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여, 너 슬프도다.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도 고등하고, 행복을 알기엔 너무도 하등하구나!
- 쎄쌀로니키의 필로네스.
“데에…”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생태공원. 서울시는 인구압으로 터져나가는 동부 주거지구 시민들의 쉼터를 조성하고, 남양주시는 그 시민들이 쓰는 돈으로 새로운 세수원을 마련한다는 윈윈전략을 들어 만든 이곳은 그 드넓은 규모로 인해 곧 일본에서처럼 사육실장 유기가 빈번하게 벌어지는 공원이 되었다.
이 분홍 옷의 성체 또한 그렇게 버려진 많고 많은 사육실장 중 하나일 뿐이었다.
“야.”
“뎃?”
그리고 이 원사육실장에게 말을 거는 중년의 관리원 또한 많고 많은 공원 관리원 중 하나일 뿐이다.
“나원참 하루가 멀다 하고 버려지는 놈이 나오네. 넌 또 무슨 이유로 버려졌냐?”
휴대폰 링갈앱을 통해 자신에게 그렇게 묻는 관리원에게 사육실장, 아니 이제는 원사육실장이 된 성체가 입을 열었다.
“데…뭐가 문제였던 건지 잘 모르겠는 데스…”
일견 멍청한 소리지만 원사육은 왜 자신이 버려졌는지 정말로 알지 못했다.
“그냥 이유없이 버려진 거야?”
“잘…모르겠는 데스.”
“뭐 똥 같은 거 여기저기 싼 거 아냐? 아니면 밥투정을 했다든가?”
“운치는 화장실 가서 누고 뒷처리도 잘 한 데스. 옷도 깨끗하게 잘 빨아 입었고 푸드는…조금 질린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투정 같은 건 안 한 데스우…”
그럼 왜 버려졌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남자. 왜 버려졌을까? 문득 성체실장은 무언가 하나가 더 떠올랐다.
“그러고보니…”
“어?”
“어제…자를 가지고 싶다고 하긴 한 데스.”
“그거네.”
“데스우…”
원사육은 고개를 푹 수그렸다. 사육실장 교육을 받을때부터 누누히 듣던 소리. 자를 가지지 말라는 소리. 그게 용서받지 못할 행동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돌씨의 유혹은 강렬했다. 어쩌면, 자신만은, 자신의 주인만은 다를 줄 알았다.
“왜 자를 가지겠다고 했냐?”
“돌씨가…돌씨가 자를 가지면 행복할 것이라 했던 데스.”
“그동안은 행복하지 않았어? 네 행색을 보아한데 학대를 받거나 한 건 아니어 뵈는데.”
“주인사마는 참 좋은 분이었던 데스.”
“그런데 왜 그랬어?”
“더 행복해지고 싶었던 데스.”
“더 행복해?”
사육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주인님의 집에 와서 지금껏 먹었던 푸드를 먹어본 데스. 처음엔 교육받던 시절 먹었던 더러운 푸드가 아니라 깨끗하고 맛있는 푸드를 먹어서 참 행복했던 데스.”
“그리고?”
“그 다음엔 분홍색의 사육실장 옷을 받은 데스. 원래 입고 있던 흔한 초록색 옷이 아니라서 행복했던 데스.”
“그 다음은?”
“그 다음에는…몸을 제대로 누일만한 집과 침대를 받은 데스. 항상 잘때마다 내일 일어났을 때 보이는 것이 브리더상과 그 브리더상에게 죽어가는 동기들이 아니어서 행복했던 데스.”
거기까지 말하고, 성체실장은 공허한 눈으로 빈 공간을 쳐다보더니 이내 다시 운을 땠다.
“그리고…자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 데스.”
“여태껏 행복했는데 어째서?”
“어째서냐는 데스가…당연한 거 아닌 데스까? 자를 가지면 행복한 데스. 그래서 그렇게 말한 데스.”
“그러면 그 이전에는 행복하지 않았어? 너 방금전에 자를 가지기 전에도 행복했다고 했었잖아.”
“그랬던 데스. 그런데…”
성체의 얼굴이 어두워진다.
“어느새부턴인가 행복한 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던 데스. 자고 일어나서 밥먹고 다시 잠에 드는 그 시간은 분명 행복하기 그지없는 시간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너무나 공허했던 데스.”
“한계효용을 느껴버린 건가?”
“데스?”
남자의 중얼거림에 그게 뭐냐고 고개를 드는 원사육실장. 남자는 길게 한 숨을 내 쉬고는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즐거움이 다 그렇지만, 행복에도 ‘역치’라는 게 있단다.”
“역치 데스? 그게 뭐인 데스?”
