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살실

 

어느 주말 오후, D 공원의 한 일가의 집에선 여느 실장석과 다를바 없는 일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테챠앗! 일하느라 배고파서 그랬던테치! 며칠째 잡초만 먹었던테치 마마! 보존식 근처에도 안가는테치! 그냥 운치먹는테치! 살려주는테챠앗!"

"장녀라도 봐주기 힘든데 추자년 주제에 저장고 근처를 서성거린데스? 오마에에겐 운치도 사치인데스. 그냥 보존식으로 만들어주는데스. 지금부터 말리면 겨울씨가 시작될때쯤엔 분명 아마아마해질것인데스~"

"치프픗. 가을분충주제에 손을 쉬니 저리되는거인테치. 뭘 구경하고 앉았는테치? 오마에도 저녀석 옆에서 쉬고싶은테치?"

월동 대비 하우스 공사를 시켰던 추자 중 하나가 배고픔을 못이기고 음식냄새에 이끌려 보존식 저장고에 홀린듯 다가갔다가 친실장에게 붙들렸다. 옷은 추자가 처음 집에 도착하는날에 압수해놨기 때문에 친실장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추자의 머리털을 뽑고 총구에 나뭇가지를 박은채로 하우스 한쪽 구석에 세워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 몸무게에 의해 파고드는 나뭇가지에 고통받는 추자의 모습과 울음소리는 나머지 추자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것이다.

작업을 마친 친실장은 이윽고 한 인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간 봐왔던 학대파들의 음침한 모습도, 애호파들의 세레브한 모습도 아닌 안경을 쓴 말쑥한 차림새의 인간이었다. 어찌되었건 겨울을 대비하는 중 인간과의 접촉이 적을수록 좋았기 때문에 친실장이 어찌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는동안 인간쪽에서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 실장석. 너희한테 일을 하나 맡기고자 하는데 괜찮을까?"

"와따시에게 선택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보는데스."

"평소 보이는 녀석들보다는 확실히 머리가 도는구나. 내가 기르는 사육실장들을 죽여주었으면한다."

의외의 말에 친실장은 생각이 잠시 멈췄다. 자기 사육실장을 죽여달라니? 사육실장을 기르는자는 모두 애호파 아니었던가? 이 인간은 학대파였던걸까? 그랬다면 자신은 어떻게 살아있는것일까? 의문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친실장은 거래를 계속하기로 마음먹었다.

"... 추자를 부릴때도 잡초정도는 주는법인데스. 무엇이 대가인데스?"

다른녀석들이라면 그 똥분충을 죽여줄테니 자신을 사육실장으로 하라고 했겠지만, 친실장은 자기 사육실장을 죽여달라 청부하는 인간이 그런걸 들어줄것같지는 않았다. 들어주더라도 언젠가 비슷한 청부로 자신을 고깃덩이로 만들거란 생각에 다른것을 받아내기로 하였다. 

"내눈에 띄인 너희들을 살려줄게"

"뎃?!"

"하하 농담이야. 이래봐도 내손으로 벌레도 못잡는 사람이다. 겨울을 대비하는 모양인데 식량과 간식, 옷과 이불을 제공해주도록하지. 저기 꽃혀있는 벌레도 식량이 모자라서 그런것 아닌가? 내가 주는 물건이면 하우스 공사에만 전념할 수 있을거다."

"사육실장을 건드린 녀석치고 살아있는 녀석이 없는데스. 대책은 있는데스?"

"그건 너희들이 노예를 만드느니 고기를 먹느니 하면서 그자리서 시간을 허비하니까 걸려서 죽는거지. 죽여버리는대로 자리를 떠라. 그러면 근처의 다른놈이 뒤집어 쓰겠지. 뭐 누가 보고있을 위험도 있긴 할테니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괜찮다"

친실장이 생각하기에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항상 죽여버리고싶었던 사육분충들을 인간들의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일수도 있고 그 보상도 있다. 저기 꽃혀있는 분충도 평소같았으면 좀 쥐어박고 다시 일시키면 될것을 생각보다 부족했던 보존식때문에 열이 좀 받아서 그런것이었다.

