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돌이 세 자매



밤은 깊었다. 차가운 바람이 세 자실장의 옷을 뚫고 들어왔다.

그녀들은 작은 몸을 웅크리며 어미의 마지막 순간을 떠올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그날의 공포, 자신들의 유일한 보호자가 몸을 내던져서까지 자신들을 보호하려던 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자들, 어서 도망치는 데샤아-!]



식량 부족 때문에 굶주림으로 미쳐버린 동족들의 습격과 동시에, 친의 마지막 말이 여전히 귀에 맴돌았다. 그러나 세 자매는 길거리에서 나와 본 적이 없었다. 바깥세상은 그들에게 너무나 낯설고, 피도 눈물도 없이 잔인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바깥 세상은 처음보는 장소였고, 무엇보다도 눈에 불을 켠채 자신들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동족들, 야외를 어슬렁거리는 짐승들, 그리고 거대한 인간들의 세상이었다.

어미는 가끔 근처 놀이터나 숲 속에 데려가 새끼들과 놀아주긴 했으나, 공원 밖은 위험하다며 좀 더 성장하면 견학시켜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이미 기회는 지나가버렸기에 세 자매는 그저 안전을 보장하지 못 한 채로 떠돌 수 밖에 없었다.



혹독한 자연은 어린 것들에게 베풀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기에.



[이제 마마는 없는 테치, 어떻게 하는 테치...?]



장녀는 무릎을 꿇은 채, 차녀와 막내 삼녀를 부둥켜안고 있었다. 엄지 실장보다 약간 큰 정도의 막내 자실장은, 작은 몸은 추위와 배고픔에 떨리고 있었다.

막내의 입술은 창백해졌고 눈빛은 흐릿했다.



[오네챠... 배고픈 테츄우...]



막내는 큰 언니에게 나지막히 속삭였다.

하지만 큰 언니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도 똑같이 배고팠으니까. 몸 속에서 비명처럼 울려 퍼지는 공복감은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벌써 여러 날을 굶었고,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자비도 베풀지 않았다.

둘째는 저 멀리에서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기로 가면... 먹을 게 있을지도 모르겠는 테치.]



둘째의 눈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 불빛이 정말 안전한 곳인지, 아니면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저 빛나는 곳이 과연 자신들을 위한 마지막 희망의 불빛일까.

아니면 자신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리기 위해 유혹하는 불빛일까.



[여기 가만히 있다간 다 굶어 죽겠는 테치, 일단 저기라도 가보는 테치.]



차녀가 결심을 내린 목소리로 장녀와 막내에게 제안하자, 둘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는 것을 참고,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면서 도착한 그 곳은 한 허름한 상가였다. 안에서는 은은한 백색 전구가 실내를 비추고 있었고, 먼지투성이가 된 진열대에는 투명한 비닐 포장지에 담긴 옛날 과자들이 쌓여있었다. 그 옆에는 낡은 텔레비전이 작은 소리로 켜져 있었다.

가게 한쪽 구석에는 머리가 희끗한 늙은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의자에 몸을 기대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 코를 고는 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채웠다. 아저씨의 숨소리는 세상을 다 잊은 듯 거칠었고, 텔레비전 소리와 섞여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저기 먹을 것으로 보이는 게 많이 있는 테치...]



장녀가 눈 앞에 있는 거인이 깨지 않도록 동생들에게 나직하게 속삭였다. 저것들을 손에 넣기만 한다면, 오늘 하루 정도는 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세 자매는 눈빛을 교환했다. 차녀와 막내는 고민에 빠졌지만, 배고픔이 그녀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 친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절대로 이런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뭐라도 해야만 했다. 어미를 잃어버린 새끼들은 스스로 살아남아야 했다.



[그럼 다 같이 조용히 가서 가져오는 테츄. 저 늙은 닝겐은 자고 있으니 분명 깨지 않을 것인 테츄...]