“예를 들어, 네가 처음에 말했듯이 매일 냄새나고 맛없는 푸드만 먹다가 어느날부터 깨끗하고 맜있는 푸드를 먹으면, 처음에는 기분이 좋겠지.”
하지만, 이라고 남자는 맗한다.
“그것도 처음에나 그렇지 그걸 계속 먹다 보면 그게 당연한 것이 되어버려. 그러다 보면 그 맛 좋은 푸드를 먹어도 더 이상 행복하지 않지.”
“그랬던 데스. 처음에는 참 좋았는데, 어느새부터 그게 맛이 없었던 데스.”
“게다가 옷도, 집도, 이름도. 처음 받았을 때는 뛸 듯이 기쁘고 행복했는데 그걸 계속 가지고 살다 보면 너무도 당연한 풍경이 되어 거기서 느끼는 즐거움이 사라져.”
“맞는 데스. 처음 가지는 와타시만의 옷이었던 데스. 하지만 조금 있으니 그저 그런 당연한 것이 된 데스.”
“그게 역치라는 거야. 행복도 계속 느끼다보면 처음 느꼈던 행복만큼 그것을 느끼기는 힘들지. 그렇게 새로운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계속 줄어들다가 어느 순간에는 0이 돼.”
“닝겐상도 그런 데스?”
“그럼, 우리도 생명체인데 그걸 왜 안 느낄까? 내가 방금 한계효용이라고 말했지? 그게 인간들이 느끼는 그런 것이 실물경제에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니 저명한 학자 나으리들이 그걸 보고 붙인 이름이야.”
관리원은 음 하고 뭔가를 생각하더니 말을 이었다.
“지성 있는 동물이라면 당연히 그런 걸 느껴. 궤는 조금 다르지만 옛날에 매슬로우라고 하는 학자 양반이 이런 말을 했지. 인간은 음에는 안전이 보장되는 것에 행복을 느끼지만, 곧 잘 먹고 자고 싶어하고, 그게 충족되면 주위에서 인정받고 싶어하며 종국에는 자아실현을 하고 싶어한다고. 즉, 하나의 행복이 충족되면 곧 더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는 거지.”
“그렇다면, 와타시는 왜 쫓겨난 데스? 와타시는 그저 역치가 다 되어서 그걸 뛰어넘는 행복을 요구한 것밖엔 없는 데스. 그건 당연한 거 아닌 데스?”
“음, 그게 말이야. 당연하되 당연하지 않은 것이거든.”
이건 또 무슨 말장난인가? 성체는 따지듯 물었다.
“오마, 아니 흥분해서 죄송한 데스. 닝겐상은 분명 그 역치를 뛰어넘으려 하는 게 ‘당연하다’라고 했던 데스. 아닌 데스까?”
“맞아.”
“그렇다면, 그게 ‘당연한’ 거라면 그걸 ‘당연히’ 얻어야 하는 거 아닌 데스까?”
“그건 내가 느끼는 ‘당연한’ 거지, 그걸 주변에서 들어줄 의무는 없거든.”
“뎃?”
뜬금없어 뵈는 소리에 잠시 말문이 막히는 원사육실장.
“잘 들어봐라. 우리는 생물이고 그렇기에 한 번 행복을 느끼고 나면 어느 순간에는 그게 식상해져. 그리고는 더 큰 행복을 찾게 되지. 그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더 큰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리스크’를 감수해야 해.”
“그 리스크라는 건 무엇인 데스까?”
“글쎄…뭐라고 딱 설명하기는 힘든데, 그 행복을 얻기 위해서 짊어져야 할 ‘불확실성’ 이라고 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불확실성 데스?”
“그래. 너 더 큰 행복을 위해 자를 가지고 싶다고 주인에게 말했지?”
“그런 데스.”
“하지만 주인이 그걸 들어줄지 아닐지는 주인의 마음에 달렸지. 그걸 허락할지 아닐지. 너는 그걸 확실하게 몰라. 그게 바로 리스크지.”
“하지만 아까도 닝겐상이 말씀하셨다시피 와타시가 더 큰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건 ‘당연하다’라고 하신데스. 그러면 주인사마도 당연히 그걸 들어줘야 하는 거 아닌 데스?”
“그건 ‘너’에게나 당연한 거지, 그걸 듣는 ‘주인’에게는 당연한 게 아니거든.”
“데에?”
이게 무슨 소리일까? 당연한데 당연한 게 아니라고? 왠지 선문답 같은 질답에 원사육실장은 머리에서 쥐가 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지구상 그 어떤 생물도 그걸 다 이루고 사는 생물은 없어.”
