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주인사마도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 데스..."
"야...미도리...아니...하.....하......."
말문이 막힌 듯 연신 마른세수를 하는 남자와
그 앞에서 자신의 소신을 떳떳히 밝히는, 한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는 어느 한 성체실장
그들은 '자를 낳지 않겠다' 는 약속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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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아마 인간에게 키워지는 실장석의 80퍼센트는 그 이름일 것이다
학대파에게 키워지는 실장석의 95퍼센트는 그 이름일 것이다
애호파들에게 키워지는 실장석은...차라리 미도리가 낫지, 엘리자베스, 까트린느 등의 고급지고싶어하는 촌스러움이 한가득 들어간 이름들이 대다수이다, 신기할정도로 애호파들의 미적감각은 실장석들과 닮아간다
남자의 집에서 함께 살고있는 사육실장 미도리는 긴 설명이 필요 없는 극히 평범한 사육 성체실장이다
이름은 미도리
나이는 1살 하고 6개월
어미는 공장식 출산석
분양처는 동네 실장샵
가격은 당시 기준 8만원
떨이실장들에 비해 비싸지만
고급실장들에 비해 상당한 싸구려
그저 가격에 맞는 지능수준
태어나자마자 영리함과 양충끼를 보이며 프리랜서 전문브리더와의 1대1 수업 후 출하되는 수십만원 S급들과는 다르게
쓰레기, 멍청이, 울보, 병신들이 한대 모여 대충 자격증만 딴 실장샵 소속 브리더에게 훈육을 받은 뒤 매대로 보내지는 그런 녀석들 중 하나
교육의 내용은 정말 기초적인것이 전부, 손으로 밥먹기, 화장실 가리기, 주제를 알기, 아첨하지 않기 등등
종종 초보브리더의 실수로 똥먹지 말기, 동족 먹지 말기, 새끼 까지 말기 등등의 교육을 누락하여 진행할때도 있지만 딱히 중요한게 아니니 패스
아무튼, 뭐 그리 낮지 않은 생존률 40퍼센트의 확률로 교육을 수료받은 녀석
실장샵 훈육 후 판매되는 기초교육 완료 자실장들은 기본가격 5만원으로 시작, 이후 성향에 따라 가격이 낮아지기도 높아지기도.
녀석은 나름 조용한 성격과 모든걸 이해하진 못하지만 인간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녀석이였기에 5만원보다는 비싼, 10만원보다는 저렴한 8만원의 가격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그녀의 언니는 교육 첫날 브리더의 실수로 옆에 있던 분충 대신 죽게되었다, 생존했을시 그녀의 예상 가격은 12만원이였다
그녀의 동생은 모든 교육 후 생존하였지만 두드러지는 특징 없이 5만원으로 전시되다가 말차라떼를 마시는 샵 사장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똥을 쉐이크처럼 만들어 찍어먹다가 가격표 수정을 당했다
최종 가격은 2천원이였다
참고로 출산석인 그녀의 어미는 한때 40만원의 가격표를 가진 S급으로 지방의 작은 실장샵 내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했었다. 그리고 공장에 팔리는 순간 최종 가격은 2만원이였다
모든 자매가 사육실장의 기회가 있었다는 것은 그녀의 어미가 충분히 영리한 양충이였다는 증거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어미는 여느 실장석들과 다를 것 없이 자를 낳고싶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하여 스스로의 가치를 수직하락 시켜버렸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태어난 사육시절 어미의 새끼들, 미도리의 한참 언니가 되었을 녀석들은 아주 착실하게 분충이 되어주어 한마리를 제외한 모두 분쇄기에서 멍청한 삶을 마무리 짓게 되었다
살아남은 한마리는 아마 아직도 공원 어딘가에서 자판기 노릇을 하며 제 어미의 가업을 이어주듯, 운치굴의 출산석으로 살아가고 있다
구구절절하게 기나긴 설명이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다
남자가 키우는 미도리라는 성체 실장석
이녀석은 남들이 들으면 "굳이 왜 키워?" 라는 소리를 들을 수준 정도, 딱 그정도 레벨의 실장석이다
키우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
사실 그거 말곤 없다
조용한 성격인지라 딱히 애교도 없고
(덕분에 미도리의 생존기간이 길어진 것도 있을것이다)
지능이 높진 않지만 나름 머리를 써보려 노력하고
(실장석에게 애매한 지능은 천천히 찾아올 죽음의 저주이다)
그리고....그리고...