막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서로의 의견이 일치한 세 자매는 이제 뒤돌아보지않고 상가의 문 앞에 섰다. 세월이 오래 지난 탓에 출입문의 힘이 약해져, 세 자실장의 힘만으로도 문을 열 수가 있었다. 그녀들은 조심스럽게 상가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옛날 과자들이 놓인 진열대까지 걸어가는 동안, 세 자매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살얼음을 걷는 상황에서 한 번이라도 큰 소리를 낸다면 곧 죽음으로 직결되는 법이었다. 다행히 늙은 아저씨는 아직도 곤히 졸고 있었고, 딱히 잠에서 깰 기미도 없어 보였다.

장녀와 차녀는 진열대 맨 아래칸에 놓인 과자를 각자 한 봉지를 집어들었다. 모양도 수수하고 전혀 화려하지않은 상품이었지만, 실생 처음으로 인간이 만든 간식을 본 그녀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이렇게 맛있어 보이는 걸 인간들끼리만 독차지하다니.

잠시 그녀들이 과자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딴 곳에 팔린 사이. 막내 자실장은 시선이 한 곳에 고정되어있었다.



바로 텔레비전 화면이었다.



화면 안에는 천사같이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가사 또한 당신을 사랑한다느니, 그대를 보고싶다느니, 평생 기다리겠다며 심금을 울리게하는 말을 합창하고 있었다.

좌석에는 수많은 남성 인간들이 환호하면서, 인생 최고로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은 덤이었다.

막내에게는 저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꾀죄죄한 자신의 모습과 달리 저들은 세상은 별천지로 보였다. 너무나도 질투가 났다.



왜 인간들은 저렇게 잘났단 말인가.



[인정할 수 없는 테츄...]



자신도 이런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들생활을 보내긴 싫었다. 적어도 사육실장처럼 태어나, 궁전같이 커다란 주택에서 멋진 집사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우아하게 식사를 하고 아와아와한 목욕, 세레브한 드레스들과 향기로운 화장품이 즐비한 삶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행복회로 속에서나 가능했지, 현실은 시궁창이었다.

어미는 자신을 키우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금방 죽어버렸다. 간신히 언니들과 도망쳤지만, 굶주림을 참지 못 하고 처음 보는 인간의 터전에 들어와 과자나 훔치고 앉아 있었다.



[이런 운치같은 삶은, 인정할 수 없는 테츄웃-!]



그리고 참지 못 하고 큰소릴 내버린 막내 자실장은, 모두의 주목을 끌고 말았다.

장녀.
차녀.
그리고 잠에서 깬 늙은 아저씨도.






"...이 씹어죽여도 모자를 녹돼지 시끼들은 뭐여, 엉?"



그는 매우 노한 목소리로 침을 튀기며 자리에서 일어나 덜덜 떨고 있는 똥벌레 세 마리에게 다가왔다. 놈들은 꽥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아저씨는 순식간에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거침없이 발길질을 했다.



"잡것들이 으디서 도둑질이여? 여기가 그렇게 만만해보이나!"



아저씨의 발은 놀랍도록 강했고, 한 번의 타격으로 장녀는 손에 들고있던 과자를 놓치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차녀는 장녀를 지키려다가 그만 옆구리에 발길질을 당했다.

정작 사고를 친 막내는 겁에 질려 아무 것도 하지 못 하고 울기 시작했지만, 똥벌레 새끼의 울음소리는 늙은 아저씨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할 뿐이었다.



"먹을 게 없어서 여기까지 와 훔치러 왔나? 이 거지보다 못 한 시끼들을 그냥!"



아저씨는 꼴도 보기 싫은 세 똥벌레들을 잇달아 발로 찼다.

장녀는 정신이 흐려지면서도, 동생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늙은 거인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제발... 용서해주시는 테치... 와타시들은 먹을 게 없는 테치...]



하지만 작은 생물들의 말을 번역해줄 기계는 이 곳에 없었다.

