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돌이 댄스




친실장의 둥지는 도로 근처에 있었다.
공원은 해골 등급이 높아 안쪽 자리는 이미 다른 실장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갓 마마가 된 친실장은 도로 근처에 집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굉장히 위험한 위치임에도 불구하고, 친실장이 집을 감쪽같이 숨겨 아직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
그러나 위치가 좋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기에, 친실장은 집을 나설 때 항상 장녀에게 신신당부했다.

"절대로 절대로 집 안에만 있는 데스. 마마가 없는 동안 닌겐의 눈에 띄면 큰일나는 데스."
"알겠는 테치!"
"그리고 춤 연습도 게을리 하지 마는 데스. 집에 와서 검사하는 데스."
"알겠는 테치!"

장녀는 외동이었다. 친실장은 춘자를 다섯 마리 낳았다. 춘자를 이렇게나 많이 낳은 것은 친실장의 큰 자랑이었다.
그러나 혹독한 친실장의 댄스 교육에서 장녀를 제외한 네 마리가 탈락하고 말았다. 친실장은 크게 실망했고, 춘자임에도 불구하고 네 마리를 과감하게 솎아버렸다.
"이렇게 춤을 못 추는 자라면 가족에게 재앙을 불러 올게 분명한 데스." 라면서.

그러나 장녀는 달랐다. 춤도 잘 추었고, 마음씨고 고왔다. 장녀는 친실장의 큰 자랑이었다. 언젠가는 꼭 훌륭한 예능석으로 키워 닌겐상에게 보일 예정이었다. 장녀는 친실장의 자랑거리이자 희망이었다.

"그럼 다녀오는 데스~"

장녀는 마마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보였다. 이윽고 마마가 보이지 않게 되자, 장녀는 몰래 도로 근처로 기어나왔다. 쇠로 된 낮은 펜스 뒤에 숨어, 인간들이 지나다니는 도로와 맞은편의 가게를 구경하는 것이 장녀의 일상이다. 다행히도 인간에게 겁 없이 말을 걸거나 펜스 밖으로 나간 적도 없었고, 마마가 돌아올 때 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에 돌아와 있었기에, 친실장은 장녀가 남몰래 외출을 즐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장녀, 오늘도 얌전히 집 안에 있었던 데스? 마마가 오늘은 콘페이토를 가져온 데스요."
"콘페이토 테치~ 마마, 정말 좋아하는 테츙♡"
"그럼 오늘도 마마와 춤연습을 하는 데스~"

치마를 살짝 살짝 들어 팬티를 보여주고, 윙크와 아첨을 하는 친실장 필살의 댄스.
장녀는 어려움 없이 친실장의 춤을 따라했고, 친실장은 장녀를 크게 칭찬하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슬슬 날이 더워지고 있기에 친실장은 곧 장녀를 닌겐상에게 보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자는 희망이 있는 데스! 정말로 희망이 있는 데스!'

하지만 아직 밥을 깨끗이 먹는 연습과 빵콘하는 버릇이 제대로 고쳐지지 않았기에, 조금만 더 길러보자고 친실장은 생각했다.

"다녀오는 데스, 장녀. 얌전히 집을 보고 있는 데스."
"알겠는 테치, 마마!"

매우 더운 여름날, 친실장이 먹이를 구하러 떠나기 무섭게 장녀는 후다닥 골판지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역시 집 안은 답답하고 눅눅하다. 덥지만 바깥 공기를 쐬니 기분이 좋았다.
장녀는 바닥에 떨어진지 오래 된 듯 말라 비틀어진 꽃 한 송이를 집어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늘상 가던 도로가로 걸어간다. 인간에게 들키지 않도록 수풀과 펜스 사이에 숨는다. 그늘이 제대로 져 시원하다.

건너편 도로에는 오픈한지 얼마 안 된 휴대폰 대리점이 있었다. 가게에서 나오는 경쾌한 걸그룹의 노랫소리에 장녀의 엉덩이가 절로 씰룩거린다.

