.




최근 A공원에 있는 들실장들은 자신들의 공원 주위에 뭔가 엄청나게 높은 회색 테두리가 서서히 둘러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일부 개체는 무언가 불길한 낌새를 눈치 채고, 공원을 떠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개체들의 소식이 지저귀는 바람소리처럼 들실장들 사이를 스쳐 흐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체들은 점점 공원을 둘러오는 회색 가림막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을 뿐더러 월동 준비에 바쁜 나머지 그런것 따위에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오히려 한창 겨울나기 대비를 하기 위해 죽어라 일할 시기에 생뚱맞게 다른 공원으로 이주하는, 대부분 성공은 커녕 인간을 포함한 바깥의 위험에 죽어버리기 십상인 바보같은 짓을 하는 분충들을 비웃을 뿐이었다.

"데프프픗. 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우. 데프픗."

친실장 역시 이렇게 생각하는 대다수의 일반적인 개체들 중의 하나였다.

미친 짓 이였다. 친실장과 가장 가까운 골판지에 살고 있던 어느 분충도 다른 공원으로 도망치려했다. 어떤 이들은 계획적으로 무리를 지어 도망갔다고 했다. 회색 가림판이 공원을 뒤덮기 전에 어서 나가야 한다며 자들을 이끌고 서둘러 공원 밖으로 나가는 개체들도 있었다.

"데스..."

친실장은 공원 바깥세상의 무서움, 특히 인간의 무서움을 잘 안다. 비록 이곳 A공원 역시 하루에 들실장들이 몇 마리씩 죽어나가는 무서운 곳이지만, 공원 밖에 비하면 그나마 낫다. 친실장은 잘 알고 있었다. 이곳이 오직, 자신들에게 이 세상에서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다. 다른 공원으로 이주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결국 자신의 옆집에 살던 분충 일가도 공원 바로 앞의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차에 치어 일가가 몰살당하지 않았던가?

아침에 허둥지둥 대며 집을 나서는 것을 봤었는데 불과 1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먹이를 구하러 나가다 우연히 본 공원 밖 도로 위에 그 일가가 얼룩이 된 채 터져있던 것을 보지 않았던가?

그만큼 공원 밖은 위험하다. 공원에 낯선 것들이 조금 생겼다고 제 목숨을 걸고 공원을 탈출하다니.. 인간은 무섭다. 특히 공원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인간은 더욱 무섭다. 실장석의 탈출 따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데스데스..”

어느덧 잔디를 넘어, 공원의 참나무 숲 깊숙한 곳으로 친실장은 들어가고 있었다.

그예리한 야생성은 저 공원 가장자리에 점점 늘어나고 있는 회색 벽이 뭔가 불길한 무엇이라며 친실장의 위석을 쿡쿡 찔러댔다. 아마 다른 개체들 역시 이러한 본능의 발현 때문에 자꾸 공원 밖을 나가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친실장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공원을 나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를 버리고 어디를 간단 말인가?

“데스데스데스~.”

“테챠!”

“테츄테츄!”

“테에에에엥 테치!”

더군다나 친실장에게는 자가 있었다.

자신의 반도 안 되는 크기의 작은 네 마리의 자를 데리고, 지금 있는 아늑한 보금자리를 버리고 공원을 나간다. 성체 혼자 새로운 공원을 찾아 나가도 죽을 판에 어린 자들을 건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들은 무조건 죽을 것이고, 자신 역시 자들을 챙기느라 제대로 위험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쓸 때 없는 생각하지 말고 이 자들이 겨울을 무사히 넘기게 하기 위해 월동준비나 하자고 다짐하며 친실장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데스데스.”

“테츄웅?”

“테치테치.”

친실장의 곁으로 네 마리의 자가 다가왔다. 아니, 정확히는 친실장의 오른손에 걸려있는 무언가로 꽉꽉 찬 비닐봉지를 마구 만지러 왔다. 얼굴을 뿌- 하면서 네 자실장은 저들의 친실장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테츄! 테치테치!”

“데스데스. 데스데스우.”

“테햐아아아!”

보채지 말라는 듯이 친실장은 비닐봉지 안의 내용물을 쏟았다. 이상하게도 최근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봉투에는 거의 친실장의 키만한, 하얀 줄기에 파릇파릇한 잎이 커다랗게 달려있는 초록 잎사귀가 많이 담겨있었다.

아삭.

“테츄우우우웅!”

“테프프프픗. 테치테치.”

“테츄우~! 테츄우~!”

다행히 자들은 이 잎사귀를 매우 좋아했다. 아삭한 흰 줄기를 씹으면 터지는 시원한 즙과 질겅질겅하니 씹는 맛이 있는 파란 잎의 조화. 실장석 입맛에는 다소 짠 인간의 음식들을 배춧잎과 같이 먹으면 간이 딱 맞아 매우 맛이 있었다. 더군다나 친실장만한 이 야채는 쓰레기장에 온 들실장들이 모두 각자의 비닐봉지를 채우고도 남을 만큼 최근 풍족하게 있었다. 친실장 일가는 김장철 덕분에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데프프픗.”

자들이 기뻐하자 친실장 역시 조용히 웃었다. 독립한 직후 낳았던 자들은 여름의 작렬하는 태양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렸지만, 선선한 가을밤에 친실장은 자를 한 번 더 가졌다. 그 자들 중에서 살아남은 3마리. 건강하게 웃으며 잎사귀를 갉아대는 자들의 소리에 친실장은 생각했다.