아저씨는 이 건방진 놈들이 뭐라 지껄이든 자비를 베풀지 않고, 이를 악물고 발로 차면서 상가가 떠나가라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 안 그래도 자신의 바지에 손을 댄 장녀는 더러운 게 묻었다는 이유로 더 심하게 학대했다.

차녀와 막내의 힘으로는 이를 해결할 수도, 장녀를 구해낼 수도 없었다.



장녀는 가슴 속에 자리잡은 소중한 돌이 생명의 위기를 알리자, 마지막 힘을 짜내 늙은 거인의 발목을 물었다. 갑작스러운 저항에 놀란 아저씨는 마치 바퀴벌레 잡듯이 장녀를 묵사발로 만들어버리기위해 손을 들었다.



[차녀챠, 막내를 데리고 도망치는 테-]



그것이 장녀가 곤죽이 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었다.



차녀는 차마 고깃덩어리가 된 장녀의 모습을 똑바로 보지 못 하고, 한 손으로 과자 봉지를 질질 끌면서 남은 손으로 정신이 나간듯 떨고만 있는 막내의 손을 억세게 잡곤 젖먹던 힘을 짜내 밖으로 도망쳤다.

뒤에서는 주인 아저씨가 장녀의 시체를 들고 이쪽을 향해 뭐라 소리친 것 같았았지만, 공포가 머리속을 삼킨 차녀와 막내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언니의 목숨을 대가로 오늘 먹을 양식을 간신히 구한 자실장들은 다시 어둠 속으로 숨었다.







어느덧 새벽으로 접어든 시간, 차녀와 막내는 허름한 상가가 보이지 않을때까지 골목길을 뛰어다녔다. 그리고는 눈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어두운 쓰레기장 속에서 몸을 숨겼다. 냄새나고 불결한 곳이지만, 적어도 잠시 몸을 피신할 장소로서는 최적이었다.

둘 다 상처투성이였고, 몸이 지쳐있었다. 그리고 무척이나 배가 고팠다. 당장이라도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아사할 것만 같았다.

허나 차녀는 굶주림을 잠시 잊고, 이내 죽일 듯한 눈빛을 띄며 막내를 노려보곤 입을 열었다.



[오... 오마에가 소리만 지르지 않았어도 큰 언니가 죽지 않았을 것인 테치.]



막내는 움찔하며 고개를 들지 못 했다.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한 순간의 실수가 모두를 위험에 빠뜨렸고, 그 대가는 소중한 가족의 목숨을 앗아갔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달은 막내는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그 말이 너무나도 가슴에 꽂혔다.



[미안한 테츄... 정말 미안한 테츄... 그저 네모난 상자에서 닝겐들이 잘난 척 하길래...]



막내는 울먹이며 변명했다. 그 모습을 본 차녀의 차가운 눈빛은 쉽게 녹지 않았다. 같은 핏줄이고 자시고,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라 어쩔 수도 없고, 우선 배를 채우는 것이 급했으니 한숨을 크게 쉰 차녀는 이내 말투를 누그러뜨렸다.



[일단 이거나 같이 나눠 먹는 테치...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은 테치.]



차녀는 손에 들린 과자 봉지를 막내에게 들이밀었다. 막내는 눈물을 그치곤 같이 조심스레 봉지를 뜯으며 내용물을 끄집어냈다.

투박하게 생긴 쌀 과자였지만, 냄새만큼은 강렬했다. 겉면에 달콤한 무언가가 발라져있었기에 두 자실장의 입에 절로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자연에서는 절대로 볼 수 없는 인공 첨가물은 이들의 식욕을 송두리째로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바사삭- 하고 과자를 야금야금 먹으며 꿀꺽 삼키자, 그제서야 자신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나게했다. 둘은 인간이 만든 기호 식품에 매료되었고, 차즘 긴장감을 잊고 정신없이 과자를 한웅큼 집어들고 먹는데 몰두했다.

맛있다. 진짜로 맛있다. 어미가 그동안 구해왔던 음식보다 비교도 안 될 만큼 최고의 맛이다. 세상에 이런 진귀한 음식이 있었다니.

