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전의 하루 - 실장석의 눈물




실장 인플루엔자가 전국을 강타하던 201X년. 일하던 농장이 망한 철웅은 농장주의 소개로 전라도 어딘가의 섬으로 소개를 받아 가게 되었다. 물론 철웅도 바보가 아니었기에 일단 밀린 월급의 절반과, 처음 염전에서 받는 월급에서 손실분을 더한 금액을 받기로 약조하고 떠나게 된 것이다.

올해로 70대에 접어드는 염전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매우 정정한 편이었다. 거센 해풍에 단련되어 구릿빛으로 반짝이는 피부와 그 아래 약동하는 근육은 철웅조차 따라하기 힘들 정도였다.

- 으따, 자네가 조카놈 소개로 온 사람인가?
- 예 어르신. 잘 부탁드립네다.
- 그래 그래. 요새는 노동력이 많아져서 일하는데 불편함은 없을 거시여. 자네는 그냥 관리만 해주면 되야.
- 저 그리고 월급은..
- 응? 자네 숙소는 쩌어그 콘테이너에서 자면 되는디.. 빨래는 우리집에 세탁기에서 하고.

말을 얼버무리는 노인의 모습에서 철웅은 다소의 불안감을 느꼇지만 어쩔수가 없었다. 신분 보장이 되지 않은 불법 체류자의 슬픔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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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전의 하루는 농장처럼 매우 규칙적이다. 다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섬이라서 사람 손이 매우 많이 들어가는 작업인 것이 양석장과 비교해서 다른 점이다.

우선 관리해야할 실장석이 양석장보다 훨씬 적은 편이다. 하지만 노동 강도는 양석장보다 훨씬 세다. 각 구역을 담당하는 실장석들은 별도의 우리에서 촌락을 이루어서 살고 있으며, 철웅은 실장석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어차피 섬이라서 나가지도 못할 것이기에 염전주는 실장석들을 사육하는 것에는 큰 관심이 없었고, 마을의 잔반과 어선에서 받아오는 생선 부산물들을 하루에 한번 뿌려주는 것으로 관리를 끝내곤 했다.

- 뎃스웅~ 뎃스웅~
- 우흥~ 우흥~

부지런한 실장석들이 우는 새벽. 해가 떠오르려면 한참 남았지만 철웅은 우선 저수지부터 들러서 저장량을 살펴 보았다. 산 아래턱에 위치한 저수조는 해수면에서 약 십여미터 높이에 있다. 그곳에서 저수지 담당 실장석들은 부지런히 펌프를 눌러 바다에서부터 해수를 끌어오는 것이다. 농업용의 두꺼운 5인치 호스가 커다란 말통에 연결되고, 그 말통에 다닥다닥 붙은 소형의 펌프에 실장석들이 달라붙어 열심히 눌러댄다.

각각의 말통에 적당히 해수를 부어준 철웅은 호스의 잠금장치를 풀었고, 실장석들의 펌프질에 힘입어 펌프에서는 바닷물이 쪼로록 흘러나오기 시작하였다. 커다란 말통만 열개에, 실장 펌프는 백개가 붙어있는 셈이다. 물론 실장석들의 체력은 매우 저질이기에 고작 십여번의 펌프질만 하고 나가떨어지는 것이 보통. 그래서 한 펌프에 한 가족이 달라붙어 필사적으로 펌프질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각 말통별로 생산량이 구별되어 엄격한 관리를 통해 능률을 향상시킨다.

- 데샤아앗! 와타시타치는 더 이상 힘든 일은 못하는 데스! 똥닌겐은 이런 짭조름한 물 대신에 아마아마한 물을 바치는 데샤아앗!
- 똥닝겐은 마마의 펀치 한방이면 바로 나가떨어지는 테치! 뜨거운 맛을 보기 싫으면 당장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치는 테샤아아앗!!

하지만 이런 식으로 분충들이 나타나는 것은 어쩔수가 없는 것이다. 피곤한 표정의 철웅은 역겹게 붕쯔붕쯔거리며 팔을 흔드는 분충들을 쳐다보던  것을 멈추고 천장에 걸려있던 투명한 수조를 꺼냈다. 어제 처벌 수조에 들어가게 되었던 분충 일가족은 다들 회색으로 변한 눈동자를 한채 혓바닥을 길게 내뺀채로 죽어있었다. 퉁퉁 불어터진 덩어리들을 밖으로 던져버린 철웅은 오늘의 분충들을 수조 안에 집어넣었다.

- 데프프픗? 똥노예가 드디어 와타시의 세레브함을 깨닫고 목욕을 시키는 데스? 데데뎃?
- 아마아마한 콘페이토는 어디있는 테치?

물론 철웅에 의해 순식간에 독라가 되버린 다음에 어리둥절한 채로 잠깐 있던 녀석들은 곧바로 빵콘을 해대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 데베베벳?! 와따시의 머리카락이..!! 옷이 사라져버린 데스!!
- 똥닌겐이 옷과 머리카락을 가져가 버린 테치! 당장 돌려주는 테치이이!!
- 그러고보니 고무래 미는 에미나이들이 항상 부족하네?