"텟츙♪ 테텟~츄~"

엉망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한참 춤을 춘다. 마마에게 배운 필살의 댄스도 연습한다.
이윽고 지친 장녀가 바닥에 앉아 바닥에 떨어진 흙을 주워먹기 시작했을 무렵, 가게 앞에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커다란 곰돌이였다. 갈색의 털과 커다란 몸을 가진, 눈이 초롱초롱한 곰돌이였다.

"커다란 곰돌씨 너무 귀여운 테츄!!"

장녀의 시선은 그대로 곰돌이에게 고정되었다. 곰돌이는 더운지 손으로 부채질을 하더니, 걸그룹의 댄스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그 경쾌한 몸놀림에 장녀는 자기도 모르게 일어나 곰돌이의 춤을 따라하기 시작한다. 아까 한바탕 춤을 추어 지친 것도 잊은 채.

"텟츙~ 텟츙~ 테헤.. 테헤.."

장녀가 지쳐 다시 바닥에 주저앉을 때 쯤, 곰돌이도 춤을 멈춘다. 그리고는 옆 테이블에 놓인 종이 한 뭉치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그러나 종이를 받아가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테에.. 왜 곰돌씨 종이 안 받는 테치.."

장녀는 펜스에 얼굴을 딱 붙이고는 뚫어져라 곰돌이를 바라본다.
장녀의 생각으로는, 아무리봐도 곰돌씨도 길러질 주인을 찾는 모양이다. 실장석들에게 보통 종이란 운치 묻은 바닥을 덮어 깨끗하게 만드는 것이지만, 장녀는 저 종이에 요구하고 싶은 것을 적어 돌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마마 손을 잡고 공원 가운데로 나들이를 갔을때 '실장 인권 협회'라는 곳에서 종이를 닌겐들에게 돌리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분명 곰돌씨가 '길러주세요' 라는 말을 종이에 하나가득 적어 돌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닌겐상들은 종이를 읽어보고도 곰돌씨를 데려가지 않았다.

"곰돌씨, 가여운 테치.. 춤을 잘 추는데 아무도 데려가주지 않는 테치.."

장녀는 누가 곰돌씨를 데려가기를 바라며 간절히 곰돌씨를 지켜보았지만, 곰돌씨가 길러지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는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가게 앞 한쪽 구석에 쭈그려 앉는 곰돌씨를 보니 장녀의 마음은 몹시 아팠다.







다음 날 도로가에 나간 장녀는 또다시 곰돌씨를 보게 되었다. 이번에도 곰돌씨는 걸그룹 노래에 맞춰 열심히 춤을 추었고, 길러달라는 종이를 돌렸다. 장녀는 곰돌씨를 보며 함께 춤을 추기도 했고, 곰돌씨의 탁아가 성공하기를 함께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끝내 곰돌씨는 길러지지 않았다.

"곰돌씨.. 저렇게 열심히인데 어째서인 테치?..."

장녀는 곰돌씨와 자신을 겹쳐보고 있었다. 춤을 추며 닌겐을 유혹하려는 곰돌씨의 모습은 자신의 미래이기도 했다. 곰돌씨가 실패하면 마치 미래의 자신도 실패할 것만 같았다.

"...하.. 하지만 다른 테치.. 분명 곰돌씨가 크고 무서워서 아무도 데려가지 않는 테치. 아타치는 작고 귀여운 테치. 밥도 조금 먹는 테치.. 아타치는 꼭 상냥한 닌겐상이 데려가주는 테치.."

그렇게 며칠간 장녀는 곰돌씨의 눈물겨운 노력을 지켜보았지만, 끝끝내 곰돌씨를 데려가는 닌겐은 없었다.
보다 못한 장녀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곰돌씨에게 다가가 자신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리라. 곰돌씨 곁에서 자신이 함께 춤을 춰 준다면, 분명 곰돌씨를 데려갈 사람이 나타나리라.

마마가 나간 틈을 타, 장녀는 또다시 도로가로 달려갔다.

