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임신 (폐경)

 

밥을 먹고 있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집 사육실장, 나코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수저를 놓고 나코에게 다가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니?"
"데.. 주이ㄴ니ㅁ.."
"말해봐."
"아..아니ㄴ 데스."

나코는 햇수로 3년이 넘은, 노실장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나이를 지긋하게 먹은 실장석이다. 머리칼은 색이 빠져 회색에 가깝고 눈알의 광채도 흐려져 실장 안경을 쓰지 않으면 장님이나 다름없다. 이빨도 몇개 안남고 빠져 요즘엔 갓난아기 시절에 주던대로 푸드를 우유에 불려 먹게 하고 있다. 말하기도 힘든지 발음이 새고 목소리도 꺼져갈 듯 작다. 그래서 할 말이 있으면 먼저 나를 본 다음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할 말이 생긴 것 같은데, 좀처럼 말할 용기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원래도 수줍음을 많이 타는 녀석이었는데 도대체 뭘 원하는 것일까, 답답해진다. 곧 생일이라 선물을 원하는 건가? 아니, 나코는 그렇게 욕심을 부리는 성격이 아니다. 녀석이 먼저 말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며칠 후 드디어 결심한 듯 나코가 꺼낸 말은 내 예상을 벗어나는 내용이었다.

"주인님, 자..자가 가지고 싶은 데스."



나코는 죽어가고 있다. 삶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평범한 들실장으로 태어났다면 꿈꾸지 못했을, 천수를 다하는 생. 그 끝을 눈 앞에 두고 있다.

나코는 우수했다. 검증된 숍에서 사온 최상급 사육실장의 자질을 가진 개체였다. 훈육받은대로 본능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실장석답지 않은 소박한 천성을 타고난 진정 세레브한 자실장이었다. 성장한 후에도 나코는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떼쓰거나 몰래 임신을 시도하거나 나를 유혹하려는 어떤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나코가 이제 와서 자를 가지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역시 실장석의 본능은 이길 수 없는 것일까.

"왜지, 나코? 넌 이제 늙고 약해. 아이를 낳다가 죽을 수도 있어."
"아는 데스... 하지만, 낳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 데스."
"응?"
"와타시...이제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데스. 와타시가 죽으면, 주인님 혼자 살아야 하는 데스."
"음.. 슬프지만 그렇게 되겠지."
"주인님이 와타시같은 실장석을 다시 키운다면, 와타시의 자였으면 좋겠는데스."
"그리고, 와타시의 몸은 와타시가 아는 데스... 곧 와타시는 자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는 데스. 그 전에 한번이라도 자를 가져서 노래를 불러주고 싶은 데스."


따로 배란하지 않는 생물임에도, 실장석에게 '폐경'이라는 게 존재하는 이유는 일견 간단하다. 나이를 먹어 신체기능이 저하되면 분대의 소화와 임신 능력 또한 떨어진다. 그렇게 되면 생명체로서의 생명 유지를 우선시해 임신 기능이 먼저 없어지고 분대는 소화기관으로서만 작동한다는 것이다.

동물병원에 가서 나코를 보여주자 의사가 이렇게 오래 산 실장석은 드물다며 알려준 말이다.

"아직 임신은 가능해 보입니다만.. 실장석이 스스로 느낀다는 것도 저는 처음 알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자를 낳고 싶다고 한 나코의 말은 진심일 것이다. 그게 내 생각과 일치하느냐는 둘째치고... 아무튼 이만큼 살아오면서 나코가 소원을 말한 적도, 내가 선물을 준 적도 별로 없었다.

마지막 추억을 만들어주기로 했다.


장미꽃 한송이를 사와 나코에게 주고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꽃을 보자마자 얼굴을 붉히는 나코를 보고 나도 괜스레 쑥스러워졌다.

얼마간의 낮은 신음소리가 들리고, 한참 뒤 확인한 나코의 양눈은 다행히 녹색이 되어 있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는 나코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임신한 나코는 무슨 내용의 태교를 들려줄까.