뷔릭뷔릭 빵콘해대는 성체실장을 다시 수조에서 꺼낸 철웅은 노란색 장바구니에 녀석을 던져두고 나머지 실장석들에게 일갈했다.

- 에미나이들이 어제 '훈육'을 받은 녀석들이 잠잠해져 깜박한 모양인데, 분충들이 나온 지구는 벌로써 오늘 급식량이 절반이라우!

- 데에에에! 닝겐사마 그건 너무 가혹한 처사인 데스웅! 와타시다치는 이번에 새로 자들을 낳아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는데 밥을 줄이면 힘이 나지 않는 데스!

시끄럽게 떠들기 시작하는 실장석들이 짜증난 철웅은 수조에 담아두었던 자실장 한마리를 쥐어 뜯었다.

- 테갸아아아아아아!!!!

최고 음량의 핸드폰 벨소리보다 더 우렁차게 울어제낀 자실장의 비명에 펌프앞에 있던 실장석 전원은 팬티에 녹색 얼룩을 지리고 말았다. 그나마 크게 빵콘하지 않은 것은 그동안 지속되어온 체벌의 효과인 것일까.

- 제대로 일을 하는지 안하는지는 전부 다 기록되고 있으니 굶기 싫다면 열심히 펌프질을 하라우! 분충들은 처분당하는 것을 명심하도록!

데이, 데이 하면서 나름대로의 노동요를 부르는지 부산스러워진 저수지를 떠난 철웅은 조금 아래에 있는 증발지를 확인했다. 한 쪽에서는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을 수문을 열고, 다른 쪽에서는 오늘 쓸 증발지의 수문을 열자 농축된 해수가 수로를 타고 아래로 흘러 내려가기 시작한다.

느긋하게 아래 증류지로 내려오며 담배 한대를 태우는 철웅이에게 저 아래에서 대식이 아저씨가 손을 흔들고 있다.

- 어이, 철웅 총각 우에는 다 하고 내려온당가?
- 녹돼지 관리가 뭐가 어렵슴메? 여기 일꾼으로 쓸 독라들임돠. 펌프질로 단련된 놈들이니 고무래질도 잘 함둥.
- 참말로 고마운 것이여.

마흔이 훌쩍 넘은 대식이 아저씨는 어디가 좀 모자란 사람이지만 성격이 순하고 남에게 화를 내는 법이 없어 철웅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다. 벌써 이곳 염전에서 이십년이 넘게 있었다는 그는 저녁이 되면 철웅을 졸라 전국 곳곳을 떠돌아다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달라고 조르곤 했다.

가끔 대식이 아저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때도 있었는데, 주로 예전에 이 섬에서 같이 있던 동료들의 이야기였다. 자기가 제일 막내 일꾼이었을 시절에는 이 섬이 지금처럼 쇠퇴하지 않아서 일꾼들도 대여섯명이 더 있고, 마을에는 다방도 너댓곳이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다들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모르지만, 그때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재미는 있었다고 과거를 회상하던 대식이 아저씨는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월급은 항상 주인집에서 맡아 두지만 그래도 한달에 한번 정도는 다방에 가서 삼만원짜리 커피를 마시는 재미도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평균 연령이 70대인 이 마을에서 유일하게 영업하는 다방은 한 곳밖에 없는 형편이다. 어차피 받는 돈은 모두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는 철웅에게 지금은 한잔에 오만원이나 하는 커-피를 사마실 여유는 없다.

그나마 월급은 먼 친척의 통장으로 받는 철웅과 달리 대식이 아저씨는 통장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인데다가 지금껏 얼마를 벌었는지도 기억 못한다. 다만 한달에 한번, 동네 다방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사는 모양이다.

"괴로운 일도 심든 일도 다 한때의 시련이여. 참고 기달리면 행복한 날이 올거시여."

대식이 아저씨가 항상 하는 말은 묘하게 실장석들이 항상 지껄이는 말과 비슷하다고 느낀 철웅이었지만, 잠자코 대식이 아저씨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수로 청소를 하며 염전의 제일 아랫쪽까지 내려왔다.

- 뎃챱, 뎃챱! 오마에! 이 푸드는 와타시의 것인 데스!
- 분수에 어울리지 않게 많이 먹는 분충은 죽는 데샤아앗!

담배를 다 피운 두명은 결정지 한켠에 있는 원두막에서 우글거리는 독라 실장석들을 향해 작업 시작을 알리는 호루라기를 불었다.

삐이이이익!
- 어이, 거기 간나 새끼들! 일할 시간이라우!
- 데에에.. 또 힘든 하루가 시작되는 데스..
- 살아 있다면 즐거운 날도 반드시 오는 데스웅..

꾸물거리며 성체 실장석들이 각자의 장비와 복장을 점검하는 동안 한켠에서는 자실장과 엄지들이 선별작업을 하기 위해 부산스럽게 오가고 있다.