한 발짝, 한 발짝.

처음으로 펜스 밖 도로에 발을 내딛었을 때, 장녀는 기뻐 소리를 지를 뻔 했다. 자신이 이렇게 용감한 줄 몰랐다.

"곰돌씨, 기다리는 테치! 아타치가 도우러 가는 테치!"




철웅은 한숨을 쉬며 전단지를 내려놓는다.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

험상궂은 외모 때문에 번번히 알바를 잘린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었던 알바, 인형탈. 인형탈로 얼굴은 물론 전신을 가릴 수 있기 때문에 그의 험상궂은 외모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춤도 좀 추는 그이기에, 고용주 측에서는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여름에 인형탈 알바를 고른 것이 잘못이었다. 이미 인형탈 안은 땀으로 끈적끈적해져 있다. 더워 죽을 것만 같다. 그것도 그렇고 불쾌하다.
하지만 외모와는 달리 건실한 청년인 철웅은, 농땡이를 피지 않기 위해 다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미 춤은 흥겨움이 아니라, 더위에 미쳐 날뛰는 광란의 댄스가 되어 있다.

'헉.. 헉.. 죽을 것 같다..'

철웅은 어지러움에 비틀거린다. 눈 앞이 흐리다.

'어.. 저건 뭐지..'

실장석이 아무도 없는 도로 맞은편에 서 있다가, 초록불이 되자 능숙하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실장석이 길을 건너다니 대단하네.'

철웅은 솔직하게 감탄하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실장석이 척척 걸어오더니, 철웅 앞에 서는 것이 아닌가.

"텟치 텟치 테치 테츄우~!"

뭐라고 지껄이기 시작한다. 철웅은 핸드폰을 매장 안 사물함에 넣고 와서 린갈을 볼 수 없다.

"저기.. 지금 나 바쁘거든? 그리고 호객행위 해야 되니까 빨리 꺼져."

철웅은 휘휘 손짓으로 실장석을 쫓으려 한다. 발로 밟거나 걷어 차면 인형탈에 체액이 묻으니 안 된다.
그러나 실장석은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철웅의 옆에 서서

"텟테레 텟테레 텟테로게~!"

꽥꽥 소리를 지르며 해괴한 몸부림을 치기 시작한다. 치마를 들추기도 하고 윙크를 하기도 하는 꼴이 굉장히 우습다.

"..하.. 대체 뭐하는 거지?"

이 자식 때문에 안 그래도 사람들이 안 받는 전단지를 더 안 받게 될 것이 아닌가.
철웅은 전단지를 하나 들어 조심스레 자실장을 감싼다. 휴지 대신이다. 자실장은 몸부림을 치며 뭐라고 소리를 지른다. 빵콘을 했는지 전단지가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철웅은 그러거나 말거나 자실장을 전단지 채로 쓰레기통 안에 휙 던져 넣는다.

"테겍!! 테갸아악!"

"조용히 좀 해."

철웅은 쓰레기통 뚜껑을 닫아버린다. 자실장은 쓰레기통 안에서 '테치!! 테챠아!!' 하고 소리를 지르지만, 쿵짝쿵짝 하는 시끄러운 음악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힘든 하루가 끝나고, 철웅은 인형탈을 벗었다. 인형탈은 땀에 흠뻑 젖어 퀴퀴한 냄새가 난다.
몸을 젖은 수건으로 닦아낸 후, 철웅은 옷을 갈아 입는다.

'그러고보니 오늘 이상한 자실장 녀석이 왔었지.'

도대체 뭐라고 했을까... 철웅은 궁금해진다.
철웅은 디스플레이 된 휴대폰들을 구경하는 척 하며, 기본으로 깔려 있는 린갈 어플을 켠다. 아마도 대화 로그가 저장되어 있겠지....

철웅은 놀라고 말았다.

