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의 그늘


평범한 사각형 건물의 S시 실장석 처리소. 

S시 남부 공단과 주거지역을 가르는 중간 녹지대에 위치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어디에나 있을 법한 그런 평범한 처리소다. 다만 특이하다면 이곳은 사육실장을 전문적으로 폐기처리하는 곳이라는 것 정도. 그나마도 요즘은 정부의 강력한 유기실장 방지조치에 따라 사육실장 유기에 엄청난 과태료가 부과되면서 사육실장을 처리해주는 처리소가 늘어서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곳은 사육주들 사이에서 굉장히 특이한 처리소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왜냐고? 

처리소라면 정기적으로 처들어오는 애오파 시위대나 항의가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걸까? 처리소라고 하면 크든 작든 가서 야만적이라고 시위를 하고, 심지어는 자그마치 전국구 국회의원과 연줄이 있던 처리소에도 쳐들어가 결국 그곳을 문 닫게 했던 양반들이 이 처리소에는 얼씬도 하지 않을까?

혹시 이 곳이 평소에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 외진곳이라 그 존재를 모르는 걸까? 하지만 그런 것 치고는 S시나 심지어 옆 A시에서도 실장석과 연관된 사람들은 이곳을 모르는 사람이 더 드물다. 애호파 사육주들조차 분충이 되거나 임신을 한 자신의 사육실장석을 처분하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곳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건 이곳의 운영방식을 3일간 지켜보면서 이야기해 보기로 하자.



흰색의 페인트칠과 아이보리색 가구가 조합된 깨끗해 뵈는 방. 실장석들의 비명소리와 피 내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곳은 처리소의 접수처다. 내부는 마치 우체국처럼 번호표 뽑는 기계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고, 접수자가 대기하며 앉을 수 있는 벤치형 의자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직원이 앉아있는, 얇은 투명 아크릴 장막이 쳐진 데스크가 있다.

“오늘 어째 한산하다?”

그 직원칸에 앉아 있던 중년의 직원, 방철곰 과장은 핸드폰을 보며 소리죽여 웃고있는 젊은 직원에게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을 건냈다.

“그러게요. 어째 이 접수처가 조용한 날도 있고 별 일이네요.”

핸드폰에서 눈을 때지 않은 체 젊은 직원, 명시악.

“어디보자, 오늘은 몇마리나 들어왔나?”

“현재 30마리 정도네요. 이 정도면 한산하다 못해 쥐죽은 듯이 조용하다 해도 말 되겠다 싶어요.”

“그러게.”

너털웃음을 짓는 방철곰.


그때, 출입문에 설치된 도어벨이 울린다.

둘은 반사적으로 ‘어떻게 도와드릴…”까지 말하다가 들어온 사람의 면면을 보고는 웃으며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그럭저럭 별로 없네요.”

하얀 모자에 하얀 옷, 평상복은 절대 아닌 그 이질적인 옷에는 ‘㈜로젠’이라는 기업명이 붙어있다. 일본과 한국에서 실장석에 관한 모든 것을 취급하는 회사 ‘로젠’. 그 직원이 애호물품 관련으로 여기 왔을 리는 없으니 필경 구제업무로 온 것일 것.

“오늘은 몇 마리입니까?”

“20마리 정도였든가? 잠깐만요.”

구제업체 직원은 박스를 잠시 내려놓고는 호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냈다.

“아, 성체하고 자실장 포함 21마리네요. 여기 확인하시고 확인장 찍어주세요.”

방철곰 과장이 종이를 받아 확인하는 사이 최시악 대리가 상자를 열어 숫자를 셌다. 그 후 최시악이 방철곰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바로 종이에 확인장을 찍어 직원에게 돌려줬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세요.”

쾌활한 인사와 함께 구제업체 직원은 가벼워 뵈는 발걸음으로 접수처를 나갔다. 부럽구만~ 오늘부터 며칠간 휴무려나. 최시악이 살짝 부러움이 담긴 시선으로 방금 직원이 나간 유리문을 바라보자 뒤에 있던 방철곰이 씩 웃으며 말했다.

