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는 사육실장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주인에게 버림 받았으니까.
딱히 분충은 아니지만 특별히 영리하지도 않고 인간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인간을 즐겁게 해줄만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소 제멋대로에 욕심쟁이, 응석받이인 면이 있지만 실장석으로서는 어디까지나 평균 수준이다. 가격도 3만원 미만의 떨이로 파는 저렴한 자실장이었다.
낯선 골목에 홀로 버려진 미도리는 함께 버려진 작은 종이 상자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 사면이 막힌 상자가 작은 몸을 에는 듯한 차가운 바람은 막아줬지만 여전히 춥다. 미도리는 버려지기 전에 살던 집을 그리워하며 테에에엥, 테에에엥 하고 울었다.
미도리의 집은 작은 고양이용 하우스였다. 푹신한 방석 위에 돔형의 덮개가 씌워진 형태다. 더운 여름에는 주인님이 택배상자라고 부르는 종이상자에서 얇은 손수건을 깔고 잔다.
미도리가 깨어나면 주인은 이미 집에 없다. '출근'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아마 들실장의 친실장들이 먹이를 찾으러 가는 것과 비슷한게 아닐까. 미도리는 꾸물꾸물 일어나서 주인님이 두고간 실장푸드를 우적우적 먹고 물을 테찹테찹 마신다. 방 이곳저곳에 떨어진 푸드 가루와 물방울은 주인님이 돌아오면 치워줄거다.
아침식사를 마치면 논다. 블럭 쌓기를 하거나 공을 굴린다. 혼자 놀다보면 금새 싫증이 나서 다시 미도리 하우스로 돌아가 낮잠을 잔다. 주인이 올 때까지 그런 일들을 반복한다.
주인이 도어락의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나 테치테치 열심히 뛰어간다. 작은 몸뚱아리 가득 기쁨을 담아 텟츄웅~하고 짖는다. 링갈을 켜보면 '주인님 보고 싶었던 텟츄~'라고 뜨겠지만, 주인은 굳이 링갈을 확인하지 않는다. 어쨌든 근 한달 가까이 반복되는 일인 것이다.
주인은 텅 빈 미도리의 밥그릇에 다시 사료를 부어주고, 본인 몫으로 편의점에서 사온 도시락을 전자레인지에 데운다. 함께 사온 4캔에 만원짜리 수입맥주 중 한캔만 빼고 나머지는 냉장고에 넣는다.
한끼에 만원도 안되지만 제법 알찬 저녁이라고 생각한다.
식탁이 아니라 테이블 앞에 앉아 tv를 보며 저녁을 먹는다.
케이블 방송에서 자체 제작한 드라마가 끝나고 홈쇼핑 광고가 나온다. 티셔츠 두벌을 사면 실장석용 실장복 한벌을 덤으로 주는 듯 하다. 실장석을 키우는 사람으로서 할 말은 아니지만 고작 실장복 하나를 서비스로 받으려고 저런 허접한 티셔츠를 살 사람이 있을까?
아니, 아직도 실장석 같은 걸 키우는 사람이 있으려나?
"테치테치테치!"
어느 사이에 사료를 다 먹어치우고 토박토박 옆으로 온 미도리가 뭔가 떠들고 있다.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링갈을 집어 확인해보니 대충 '주인님 저 옷 예쁜 테치! 사주는 테치! 주인님이랑 아타치의 커플룩인 테치!' 정도의 이야기다.
딱히 미도리가 분충이라서 물건을 조르는 건 아니다. 자실장에게 주인은 마마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떼쓰는 정도의 감각이다. 딱히 밉다거나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주인은 미도리를 보며 멍하게 생각했다.
'아무래도 강아지나 고양이가 더 귀여운 것 같아. 옆집 아줌마가 키우는 포메라니안 귀엽던데...'
다음날 주인은 잠든 미도리를 종이 상자에 넣어 출근길에 유기했다. 운이 좋으면 누군가 주워서 키워줄지도 모르지만 아마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주인은 나머지는 미도리의 운이라고 죄책감 없이 생각하며 회사로 향했다.
그렇게 버려져서 테에에에엥 울고 있는 미도리를, 행인들이 싫은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지나간다. 굳이 실장석 따위에 손대고 싶지 않으니까 말없이 지나치지만 빨리 미화원이 와서 치워줬으면 하는 표정이다. 테에엥 우는 소리 중간중간 테끅테끅하는 소리가 섞인다. 주인님, 빨리 오는테치, 하고 울고 있지만 당연히 도움의 손길은 없다.
