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의 어느 수풀 속에 위치한 골판지 상자...
상자 안에는 다섯마리의 자실장들이 벽에 기대어 있거나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며 넋이 나가있음.
'테에...'
'텟?'
'테엣!'
그렇게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던 자실장들은 이내 익숙한 냄새를 맡자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서 입구로 와르르 몰려감.
이내 문이 열리고 등장하는 친실장...자실장들은 테치테치, 테츄테츄 시끄럽게 마마의 귀환을 환영함.
친실장은 사랑스러운 자들의 모습에 작은 미소를 띄우지만 이내 다시 그늘진 얼굴로 돌아옴.
친실장의 어두운 얼굴을 눈치 채지 못한 자실장들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친실장이 들고 있는 비닐 봉투를 빤히 바라봄...벌써 삼일째 제대로 된 음식(음쓰)을 먹지 못했던 거임...
오늘은 마마가 맛나맛나를 잔뜩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지만 친실장의 비닐 봉투에서 나온 것은 맛대가리라곤 없고 씹기도 힘든 풀쪼가리들...그마저도 충분한 양이 아님...
풀쪼가리를 보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린 자실장들...특히 막내는 그대로 주저앉아서 고개를 떨굼.
'"미안한 데스...마마가 무능력한 탓인 데스..."
사실 아님, 친실장은 벌써 세번의 겨울을 견디고 여러 자를 독립시킨 전적이 있는 베테랑 친실장임. 하지만 근래 먹이터가 여럿 폐쇄되면서 먹이를 구하는게 매우 힘들어지고 말았음...
먹이터가 폐쇄된 이유는 불어난 들실장들이 쓰레기장을 헤집어 놓아 이루어진 조치지만 들실장들이 그 사실을 알리는 없음.
"......"
자실장들은 말없이 친실장이 뽑아온 잡초를 입에 넣기 시작함. 멍하니 오네챠들을 바라보던 막내 오녀도 비틀거리면서 일어나 잡초더미로 향함...
단지 맛이 없는 수준을 넘어 먹어서는 안될 무기물을 먹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어쨌거나 잡초를 입에 꾸역꾸역 넣고 억지로 삼키기 시작함.
어차피 다른 방도가 없음. 이미 울면서 떼도 써보고 친실장에게 매달려 빌어도 봤지만...바뀌는 것은 없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은 거임.
이내 잡초더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허기조차 사라지지 않음...
장녀는 뭉툭한 손으로 애꿎은 배만 슥슥 문지르다...문득 생각 났다는 듯이 친실장을 향해 말함.
"마마는 먹지 않아도 되는 테치?"
"괜찮은 데스, 자들이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데스우."
그럴리가 있나...친실장은 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을 걱정해준 장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줌. 그러다가 아예 안아 들고 몸 전체를 구석구석 햝아주기 시작함.
"테프프픗, 마마 간지러운 테치이~"
어른스러운 척 해봐야 이제 태어난지 두달이 안된 어린 자실장...
마마의 품에 폭 안긴채 들실장식 아와아와를 받는 장녀는 이내 배고픔도 잊고 '텟츄우~ 텟츄우~' 하며 친실장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함.
그 모습을 부럽게 바라보는 다른 자실장들...응석쟁이 삼녀는 참지 못하고 달려가서 마마의 치맛자락에 몸을 묻음.
"아타치도 예뻐예뻐 해주는 테츄!"
"차녀부터 차례대로 기다리는 데스야. 순서를 잘 지켜야 착한 자인 데스."
그래...다른 것이 행복이냐. 이게 행복이다. 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이 순간 만큼은 하나도 배고프지 않다고 생각하는 친실장...
그리고 내일은...내일은 맛나맛나와 우마우마를 잔뜩 구해 자들을 배터지게 먹여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애호파 닌겐들이 와서 실장푸드를 줄지도 모르겠다며 행복회로를 돌림.
애호파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이 벌써 반년 전의 일임을 까먹은 거 같음...
"......마......가......악.....!"
친실장이 장녀와 차녀의 차례를 마치고 삼녀를 안아든 순간이었음.
저 멀리로 부터 동족의 비명 소리 비슷한 것이 들려오기 시작함.
친실장은 고개를 갸웃거림.
동족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딱히 이상한 일이 아님.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있는 일이라 이젠 자실장들도 놀라지 않음.
그런데 뭔가 이상함.
마음이 콩닥 콩닥하는 것이...
".......하......악......오는........도망.......!"
동족의 비명소리는 점점 가까워지면서 또렷해짐. 그리고 친실장 일가는 똑똑히 들음.
"하얀악마가 오는 데스우!!!!!!!!!!!!!!!!!! 모두 도망치는 데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갑자기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하는 자실장들.
친실장이 어린 자들에게 유일하게 가르친 배변교육도 무색하게, 안겨있는 삼녀를 포함해 자실장 전원이 거하게 빵콘을 함.
부릿. 브리리릿.
탓할 수도 없음. 탓할 사람도 없음. 이미 친실장도 제정신이 아니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친실장의 팬티도 점점 녹색으로 물들고 있었음.