그냥 정 때문이다
함께 했단 이유 하나로 몸 안에 들어있는거라곤 솜 밖에 없는 인형 따위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이 실장석 따위에겐 없는 '정' 이라는 것이니
당장 버려도, 키워도 별 다를 것 없는 남자의 상황 속, 남자는 인간임을 택했을 뿐이다
매체에서 비춰지는 모습과는 다르게 학대파는 100명 중 1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고, 남자는 그저 평범한 99명의 사람이였다
평범한 주인과 평범한 실장석. 그들의 사이가 갈라질 계기 또한 너무나도 평범한 이유에서이다
임신과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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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난 너와 좀 더 얘기를 나눠보고싶어, 그러니까 니 말은...지금 이게 너에게 불공평하게 느껴진다는거야?"
"하이데스...와타시는 불공평하다 느끼는데스...주인사마는...와타시와의 약속을 어기고 제멋대로 행동한데스..."
실장언어번역어플, 링갈어플에 적혀있는 문장을 볼때마다 남자는 어이가 없어 '허 참-' 하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 나올 뿐이였다
차라리 이 내용이 잘못 번역된거였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이 어플은 애호파들을 위한 어플스토어 공식버전, 엉터리 링갈어플이 아닌 100퍼센트 정확도가 인증된 비공식 링갈어플이다, 미도리의 말을 하나도 빠짐없이 100퍼센트 정확하게 번역 중이였다
(엉터리 링갈어플 번역이였다면 '나는 너무 슬퍼요 나는 주인님을 사랑해요 따위로 번역되고 있었을 것 이다)
"미도리,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굉장히 화가났단다, 네가 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서...그렇게 말하는거야?"
남자는 정당한 분노를 인간의 마음으로 억지로 눌러앉히고 있었다
사육실장이 말대답을 했다
사육실장이 말대답을 두번이상 했다
사육실장이, 주인을 가르치려는 듯한 발언을 내뱉었다
이것만으로 공원 버려질 이유, 분쇄기에 갈릴 이유, 보건소에서 태워질 이유, 나아가 누군가에겐 후천적 학대파가 될 이유로 충분했다
실장석들에게 한번의 행동이란 없다
실수는 고쳐질수있다, 하지만 그들의 진심 어린 행동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주인사마에게 사과를 받고싶은데스, 그리고 주인사마가 저지른 일은 주인사마가 해결해줬으면 하는데스, 와타시가 그랬던 것 처럼 주인사마도 꼭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데스."
미도리는 자신의 말에 확신을 가진 두 눈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임신에 대해, 그녀는 확고한 생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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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평범했던 하루였다
너무나도 평범했던 하루에
기적이 찾아왔을 뿐
솔직히 말하자면 의도했던 기적은 아니였다
하지만 다짐했었다, 혹여 그런 일이 생긴다면, 생각지도 못한 기적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다면 받아드리자, 그리고 그 기적을 축복하며 노래하자, 세상에 태어날 가장 소중한 보물을 위해, 온 우주에 자랑을 하자- 라고
하지만 어떻게 얘기를 해야하지?