"하는데스. 약속은 지켜주길 바라는데스."

"좋아. 성체 한마리 자실장 셋이다. 내일 이맘때쯤 산책나올텐데 가슴께에 빨간 병뚜껑 장식이 붙어있을거야. 녀석을 죽이고 그 장식을 내게 주면 약속한 물건을 주도록 하지. 이틀후에 오겠다. 너희들의 표현으론 해씨가 두번뜰때였던가?"

"병뚜껑 장식. 알겠는데스."

"아무 병뚜껑이나 가져오면 안된다. 내가 붙일거니까 알아볼 수 있어. 혹시 필요한건 있는가? 너희들은 못을 주워서 무기로 쓴다고 들었다."

"보검이라면 와따시도 가지고 있는데스. 하지만 장녀용으로 하나 주시면 좋을것같은데스."

"알겠다. 마침 가져온것도 있으니 하나 주지. 그리고 이건 친해진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다."

인간은 깨끗한 대못 하나와 실장푸드 한봉지를 주고 돌아갔다. 학대파가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의외의 수확을 거둔 결과에 친실장은 기분이 좋아져 그날 추자들은 매를 한대라도 덜맞는 행복한 날을 지낼 수 있었다. 

다음날 친실장은 차녀를 추자 감시용으로 집에 놔둔채 장녀와 함께 공원 입구근처 덤불속에 숨어있었다. 인간이 내일 이맘때라고 했지만 실장석에겐 그게 언제인지 알길이 없었으므로 그냥 아침부터 대기하기로 하였다. 몇몇 사육분충들이 지나갔으나 실장석의 숫자가 맞지않거나, 장식이 없었으므로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마마 녀석들이 온테치! 빨간 병뚜껑을 단 분충들인테치!"

"장녀는 조용히 하고 마마를 따라오는데스. 장녀는 이번에 사냥방법을 제대로 익힐 수 있도록 하는데스"

슬슬 기다리는것도 지겹고 인간이 우릴 놀린건가 의심할 때쯤, 장녀가 친실장을 불렀다. 친실장은 장녀를 조용히 시킨 후, 사육분충들이 자신들 앞을 지나가도록 대기하다가 뒤에서 습격하였다. 자신은 사육성체를, 장녀는 사육 자실장중 장녀로 보이는 가장 큰녀석부터 목표로 하였다. 

"뎃!", "텟!"

"테챠아아앗! 마마! 오바상은 뭐인테치! 왜 와따시의 마마를... 테벳!"

"살려주는테치! 살려주는테치! 테챠아아앗!"

"오마에들에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는데스. 이건 단지 사업일때문인데스."

온실속 화초나 다름없는 사육분충들은 경계심이라곤 눈꼽만큼도 없었기에 뒤에서 보검을 찔러넣는 것으로 쉽게 끝낼 수 있었다. 다른 실장들이면 이 다음으로 사육실장의 옷을 뺏어입거나 고기를 탐하거나 하는것으로 시간을 낭비하다가 인간들에게 걸려 실각당했겠지만 청부실장은 인간에게서 받은 충고도 있고 받아낼 보상도 있었기에 얼른 자리를 떠났다. 사육실장의 사체는 다른 실장이 처리해줄것이다.

"여기 빨간 병뚜껑인데스. 약속한 물건을 주시는데스."

"좋아. 내가 달아준 그것이 맞군. 다행이 말해준대로 바로 자리를 떴었군. 들실장들이 사육실장을 뜯어먹고있다가 구제당했다고 들어서 혹시나 했지."

다음날 친실장은 자신을 찾아온 인간에게 병뚜껑을 넘기고 실장푸드 포대와 콘페이토 봉지, 새 실장복과 실장석용 이불 및 모포를 받았다. 친실장은 기쁨을 감출수가 없어 실장댄스가 절로 나오는것 같았다. 이번 겨울은 추위와 배고픔 따위 잊고 지낼수 있을것이었다. 게다가 이 많은 콘페이토란! 분명 운치굴의 추자와 엄지, 구더기도 품질좋은 운치에 기쁨의 눈물을 감출 수 없을것이다.