이 자들은 여름의 자들처럼 쉽게 죽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겨울을 반드시 넘겨 보이겠다고.







친실장은 웃으며 자들을 자애롭게 쳐다보았다. 귀여운 네 자실장들은 밥을 많이 먹었는지 바닥에 운치를 싸대면서 기분 좋게 누워있었다. 그러더니 다들 하품을 쩌억 하고, 하나 둘씩 내일의 즐거움을 위해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침을 질질 흘리면서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삼녀가 이내 웃으면서 입을 헤 벌리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츄우....츄우....”

“보에~ 보에~ 보에~”

배춧잎 위에서 잠들어버린 꼬질꼬질한 자실장 4마리를 친실장은 정성껏 쓰다듬었다. 자들의 몸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혹여나 깨지 않을까 운치와 먼지로 더러워진 몸을 조심스레 핥아주었다.
장녀, 차녀, 삼녀, 사녀 순으로 구석구석 몸을 핥아 씻겨준 후, 이들을 골판지 한쪽으로 조심스레 옮겼다.

“테츄우....츄우...”

“츄우.....테츄우? 치프프프픗.”

“데스데스... 데스우..”

뭔가 좋은 꿈을 꾸고 있는 듯이 웃으며 잠꼬대를 하는 장녀를 바라보며 친실장은 자리에 누웠다. 잔인했던 여름은 모조리 잃어버렸던 자들과 함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간다. 선선한 가을의 풍성함을 만끽하며, 내일도 겨울나기를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고 친실장은 다짐했다.
보존식도 서서히 모아가고 있으며, 비닐봉지나 수건, 천 쪼가리 등 겨울나기 용품도 조금씩 가져오고 있다.

출산 시 낳았던 구더기 5마리도 집 밖의 운치구덩이에 잘 있다. 혹여나 자들이 빠질 경우를 대비하여 운치구덩이를 그다지 깊게 파지 않았기에, 친실장은 운치를 싸러 갈 때마다 구더기ef들이 죽지 않고 팔팔하게 있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자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기를 바라는 친실장은 이미 꿈을 꾸고 있었다.

겨울을 무사히 넘긴 자신의 자들이 독립하는 꿈을, 화창한 봄날에 자들을 독립시킨 자신이 다시 한 번 자들을 낳는 꿈을.

“데스데스데스! 데프프프픗.. 데스....스우....”

비록 이상한 벽이 생기고 다른 개체들이 그 벽을 피해 별난 짓을 하는 것을 많이 목격하긴 했지만, 친실장은 최근의 이 즐거움이 겨울을 넘어 봄까지 향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당장 내일 닥칠 비극을 생각하지도 못한 채.



그날은 청명한 가을날의 푸르른 하늘은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공원을 완전히 감싸버린 회색 벽처럼 뿌연 구름들이 가을 하늘을 죄다 가려버렸기 때문이었다.

꾸물꾸물한 날씨 탓일까? 친실장은 평소와 달리 좀 늦잠을 잤다.

“테치테치!”

“데후우.....데...데에?”

“테치테치테치. 테츄테츄우?”

오히려 동생들보다 먼저 일어난 장녀가 친실장의 콧구멍을 쿡쿡 찔러 제 마마를 깨웠다. 왜 친실장이 오늘은 골판지를 나서지 않고 평소보다 늦게 잠을 자고 있나 궁금했는지 장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누워있는 친실장을 내려다보았다.

“데스! 데스데스데스... 데스데승..”

“테에...”

“츄우.....츄우,,,,”

장녀의 말을 듣고 자신이 늦었다는 것을 안 친실장은 혹여나 다른 개체들한테 이미 요긴한 것들을 뺏겼을까 불안한 마음에 오늘따라 이상하게 어둑어둑한 날씨를 탓하며 투덜거렸다. 아직 자고 있는 나머지 3마리를 잘 돌보라며 장녀를 도닥인 후, 비닐봉지를 챙겨 급히 밖으로 나갔다.

골판지를 나와 참나무 숲 밖으로 나오자 친실장은 뭔가 심상찮은 일이 공원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았다.

“데챠아아아아아!”

“데챠아아아! 데스데스 데챠아아아!”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갸아아아악!”

공원 사방팔방에서 들실장의 비명이 들렸다. 뭔가 뛰어가는 소리, 주저앉아 우는 들실장의 울음소리, 실장석 특유의 울부짖는 소리까지. 이건 분명 기쁨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도, 일상에서 들리는 평범한 소리도 아니었다.

절규와 비명. 생(生)을 위협하는 소리였다.

“데....데에에..”