그런 원사육과는 다르게, 관리원은 왠지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데…아직도 이해가 안 가는 데스. 왜 ‘당연한’ 것을 요구했는데 이런 꼴을 당하는 데스….”
“아까도 말했잖아. 바라는 건 우리지만 들어줄 수 있는 건 주변이니까.”
“주변…데스까?”
“그래. 더 행복한 삶을 위해 무언가를 요구한다는 건 주변 사람들에게 너희가 누리는 것을 희생해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다오 라고 말하는 것이나 매한가지거든.”
“와타시는 주인사마에게 희생하라고 한 적이 없는 데스.”
“정말로? 설마 너 새끼를 낳으면 주인이 더 행복해질거라고, 그래서 주인에게도 좋은 거 아니냐고 생각한 게 아니고?”
“…”
그리 생각했다. 부정할 수 없다. 관리원은 그럴 줄 알았다며 씩 웃더니 다른 산등성이를 바라보고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네 생각일 뿐이야. 그저 너에게 맞춰 형편 좋게 생각한 것이지. 그리고 그걸 주변 사람들이 수용하느냐 마느냐는 주변 사람들의 사정, 그들이 내게 가지는 감정 등에 달려있지. 내가 그 사람들이 아닌바에야 그 사람들이 이걸 수용할 수 있을지 아닌지는 잘 몰라. 그게 바로 아까 말했던 불확실성, 즉 리스크고.”
“와타시가 행복을 느끼는 것이면, 주인사마에게도 행복 아니었는 데스까? 그러니 와타시는 ‘당연히’ 그걸 요구해도 되는 거 아니었는 데스?”
“그게 당연한 거면 나는 왜 가족과 헤어져 이렇게 산등성이 공원에 처박혀 있고 너는 왜 주인에게 버려져 모든 걸 잃었을까…
“…”
다시 한번 침묵.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자를 낳으면 주인은 더 많은 푸드와 옷 그리고 집을 사야했을 거고 그것은 주인에게 커다란 추가부담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태껏 그래왔듯 귀여운 와타시가 낳은 자를 보면 주인도 행복하지 않을까? 그러면 주인의 추가적인 희생도 그것으로 상쇄되지 않을까? 라고 행복회로를 들렸었다.
그리고, 결과는 자신의 신분 앞에 ‘원’자가 붙는 상황으로 돌아왔다.
“그러니까…닝겐상 말씀은 와타시에겐 ‘당연한’ 욕구지만, 그걸 들어주냐 마느냐는 주인사마의 결정에 달린 거다라는 데스까?”
“정답. 너 똑똑하구나? 여태껏 다른 놈들은 이 말을 이해하는 놈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지.”
남자의 말에 원사육실장은 허탈한듯 웃었다. 남자 또한 실없는 웃음을 짓는다.
“어찌보면, 우린 둘 다 우리가, 우리 주변이 감당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복을 요구한 것일지도 모르지. 지금 우리의 처지는 그래서 받는 벌인거고.”
또 다시 침묵. 어디에선가 새들이 휘드르르르 지저귀는 소리가 주변을 감싼다.
“난 말야. 대기업의 차장이었어.”
남자는 담담하게 자신의 생을 풀어놓았다.
“난 어릴 때 찢어지게 가난했지. 밥도 잘 못 먹을 정도로. 그래서 돈을 많이 벌고 싶었어. 엄청나게 노력했지. 죽도록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 대기업에 취직해서는 상사에게 아부하고, 부하들을 챙기며, 때로는 없는 마음도 꾸며내어 사람들에게 싹싹하게 대했지.”
사육실장 후보로 태어나 죽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웃고 싶지 않아도 웃어야 했고 배고파도 먹지 않아야 했으며 땡깡을 부리고 싶어도 예의 바르게 행동했다.
“그 결과였을까? 나는 이름만 대면 다들 알 굴지의 대기업에서 차장까지 올랐고 예쁘고 착한 아내와 좋은 아이들까지 얻었지. 이만하면 행복한 인생이다 싶었어.”
그렇게 끝까지 교육을 마치고 출하되어 샵에 전시되었다. 그리고 기한이 지나 폐기되거나 하지 않고 지금의 주인을 만나 사육실장이 바라는 것들을 얻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했어. 더 많이 벌고 싶었고, 언젠가부터 마누라가 더 이상 예쁘게 보이지 않더라고.”
하지만 날이 가고 더 이상 푸드도, 옷도, 집도 세레브하지 않아 보였다.
“그래서 바람을 피웠지. 마누라보다 더 젊고 예쁜 여자와 말이야. 행복했지. 잠시는 말이야.”
그래서 더 큰 행복을 위해 자신은 자를 원한다 말했다.
