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피와 말



[와타시가 그만하라고 했는 데스!! 그러면 그만 해야 하는 데스!! 그런데 왜 그만 안 하는 뎃샤!!]

이 더러운 놈은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주전부리를 사 가던 내게 나타나서는 뭐라할 틈도 없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비닐봉투에 지 똥을 처바른 놈이다. 집에 빨리 가려고 공원길을 가로지르던 게 잘못된 판단이었나 보다. 아니 그런데 이 작은 도심공원에 이런 놈이 어떻게 살고 있지?

그래도 다행히 비닐봉지가 막고 있고 안에 든 것들도 대부분 비닐포장이 된 것들이라 봉지에서 냄새 나는 거 외에는 별 피해가 없었지만 너무 화가나서 발로 밟아 댔는데 뭐라뭐라 지껄이길래 폰을 꺼내서 링갈을 켜보니 저 지랄을 떨고 있었다.

“야 이 새끼야! 그만하긴 뭘 그만해! 갑자기 튀어나와서 남의 거에 똥 발라놓고 적반하장으로 지랄이네!”
[그게 어떻게 똥닌겐 것인 데샤!!! 그건 와타시 것인 데스! 와타시가 그리 말했으니 와타시 것인 데스!]

뭔 개소리야 이 미친 참피새끼는? 나는 발에 무게를 실어 놈의 다리 두 쪽을 짓밟았다. 곧 뼈가 산산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참피놈은 비명을 질렀지만, 이내 다시 내 봉투를 보고는 자기 거라고 울부짖었다.

“이게 왜 네꺼냐 참피새끼야!”
[와타시가 와타시 거라고 했으면 와타시 거인 데스! 심지어 멍청한 똥닌겐이 그것도 못 알아 들을까봐 친히 고귀한 와타시의 운치까지 발라놓은 데스! 그 정도면 아무리 배운 것 없고 눈치 없어도 알아서 먹을 걸 바치고는 공손히 물러나도 모자랄 판에 이런 폭거를 저지르는 데샤!!!]

와 이 정도쯤 되면 어처구니가 없는 걸 넘어서 웃음이 나온다.

“네가 뭐라도 되냐? 아니, 뭐가 된다고 한들 내가 내돈 주고 사온 물건에 똥칠한다고 네 거가 되는 게 말이 되냐? 왜? 아주 세상 모든 것에 똥칠하고 네 거라고 우기지?”
[세상씨는 와타시에게 봉사해야 하는 데스! 와타시는 아무런 대가 없이 세상씨와 노예들에게 섬김받아야 한단 말인 뎃샤! 그런데 왜 와타시가 말해도 안 해주는 데스!! 이건 직무유기인 데스! 다 신고해버릴 거란 데스!!]

꼴에 신고라는 단어는 또 어디서 듣고 온 건지. 나는 신고해보라고 조롱하면서 참피놈 양 손마저 짓이겨 놓았다.

[데—갸--------!!!]

이제는 비명인지 포효인지 링갈로 번역도 안 되는 피 끓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었다. 어이쿠, 검은 눈물도 흘리고 있네.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그러고 있자니 경찰관 한 분이 다가오신다. 걸으면서 오시는 걸 보니 신고를 받거나 해서 오신 건 아니고 우연히 주변을 돌다가 내 모습을 보고, 그리고 이 실장놈 비명을 듣고 오신 모양.

경찰관을 보더니 초승달 눈을 휘며 데프프 웃는 성체. 같잖아서 피식 웃어주고는 경찰관분께 자초지정을 설명 드렸다. 녹색의 분비물이 묻은 명백한 증거까지 있다 보니 경찰관 분은 순간 얼굴을 찌푸리고는 놈을 흘겨보신다.

[어서…저 똥닝겐을 체포하란…]
“어휴, 욕보셨네요. 요즘 저런 놈들이 가끔 나와서 저희도 골치입니다.”
“몇놈 저런 놈이 나오나 보죠?”
“말도 마세요. 갑자기 튀어나와 행인들 방해하고, 그거 까지면 좋은데 똥 바르려 들고 그때마다 파출소에 신고접수가 엄청 들어옵니다. 저희가 뭘 어쩔 수가 없는데 말이죠.”
“고생하시네요.”

