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나기 세트 (구녕과학)


 

이번 겨울은 시작부터 유난히 추웠다. 초가을부터 한파가 몰아닥쳐 사람들은 벌써 세 달 째 두꺼운 겨울옷을 입고 지내고 있었다. 매일 같이 최저 기온이 신기록을 세우는 것은, 출근하는 직장인들에게도, 등교하는 학생들에게도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눈까지 오는 날에는 전국적으로 꾀병 환자와 진짜 감기 환자의 수가 동시에 급증하기도 했다.

추운 겨울 날씨 때문에 사람들은 불편함을 겪었지만, 도시의 들실장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었다. 물론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는 들실장이 많은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게으른 실장석들이 식량을 비축해두지 못해 굶어죽거나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견고한 골판지 집을 만들지 못해 얼어죽는 일은 원래부터 흔하디 흔했다. 하지만 이번 겨울의 추위는 한 도시 단위의 들실장들을 전멸시킬 지도 모를 정도의 추위였다. 일찍부터 기온이 갑자기 떨어진 덕분에 잡초도 구하기 어려워지자 공원의 나뭇껍질은 금세 전부 사라져버렸다. 문제를 인식한 애호파들은 골판지와 실장 푸드를 싸들고 공원에 찾아오기 시작했으나 두 번째 한파가 들이닥치자 애호파의 발걸음도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이 때부터는 들실장들도 본능적으로 위기가 닥쳐온 것을 느꼈는지, 낙엽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주워갈 정도로 부산히 겨울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자 들실장들은 체온을 유지하는데만에도 엄청난 열량이 필요하게 되었고, 늦은 봄부터 월동 준비를 시작해온 가장 부지런한 들실장 가족이 비축해둔 식량 조차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폭설이 오고나면 꼭 골판지 집 한두 개는 무너져있었으며 탁아를 시도하기위해 자실장의 손을 붙잡고 오들오들 떨며 편의점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친실장의 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하지만 매서운 추위에 사람들은 집안에 틀어박혀 편의점조차 찾지 않았다.

공원의 들실장이 전부 얼어죽는다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을 위해 가르쳐주자면, 어느 정도는 들실장이 살아있어야 죽은 실장석의 시체가 정리될 수 있다. 자실장이 죽으면 친실장이 죽은 자식을, 친실장이 죽으면 자실장이 죽은 부모를 먹고 살아남기 때문에 공원에 실장석 시체가 흘러넘치지 않게 된다. 만약 공원에 실장석의 시체가 너무 쌓이게 되면 파리나 쥐 같은 유해 동물이 그 시체를 먹고 폭발적으로 번식해 버린다. 이런 해충이나 유해 동물들은 실장석보다 구제하기가 힘들 뿐만이 아니라, 주민들 입장에서는 그래도 어느정도는 인간을 무서워하여 공원 밖으로 나오지 않는 실장석보다 더 큰 골칫거리인 것이다.





여기서 바로 내가 등장한다. 지지난 주 지루함에 몸부림치던 나는 지역 사회에 공헌도 하고 시간도 때우고 겸사겸사 돈도 벌 수 있는 소일거리 하나를 생각해냈다. 바로 들실장용 겨울나기 세트의 제작과 판매다. 나의 작은 사업은 어찌어찌 지금까지는 큰 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

겨울나기 세트의 구성은 단순하면서도 필수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우선은 급한대로 발등에 불을 끄기 위한 비상 식량 도토리 열 알. 도토리 묵 공장을 운영하는 삼촌으로 부터 규격 외 도토리를 한 포대 얻어왔기 때문에 원가 없음. 하지만 당장에 굶어 죽을 판인 들실장들은 딱딱한 도토리라도 매우 맛있게 먹었다. 한 번은 겨울이 오기 직전에 태어난 것 같은 작은 엄지실장이 도토리를 갉아 먹으며 이게 콘페이토냐고 묻는 바람에 웃음을 터뜨린 적도 있었다.

