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육실장 혹은 확실히 준비된 실장만이 살아남는 계절. 겨울도 중반에 접어들면서 대부분의 실장석들은 탁아를 하다 일가가 고깃덩이로 변하거나 얼어죽었지만 여전히 골판지 안에 웅크려 생존해나가는 녀석들 또한 존재하였다. 그러나 열심히 모아도 실장석의 절망적인 신체능력과 일가가 겨우 들어갈만한 비좁은 골판지 상자의 크기의 조합으로 인해 모아놓은 물자는 금방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이므로, 성체들은 그나마 포근한 날을 골라 먹이를 찾으러 나간다.
그나마 포근해진 어느 겨울날, 성체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골판지에서 기어나오기 시작한다. 다만 오늘은 공원 분위기가 좀 이상한것이 공원 입구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놈들인만큼 나름의 신중함을 가지고 사태를 관망하던 도중, 한 남성이 공원안을 소리치면서 지나간다.
"여러분 애호파가 여러분을 돕기 위해 왔습니다! 어서 나와서 푸드들 받아가세요! 공원 입구에서 나눠드립니다!"
왠일인지 애호파가 나타나서 먹을것을 준단다. 애호파들은 날씨가 나빠지거나 기온이 조금만 더워지거나 추워져도 사라지는 존재이기에, 흔치않은 기회를 맞이한 실장들의 마음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마음만큼이나 들떴다. 공원 안에 살아남은 성체들은 모두 공원 입구 바깥으로 나와 애호파가 설치한 배식장에 줄을 서기 시작한다. 애호파들은 배식장에서 싸우거나 다른녀석들의 것을 뺏는 개체를 보는 즉시 뭉개버리기 때문에 제멋대로인 실장석도 이때만큼은 질서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제복을 입은 인간들이 배식장으로 다가오면서 실장들의 행복도 끝나간다.
"아니 지금 뭐하시는겁니까? 공원에서 실장에게 먹이를 함부로 주면 안되는거 몰라요? 아주 대놓고 자리까지 설치해놓으셨네?"
이들은 공원을 관리하는 공무원들로, 겨울에 실장석들에게 먹이를 배급하는 자들이 있다는 신고를 받고 애호파들을 저지하기 위해 온것이다. 치우려는 공무원과 애호파의 실랑이가 다툼으로 번지면서 공무원이 먹이가 든 상자를 쓰러뜨리는바람에 실장푸드가 실장들 근처로 쏟아진다. 자기들 근처에 쏟아진 푸드들을 쳐다보는 실장들은 곧 난투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데! 푸드인데스! 닝겐들이 계속 싸우면 밥을 못받을게 뻔하니 지금 챙기는데스!"
"이건 전부 와따시의 것인데스! 당장 꺼지는데스!"
"데갸앗! 와따시의 핵펀치를 받고 백치나 되는데스! 이건 내 푸드인데스!"
열심히 주워도 모자랄판에 서로 더가져가겠다고 주먹을 날리고 이로 물어뜯는 놈들로 배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어간다. 이 와중에 공무원이 먹이상자를 또 하나 쓰러뜨리는 바람에 실장석들의 싸움은 기름에 불을 부은듯이 더욱 격렬해져간다.
"데프픗 충분히 주운데스. 이걸로 며칠은 상자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을것인데스!"
"오늘은 자들과 함께 푸드파티인데스 데프픗~"
"데이이... 닝겐상... 이웃상... 누가 좀 도와주는데스... 집에 자가 기다리는데스..."
경찰이 출동하여 공무원과 애호파들을 진정시키고 데려가면서 실장석들의 싸움 또한 끝났다. 싸움의 혼란속에 다시 일어나지 못할만큼 찌그러진 실장들이 누워있었으나 충분히 푸드를 챙긴 실장들은 저런 무거운걸 들고갈 생각따윈 없다. 굳이 자판기를 만들거면 집에 푸드를 갖다놓고 나서 돌아와도 늦지않을것이라 생각하며 실장들은 공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실장들의 무리가 공원안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어디선가 작지만 자실장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테에에엥.... 마마...."