친실장은 어찌해야할 줄 몰랐다. 매일매일 보존식을 모으고 있다고는 하지만, 오늘 벌지 않으면 당장 다음 날에 차질이 생긴다. 공원에서의 삶은 하루 정도는 들실장이 마음 놓고 휴식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게 절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다. 저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가면 안 된다. 가면 죽게 된다. 저 쪽에 들리는 동족의 절망에 찬 울음소리가 점점 커져간다. 그와 동시에, 쓰레기장 쪽에서 자신이 있는 쪽으로 수많은 들실장들이 울며불며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거의 백여 마리에 가까운 저 들실장 군단이 모두 적록의 눈물을 흩뿌린 채, 미친 듯이 저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나무숲으로 도망가려 하는 것 같았다. 공원의 동쪽, 남쪽, 중앙 분수대 옆, 그리고 친실장의 집이 있는 참나무 숲 쪽으로도 성체실장들은 미친 듯이 달렸다. 간혹 자실장을 끌고 나왔는지 제 자들이 뒤쫓아 오다가 다른 성체에게 밟히는 것도 모른 채, 마구 달리는 녀석들도 보였다.

친실장이 헤 하며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에 들실장 무리들 중 일부가 자신이 있는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왔다. 이들이 뭔가 외치고 있었다. 친실장은 두 귀를 쫑긋 하며 이들이 입에서 마구 내뱉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무슨 소리들을 다들 하고 있는지 신경 쓰기 위해 그다지 많은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이들은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얀 악마가 온 데챠아아아앗!”

하얀 악마. 위석으로만, 그리고 친실장 자신의 친에게서만 들었던 존재. 들실장들이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거나 공원에 실장석의 수가 과도하게 많아지면, 이들을 모조리 죽이기 위해 온다는 그 흉악한 존재.

그 존재가 지금 왔다고 눈앞의 모든 들실장들이 말하고 있었다. 이미 어떤 성체실장은 자신의 옆을 쌩하니 지나 자신이 지나온 참나무 숲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인간 크기의 새하얀 옷을 입은 무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손에는 쇠파이프, 다른 손에는 커다란 자루를 들고 그 큰 보폭으로 성큼성큼 실장석 무리의 꽁무니를 단숨에 뒤쫓았다.

가장 가까이 있는 하얀 악마의 손짓 한번으로 네댓 마리의 성체실장이 쇠파이프에 걸려 공중에 붕 떠버린다. 그리고 모두 바닥에 내쳐진다. 잔인한 그 악마는 차가운 쇠파이프를 다시 들어, 바닥에 누워 운치를 질질 싸대며 비명을 지르는 성체들의 머리를 모조리 터트려버렸다.

본격적인 구제가 지금 시작되었다.

“데에....데에.....데챠아아앗!”

친실장은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다. 하얀 악마가 온 것이다. 공원의 비명 소리는 하얀 악마를 본 수많은 들실장들의 절규였던 것이다. 자신이 여기서 돌아갈까 아니면 쓰레기장 쪽으로 용감하게 가볼까 하는 고민은 할 필요도 없는 고민이었던 것이다.

어차피 다 죽을 테니까.

그러면 공원을 떠나려 했던 녀석들은 미리 알고 여기를 빠져나가려 했던 것인가?

친실장은 사방을 황급히 둘러보았다. 이미 여기저기서 들실장들이 인간의 쇠파이프에 머리가 터져 죽어가고 있었다. 하얀 악마는 한둘이 아니었다. 회색 가림막으로 둘러싸인 공원의 사방에서 족히 30여명 정도 되어 보이는 악마들이 무차별적인 살육을 자행하고 있었다.

이제야 깨달았다.

하얀 악마는 우리를 모두 죽일 것이다. 공원의 여기저기서 나타나, 마찬가지로 여기저기에 널려있는 들실장들을 죄다 죽일 것이다. 그리고 저 하얀 악마들을 피하려 해도, 공원은 나갈 수가 없다. 족히 성체실자의 키의 10배는 되어 보이는 회색 가림막이 서서히 생겨나, 지금은 공원 전체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 공원을 나간 녀석들은 분충이 아니었던 것이다. 차라리 회색 판이 공원을 전부 가리기 전의 며칠 동안에 서둘러 나갔어야 했다. 오히려 계속 여기 있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확실히 모조리 학살당할 테니까.

“데챠아아아아아!”

“데에에에엥 데에에에엥”

“데에에...데스데스..데헤에엑..데헤에엑..”

일단 친실장은 다른 실장들처럼 바로 뒤쪽에 있는 참나무 숲 안으로 급히 뛰어 들어갔다. 그래도 숲이라면, 나무가 울창하고 관목에 가린 자신의 골판지 안이라면 적어도 지금 여기 숲 앞의 대로보다는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친실장이 참나무 숲의 입구에 도착하자, 문득 왼쪽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체실장과 자실장 일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자실장의 소리에 친실장은 문득 자신의 자들이 떠올라 이들 일가를 잠시 지켜보기로 했다. 친실장은 참나무 숲 가장자리 지역에 있는 한 나무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

“데스데스데스...데스... 오로롱...오로롱...”

“테에....테...테츄우...?”

아마 이 성체실장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자들을 오늘 공원 밖으로 데려왔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자들을 데리고 길을 가던 중 하얀 악마를 피해 도망치려 했으나, 자들의 느린 걸음 때문에 전전긍긍하다가 하얀 악마에게 잡히고 만 듯 했다.

성체실장 하나가 3마리 자들 중 한 마리를 하얀 악마에게 들어올렸다. 아마 자들의 애교로 하얀 악마를 매로매로시키려고 하거나, 어린 자들을 보여주어 하얀 악마의 동정심을 얻어 보려는 속셈일 것이다.