뎃데로게, 뎃데로게~
듣는 데스 와타시는 마마인 데스
귀여운 아기의 마마여서 마마는 행복한 데스우
상냥한 닌겐 주인님과 함께 사는 데스
주인님과 함께면 모든게 행복한 데스우
주인님은 정말 좋은 데스
마마가 없어도, 주인님 말을 잘 듣는 데스우
귀여운 와타시의 아기라면 꼭 잘할 것인 데스우


인간의 지식은 문자의 발명을 통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장석은 문자를 모르는 생물. 그 뻔한 지능에서 나오는 부정확한 구술의 태교는 2대를 쉽게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자라게 한다.

사육실장의 2대가 그렇게 분충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대다수의 친실장이 사육실장이 되기까지의 애환은 싹 생략한 채 현재의 행복만을 전하기 때문이고, 들실장은 반대로 현재의 고달픔을 속이기 위해 실제로 존재하지 않은 행복회로 속의 공상을 노래하기 때문이다.

나코의 노래도 크게 기대되진 않지만 언뜻언뜻 주인님이라는 말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내 얘기를 많이 노래하는 것 같다.

나는 좋은 주인이 아닌데 말이지...


최고급 사육실장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그저 구입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었다. 일단 사육주로 등록되자마자 집에 애호협회 이름으로 꾸준히 편지가 날아왔다. 모월모일에 지역 모임이 있으니 가급적 참가하라는 내용. 모임은 솔직히 즐겁지 않았다. 실장석을 통해 자신의 부와 사회적 위치를 과시하려는 부류와, 실장석을 단지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인형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부류, 사육실장을 인간 이상으로 보고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까지. 그들의 사육실장은 겉으로는 맑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 뒤에 감춰진 썩은 내면이 너무나 잘 보였다.

그에 비해 나코는 사람들에게선 무시당했지만, 실장석들 사이에서는 스타였다. 평범한 옷을 입고 외모도 특출난 점이 없었지만 사육실장들은 나코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들이 애써 연기하는 상냥함과 자애를 꾸밈없이 있는그대로 드러내는 실장석은 나코밖에 없다고, 간신히 친해진 내 또래 애호파 여성이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틈에 질투의 괴롭힘을 당한 듯 나코는 마지막에 항상 훌쩍훌쩍 울면서 모임을 마무리하곤 했다.

나와 나코는 둘다 불편한 세레브 애호파 모임은 관두고 근처 공원에 산책을 가곤 했다. 그곳에 오는 애호파들은 양쪽 모두 평범한 사육주와 사육실장들이었다. 새끼를 거느린 사육실장들도 있었는데 나코는 이 새끼들을 귀여워했다. 나는 그걸 보며 혹시 나코도 새끼를 낳게 해달라고 할까봐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코는 그저 남의 새끼를 보면서 만족해했다.

해가 바뀌고 나코가 늙으면서 우리의 산책은 뜸해졌다. 공원의 멤버는 변동이 심했다. 사육주는 똑같은데 사육실장이 저번과 다른 경우도 있었고, 사육실장이 집을 나갔거나 버리든가 해서 더이상 나오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친구가 하나둘 사라지고, 그녀만큼 오래 산 실장석을 찾기 어려워지자 나코는 뭔가 이해한 듯했다. 이 추한 늙은이는 뭐냐고 비웃음당한 적도 있다. 그 건방진 말을 뱉은 자실장은 그 자리에서 '처분'당했고... 나코는 그 뒤로 그 공원을 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나코의 배는 조금씩 불러왔다. 그래도 마른 몸에 배만 툭 튀어나온 정도라 안의 새끼는 두세마리 아니면 더 적은 듯하다. 늙은 분대가 많은 태아를 담을 능력이 없어졌을 것이다.