하얀 악마.
위석이 알려주는 본능적인 정보중 하나.
들실장들에게 있어서 하얀악마는 그냥 자연재해임. 예고없이 밀려드는 쓰나미 같은거임.
친실장 일가의 골판지 상자는 공원에서도 제법 후미진 곳에 있음. 친실장의 마마가 알려준 지혜 중 하나...이미 공원은 지옥도가 시작되고 있었음.
조용히 시작된 구제 작업은 입구란 입구는 모조리 차단막을 설치하는 것으로 시작됨.
눈치가 빠른 일부 실장석들은 빠르게 공원에서 도망치려고 하지만 이미 늦음...색눈물을 흘리며 의미없는 점프를 해보거나 차단막을 뭉툭한 손으로 두드려보지만 연약한 손만 우그러질 뿐임.
우왕좌왕 도망치다 하얀 악마를 마주친 어떤 일가의 친실장은 그저 살고 싶다는 일념으로 하얀악마를 향해 엄지실장을 들어올림...친실장은 자기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름. 이미 머릿속은 몇 번이나 미치고 미쳐서 백치 비슷한 상태가 되었음. 그냥 본능적으로...기계적으로 행동중임.
머리가 조금 모자라게 태어난 엄지실장은 생애 처음 느껴보는 부유감에 '레햐야~' 거리면서 자기도 품에 안고 있던 구더기를 하얀 악마에게 자랑하듯 내밈.
하얀악마는 말없이 빠루를 치켜올려 내려침. 그렇게 세마리 실장석은 '구제'됨.
돌아와서 친실장 일가의 골판지 안.
베테랑 친실장도 구제작업은 처음 겪어봄.
머릿속으로 '어떡해야 하는 데스. 어떡해야 하는 데스. 어떡해야하는 데스!!!' 하면서 맹렬하게 작은 뇌를 돌려보지만 친실장의 마마에게서 이런 것은 교육받지 못함. 위석 또한 하얀 악마에 대한 무한한 공포만을 알려주고 있을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 않음.
결국 친실장이 선택한 것은 도망임.
품에 삼녀를 안은 채로 벌떡 일어난 친실장의 허벅지 사이로는 운치가 새어나오고 있음.
그대로 골판지 상자를 나가 도망치려던 친실장의 귀에 장녀의 목소리가 들려옴.
"마마...?"
아뿔싸, 하얀 악마의 무서움에 소중한 자들 조차 잊어버리고 도망칠 뻔 했던 것임.
친실장은 자실장들을 향해 외치듯 말함.
"당장 도망쳐야 하는데스...! 하얀 악마가 오고 있는 데스! 모두들 마마를 따라...아니, 전부 각각 따로 사방으로 도망치는 데스으!"
친실장은 자기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내림. 하지만 자실장들은 친실장의 영리함을 이어받지 못한 것 같음.
친실장의 입에서 '하얀악마'라는 말이 튀어나오자 삽시간에 혼란에 빠지고 만 것임.
테...테...테....테챠아아아아! 테치아아아악!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아 빵콘을 하는 자. 골판지 상자를 무의미 하게 빙글 빙글 돌면서 빵콘을 하는 자. 골판지 한 구석으로 도망가 손에 닿지 않는 귀를 향해 두 손을 올린 채로 부들부들 떨면서 빵콘을 하는 자. 무거운 돌이 괴어져 있어 열릴 리 없는 보존식 상자를 향해 뛰어가면서 빵콘을 하는 자...
"조용하는 데스!!! 빨리 도망쳐야 하는 데스!!!"
애가 타는 친실장이 소리를 질러 보지만 소용이 없음. 그나마 품 안의 삼녀는 이상하게 조용함.
그 와중에 동족의 비명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친실장이 다시 정신을 차림.
이젠 어쩔 수가 없음. 마지막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듯 여전히 도망칠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 자들을 향해 "마마는 분명히 도망치라고 말한 데스..." 하며 삼녀를 안은 채로 상자 안을 나가버림.
"테? 마마? 마마? 마마아!!!"
친실장이 자기들을 버리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깨달은 네마리 자실장들.
이제는 마마를 목놓아 울면서 찾기 시작함. 의지할 곳 마저 잃어버린 자실장들은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맘.
"모두들 그만우는 테치! 마마는 우릴 버린 테치! 하지만 이곳 골판지 상자에 숨어있으면 안전할 것인 테체!"
장녀의 외침. 골판지 안에서 조용히 숨죽여 숨어있는다. 자실장들이 가장 만족할만한 선택지었음.
끊임없이 들리는 동족의 비명소리...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저벅 저벅' 소리...
네 마리 자실장들은 구석에 모여 자신을 버린 똥마마를 저주하며 오들오들 떰...
친실장이 안전한 곳에 자리 잡고, 골판지 상자의 위장에도 나름 신경을 썼다지만 어디까지나 같은 실장석의 입장에서임.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그냥 좀 후미진 곳에 대놓고 있는 골판지 상자에 불과함.