너무 행복에 겨운 모습을 보이기엔 어른스럽지 않아 보일 것 같고
무심한 척 하기엔 행복해서 미칠 것 만 같다
가장 가까운 이에게 먼저 알려주고싶다, 하지만 너무 놀랄까봐 좀 걱정이다
과연 어떤 반응일까? 사실 혼나는건 어느정도 각오하고 있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였으니 조금은 혼날 수 밖에 없겠지
그래도 분명 나를 닮아 귀여운 아이를 본다면 무조건 화가 풀릴것이다
그리고 함께 예뻐하고 아껴줄것이 분명하다
나의 부모가 그러했을것이고
나 역시도 그럴것이니
행복하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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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리 여기 앉아보렴, 할 얘기가 있단다"
사뭇 긴장된 분위기
퇴근을 하고 돌아온 남자가 평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 다른 표정을 지은채 자신을 부르기에 그저 다가갔다
남자는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제 입을 우물거리고 있었고 사람의 표정을 읽는것 까지는 할 줄 모르는 평범한 사육실장 미도리는 연신 작은 목소리로 '데에? 데에?' 하며 남자의 말을 기다리고있었다
"미도리.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으렴"
"하이데스"
.....
....
...
"미도리!! 나 아빠가 된다!!!!"
갑작스러운 남자의 외침과 기상에 깜짝 놀래 "드에엣!" 소리를 내며 뒤로 발랑 자빠져버리는 미도리
남자는 이내 "아차차 미안미안~" 이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들어올려 높이높이, 안아안아를 해주며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미도리!!! 내가!!! 아빠가 된다니까!!! 이야아!!!!"
아마 이웃들이 들었다면 주의를 줄 법할 정도의 큰 목소리, 하지만 그 내용까지 함께 들렸다면 훈훈하게 웃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
"으아아~ 사실 뭐지...음 미도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될지 모르겠지만 원래 사람은 임신이랑 그 출산 전까지 위험한것도 많고~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거라서 괜찮은 시기가 올때까지는 얘기를 잘 안할때도 있고 또 음.....어 그래 원래 임신을 하고 안전해질때까지는 잘 얘기를 안하거든~ 그래서 우리 부모님께도 아직 말씀 못드렸는데 정말 참을수가 없어서 너한테는 얘기하게됐다 미도리! 놀라게해서 미안해 흐흐...."
두서없이 내뱉는 남자의 말들
평소엔 미도리가 알아듣기 좋게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천천히 말을 하는 그였지만 행복한 감정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듯 그는 환호를 내지르며 보통 사람이 알아듣기도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격양된 상태로 말을 하고 있었다
"올때마다 너한테 바삭바삭한 초콜릿을 줬던 긴머리 여자 기억해? 그 사람이 엄마고 내가 아빠야!
미도리에게는 여자친구 라는 개념을 가르쳐주는게 쉽지 않았기에 굳이 길게 설명을 한 적이 없었다, 그나마 항상 같은 간식을 챙겨주게 하면서 기억할 수 있도록 했지 실장석의 지능에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남자이다
미도리는 '아내는 아닌데 아내처럼 행동하는 낯선 인간' 이라는 개념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하였다
아내면 아내고 아니면 아닌거지 그 중간에 무엇인가 있다 라는걸 도저히 이해할 지능이 되지 않았기에 뇌에 과부화가 걸리는 듯 한 녀석을 위해 그냥 바삭바삭 초콜릿을 주러 가끔 오는 긴머리 사람이라고 기억을 시켜줬을 뿐
남자와 여자의 잠자리는 무조건 여자의 자취방에서 진행되었었다
남자는 여자친구의 임신소식에 너무 신이나서 부모님께 먼저 연락을 드리려했지만 임신초기에는 유산이 너무나도 쉽게 되기도 하기에, 혹시모를 상황을 대비해서 안정기에 돌입할 때 까지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두분은 분명 처음엔 화를 낼 것 같아서 조금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빠가 된다는 자랑을 도저히 참을수가 없던 그는 그의 애완동물, 사육실장 미도리에게 먼저 자랑을 하게 된것이다
(물론 가장 먼저 그가 아빠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는 회사 건물 1층 주차장에서 살고있는 길고양이였지만, 남자는 불편한 표정을 한 길고양이의 두손을 잡고 마구 자랑을 하다가 아주 살짝 깨물렸다)
"아무튼~~~.....으음 큼큼 흠흠흠!...아무튼 미도리, 후우, 너에게도 동생 같은 존재가 태어나는거란다, 그리고 더 많은 가족이 생기는거고 우린 다 함께 살게될거야! 집도 더 좋은 곳으로 갈거고!"
