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일


테치

뭐지?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치킨을 먹고 TV를 보고 있자니 내 귀에 들릴 리 없는 무언가의 소리가 들린다.

“소피아?”
“데스? 무슨 일이신 데스?”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TV를 보던 얼굴을 돌려 나를 쳐다보는 내 사육실장 소피아. 나는 순간 소피아가 낸 소리인가 했지만 이미 키운지 3년이 넘은 성체인 소피아의 어미는 ‘테치’가 아니라 ‘데스’ 로 변한지 오래다.

“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소리 데스? 어떤 소리 데스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소피아. 정말로 모르는 눈치다. 그렇다면 방금 내가 들은 소리는 뭐지? 환각이라도 들었나?

테치

분명히 들었다. 확실하게 테치라고 했다. 요즘 야근과 출장의 연속이라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들었나 싶었을 때 또다시 작지만 선명한 그 소리가 들렸다.

“뭐야, 방금 자실장이 내는 소리 같은 게 들렸는데?”
“자실…장 데스까?”
“어. 그 왜 테치였나? 너 어릴 때 너도 테치라고 했잖아. 그 소리가 나는 거 같은데?”

내 말에 소피아는 뭔가 떨떠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피곤해서 뭔가를 잘못 들으신 거 아닌 데스? 요즘 계속 그 회사라는 곳에서 늦게 들어오시거나 해씨와 달씨가 몇번 반복해서 오르내리는 동안 집에 못 들어오시지 않은 데스까.”
“나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 두번째 듣고 나니 뭔가 있는 거 같아.”
“정말 들으신 데스까? 와타시 걱정되는 데…”

테치테치

순간 침묵. 

TV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나와 소피아 둘의 시선이 서로 맞닿았다.

“들었지?”
“들은…데스.”

나는 TV를 껐다. 불안한 표정으로 우물쭈물하는 소피아를 뒤로하고 나는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두리번 두리번 시선을 옮겼다.

“뭐지? 분명히 들었는데 어디지?”

계속 자실장이 있을 법한 곳을 둘러봤지만 그 어디에서도 자실장은커녕 실장석 비슷한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은 곳은 베란다지만 그런 곳에 자실장이 있다는 건 말도 안ㄷ….

테치!

있다.

테치치치!

있었다.

테츙?

분명히 실장석이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실장석이 있었다. 크기를 보아하니 내가 찾는 자실장이 맞는 거 같았다. 녀석은 그 조막만한 손으로 계속 베란다문을 톡톡 치고 있었다. 베란다와 거실을 가르는 창이 워낙 튼튼하게 만들어 놓은지라 자실장이 그 작은 손으로 통통 치는 소리 정도는 완벽에 가깝게 차단해 버렸던 것이다.

“주, 주인사마…”

덜덜 떠는 소피아. 나는 손으로 가만히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는 소피아의 목에서 목걸이형 링갈을 벗겨냈다. 소피아는 순간 놀란듯 흠칫 하면서 내 손을 잡았지만 이내 손을 내리고 내가 목걸이를 가져가게끔 놔두었다.

“테치이! 테치 테치!”

나는 베란다문을 열고 링갈을 들어 녀석 가까이에 가져다 댔다. 그러자 링갈에서 녀석의 목소리가 번역되어 나온다.

“주인사마인 테치? 마마에게 말 많이 들었던 테치.”

자실장은 방긋 웃으며 안아달라는 듯 팔을 활짝 펴고 테치테치 떠들었다.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주인사마? 마마? 나는 순간 역한 기운이 올라와 이 맹랑한 자실장을 당장에라도 때려 죽일 뻔했다. 내 옆에서 긴장한듯 내 다리를 꼭 잡고 있는 소피아가 아니었으면 그리 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처리를 할 때가 아니다. 이 놈이 도대체 어떻게 여기 들어올 수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이 급선무다. 나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웃는 얼굴로 자실장에게 물었다.

“너, 자실장이구나.
“네 테치. 마마의 귀여운 자인 테치.”
“하하, 귀엽구나.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니?”
“테? 어떻게 들어왔냐는 테치?”

내 질문에 자실장은 뭔가 고민하는 거 같더니 바로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마마가 들여보내준 테치. 마마가 와타시는 여기서 태어났다고 말한 테치.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느낌이다. 여기서 태어났다고?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나는 분노로 다시 한번 몸을 떨었다. 하지만 무작정 분노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그 정도는 알고 있다. 