내가 비닐봉지에서 음료수 한 캔을 꺼내 드리자 이런 거 받으면 안 된다고 한사코 사양하시는 경찰관분. 그래도 고생하시는데 호의로 드리는 거기도 하고 마침 CCTV도 없는 고마운(?) 상황이라 몇 번 권하니 감사하다는 말씀과 함께 음료를 받아 드신다.

[데? 데에?]

한편, 자기가 원하는 데로 나는 체포되고 내가 산 주전부리들은 자기 것이 되기는커녕, 나와 경찰관분이 화기애애하게 담소만 나누자 성체놈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눈치 챈 모양이다.

[어째…서인 데스…와타시는 이…세상의 왕…]
“그럼 이 놈은 저기 쓰레기통에만 잘 버리고 가시면 됩니다.”
“넵.”

경찰관분이 가시고 나는 대충 과자 하나를 꺼내 다른 과자 비닐에 대충 옮겨담고, - 그 와중에도 내가 과자봉지를 뜯으니 제놈 주는 줄 알고 데프프 웃은 참피놈이 레전드다 진짜 – 빈 과자비닐을 장갑처럼 써서 성체놈 뒷덜미를 들어올렸다.

[또옹 닝겐…어서 와타시를 집으로 모셔가…]
“어 그래. 어서 네가 있어야 할 집으로 가자. 저 쓰레기통에 있으면 수거하시는 분이 오셔서 수거하실 거야.”
[그게…무슨…망발…]
“그리고 매립지 가서 그때까지 살아있으면 산체로 묻히거나 소각장 가서 불타 죽을 거다.”
[데히…!]

그제서야 자신이 죽음의 원 웨이 티켓을 끊었다는 걸 알아챈 참피놈. 내게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둥거리지만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은 지렁이가 꿈틀대는 것 만도 못한 움직임을 보일 뿐이다.

[벗어나는 데스…움직이는 데스…똥 닝겐은 와타시에 메로메로 될 것을 명하는…]
“그래그래 여기서 잘 기다리렴. 혹시 아냐? 청소부 아저씨가 네게 메로메로 될지?”

쓰레기통 뚜껑을 닫고, 나는 어디서 울려 퍼지는 지 모를 데에엥 소리를 배경으로 집으로 걸었다.



집에 와서 봉지 내용물을 꺼내 정리하고 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음을 넘어서 궁금증이 들었다. 도대체 왜 참피놈들은 자기가 말을 하면 다 그대로 이뤄질 거라고, 아니,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러고보니 저번에 누가 마이튜브에 올린 영상에는 수조에 든 자실장이 왜 밥하고 콘페이토를 가져오라 하는데도 아무도 안 듣냐고 호통(?)치는 영상도 있었지.

이놈들은 진짜 자신이 말하면 뭐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이튿날 학교에 가서 공강시간에 동아리 방에서 뻐팅기다가 오타쿠 동기녀석에게 내가 겪은 이야기를 해줬다. 동기 녀석은 그걸 듣고는 그거 마치 언령 같다고 이야기했다. 언령이 뭐냐고 물으니 그 일본 만화 같은 데서 나오는 개념인데 말에는 주술적인 힘이 있어서 특정한 말을 하면 그 말에 담긴 힘이 발휘된다는 것이었다. 즉, 참피들은 자기 말에 언령 같은 힘이 있다고 믿는 거 아니냐는 것.

그 자리에서는 그게 무슨 되도 않는 소리냐며 웃었다. 동기도 진지하게 한 이야기는 아닌지라 같이 웃었는데, 집에 와서 그 말을 곱씹어보니 왠지 그동안 참피들이 해온 행동을 봐서는 진짜 그 언령인지 뭔지와 연관성이 있어 보였다. 게다가 더 깊이 생각해보니 참피놈들의 고향도 마침 일본이지 않은가?

생각난 게 있으면 바로 해야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즉시 풀어야 한다는 내 좌우명 답게, 나는 바로 그날 학교 중앙도서관으로 돌진하여 언령과 참피에 대한 책을 닥치는 데로 찾았다.