- 마마! 와타시다치들도 열심히 일을 해서 상으로 콘페이토를 먹는 테치! 엄지 이모토우챠들도 부지런히 일해야 하는 테치!
- 레에에.. 장녀 오네챠 와따시 손이 이야이야해서 오늘 일은 하기 싫은 레치!
- 그런 말 하면 안되는 테치! 일 안하는 엄지 이모토우는 필요없는 분충인 테치!
- 레벳! 엄지는 분충이 아닌 레치! 손이 이야이야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레치!

고무래질을 하러 나간 성체들의 자들은 이제부터 계속 결정지 한켠에 모아둔 소금에서 발견되는 이물질들을 주워내는 작업을 할 것이다. 매일같이 뜨거운 햇살에 달궈진 장판은 고무래질과 기타 마찰등으로 인해서 환경 호르몬과 갈라진 장판 쪼가리들이 벗겨져 나온다. 환경 호르몬이야 눈에 보이지 않으니 모르지만, 검게 변색된 장판 쪼가리가 음식에서 나온다면 소비자들에게 좋은 소리를 못듣기 때문에 잉여 노동력인 새끼 실장석들을 활용해서 선별작업을 하게 되었다.

물론 고농도의 염분에 노출된 자실장과 엄지들의 피부는 삼투압 현상으로 쪼글쪼글하다. 하지만 양 옆구리에 차고있는 바구니가 소금에서 골라낸 이물질로 가득 차있지 않다면 그날은 배급을 받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수백마리의 자실장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장판 조각을 찾으려고 뜨거운 소금 더미 위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되는 것이다.

한편 희뿌연 해무를 헤치며 실장석 용으로 자그맣게 제작된 장화와 모자를 신고 고무래를 껴안은 채로 줄줄이 작업지로 걸어들어가는 실장석들의 표정은 이미 혼이 빠져나가있다. 아침부터 벌써 뜨거운 바람이 훅훅 불어나는 것이 오늘도 작업 중에 꽤나 많이 죽어나갈 듯 하다. 하지만 그렇게 죽는 것이 철웅에게 찢겨서 고농축 소금물 안에서 고통스럽게 죽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실장석들은 체념한채로 노동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다.

- 오늘은 뜨거운 동그라미가 한층 더 뜨거운 데스.
- 함부로 잡담 하지 않는 데스우. 잘못했다가는 독라 노예가 되서 더욱 힘든 작업에 투입되는 데스우.

결정지에서 고무래질을 하는 것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극한 작업인데, 하물며 실장석들에게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이 빡세다. 마치 뜨겁게 달궈진 작열지옥을 대걸레질로 청소하는 기분일 것이다.

물론 매일같이 그런 강도높은 노동을 했다가는 실장석이고 사람이고 다들 열사병으로 쓰러져서 시체를 치울 판이기에 이 염전에서는 해가 뜨기 한시간 전부터 오전까지 일을 한뒤 열기가 좀 수그러든 오후부터 해질때까지 다시 작업을 하곤 한다. 다만 잘못을 저지른 분충들은 독라형에 처해진 채로 휴식시간 따위는 없이 일을 시키기 때문에 대개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염전 한복판에서 말라 죽거나 파킨사를 해버린다.

- 뎃스! 뎃스!
- 데스웅!

끝도 없이 평평하게 펼쳐진 장판 위로 소금 결정이 얇게 깔려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발목정도 밖에 안되는 깊이의 소금물 이지만 실장석에게 있어서는 하반신이 푹 잠길 정도라서 움직이는데 더욱 힘이 든다. 조장 역할을 하는 큰 덩치의 실장석의 구령에 따라 힘껏 앞으로 전진하는 실장석은 삐뚤빼뚤하지만 나름 대열을 갖춰서 소금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철웅은 다음 작업지로 가기 전에 조장 실장석에게 매번 하는 지시 사항을 말해 둔다.

- 해가 머리위로 뜨기 전까지 여기 안의 소금을 한쪽으로 다 모아 놓아야 한다우. 못했을 때에는 일괄적으로 십분지일의 실장석을 독라로 만들어 버리겠슴둥!
- 알겠는 데스우! 반드시 해내는 데스우!

결의에 찬 조장 실장석을 남겨두고 철웅은 다음 결정지로 가서 실장석들을 풀어 놓는다. 오늘 할당량을 마치기 위해서는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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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염전은 이미 온도가 45도까지 치솟아 올랐다. 사람도 오래 있다가는 쓰러질 지경이지만 실장석들은 쉼 없이 움직여야만 한다. 그래도 계속 일만 했다가는 실장석들이 떼죽음을 할 수도 있기에 철웅은 호루라기를 길게 불었다.

한시간에 오분씩 주어지는 휴식 시간동안 실장석들은 재빨리 옆의 수로로 가서 비닐 하의를 벗고 안에 차있는 땀을 빼내고 따가운 소금물으로나마 세척한 뒤에 다시 입는다. 다른 한편에서는 철웅이 놓아두고 간 물통에서 물을 핥아 마시는 실장석들로 북새통이다.

- 데데뎃? 거기 있는 것은 삼녀와 사녀가 아닌 데스우?
- 마마! 마마!