“그 대신 저 사람들은 일요일에도 참피 잡는다고 일하잖아. 우린 그거 대신이라 생각해야지.”

“우와! 귀신이세요? 아니 어떻게 제 말씀은 듣지도 않고 그렇게 추측하심까?!”

“네 나이대 화상들이 하는 생각은 뻔하디 뻔하다 이놈아! 어서 이거나 들어 옮겨!”

왜냐하면 나도 그랬거든. 명시악을 한 대 쥐어박은 방철곰은 여전히 웃으며 투덜거리는 젊은이를 보며 껄껄 웃었다.


“그나저나 진짜 많네요. 아니 이 놈들이 다 한 때는 사육실장이었다니 믿기질 않는단 말이죠.”

낑낑대며 박스를 끌차에 올린 명시악은 박스안에서 이리저리 널브러져 곤히 잠든 실장석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럴 거면 사질 말아야지 쯧쯧.”

방철곰은 혀를 찼다. 

이 박스에서 세상 모르게 자고 있는 실장석들은 모두 원사육실장인 놈들이다. 즉, 버려지거나 주인이 잃어버리고는 실종 처리된 것들. 이런 놈들은 대부분 멋모르고 도로로 나오다 차에 치이거나 길고양이, 혹은 사람에 의해 죽을 운명이다. 아니면 최악의 경우 골목이나 공원 등지에 몰래 숨어사는 들실장에게 잡혀 출산노예가 되는 거고.

그러니 여기 있는 놈들은 어찌보면 운이 좋았던 놈들. 분홍색 실장복이 다 헤진 걸로 보아 버려진 지 1년이 넘어 뵈는 개체도 간혹 보인다. 이런 실장석은 공원이든 골목이든 어딘가에 정착을 했다는 의미다. 뭐, 그래본들 잡혀온 시점에서는 다 끝난 거지만.

“도대체 버릴 거면 우리 같은 처리소에 맡기면 되지 않나요? 그럼 사육등록말소부터 사체처리까지 확실하게 해주는데.”

끌차를 밀어 방철곰의 자리에 온 명시악이 말했다. 그 말에 방철곰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5만원도 아깝다 이거 겠지. 아니면 일말의 양심? 그걸 그렇게 불러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서도, 차마 자기 손으로 죽이진 못하니 알아서 잘 살아남아보렴~ 하는 거.”

“우와 최악! 위선이 다른 게 아니네요.”

“어쩌겠어? 우리 알바 아니긴 하지. 하지만 일단 이 놈들이 여기 잡혀온 시점에서.”

방철곰은 명시악이 밀고온 박스에 RFID 인식기를 가져다 댔다.

“이제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지.”
인식기가 삑- 소리를 내자 방철곰 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에서 사육실장의 이름과 등록번호, 그리고 그 소유주들이 적혀 있는 자료가 나온다.


실장석이 한국에 첫 선을 보일 때, 일반인들은 잘 몰랐지만 예전부터 일본의 실장석에 대해 조사해 왔던 사람들은 우려를 표했다. 실장석의 그 무한에 가까운 번식력이 장래 한국의 생태계에 큰 위협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뜻있는 사람들은 그 뜻을 모아 정부에 전달했고, 이에 정부는 지금 와서는 신의 한 수라고 불린 대책을 수립할 수 있었다. 무슨 대책이냐고? 정부는 사육실장석의 출하 당시 독점 판매사인 로젠사에게 규제를 하나 걸었다.

사육실장은 그 존재를 표시하기 위한 칩을 의무적으로 삽입해야 한다.

이 칩은 사육실장의 증거임과 동시에 관리를 위한 목적이기도 했다. 공정이 추가되는 것에 로젠사는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지만 어차피 프리미엄을 받고 비싸게 팔 생각이었기에 시장 개척 차원에서 오케이를 했다. 

