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



"처음엔 깜빡 잊어버릴 뻔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이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같아서..."

TV에서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살인사건에 관한 제보자의 증언이 음성변조 처리되어 흘러나온다. 살인방식도, 동기도,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목격자도 없던 완벽한 밀실살인 미스테리. 그런데 사건 며칠 전 현장 주변을 배회하는 수상한 사람의 모습을 우연히 목격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모양이다. 방송국에서는 급히 특집을 편성했다. 진행자가 준엄한 말투로 범인은 꼭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무심코 코웃음을 치며 채널을 돌렸다. 저 정도 증언 가지고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단 말인가? 오히려 저 제보자만 위험해질 뿐이다. 범인은 자신의 완벽한 살인에 오점을 남긴 저 자를 찾아내 죽이려들 것이다. 이건 확실히 장담할 수 있다.

내가 저놈을 찾아서 죽일 거거든.


샤워를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다운받았다. 나머지 내용은 완전히 헛다리짚는 것들 뿐이다. 제보자의 인터뷰 영상만 분석하면 된다. 말을 들어보니 언제 어디서 나를 보았는지 기억난다. 근처에 사는 사람이겠군... 촬영 장소로 자기 집을 선택한 것은 칭찬해주고 싶다. 주변에 마땅한 인터뷰 장소라고는 조그만 카페나 공원이 다니까. 더 쉽게 찾아냈을 것이다. 거실은 아니고 방인 듯하다. 커튼은 쳐져 있지 않지만 창문이 불투명해서 바깥이 잘 안 보인다. 큰 가구도 없다... 가만, 알겠다. 이녀석. 실장석을 키우고 있구나.

인터뷰는 사육실장의 방에서 진행된 것같다. 핑크색 벽지와 자실장의 크기에 맞춘 조그만 용품들, 그리고 화면 구석에서 꾸물거리고 있는 자실장의 존재가 그 증거다. 짧은 영상 속에서 자실장은 공을 굴리거나, 이쪽을 쳐다보며 아양을 떨거나, 목까지만 나온 주인의 곁에 다가와서 놀아달라는 듯 무릎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자실장을 기른다고? 저녀석은 운이 없다. 나야말로 실장석의 전문가니까.


완전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여 성공했을 때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중간의 지루한 탐색과 준비과정을 견디게 해준 것은 전부 그 똥벌레들 덕분이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실장석을 괴롭히고 죽이기는 내 유일한 취미이자 특기였다. 실장석이 지루해질 때쯤 인간을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고, 당장 행동에 나설 여건이 안 되면 실장석에게 화풀이를 했다. 온라인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각자 자신이 범한 완전범죄를 자랑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곳의 규칙은 절대 꼬리를 밟히지 말 것, 만약 목격자가 나타나면 그도 죽일 것. 그 프로그램을 보았는지 동료들이 나를 놀리는 메시지가 속속 도착한다. 이 굴욕, 반드시 갚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실장을 힌트로 제보자를 찾아내 죽여야 한다.


제보자는 꽤 자실장을 애호하며 기르는 것 같다. 자실장을 위해 방 하나를 통째로 내어주고, 여러 세간살이를 빠짐없이 들여놓았다. 하우스는 큼직하고 화려하여 자실장의 허영심에 꼭 맞는 디자인이다. 지붕 달린 침대도 보인다. 그 옆에는 자실장을 위한 놀이기구들이 있다. 발코니에 있는 물건은 자실장용 샤워부스로 보인다. 자실장은 좋은 먹이를 먹고 자란 듯 혈색이 좋고 통통하다. 화면 너머에 낯선 인간들이 잔뜩일텐데 그다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태어나서 한번도 불행을 겪어본 적 없는 순진한 얼굴이다. 아기자기한 프릴이 달린 핑크색 실장복과 빨간 리본이 돋보인다.

저 정도로 애지중지 기르는 것을 보니, 제보자는 독신이 틀림없다. 부부나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자실장을 위해 단독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가족과 더 가깝게 두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자실장의 방이 따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만큼 집에 여유 공간이 많다는 말이다.

조금 살펴보고 자실장을 이용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섰다. 이 자실장은 인간을 좋아하지만 그다지 똑똑한 개체는 아니다. 끊임없이 돌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화장실로 보이는 공간에 놓인 독라모양 변기를 보고 심증을 굳혔다. 저런 본능을 자극하는 제품은 사용법을 이해시키기는 좋으나 분충으로 만들 위험성이 있다. 즉 훈육을 제대로 받은 고급 실장은 아니란 말이다. 저런 녀석은 적당히 치켜세워주면 칭찬받은 아이마냥 전부 떠벌릴 것이다. 나는 한번더 자실장의 얼굴을 똑똑히 보고 영상을 껐다.


화창한 봄날이다. 휴일을 맞아 피크닉을 나온 가족과 사육실장들이 즐겁게 떠들고 있다. 벤치에 앉아서 그 제보자와 자실장을 기다린다. 이런 날에 실장석 애호파라면 반드시 이 공원에 올 것이다.

얼마쯤 기다리니 그녀석들이 나타났다. 제보자는 역시 혼자였고, 자실장은 그때 본 옷을 그대로 입고 제보자에게 안겨 있었다. 제보자, 그 놈은 체격이 그리 크지 않아 어렵잖게 제압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자실장은... 여전히 세상 모르는 순진한 얼굴을 하고 있다. 그놈은 근처 풀밭에 자실장을 내려놓고 얼마간 같이 놀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는지 어디론가 떠나갔다. 자실장은 이 상황이 익숙한 듯 혼자 풀밭을 뛰어다니고 나비를 쫓고 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자.