먼저 조사한 책들은 일본의 ‘언령’에 대한 책들. 뭔가 학술서 같으면 대충 다 모아놓는 대학교 도서관 답게 이런 것에 관련된 책들도, 다소 오래된 것이 많긴 했지만, 얼추 몇 권은 있었다.

책들을 읽고나니 신기한 게, 의외로 말에 힘이 담겨 있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퍼져 있었다. 존귀하거나 무서운 것은 일부러 그 이름을 피해 부르지 않는 행위는 동아시아에서는 피휘, 유대인 같은 셈족계통에서는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근대이전까지 유럽에는 초자연적인 존재의 이름을 알면 그것을 물리칠 수 있다는 전설이 여럿 내려왔다고 한다. 이건 그 존재의 ‘진명’을 부르면 그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일본의 주술적 전설과도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또 조금 딴 소리긴 하지만 그렇게 직접적인 이름을 피해서 부르다가 나중가면 아예 그 이름이 실전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앞서 말한 셈족계통이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다가 그걸 까먹고 나온 게 야훼고 게르만 / 슬라브어권에서는 곰이 너무나 무서워서 ‘갈색 그것’ 혹은 ‘꿀 먹는 것’ 등으로 부르다가 나중에는 아예 곰의 원래 이름은 잊어버리고 그 별칭이 곰의 명칭이 되었다.

심지어 그런 관념은 지금도 있다. 물론 주술적인 힘이니 그런 걸 믿는 건 아니고 낙인효과라고 해서 여러 명의 사람이나 집단이 한 사람이나 다른 집단에게 ‘너는 ~~한 사람이다.’ 라는 말을 되풀이하면 청자가 어느새 자신을 그 틀에 끼워 맞추게 된다는 이론이다.



이런 것까지 조사하고 나니, 서서히 참피들의 행동양식에 대해 단서조각이 모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직 결정적인 것, 그러한 개념을 참피가 어떻게 알게 되었나 하는 것이 남았다.

그래서 대충 언령을 비롯하여 언어가 가진 힘에 대한 믿음에 대해 감을 잡은 나는 그 뒤로는 참피에 대한 책을 뒤졌다.

참피가 기록된 가장 오랜 문헌기록은 기원후 7세기, 일본 야마토 조정의 기록이다. 당시 야마토는 백제멸망 후 일어난 백제부흥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정예병 대부분을 보냈다가 백강전투에서 상실하는 엄청난 손실을 겪었다.

그거 누가 우리로 치면 미국이 외계인에게 침공당해 그걸 구원하려고 전방사단들을 있는 대로 차출해 보냈는데 그게 첫 전투인 샌프란시스코 전투에서 전멸당한 상황이라고 했었나? 하여튼 그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란다.

그래서 야마토 정부는 당장 국가 방위를 위해 아직 북부 정도만 지배하고 있던 큐슈에서 물자며 병사며 마구 징발하기 시작했다. 참피는 바로 그 징발에 관한 문헌에서 등장한다.


‘야마토 조정은 처음 실장석과 접촉하였을 때, 이들을 ‘작은 사람’으로 보았다. 조정에 올라오는 보고서에 이들을 사람(人)이라고 기재한 것이 그 근거라 할 수 있다. 피정복민을 자신의 군사로 징병하던 시대상황으로 볼때, 야마토 조정은 실장석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곧 큐슈 대제독 아베노 히라부는 이들이 사람이 아니며 이기적이고 사람들이 농사지은 작물을 훔쳐먹는 해수라고 보고를 올림으로써 그러한 시도가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노 히로하타, [일본 고대사회의 역사], p.138.-


참피는 큐슈 남부에 서식하고 있었고 야마토는 큐슈 남부까지 점령하면서 처음 접했다. 처음에 야마토 조정은 이 ‘작은 소인’을 사람이라고 생각해 병사로 쓸 수 있는지 흥미를 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힘없고 이기적인 참피의 습성상 얼마 안 있어 야먀토는 실장석을 병사는커녕 잡역부로도 못 쓰는데다 농작물을 훔쳐먹는 해수로 삼아 토벌했다.