"데? 왠 자실장의 울음소리가 들리는데스?"
"겨울에 밖에서 우는 자실장이 있다니 버려진 사육분충인듯한데스. 푸드는 물론 고기까지 먹을수있는 럭키한 날인데스!"
"와따시의 고기인데스! 지랄마는데샷!"
"저긴 와따시의 집방향인데스! 왠 미친분충때문에 와따시의 집이 들키는데샷!"
성체야 들고가기 어렵겠지만 자실장 몇마리 들고 갈 여유는 있다고 생각한 실장들은 앞다투어 자실장이 우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달려간다. 서로를 밀쳐가며 관목을 헤치고 들어간 실장석들은 눈에 들어온 광경을 보고 시간이 멈춘듯 멈춰버렸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진 자실장들, 찌그러진 채 물이 쏟아지고 있는 페트병, 부스러진채 눈에 젖어가는 낙엽과 신문지, 발로 뭉개진듯한 보존식, 반이상 무너진 운치굴. 가을 말이나 겨울 초였다면 '왠 분충이 일가실각당한데스! 횡재인데스!'라며 달려들었을 실장들이었지만 지금의 실장들은 추위에도 상관없이 뒤통수에 땀이 흐르는것을 느낀다.
"장녀!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데스! 심상치 않은데스!"
"와따시의 집! 와따시의 집!"
"자들 기다리는데스우~!!!"
방금전까지만해도 헐레벌떡 현장에 왔던 실장들은 일제히 자신들의 집으로 흩어진다. 집에 돌아가면서 흔적을 지우거나 일부러 돌아가거나 하던 녀석들도 이번만큼은 일직선으로 똥의 선을 그리며 달려간다. 잠시 후 공원 곳곳에서 비탄에 잠긴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오로롱 와따시의 집 어디간데스! 보존식도 물도 모두 사라진데스!"
"자들! 자들은 어디있는데스! 장난치지말고 나오는데스! 집도 사라졌는데 자까지 없어질수는 없는데스... 오로롱..."
"운치굴이 사라진데스... 묻어둔 보존식도 자판기도 꺼낼수가 없는데스... 이제 살 방법이 없는데스..."
쓰러져 우는놈, 파킨하는놈, 자를 찾아 돌아다니는놈 등 실장이 표현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절망이 공원을 가득 메운다. 한편, 경찰차를 타고간줄 알았던 공무원과 애호파, 경찰들은 동사무소 안에서 따듯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야 이번 H과장님의 기획 대단하네요. 별 수고를 들이지 않고 골판지 상자를 다 치웠어요. 나중에 시체만 치우면 청소 완료네요."
"이게 바로 성동격서요 진화타겁이라는거지. 투분당한사람도 없고 얼마나 좋나"
"영상 촬영한거 학대스넷에 올려도되나요? 조회수좀 찍을거같은데"
"안돼. 이거 다른곳에 교육자료로 배포할거야. 나중에 학대파들 모아서 따로찍어라. 옆동네 공원에 골판지 하우스 아직 많더라"
성체가 상자에 들어있으면 무겁기도 하고 골판지 하우스를 치우는 중 반항을 진압하는데 시간만 걸리면서 투분이라도 맞으면 옷이 상한다. 자실장 이하는 겨울바람만 맞아도 덜덜 떠느라 아무짓도 못하기 때문에 성체들을 유인한 상태에서 하우스들을 치운다. 이때 자실장들이 찡얼대는 소리가 성체들에게 들리면 눈치챌 수도 있으므로 일부러 싸움을 붙여 정신을 못차리게 한다. H과장의 고대 병법에서 영감을 얻은 구제기획은 다른 동사무소 및 학대파들에게 널리 퍼져 실장석에게 더욱 혹독한 겨울을 안겨주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무분별한 악플과 찐따 댓글은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