성체실장의 다리는 후들거리고 있었다. 바닥의 2마리 자들은 공포에 질린 어미와 달리 천진난만하게 하얀악마를 바라보고, 제 마마의 손 안에 들린 자실장은 하얀악마를 향해 애교를 부려본다.

“데스데스데스데스! 데스데스데스!”

“테츄웅?”

그러나 하얀 악마는 일말의 자비 따위 없이 빠루를 풀스윙하여, 성체실장의 정수리를 내리찍어버렸다.

“데에에....파킨.”

“테챠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아! 테에에엥 테에에엥!”

손에 들린 자가 친실장의 얼굴 속으로 들어갈 만큼 강하게 내리친 일격에 두 모녀는 곧바로 파킨해버렸다. 순식간의 일가의 죽음을 경험한 두 자실장만이 눈앞의 비극을 보고 울부짖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귀를 찌르는 듯한 소리도 하얀 악마의 발길질 두 번 만에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친실장은 이미 자신의 골판지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고 있었다.

자들. 자들도 죽게 된다.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다.

하얀 악마들의 구제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자신이 아까 세 자실장을 데리고 나왔다 참극을 맞은 성체실장 일가를 보고 있던 순간에도 그 주위에서 열 마리가 넘는 실장석이 죽어버렸다. 얼핏 보이긴 했지만, 저 멀리서 골판지를 들어 자실장까지 털털 털어 죽이는 하얀 악마를 본 것도 같았다. 그리고 지금, 하얀 악마는 공원 대로에 나와있는 들실장을 거의 다 죽이고, 이제 그들의 본거지인 숲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문득 친실장이 뒤를 돌아봤을 때는 셋 정도의 하얀 악마가 이미 참나무 숲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 중에 하나가 참나무 숲 언저리에 있는 골판지 하나에 가까이 갔다.

“데갸아아아아아!”








그 골판지의 주인인 듯한 성체실장이 하얀 악마를 향해 위협 자세를 취했다. 이 골판지만은 건드릴 수 없다는 듯이 네 발을 꼿꼿이 땅에 붙이고 이빨을 드러내며 하얀 악마를 향해 죽일 듯이 으르렁댔다.

터엉!

“테챠아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아! 테에에엥 테에에엥”

하얀 악마는 성체실장을 무시하고 뒤에 있는 골판지를 향해 빠루를 내리친다. 골판지가 짜부라진다. 골판지 안에서 새끼 우는 소리가 들리고 찌그러진 골판지 밖으로 피가 새어나온다.

“데챠아아아아아! 데갸아아아아! 데챠아아아악!”

하얀 악마는 성체를 가볍게 차서 저 멀리 날려버리고 찌그러진 골판지를 들어 털털 털어내기 시작했다. 이미 죽은 자실장의 시체조각들과 아직 살아남은 자실장, 엄지실장들이 우수수 떨어진다.

“지이-!”

“지뱃-!”

“테엣-!”

성체실장의 미래와 꿈은 순식간에 바닥의 얼룩으로 변해버렸다.

친실장은 자신의 자들이 생각났다. 저 악마들은 새끼들까지, 그 연약한 새끼들까지도 무자비하게 죽여 버렸다. 방금 실각된 성체실장의 일가처럼 하얀 악마들에 의해 곧 참나무 숲의 모든 들실장 일가도 박살날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자들, 자신의 자들만은 살려야 하지 않겠는가?

“데헤엑....데헤엑...데헤엑....”

친실장은 달렸다.

이미 참나무 숲은 단 셋의 하얀 악마로 인해 아비규환이 되어버렸다. 가장 공원 산책로와 가까운 골판지부터 차례차례 박살나기 시작했다. 자들이 우는 소리, 단말마, 친실장의 절규가 친실장의 팔랑거리는 두 귀를 세차게 때려댔다.

친실장의 골판지는 참나무 숲에서도 꽤 깊숙한 곳에 있었다. 그러나 하얀 악마들의 구제 속도는 무시무시했다. 머리를 터트리고, 골판지를 털어, 새끼까지 밟은 뒤, 이 시체들을 모조리 포대에 넣는 이들은 마치 중세 죽음의 사신이라 불렸던 흑사병처럼 무시무시하도록 빨리 참나무 숲에 사는 개체들을 재앙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친실장이 자신의 골판지에 다다랐을 때에는 벌써 저 앞까지 하얀 악마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데...데에...데에...”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치에에에엥 치에에에엥”

자신의 네 마리 자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 있었다. 친실장은 재빨리 자들에게로 가서, 자신의 자들을 모두 품안에 안아주었다.

“테에에엥 테치테치!”

“테에에엥 테치테치!..테에에엥..”

“데스데스데스...데스우....”

이제는 마마가 왔으니 괜찮다고.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마마는 천하무적. 그러니 반드시 자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친실장은 이렇게 말하며 자들을 안심시켰지만, 품안의 자들은 울음을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밖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겁을 잔뜩 먹고 있었다. 자들을 대표해서 골판지 밖을 빼꼼 내다봤던 장녀는 자신이 본 잔인한 광경을 친실장에게 말하며 패닉에 걸린 듯이 몸을 덜덜덜 떨었다.

자들을 꼭 껴안으며 달래고 있었지만, 친실장 역시 두려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제 자신의 골판지로 하얀 악마가 곧 덮칠 것이다. 점점 하얀 악마가 내리치는 쇠파이프의 뭉툭한 소리가 이 곳 골판지 집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친실장이 여기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신과 자들을 살릴 방도가 없었다.