건너편의 결정지에서 선별 작업을 하던 자실장 자매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친실장의 목소리에 무심코 빵콘을 할 뻔했다. 다행히 초실장적인 의지로 빵콘은 막아낸 자매는 허둥대며 친실장을 찾기 위해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 와타시의 귀여운 자들이 이렇게 고생하는 걸 보면 마마의 가슴이 찢어지는 데스우.. 오로롱..
- 괜찮은테치! 와타시다치들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 테치!

힘든 노역 시간이지만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 일가는 오로롱 거리며 서로 붙어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웠다. 힘든 일도 가족과 함께라면 괜찮다면서..

그렇게 짧은 휴식시간이 끝나고 실장석 일가는 다시금 서로의 일터로 돌아간다. 온몸이 천근만근이지만 어쨋든 조장에게 찍히지 않으려면 작업을 해야 한다.

- 거기 오마에! 오마에게 맡은 구역이 훨씬 뒤쳐지는 데스! 빨리 짜가운 콘페이토를 앞으로 밀어내는 데스!
- 데에엥.. 닝겐상이 나눠준 속이 비치는 옷에 끈적끈적이 차서 움직이기가 힘이 든 데스.. 오로롱..

실장석이 풍기는 냄새와 오물 등등의 위생 문제때문에 작업에 투입되는 실장석은 비닐로 된 하의를 착용시킨다. 문제는 뜨거운 날씨에 일하는 덕분에 땀도 매우 많이 난다는 사실.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발목 언저리까지 적록의 땀국물이 가득 차 있는데 지적당한 실장석 혼자만 총배설구까지 땀이 가득 차있다.

- 오마에.. 개인 정비 시간에 뭘한 데스우! 분충인데스?
- 데뎃.. 분충 아닌 데스.. 잠깐만 정리하고 올.. 데뵥!

조장이 내리친 고무래에 커다란 두부를 제대로 얻어맞은 친실장은 자신도 모르게 총배설구에 힘이 풀려 빵콘해버리고 만다. 주변의 실장석들은 자신이 아닌 것에 안도하며 데프프픗, 거리면서 비웃기 바쁘다.

- 저 분충은 정말 게으른 데스우. 세레브한 우리들과 달리 배우지 못한 분충이라는 걸 숨길수 없는 데스.
- 데프프픗, 저런 실장석에게서 태어난 자들도 불쌍한 데스야. 나같으면 당장 운치를 싸면서 큰 물에 뛰어내려 이승을 떠나버리는 데스.

허둥지둥 수로에 기어들어간 친실장은 비닐 하의를 풀자 밀려나오는 악취에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급히 몸을 씻었다. 아마 다음번에 한번 더 지적당한다면 분충이라는 낙인이 찍힌채로 독라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독라의 운명은 친실장이 가장 바라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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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로롱, 오로롱.. 와타시다치들도 쉬고 싶은 데스.. 이 닝겐상은 정말 악마같은 데스우..
- 거기 반동분자 새끼들 뭐라고 떠드네? 날래날래 일 하라우!

손에 들고있던 긴 고무래로 철웅은 구시렁대고 있는 독라 바로 옆을 후려 쳤다. 내일 작업 예정인 결정지에서는 한창 피어오른 소금꽃을 제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소금 결정은 물 속뿐만 아니라 수면에서 마치 얼음처럼 맺히는데, 이러한 결정체는 보기에는 예쁘지만 햇빛을 차단해서 소금 결정이 골고루 자라지 못하게 막아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결정지를 헤집어서 이런 소금꽃을 없애야 하는 것이다. 물론 철웅은 독라 노예들을 결정지마다 몇 마리씩 풀어놓고 하루종일 그 안을 헤집으라고 명령해 두었다.

- 데에엑..데에엑.. 이 옷은 너무 더운 데스우. 왜 제대로 된 옷을 주지 않고 투명해서 아무것도 안입은 것처럼 보이는 옷을 준 데스? 똥닝겐의 취미는 너무 저질인 데스.
- 고조 아새끼래 아주 불평 불만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 참 안좋구만!

여기서도 철웅은 린갈 따위는 착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장석들이 무슨 소리를 하던지 알아들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이미 양석장에서 닮고 닮은 경험이 있는 숙련 노동자. 독라로 되어있는 실장석이 뭐라고 씨부리는지는 대충 이해가 가는 것이다.

딱!
- 데뵤옥!

청명한 딱밤소리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수면 위로 퍼져나갔다. 길이가 삼미터는 훌쩍 넘는 고무래에 머리를 얻어맞은 독라 실장석은 그만 정신을 잃어버리고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 에에이! 저 간나새끼가 국물을 염전에 흘려?!

강렬한 통증으로 적록의 피눈물을 줄줄 흘리던 실장석이 물속에 가라앉자 주변으로 확 퍼져나가는 색채를 보며 철웅은 혀를 찼다. 그리고 저 더러운 국물이 주변으로 더 퍼져나가기 전에 고무래 자루 끝에 달려있는 갈색의 바가지로 얼른 독라와 그 주변의 염수를 한번에 퍼올렸다.

