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어느 오후
건물의 전창면에 빼곡하게 채워진 플라스틱 진열대 안에서 데스데스- 테치테치- 레치레치- 레후레후- 실장석들의 노랫소리가 끊임없이 터져나온다.
"착한 닌겐상들은 와타시를 데려가주시는 데스우~ 빨래~ 청소~ 집안일은 와타시의 것인데스우~"
"데스데스 뎃데스~ 와타시는 착한 실장석데스~ 착한 주인님을 만나서 천년만년 같이 행복하게 살아가는데스~"
"텟테로케~ 세상씨는 아름다운텟테~ 와타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가서 너무 기쁜테치텟치~"
"레후- 렛레레후~"
노래의 가사는 세상에 하나없는 양충의 것이지만, 녀석들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고 눈은 필사적으로 가게 밖의 사람들을 향해 굴러가고있다.
누군가가 빨리 자신을 사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분충이라는 뜻은 아니다.
이 가게에 진열되는 실장석들은 전부 A급의 양충 사육실장들이다.
그저, 자신이 빨리 팔리지 않으면
가치가 점점 떨어져 플라스틱 케이스에서 유리 수조로, 유리 수조에서 종이박스로, 종이박스에서 분쇄기로 갈 운명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그러는 것일 뿐이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다.
노래에 이어 춤까지 열심히 춰보지만 녀석들에게 관심을 가져다주는 행인은 그 누구도 없다.
"저러다가 다 뒤지겠구만.."
나는 혀를 끌끌 차며 책상 모서리의 버튼을 꾸욱 하고 눌렀다.
그러자 플라스틱 진열대마다 연결된 공기 펌프에서 하얀 가스가 슈욱 하고 나와 녀석들을 덮친다.
"뎃데로데~ 와ㅌ..시..ㄴ......."
진열대 안의 실장석들은 하얀 연기에 의해 모습을 감추고, 가게 안에 울려퍼지던 노랫소리는 이내 서서히 사라져간다.
"데퓨후우- 데퓨휴우-"
가스가 서서히 걷히고 벌러덩 드러누워 자는 실장석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스트레스로 인해 분충화 되거나 자멸 해버리는 녀석들이 생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루에 최소 두번은 겪게 되는 일이다.
"거 참..."
진열대 안의 녀석들이 잘 자고 있는지 확인한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사뿐히 앉는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우투브를 켠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딸랑딸랑>
가게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의 화면을 향해있던 내 시선은 휙 하고 문 쪽으로 움직인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샀던 실장석이 좀 이상한데요."
9살은 되어보이는 부티나게 생긴 어린아이다.
아마 9일 전에 부모와 같이 와서 S급 저실장을 구입해갔던 아이였던가.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카운터 밖으로 저벅저벅 걸어나갔다.
"어, 그래그래. 그.. 저번에 저실장 사갔..던.. 손님 맞지? 뭐가 문ㅈ..."
"죽었어요."
아이는 내 말을 뚝 끊고는 퉁명스럽게 말하고는 양 손으로 들고있던 연녹색의 작은 박스를 나에게 슥 내밀었다.
"어..어...? 죽어? 혹시 그 저실장이 죽었다는 말이니?"
"직접 보시면 되잖아요."
아이는 똑부러지게 말했다.
하지만 예의가 있어보이지는 않는다.
부잣집 도련님들이란..
"어, 그래 한번 보마."
나는 아이가 내민 박스를 받아 카운터 위에 올리고 조심스레 박스를 열어보았다.
안에는 몸이 축 늘어져 미동도 하지 않는,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머리카락에 윤기가 번들번들한 저실장 한마리가 들어있다.
"아...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니?"
"몰라요. 그냥 어제 밤에 하도 울길래 확인해봤는데 이미 죽어있었어요."
"음... 혹시 이렇게 되기 전에 특별한 거라도 있었다거나...?"
"몰라요. 어제 밤에 갑자기 막 울긴 했는데 처음엔 무시했거든요. 근데 갑자기 조용해지길래 뭐지 하고 케이스 안을 보니까 죽어있었어요."
"링갈에는 뭐라고 말 하는 게 나오지 않았니?"
"아... 링갈은 평소에 잘 안써요. 그냥 밥 주고 가지고 놀기만 해도 좋아하길래... 대화 해보려고 해도 어려운 말은 잘 모른다고 하고요."
"그럼 저실장 목에 채워둔 링갈번역기를 좀 확인해봐도 될까?"
"네. 그러세요. 근데 환불이나 교환 되는 거죠?"
"음... 일단은 한번 봐야겠구나."
나는 축 늘어진 저실장의 꼬리를 잡고 들어올려 목에 채워진 링갈번역기를 떼어냈다.
고급 링갈번역기는 블랙박스처럼 하루치 정도의 실장언어를 번역하여 시간에 맞게 저장해두는 기능을 가지고있다.
보통 주인이 없는 동안 분충스러운 말을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등의 확인을 위한 기능이지만..
"그럼 어디..."
나는 링갈번역기의 끄트머리에서 칩을 뽑아낸 다음, 전용 USB에 부착한 뒤 다시 USB를 컴퓨터에 연결했다.
곧이어 컴퓨터에서 USB를 인식하고 디스크 파일이 열리며, 저실장의 말들이 기록된 파일이 나왔다.
