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르는 사육실장 '해쉬'는 올해로 네살이 넘은, 말하자면 노실장이다. 실장석치고는 얌전한 성격이어서 기르는 동안 별 트러블 없이 잘 지내왔다. 새끼를 낳아서 잠깐 기르다 그 아이들을 각각 다른 집에 주어버렸을 때 펑펑 운 게 전부다. 해쉬의 새끼들은 성체가 된 이후 저마다의 이유로 친실장보다 오래 살지 못했지만 해쉬는 그저 자들이 건강히 살아 있다고만 믿고 있다.
요즘 고민이 있다면 역시 해쉬의 건강 문제다. 실장석의 노화는 인간보다 훨씬 빠르다. 인간의 수명을 20분의 1로 압축시켜놓은 듯한 과정이니 당연한가. 하루하루 무거워지는 몸과 침침해지는 시야, 흔들거리는 이빨이 점점 해쉬를 울적하게 만드는 게 보여 안타깝다.
해쉬는 좋아하던 산책을 포기하고 집안에서 그림책을 읽거나 티비를 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죽음을 다룬 이야기에 더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물론 동화에서 자세히 다룰 리가 없으니 나만 피곤해졌다.
"주인님, 이야기를 듣고 싶은 데스우."
내가 고생해서 찾은 이야기들 중 해쉬의 관심을 확 잡아끈 것은 스완 송, 즉 일생 동안 울지 않는 백조가 죽기 직전 딱 한번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실이 아닌 이야기고, 걸핏하면 엉터리로 노래부르는 실장석에게 빗댈 말은 더더욱 아니지만, 무언가 필생의 대작을 완성하고 삶을 마감한다는 것이 해쉬에겐 아름다워 보였을 게다.
그리고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을 때 해쉬의 집쪽에서 작게 억누른 노랫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데엣, 데. 데로게...
듣다 못한 내가 해쉬에게 가자 나쁜짓을 하다 들킨 어린애마냥 화들짝 놀라 머리를 연신 조아린다.
"데뎃!! 죄, 죄송한 데스우. 조용히 하겠는 데.."
"그래, 조용한 공간이 필요하단 거지?"
"데?!"
며칠 뒤 주문한 실장용 방음부스가 도착했다. 이런 물건이 그렇듯 더럽게 비쌌지만 그동안 잘해준 해쉬에게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니 아까움이 덜했다. 다른 애호파의 사육실장들은 이런 상자 안에 들어가 꽥꽥 노랠 부르거나 욕을 해서 스트레스를 푸는 모양이다. 해쉬는 평소에도 조곤조곤한 타입이라 그럴 필요가 없었지만. 너무 오래 안에 있다가 질식하지 않도록 사육주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건 좀 귀찮다.
해쉬는 하루에도 몇번씩 부스에 들어가 떠들었다. 실장석이 생각하는 생애 최후의 노래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굳이 방해하지 않았다. 피할 수 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살고 싶다며 추하게 발버둥치는 것보다 저렇게 뭔가 준비하는 게 대견할 뿐.
종막은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나는 거실에 있고 해쉬는 평소처럼 부스에 들어가 있는데 갑자기 쾅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리고 해쉬가 그 앞에 엎어졌다. 놀라서 다가가니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위석을 담아둔 병을 보니 부들부들 떨며 기포가 맺히고 있었다. 올 것이 왔다.
해쉬가 힘겹게 입을 뗐다.
"주인님....괘, 괜찮은 데스우. 와타..시를... 거실로.. 옮겨주시는 데..에...콜록.."
해쉬를 조심히 안아 소파에 앉혔다. 조금 호흡은 안정됐지만 위석의 떨림은 여전했다. 무서운 속도로 병에 담아둔 영양제가 줄어든다.
해쉬는 약간 차분해진 목소리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인님, 주인님과 함께여서 정말 행복했던 데스우. 감사한 데스. 아무리 말해도 모자랄 것인 데스우. 하지만 와타시,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건 싫었던 데스우. 아는 데스. 와타시의 자들은 모두 슬픈 일을 당했을 것인 데스우."
이녀석. 알고 있었던 건가.
"주인님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는 데스. 와타시는 귀여운 자를 남기지 못했지만 마지막으로 준비한 노래를 들려드리고 가는 데스우. 잘 들어주시는 데스우."
해쉬는 자기의 남은 생명력을 짜내는 듯한 분명한 목소리로 생애 최후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뎃데데 데데뎃데, 데롯게~롯게.
노래라기엔 리듬이 너무 괴상하다...라고 느끼는 순간, 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랩이구나.
해쉬가 자라며 들은 노래라는 게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힙합 음악이긴 하지만.. 해쉬의 저 발성과 플로우는, 키가 유난히 작고 코먹은 듯한 톤이 특징인 한 래퍼를 떠올리게 했다.
링갈에는 너무 빨라서 번역이 안 되는 건지, 빠르게 말하다보니 발성기관의 한계로 뭉개지는 것인지 의미불명의 문자들이 표시된다.
하지만 나는 해쉬의 노래에 토를 달 수 없었다. 이건 분명 해쉬가 주인인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곡을 준비해 바치는 노래. 전무후무한 실장석의 랩송이니까.
나는 급하게 해쉬의 랩에 맞춰 노래를 찾아 틀었다. 비트 위에 깔리는 원 래퍼의 랩과 실장석 해쉬의 노래가 마치 더블링하듯 집안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노래가 끝났다. 적막만이 찾아들었다. 해쉬는 만족한 표정으로 그대로 눈빛이 흐려진다. 아니 내 시야가 흐려진 걸지도 모른다. 뒤이어 울려퍼지는 청명한 소리.
파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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