능숙한 솜씨로 독라 실장석의 장비를 벗겨낸 철웅은 알몸이 된 녀석을 움켜잡고 근처의 결정지로 발걸음을 옮겼다.

- 닝겐 사마가 오는 데스!
- 게을러 빠진 분충들 때문에 와타시까지 같이 혼나게 생긴 데스! 빨리빨리 움직이는 데스!

허둥지둥 작업을 하는 손놀림이 빨라진 실장석들을 바라보며 철웅은 슥- 하고 그 모습을 훑어보았다.

- 다들 들으라우! 이 반동분자는 주어진 과업을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아주 죄질이 불량한 놈이라우. 그래서 너희들에게 경고의 차원에서 이놈을 처리하기로 했음메.

축 늘어진 독라 실장석을 바라보던 실장석들은 일제히 고함을 질렀다.

- 분충에겐 죽음뿐인 데스!
- 팔벌려 형에 처하는 데스우!!

와글와글 떠들어대는 실장석들의 소리를 들으며 철웅은 옆에 있던 손수레에서 십자가와 못, 그리고 망치를 꺼내들었다. 2000년 이전에도 쓰였던 매우 고전적인 처형 방식. 바로 십자가 형인 것이다.

이미 수로 주변에는 십자가 형에 처해진 독라들이 수십, 수백구나 매달려 있다. 고온의 염전에서는 증발하는 소금기에 시신이 자동적으로 방부처리가 되어 큰 비가 오기 전까지는 바짝 말라버린채로 계속 매달려 있게 될 것이다.

- 데갸아악! 데갸아악!

팔다리에 못질이 가해지는 아픔으로 정신을 차린 독라는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알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 닝겐 사마!! 닷씨는, 닷씨는 이러지 않는 데스! 불평 같은 것도 안하고 얌전히 일만 하는 데스! 데갸아아악!!

뜨겁게 타오르는 태양 아래에서 울부짖던 독라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때쯔음에 조그마한 파킨-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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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건방진 독라 실장석을 본보기로 처형한 철웅은 대식이 아저씨가 일하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실장과 엄지실장들이 이물질을 골라낸 천일염은 대식이 아저씨가 눈삽으로 손수레에 퍼담은 다음 창고로 가져간다. 철웅이 담당한 결정지 쪽과는 달리 이쪽은 한결 실장석들에게 있어서 편한 파트이다.

물론 이런 편한 것도 상대적인 것이지만..

- 텟챠아아! 물을 원하는 테챠아아! 바보 닝겐은 세레브한 와따시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는 테치!!

끝도 없는 일거리와 더위에 지쳐 정신을 놓아버린 자실장 하나가 뷰루룻 빵콘을 하더니 묵묵히 삽질을 하던 대식에게 투분을 해버렸다.

- 레에에에! 저 오네챠는 미친 레치! 장녀챠! 제발 저걸 말리는 레치이!
- 테에에에! 저 미친 분충은 왜 우리 조에서 나타난 테치! 큰일난 테치!

평소에는 실장석에게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해주는 대식이기에 이곳에 와서 일한지 얼마 안되는 자실장들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있었던 실장석들은 모두들 알고 있다. 저 대식이라는 닝겐은 이 흰색의 짭짤한 콘페이토에 운치가 묻는 순간 악마로 변한다는 사실을..

- 워미? 시방 이 창시를 뽑아벌 것들이 소금에 뭔 짓을 했다냐잉?

초록색의 축축한 운치가 흰색의 소금 사이로 스며들며 커다란 얼룩이 곳곳에 생겨난다. 불쾌한 악취가 뜨거운 공기와 만나며 불쾌지수를 두배로 늘리는 것과 동시에 선량하게 웃던 대식의 얼굴은 마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 테..테에..? 노예 닝겐이 화난 테치? 하지만 귀여운 와타시의 애교를 보면 마음이 풀리는 테치!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을 느낀 자실장은 얼른 아첨 포즈를 취하려고 했지만, 분노한 대식이 한발 더 빨랐다.

- 이 버러지를 보쇼잉? 귀한 소금에 지금 똥칠을 해부렀으야?

뒷 주머니에 찔러넣고 있었던 대형 컷터칼을 꺼내든 대식은 인정사정 없이 자실장의 등 뒤를 일자로 그어내렸다.

- 텟!!!!챠아아아아!!!!!

소금 녹이 벌겋게 슬어있는 컷터칼에 우지직 찢겨나간 연약한 자실장의 피부틈 사이로 대식은 칼날을 다시 집어 넣었다. 따가운 고통이 극에 달한 자실장은 색눈물을 흘리며 버둥댔지만 꽉 움켜잡은 대식의 손은 꿈적할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푹! 찍! 찌이익!

숙달된 손놀림으로 단 세번의 칼질을 통해 자실장을 피부 껍질째 탈의시켜버린 대식은 못쓰게된 소금을 삽으로 긁어모은 뒤 거기에 자실장을 꽂아 넣었다.

- 테갸아악! 구와아악!