배고픔에 시달렸던 몸이었지만, 이 소중한 쌀 과자에 위안을 얻은 둘은 잠시나마 행복에 빠졌다.



뒤에서 무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을때까지.



...야옹.



흠칫, 하고 자실장 둘은 과자를 손에 든 채로 굳어버렸다. 그리고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혹시 우리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일까.

그곳에는, 불청객 때문에 잠에서 깬 길고양이가 쓰레기통 뚜껑 위에 앉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인간에게는 귀엽기 그지없는 동물이지만, 실장석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포식자였다. 그 포식자는 지금 땅바닥에 살포시 내려 와, 두 벌레를 보며 입맛을 다시면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테, 테, 테에에...]

[찌이이...]



막내는 또다시 눈물을 흘리면서 몸을 심하게 떨었다. 차녀는 들고있던 과자를 천적에게 위협하듯이 흔들며 쫓아내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건이 천적을 더욱 자극시키는 꼴이 되었다.

소름끼치고 날카로운 포식자의 울음소리와 함께 공격이 시작되었다.



[안 되는 테치! 저리 가는 테치-잇!]

[이제 싫은 테츄우우우!]



막내는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남은 과자 봉지를 챙기고는 괴물이 없는 반대편으로 쏜살같이 뛰었다. 그 모습을 본 차녀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한눈 팔 틈은 없었다. 괴물이 어느새 가까이 접근해 차녀의 몸에 발톱을 휘둘렀다.

그 충격으로 차녀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의 피가 밖으로 솟구치는 광경을 봐야했다. 상처 난 곳이 불같이 뜨거웠고 쓰라렸다. 저항해야 했지만 힘이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바닥에 주저앉아 과자를 힘 없이 떨어뜨리는게 전부였다.

차녀는 저멀리 도망치는 막내를 서글픈 눈길로 바라보다가, 숨을 헐떡이며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숨이 가빠지며 시야가 점점 흐려졌다.



[죽고 싶지 않은 테치...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할 수는 없는 테치...]



둘째는 조금이라도 살기 위해 마지막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켜 땅에 떨어진 과자를 주워 먹어 힘을 보충하려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괴물은 기다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속도로 덮쳐 온 괴물은 차녀를 무자비하게 유린했다. 순식간에 피범벅이 된 나약한 생물은 비명조차 마음대로 내지 못 하고, 지옥같은 고통을 겪다가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차녀는 몸 속에 있는 돌이 깨질 것을 직감했다. 그리곤 깨달았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다 헛된 짓임을.

그리고 도망친 막내도 곧 살아남지 못 할 것을.



둘째는 머리 위로 괴물이 입을 쩍 벌리고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숨을 거두었다.







두 번이나 언니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혼자서 도주한 막내는 몸과 정신을 갉아 먹히는 듯한 느낌을 애써 무시하며 그저 달리기만 했다. 남은 과자 봉지를 꽉 쥔 채로, 어두운 골목길을 따라 계속 달렸다. 발에 걸려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숨이 찼지만 멈출 수 없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막내는 문득 자신이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공원에 들어섰다는 것을 알아챘다. 캄캄한 나무들 사이로 희미하게 보이는 벤치와 작은 놀이터의 실루엣이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옛날에는 가끔이라도 저기서 아무런 걱정없이 뛰어 놀았었는데.



비참한 기분이 든 막내는 더 이상 달릴 힘도 없었다.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내용물이 얼마 없는 과자 봉지를 꼭 안고 있었다.

그렇게 막내는 공원 한가운데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손에 꽉 쥐고 있던 과자 봉지도 이제는 구겨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고, 배고픔과 피로가 그녀를 덮쳐왔다.



그 순간, 동이 트기 시작했다.



하늘은 서서히 붉게 물들며 밤의 어둠을 몰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햇빛은 따뜻하지 않았고, 이른 아침의 차가운 공기는 더욱 막내의 몸을 얼어붙게 하여 그녀는 무릎을 끌어안고 떨었다.



