젓갈

 

또옥, 토굴의 천장을 타고 흐르는 물방울이 물웅덩이에 떨어지며 맑은 물소리를 냈다. 청아하고 앙증맞은 그 소리는 토굴 속에 은은하게 울려퍼지며, 조금은 어둡고, 조금은 서늘하며, 조금은 축축한 안쪽의 고요를 깨트렸다.

《보글.》
《보그륵.》

희미한 빛에 드러나는 오와 열. 수많은 항아리들이 제자리에 굳건히 서서 뱃속에서 끓어오르는 기포를 꾸욱 삼켰다. 이 온도, 이 습도에서 오랜 시간을 품고 있어야만 하는 이 녀석들은 끝이 다가온 이 시점까지도 여전히 살아남고자 하고 있다.

《보글.》

항아리 속의 소리없는 비명은 꾸욱 내몰린 채, 토굴 속은 여전히 물방울 소리만이 울려퍼진다. 항아리는 고요히 숨을 쉬며 자신이 이 아이들을 처음 품었을 때를 떠올렸다.










《치갸아아아아!》
《추녀들은 비키는테치! 세상의 보배인 아타치를 살려야 하는 테챠!》
《따가운, 따가운텟챠아아아아아!!》

계란이 가볍게 뜰 정도로 진한 짠물을 담아놓은 항아리에 수많은 독라 자실장들이 투하되었다. 말 그대로 독라, 머리카락과 옷가지를 일체 없애놓은 이 녀석들은 복부에 세로로 큰 상처를 남긴 모습으로 항아리 속에 입성했다. 상처 사이로 짠물이 침투하며, 원래라면 외부의 침입따위 상정하지 않았을 복부 안쪽의 여린 살갗과 장기에 생애 처음 느껴보는 고통이 스며들었다.
삼투압에 의해 수분을 빼앗기며, 동시에 쓰라린 화상같은 고통을 끝없이 겪어야 하는 자실장들이 난리통을 피우는 것은 당연지사. 심지어 자실장들이 항아리에 투하된 뒤에는 단 한 마리만이 자실장의 산을 기어올라 이 짠물의 수면 위에서 고통을 피할 수 있었기에, 모든 자실장들은 서로 한데 뒤엉켜 다른 녀석들을 물에 빠뜨리며 위로, 위로만 기어올랐다.

《아타치의 눈이, 눈이이이이이-!!》
《찌갸갸갸갸갹!!》
《아타치의 섬섬옥수를 찢지 마는테치! 아타치는, 아타치느은-!!》
《마마아아아아아아.》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녀석들의 모습은 처절하다. 짠물에 수분을 빼앗긴 탓에 토실토실하던 피부는 탄력을 잃고 주름이 깊게 패이기 시작했고, 뼈는 천천히 삭기 시작한 탓에 평소처럼 힘을 주었다가 스스로 사지를 부러뜨려버려 탈락하는 녀석도 있었다. 탈락한 녀석들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어 산의 일부가 되어버리고 만다.
녀석들의 싸움이 이어지며 흐르는 적록색 피는 소금에 탈색되어 하얀 알갱이로 변하며 물 색깔을 탁하게 흐렸다. 처음에는 항아리 바닥까지 보이던 짠물이 점차 흐려지며 뿌연 흰색으로 물들어갔다.

《아타치는 반드시 살아남는테치. 오마에같은 분충은 여기서 뒈지는테챠!》
《진정하는테치! 아타치타치는 이제 싸울 이유가 없는테치!》
《아타치는 살아남는테챠아-!!》

얼마 있지 않아 이 생존경쟁의 승리자가 탄생했다. 디딤이 될 산의 정상은 이미 수면에 도달해있어 더 이상 싸울 이유가 없었지만, 본디 실장석이란 그런 생물이다. 모든 것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탐욕스러운 생물. 마지막 생존자는 힘을 모두 소진하고 쓰러진 다른 경쟁자들을 하나하나 손수 물 속에 빠뜨렸다. 원통하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물에 잠기는 경쟁자들을 바라보며 유일하게 생존한 자실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아타치는 살아남은테치!》










그로부터 10여 일이 흘렀다.
어두운 항아리 속에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아무것도 마시지 못하면서도 살아남으려는 의지만큼은 대단한 이 자실장은 며칠 전부터 천천히 차오르는 수면에 조금씩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짠물은 천천히 자실장들에게서 미처 빼앗지 못한 수분을 빼앗고 있었고, 그 덕에 자실장의 산은 크기가 줄고 있었던 탓이다. 산의 높이가 낮아지고, 수면은 조금씩 높아져만 간다.