“테에에엥 히끅..”

“테에에엥”

“데스우... 보에보에~...데스데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다. 4마리나 되는 자를 모두 잃는 것은 싫었다. 반드시 자들을 살려내고 싶었다. 설령 친실장 자신이 죽는다 해도.

친실장은 자들을 어르면서 몸을 일으켰다. 골판지 상자의 덮개를 살짝 위로 젖혀 몸을 내밀었다.

들실장의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아까보다 오히려 들실장들의 비명 소리가 잦아든 것만 같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친실장의 골판지 주변에 있는 다른 골판지들은 이미 대게 박살나있었다. 남아 있는 골판지 역시 하얀 악마의 무자비한 빠루질에 일망타진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

“데....데스우...”

아차 싶었다.

하얀 악마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고글을 껴서 눈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친실장은 본능적으로 싸늘한 눈길을 느꼈다.

“데챠아아아아!”

공포 섞인 소리를 지르며 부리나케 골판지 안으로 들어왔다.

“테에에에?”

“테츄우?”

“테치?”

“치프프픗.”

이제 울음을 뚝 그친 자들은 친실장이 왜 저리 소리를 질러대는 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제 마마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에 일그러진 친실장의 얼굴이 웃기다는 듯이 비웃는 자도 있었다.

친실장은 어찌 해야 할 줄을 몰랐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곧 하얀 악마가 올 것이다. 저렇게 천진난만한 자들을 모조리 찢어발길 것이다. 이럴 때 평소에 공원에 푸드를 뿌리던 상냥한 인간들이라도 왔으면 좋았으련만, 아니 자신을 무신경하게 바라보던 인간들이라도 왔다면 좋았을 것을.

그 인간들이 지금 하얀 악마가 되어 자신의 일가를 몰살하려 한다는 것도 모른 채 친실장은 그저 다시 한 번 자들을 꼭 껴안았다. 뭔가 기적이 일어나기를, 상냥한 인간님들이 와서 저 악마들을 물리쳐 주기를, 아니면 새로운 주인님이 나타나서 하얀 악마들을 내쫓아주기를 빌었다. 아니면 하얀 악마가 자신을 본 게 아니기를, 자신이 헛것을 봤던 거였기를 빌었....

“데에에에에에?”

갑자기 골판지 하우스에 이질감이 들었다.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바닥이 흐물흐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골판지 하우스가 뒤집혔다.

“데챠아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아!”

“테쟈아아아아아!”

구제업자는 이미 친실장의 골판지를 가볍게 들고, 이를 180도 뒤집어서 털털 털어내고 있었다. 한번의 손짓으로 친실장 일가는 바닥에 힘없이 흩뿌려졌다.

“지벳!”

“데챠아아아아! 데에에엥 데에에엥”

“테에에엥 테에에엥”

자들을 꼭 안고 있던 친실장은 다행이 등부터 떨어졌기 때문에 품안의 자 2마리는 무사할 수 있었다.

다만 공중에 떠버린 사이 놓쳐버린 차녀와 사녀는 바닥에 고꾸라져 처박혔다. 맨 바닥에 떨어진 사녀는 이미 바닥의 얼룩이 되어버렸고, 차녀는 피거품을 입에서 쏟으며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었다.

그리고 하얀 악마의 억센 발은 무자비하게 차녀를 짓눌러 터트렸다.

“데에....데에....데켁...데케엑...”

자들이 눈 깜빡할 사이에 악마에게 둘이나 죽었다. 품 안에서 자신의 옷자락에 얼굴을 파묻으며 울고 있는 이 두 마리는 살려야 한다. 어서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등에 큰 충격을 받은 친실장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허리가 부러진 것 같았다. 입에서 피가 나왔고, 가슴팍 아래로는 도저히 힘이 들어가지가 않았다. 자들의 감각 역시 가슴 위쪽으로만 느껴졌다. 친실장은 울고 있는 장녀와 삼녀를 각각 오른팔과 왼팔로 쓰다듬어주었다.

도저히 자신은 가망이 없었다.

하얀 악마는 아무 말 없이 이미 터져버린 사녀를 확인사살 하듯이 꾹 짓누르고 있었다.

문득 친실장은 자신의 오른편에 구멍 하나가 있는 것을 보았다.

집 옆의 운치 구덩이였다. 운치 구덩이 안에는 5마리의 구더기가 있었다.

그리고 운치 구덩이는 그다지 깊지 않았다.

“테에에엥...테에에? 테에에에?”

친실장은 장녀의 뒷머리를 잡고 오른손을 들어 운치구덩이 쪽으로 가져대 댔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최대한 오른손을 흔들어 장녀를 구덩이 안으로 떨어뜨렸다.

“테챠아아아아!”

“레삐아아앗!”

“레뺘앗!”

“레훼에에엥 레훼에에엥”

“프니후~ 프니후~”

갑자기 운치구덩이 안에 던져진 장녀는 이해할 수 없는 친실장의 행동과 바닥에 떨어진 아픔, 코를 찌르는 운치냄새 때문에 비명을 질렀다.