「곰돌씨, 반가운 테치! 처음 뵙는 테치. 아타치는 지난 며칠 간 쭉 곰돌씨를 지켜 본 테치.」
「곰돌씨는 항상 닌겐상에게 길러지기 위해 열심히 춤을 추는데, 길러지지 않아 안타까웠던 테치. 아타치도 언젠가 닌겐상에게 길러지기 위해 춤을 연습하고 있는 테치. 아타치, 춤을 굉장히 잘 추는 테치! 아타치가 옆에서 춤을 춰서 돕는 테치. 분명 닌겐상이 곰돌씨를 길러줄 거라고 생각하는 테치.」
「텟테로게~! 텟테로츄~ 곰돌씨! 더 흔드는 테치! 아타치처럼 윙크하는 테치! 아타치처럼 빤츠 보이는 테치! 마마가 이렇게 하면 닌겐이 메로메로 된다고 한 테치!」

뭐야. 꽤나 예의바른 녀석이었잖아? 게다가, 착각을 하긴 했지만 자신을 도와주고 싶어 했다.
자실장에게 동정을 받다니 약간 자존심이 상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런 녀석이라면 왠지 자신이 길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철웅은 허겁지겁 매장 밖 쓰레기통으로 달려갔다. 쓰레기통 안에는 전단지에 싸인 자실장이 들어 있을 터이다.

그러나 쓰레기통은 깨끗이 비워져 있었다.

"점장님, 점장님! 쓰레기통 비우신 거예요?"
"그럼. 매일 같은 시간에 비우잖아."

돌아오는 점장의 대답에 후회가 물밀듯 밀려왔다. 린갈을 한 번이라도 볼걸. 이렇게 착한 자실장인데.
철웅은 안타까운 마음에 한숨을 푹 쉰다.

"..미안하다.. 내가 기르고 싶었는데..."

철웅은 린갈을 다시 한번 정독하며 험상궂은 얼굴로 눈물을 글썽인다. 마지막으로 녀석이 뭐라고 떠들었는지 다시 한 번 보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곰돌씨! 곰돌씨! 아타치에게 왜 이러는 테치!」
「곰돌씨!! 너무한 테치! 아타치는 곰돌씨를 도우려고 한 것 뿐인 테치!!」
「꺼내주는 테치! 더운 테치! 숨막히는 테치! 무서운 테치! 테에에엥!! 테에엥!!」
「오마에를 저주하는 테치!! 그러니 오마에가 닌겐에게 길러지지 않는 테치!! 분명 아름다운 아타치의 댄스를 보고 질투한 테치!! 오마에 따위는 독라나 되어버리는 테챠아아!!!」

....
내 감동 돌려 내...

철웅은 조용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럼 그렇지. 실장석이 괜히 실장석이겠는가.

철웅은 인형탈 알바도 내일은 때려치우자고 생각하며, 매장을 나선다.





한편,

"장녀! 장녀! 어디 있는 데스우?"

친실장은 당황했다.
하나뿐인, 사랑스러운, 소중한, 유일한 희망인 장녀가 사라졌다.
이제 배변 훈련도, 식사 훈련도 완벽하게 마쳐, 내일이면 부유하고 상냥한 닌겐상에게 보일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 장녀가 사라지고 말았다.

"장녀어! 장녀!! 어디 있는 데스우! 마마는 여기 있는 데스우!"

집에 꼼짝 말고 있으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친실장은 집 근처를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장녀를 찾다, 허탈감에 털썩 주저앉고는 눈물을 흘린다.
두번 다시 그런 자는 낳을 수 없을 것이다. 자는 또 낳으면 되지만, 장녀같이 착하고 귀여우며 춤도 잘 추는 자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데에엥.. 데에엥... 장녀... 오로롱.. 오로롱.."

그 때, 지나가던 닌겐이 친실장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듣고 말았다. 닌겐이 수풀을 뒤적이자, 봄 여름 내내 철저히 숨겨졌던 친실장의 집은 손쉽게 드러나고 말았다.

"아.. 뭐야? 이런 곳에 실장석 집이 있네?"
"데... 데엣??!!"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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