<딸깍>
파일은 어제 오전 7시 부터 오후 10시 05분 까지의 내용을 담고있다.
오전 6시 부터 오후 9시 53분 까지의 내용은 대부분 혼잣말이나 아무 의미 없이 내뱉는 레후- 등의 소리, 밥이 맛있다, 주인이 좋다, 집이 넓다, 행복하다 등의 시덥잖은 말들 뿐이다.
"이런 말들을 했었구나. 역시 시시하네."
아이는 어느새 내 옆으로 와 모니터를 힐끔 보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뭐, 저실장이니까. 중요한 건 지금부터니..."
나는 제멋대로인 아이의 행동에 신경쓰지 않고 다음 내용을 확인했다.
.
.
"레후-"
"레후..."
"우지챠, 행복한레후."
"우지챠, 맨날 맛나맛나를 주고 우지챠랑 놀아주고 프니프니도 해주는 작은 닌겐상 너무 좋아레후."
"우지챠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우지챠인레후-"
"레후-"
"우지챠는 작은 닌겐상이 너무너무 좋은레후."
"레후? 이 말은 아까도 했던 말인 거 같은레후?"
"레후..."
"우지챠 어려운 거 잘 모르는레후-"
"레후- 어쨋든 우지챠는 작은 닌겐상 좋아레후-"
"우지챠, 작은 닌겐상한테 뭔가 보답해주고싶은레후-"
"우지챠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전력으로 생각해보는레후!"
"레후웃...!!"
"레....."
"어째서 생각이 안나는레후..?"
"레훗..!!!"
"레........."
"레에..........."
"우지챠.... 아무것도 작은 닌겐상에게 해줄 수 없는레후."
"우지챠는 손발 긴긴씨도 아닌레후."
"우지챠는 우지챠라서 춤도 못 추는 레후.."
"작은 닌겐상이 오는 때면 항상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러봤지만 작은 닌겐상은 별로 관심이 없었던레후.. 분명 노래를 싫어하는레후..."
"하지만 우지챠는 놀고 먹고 운치싸고 노래하는 것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레후....."
"레..."
"우지챠 한심한레후..."
"우지챠... 한심한... 레후...?"
"레.. 싫은레후... 싫어레후....!"
"우... 우지챠는 쓰레기가 아닌레후.... 쓸모없기 싫은레후....!"
"우지챠는 착한 작은 닌겐상도 있는레후! 매일 맛나맛나도 먹는레후! 매일매일 작은 닌겐상이 프니프니도 해주는레후...! 우지챠는 세계제일 세레브 우지챠인레후...!!"
"시... 싫어레후...!! 싫어레후..!!!"
"우지챠는... 쓰레기.. 아닌... 레..... 레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레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레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레훼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
.
.
여기서 기록이 끊겼다.
"어... 음..."
"바보네요."
"어 어?"
"제가 먹을 것도 주고 놀아도주고 다 해줘도 혼자 죽은 거잖아요. 바보에요."
나는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는 눈물은 커녕, 한심하고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있다.
보통의 아이라면 가게에 들어오는 시점 부터 닭똥같은 눈물을 흘린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이것이 애완동물이든, 그저 가지고놀기 좋은 장난감이든
어찌 되었든 아끼는 무언가.... 일 터인데 말이다.
아이에게 있어 이 한마리의 생명은 그저 고장나면 새로 사면 그만인 싸구려 장난감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무것도 안했는데 혼자 죽었으니까 제품하자 맞죠? 저는 교환으로 받아갈래요. 이번에는 저실장 말고 자실장으로 키워볼래요."
"하아... 그래그래... 제품하자가 맞으니 저기 진열대에서 아무거나 하나 골라가렴. 자, 여기 포장박스."
.
.
.
"안녕히계세요."
"그래. 갈 때 차 조심하렴."
<딸랑딸랑>
"거 애새끼 싸가지 더럽게 없구만. 그래도 똘망똘망한 게 어디 가서 죽지는 않겠어."
나는 아이를 보내고 시체가 되어버린 저실장을 들고 분쇄실로 들어갔다.
아니
정확히는 가사상태에 빠진 저실장이지만.
"니가 다시 정신을 차린다 하더라도... 너 만큼 똑똑한 양충이라면, 저 아이 밑에서 평생 행복하게 살지는 못할거다."
<삑>
"실장석은 애정이 필수인 생명체거든. 그저 의식주만 해결 된다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그그그극극그극그그그그극>
"그렇다고 이미 팔았다가 하자생긴 물건을 다시 팔자니... 그건 좀 아니잖냐."
"레... 레후...? 여기... 어디레후.....?"
"아, 가사상태가 풀렸나? 빨리 처리해야겠구만."
"레후우-? 레후우-?"
"아쉽게됐다. 잘가라."
"레후-? 우지챠 하늘을 나ㄴ.. 렢..!"
<파-킨>
"에휴.. 저 자실장도 몇 일 못버태겠구만. 저실장보단 자실장 지능이 더 높으니... 다음엔 가사가 아니라 진짜 파킨사 할 지도.."
나는 분쇄기를 끄고 다시 카운터로 돌아가 의자에 앉았다.
다시 우투브를 켜고 영상에 집중을 한다.
잠들었던 진열대의 녀석들이 슬슬 깨어나고있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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