떨어지면서 구더기 몇 마리를 깔고 앉았는지, 위석이 파킨하는 소리가 두세 번 들렸다.

장녀가 뭐라고 항의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친실장은 서둘러 왼손을 움직이려 했다. 삼녀도 운치구덩이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에서 삼녀를 떼어내려 했지만, 아까 장녀를 집어넣느라 힘을 다 써버렸는지 왼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장녀는 자신의 뒷머리를 집어들고 때어내려 하는 친실장의 손길이 싫다는 듯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친실장의 옷을 필사적으로 잡고 놓으려 하지 않았다.

골판지를 휙 내던진 하얀 악마가 이미 자신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데에....데에....! 데갸아아아악!”

“테챠아아앗! 테에에엥 테에에엥”

하얀 악마가 안전화 끝으로 친실장을 툭 걷어찼다. 가볍게 1m 가량 날아가 땅에 처박히면서도 친실장은 삼녀를 놓지 않았다. 그러나 삼녀 역시 땅에 떨어지면서 부상을 입었는지, 비명을 질러대며 친실장의 옷을 잡고 울고 있었다.

이윽고 발길질이 시작되었다. 친실장의 웅크린 몸을 향해 하얀 악마의 검은색 안전화가 연신 날아들었다. 차라리 쇠파이프로 쳐서 단숨에 죽이면 좋으련만, 하얀 악마는 마치 장난치듯이 힘 조절을 하며 친실장을 때려댔다.

친실장은 몸을 구부린 채 삼녀를 보호하면서 하얀 악마의 폭력을 온 몸으로 받아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친실장의 양 다리가 부러지고 짓눌러 터져감에도, 이미 끊어져버린 척추신경 덕에 하반신은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잠시 하얀 악마의 발길질이 멈췄다. 친실장은 자신을 우두커니 내려다보고 있는 하얀 악마의 검은 고글을 바라보았다.

이제 삼녀를 살리려면 단 하나밖에 없었다.

아까 비웃었던 성체실장처럼, 하얀 악마의 동정심에 호소하는 것. 두 다리가 바스러져서 도망칠 수도 없다. 허리 아래로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몸을 움직일 수도 없다. 친실장은 최후의 힘을 짜내서 삼녀를 양 손으로 잡았다. 그리고 아주 조금, 누워있는 자신의 얼굴 높이만큼 삼녀를 들어올렸다.

“데...데스우...”

“테에엥...테에에엥”

울고있는 자신의 삼녀를 보라고. 이렇게 작고 연약한 존재를 죽일 셈이냐고. 너도 살아있는 생명체라면, 마음이라는 게 있다면 우리가 불쌍하지 않느냐고. 그러니 제발 우리를 살려달라고. 우리는 그저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었을 뿐이라고.

친실장은 삼녀를 들이밀며 간절히 마음 속으로 호소했다. 이미 입에서는 신음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삼녀는 친실장의 이런 간절함을 아는 지 모르는 지 그저 울고만 있었다.

“데갹!”

퍼억.

친실장과 삼녀의 머리를 꿰뚫은 쇠파이프가 흙바닥에 닿는 소리였다. 하얀 악마는 우두커니 서있던 게 아니라 쇠파이프를 높이 치켜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짧은 단말마와 거의 동시에 쇠파이프는 친실장의 연한 살을 두부처럼 뭉개져 버렸다.

“시마이 하자.”

“예.”

공교롭게도 친실장 일가가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들실장 일가였다. 참나무 숲 구획 구제를 맡은 구제업자 3명은 숲 일대를 한 번 스윽 둘러보고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게 ‘연간 정기 A공원 들실장 구제’는 끝이 났다.




그러나 장녀는 살아 있었다.

운치구덩이에 영문도 모른 채 버려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었는지 하얀 악마 따위는 잠시 잊고 친실장을 향해 마구 소리를 지르며 불평하던 장녀는 문득 친실장의 단말마를 들었다.

“테....테에에...테에에...”

그제야 생각이 났다. 하얀 악마. 하얀 악마가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공원의 들실장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금 난 친실장의 울음소리는? 자매들은?

그리고 하얀 악마는?

어느새 공원의 비명소리가 잦아들었다. 하얀 악마의 말 소리도, 쇠파이프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참나무 숲은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해졌다.

장녀는 운치구덩이를 나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땅바닥이 닿기는 했지만, 장녀의 키보다 조금 높은 운치구덩이를 빠져나가기는 무리였다.

“테치이! 테치테치! 테챠아아아!”

“레후 레후~”

“프니후~”

점프를 해봤지만 무리였다. 문득 장녀의 발밑에 있는 구더기가 자신의 시선에 들어왔다.

“레삐아아아아아아!”

산 구더기들뿐만 아니라 죽은 구더기들의 시체들도 한 데 모아서 자신이 발을 디딜 수 있는 둔덕을 만들었다. 이 둔덕을 발판삼아 장녀는 그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손을 뻗었다. 운치 구덩이 밖에 있는, 땅에 파묻힌 돌멩이의 튀어나온 끝부분이 손에 집혔다. 이를 잡고 장녀는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운치 구덩이 밖으로 끌어올렸다.

“테헤에엣... 테헤에엣... 테챠아아아!”

서너 번의 시도 끝에 장녀는 운치 구덩이를 탈출하는 데에 성공했다. 구덩이 안에 있을 때에는 운치 냄새 때문에 몰랐지만, 밖으로 나와 보니 알 수 있었다.

