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도(実装島) -1 (ㅇㅇ(211.219))


 20XX년

 대한민국은 북한의 유례 없는 도발에 시달리며 희생을 치르고 있었다

 바다와 땅, 하늘을 가리지 않고 최대한 야비한 방식으로 국군과 민간인을 살상하는 대남 도발에 군은 총력을 다해 대응했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근본적인 한계에 봉착했다


 -결코 전면전으로 번질 만한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


 전쟁이 나면 아무래도 잃을 게 많은 한국이다 보니, 군에서 대대적인 반격 작전을 내놓아도 정부는 중국과 미국의 은근한 압력이 들어오면 못 이기는 척 보복 계획을 철회하며 평화적 해결책을 내놓겠다는 성명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도발에 수동적으로, 최소한의 대응만 하는 무기력함에 빠진 국군의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정보기관의 간부 하나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특수부대를 투입하여 북한 내 대남 강경파들을 암살합시다!”


 물론 대남도발을 주도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추가적인 도발도 억제하고 본보기의 효과도 될 좋은 아이디어였지만, 아무래도 리스크가 너무 컸다. 일단 작전의 성공 가능성과 그 과정에서의 희생 비용은 둘째치자. 성공하더라도 한국 특수부대가 대놓고 북한 고위급 간부들을 암살하면 오히려 저쪽에 보복 명분을 제공하고, 무조건적인 현상 유지, 안정만 앵무새처럼 외쳐대는 UN도 한국을 고깝게 볼 것이 아닌가

 그렇게 자칫 사장될 뻔한 아이디어는, 그러나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부활하게 된다


 “실장석들을 훈련시켜서 암살 공작을 벌이고 꼬리자르기를 하면 어떨까요?”


 처음에는 당연히 터무니없는 제안이라며 비웃음을 샀지만, 대남 도발이 갈수록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 이르자 정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계획을 승인하게 되었다. 사람이 아닌 실장석이라면 몇천 마리가 죽어나가도 아무런 인권 문제도 없고, 북측에서 책임론을 제기해도 실장석 따위에 배후가 어디 있느냐며 우기면 된다는 장점이 있기는 했으니 말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웃지 못할 에피소드와 각 부처 간 정치 싸움,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의 논쟁은 확실히 교훈적일 것이지만, 여기서 다룰 만한 주제는 아니니 생략하도록 하자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그렇게 동원된 실장석들의 삶과 죽음이니까





 남해안에 수천 개씩 널린 무인도 중 적당한 섬 하나가 ‘실장도’로 선택된 다음, 곧 전국의 공원에서 실장석 모집이 이루어졌다

 모집 방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저 엄지와 구더기만 제외하고, 성체와 자실장을 할당량만큼 채워서 산 채로 데려오라는 윗선의 지시에 하급 공무원들과 용역, 공익들은 평소의 구제(학살) 작업과는 다른 성격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투덜거리면서도 꾸역꾸역 실장석을 수백 마리씩 트럭에 태우는 데 성공한 그들은, 자신들이 특수부대 훈련병 선발 과정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한동안 계속된 모집 작업이 끝나고, 최종적으로 5천 마리의 실장석이 대형 상륙함 2대에 나눠 타게 되었다. 이동 및 대기 과정에서 동족에게 짓밟히거나 잡아먹히고, 지나치게 분충성을 드러내 관리인원에게 구제당한 수는 제하고도 5천 마리가 남은 것이다

 갑판까지 빼곡히 메운 친자실장들은, 저마다 “데샤” “데스” “레치” 하며 웅성거린다. 잔잔한 바다라서 그런지 배멀미에 시달리는 개체도 많지 않고, 대부분 공원 구제 당시에 죽을 목숨이라 생각한 운명이 뜻밖에 연장된 것에 희망을 가지며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그 평화는 계획의 총책임자 박철웅 중령의 방송이 나오자 단번에 깨어졌다


 “전 병력들에게 전파한다. 실장석 1마리당 나무 숟가락 1개씩 지급하고, 실장석 전용 보트 하나에 15마리씩 태워 바다에 투하한다. 작업이 끝나면 기간요원들은 보트를 타고 섬에 상륙한다. 이상”


 명령이 전파되자 특수부대 훈련에 참가할 요원들과 상륙정의 해군 병사들이 하나되어 일사분란하게 실장석들을 붙잡고 소형 고무보트에 탑승시켰다. 처음에는 지레 겁먹고 반항하며 도망치려는 놈들이 많았지만, 본보기로 사지를 찢어발기고 나니 빵콘하며 덜덜 떠는 놈은 나올지언정 탈출하려는 놈들은 거의 없어졌다. 그렇게 15명 정원이 채워진 고무보트는 배 위에서 바다로 곧장 내던져졌다


 철썩, 첨벙 하는 소리에 이어, 수면과의 충돌에 곧바로 튕겨나간 두세 마리의 실장석이 꼬로록대며 익사하는 소리가 보트 하나가 떨궈질 때마다 빠짐없이 들려왔다 

 다행히 고무보트 위에 남게 된 10여 마리의 실장석들도 상태가 좋지는 못했다


 “데갸아아악!!! 뭐인데스? 무서운데스... 물이...! 땅바닥이....!”(파킨)

 “오마에 비키는 데스! 고귀한 와따시가 물에 빠지면 우주의 손해인데스우!”