이제서야 진정이 된 남자는 다시 한번 짧고 간결하게 미도리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1. 나는 아빠가 될것이다
2. 더 좋은 집으로 갈것이다
3. 나와 아내, 나의 아이, 그리고 미도리, 넷이서 함께 살것이다
4. 우린 행복한 가족이 될것이다
미도리가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이 좋은 소식을 알리고 함께 기뻐해주길 바랬다
미도리에게 있어서도 더 넓은 집, 자신을 잘 챙겨주는 예쁜 인간, 그리고 어쩌면 평생을 함께 할 친구가 생길수도 있다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기쁨일것이라 확신하였다
만약 미도리가 아주아주 똑똑한 개체였다면, 그녀는 수명이 다해 죽을때까지 사육실장으로서 최고의 환경과 안정 속, 가족들의 정을 함께 느끼며 살아갈 수 있었다
적어도 남자는 그녀를 남들보다 인간에 가깝게 대접해주었고 그녀의 아내 될 사람도 마찬가지였으니
제 아무리 세레브한 실장석이라 한들 감히 누리기 힘든, 인간과 대등한 관계에서의 가족생활.
미도리는 평범한 실장석이였고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도, 동의하지도 못하였다
"하지만 주인사마, 약속한 것과 다른데스"
불쾌한듯한 말투로 데스데스 하는 미도리의 말에 남자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주인사마, 와타시타치는 자를 낳지 않기로 약속한게 아니였던데스?"
미도리는 애매하게 영리한 지능을 지닌 평범한 실장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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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능도 높고 인간에 대한 우호도도 높은 녀석들은 가장 비싼 가격에 팔린다
지능은 높되 분충끼가 심한 녀석들은 학대파들에게 나쁘지 않은 가격에 팔린다
그저그런 지능에 인간 우호도가 높아도...뭐 나쁘지는 않다
지능도 낮고 분충끼가 심한 녀석들은...구하고싶다면 대충 공원에 가서 아무거나 주워오면 된다
미도리는 애매한 지능에 인간 우호도 역시 애매한, 대표적인 실장샵 상품이였다
그런 그녀를 남자는 나름 인간대 인간처럼 대우해주었고
실제로 간단한 집안일 정도를 부탁하며 때때로 그에 걸맞는 보상을 해주기도 하였지만...사실 집안일은 정말 하나마나 한 수준이였다
미도리가 하루종일에 걸려 겨우겨우 끝낸 청소의 퀄리티는 남자가 10분이면 더 말끔히 할 수 있을 정도
빈말이라도 도움이 정말 하나도 되지 않는 레벨이였지만 그럼에도 그 모습이 대견하여 칭찬해주고 쓰다듬어주었다
하루종일 홀로 심심해있을 미도리가 걱정되었지만 스스로 청소도 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보면 오히려 정서적으로 이 편이 그녀에게 더 도움이 되어보이기도하였다
남자는 미도리를 신뢰하였고 그렇기에 더 깊은 관계의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도무지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말들만 연신 내뱉고 있었다
"와타시도 자를 가지고싶었던데스. 하지만 주인사마와 약속을 했기에 와타시는 지킨데스, 외로워도 참은데스, 그런데 어째서 주인사마는 와타시와의 약속을 어기고 자를 가진 데스? 너무한데스"
미도리는 정말로 억울한듯 두 주먹(같이 생긴 손을)을 불끈 쥐며 얘기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어째서 모두가 같이 살아야하는데스? 그럼 와타시가 집안일을 더 많이 해야하는거 아닌데스? 주인사마의 자도 와타시가 키워야하는거 아닌데스? 주인사마는 청소도 빨래도 아무것도 돕지 않는데스, 그런데도 자를 가졌다는건 그걸 전부 와타시에게 시키려고 그런거아닌데스까?"