그러나 참피의 번식력으로 인해 완전 토벌에는 실패했고, 다만 같은 사람은 아니니 고기로는 쓸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야마토 조정은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이 번식력이 좋은 해수를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곧 아베노 히라부는 덴노에게 올리는 보고를 통해 이들을 잡아 말리면 오래 보관 가능한 저장식품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이 보고에 보이는 ‘오랜 기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3개월 이상의 장기간은 아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가축을 거세하고 도축하는 등의 기술이 대륙으로부터 유입되지 않아 저장성이 높은 고기를 만드는 기술이 극히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노 히로히타, Ibrd, p.139.-


그리고 헤이안 시대에 들어서 일본에서는 실장석을 주술적 목적으로도 이용한 것이 보였다.


‘매년 정월에 덴노의 안녕을 빌고자 음양사들은 실장석을 이용하였다. 그 실장석은 화려하게 치장되었으며 좋은 음식을 한껏 배부르게 먹도록 하였다. 이 의식은 하루에서 이틀가량 진행되었는데, 이 기간 동안 덴노는 수수한 옷을 입었다. 이는 잡귀나 부정한 것들이 실장석을 덴노로 착각하게 하여 그에 깃들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하루에서 이틀동안 그리 대접받은 실장석은 안하무인의 존재가 되었다고 하며, 이는 잡귀들이 실장석의 안에 들어가 나타난 현상이라 보았다. 그리고 그 직후 그렇게 한껏 올려진 실장석을 경내로 옮겨 모든 옷과 털을 제거했다. 이때 실장석이 탈분하지 못하도록 그 총구를 마개 따위로 막았는데, 이는 실장석의 몸에 쌓인 부정(정결하지 못한 것)이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려 함이었다.
이윽고 신관들은 세상의 모든 악과 부정을 다 짊어진듯한 표정을 한 실장석을 산속 넓적한 바위 위에 눕힌 후 사자(死者)의 시신 위에 돌을 놓아 그 혼백이 부정을 끼치지 못하도록 하는 것처럼 커다란 돌로 움직이지 못하게 봉했다. 그러고는 여기있다! 여기있다! 라고 실장석의 둘레를 돌며 외쳤다. 이것은 마치 여기 돌로 봉인된 존재가 덴노다 라고 외치는 행위였다고 해석된다. 그리하여 그 실장석은 죽어갈 때까지 덴노에게 갈 수 있는 부정을 짊어지고 말라죽게 된다.’
-이치하라 츠네히코, [실장석의 주술적 이용: 헤이안 시대부터 전국시대까지], pp.120-121.-


그 이후로 실장석은 여러 문헌에 등장한다. 내가 흥미로워한 부분 아마도 전국시대 조정 귀족인 듯한 작자의 눈으로 그 시대를 바라본 기선집에 나오는 대목이었다.


‘덴노가에서부터 일반 공가(귀족가)에 이르기까지, 실장석의 새끼를 기르는 것은 그리 보기 힘든 것이 아니다. 다만 기르는 것은 새끼때로, 실장석이 크면 성질이 사납고 행동이 오만방자해진다고 하여 신에게 공양하는 것이 보통이다.’
‘신사와 절에서는 매년 실장석으로 공양을 지낸다. 다 큰 실장석을 함에 가두고 시간이 지나 그리 죽은 실장석을 태움으로써 부정을 없애는 의식이 주를 이룬다. 불가에서는 원래 살생을 행함을 금기시하나 다 큰 실장석은 깨끗하지 못함이 모인 존재로 보아 이를 태우는 것은 부정을 태우는 것이지 살생이 아니라고 본다.’
-작자미상, 기선집, 케이오 출판사 발간본(1999)을 기준으로 함-


즉, 이미 전국시대쯤 가면 새끼 한정이지만 실장석 사육도 나타나고, 앞서 헤이안 시대에 보았던 주술적 ‘공양’ 또한 지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의미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주술적’ 이용에 주목했다. 참피들은 인간과 가까이하면서, 또 ‘이용’ 당하면서 서서히 말이 힘을 가진다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내 가설에 쐐기를 박는 자료가 나왔다.