[마마... 오네챠...]



쓸쓸해진 막내는 눈물을 흘리며 주변을 둘러봤다. 이 넓은 세상에 자신은 이제 혼자였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하지만 공원 바닥은 차갑고 거칠어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 막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어디라도 몸을 뉘일 곳을 찾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공원의 구석구석을 헤매던 막내는, 이내 우거진 수풀 속에서 낡은 골판지 상자를 발견했다. 상자는 흠집나고 형편없어 보였지만, 차가운 땅에서 자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 같았다.

막내는 상자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여기서라도 잠을 청해야겠는 테츄...]



그녀는 손을 내밀어 상자의 문을 만지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상자에서 희미하게 익숙한 냄새가 느껴졌다.



친실장의 냄새였다.



고개를 갸우뚱한 막내는, 이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마마... 마마가 여기 있는 테츄?]



그녀는 두려움과 희망이 뒤섞인 마음이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자신의 어미는 이미 동족들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그리운 냄새는 아무리 맡아봐도 자신의 어미의 체취였다.

그렇다면, 마마는 동족들을 상대로 살아남아 도망치곤 여기로 몸을 피한 게 틀림없었다.

아니다, 이건 함정이다. 어쩌면 동족이 어미의 시체를 입구 근처에 두고 도망친 자들을 사냥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막내는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 하는 겁쟁이였고, 만약에 진짜 함정이라면 자신의 삶이 끝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용기를 낼 자신이 없었다.



[이럴때 언니들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인 테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 하는 일가의 늦둥이는 눈물을 훔치며 언니들을 떠올렸다. 하지만 언니들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었다.

모두 자신 때문에 죽었다고 느낀 막내는 가슴이 미어졌다.



[와타시 혼자서 이걸 열 수 있을 것인 테츄...?]



막내는 두려움에 빠져 그대로 상자에서 손을 떼고, 소리나지 않게 조용히 뒤돌아섰다. 다른 곳으로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막내는 그렇게 스스로를 타이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희미하게 상자 안에서 소리가 들렸다.



[...와타시의 자 냄새가 나는 데스우.]



막내는 숨을 턱 멈췄다. 이건 분명 친의 목소리였다. 막내는 그제서야 마음속 두려움이 사라지고, 대신 반가움과 안도가 가슴을 가득 채웠다. 마마가 살아 계셨다.

이제 친실장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마, 보고 싶었던 테츄-!]



막내는 망설임 없이 상자의 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상자 안에 있던 광경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끔찍한 현실이었다.



친은 다른 동족들에게 붙잡힌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어미의 몸은 이미 해부되고 있었고, 몇몇 동족들은 친의 살점을 뜯어내며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친은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지만, 이미 거의 목숨을 잃기 직전이었다. 그들은 무자비하게 친을 요리하듯 다루고 있었고, 피비린내가 상자 안을 가득 채웠다.

막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꿈이어만 했다.



[마... 마마...]



막내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손은 떨리고, 심장은 마구 뛰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상자 안에 있던 동족들이 막내 자실장을 보고 흉측한 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손님이 온 데스? 오늘은 제대로 잔치인 데스!]

[살코기! 살코기는 많을수록 좋은 데스!]

[싱싱한 먹이가 제발로 들어 온 데스우. 데프픗!]


그들은 작은 먹잇감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막내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쳤다.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기 붙잡혀 있는 자신의 어미처럼 살이 뜯기고 피를 흘리며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죽음이.



[싫은 테치... 누가... 구해주는 테츄... 제발...]



막내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살아남을 방법을.

그리곤 손에 쥐고 있었던 과자 봉지를 흔들며 간절히 소리쳤다.



[이, 이걸 주겠는 테츄! 이걸 바칠테니 와타시는 놔주는 테츄! 제발 테츄-!]