그렇기에 버려진 지 오랜 시간이 지나 들실장처럼 보여도 인식기를 가져다 대면 사육이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뭐, 사육실장은 샵에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사육이 낳은 새끼들을 분양하기도 하고 이런 분양 출신 실장석은 당연하게도 칩이 없어 관리가 안 된다고는 하는데 그건 여기서 논하기엔 너무 긴 주제라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다른 데서 알아보기로 하자.


“자아, 그러면 이 명단에 따라 네가 말한 ‘위선자’ 들을 한 번 조져 보실까.”

방철곰은 명단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어이구야, 이 양반은 깡 좋게 그냥 버렸네?”

“저 사람은 실종신고를 했네요? 실종된 지 1년이 넘어서 사망처리 되었다라…”

“저런 거에 현혹 되지마. 요즘 사육주란 양반들 중에는 일부러 버리고는 실종 신고하는 악질도 있으니까.”

방철곰은 냉정하게 명단을 살폈다. 확실히 사육실장 유기에 따른 과태료 처분이 많아지니 머리가 좋은 사람들 중에서는 사육을 버린 후 실종신고를 해버리는 사람도 생겼다. 이러면 자신은 사육실장을 버린 게 아니게 되어 돈도 아끼고 똥벌레도 처리하는 셈이 되니 사육주 입장에서는 일석이조. 물론 잡혀온 사육실장이 버려졌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지만 애초에 실장석이라는 놈들은 거짓말이 일상인 놈들이라 놈들의 주장은 증거가 되지 못한다.

“그래도 빨리만 찾는다면야 그런 놈들 엿 먹이는 것도 가능하잖아요.”

“그러고보니 저번에 그 여자 표정 끝내줬지.”

말하다 말고 둘은 뭔가를 떠올린듯 소리내어 웃었다.

가끔 원사육실장을 잡아오면 실종신고가 된 지 보름도 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러면 실종신고를 한 사육주에게 연락하여 사육실장을 돌려주게 되는데 간혹 가다 저렇게 사육실장을 버리고 실종신고를 한 사육주들은 정말 복잡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보호소에 내방하게 되는 것이다.

“아 진짜 그때 정말 웃겼죠. ‘와따시 버리지 마는 뎃샤아~’ 하는 놈을 앞에 두고는 표정을 있는 대로 구기면서도 차마 버렸다고는 못하니까 분노로 벌벌 떨며 인수증에 사인하던 그 여자를 보고 있자니 웃음 터지는 걸 간신히 참았다니까요.”

“그거 후속 이야기도 아냐? 결국 그 여자 며칠 안 있어 여기 와서는 정식으로 사육등록 말소하고 그 똥벌레 처분해 버렸지.”

“맞아요. 그때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밖에서 며칠 지내다보니 완전 들분충이 되었더라.’ 였나? 진짜 가관이긴 했네요.”

둘은 웃으면서 명단을 정리하고는 끌차를 밀어 어딘가로 보낸다.


그런 사수와 부사수의 티키타카가 오간 시간이 지나고 오후.

한 여름인데도 긴 팔에 마스크를 두르고 선글라스를 낀 여성은 카운터에 조용히 박스 하나를 내려놓고 무언가를 오후 접수 담당직원 – 최정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 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 이름은 ‘카와이’, 구입날짜는 대략 작년 1월이란 말씀이시죠?”

“네…”

다소 우렁차기까지 한 직원과 달리 여성은 기어들어가는 듯한 목소리로 짧게 대답했다.


“어디보자, 아! 나왔네요. 카와이, 등록번호 JR-2022-011938A 로군요. 네 확인되었습니다. 아, 처분사유 말씀하셨었나요?”

“아니요…그, 이번에…제가…아, 아니 부모님과 같이 사는데 부모님이 실장석 알러지가 생기셔서…”

딱 봐도 거짓말이네. 귀로 들은 이야기를 사유란에 등록하면서 오전의 콤비와는 또 다른 접수직원, 최정규는 생각했다. 박스 안에 잠든 실장석을 보니 딱히 분충짓을 한 거 같지도 않을 정도로 깨끗한 옷과 머리카락을 유지하고 있다. 대개 이 시기에 실장석을 처분하는 건 여행을 가려는 데 걸리적 거린다든가 싫증이 났는데 마침 여름이라 높은 불쾌지수에 냅다 지르던가 하는 것이 많다.