《아타치는 살아남는테치 아타치는 살아남는테치 아타치는 반드시 살아남아 자손번영하여 대대손손 살아가는테치 무서운테치 살고싶은테치 살려주는테치 살려주는테치 죽고싶지 않은테치 아타치는 살고싶은테치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은테치 살려주는테치...》

자실장의 공포가 담긴 마지막 단말마는 결국

《보그륵》

작은 공깃방울이 되어 항아리 바닥으로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그러나, 단말마는 꺼지지 않았다.
아니, 죽지 못했다.

《살려주는테치》
《죽고싶지않은테치》
《아픈테치》
《편해지고싶은테치》
《숨쉬고싶은테치》
《숨막히는테치》
《죽여주는테치》
《죽고싶은테치》
《보글.》
《보그륵.》

이미 탈락한 녀석들 역시, 뿌연 짠물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살아남아 있었다. 산을 이루고 있던 자실장들의 입에서는 자그마한 공기방울이, 눈에서는 하얀 알갱이들이 계속해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눈물은 계속해서 탈색되어 물을 흐리고, 입에서는 단말마가 끊기지 않는다.
움직일 힘조차 없다. 마지막으로 살아남았다고 생각한 자실장은 천천히 눈을 감고 눈가에서 하얀 알갱이를 흘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이 디디고 서 있었던 자실장의 산은 천천히 기울기 시작하더니, 이내 모습이 무너지며 항아리 바닥에 쓰러졌다.

《보글.》











6개월 뒤.
토시아키는 반년 전에 담근 자실장젓을 살펴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짠물 속에 자실장의 절망과 고통을 그대로 녹이고, 그 맛국물을 자실장의 살과 내장에 다시 스며들게하는 6개월의 발효과정을 거친 자실장젓은 염분농도와 발효시키는 환경이 매우 중요하므로 만들기가 굉장히 어렵다. 그런 젓갈이 아주 좋게 만들어졌으니, 흡족한 건 당연지사.
토시아키는 뿌옇다 못해 우유처럼 새하얘진 짠물을 한 모금 마셨다. 실장석들이 고통과 절망 속에 빠졌을 때 내는 감칠맛이 그대로 스며들어 입 속을 부드럽게 감싸듯,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치열하게 미각 세포를 깨우려는 듯 토시아키의 혀를 희롱했다.
다음으로, 토시아키는 거름채를 넣고 천천히 항아리 바닥에 잠겨있는 자실장 한 마리를 꺼냈다. 물에서 꺼내자 쪼글쪼글해진 모습으로 죽은 듯이 있었던 녀석은 희미한 기침 소리를 내며 허파에서 소금물을 쏟아냈다.

《여기는... 천국인테치?》

토시아키는 조금씩 붙어버린 복부의 상처에 검지손가락을 쑤셔넣고 상처를 비집어 뜯어냈다. 비명을 지를 힘조차 부족했던 자실장은 그저 자글자글한 눈주름 사이로 색눈물을 흘릴 뿐. 토시아키는 집요하게 자실장의 복부 안쪽을 훑어낸 뒤, 손가락을 빼내 손가락 끝에 묻어낸 황색 무언가를 바라보았다.
마치 게장의 내장이나 알과도 같은 색채와 질감을 보이는 자실장의 내장이 토시아키의 손가락에 매달려 나왔다. 이미 소금물에 절여져 괴사한 내장은 더 이상 내장으로써의 기능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토시아키는 내장을 맛보고는 또다시 흡족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번 젓갈도 잘 되었다. 토시아키는 자실장의 머리를 똑 돌려 떼어냈다. 그 순간, 토굴의 입구 쪽에서 쨍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토굴의 입구에는 넓게 펼쳐놓은 위석들이 햇빛을 받으며 검은 광택을 빛내고 있었다. 그 중 한 개가 형체도 없이 산산조각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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