미도리는 정말로 억울한듯...목소리까지 떨리고있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믿고있었다
자신이 하루종일 남자를 위해 집안일을 하는 것이라고.
그녀가 작은 빗자루를 쓸며 지나간 자리에는 뭉친 먼지가 여전히 한가득이였고
지저분한 걸레로 닦은 테이블은 종종 냄새까지 났었다
빨래랍시고 시키는건 하루에 한두번, 그녀의 옷과 팬티를 직접 손빨래 하라고 한 것 밖에 없지만 그마저도 영 신통치않아 남자는 샤워를 하며 그녀의 옷을 다시 한번 빨아주곤했다
행복회로라는건 극단적인 상황일때만 발동하는 초능력 따위가 아니였다
미도리는 자신이 청소해놓은 바닥이 진심으로 거울처럼 반짝거린다 믿고있었고
자신이 걸레질을 한 곳은 신기할정도로 좋은 향기가 난다 믿고있었고
남자의 모든 빨래를 자신이 전부 손빨래 해주고있다고 믿고있었다
이런것들 또한 행복회로였다
미도리가 세시간을 넘게 닦아봤자 남자의 물티슈질 한번에 깨끗해질 곳들이였지만
그 모습을 보고 미도리는 '정말 도움되지 않는 남자인데스....' 라고 생각하기까지 했었다
이것이 그들의 지능적 한계이다
"주인사마를 위해 모든것을 한 데스...그런데 주인사마는 왜 먼저 와타시에게 아침인사를 오지 않는데스?...왜 밥먹을때 와타시에게 감사인사를 하지 않는데스?...왜 이불정리를 하지않는데스?...와타시는...주인사마를 위해 노력하는데 왜 주인사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스??....."
".........."
미도리는 조용한 녀석이였지만 자신의 불만을 꾹꾹 참고 말하지 않았을 뿐, 속에서 그 불만들을 상당히 삭히며 괴로워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세레브한 존재인 이몸이- 이런 뉘앙스는 절대로 아니였다
미도리는 단순히 남자와 평등한 관계이길 바랬을 뿐이였다
미도리의 눈에 남자는, 주인이라는 이유로 제 할일도 제대로 하지 않는 건방진 녀석이였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않고, 할 줄 모르는듯한 주인이라는 녀석이 멋대로 자를 가지겠다고 통보를 한 셈이다
공평해야 할 우리 둘의 관계를 주인인 남자가 깨뜨려버렸다고 느꼈다
미도리는 자신이 먹는 밥과 간식, 안전한 공간이 누구 덕에 나온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적이 없다. 아쉽게도 지능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그 모든 것들이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간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한다. 남자는 그냥 나가서 하루종일 놀다가 들어와서 '그 공간'에 있는 푸드와 간식들을 꺼내주는 것 뿐이면서 뭘 그렇게 생색을 내는지
일주일에 한두번은 꼭 함께 나갔던 산책은 자신을 위한게 아닌 남자를 위한 것 취급이였다, 자신이 그토록 가고싶어했던 궁전같은 집(실장석 출입금지 백화점)은 한번도 데려가주지 않고 남자가 가고싶은 곳만 갔다. 재미있긴 했지만 그래도 남자를 위해 간게 아닌가
미도리는 말 그대로 진심으로 억울하였다
"주인사마...이번에는 와타시도 용서못하는데스....그러니 주인사마도 약속을 지켜줬으면 하는 데스"
"야...미도리...아니...하.....하......."
"다른건 약속이라고 말한 적 없는데스...와타시도 참는데스...하지만 '자를 낳지 않겠다' 라고 약속한데스...함께 얘기했으니 지켜주는데스"
실제로 남자가 기본교육은 완료되어있는 미도리에게 신신당부한 규칙은 오로지 하나...자를 낳지 않는 것 뿐이였다
남자는 샵에서 교육받은 것과 이것 하나만 지킨다면 미도리를 가족처럼 대우해줄 수 있었고 실제로 그는 그녀를 단순 애완동물 취급하여 방치하거나 하지 않았다
보상의 개념을 알게해주고 노동을 통해 인간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실장석들의 입장에선 단순히 자신들을 부려먹는다 라고 생각했을지언정....남자는 그들을 조금이라도 더 인간과 가깝게 취급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이해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애매한 지능은 실장석 뿐만 아니라, 사육주에게도 적지 않은 데미지의 저주가 되었다
"주인사마"
"그만....미도리 그만...."