“그러다 들켰어. 그러자 내 주변은 빠르게 무너져 내리더라. 아내는 펑펑 울었고, 자식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고는 등을 돌렸지. 추문이 돌아서 내 평판은 엉망이 되었고 그 때문에 회사에 더 있지도 못해서 나왔는데 막상 나와보니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그러다 자는 새에 쥐도 새도 모르게 버려졌다.
“뭐, 그래도 아주 죽으란 법은 없는지 친구 연줄로 이렇게 공원 관리인이랍시고 한 자리 잡아서 이렇게 살고 있다. 단칸 월세방이긴 하지만 몸 누일 곳도 하나 구했고.”
“그게…와타시하고 무슨 상관인 데스 닝겐상…”
힘겹게 짜낸 듯한 목소리. 남자는 성체를 한 번 바라보고는 씨익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요즘 집에 돌아가면 말이야. 그때가 떠올라. 집에 가면 마누라가 웃으며 반겨주고 아이들이 뛰어나오며 나를 안아주던 그 때 말이야.”
“…”
“그때는 몰랐어. 그게 행복이었단 것을. 내가 바라는 행복은, 사실 거기 있었는데…그놈의 역치가 무언지 참…”
“데에…”
“옛날에 어떤 수도사가 이런 말을 남겼더라. ‘생물이여, 너 슬프도다. 행복을 느끼기엔 너무 고등하고, 행복을 알기엔 너무 하등하구나.’ 지금 너와 내 꼴에 딱이지 않니?”
“무엇을 말인 데스까…와타시는…”
“모르는 척 하지마라 이녀석아. 너 아까부터 내 말 다 알아듣고 있는 거 알고 있다.”
“…”
성체는 말없이 고개를 푹 수그렸다.
“한번 행복한 것을 느끼고 나면 더 위의 행복을 느끼고 싶어할 정도로 고등한 지성을 가졌지만, 진짜 행복이 어디 있는 가는 모르고 헤맬 정도로 하등한 지성을 가진 생물…”
문득 남자는 친실장을 돌아봤다. 친 역시 남자를 돌아보고 있었다.
“나하고.”
“와타시데스.”
“하하하하.”
“데프프프.”
알고 있었다. 적어도 마음 한 켠에서는.
찢어진 가난을 겪어 지금의 풍족한 생활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았다. 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륜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는 쾌락을 추구했다. 그래서, 버려졌다.
교육시절 보았던 들실장의 일상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에 대해 알았다. 하지만 더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주인이 들어줄 수 있는 것 이상의 행복을 추구했다. 그래서, 버려졌다.
둘은 동일했다. 종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등한 감각과 하등한 생각을 가진 생물로서. 파랑새를 새장에 두고도 있지도 않은, 그러나 그렇기에 있을 거라고 믿은 파랑새를 또 갈구했다.
한 사람과 한 실장은 한참을 웃었다. 자조일지 고소일지 모르는 그런 웃음.
두 생물 위로 어느덧 아침을 알리는 태양이 기지개를 편다. 밝아져 오는 동쪽 하늘을 보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노래한다.
“뭐, 내 여건상 너를 키우거나 할 여력은 안 되지만, 만약 여기서 잘 살아남으면 가끔 관리사무소로 놀러와라. 접대야 못 해주겠지만 적어도 말이라도 붙이고 남은 먹을 거리가 있으면 챙겨줄 수 있겠지.”
남자는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그에 화답하듯 성체 또한 일어났다.
“와타시는 꼭 살아남을 것인 데스. 이번엔 주어진 행복에 감사하며 악착같이 살아보겠는 데스요 닝겐상.”
“그래라.”
“하지만.”
원사육은 씁쓸하게 웃었다.
“왠지 살아남고 자를 낳고 나면 이번에도 또 그 위의 행복을 추구할지도 모르겠는 데스.”
“그러다 또 죽을 고비에 닥쳐도?”
“그럼 그때 가서 또 후회하는 데스.”
“오오. 역시 지성있는 생명체야. 너도, 나도 말이지.”
“데스?”
“사실은, 나도 생겼거든. 생활이 안정되니까, 요 앞 다방 미쓰김이 좀 예쁘게 뵈더라고.”
“또또 파멸을 목전에 두고 계신 거 아닌 데스까?”
“하하하하하!”
“데퍄퍄퍄퍄!”
또다시 한참을 웃고 둘은 손을 흔들며 서로 반대방향으로 나아간다.
지성있는 생물은 슬프다. 주어진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새로운 행복을 찾는다.
하지만 그래도 또 채워지지 않는 욕망을 이루려 하루를 산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왜 삶에서 의미를 찾는가? 삶은 욕망이다.
- 찰리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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