점점 뱃속의 새끼의 실감이 나는지 나코의 노래는 힘이 들어갔다. 목소리도 약간 커진 듯하고, 식사량도 많아졌다. 거동이 불편해진 나코를 위해 집이 푹신하게 쿠션을 더 넣어준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뱃속의 두 자는 듣는 데스우
상냥한 마음을 잃지 마는 데스
세상의 모든 살아있는 것은 친구인 데스우
서로서로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데스
누가 비웃어도 흘려버리는 데스
와타시타치만 서로 아낀다면 걱정없는 데스우


성체로 성장하고, 예의 다른 실장석들과의 사건을 겪으며 나코는 눈에 띄게 차분해졌다. 자아가 성숙하면서 보이는 정신적 '독립'과는 또 다른, 어떤 쉽사리 말못할 느낌이었다. 집안에 틀어박힌 나코가 안타까워 내가 없을 때 심심함을 달랠 수 있도록 TV를 새로 사서 조작법을 가르쳐주었다. 본래 집안 물건은 하나도 다룰 줄 모르던 나코고 나도 원하지 않았던 바지만, 어떻게든 익혔다.

나코는 그로부터 하루 종일 TV를 보게 되었다. 애호파용 실장석 채널은 수신료도 만만찮고 별로 바람직하지 못한 내용 투성이라 결제하지 않았다. 나코가 좋아하는 방송은 아침 드라마와 뉴스였다. 인간 세상의 일이 실장석에게는 이해 못할 것 천지일텐데도 나코는 화면이 뚫어져라 집중해서 보곤 했다. 가끔 나에게 설명을 구하며. 그렇게라도 부쩍 말수가 준 나코와 대화할 수 있어 조금은 안도감이 들었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자들은 듣는 데스
바깥 세상은 위험한 것이 많고 많은 데스우
멋대로 나가면 슬프고 슬픈 일을 당하는 데스
언제든지 주인님 곁에 있는 것을 잊지 마는 데스우
주인님은 우리를 지켜주는 데스
주인님만 믿으면 되는 데스
와타시타치는 주인님이 전부인 데스우


시간이 무르익어 슬슬 출산이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쯤, 다시 나코가 말을 걸었다.

"주인님, 산책하고 싶은 데스우."
"밖에 나가기 싫어하지 않았어?"
"자들에게 바깥을 가르쳐주고 싶은 데스."

만삭인 몸으로 혼자 걷는 건 무리다. 어릴 때 태워서 다니던 먼지쌓인 실장 유모차를 꺼냈다. 조금 불편해보여도 억지로 들어가 있을만은 했다. 예전에 산책나가던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으로 가는 길 하나하나를 눈에 담으려는 듯 나코는 연신 두리번거리며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어느덧 공원에 도착했다. 알맞게 선선한 날씨 속에 볕이 잘 드는 풀밭에 자리를 깔고 나코를 앉혔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에 나코도 감회가 새로운 듯 노래하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러다 불쾌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저분한 들실장이 겁도 없이 공원 한복판을 의기양양하게 걷고 있었다. 한손에 든 줄 같은 것이 뒤따라 끌력나느 초라한 독라의 목을 감고 연결되어 있었다. 원래 독라의 것이었을 목줄이다. 자세히 보니 다른쪽 손에 방금 벗긴 듯한 옷이 들려 있었다. 분명 사육실장을 기습하여 제압하고 노예로 삼으려고 끌고 가는 상황이다.

'데프프프프, 사육분충을 잡았으니 올해 겨울도 안심인 뎃스우-'

멀어서 들리지는 않았지만 필경 이런 말을 중얼거리며 히죽대고 있으리라. 나코도 이걸 보고 있을까 그쪽을 돌아본 순간.

"내버려두는 데스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나코가 말했다.

"저 친구는 이제 그른 데스우. 버려진 걸지도 모르는 데스. 아니면 멋대로 제 주인 몰래 다니다 저런 꼴을 당했을 게 틀림없는 데스우. 어떤 쪽이든 저 자에겐 이제 피할 수 없는 데스."

평소의 착한 나코의 입에서 나오리라곤 상상할 수 없던 차갑고 매몰찬 말이었다. 그것보다 나코가 이렇게 논리적인 주장을 할 수 있었는지가 놀라웠다. 세레브한 것은 성격뿐 지능은 순박한 실장석 그 자체라고 생각했는데.

나코는 왠지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갔다.