"자를 없애는 데스. 명령인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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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미도리 기준에서의 평등, 공평이였다
인간과 온전히 똑같을 것, 모든 것을 공평하게 할 것
그리고 이것이 미도리 기준에서의 양보와 배려였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인이지만 내가 참자, 철없는 저이를 내가 용서하자
또한 이것이 함께 살아가는 인간과 실장석에게 저주였다
인간은 온전히 사육실장을 위해준다
사육실장은 절대로 그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육실장인 본인들이 더 희생하는 것이라 여기기나 하지
사육실장 미도리가 주인인 남자에게 말대답을 했다, 그것도 두번 이상
화를 냈고 자신의 불만을 얘기했다, 세번 이상
만약 그녀가 브리더에게 교육을 받는 중에 이런 행동을 했더라면 그녀는 굳이 분쇄기로 가기 전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온몸이 갈기갈기 찢겼을것이다
마지막으로
어쩌면 그 어떤 실장석도 감히 해본 적 없을 문장을 자신의 주인에게 내뱉었다
'너의 자를 지워라, 내가 명령한다.'
타고난 분충성이 깨어난것이 아니다, 위석이 시킨 말도 아니다
미도리는 오로지 평등한 관계를 위해, 억울했던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조금 더 강하게 말한 것도 있다
주인과 자신을 대등한 관계로 명령을 했다
참 우스운 사실은, 만약 그들의 대화를 어느 학대파가 듣고있었다면 당장 그들에게 달려와 미도리를 팔아달라며 돈뭉치를 내밀었을 것이다
색다른 바리에이션을 가진 분충은 언제나 없어서 못 팔 정도로 귀한 녀석이니 말이다
미도리의 마지막 말에 상당히 분노한 남자였지만 그는 평범한 사람이다
길고양이가 제 손을 물어 피가 나게 했다고 냅다 밟아 죽이는 미친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교육에 실패하여 입질을 심하게 하는 애완견을 자비 없이 주먹으로 때릴 수 있는 사람 또한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얼마든지 정은 떨어질 수 있다
어쩌면 그 저주라는 놈은 생각보다 오래된 것들인지도 모른다
이미 인간과 실장석이 소통이 가능할때부터, 까마득한 옛날부터 저주였을지도 모른다
소통이라는 저주 덕에, 단 10분도 되지 않아 남자는 1년 6개월이라는 짧지 않은 미도리와의 정이 거의 대부분 사라졌다
성체실장인 녀석은 그리 작은 크기가 아니다. 당연히 갓 태어난 아기보다 거대하고 영리하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배변을 이용하여 공격을 하기도 하고 필요하다면 동족을 잡아먹는 일도 서슴치 않다는건 이미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런 위험한 동물을, 주인의 아기를 죽이라고 말하는 짐승 따위를 어떻게든 어르고 타일러 함께 산다는건 말도 안된다
길고양이도, 입질하는 애완견도 죽일듯이 패는건 인간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저 멀리 가져다 버리는건 너무나도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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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였다
그저 조용히 묵묵히 큰 골판지 상자를 가져와 미도리의 모든 물건들을 담기 시작했다
널부러져있던 장난감, 간식, 남아있는 푸드, 아끼는 드레스 두벌
장난감을 상자에 담을때 까지만 해도 미도리는 그 모습을 보며 '이제야 정신차리고 청소를 하는데스, 에휴데스' 라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얘기할걸 이라는 생각만을 가졌다
그 모든것들을 한 상자에 다 넣는 것을 보았을땐 머리가 따라가지를 못했다
'저걸 왜 저기 다같이 넣는거지?' 라는 생각만 했을 뿐
모든것을 상자에 넣고 포장을 한 남자는 잠시 멍하게 눈을 감더니 이내 주섬주섬 옷을 벗어 샤워를 하러 갔다
자신을 쳐다보고있는 미도리를 애써 무시하며, 어째서인지 코를 훌쩍이는 소리를 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얘기하지 말걸...아니 그러지 않았다면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겼을지 몰라...'