하지만 최정규는 그걸 밖으로 절대 드러내지 않을 정도의 직무의식은 가지고 있다. 뭐가 되었든 나하고는 관계없지. 타이핑을 끝내고 남자는 의뢰자를 향해 의자를 돌리며 말했다.

“네, 접수 다 되셨습니다. 참고로 이 실장석은 며칠간 이곳에서 보관하게 됩니다. 보관 기간은 본 사의 사정에 따라 유동적이며 다시 사육실장을 찾으러 방문하셔도 다시 찾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이 조건에 동의하십니까?”

“…네.”

양심일까 아니면 죄책감일까? 아주 잠시 망설인 거 같았지만, 끝내 여자는 동의의 표시를 뱉었다.

“자 그럼 여기 서명해 주시고 처분비 5만원 되겠습니다. 상자는 이쪽으로 건내 주시면 됩니다.”

남자의 말에 여성은 떨리는 손으로 사인을 하고는 황급히 밖으로 나선다. 그런 여성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혀를 차지만 얼굴은 여전히 영업용 미소를 유지하는 최정규. 


이렇듯 접수처는 다른 처리소와 같다. 특이할 것이 없는 광경.



하지만 이 처리소의 진짜 특이한 점은 바로 이 다음 공정부터 시작된다.


끌차에 실려간 실장석들이 가는 곳은 보관소다. 투명 아크릴로 만든, 600*600*600 (mm기준)의 정사각형 케이지 300개가 몰려 있는 곳. 

“똥노예! 어디간 데스 똥노예!! 감히 와타시를 모시지 않고 어딜 쳐 간 데스까!!”

“오로롱 오로롱 주인사마 초록이가 잘못한데스. 다시는 밥투정 안 할 테니 제발 돌아와 주시는 데스…”

“테에에 마마, 여긴 다른 오바상들이 많은 테츄. 와타치들이 왜 여기 온 테츄까?”

“…그냥 자는 데스 장녀…”

“데샤아아아!!! 드디어 자유를 찾았는데!! 자고 싶을 때 자고, 귀여운 자도 낳을 수 있게 되었는데 똥닝겐들은 와타시를 왜 잡아온 뎃샤아아아아!!!!!!”

오만가지 사연을 가진 원사육실장들이 그 아크릴 케이스 안을 채우고 있었다. 그 중에는 브리더도 포기할 상분충도, 인분충 주인에 의해 버려진 양충도 있지만 케이스에 갇힌 시점부터는 이미 ‘원’사육실장일 뿐.


“오늘은 총 52마리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이 담담하게 외친다. 그 말에 원사육실장들은 흠칫 몸을 떨더니 이내 조용해졌다.

“고로 오늘은 먼저 들어온 52마리가 처분된다.”

사형선고가 내려지고, 그 집행을 위해 뒤에 서 있던 직원 4명이 케이지로 다가온다. 직원들은 케이지에 붙어있는 순번표 중 빠른 순서대로 실장석들을 끄집어 냈다.

케이지는 곧 광란의 현장으로 변한다. 처분되는 놈, 처분되지 않는 놈 가릴 것 없이 모두 울부짖고 가슴속에 있던 한을 토해낸다. 어차피 실장석들은 숫자를 세지 못한다. 숫자를 좀 센다는 놈도 10 이상은 세지 못한다. 그렇기에 실장석들로서는 어디까지 처분되는가를 모른다. 

52마리의 실장석이 카트에 담긴다. 담긴 실장석들의 눈에 처분장으로 가는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이 들어왔다. 그야말로 마지막 여정, 그린마일이다.

52마리는 절규한다.