피부가 벗겨져서 벌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자실장은 소금더미에 목만 남긴채 파묻힌 고통에 미친듯이 울부짖었다. 꼼작도 하지 못하고 비명만 올리는 자실장의 형상에 남겨진 자실장들은 필사적으로 총배설구를 여몄다.

- 오네챠.. 와타시 운치가 너무나 마려운 테치..
- 죽어도 참는 테치. 아니, 참지 못하면 죽어버리는게 나은 테치.

사시나무 떨듯이 와들와들 덜덜 떨리는 몸을 가누며 자실장과 엄지들은 다시 바닥에 점점이 뿌려져 있는 이물질들을 주워담기 시작했다. 아직 할당량을 다 채우려면 한참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 어, 성님 고조 뭐하시는 겁네까?
- 으따 철웅이 왔능가? 나가 시방 화가 너무 나서 고마 사고를 쳐붕게..
- 화가 많이 났나 봅네다?
- 으헤헤, 아녀 아녀. 우리 철웅 동상이 왔는디 화 안나재.
- 담배나 한대 피고 하는게 낫지 않겠슴메?
- 그라제잉?

잠깐 담배를 피우러 그늘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힐끗 힐끗 보며 실장석들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그들의 자그마한 두뇌를 가득 채운 것은 오직 공포, 그것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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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장석들이 모아놓은 소금 더미를 손수레에 옮겨 싣고 창고로 온 두 사람은 길다란 컨베이어 벨트 바로 옆에 수레를 세워두었다. 비스듬하게 창고 안쪽을 향해 세워진 컨베이어 벨트는 원래라면 전기로 구동되는 방식이지만, 발전기의 기름을 아끼려는 염전주의 의지 덕분에 수백마리의 실장석이 빽빽히 몰려서 소금을 옮기고 있었다.

손수레위로 폴짝 올라탄 성체 두마리가 맥주컵 크기의 플라스틱 컵에 소금을 가득 담아 벨트 위에 있는 녀석들에게 건네 주고, 또 컵은 옆에있는 실장석에게 전달되는 방식으로 수 미터를 이동해서 창고 안에 쌓이고 있었다. 창고 한켠에서는 염전주가 눈삽으로 한곳에 뭉쳐있는 소금을 슥슥 다른 곳으로 퍼날라서 평탄화를 시키고 있다.

물론 작업이 바쁜 곳이니 만큼 안전사고도 빈발하는 형편이다.

- 데갸악!

짧은 울음소리와 함께 발을 헛디딘 실장석 한마리가 옆의 동료와 함께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말았다. 본능적으로 뷰루룻하고 시원하게 빵콘을 해버린 녀석은 비닐 바지를 녹색 운치로 빵빵하게 부풀린 채로 컨베이어 벨트 아래에 펼쳐진 어망에 걸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물론 작업이 중단된 것에 화가난 염전주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간 둘은 뜨거운 콘크리트 바닥에 눌러붙은 적록의 얼룩이 되고 말았지만서도. 이 어망은 실장석의 생명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아래에 새하얗게 빛나고 있는 소금을 지키기 위해서 둘러진 어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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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가 저물자 염전 곳곳에서 일하던 실장석들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도 무사히 버텨낸 실장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먹이 배급을 받으러 지정된 장소로 움직였다.

커다란 파란색의 짬통 십수개가 들어있는 트럭 위로 올라간 철웅과 대식은 통을 들어서 땅바닥에 쏟아부었다. 이곳은 오늘 우수한 성과를 올린 결정지 고무래 지구의 구역이다. 분충이 출몰한 선별 지구는 먹이가 반으로 줄었지만, 다행히 성체실장들이 그만큼  벌충해 온지라 오늘은 굶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다.

한편 산 아래 결정지 지구에서 음식물 쓰레기가 산처럼 쌓이는 광경을 바라보던 저수조 지구의 장로 실장석은 데픙, 데픙 하고 콧김을 내쉬며 주변의 실장석들을 질책했다. 너희들이 닝겐 사마를 거스르는 바람에 오늘 식량은 형편없게 되었다. 내일도 이런 사태가 일어나면 세번 연속 분충 경고이며, 실적이 우수한 열개 조를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구제당한다는 사실을 들은 실장석들은 어두운 안색으로 제몫의 바가지에 음식물 쓰레기를 받아서 가족들에게 돌아갔다. 부디 내일은 분충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아니, 염전 안의 그 누구도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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뎃스, 뎃스, 뎃스, 뎃스, 데스!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희멀건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독라 실장 한마리가 달리고 있었다. 거주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결정지까지 한번도 안쉬고 움직인 독라는 철망이 쳐져있는 배수구를 넘어서 바닷가를 향해 정신없이 도망쳤다.

오늘 아침에 저수조에서 분충 발언을 한 이 친실장은 데리고 있던 자들이 전부 소금물에 잠겨 익사한 것도 모른채 이 지옥같은 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저 밖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도주를 선택하였다.