"와타시.. 티비씨를 보며 알아버린 데스우. 닌겐상들은 와타시타치를 싫어하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닌겐상들을 속으로는 미워하는 데스. 그동안 만난 친구들도 그랬던 데스. 그뿐만이 아닌 데스. 닌겐은 서로 미워하는 데스. 속이고 싸우고 죽이는 데스. 와타시타치도 마찬가지인 데스우. 세상은 무서운 일 뿐인 데스."

어느새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와타시는 몰랐던 데스. 주인님과 있으면 행복한 데스. 하지만 와타시도 자를 가지면, 자들이 와타시를 싫어하면 어떡하는 데스? 걱정된 데스. 주인님이 와타시의 자들을 싫어하면 어떡하는 데스? 와타시는 알 수 없었던 데스. 그래서 와타시, 자를 가지고 싶지 않았던 데스."

멀리서 억울함과 비통함이 섞인 실장석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그러다가 생각한 데스. 와타시는 죽어도 주인님은 사는 데스. 와타시와 주인님은 행복했던 데스. 하지만 주인님이 다른 실장석을 기르게 되면 다른 데스. 주인님의 새 실장석은 속으로 주인님을 미워하는 나쁜 아이일지도 모르는 데스. 좋아하는 주인님이 그런 아이 때문에 아파하는 건 싫었던 데스. 와타시는 결심한 데스. 마지막으로 아이를 낳아서, 와타시가 없어도, 주인님을 꼭 행복하게 해줄 아이로 기르겠다고... 데에에엥..."
마지막 말은 복받쳐나오는 울음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나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지금 생각하면 의도만 다를 뿐 전형적인 실장석의 사고방식이지만, 내가 어떻게 나코의 고결한 마음을 비난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 감정에 취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다. 나코의 양쪽 눈이 붉게 변색하고 있었다.

"나코, 너???"
"뎃?"

아뿔싸, 현실로 돌아왔을 때 상황은 너무도 급했다. 유모차도 자리도 내팽개치고 나코를 안고 달렸다. 불결한 공중 화장실에서 나코가 아이를 낳게 할 수는 없었다. 숨이 턱턱 막혔지만 달렸다. 내 품에 안긴 나코는 힘겹게 숨을 내쉬며 총구가 벌려지지 않게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끊어질 듯 말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더 애처로웠다.

"뎃..데로게... 조..금..만.. 기다리는 데...스..우.."



가까스로 집에 도착해 나코를 쿠션 위에 앉히고 출산 준비를 서둘렀다. 대야에 물을 받고, 나코의 옷을 벗겨 물 속에 가라앉혔다. 나코는 이번에는 꽉 조여진 총구를 벌리려 힘을 주고 있었다. 얼마나 버텼으면 가벼운 마비가 온 것이었다.

태어날 때가 다가온 태아는 모체와 연결됐던 태반에서 떨어져 총배설구 쪽으로 내려온다. 보통은 가볍게 배출되지만 어떤 사정으로 체내에 오래 머물게 될 경우, 더이상 태아로 인식하지 않은 분대 속에서 최악의 경우엔 소화될 위험이 있다. 이런 난산의 경우 간단하게 '제왕절개'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나코같이 늙은 실장석에게는 그대로 죽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나코가 힘내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1초가 1년같은 격투 끝에, 드디어 총구가 열리며 두마리의 자실장이 풍덩 물로 나왔다.

"텟테레~"
"텟테레~"

기진맥진한 나코에게 한마리씩 안겨주었다. 마지막 힘을 짜내 점막을 벗겨주는 나코.

"태..태어난 데스. 와타시가 마마인 데스."
"테츄웅~"

어미의 혀놀림이 간지러운지 방긋 웃는 두 자실장을 번갈아보며, 나코는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대야에서 꺼내 몸을 닦아주고, 쿠션 위에 나코와 두 자실장을 앉혔다. 나코는 가슴으로 새끼를 가져가 젖을 물려주었다.

"행복한 데스.. 자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데스. 와타시의 이름에서 따오는 데스. 장녀는 나나, 차녀는 코코인 데스. 앞으로 오마에타치의 이름인 데스."