다음은 잠 잘 때 덮을 천 조각 한 장. 이것도 헌 옷 수거함을 몰래 털어 가져온 것이라 원가 없음. 낡은 티셔츠나 걸레 같은 것을 대충 빤 다음 전공 서적 크기로 자르면 자실장도 성체실장도 쓸 수 있는 적당한 크기가 된다. 헌 옷을 재활용한 것인 만큼 두께가 조금 들쑥날쑥한 문제가 있긴 하지만, 인생에 그 정도 복불복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그래도 이것 만으로는 밤새 얼어죽지 않고 아침해를 다시 보기 힘들기 때문에 작은 비닐 봉투에 바닥에 깔 낙엽을 따로 한 줌 담아 넣는다. 공원에는 이미 환경미화원이 시익 웃고 지나갈 만큼 낙엽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낙엽은 상당히 귀한 물품이 되어버렸다. 길 건너 가로수에서 떨어진 낙엽을 주우러 갔다 자동차에 치이거나 저체온증으로 죽어버리기 일쑤였기 때문에 들실장들은 부서져 가루가 된 낙엽도 싹싹 긁어모아 먼지가 될 때 까지 쓰곤 했다. 낙엽이 든 봉투도 재활용할 수 있어 들실장들이 은근히 기뻐하는 눈치다.

방풍용 접착 테이프도 겨울나기 세트에 넣는다. 굵은 박스 테이프를 1m 쯤 다른 다음 적당한 나뭇가지에 끈적한 면이 밖을 향하게 하여 약간 비스듬한 방향으로 돌돌 감아둔다. 이렇게 하면 손이 무딘 실장석들도 쓸 수 있다. 들실장들에게 테이프로 골판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을 막는 법을 가르쳐주면 데스우데스우 거리며 기뻐한다. 개중에 똑똑한 개체는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남은 접착 테이프를 이용하여 벽에 골판지를 2중으로 덧대기도 한다. 박스 테이프도 재작년 고등학교 축제 때 벽보를 붙이고 왕창 남은 걸 가져왔던 거라 원가 없음.

여기에다 개당 200원짜리 싸구려 지우개를 반으로 잘라 넣는다. 그리고 들실장들에게 이 지우개를 맨손으로 박박 문지르라고 말해준다. 원래는 라이터를 넣으려 했는데, 비용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 집이 홀랑 타버리면 고객 만족도가 떨어질 게 분명하기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고른 게 지우개였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난방 기구가 전혀 없고 자신과 가족의 체온만으로 추위를 버텨야되는 실장석들에게 이 지우개 난로는 반쯤 기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가끔씩 친실장이 지우개를 손으로 열심히 비벼서 자실장에게 건내주는 장면을 보면 나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마지막으로는 미끼 상품격인 목도리를 넣는다. 사실은 여동생이 뜨개질을 시작할 때 한가득 사놓고 일주일 만에 질린다며 창고에 처박아둔 털실 뭉치 중 굵은 것을 20cm, 30cm 두 가지 길이로 잘라놓은 것 뿐이지만, 부드럽고 색깔도 알록달록해서 실장석들은 매우 좋아한다. 특히 어린 자실장들은 털실을 세 네 바퀴 목에 감아주면 세상이 다 자기 것인양 기뻐한다. 이 목도리 덕분에 두 세번 정도 들실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그냥 준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판 것인데, 감사의 인사를 받으니 조금 당황했었다. 이 목도리 역시 원가 없음.

이 여섯가지 물건을 전부 봉투 하나에 담은 것이 바로 겨울나기 세트. 들어가는 물건 중에 실제로 비용이 필요한 건 지우개와 봉투 두 장이 전부다. 처음 실험삼아 만든 겨울나기 세트 세 개를 집 앞 공원의 들실장들에게 그냥 나눠주고 다음 날 다시 돌아가보니 공원 안의 살아있는 들실장 거의 전부가 약간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내 앞에서 데스데스 거리며 겨울나기 세트를 찾았다. 대박을 직감한 나는 두 재료 모두 대량으로 사두었기 때문에 대충 계산해보니 겨울나기 세트 하나를 만드려면 백오십원 정도가 필요했다. 거기다 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긴 했지만, 큰 일을 위해서 그 정도는 기꺼이 투자할 수 있었다.