그러다 어떤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등 뒤로 커다란 손수레를 끌고 있는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미도리가 신기한 듯 내려다 보고 있다. 물론 미도리는 인간의 나이 같은 건 알지 못하고 모두 닝겐상이다. 주인님과 같은 닝겐상.
미도리는 울음을 멈추고 할머니를 향해 테치테치 말을 건다.
"닝겐상, 주인님은 어디있는 테치? 아타치를 주인님에게 데려다 주려고 온 테치? 집에 가고 싶은 테치~ 빨리 주인님에게 데려다 주는 테치이~~"
링갈이 없는 할머니에게는 테치테치 짖는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고, 할머니의 말도 미도리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다.
당황한 미도리는 이윽고 본능에 몸을 맡겨, 오른 팔을 들어 뺨에 대고 고개를 갸웃 하며 테츄웅~~~하고 애교를 부렸다.
**
할머니는 폐지 할머니라고 불렸다.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팔고 돈을 받는다는 심플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다. 열심히 키운 자식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생활비를 주고 있다. 넉넉하지는 않아도 할머니 혼자 살아가기에는 충분한 돈이다. 남편이 남겨준 낡고 작은 단층주택에 살고 있으니 집세도 들지 않는다.
그저 평생 성실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노느니 작은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과, 자식들에게 돈을 받기만 하면 미안하다는 마음과, 손자손녀에게 용돈이라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집안일과 텃밭 가꾸기를 하고 남는 시간에 폐지를 줍고 있다. 혼자 집에 있으면 남편이며 자식들 생각에 외로운 기분이 들어 집에 있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다. 가끔 자식들과 손자 손녀가 전화를 해 줘도 외로운 건 외로운 거다. 폐지를주으러 다니면 조금은 그런 외로움도 잊혀졌다.
그러나 요즘은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폐지 줍기가 쉽지 않다. 슈퍼에서 빈 상자를 잘 내놓지도 않고 내놓더라도 경쟁률이 높다. 할머니는 아직 생활에 여유가 있는 만큼, 폐지 외에는 돈 나올 곳이 없는 다른 폐지 수거 노인과 마주치면 무심코 양보를 하고 만다. 그렇다보니 동네를 몇바퀴나 돌아도 주운 폐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운동 겸이라고 할머니는 웃는다.
그리고 오늘, 할머니는 길 구석에 놓인 종이상자를 발견했다. 그리 크지 않은 사이즈의 택배상자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안에서 테에에에엥, 하고 울고 있는 작은 생물이 좀 특이했다.
목이 터져라고 테에엥, 테에에엥 울던 그 생물은 할머니의 시선을 느꼈는지 우는 걸 멈추고 테치테치 짖는다.
"요상하게도 생겼네."
그러고보니 이런 걸 손녀도 키웠던 것 같다. 입학선물로 딸과 사위가 사줬다고 했다. 몇번인가는 할머니의 집에 데리고 오기도 했었다.
시... 뭐라더라 무슨 돌멩이같은 이름이었는데. 어쨌든 손녀는 그 생물에게 미미인가 하는 이름을 붙이고 한동안 귀여워 했었다.
할머니가 옛기억들을 떠올리며 미도리를 내려다 보고 있노라니 미도리가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다가, 뭉툭한 막대기같은 오른 팔을 입가에 대고 고개를 갸웃하며 테츄웅~ 하고 교태스럽게 짖었다.
솔직히 귀엽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손을 뻗어 상자를 집어들고 미도리가 떨어져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뒤집어 털어냈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테이프를 떼고 착착 접어서 손수레에 넣고 다음 상자를 찾으러 간다.
등 뒤에서 미도리가 테? 테? 하고 어리둥절해있다가 곧 아까보다 더 큰 소리로 테에에엥, 테에에엥, 하고 운다.
어째서인테치, 주인님이 나에게 준 소중한 상자인테치, 가져가지 마는테치, 돌려주는테치, 추운테치이이이이!
하고 나름대로 힘껏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미도리의 울음에 호응하듯이 할머니의 주머니 속에서 폴더폰이 울렸다. 손녀다. 이번 주말에 온다는 이야기다.
오늘은 폐지도 줍고 손녀의 전화도 받았으니 좋은 날이다. 주말에는 손녀가 좋아하는 보쌈을 만들어야겠다. 돌아가는 길에 배추를 한단 사고 돼지 뒷다리살도 한근 사야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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