"테쭈쭈.."

그리고 나코는 다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것까지 지켜본 나는 마음을 놓고 출산으로 더러워진 대야를 씻고, 체력이 떨어진 나코를 위해 준비해둔 영양제를 찾았다. 어느새 노랫소리가 끊겼다는 사실에 신경을 쓰지 않은 채.

다시 나코들에게 돌아왔을 때의 참혹한 모습을 잊을 수 없다.


나코는 눈을 부릅뜨고 혀를 빼문 채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그 두 눈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공기가 빠져나가 쭈글쭈글해진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가슴을 제외한 모든 부분이 말라붙었다. 나코가 이름을 지어준 두 새끼, 나나와 코코는 그 사실도 모른 채 젖을 빨다 그대로 잠들어 있었다. 이 순식간에 벌어진 참상에 내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을 때 시리도록 맑은 소리가 났다.

'파킨'

나코의 마지막 생명이 스러지는 소리였다.

나코는 아기들을 건강하게 낳고자 최선을 다했다. 그 마음이 몸에도 영향을 주었는지 섭취하는 영양은 모두 태아에게 향했고 나코는 속으로 수명을 갉아먹고 있었던 것이다. 감정이 격해진 데서 비롯한 갑작스러운 출산은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와 체력 소진을 불러왔다. 마침내 태어난 건강한 아기들을 위해 마지막 힘을 모유를 분비하는 데 쥐어짠 나코의 몸은 순식간에 말라비틀어졌다.


며칠 후 애호파 협회에 전화를 걸었다. 나코의 사육실장 등록을 말소하기 위해서였다.

목놓아 울고 싶은 기분이었다.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싶었다. 조금만 더 빨리 영양제를 주었다면, 아니 나코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면, 나코는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코는 죽었고, 이 모습을 방금 태어난 아이들이 본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조심스럽게 나나와 코코를 나코의 집안에 들였다. 마마의 냄새가 가득한 아늑한 쿠션에 눕혔다. 그리고 나나의 시신을 수습했다. 부질없는 행동인 것을 알면서도 옷을 입히고 눈을 감겼다. 내 방으로 옮긴 나코의 시체 앞에서 나는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이름-나코, 연령-생후 3년, 구입처-XX세레브숍, 사망원인-출산후유증, 출산경험-1회.. 간단한 사항의 문답이 이어지고 상담원이 이런 말을 덧붙였다.

"최고급 사육실장이 사망했을 시에는 그 시체와 위석을 실장석 연구에 기증하시고 소정의 사례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동일 숍에서 동급의 사육실장을 분양받을 수 있는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해드리고요. 원하신다면 그 아이들을 위한 무료 훈육 프로그램도 안내해드릴까요?"

나는 모두 거절했다. 나코의 마지막이 보건소의 불구덩이일지라도 저들의 연구대상으로 줄 수는 없다. 물론 나나와 코코가 있는데 다른 사육실장도 무의미하다. 훈육? 나코의 태교말고 또 무엇이 필요하단 거지?


전화를 끊고 생각했다. 나코가 얘기했던 그 다른 실장석들을, 나는 알고 있다. 나코를 만나기 전에 길렀던 실장석들을 통해 나는 실장석을 깊이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실장석은 어차피 자기 위주일 뿐인 생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계속 실장석을 기른 건 내 삶의 공허함을 어떤 방식으로든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실장석과는 다른 나코를 마음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진심을 다 주지 않았다. 그저 비싼 게 돈값한다는 감상 또는 귀찮지 않아 좋다는 느낌으로. 하지만 나코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 수록 소중한 기분이 들었다. 나코는 어쩌면 이런 내 내면마저 꿰뚫어본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위해 아이를 낳았던 것일까.

모르겠다. 나는 실장석을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나나와 코코가 가르쳐줄 것이다. 제 어미를 쏙 빼닮아 나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사이가 정말 좋은 쌍둥이 자매가 내 곁에 있다. 나코의 뜻은 이 두 딸에게 이어졌다는 것을 믿고 있다. 나코도 그것으로 됐다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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