지금 안정된 이 겨울나기 세트의 가격은 개 당 팔백원. 거기다 현재 겨울나기 세트가 팔리는 시장은 무려 여섯개의 공원이다. 처음에는 실장석들에게는 돈이 없다고 생각해서 개당 삼백원, 아니 이백원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돈이 필요해지니 들실장들은 여기저기서 동전을 긁어모아왔다. 먹지도 못하는 것이라 가끔 자실장들의 장난감으로나 줍는 동전은 들실장들에게는 먹이나 낙엽, 수건 같은 것 보다 훨씬 구하기 쉬운 것이었다. 들실장들은 아이들이 모래사장에 흘린 백원짜리를 줍거나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벤치의 틈새 따위를 뒤져 동전을 모아왔다. 엄지 실장에게 자판기 아래를 수색하게 하는 친실장도 있었다. 처음 겨울나기 세트의 입소문이 퍼지자 하룻밤 새 공원마다 열댓마리의 친실장들이 돈을 들고왔다. 거기다 아직까지도 자식이 많은 친실장들이 찾아와서 목도리가 없는 자실장을 위해 한 세트를 더 산다던지, 준비성이 좋은 친실장이 여분의 세트를 산다던지 하여튼 이렇게 저렇게 겨울나기 세트는 하루에 스무개 정도씩 계속 팔린다. 공원에 숨겨진 동전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다.









- 닝겐상? 겨울 봉투 닝겐상? 겨울 봉투를 받으러온 데스우. 닝겐상 이 쪽을 보는 데스?

이런, 여기까지 오게 된 과정을 곱씹어보느라 발치에 들실장이 다가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친실장은 치마 폭에 담긴 반짝이는 동전 네 개를 내보였다.

- 큰 동전 하나랑 작은 동전 세개인 데스. 팔백원이란 걸 가져온 데스. 와타시, 겨울 봉투를 또 받을 수 있는 데스?

치마를 들어보이는 성체실장 옆에는 두건이 약간 튿어진 자실장 한마리가 어미의 옷자락을 잡은 채 테츗하고 재채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 어 팔백원 맞네. 자, 여기 겨울 봉투 하나.

물건을 사고판다는 개념이 아예 없는 실장석들에게 겨울나기 세트를 팔기위해서는 적지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돈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동전의 크기에 따라 몇개를 가져와야하는지 가르쳐줘야했다. 들실장이 지폐를 주울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지만, 지폐랍시고 종이 쓰레기를 들고올 것 같았기 때문에 동전만 받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리고 최대한 외우기 쉽게, 겨울나기 세트에 겨울 봉투라는 쉬운 이름 붙였다. 그래도 이름을 까먹고는 그냥 봉투를 달라, 따뜻한 뭉치를 달라고 하는 들실장들이 간간히 나왔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 다음은 내가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학습시키는 것이 문제였다. 추운 날씨 때문에 공원을 찾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무 사람이나 붙잡고 동전을 내밀었다간 돈을 뺐기고 짓밟혀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야 고객을 위한 최고의 조건을 만들 수 없으니 머리에 봉투를 뒤집어 쓰는 것으로 겨울나기 세트를 파는 사람은 나라는 것을 인지시켰다. 가끔 지나가던 사람이 내 꼴을 보고 웃음을 터뜨리거나 이상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지만, 돈이 되는 일인데 무엇을 못하겠는가.

- 테츄우우! 마마! 와타치의 목도리! 와타치의 목도리를 주는 테치!

- 사녀쨩, 먼저 닝겐상에게 인사를 하는 데스. 겨울 봉투 닝겐상이 아니었다면 와타시와 오네쨩들과 사녀쨩 모두 밤마다 추위에 떨어야했던 데스.

- 텟... 봉... 봉투 닝겐쨩 와타치에게 목도리를 줘서 고마운 테치이.

- 잘 했는 데스. 닝겐상, 다시 한 번 인사드리는 데스.

무척이나 예의 바른 친실장은 나에게 꾸벅 절을 하고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자실장의 목에 빠알간 털실을 감아주었다. 비록 실장석에게 받은 감사이긴 하지만 이럴 때면 가슴 한 켠이 뿌듯해진다. 목도리를 두른 자실장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해 폴짝폴짝 뛰기 시작했다. 보송보송한 털실을 목에 두르고 있으니 때에 절은 들실장 새끼도 제법 귀여워 보였다.

- 그래, 그래. 혹시 아직 겨울 봉투를 모르는 실장석이 있으면 꼭 가르쳐주는거다? 동전은 작은 걸로 여덟 개, 아니면 큰 거 하나에 작은 거 세 개. 알겠지?

데스데스 테치테치하고 긍정의 울음소리를 합창한 들실장 모녀는 종종걸음으로 수풀 사이로 사라졌다. 겨울나기 세트를 팔기 시작하고 열흘, 이 공원의 들실장들도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움직일 기운조차 없어 집에 죽은 듯이 웅크려있던 실장석들은 이제 간간히 산책을 나오거나 먹이를 찾아다니곤 했다. 파란색, 빨간색, 초록색 색색깔의 목도리를 두르고 눈밭 위에서 장난을 치는 자실장들과 골판지 집을 테이프로 보수하며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친실장을 본다면 누구라도 마음이 눈 녹듯이 풀릴 것이다.