“데…뎃샤아!!! 이건 말도 안 되는 데스아!! 고귀한 와타시가 왜 다른 똥벌레 때문에 죽어야 하는 데샤아아아아아아!!!”

절규하는 놈.

“니, 닝겐상. 기다려주시는 데스! 내일, 아니 오늘 저녁에는 분명히 주인사마가 와타시를 데리러 와주실 것인 데스!! 제발…조금만…”

애원하는 놈.

“이걸 보는 데스! 귀엽지 않은 데스? 이렇게 귀여운 자들을 낳아줬건만 왜 똥닝겐은 메로메로 되지 않는 데스?! 눈깔이 삔 데스까!!!”

억지부리는 놈.

“와타치 몸에 손 대지 마는 테치! 와타치는 닝겐의 씨를 받아 흑발의 자를 낳을 고귀한 공주마마인 테치이이잉!! 소, 손 치우는 찌아아아아!!!”

위협하는 놈.


각양각색의 감정과 행동이 난무하지만 귀마개를 낀 직원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이건 그저 일이다. 들어온 만큼 처분하는 평소와 같은 일.

“마마, 다행인 테츄! 와타시타치는 살아남은 테츄! 내일은 반드시 닝겐들을 메로메로 시켜서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인 테츄츄츄~”

그 와중에 오늘 처분되지 않고 아크릴 케이스에 남은 한 일가의 자실장이 기뻤는지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런데스. 오마에와 와타시의 세레브함이면 닝겐들은 당장 달려와 스테이크와 스시를 바치고 도게자 할 것인 데스. 데프프프.”

그 마마로 보이는 성체는 웃으며 자를 쓰다듬었다. 자신들은 살아남았다! 왜냐고? 저 처분장으로 가는 똥벌레들보다 세레브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주인이라고 망발을 일삼던 노예닝겐을 버린 자신들은 그 누구보다도 세레브하다!

치프프프 데프프프 웃고있는 일가의 케이즈 앞에 다시 붙은 숫자는 ‘1’.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방을 빼줘야 하는 번호.

아마 내일이면 그들의 망상이 그 결실을 맺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몇대의 끌차에 실려 그린마일의 종점에 다다른 실장석들. 빠져나가보려 발버둥치고 다른 실장을 밟고서라도 박스위로 올라가려는 그들의 처절한 사투는, 그러나 나가지 못하도록 밀봉된 박스뚜껑 앞에서는 부질없는 노력일 뿐이다.

후두두둑

“뎃캬!”

“데샤아아악!!”

“텟?! 텟챠!!”

“테에? 텟, 텟테로게에~”

“샤아아아아!!”

“텟테레!”

“텟테레!”

“텟테레!”


직원이 박스를 열고 끌차를 어딘가에 들어 올린다. 탈탈 터는 그 동작에 실장석들은 어딘가로 쏟아져 들어갔다. 낙하의 충격에 비명을 지르는 성체와 자실장들 가운데 몇몇은 박스 안에서의 혈투로 인한 혈액이 눈에 튄 건지 임신을 했거나 강제출산을 하고 있다.

“여, 여긴 어디인 데스?”

그 와중에 간신히 정신을 차린 한 성체실장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살펴본다. 자신들보다 앞서 떨어진 실장들이 쿠션 역할을 해준 덕분에 다친데 없이 멀쩡히 떨어진 성체. 그러나 어두운 밀실에서 앞으로 벌어질 사태는 이 성체가 차라리 압사당해 죽은 자신의 동족들을 부러워할 무언가였다.

“데에…뭔가 고기 냄새가 나는 데스야. 설마, 닝겐들이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고귀한 사육실장인 와타시에게 바칠 고기를 대령하는 데스?”

난폭하게 다뤄지고 떨어졌음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듯한 소리. 하지만 어쩌랴, 이렇게라도 행복회로를 돌리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정도의 삶이거늘.

곧 그 성체의 망상과는 다르게 사면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데, 데, 데, 데샤아아아아아!!!!”