‘…실장석을 이용함에 있어 ‘말’의 힘을 이용했다. 실장석은 새끼를 베면 실장노래를 부름으로써 새끼에게 기초적인 교육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심어준다. 따라서 이 부분을 이용하기 위해 실장어를 잘 하는 사람을 선발, 교육하여 임신한 실장석의 입을 막은 후 이 사람이 실장의 언어로 필요한 사항을 새끼에게 교육하게 되었다.’
-탄조 아키토시, [전국시대 실장석의 활용에 대하여], p.209-



‘실장석들이 가장 잘 받아들인 관념은 말의 신령이 가진 힘이었다. 이윽고 실장석들은 자신들도 이런 힘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츠다 히로오, [초승력에 대한 일본 내 관념의 변화], p.54-


즉, 실장석들은 몇 세기 동안 인간과 같이 지내면서 말에 주술적인 힘이 있다는 관념을 자연스레 받아들인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마 말에 힘이 있다는 생각은,

‘말에 힘이 있다.’ → ‘내 말에 힘이 있다.’ → ‘그러므로 와타시는 신적인 존재다.’ → ‘와타시는 만물을 지배하는 자다.’

라는 매우 참피스러운 왜곡과정을 거쳐 위석에 각인되었을 것이다.




이 가설이 맞다면 인간으로부터 받은 지식에서 인과관계고 뭐고 자기에게 불리한 점은 싹 무시하고 달콤함 말만 뽑아서 속삭이는 위석의 영향으로 참피들은 자신들의 말이 신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고, 말하면 모두 이뤄져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게 되지 않았을까?

이렇게 보니 간혹가다 녀석들이 다급할 때 주변 무생물에게 아첨하며 자신에게 유리한 행동을 해달라고 말하는 현상이 이해가 간다.

‘와타시가 자를 낳아야 하니 똥문씨는 어서 열리는 데스웅~’

내가 일전에 야산공원에 갔다가 화장실 앞에서 본 한 만삭의 성체실장석은 열리지 않는 문에 아첨하고는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 채 새끼들을 길바닥에 철퍽철퍽 싸질렀다. 그때 울고불고 왜 자기가 이렇게 말했는데 안 열리냐는 놈을 보고는 비웃었는데 그건 그 놈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행위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 한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실장석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왜 놈들이 매일 그러고 살지 않는 것일까?

이건 논문이나 책을 더 찾아봐도 되겠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참피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게 더 빠르겠지. 나는 짐을 챙겨 학교 근처 뒷산 자락으로 발을 옮겼다.



[닝…겐상. 와타시가 뭔가 잘못을 했는 데스까?]

뒷산 학교 주차장 겸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발견한 녀석은 내가 봐도 너무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었다.

“야, 내가 널 죽인댔냐, 학대를 한댔냐. 주접 그만 떨고 묻는 것에 대답이나 해줘.”
[저, 정말로 안…죽이시는 데스까?]
“어. 아 물론 네가 되도 않는 분충짓하면 이자리에서 때려 죽이겠지만 그것만 아니면 해 안 입힐 거니까 안심해도 된다. 그리고 답변 잘 하면.”

나는 녀석들이 죽고 못 사는 별사탕, 통칭 콘페이토를 꺼내 녀석의 눈 앞에 내밀었다.

“이걸 주지.”

꿀꺽, 자신을 순식간에 죽여버릴 수 있는 존재를 앞에 두고도 욕망이라는 본능은 녀석으로 하여금 군침을 삼키게 만든다.

[답변드리겠는 데스. 만족스러우실지는 모르겠지만 성심성의껏 답변드리겠는 데스.]
“좋아. 먼저, 너도 네 말에 힘이 있다는 사실을 믿나?”
[그거인 데스까? 음, 사실 와타시도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는 데스 닝겐상.]
“오호라. 너도 세상이 다 네 밑이고 다 노예라는 생각이 있겠군?”
[뎃?! 아 그렇다고 막 닝겐상께 운치를 던진다든가 하는 건 아닌데스! 정말인 데스!]
“어, 그건 방금 안 던진 거 보고 알았으니 됐다. 다음질문.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왜 그걸 고래고래 안 떠들고 사는 거야?”
[그러니까, 와타시도 왜 세상이 와타시 마음대로 안 되는가? 와타시가 말 하면 그대로 이뤄져야 한다 같은 생각은 있는 데스. 기실, 와타시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상들도 그건 마찬가지일 것인 데스.]