실장석들의 도주는 평균 일주일에 두세건씩 터지지만, 염전주를 비롯한 농장의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도망은 커녕 섬 밖으로도 나가지 못하는 실장석들이거니와 섬 안에서 실장석이 있는 곳은 염전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도주 실장석들은 파도에 휩쓸려 물고기 밥이 되거나, 섬 안에서 헤메이다 갈매기나 고양이들의 한끼 식사가 되고, 사람들에게 잡혀서 다시 염전으로 되돌아오는 것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실장석은 신기하게도 강한 악운 덕분인지, 아침에 철웅에 의해서 죽을뻔 했지만 독라가 되는 정도로 살아 남았고, 소금꽃을 깨면서도 발광 직전에 옆의 실장석이 떠들면서 십자가 형에 처해질 위기를 벗어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두운 밤인데도 불구하고 해안가에는 섬 근처에 김 양식장에서 떠내려온 부표가 있었던 것이다.

- 그런 데스, 이 흰색 둥둥을 타면 바깥으로 도망갈 수 있을 것 같은데스우.

짧은 고민 끝에 독라는 부표에 매달린 채로 바다를 향해 몸을 던진다. 그리고 기막힌 우연 덕분으로 파도가 바다로 돌아갈 때 몸을 던진 덕분에 염전의 담을 약간 벗어난 채로 다시 해안에 도착하게 되었다. 단 20초도 안되는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독라의 머릿속에는 장장 이틀간에 걸친 대장정으로 기억되었지만..

그리고 어둠이 내려앉은 아스팔트 도로에 도착하자 실장석은 이제 자신이 확실히 염전 바깥으로 나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염전 안은 회색의 거칠거칠한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었기에 검고 매끄러운 아스팔트는 새로운 지역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챈 것이다.

- 해낸 데스우! 고귀한 와타시는 악마같은 닝겐들이 있는 지옥을 벗어난 데스! 훌륭한 데스! 이제 세레브한 와타시를 알아본 닝겐 노예들에게서 콘페이토와 스시, 그리고 스테이크 삼종 세트를 헌상받는 데스!

자유를 찾았다는 기쁨으로 무릎꿇은채 양 손을 하늘로 치켜들고 데스, 데스 거리는 독라의 실장석. 하지만 그 괴이할 정도로 좋았던 운도 여기까지였다.

끼이이익!!! 쿵!

- 어머어머, 지금 우리 뭐 치지 않았어요?
- 그냥 실장석 한마리에요 피디님. 내일도 촬영하러 섬 곳곳을 돌아다녀야 하는걸요.
-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세요? 뭐든지 다 소중한 생명인데!

뒷좌석에서 카메라를 비롯한 기재를 점검하던 여성이 운전석에 앉은 남성에게 차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자유의 기쁨에 도로 한복판에서 괴상한 포즈를 취하던 독라 실장석은 자기를 아프게한 괴물이 다시 눈에서 불을 뿜으며 돌아오는 것에 운치를 또 지렸다.

몸통의 반절 이상이 차바퀴에 깔려도 되살아나곤 하는 실장석들이지만, 이녀석은 운이 나쁘게도 위석이 바퀴에 눌리는 바람에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금이 가버리고 말았다.

- 데에엑.. 데에엑.. (슬픈일을) 당해버린 데스. 닝겐 노예..! (와타시는) 노예가 아닌 데스.. 짠 맛이 나는 콘페이토..(는 이제 싫은 데스.)

촛점이 안맞는 눈으로 눈앞에 다가온 두 남녀를 바라보며 독라실장은 마지막 유언으로 몇 마디를 내뱉고 파킨- 소리와 함께 죽어버렸다. 그리고 린갈을 들여다 보던 여성은 심각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다음날 저녁. 평소와 똑같이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던 철웅과 대식이 아저씨는 문득 이상한 것을 깨닫고 벌떡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방바닥이 뜨거워지는 것 같고 무언가 타는 냄새도 흘러 들어오는 걸 느낀 두 사람은 컨테이너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려 했다. 하지만..

- 워메 이게 뭔일이당가 어째서 문이 안열리는 것이여?!
- 힘좀 내보라우! 아니 이게 왜 안열림메?!

덜컹덜컹 소리를 내지만 열리지 않던 문 옆에 있는 창가로 밖을 내다본 철웅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컨테이너를 삼킨 커다란 불꽃 사이로 얼핏 팔짱을 낀 채로 구경하는 염전 주인의 모습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 고조 뭐하는 겁네까! 어서 사람 살리라요!
- 참 인생이 거시기 해분게, 나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여. 철웅이 자네랑 대식이한테 정말로 미안허이. 전부 다 우덜 고향을 들쑤시는 쩌어그 높으신 분들이 잘못한 것이랑께.
- 주인 으르신! 왜 그러신디야! 나랑께요 나! 으르신 밑에서 이십년동안 일해온 대식이!!