 “마마! 마마아! 구해주는테치~ 테에엥~”


 고작 15m 전방에 상륙할 수 있는 육지를 앞두고, 수천 마리의 실장석들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노(나무 숟가락)를 활용할 생각조차 못한 채 서로 밀쳐대며 시나브로 빠져죽고 공포감에 질려 제풀에 파킨사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어느 집단이든 리더는 두각을 드러내게 되어 있는 법이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정신줄을 붙들고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해한 녀석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마에들! 전부 입 다물고 내 말을 듣는데스!”

 “닥치는데샤! 어디서 와따시에게 명령질인.... 테갸아아아!!!”


 풍덩


 “지금부터 와따시의 말에 토를 달면 바다씨에 빠져 뒈지는데스. 와따시보다 힘이 세서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면 아무나 덤벼도 좋은데스”


 “......”


 본보기로 분충 하나를 냅다 보트 밖으로 집어던진 효과는 대단했다. 어서 자기를 구하라는 분충의 절규도 몇 초 만에 사라지고, 적막해진 보트에 새로운 권력관계가 정립되었다

 전 보스실장인 리더는 설명을 이어갔다


 “모두들, 저기 앞에 육지가 보이는데스까? 와따시타치는 이 막대기씨를 가지고 노를 저어서 저기까지 나아가야 하는데스. 그나마 체력이 남아있는 지금 힘쓰지 않으면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 굶어죽고 빠져죽을 것인데스”

 “데... 무리인데스. 와따시의 약한 힘으로 파도씨를 거스르는 건 무리인데스!”

 “... 어째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데스까? 어차피 우리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는데스. 와따시가 맨 앞에서 방향을 조절하고, 오마에들이 반씩 나뉘어서 양 옆에서 동시에 노를 저으면 승산이 있을것인데스!”

 “듣고보니 그런데스... 죽기 아니면 마라되기의 기세로 노를 젓는데스!”

 “와따시는 절대로 여기서 죽을 수 없는데스! 공원을 자로 채우기 전까지는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아남는 데샤아아!!!”


 수영 좀 하는 인간이 보면 헛웃음이 나올 비장함이지만, 실장석들에게 있어서는 사생결단의 문제가 맞긴 했다. 이윽고 바다로 떨궈진 수천 마리의 실장석들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끝까지 자중지란하며 출렁이는 보트 위에서 체력을 낭비하는 무리와, 자기가 속한 보트를 휘어잡은 리더의 지도 하에 차근차근 노를 저어 육지로 상륙하는 무리들

 물론 정신을 차린 부류라고 해서 전부 상륙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소한 실수로 무게중심이 쏠려 보트가 뒤집히기도 했고, 애초에 떨궈질 때 너무 많은 인원이 그대로 튕겨나가버린 보트의 경우 남은 5~6마리의 힘으로는 노를 아무리 저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평화롭고 잔잔한 연안을 배경으로 수천 마리의 실장석들이 덧없는 죽음을 맞이했다



 약 350여 대에 달했던 고무보트들 중, 최종적으로 육지에 도달한 것은 23대

 그마저도 15명 정원을 다 채운 보트는 없으니, 살아남은 실장석은 200마리 정도였다


 “데에.... 데기.....”

 “데에에... 와따시... 살아남은.....” (파킨)



 본의 아니게 25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생존한 실장석들은, 성공의 기쁨을 만끽할 여력도 없이 체력이 방전되어 보트 옆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졌다. 그 와중에 기력이 아예 다한 몇몇은 기껏 다 도착해 놓고는 그만 긴장이 풀려버려 목숨줄마저 스르르 놓아버리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한다  

 이대로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든 젖은 옷을 벗고 먹이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리더실장들 마저도 몸을 움직이지 못해 그저 엎어질 뿐이었다

 그런 실장석들 앞에, 한참 전에 상륙해 있었던 훈련 담당 간부들이 다가와 일렬로 섰다


 그들 중 맨 앞에 선 남자가 확성기를 들고 선언한다





 “본관은 실장특수부대 훈련계획 총책임자 박철웅 중령이다. 실장도에 온 제군들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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