참나무 숲에 부는 바람에 실장취와 피냄새가 진득하게 섞여있음을.

그리고 그 냄새에 오묘하게 자신의 가족의 냄새도 섞여 있었다.

장녀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는 그리운 냄새를 쫓아갔다. 불과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냄새의 진원지를 찾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차녀와 사녀의 냄새가 나는 핏자국과 살점들이 땅바닥에 퍼져 있었다.

“테에....”

이건 틀림없이 차녀와 사녀의 냄새였다. 그렇다면 마마는? 와타시의 마마는?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나는 친실장의 냄새를 향해 장녀는 달려갔다. 그럴 리가 없다. 마마는 천하무적. 제 아무리 하얀 악마가 무섭다고 해도, 마마가 자매들처럼 피를 이렇게 많이 흘렸을 리가 없다. 사라졌을 리가 없다.

그러나 냄새가 나는 곳을 찾아 도착한 곳에는 차녀와 사녀보다 훨씬 큰 핏자국과 살점 파편들이 흩어져 있었다. 이 살점... 이 냄새... 틀림없이 친실장이였다. 그리고 그 안에 미세하게 삼녀의 냄새도 섞여 있었다.

그렇다면.. 이 피와 살점들을 남기고 대체 자신의 일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아무리 자실장이라 해도 장녀는 이 질문의 답 정도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하얀 악마.

그들이 자신의 가족을 죽였다. 왜냐하면 아까 밖을 보았을 때, 다른 들실장들 역시 하얀 악마에 의해 몸이 찢기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자신의 가족을 데려갔다. 왜냐하면 하얀 악마가 들실장들을 쇠파이프로 내리쳐 죽인 뒤, 그 시체를 파란색 자루에 담는 것을 아까 봤으니까.

“테....테에... 테에에....”

참나무 숲 여기저기에 자신의 친실장, 자매들이 남긴 형태와 같은 모양의 핏자국, 살점들이 즐비했다.

예전에는 골판지 밖을 나서면 저 멀리 자신의 자매들처럼 골판지 밖에서 뛰어노는 자실장들이 많았었는데.. 그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붉은 핏자국만 남긴 채로 없어져버렸다.

참나무 숲에 더 이상 들실장은 없었다. 장녀 자신만 빼고.

“테에....테챠아아아아아!”

장녀의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단 하나였다.

왜?

왜 하얀 악마는 자신의 마마를, 자매들을 데려간 것일까? 그것도 잔인하게 쇠파이프로 으깨서 피를 그렇게 많이 쏟게 만든 후에.

왜 하얀 악마는 숲의 들실장들을 모조리 학살한 걸까? 물론 다른 분충들은 위험하다고 늘 마마가 말하긴 했지만, 그래도 숲의 들실장들은 그저 행복하게 살고자 했을 뿐이었다. 그들이, 아니 우리들이 그렇게 뭔가 큰 잘못을 했었나?

장녀는 두 눈에서 눈물을 흘렸다.

성체가 되어서 자도 많이 낳고 마마와 자매들과 함께 늘 즐겁게 살았으면 한 것뿐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모조리 죽어버렸다. 자신의 꿈은 무참히 짓밟혔다. 일가가 모조리 죽어버렸고, 자신 혼자 숲 속의 외톨이 고아가 되어버렸으니.

“테에에에엥...테끅...테츄우우욱...테치이이이익...”

문득 장녀는 눈물을 멈췄다. 그리고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테챠아아아악! 테챠! 테치테치 테챠아아아!”

어쨌든 장녀는 살아남았다. 친실장이 운치구덩이로 숨겨준 덕분에, 재앙의 낫을 피할 수 있었다. 하얀 악마의 마수는 장녀를 빗겨갔다.

친실장 덕분에.

“테챠아아아아! 테챠아아아아!”

장녀는 허공을 향해 마구 팔을 휘둘렀다. 마마는 자신이 살아남길 원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자신을 숨겼다. 안타깝게도 마마와 다른 자매들은 죽었지만, 자신은 간신히 살아남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 자신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테그르르르르...테에에에에엑...”

장녀는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두 눈에서 적록의 눈물을 흘려댔지만, 이는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악에 받친 눈물이었다.

아무 죄 없이 마마와 자매는 죽었다. 나쁜 것은 하얀 악마다. 모두를 아무 이유 없이 죽여댔기 때문이다. 친실장은 끝까지 나쁜 놈들의 손아귀에서 자신을 살리려 했고, 장녀 자신은 결국 살아남았다.

너희들의 뜻대로 될 성 싶으냐.

장녀는 악을 쓰며 허공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쁜 하얀 악마 놈들의 뜻대로 내가 죽을 성 싶으냐. 반드시 살아남겠다. 숲 여기저기에 떨어진 동족의 살점을 먹어서라도, 운치구덩이 안에 있는 구더기들의 생살을 씹어서라도 반드시 살아남겠다.

장녀는 다짐했다.

절대로 하얀 악마의 뜻대로 죽지 않겠다고.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반드시 성체가 되고, 자를 많이많이 낳겠다고. 그래서 숲을 자신의 자들로 뒤덮겠다고. 하얀 악마들이 원했던 것처럼, 숲에서 들실장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게 할 것이라고.

