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변 텃밭의 실장석

 

철로 변 자투리땅에는 불법경작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S역 인근도 다른 곳과 다를 바 없이 경작이 이뤄지고 있으며 개중에는 대놓고 울타리를 치고 경작을 하는 것이 울타리에 행정예고 현수막이 붙어있지 않았다면 허가받은 구조물로 착각할 정도다.

가을이 깊어가는 때 울타리 안에서 독라의 성체가 마찬가지로 독라인 자들과 함께 밭 곳곳을 누비며 바구니에 돌이나 잡초 따위를 넣고 있다. 이곳에서 일을 한 지 오래되었는지 친실장의 몸 이곳저곳에는 풀로 인한 자상자국이 이곳저곳 나있다. 작물들이 결실을 맺어갈수록 친실장은 그간 지내온 삼계절이 떠오르며 얼굴이 어두워져간다.

친실장은 본래 공원의 들실장이었으나 공원 정비로 인해 쫓겨나 S역근처로 흘러들게 되었다. 그리고 자투리땅에서 작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손을 대었다가 똥닝겐에게 발각당하여 일가전부 독라노예가 된 채 이제껏 일해온게 3년째였다.

올해 봄 텃밭 주인은 진공팩을 개봉하고 가사상태에 빠져있던 친자들을 꺼냈다. 겨울철에 아무 쓸모도없는 분충들을 먹이고 재울 필요성을 못느낀 밭 주인은 가을에 수확이 끝날때마다 실장석들을 진공팩에 넣어 창고 구석에 대충 놓았던 것이다. 

깨어나고 나서 자실장들의 숫자를 세어보니 작년에 비해 왠지 줄어든것 같았지만 친실장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똥닝겐이 시킨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절반 이하의 사료만을 받게 되는것이 중요하다. 똥닌겐이 밭을 뒤집으면 돌맹이들이 흙속에서 튀어나온다. 이것들을 주워 바구니 하나를 채워야 한다.

날이 좀더 따듯해지면 일이 늘어난다. 저주받을 잡초들은 조금만 늦더라도 자신들이 용을 써야할만큼 뿌리를 내려버리고 자비없이 실장석의 무른 피부에 생채기를 낸다. 쓸모없는 엄지들에게 밑둥을 갉아먹게 해봤지만 택도 없었다.  

꽃가루가 날리기 시작하면 독라인 친실장은 막을 방법도 없이 임신한다. 물이라고는 닝겐이 농장에 올때마다 물그릇에 한번 채워주는 것이 다였으므로 친실장은 새로운 자를 낳는 날에는 물을 아껴야 했다. 똥닝겐은 자를 낳는것에 대해 뭐라 하는법은 없었지만 자를 발견하는 즉시 전부 독라로 만들었다. 자들을 숨겨본적도 있지만 울타리 내에 자실장들이 숨을법한 공간도 별로 적었을 뿐더러 똥닝겐이 저녁 사료를 붓는 소리에 참지못하고 뛰쳐나와 예외없이 독라가 되었다.

머지않아 새로 낳은자들은 뱃속에 있을때 마마가 노래하던 아름다운 세상과 우마우마한 먹을거리는 어디있냐고 칭얼댄다. 세상에 나오자마자 독라가 되고 돌과 잡초뿐인 세상에서 하루종일 일하며 먹을거리는 아무맛도 없는 실장사료, 그것도 친실장이 대부분 먹어버려 배부르게 먹어본적도 없다. 칭얼대는 자들을 바라보며 친실장은 무심히 창고 처마끝을 가리키고 그곳을 본 자들은 그대로 얼어버린다. 그곳에는 거꾸로 매달린 채 말라붙거나 썩어들어가는 자실장들의 시체가 발처럼 드리워져 있다.

처음에 친실장과 같이 붙들렸던 자들은 이제 아무도 없다. 실수가 많거나 실장들이 일은 안하고 밍기적거린다 싶으면 똥닝겐은 친실장을 후려치고 가장 큰 자의 두 발을 꿰어 거꾸로 매달아 버렸다. 일가 최초로 체벌을 받았던 장녀는 발이 꿰인 고통과 머리로 몰리는 피에 고통받으며 내리 이틀을 꽥꽥대다 조용해졌고 일가는 천천히 죽어가는 장녀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작물들의 싹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친실장의 일이 늘어난다. 멍청한 자실장들은 가르쳐봐야 작물과 잡초를 구분하는 법이 없었다. 작물을 뽑아내는 실수가 많아지면 똥닝겐이 자를 처분한다. 자 따위에게 모성을 버리게 된지는 오래지만 노동력과 사료가 줄어들면 손해였으므로 작물이 자라나는 초기에는 자실장에겐 돌만 나르게 하고 잡초를 뽑아내는것은 본인이 하였다.