어느 방향으로나 약속된 헤어짐의 길
애석하게도 미도리를 향한 정이 99퍼센트 사라졌다
하지만 가장 깊고 진하게 묻은 단 1퍼센트의 정이 남자를 괴롭게 하였고
너무나도 행복한 소식을 들은 그 날, 남자는 반대되는 괴로운 결정을 하며 홀로 눈물을 흘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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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아침,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는 한산하다
"주인사마, 어디가는거인데스?"
"........"
"데에...날씨가 좋은데스...멀리멀리 산책데스?"
"........"
"처음보는 길인데스, 기대되는데스"
"........"
"주인사마, 할 말이 있는데스"
"........"
"사실.....와타시 바삭바삭초콜릿을 가져온데스"
"......."
"핑크가방에 넣어놓은데스, 아껴먹고있던데스"
"........"
"주인사마랑 나눠먹는데스, 어제는 죄송했던데스"
".............."
"하지만 와타시의 말을 들어줘서 감사한데스"
"................."
"와타시도 힘들지만, 약속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데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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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도로, 반대 방향
남자는 여전히 말이 없다
중간중간 차오르는 눈물이 심하게 앞을 가려 잠시 갓길에 차를 멈춰 세워 한참을 흐느끼다 다시 출발할 뿐
자신의 행동에 정당화 하고싶지는 않아 죄책감은 거대하게 남자를 씹어댔고
짧은 시간, 수백번은 더 다시 돌아갈까 고민을 했지만 어쩌면 지금 헤어지는게 옳다는 것을 알기에 묵묵시 자신의 집으로, 홀로 돌아갈 뿐이다
오로지 나의 인간 가족을 위해서.
미도리는 도로 갓길 가드레일 안쪽, 수풀 깊숙한 곳에 남자가 만들어준 커다란 골판지 하우스와 그 안에 담긴 제 물건들을 멍하게 바라만 보고있다
무슨 생각이 있기에 그러는 것이 아니다
단지 지금 상황이 뇌에서 제대로 돌아가지 않기에 순수하게 멍만 때리고 있을 뿐
버려졌다 라는 생각 따위도 나지 않고, 남자가 사라지는건 뭐 매일 아침 그러하니 딱히 중요하지 않고
오랜만에 맡는 풀내음이 썩 기분이 좋아, 따뜻한 햇살 아래에서 눈을 감아보니 나쁘지 않아
그저 조용히 나뭇잎 바람에 부딫히는 소리를 들으며 "데에...." 소리만을 내고있었지만
"뎃!.........."
아차
주인님이 가기 전에 초콜릿 같이 먹기로 했는데
방금 갔으니 늦은 저녁에야 돌아올 주인을 생각하며 뒤늦게 함께 먹지 못한 초콜릿을 꺼내어 쳐다보는 미도리
달콤한 향기가 너무 좋아 당장이라도 먹고싶지만 스스로 주인님과 함께 먹기 위해 약속한 것이니, 미도리는 주인님과의 약속을 잘 지키는 실장석이기에 그것을 다시 가방에 넣는 그녀
다시 골판지 상자 안, 햇살이 살짝 들어오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홀로 "데에데에~데스데스~" 노래를 부르며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 마냥, 평소처럼 혼자 시간을 보내며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마냥 기다린다
저 멀리에는 집에선 보기 힘든 예쁜 꽃들이 한가득 피어있지만
약속을 잘 지키는 미도리는 그것들에서 관심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눈을 돌려 노래에 집중을 한다
결국에는
평범한 인간과 평범한 실장석의 가장 평범한 결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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