장녀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압도적으로 강한 하얀 악마에게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테츄웅...테츙...테치...테치...”

어느새 하늘이 걷혀 있었다. 숲의 나무 사이사이로 따사로운 햇빛이 서서히 들어왔다.

장녀는 저 멀리 내팽겨진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부터는 가족도 없이 외로이 혼자 살아가야 한다. 친실장에게 얼핏 들은 ‘겨울’이라는 혹독하게 추운 계절도 곧 올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다짐했다. 자신은 살아갈 것이다. 장녀 자신은 친실장의 그 마음을 배반하지 않고 끝끝내 살아남아줄 것이다 보존식도 있다. 다른 들실장들이 남긴 물건들도 여기저기 널려있다. 그러니 최대한 머리를 짜내어 열심히 살아줄 것이다. 하얀 악마의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조그마한 자실장 하나였지만, 인간은 잡초의 씨를 남기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 씨앗은 지금 독기어린 싹을 틔우려 하고 있었다.

아무리 인간이 논밭이나 화단을 관리하기 위해 잡초를 뽑아대도, 눈을 깜빡 돌리는 사이에 어느새 잡초는 다시 자라고야 만다. 분명히 뿌리채 뽑아서 쓰레기봉투에 묶어 버렸을 텐데, 요상하게도 잡초는 다시 피어난다. 심지어 작은 화초를 심은 화분에서도 잡초는 자라난다.

잡초에 눈길을 돌리는 사람은 농부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무신경함 사이에 잡초는 다시 한 번 이전의 그것이 뽑혀나간 자리에서 뿌리를 박고, 잎을 키우며, 다시 볼품없는 꽃을 피우고 씨를 흩뿌린다.

그리고 그 땅을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자손으로 가득 채워버린다. 인간이 또다시 잡초를 뽑아버릴 때까지. 하지만 인간이 한 번 잡초를 다시 뽑아대도, 잠시 한눈 판 사이에 잡초는 끈질기게도 다시 들어선다.

그렇게 악독하게, 끈질기게 잡초는 살아남는다.

뽑고 또 뽑아도 한눈을 판 사이에 또 다시 공원을 가득 채우는 저들이 마치 공원의 들실장이 그러하듯이.

구제를 마친 인간이 간과한 공원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하나 둘씩 드러내는 몇몇의 들실장들 처럼.




8개월 후인 이듬해 6월, A공원 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ㄱ시 시설관리공단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민원이 접수되었다.

<공원의 들실장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공원에 가면 들실장들이 하도 달라붙어서 통행에 지장이 되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휴식이나 운동에 지장이 되니 조속히 구제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런 썅. 작년 가을에 구제했는데 그새 또 불어난 거야? 벌레새끼들 진짜..”

“어차피 조금 있으면 장마 한 번 올 텐데 그 때 개체 수 확 줄어서 괜찮아지겠죠. 공문이나 예산도 안 떨어졌고, 매년 이런 민원 들어오는 건 똑같으니 딱히 걱정 안 해도 되지 않을까요?”

“야. 민원이 떨어졌으니깐 우리가 공문을 보내야 할 거 아니냐. 어차피 상부에서도 우리 사정 아니깐 가을에 공문 떨어뜨리겠지만, 민원 접수처리 하는 게 좆같다는 거지.”

“그건 그렇죠. 하하하.”

“근데 이제 퇴근 시간이네? 그럼 이건 내일 하지 뭐.”

같은 시각, 저녁 6시의 A공원에서는 성체실장 하나가 뉘엿뉘엿한 해를 등지고 한 손에 비닐봉지를 든 채, 참나무 숲 한 구석에 있는 자신의 골판지 하우스로 들어가고 있었다.

“마마가 온 데스.”

“테햐아아아 마마가 온 테치!”

“신나는 테치!”

“마마 오신 테스?”

5마리의 꼬물거리는 새끼들을 달래고, 바닥에 음식쓰레기를 부어주었다. 자들은 배가 고팠는지 와구와구 음식을 입에 집어넣었다.

자들의 식사를 바라보며 미소 짓던 성체는 자신도 이내 식사를 시작했다. 식사 도중에 성체실장의 자실장 하나가 문득 친실장을 바라보았다.

“마마! 와타치 마마의 옛날이야기 들으면서 맘마 먹고 싶은 테츄!”

“오녀 이모우토챠! 마마는 아까까지 와타시타치를 위해서 일하고 왔기 때문에 힘든 테스.”

“그런 테스. 장녀 오네챠 말대로 마마 더 힘들게 하지 마는 테스.”

먼저 태어난 개체들 중 살아남은 장녀와 차녀는 이제 어엿한 중실장이 되어있었다. 3마리 자실장 동생들을 자신 대신 달래주는 모습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장녀, 괜찮은 데스. 이야기 해주는 데스.”

“신나는 테챠아아!”

“테챱테챱...”

“그러면 오늘도 그 이야기를 해주는 테스우.”

“데프프픗. 장녀챠도 아직 어린 데스우. 그럼 시작하는 데스. 예전에 마마가 아직 오녀챠만큼 어렸을 때, 공원에 하얀 악마가 들이닥쳤던 데스...”

이야기를 시작한 성체실장의 두 눈에는 묘한 독기가 서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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