심지어는 열려있는 상자 입구로부터 테에엥...치에엥...소리가 그대로 울려퍼지고 있음.
골판지 상자를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는 하얀 악마...골판지 안에서 힐끗 힐끗 입구를 쳐다보던 장녀는 결심을 함.
'내가 나가서 하얀 악마를 막아야 하는 테치. 아타치가 진심펀치를 날린다면 하얀 악마도 도망쳐 버릴 것인 테체!'
갑자기 용기백배하여 입구로 향하는 장녀. 다른 자매들은 여전히 오들오들 떠느라 장녀가 떠난 것도 눈치 채지 못함.
친실장은 자실장들에게 인간의 무서움을 여러번 일러준 적이 있었고, 하얀 악마 또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 하지만 실제로 자실장들은 인간을 마주쳐 본적이 없음.
장녀는 내심 인간이래봐야 자기 마마 정도의 크기일 것이라고 생각함. 물론 성체실장만 되더라도 장녀 같은 자실장은 힘 하나 들이지 않고 간단히 오체분시 할 수 있지만...
"덤비는 테챠아아아! 하얀 악마는 따위는 아타치의 핵펀치 한방인 테......체?"
처음으로 인간을 마주한 장녀. 그리고 자기의 생각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었는지 깨달음.
삽시간에 어두워진 시야. 아무리 목을 들어 올려보아도 끝도 없는 거대한 몸체...동족의 살점과 피가 끝없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무언가'
장녀는...
"테츄웅~?"
그대로 하얀 악마의 워커화에 짖밟혀버림. '치벳.' 소리 조차도 내지 못한채로 장녀라 불리던 것은 신발 밑창 사이로 '촤악!' 소리를 내며 밀려나옴.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또 다른 두 눈동자가 있었음.
바로 친실장...
도망치다가 도저히 자를 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 친실장은 돌아왔지만, 하얀 악마가 골판지 상자로 다가가는 모습을 보곤 수풀에 숨어 관망하고 있었던 것임. 품 안에는 삼녀를 소중하게 안은 채로.
용감한 장녀가 순식간에 바닥의 얼룩이 되는 것을 보며 피눈물을 흘리는 친실장.
하지만 그것은 이제 시작일 뿐임.
하얀 악마는 거침없는 손으로 골판지 상자를 들어 안에 있는 것을 탈탈 털어버림.
"테챠아아아아!"
"마마 살려주는 테챠아아아아아!"
"테벳!"
골판지 안의 가재도구와 뒤섞여 바닥으로 낙하하는 자실장들.
바닥으로 떨어진 것만으로 빈사 상태가 된 자실장들을 하나하나 구제해 가는 하얀악마.
조각조각나서 마마를 부르짖다, 저주하다...마지막에는 '살고 싶은 테치...죽고 싶지 않아요 테치...'
하면서 회색빛 눈이 되어가는 자들을 보며 친실장은 끝없이 피눈물을 흘림.
자기가 나가봐야 할 수 있는 것 따위는 없음을 잘 알고 있음. 어떻게든 자기라도 살아남아...품속의 삼녀를 살려야함.
하얀악마는 들고온 자루 속에 자실장들의 시체와 가재도구, 보존식을 쓸어담고 운치굴 마저 꼼꼼하게 막아버린 채 다른 곳으로 향함.
누가봐도 이상하게 요동치고 있는 수풀에 눈길을 한번 줬으면서도 말없이 자리를 떠남.
시간은 흘러 흘러 오후...3년만의 공원 구제작업은 끝이 남.
친실장은 더 이상 동족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게 된 후로도 한시간 정도를 더 버티다가 터벅 터벅 수풀에서 나와 이제는 흔적만 남은 자신의 옛 집터를 바라봄.
허망한 집터에 주저앉아 기이하리만큼 조용해져 버린 주변을 둘러보던 친실장...
"그래도 삼녀는 살린 데스...삼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데스...삼녀...삼녀는 괜찮은 데스?"
친실장은 다시 마음을 굳게 먹으며...아까부터 이상할 정도로 조용한 삼녀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삼녀를 품 안에서 들어올림.
삼녀는...이미 눈이 시꺼멓게 변한 채로 혀를 내밀고 죽어 있었음.
마음이 심약한 삼녀는...하얀 악마라는 소리를 듣자마자 친실장의 품 안에서 파킨사하고 말았던 것. 단지 혼란속에서 친실장이 눈치 채지 못했을 뿐임.
"데...에...?"
모든 것을 잃어버린 친실장은 현실을 부정하다...하얀 악마를 부르짖으며 자기도 한번 죽어보라 발광을 하다...지쳐서 피눈물을 흘리다...말없이 조용히 일어남.
"더 이상 이런 곳에서는 살 수 없는 데스...낙원을 찾아 떠나는 데스..."
떨어지는 해를 뒤로 한 채, 평생을 살아온 공원을 떠나는 친실장.
다음 날, 도로 위 아스팔트에는 큰 얼룩 하나만이 남아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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