벽에서 나오는 불길은 이내 멎었지만 실장석들은 그 자신의 몸에 붙은 불로 맹렬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마!! 뜨거운 테챠아아아아!!!”

“장녀! 어디간 데샤!! 오마에를 낳아준 와타시를 위해 희생 안 하고 어딜 쳐 간 뎃샤아아아!!!”

“똥마마!!!”

“장녀! 오마에만이라도 지켜주는 데스!! 절대 지켜주는 데스야!!”

“마마, 뜨거운 테츄아!!!”


온갖 회한, 분노, 슬픔이 교차한다. 


“자, 그럼 6시간동안 난방열 공급 배관 열어놓고. 모두 퇴장!”

그런 소각로와 딴판으로, 소각로 밖에서는 분주하게 움직이던 직원들이 담담한 표정으로 소각로실 밖으로 나간다. 

실장석들은 몸이 거의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조금만 불을 붙여줘도 스스로 잘 타오른다. 게다가 이리저리 몸부림을 치며 불이 붙지 않은 동족에게도 기꺼이 불을 붙여주니 매우 편하다. 이렇게 타오른 실장석들의 열은 배관을 따라 근처 공단에 아파트에 공급된다. 마치 열병합 쓰레기 소각장 겸 발전소랄까? 이런 점이 이 시설이 근처 주민들에게 경원시되는 것을 줄여주는 이유기도 하다.


이렇듯 이 처리소는 특이하게도 300개의 케이지를 두고 그날그날 들어오는 숫자만큼 기존에 수용하던 실장석을 처리하고 있다. 

물론 이 곳도 몇 번인가 동물보호 단체나 실장석 보호협회 등지에서 항의 차 방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곳의 시스템을 듣고는 얼마 안 가 나가고는 다시는 오지 않았다.


들어온 만큼 처분된다.


이 말의 의미는 명백하다.

‘버리지 않으면 처분되는 실장석도 없다.’

주인이 아무런 생각이나 준비없이 실장석을 애완동물로 구입하고, 그걸 준비가 되지 않았다든가 실증났다든가 하는 여러가지 핑계로 버리면 그 숫자만큼 이곳에 먼저 들어온 원사육실장들이 폐기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지만 이론적으로는 유입되는 실장석이 없다면 기존 원사육실장들은 좁고 불편한 공간에서나마 천수를 누리고 갈 수 있다. 하지만 개업이래 그 어떠한 실장도 그런 혜택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여기서 가장 오래 살아남았던 실장석은 로미라는 이름을 가졌던 원사육실장. 

보관기간은 사흘이었다.

300개라는 케이지 숫자도 로미가 절실히 갈망했던, 단 하루만 더 살게해 달라고 했던 소원을 지켜주지 못했다. 조금 똑똑한 실장이었던 로미는 처음 들어왔을 때 배정된 케이지 숫자를 보고 그래도 조금은 살다 갈 수 있겠거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튿날 저녁에 바로 처분대상에 근접하는 순번으로 몰렸고 그 다음날에 처분 당했다.

그런 시스템이 은연중에 그들의 가장 아픈 부분을 헤집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것이 너희의 민낯이다.’

자신들은 다르다고 자부하지만 이곳에 사육실장 처분을 맡기로 오거나 무단으로 버려 잡혀오게 만드는 사육주들은 대부분이 애오파라 자부하는 사람들이었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처분소를 없애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실장석을 버리지 않게끔 만드는 것이다. 버려졌을 때, 사육실장의 생은 끝이 난다. 처분소는 그저 종말에 치닫는 실장석들이 운명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곳일 뿐이다.


“마마! 에메랄드 여기 있는 테챠!! 어서와서 구해주는…챠아아아아!! 뜨겁테챠!!!”

“와타시는 살아야 하는 데스! 온 세상을 와타시의 자들로 채울 의무가 있는 데샤아아!!”

“주인사마…”


오늘도 52마리의 원사육실장이 수거되고, 52마리의 원사육실장이 소각된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처리소의 평범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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