그러나 그들은 이미 막내를 노리고 있었다. 과자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들은 막내를 무참히 잡아채더니, 이미 산 송장이나 다름없는 친실장처럼 하나의 식사로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작고, 나약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새끼 벌레는 눈물을 쏟으며 울부짖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채 다리를 버둥거리며 저항했지만, 동족들의 손길은 더욱 거칠어졌다. 막내는 가까이 있는 동족들을 향해 발길질을 했지만, 힘 없는 자실장의 발은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그저 비웃음만이 벌레 새끼나 다름없는 땅딸보를 에워쌌다.



[데프프프프-! 이 꼬맹이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게 웃겨 죽겠는 데스우!]



흉폭한 동족들은 새끼 벌레의 발길질을 비웃으며 더욱 즐거워했다. 이내 한 동족이 자실장의 너덜너덜해진 옷을 거침없이 찢어버렸다. 얇은 가죽이나 다름없는 초록 옷은 쉽게 찢겨져 나갔고, 작은 몸뚱이는 차가운 공기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막내의 얼굴에는 공포와 수치심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다.



[그만하는 테츄아-! 와타시의 소중한 옷이!]



막내는 울부짖으며 또다시 저항하려 했지만, 다른 동족이 다가 와 막내의 머리카락을 거칠게 잡아채더니 사정없이 머리털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차가운 손길이 머리 가죽을 잡아당겼고, 막내는 비명을 질렀다.

보물이나 다름없는 머리카락이 뽑힐 때마다 피가 났고, 이내 막내는 벌거숭이 독라가 된 채로 무력하게 그들 앞에 서 있었다.

자실장의 꼴을 본 동족들은 재미난 구경거리를 봤다는듯이 폭소를 터뜨렸다. 막내는 땅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옷조각과 머리털을 보곤 경악하며 절망에 빠졌다.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흐느꼈지만, 그럴수록 동족들은 더욱 자실장을 조롱했다.



[이 구더기보다 못한 년들-! 당장 오마에들을 모두 죽여버리겠는 테츄아아아-!]



모든 걸 잃어버린 막내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르며 악마나 다름없는 동족들을 향해 저주를 마구 퍼부었다. 막내는 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복수하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동족들의 입장에선, 이마저도 우습게 여겼다.



[이 등신년이, 어디서 까부는 데스우? 애미도 뒤져가는 마당에 가소로운 데스.]

[주제도 모르는 애새끼는 개처럼 맞아야 하는 데스.]



동족들은 조롱을 멈추지 않고 막내를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무자비하게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길질은 자신보다 훨씬 약한 생물의 온몸을 아프게 때렸고, 막내는 점점 더 깊은 고통에 빠져갔다.

막내의 작은 몸은 이미 저항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마, 마마...]



얻어맞고 있었던 막내는 마지막 힘을 짜내며 그토록 보고 싶었던 자신의 어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미는 희미한 눈빛으로 자를 바라보며, 쥐어짜는 듯한 한 마디만 내뱉었다.



[마마가... 미안한 데스우...]



그 순간, 막내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느꼈다.



막내와 어미가 이렇게 죽어가는 동안,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가고 있었다.

모든 저항도, 고통도, 눈물도.

이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세상은 너무나도 냉혹했다.

아무리 살기위해 떠돌아 다녀도, 보호자 없이 살아남기란 어려운 법이었다.



막내는 허름한 과자 상가에서 봤었던 네모난 상자에서 나오는 인간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아름다운 인간 여자들이 행복하게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을 말이다.



닿고 싶었지만, 절대로 닿을 수 없는 곳이었다.

한 번이라도, 단 한 번이라도 저런 삶을 누려보고 싶었는데.



[...다 부질없는 실생이었던 테츄.]



막내의 여린 몸은 동족들의 폭력 앞에 무력했다. 피투성이가 된 막내는 골판지 상자 안에서, 자신의 생명이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죽어서 두 언니를 만나게 된다면, 뭐라고 사과해야할까.

그리고 자신에게 사과한 마마에겐 뭐라고 격려해주어야할까.



떠돌고 떠돌다 결국 삶을 포기한 작은 생물은, 눈을 감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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