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 크래용 / 산후조리원


 


실장 크래용


시중에 판매되는 애완용 실장석은 선별을 통해 걸러진 일반적으로 지능이 높은 개체들이다. 이 실장석들은 호기심과 상상력이 왕성해서 적절한 완구와 놀이활동으로 욕구를 풀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실장석용 놀이기구나 장난감은 자칫 비참한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실장석, 특히 자실장과 엄지의 내구력은 끔찍하게 약한데다 주의력과 위험 감지 능력 또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문가들은 실장석의 '예술'적 능력을 함양시키고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되는 그림그리기 활동을 권장한다. 인간의 눈에는 낙서 수준이지만 조그만 종이 하나로도 하루종일 놀 수 있고, 도구 하나만 있으면 되니 더없이 안전하다.

실장석이 사용할 그림도구로 몽당색연필을 주어도 되지만, 앞서 말했듯 자실장 이하의 내구력은 끔찍한 수준이기 때문에 제대로 쥐거나 눌러서 칠하는 데 큰 힘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나온 제품이 실장 크래용이다.

실장 크래용은 실장석의 뭉툭한 손으로도 쉽게 쥘 수 있도록 표면이 콘페이토와 같은 우둘투둘한 처리가 되어 있으며, 작은 힘으로도 쉽게 색을 칠할 수 있다. 인간과 실장석에게 무해한 성분으로 만들어져 먹거나 묻어도 문제가 없다.

물론 이 제품에도 단점은 존재한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손바닥 안에 들어올만큼 매우 작은 세트임에도 가격이 고급 미술도구와 맞먹는다는 것. 




산후조리원


실장석을 위한 산후조리원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애당초 실장석에게 산후조리가 필요한 것인지도 의문이니 말이다. 실장석의 총배설구는 신축성이 뛰어나서 후유증이 거의 없고 해산한 친실장은 바로 활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든 인간의 행동을 그대로 흉내내고 싶어하는 사육실장과 애오파의 취향을 장삿속이 만난 흔한 사례인가 싶지만, 실은 반대다. 산후조리원은 실상 재훈육소에 가깝게 운영되는 것이다.

훈육내용을 잊지 않은 우수한 사육실장이라 해도 첫 출산과 육아에는 무수한 난관과 장애물이 따른다. 태교를 잘못하여 분충이 태어났는가의 여부를 막론하고 친실장에게도 분충화의 위험이 상존한다. 대개 주인의 허락에는 자실장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며, 출산한 친실장은 거의 예외없이 칭찬과 극진한 보살핌을 받는다. 주인을 기쁘게 해주었다는 성취감을 넘어서 자신의 집안에서의 지위가 올라갔다고 느껴 고귀한 존재로 스스로를 격상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친실장의 재교육도 꼭 필요하다.

조리원에 입원하는 친실장은 음식부터 평소 환경과는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산후특식으로 제공되는 푸드는 영양분이 풍부한 재료로 고급 사료에 전혀 뒤지지 않는 원가로 만들어졌고 양도 넉넉하지만, 친실장들은 거의 모두 첫 식사를 남긴다. 산후조리 푸드는 고급 실장 푸드와 달리 맛이 지독히 없기 때문. 오히려 실장석이 싫어하는 시고 씁쓸한 맛을 일부러 첨가한 수준이다. 이렇게 먹는 것에서부터 철저한 '내리기'를 시키며 친실장에게 편한 생각 따위는 할 수 없게 만든다.

전문 훈육사와 역전의 노실장들이 친실장 훈육팀을 구성한다. 훈육사는 친실장들에게 주인과 인간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혹독하게 재주입하며, 노실장들은 옷 갈아입히기, 목욕시키기와 실장용품 사용법 등 자들을 다루는 방법을 실장석의 눈높이로 전수한다. 이 중 가장 까다롭고 섬세한 교육은 나중에 분충인 자가 나왔을 때 비밀스럽게 '솎아내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런 것까지 배웠다는 사실은 비밀에 부쳐진다.

사실상 조리원의 알파이자 오메가로, 전문 팀이 만들어졌다면 조리원의 문을 엶과 동시에 성공이 보장된다 할 수 있다. 친실장의 훈육실패는 용납되지 않으므로 아무 훈육사나 쓸 수 없고, 여러 차례 자를 낳아본 노실장을 찾아내 기증(처분)받기도 쉽지 않다. 그 대신 업계 최고의 대우와 안락한 최후를 약속받는 것은 물론이다.

그에 반해 같이 입원한 자들은 친실장이 받는 스트레스를 거의 느끼지 못한다. 자실장 이하를 관리하는 직원에게는 별다른 전문 자격이 요구되지 않는다. 약간의 배변과 식사예절, 엄지에게는 프니프니 교육이 추가될 뿐 자들의 나머지 시간은 전부 놀이로 채워져 있다. 엄격하고 잔혹한 훈육은 누구에게 팔릴지 모르는 사육실장 후보에게나 필요한 것이다. 사육실장의 자로 태어나는 행운을 타고난 어린 실장석들은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물론 어린 실장들의 행복 뒤에는 감시와 평가의 눈길이 있다. 곳곳에 숨겨진 카메라로 촬영된 영상을 통해 사육실장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개체는 자매들이 모르게 처분된다. 지능이 현저히 떨어져 의사소통 또는 기본적인 교육이 불가능하거나, 욕심이 많고 난폭하거나, 구더기의 경우 공복 상태에서도 습관적으로 프니프니를 요구하며 울어제끼는 개체가 그 예다. 일과가 끝나 젖을 먹고 자기 위해 가족이 모일 때 구성원의 공백이 드러나지만, 친실장은 그저 사고로 슬픈 일을 당했을 것이라 둘러댈 뿐이다. 자매가 솎아내기 교육의 교보재로 희생당했다는 사실을 어린 실장석들이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짧게는 1주, 길게는 한달여의 과정을 끝마치고 실장 가족은 퇴원하여 주인의 품으로 돌아간다. 친실장들은 거의 예외없이 살아나오지만, 자실장 이하의 퇴소율은 20% 미만이며 홀몸 혹은 구더기들만 데리고 퇴소하는 친실장도 부지기수다. 일반 숍에 비하면 굉장히 높은 생존률이기는 하나 눈앞에서 자신의 자가 대부분 솎아내지는 것을 본 친실장들은 깊이 낙담하게 된다. 남은 자들을 잘 키우고 주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결과는 가족 전체의 파멸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고, 그래서 처음 길러질 때보다 더 우수한 사육실장으로 돌아온다. 때문에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으며 퍽 부담스러운 요금에도 불구하고 애호파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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