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실장

 

그 친실장은 너무도 물렀다.

친실장의 친실장은 매우 똑똑한 개체였다. 봄에 낳은 자들 중 가장 뛰어난 자를 남기고 일찌감치 전부 솎아내 생존에 필요한 모든 지식을 빠짐없이 가르쳤으며 자 역시 잘 배웠다. 아니 오히려 그 친실장보다 머리가 좋았다. 사육실장으로 태어났다면 분명 최고급 도우미 실장이 되었을 지능이었다. 그래서 문제없이 독립하여 임신하고 자들을 낳아 현재의 친실장이 되었다. 성공적인 들실장생이었다.

하지만 이 친실장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하나 있었다. 자들에게 물렀다는 것은 다른 어설프게 양충인 실장석에게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결점이었다. 하지만 이 친실장의 것은 결이 조금 달랐다. 그것은 지능이 높은 인간에게도 종종 보이는 문제였다. 어미를 제외한 다른 실장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자신이 현명하니까 다른 실장석도 똑같이 현명하리라는 착각을 한 것이다.

분명 뛰어난 자만 골라내 기르라는 가르침을 받았지만 자신의 태교를 과신해서 태어난 자들을 엄지까지 솎아내지 않고 그대로 키웠다. 자들이 부족한 점을 보여도 똑똑한 자신이 공들여 교육하면 따라올 것이라 믿었다. 엄지가 언니들에게 괴롭힘당하고 비뚫어져도 타이르면 그만둘 것이라 믿었다. 밖은 위험하니 나가 놀지 말라고 일러두면 들을 것이라 믿었다.

자들이 친실장의 충고를 무시하고 나와 놀다 모조리 잡아먹히거나 노예로 끌려간 날, 친실장이 집에 돌아와 본 것은 오도카니 집안에서 떨고 있는 엄지의 모습이었다. 이미 괴롭힘당하는 자신을 편들어주지 않는 어미에 대한 원망만이 가득한, 쓸모없는 작은 엄지일 뿐이었지만 친실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자실장까지 길러내면 착한 아이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들실장이라면 엄지까지 솎아내고 늦기 전에 새로운 자를 낳으려고 할 것이다. 친실장의 특유의 자존심이 이것을 용납하지 못했고, 이미 오기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단단히 닫아둔 보존식 상자 뚜껑을 열려고 애쓰는 엄지의 모습을 스물여섯번째로 목격했을 때, 친실장은 마침내 포기했다. 아무리 가르쳐도 알아먹지 못하는 이 분충을 남겨둔 것은 자신의 실패라고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친실장은 이해심이 약간 부족할 뿐 기본적으로는 애정이 있었다. 스스로 솎아내는 대신 인간에게 탁아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이었다.

똑똑한 들실장답게 친실장의 탁아는 조심스럽고 완벽했다. 엄지가 들어간 봉투를 든 인간은 딴 곳에 정신이 팔려 탁아당했다는 사실을 집에 돌아갈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친실장은 집에 돌아가 스스로 코에 운치를 묻히고 뒹굴었다. 엄지의 약한 냄새는 금세 사라졌다. 이제 친실장이 엄지가 탁아된 집으로 찾아가기는 불가능했다. 그정도로 친실장은 물렀지만 똑똑했다.

하지만 두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오로롱... 마마, 와타시는 실패한 마마인 데스우. 어떡해야 하는 데스."



"으응? 이게 뭐야!!"

편의점 봉투를 열어본 남자는 포장을 뜯으려다 어느 하나도 제맘대로 되지 않자 벌러덩 누워 울고 있는 엄지를 보고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일단 먹을것을 지킨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 봉투 안에 있는 존재. 실장석의 탁아를 당한 것도 처음이었고 오며가며 본 실장석이라고는 큼지막하고 못생긴 성체 들실장밖에 없었기 때문에 지금 보고 있는 생물이 실장석인지 아닌지도 헷갈렸다.

내려다보는 인간의 시선이 느껴지자 엄지는 울음을 멈추고 일어나 짖기 시작했다.

"레챠아앗! 닌겐!! 이게 뭐인 레챠!! 어째서 먹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레치! 어서 우마우마를 대령하는 레치! 마마가 닌겐의 집씨에서 우마우마도 아와아와도 실컷 할 수 있다고 한 레챠!!"

다른 인간이 보았다면 망설임없이 학대 코스로 직행했을 발언이었지만 링갈이 없는 인간의 눈에는 얼굴에 눈물자국을 남기고 짧은 팔다리를 동동 구르며 레치레치 떠드는 엄지의 모습이 무언가를 간곡히 호소하는 것으로 보였다.

"흠. 이렇게 작은 건 처음인데, 자세히 보니 귀엽잖아.."

자기가 귀엽다고 착각하는 실장석들 가운데서도 가장 증상이 심한 엄지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게 엄지는 객관적으로 귀엽다 할만한 요소를 제법 갖추고 있다. 작은 얼굴 안에 이목구비가 오밀조밀 들어가 있어 큰 눈이 더욱 돋보이고, 우지챠에서 팔다리만 삐져나온 꼴이라 머리통의 비율이 큰 것이 앙증맞다. 더구나 현명한 친실장 밑에서 자랐으므로 들실장치고는 냄새가 적고 단정한 용모인 것도 플러스였다.

"한번 길러볼까."

툭.

"레챠아앗!!"

엄지가 떨어진 곳은 빈 반찬통이었다. 잠시 남자가 내버려둔 동안 엄지는 통 안을 둘러보고 이곳이 인간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집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불투명한 벽 사이로 심통이 가득한 엄지의 외침이 울린다.

"닌겐!! 무례한 레치!! 귀여운 와타치를 모실 때는 더 세레브한 집씨를 준비해야 하는 레챠!!!"

하지만 남자의 눈에는 벽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엄지의 화난 표정이 왜곡되어 비쳤다.

"하하. 몹시 기쁜가보네. 음. 뭘 주면 좋아할까."

툭.

"레에?"

"사탕이면 되겠지."

당연히 사탕은 들실장인 엄지에게 처음 먹어보는 특식. 금방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풀리며 정신없이 핥는다.

"치프프... 아는 레치. 이게 아마아마인 레치. 이걸로 누추함을 사과하는 레치? 이번만 특별히 봐주는 레치. 내일은 제대로 된 보금자리를 대령하는 레치."

역시 모르는 인간에게는 단순히 웃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다.

"착하게 잘 먹네. 내일은 흙을 구해올게."
"레에?"


야생의 환경과 똑같이 꾸며주기로 마음먹은 남자와 엄지의 생각은 완벽한 평행선을 달렸다. 그러나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엄지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애초에 남자는 링갈의 존재를 알았어도 이렇게 하찮은 엄지와 대화할 생각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남자가 말뜻을 알아먹지 못하는 이상 엄지가 무슨 생각과 말을 하건 엄지이기 때문에 무시당했다. 떼를 쓰고 위협해도 남자는 싱글싱글 웃기만 했다.

그렇게 골판지집보다 약간 나은 반찬통에서 살던 엄지는 문득 친실장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레에엥... 마마. 이런 건 사육실장 실패인 레치... 어떡해야 하는 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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