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피스톤 관찰일지 1~2

 

내 이름은 도시악귀, 생물학 교수 쥬디 호수의 운치노예인 대학원생이다. 달콤한 콘페이토를 줄 것 같이 푸근한 인상이었던 교수님의 감언이설에 속아 운치굴로 스스로 기어들어간 똥분충인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교수님의 연구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참피스톤 국립공원까지 들어와서 열심히 산을 타고 있다.

명색이 국립공원인데다 참피스톤엔 다른 곳에선 찾아볼 수 없는 괴상한 희귀생물들이 잔뜩 살고 있기 때문에 출입 허가는 쉽게 받을 수 없다. 하지만 내게는 행운인지 불행인지 쥬디 호수 교수님은 참피스톤 국립공원의 설립에 직접 자문을 맡으셨을 정도로  실장학의 권위자였고 그 노예인 내게도 출입 허가는 쉽게 떨어졌다. 젠장!

밀렵 도구는 소지하고 있지 않은지 간단한 소지품 검사와 호신용 총(국립공원엔 악어와 곰,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괴물까지 살고 있으니 총은 필수다)의 등록까지 마친 뒤 나는 드디어 국립공원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다. 실장석의 위석을 이용해 안티 카오스 에너지를 뿜어내는 방벽 기둥들 사이를 지나자 곧 사방에서 들려오는 실징석들의 울음소리. 자연스럽게 한숨이 나왔다.

느긋하게 강을 따라 가기로 결정했다. 강둑을 따라 자란 오래된 수령의 나무뿌리 밑엔 실장석들이 굴을 파고 살고 있을 것이다. 첫날부터 힘을 뺄 필요는 없겠지. 발견하고 관찰하기 쉬운 놈들부터 찾아가보기로 하자.


<데슷? 데스데스...>

<테프프, 마마가 바보같이 코를 벌름거리는 테치>

그 말에 눈을 부릅 뜬 친실장은 곧바로 자신을 비웃은 자실장의 머리를 가격한다.

<테벳!>

<깝치지 마는 데스 차녀! 마마를 비웃는 놈은 분충인 데스!>

테에엥 우는 차녀를 장녀에게 맡기고 친실장은 다시 한 번 코를 벌름거린다.

<희미하지만, 분명 닝겐상의 냄새인데스...>


도시악귀는 곧 자신이 찾던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발목까지 오는 깊이의 작은 개천이 흐르는 옆으로 빽빽하개 자라있는 덤불 사이사이 큼직한 나무가 자라 있었다. 척 봐도 수령이 오래된 나무는 개천의 침식작용으로 뿌리가 꽤나 드러나 있었지만 그 뿌리는 강변의 바위와 흙을 꽉 잡아 수십 번 반복되었을 물난리와 세월의 공격 속에서도 이 노령의 전사를 지탱해 왔을 것이다. 하지만 아낌없이 나눠주는 나무라 했던가, 나무는 그런 자신의 자랑스러운 뿌리 사이로 실장석들이 굴을 파고 살림을 차린 것까지 묵묵이 용인해주고 있었다.

야생의 실장석들에겐 집으로 쓸 골판지 상자도, 굴을 팔 플라스틱 숟가락도 없으므로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이 훨씬 고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야생실장들은 버려진 굴을 찾거나 바위 밑에 야트막한 굴을 파서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오래 된 나무뿌리 밑도 훌륭한 집이 되주었다. 도시악귀가 찾아낸 실장석 일가도 그런 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무뿌리가 파고들어 헤집어놓은 땅은 실장석의 빈약한 나무막대로도 쉽게 파헤칠 수 있었다. 물론 대책없이 나무 밑을 파해쳐버리면 나무가 쓰러져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일가는 뿌리를 지지대로 삼고 모든 뿌리가 땅 위로 드러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굴 통로의 방향을 정한 것이 틀림없다.

도시악귀는 사진을 몇 장 찍고 관찰내용을 일지에 쓱쓱 써놓다가 문득 실장 일가의 집 앞 개울로 눈이 갔다. 절대 자연적으로 생길리 없는 구조물이 물가 가장자리에 만들어져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싸리빗자루처럼 나뭇가지를 엮어 만든 기둥이 O자 형태로 촘촘히 박혀있었다. 도시악귀는 그것의 용도를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살 때는 자기도 저런 것을 여럿 만들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건...

<닝겐상?>

도시악귀는 화들짝 놀라 소리가 들려온 쪽을 바라보았다. 평균적인 성체실장 크기의 실장석 하나가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었다. 야생실장답게 꼬질꼬질했지만 알굴과 손발은 묘하게 깨끗한 녀석이었다. 도시악귀는 실장석 잎에서 못난 모습을 보인 것 같이 괜히 요란하게 헛기침을 하고는 대답했다.

"뭐냐?"