새빨간 화염 사이로 염전주인이 피우고 있는 담뱃불이 보였다. 점점 뜨거워지는 방안의 온도와, 열린 창문으로 검은 연기가 뭉클뭉클 들어오기 시작하자 대식은 겁에 질려 미친듯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한편 일생 일대의 위기상황에 처한 철웅은 주변 상황을 냉정히 파악해 보기 시작했다. 컨테이너 주변에는 염전 주인을 포함해서 마을 사람들이 약 대여섯 명 정도 있는 것 같았다. 왜 자신을 죽이려는지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은 컨테이너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주변을 살펴보던 철웅의 눈에 마침 어제 달력을 걸면서 위해서 가져온 못과 장도리가 보였다. 이를 악문채로 손수건을 꺼내 장도리를 손에 칭칭 묶는 철웅. 그런 그를 바라보던 대식이 아저씨도 잠시나마 진정이 되었는지 와들와들 떨면서 입을 열었다.

- 철웅이.. 자네 그걸로 뭘 할라고 그러는가?
- 성님. 호랭이한테 물려도 정신을 차리면 산다고 했음메. 지금 밖에 뭐가 문을 막고 있어서 안열리는 것이라우. 그럴때는 문짝을 안으로 열어야지 우리 둘이 사는 거임메.

이빨을 질끈 악문 철웅은 컨테이너 문의 경첩을 장도리로 두들겨서 속에 들어있는 심을 빼낸다. 죽을 위기에 처해서였을까, 단 세번의 망치질로 제일 윗단의 경첩을 박살낸 철웅은 뒤이어 중간과 아래의 경첩도 박살냈다.

- 이거는 손에 꼭 쥐고 다가오는 애미나이들 배때지에 칼침을 놓으라우.

평소 염전을 돌아다니며 쓰던 길쭉한 금속 꼬챙이를 대식이 아저씨에게 던져준 철웅은 뜨거운 문짝에 장도리를 끼워넣고 안으로 넘어트렸다.

- 지금이요! 어서 나가라우!

뜨거운 열품에 두 사람의 머리카락은 훌렁 타버리고 온 몸에 화상을 입었지만, 대식과 철웅은 죽을 각오로 불이 널름거리는 바깥을 향해 뛰쳐 나갔다.

바닥을 미친듯이 구르며 몸에 붙은 불길을 끄려는 대식과 달리, 철웅은 팬티 한장만 걸치고 있었기에 몸에 걸친 옷가지가 불에 타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방심하고 문 바깥에 서있던 염전 주인의 무릎팍에 복수심으로 불타는 망치질을 선사해 줄 수 있었다.

딱!
- 끄아아악!!
- 에엑따!

호두를 두드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슬개골이 박살난 염전주가 땅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사이, 분노한 철웅은 동네 주민들에게도 인정사정 없이 망치질을 해댔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두개골에 동그란 구멍이 새겨진 주민들은 그때서야 허둥지둥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 기르는 개한테도 이렇게는 안할 것임메. 주인 동무? 왜 그랬소?
- 으따 철웅이 자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나가 억울해서 참말로 몬살것소! 자네 숙소에 불이 나는 바람에 나는 동네 사람들하고 함께 불을 끄러 온 것이여. 참말로 억울하당께.

딱!
- 엑윽!

나머지 무릎이 으스러지자 염전주인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사실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에 왜인지는 모르지만 이곳 섬에서 노예를 부리고 있다는 방송사 제보가 경찰에 접수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특종과 실적에 목마른 서울 경찰청에서는 당장 전담반을 편성해서 목포로 내려 보내겠다는 첩보를 들은 지방 경찰청 간부가 친분이 있는 염전주에게 이 사실을 알려준 것이다.

당장 불법 체류자인 철웅과 수십년간 노예로 부려진 대식. 두 사람이 들키는 것은 시간 문제였고 이 기회에 아예 둘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염전 주인은 컨테이너에 불을 질러 화재 보험금까지 타려는 계획을 꾸민 것이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철웅은 그저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방차와 함께 달려온 방송국 카메라를 보자 철웅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않아 염전 주인의 호주머니에서 꺼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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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식입니다. 외따로 떨어진 섬의 염전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자세한 소식 알아보겠습니다.]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는 건물들. 이곳은 어제까지만 해도 중국 동포 한명과 정신지체 2급의 장애인 한명이 갇혀 있던 염전입니다. 특히 정신 지체 2급의 장애인은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갇혀서 노예노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한편 이곳에서 불법으로 사육되던 실장석들은 모두 구제처리 되었으며..]

경찰서 한쪽에서 설렁탕에 밥을 말아서 후루룩 후루룩 먹던 철웅은 옆에서 정신없이 티비를 보고 있던 대식이 아저씨를 꾹꾹 질렀다.

- 식사 안함메?
- ......
- 나는 이제 강제 송환임메. 그동안 만나서 참 좋았수다.
- ......

묵묵히 티비만 보고 있던 대식이 아저씨. 그가 말했던 행복한 날은 언제인 것일까. 단둥항에 도착한 페리에서 철웅은 슬쩍 남쪽 하늘을 바라 보았다.

지난 몇년간 철웅이 가족의 행복을 위해 뼈빠지게 노동을 하던 곳. 그리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시 불법으로 돌아가야 할 곳. 하늘이 흐린 걸 보니 오늘은 염전일꾼들이 방수포만 쳐놓고 그나마 쉬겠다 싶은 생각이 든 철웅은 피식 웃으며 바다로 담배꽁초를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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