녀석은 음 하고 뭔가를 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있어도 당장은 먹을 걸 구하는 것 부터가 우선인 데스. 그 다음은 이 몸 뉘일 자리도 구해야 하고. 자가 생기면 그 자들을 먹여 살릴 걱정부터 해야하는 데스.]
“그건 그렇지.”
[그런 상황에서 와타시가 말하면 뭐든 되어야 하는 뎃샤 하고 떠들고 다닌 들 그게 이뤄지지도 않는데 떠들면 뭐하겠는 데스까? 오히려 명줄이나 재촉하지.]
“흠, 좋아. 괜찮은 대답이었어.”

나는 약속대로 녀석에게 콘페이토를 내밀었다. 녀석은 쭈삣거리면서도 욕망 가득한 눈으로 콘페이토를 좇았다.

“코로리나 뭐 그런 거 아니니까 걱정마라. 못 믿겠으면 좀 있다 집에 가져가서 구더기나 엄지를 먹여보든가.”
[뎃?! 데에, 죄송한 데스. 닝겐상을 의심하는 건 나쁜 거지만…]
“네가 그러는 데는 이유 있는 거 아니까 나쁘게 생각치는 않으마. 여하튼 답변은 고마웠고, 이건 시간 빼앗은 데 대한 보상이다.”

나는 가져온 건빵도 한봉지 얹어주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는 오늘의 수확을 가지고 돌아가는 성체참피.



그 이후로도 몇 놈의 인터뷰(?)를 더 따내서 들어봤다. 학교 뒷산 참피놈들 이야기만 들으면 표본이 한정될까 싶어 집 주변 산 공원 놈들도 몇 놈 잡아서 들어봤다. 그 결과, 몇몇 분충들을 제외하면 다들 하는 이야기가 비슷했다.

‘먹고 살기 바쁜데 그딴 도움 안 되는 짓은 왜 하나?’

그랬다. 녀석들도 어렴풋하게는 안다는 거다. 그게 말이 안 된다는 걸. 그러니 내 앞에서 벌벌 떨던 녀석들처럼 평소에는 쥐꼬리만 한 이성으로 그런 엉터리 생각을 억누르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말, 세상은 내가 말하는 데로 이뤄져야 한다! 라고 내뱉는 놈들은 대개 자신들 나름대로 극한 상황에 몰린 녀석들이었다. 처음 내게 투분하고 지랄하던 그 놈도 피골이 상접했던 게 몇날며칠을 굶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몰릴 데로 몰리면 이성이 실종되면서 분충성과 함께 자신의 말이 신적인 권위를 가진다는 그 되도 않는 개소리가 고개를 쑥 내미는 것이다. 조금 궤는 다를지라도 당장 사람만 해도 그렇잖는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본성이 나온다고. 문제는 그래도 좋은 본성이 나올 수 있는 사람과 달리 실장석은 백퍼센트 분충성만 나온다는 거지만.



나는 이 내용을 대충 정리해서 내가 가는 커뮤니티 참피 게시판에 게재했다. 재미없는 글이라 금방 묻히겠거니 했지만 웬걸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곧 바로 이름난 학대파들이 양충이든 분충이든 모아서 굶기거나 학대하여 극한 상황을 만든 뒤 참피들이 와타시가 명하노니!! 하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심지어 학계의 몇몇 학자들에게서 내가 가진 자료를 써도 되겠는가에 대한 문의도 받았다. 뭐 거창하게 공동저자나 제2,3 저자 정도는 아니지만 -그러기엔 내가 수집한 자료 및 분석 수준도 낮고- Special Thanks에 내 이름을 올려주는 것을 조건으로 했으니 나로서도 득을 봤다는 느낌이다.

하여튼 업계 네임드들과 무려 학계 거물급 학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은 셈이니 이게 참 득인지 실인지 모르겠다만서도 평생 이렇게 주목받아본 적이 없으니 나 개인으로서는 참 좋은 경험이었다.

고마워 참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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