<닝겐상이 와타시의 집을 보고 있는 걸 발견한 데스. 혹시 와타시의 일가에 무슨 볼일이라도 있는 데스?>

처음의 놀람이 가셨지만 이번엔 또다른 놀라움이 도시악귀를 강타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와 얼떨결에 대답했지만 여기는 참피스톤 국립공원, 인간의 발걸음이 끊어진지 몇 년은 된 완전한 야생이다. 공원에 처음 들어오면서 도시악귀는 인간과의 의사소통 방식을 까먹고 완전히 야생짐승처럼 바뀐 실장석을 본다 한들 놀라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실장석은 어디 인간의 왕래가 잦은 공원의 들실장석처럼 자연스럽게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실장석에게 이런 표현을 쓰는 갓도 우습지만 실장석의 말은 매우 '점잖았다'. 보통의 실장석이라면 당장 몰카충 똥닌겐, 와타시의 세레브 하우스에 대한 도촬을 그만두는 데스 따위의 말이 튀어나와도 어색하지 않겠지만, 이 실장석은 건조하다시피한 어투로 자신의 의문만 점잖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시악귀는 그 태도에 놀라움을 금치 뭇하면서도 또한 그것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실장석의 의문에 선선히 대답해주었다

"난 실장석 연구를 위해 숲에 들어온 연구원 도시악귀다. 너희 실장석들이 국립공원 안에서 어떤 식으로 살고 있는지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내 일이거든. 너희 일가가 마침 눈에 띄여서 관찰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런데스...닝겐상을 보는 건 엄청 오랜만이라 물어본 것인 데스. 그렇다면 닝겐상, 궁금한 건 없는 데스? 와타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답해 줄 수 있는 데스>

이게 지금 야생실장석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인가, 도시악귀는 순수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관찰의 대가로 뭘 약속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이녀석은 순순히 인간인 도시악귀를 돕겠다고 자청하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건? 이것도 국립공원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나타난 새로운 아종인가? 거의 아종으로 구분해도 될 법한, 평범한 실장석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는 야생실장을 보며 도시악귀는 자기도 모르게 개울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기 개울에 울타리 처놓은 것, 네가 해놓은 건가?"

<그런 데스. 와타시가 구더기를 기르는 축사인 데스>

"구더기라고? 물속에서 구더기를 기른다고?"

<그런 데스. 원하신다면 보여드리는 데스>

그러고는 척척 앞장 서서 걸어가는 실장석. 도시악귀도 귀신에 홀린 듯 그 뒤를 따라갔다. 물 속에 들어가기 전 실장석은 잠깐 자신의 집 뒷편에 마련된 운치굴로 향하더니 곧 넓적한 잎사귀에 운치를 담아가지고 나왔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고 개울에 세워둔 울타리로 가져가는 것이었다. 도시악귀도 신발과 양말을 벗고 개울에 들어갔다. 시원한 물이 발목에서 찰랑거리는 기분을 즐기면서 도시악귀는 실장석이 세워놓은 그 구조물 안을 들여다 보았다. 과연 실장석의 말처럼 구더기 열댓 마리가 울타리 안에서 바쁘게 헤엄치고 있었다.

<레훗, 레훗!>

놀란 도시악귀가 자세히 들여다 보자 갑자기 드리운 그림자에 놀랐는지 구더기들은 수면 아래로 후다닥 내려가버렸다. 하지만 도시악귀는 녀석들이 평범한 구더기가 아님을 일 수 있었다. 비늘처럼 몸에 딱 붙은 포대기, 지느러미처럼 납작하고 넓적하게 바뀐 꼬리, 퇴화한 돌기...실장석 구더기가 아니라 마치 올챙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닝겐상, 잠깐 실례하는 데스>

그 말에 도시악귀가 잠깐 뒤로 물러서자 실장석은 곧장 자신이 들고온 운치를 울타리 안에 쏟아부었다.

<밥시간 레후! 맛나맛나 레후!>

일제히 운치에 몰려드는 올챙이...아니 구더기들. 도시악귀는 옛날 어항에 키우던 구피가 떠올랐다.

"이런 구더기들은 어디서 찾은 거지? 네가 낳은 거냐?"

<아닌 데스. 이 구더기들은 따로 물 속에서 살게 적응한 자들인 데스. 이런 울타리를 설치해 운치를 뿌리면 구더기들이 몰려드는 데스. 그 때 입구를 막고 매일 운치를 줘서 키우는 데스>

확실했다. 이 실장석은 어살과 양식의 개념을 터득해 그것을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것이었다. 양식이야 원래부터 실장석이 운치굴에서 구더기를 키우는 행위로 행해졌다지만 이렇게 개천의 흐르는 물을 이용해 물고기(?)를 꾀어 가두는 방식은 실장석이 쉽게 생각해내지 못할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도시악귀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올챙이 저실장들이었다. 불가사의한 생명체답게 실장석들은 그 짧은 시간에 벌써 이런 종 분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분명 숲 깊은 곳애 완전히 새롭게 진화한 실장석도 있을 지 모른다. 도시악귀는 자기도 머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질문은 하나씩.

"넌 대체 이런 지식을 어떻게 얻은 것이지?"

<...와타시는 원래 사육실장이었던 데스. 옛 주인상은 매일 와타시에게 테레비를 보여준 데스. 그엇을 모며 이런저런 지식을 습득해 아직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데스>

이건 정말 놀랄 노 자였다. 원 사육실장이, 이 험악한 대자연의 한가운데에서, 몇 년 동안 살아남은 것이다. 국립공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엄격해진 사육실장 규제와 기타 너저분한 이유로 사육실장에 싫증을 느낀 사육주들은 공원에 실장석들을 버리고 가곤 했다. 물론 버려진 유기실장들은 주인을 찾아 공원을 벗어나려다 안티 카오스 방벽에 걸려 파킨사하거나 노련한 야생실장을 포함한 짐승들에게 순식간에 잡아먹혀 버렸다.  그런데 도시악귀의 눈 앞에 서있는 이 실장석은 그런 위험을 모두 견뎌내고 무려 몇 년씩 이 공원에서, 심지어 꽤나 호화롭게 살고 있는 것이었다. 앉은 자리에서 보드카를 다섯 병씩 마시고 3대 500을 치는 120살 노인을 눈앞에서 본다한들 이것보다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하던 도시악귀의 마음 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이, 실장석."

<데스?>

"니 나하고 일 하나 같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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