남자도 기쁜 마음이었다. 아이가 불쌍하답시고 대려온 실장석이 안그래도 분충같이 행동하는 와중에 새끼를 까면서 더욱 건방져졌었다. 버리기엔 자식과의 관계가 소원해질것이고 자기손으로 죽이는것은 확실히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선택한것이 공원에 산책나갔다 불의한 사고로 목숨을 잃도록 하는것이었다. 병뚜껑으로 만든 허접한 장식을 달아주면서 이 세레브한 장식을 공원의 미천한것들에게 자랑하는게 어떻겠느냐는 바람을 불어넣자마자 분충녀석은 자식들을 데리고 공원으로 나갔고, 죽어버렸다. 청부실장에게 준 물품들은 사육실장을 위해서 샀던 물건들이었기에 오히려 처리비용이 굳었다.

"아 잊어버렸네. 이것도 줄게 잘 가지고 있도록. 혹시나 너희들이 먹지는 말고."

"코로리인데스?"

"그래. 머리 좀 도는녀석들은 침입자 대응용으로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군. 아니면 세상을 미련없이 떠나는데 사용할수도 있겠지. 콘페이토보다 훨씬 달아서 행복하게 갈 수 있다고한다."

남자가 떠나기 전 잊어버렸다면서 친실장에게 콘페이토 한봉지를 더 주었다. 친실장은 글자를 읽을수는 없었지만 포장지의 그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분명 실장석을 그린듯한 그림이었지만 불길한 느낌을 주는것이었으니까.

청부실장은 가을이 끝나갈 무렵 하우스의 공사를 끝마칠 수 있었다. 작년에는 보존식 구하랴 보온재 구하랴 바빠서 첫눈이 오기 바로 전에나 끝낼 수 있었지만 올해는 풍부한 식량이 있었기에 작정하고 추자들을 다그쳐서 공사를 일찍 끝낼 수 있었다. 추자들도 씹기힘든 잡초를 먹다지쳐 나뭇가지에 꽃히느니 영양가있는 운치를 먹고 일하는것을 택했다. 덕분에 겨우내 운치굴에서 잘 적응해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월동이 예정되어 있었다.

"하안악마가 온데스! 모두 도망치는데샤아악!"

청부실장의 꿈은 하우스 밖에서 들려오는 외침에 산산이 조각났다. 남자의 아내가 관공서에 구제 민원을 넣은것이 이제야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었다. 자신들의 사육실장을 죽인 녀석들은 현장에서 처리당하였지만 그녀는 동족을 때려잡아먹는 공원의 실장석 전체에 환멸을 느끼고 구제민원을 넣었다. 관공서 입장에서도 추워지기 전에 구제를 실시하는것이 작업자의 입장에서도 좋고 효과적일거라 판단하여 일을 시작한 것이었다.

관이 나선만큼 실장석에게 도망갈 구멍따윈 없었다. 어느곳에서건 비명이 들려오고 그 비명은 자신의 집에 가까워지고있었다. 친실장에겐 자신이 한일과 하얀악마의 출현의 관계를 이해할 머리는 없었지만 인간의 내키지 않는 선물을 받아들여야 할때임은 알 수 있었다. 인간의 말대로, 끝은 확실히 행복하였다.

구제가 끝나고 며칠 후, 남자는 개를 데리고 공원산책을 나왔다. 그간 남자는 실장석이 워낙 제멋대로인 동물이기에 멋대로 나가서 죽어버리기 마련임을 가족에게 설명하였다. 그리고 말잘듣고 실장석따위에게 잃어버리지 않을 개를 새로운 애완동물로 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공원 산책 중 청부실장의 하우스가 있던 자리를 보며 남자는 한마디 중얼거렸다.

"고맙군. 덕분에 가정도 지키고 공원도 깨끗해질수 있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