흐음, 그런데 이 정도면 이 공원도 슬슬 준비가 된건가? 오늘 오전 중으로 연락을 주기로 약속한 것도 있고. 아까 친실장에겐 괜히 입 아프게 떠든게 돼버렸군. 나는 남은 네 개의 겨울나기 세트를 들고 벤치에서 일어났다. 머리에 뒤집어쓴 봉투도 벗어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 고객에게 전화를 건다.





착신음이 채 한번도 울리기 전에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드... 드디어 준비 된건가요?

전화 건너편의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웃음이 새어나올 뻔 한 것을 간신히 참고 최대한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네, 준비 됐습니다. 열아홉 가족 모두 좋은 상태입니다.

들실장들과 공원 근처의 주민과 실장석 구제 담당 부서 외에도 유난히 극심한 올해의 추위를 저주하는 집단이 있었다. 조금 의외라고 생각될 수도 있는 그 집단은 바로 들실장 학대파들이었다. 그들이 이번 겨울을 싫어하는 이유는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 네. 네, 네... 예, 그 쪽으로 입금해주시면 지금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이유라는 것이 즉슨, 들실장들이 너무 불행하여 학대할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학대파 중에서도 들실장을 학대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행복한 실장석 가족을 단숨에, 혹은 천천히 부서뜨리는 것이 자기들은 그렇게 좋다고 한다. 반 년 가까히 열심히 준비해온 월동 준비를 십수초 만에 망쳐버리고 추위가 들실장을 죽이도록 내버려 두는 취미를 가진 학대파도 있었다. 그런데 이십년만에 가장 추운 겨울이 들이닥치면서, 공원의 들실장 가족의 9할이 이미 삶을 포기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들실장 가족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 중 누군가를 죽여도, 자신이 죽음을 당해도, 몇 장 없는 수건이 물에 젖어 얼어버려도 힘 없는 울음소리로 훌쩍 훌쩍 우는 것이 고작이라, 입맛이 뚝 떨어진다고 학대파 친구가 말해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학대파 중에는 대기업 임원이라던지, 정치인이라던지, 의외로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제법 많았다. 진흙탕 같은 정치판에서, 정글 같은 회사에서 버티려면 나름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여행 같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여가는 즐기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실장석 학대는, 빠르게 처리한다면 공원 하나를 통채로 정리하는데 반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 예. 아, 지금 입금 확인 되었습니다. 그럼 메세지로 위치 보내드리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0이 여섯 개가 찍힌 은행 메세지가 휴대폰 화면에 떠올랐다. 고객이 왕이라고들 하지만 운동복 바람으로, 컴퓨터 앞에서 휴대폰을 어깨로 잡은 채 엔터키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다시 한 번 웃음이 나올 뻔 했다.

- 위치 확인 하셨나요? 네, 네. 아, 지금 바로요? 그럼 이번이 두 번째로 이용해주시는 거니 서비스 차원에서 칸막이는 제가 쳐드리겠습니다.

혹시나 해서 가져온 차단막이 헛고생이 아니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 벤치에 앉아 있느라 차가워진 손에 입김을 몇 번 불어넣고 실장석 탈출 방지용 차단막을 들어올린다. 공원의 실장석을 일제 구제할 때 쓰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공원 양 쪽에 차단막을 설치한 뒤 확인 차원에서 가볍게 흔들어본다. 이걸 넘어뜨리고 지나가려면 1m짜리 거대 실장이 와야될 것이다.

- 끄아... 그럼 저번에 이 녀석한테 얻어먹었으니, 오늘은 내가 쏠 차례네? 초밥, 초밥, 무조건 초밥이다 이 자식아. 투덜거리기만 해봐, 그 때 그 대사 그대로 돌려줄거니까.

이제 관리하는 공원이 열 일곱개에서 다섯개로 줄어버린 게 조금 쓸쓸한 기분이 들어서일까, 의미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려본다. 더 먼 곳에 있는 공원까지 가려면 차가 필요하다. 차를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 그놈의 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이긴 했지만, 친구놈처럼 학대파가 아닌 나에게는 약간 꺼림찍한 순간이다. 수익금의 10% 정도는 애호파 단체에 기부해 볼까? 물론 농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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