여름이 가까워지면 우지챠조차 친실장이 자신들에게 애정따윈 없다는것을 깨닫게 된다. 가장 상냥했을지도 모르는 자도, 가장 영악한 분충이었을지도 모르는 자도 이런 환경에선 묵묵히 일할 수밖에 없다. 덩치가 가장 큰 자는 자신이 오늘 죽지않도록, 다른 자들은 빈둥대다간 자신의 몸집이 가장 커질것을 알기에 일을 한다.

날이 더워지면 친실장이 자실장들을 후려치는 횟수가 늘어난다. 똥닝겐이 물을 많이 가져오지만 그 물은 자신이나 자들을 위한 게 아니었고, 젖은 바닥은 열기를 머금어 습기와 함께 실장석들을 괴롭힌다. 

더위도 더위거니와 운치가 문제다. 고된 노동과 더위에 지쳐 비실대는 자실장들은 친실장이 주의를 줘도 운치를 이곳저곳 흘리게된다. 여름의 날씨가 운치를 금방 썩게만들어 역한냄새가 나는것도 문제지만 운치를 흘린 자리엔 잡초가 눈에띄게 자라난다. 운치를 흘린 자실장을 땅에 메다꽃고 운치를 핥아먹게하거나 사지를 찢어 운치굴에 처박거나 해봤으나 자실장 숫자만 줄어갔다. 

여름이 끝나가면 친실장과 그때까지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자실장들은 그 엄청난 재생력이 무색하도록 벌겋게 익어있다. 칭얼대며 가짜 눈물이던 진짜 눈물이건 쏟던 녀석들은 진작 마른 육포가 되어 친실장의 야식이 되었다. 이쯤되면 남은 녀석들은 말한마디 하지않고 묵묵히 일만한다. 

가을이 되어 날이 선선해지자 자실장들은 그나마 한숨 돌리지만 친실장은 가을 꽃가루에 의해 태어난 추자들 때문에 쉴 여력이 없다. 3년째 고난의 세월을 보내고 있지만 여전히 머저리나 다름없는 새끼들이 태어난다. 추자들이 행복회로를 굴리면서 작물에 똥칠을 하기전에 친실장은 추자들을 재빨리 독라로 만들고 이제껏 살아남은 춘자들에게 추자들을 두들길것을 명한다. 이때가 춘자들에겐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때다. 이 과정에서 추자 몇마리가 죽어버리곤 하지만 친실장은 자신에게 굴종하는 노예추자만이 필요하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올해 가을에도 손님이 왔다. 자신과 같이 공원에서 밀려나 멋모르고 이곳에 흘러든 일가다. 녀석들은 텃밭에 자라는 작물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가 울타리 안의 독라들을 발견하곤 다가와 비웃기 시작한다. 친실장은 울타리 바깥의 실장석들을 부러워하는, 반쯤 진심이 담긴 연기를 선보인다. 예상대로 잔뜩 도취된 분충일가는 독라인 친실장 일가를 비웃느라 밭의 주인이 다가오는것도 알아채지 못하였다. 똥닌겐은 분충들의 머리털과 옷을 뜯어내고 울타리 기둥에 총구를 꼽아버린다. 울타리 기둥 끝에서 죽을때까지 애처롭게 비명을 지르는 분충들을 보는것은 친실장의 얼마안되는 낙이다.  

가을이 되고 작물이 결실을 맺어갈수록 친실장의 한숨은 깊어간다. 수확이 끝나고 나면 진공팩에 담겨 다시 가사상태가 되는것만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이만저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가을은 친실장에게 행운이 찾아온 모양이다. 같은 복장을 한 사람 여럿이 울타리로 들어오더니 독라인 일가를 케이지로 넣는것이 아닌가! 게다가 전에 기둥에 꽃혀버린 일가는 자신의 일가와는 달리 자루에 넣어버리는것이 독라일가들을 중히 여기는 모양새였다.

뜻하지 않은 일에 놀란 친실장은 정신을 차리고 케이지 밖을 바라본다. 자신을 그간 괴롭혔던 똥닌겐은 자신들을 구조한 자들과 비슷한 옷을 입은 인간들 옆에 겸연쩍은 얼굴로 서있으며 건장한 마라닝겐들이 자신과 자들을 그동안 가두었던 감옥을 뜯어내고 있었다. 작물이 이래저래 뭉개진채 처리되는 모습은 조금 언짢았지만, 똥닌겐의 모든것이 부숴지고 있다는 생각에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모든것이 확실해졌다. 드디어 노예닝겐들이 자신을 구하러 온 모양이었다. 이제 살았다. 우린 사육실장이다. 마마가 노래한대로 닝겐노예의 시중을 받으며 우마우마한 것을 맘껏 먹을 수 있다. 따위의 말을 하며 케이지 안에서 독라 일가는 덩실덩실 실장댄스를 추기 시작한다.

S시의 실장석 보호기간은 7일이며 이후엔 소각장에서 폐기처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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