자실장에게 미소를 띄우며 다가가 가져온 콘페이토를 건넸다.

"참 귀여운 아이구나. 먹을래?"
"텟? 콘페이토인 테치? 감사한 테츄웅~"
"먹는 것도 귀엽구나. 틀림없이 너의 주인님도 너같은 아이를 길러서 행복할 거야."
"칭찬해주니 부끄러운 테츄..."
"겸손하기까지 하다니, 정말 부럽네.. 음,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물론인 테치! 친절한 닌겐상에게는 전부 알려드리는 테치!"

주인이 사라진 쪽을 신경쓰면서 자실장의 수준에 맞게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다. 주인의 생활 패턴, 집의 구조, 산책은 얼마나 자주 하는지... 여러번 반복해서 물어도 주인은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나머지는 내가 스스로 알아내면 된다. 마지막으로 자실장에게 물어보았다.

"근데, 주인님은 너와 잘 대화하지 않니?"
"주인님은 상냥한 테츄... 하지만 와타치가 말을 걸면 잘 듣지 않는 테츄. 그래서 닌겐상 말걸어줘서 감사한 테치."
"그렇구나. 주인님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그럼 나와 얘기한 건 비밀로 하지 않을래? 주인님이 질투할 수도 있으니까 말야."
"테엣! 그건 안 되는 테치! 꼭 비밀로 하는 테츄."

자실장은 나의 비밀이라는 손모양을 따라하며 고개를 연방 끄덕였다.


그놈이 자실장을 데리고 떠나기를 기다려 뒤를 밟아 집의 소재를 알아냈다. 이제 남은 것은 밤에 문을 따고 들어가 부엌칼로 잠든 놈을 찌르면 끝. 며칠을 그 집 앞에 잠복하며 그놈의 생활패턴을 파악한 결과 자실장이 알려준 것과 대강 비슷했다. 생각보다는 더 똑똑한 놈이었나보다. 동료들은 자실장을 이용한 살인 계획을 듣자 끝나고 그 자실장을 넘겨달라며 아우성이다. 어차피 살인자들은 하나같이 갈 데까지 간 실장석 학대파들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넘길 생각이 없다.

달이 어둡고 비가 내리는 밤을 골라 실행에 나섰다. 그놈이 자실장을 데리고 집을 비웠을 때 알아둔 비밀번호를 천천히 눌렀다. 문이 열리자 잠시 숨을 죽이고 집 안 분위기를 살폈다. 그놈은 눈치채지 못한 듯 방 안에서 코를 골아대고 있다. 집 구조는 이미 알고 있다. 부엌으로 가 식칼을 꺼내고 먼저 자실장의 방으로 향한다. 실장석은 둔해빠진 생물이라 도중에 깨어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지만, 확실히 해두기 위해 잠든 자실장에게 네무리를 뿌렸다. 이제 자실장은 헬리콥터가 눈앞에서 이륙해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놈이 자고 있는 방 문 앞에 섰다. 문을 열고 바로 뛰어들어가 놈의 가슴에 칼을 꽂는다. 이 순간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겹지 않다. 잠시 숨을 고르고 손잡이를 힘껏 돌렸다.




"?"
그는 방 한복판에서 얼빠진 자세로 동작을 멈췄다. 그놈이 잠들어 있어야 할 침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머리맡에 놓인 작은 스피커에서 녹음된 코고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가 허를 찔려 멍하게 있는 사이 뒤에서 그림자가 날렵하게 뛰어들어 그를 제압했다. 작지만 실전으로 단련된 날렵하고 단단한 체구의 그놈을 그는 당해낼 수 없었다. 어느새 식칼을 뺏기고 두손이 등뒤로 묶인 그에게 수갑을 채우며 그놈이 말했다.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한다."

그놈은 제보자가 아니었다. 제보자의 집에 대신 잠복해 있던 형사였다.

비슷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경찰은 살인범이 제보자를 처리하러 올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서 방송이 나가자마자 제보자에게 연락을 취해 살인범을 검거하기 위한 계획을 짰다. 제보자 대신 인상착의가 비슷한 형사가 대신 들어가 살며 제보자의 생활패턴을 따라한 것이다. 제보자의 사육 자실장 '리리'도 경찰에게 인수되었다. 리리가 주인과 대화가 없다고 말한 것도 새 주인인 형사가 의도적으로 리리의 대화를 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형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리리는 주저없이 낯선 인간의 질문에 술술 대답했고, 그를 역으로 추적해 신상을 알아냈을 때 이미 그는 독안에 든 쥐였던 것이다.

현행범으로 체포된 그가 살인 모임의 존재를 실토하자 나머지 멤버도 경찰의 추적을 피할 수 없었다. 수년간 골치를 끓게 한 사건 수십 건이 단박에 해결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 일에 지대한 업적을 세운 리리는 원래 주인인 제보자에게로 돌아갔다. 실장석이기 때문에 포상은 고급 콘페이토 몇봉지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리리는 이것만으로도 기뻐했으니 잘 된 일이었다.

"주인님, 요즘 콘페이토가 더 달달해진 테치. 어떻게 된 테치?"
"하하, 우리 리리가 똑똑해서 더 콘페이토가 맛있어진 거란다."
"그런 테치?! 몰랐던 테치! 치프프, 역시 와타치는 똑똑한 테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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