흠, 어라?

뭐지? 나는 순간 무언가 스파크가 튀듯 생각이 났다. 별로 오래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희미해진 기억. 자실장을 보니 그 기억이 조금씩 선명해진다. 맞다. 아무리 눈을 비비고 봐도 너무나도 딱 맞다. 

“자실장아, 네 마마는 어디 있니?”
“테? 마마 말인테치?”

자실장은 뭔가 갸우뚱하더니 이내 아 하며 그 뭉툭하기 짝이 없는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데…뎃?!”

자실장의 손 끝에 있는, 지목받은 소피아는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그 순간 확실해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사람을 기만해도 유분수지. 

나는 손이 벌벌 떨렸다. 분노가 진정되지 않는다. 그동안 얼마나 잘 해줬는데! 어떻게 대했는데 이런 식으로 배신을 한단 말인가?

“데, 데스 데스.”

소피아가 벌벌 떨면서 내 바지를 꼭 쥐었다. 나는 그런 소피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힉!”

놀란듯 숨을 삼키며 뒷걸음질치는 소피아. 그러나 빵콘도 하지 않고 덜덜 떨지 언정 여전히 얌전하게 있는 소피아는 훈련받은 사육실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후…”

나는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처리하자.”





잠시 후, 어느 공원의 뒷편 으슥한 풀밭 한 곳. 나는 벌벌 떠는 독라들을 앞에 두고 노려보고 있었다.

“오로롱 오로롱 잘못한 데스. 다시는 안 그러는 데스. 제발 용서해주시는 데스.”

그 중 큰 독라가 눈물을 흘리면서 내게 빌며 뭐라뭐라 입을 열고 있었다. 내 손에 들린 목걸이형 링갈에서 가증스러운 놈의 소리가 번역되어 나온다.

“야, 네가 외롭다고 새끼 깔 때는 마냥 좋았지? 그런데 그거 아냐?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른 다는 거.”
“평소에 자비로운 모습을 많이 보이신 데스. 그래서 자를 보여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을 뿐인데스…”
“뭐래냐? 한마디로 남의 사정이나 생각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지 좋을 대로 했다는 거 아냐?”
“오로롱…”

부정을 안 하는 거 보니 진짜 그리 생각했나 보다. 

“야, 내가 그동안 널 어떻게 대했냐? 발로 차길 했냐 아니면 나쁜 짓 한다고 쫓아내길 했냐? 나는 그래도 나름 자비롭게 대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걸 이따위로 통수를 치냐?”
“자비로우실 거면 끝까지 자비로우시는 데스…”
“뭐가 어쩌고 어째?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적반하장도 이 정도면 화가 나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온다. 지가 뭔데 날 자비롭니 뭐니 판단을 하고 자빠졌나? 게다가 뭐? 자비로울 거면 끝까지 자비로우라고? 이게 실장석의 사고구조인가?

놈의 어처구니없는 망발에 분노하고 있자니 역시 지 어미와 똑같이 독라가 된 새끼는 그저 공포에 질린 눈으로 벌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건 마마가 말했던 주인사마가 아니다. 분명 주인사마는 친절하고 자애로운 분이라고 했다. 자신이 나타나면 따뜻한 물로 아와아와를 시켜줄 것이고 그 후에는 스시와 스테이크를 먹여줄 것이라고 했다. 더 이상 마마가 가져오던 그 맛없는 덩어리들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도대체 자기 눈 앞의 저건 무엇인가? 새끼 실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눈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에 화가 더 치밀어 오르다 말고 뭔가 탁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

무엇때문인지 모를 깊은 한숨만이 내 입에서 나올 뿐이다. 사람이 분노가 일정 선을 넘어가면 오히려 차분해지고 허탈해진다고 했던가? 내가 지금 딱 그런 꼴이다.

내가 한숨을 쉬고 있으니 화가 누그러졌다고 생각이라도 한 건지 녀석이 다시 지껄이기 시작했다.

“용서해주시는 데스우. 그리고 저 아이를 제발 키워주시는 데스. 그리고 아이는 마마가 필요한 데스. 그러니…”
“닥쳐!”
“데에엥!!!”

이게 뚫린 입이라고 쓰레기 같은 말을 내 뱉는 구만? 이딴 개소리, 아니 개에게 미안하네. 여튼 되도 않을 소리 계속 듣고 있을 필요가 더 있나? 나는 이만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넌 네 스스로 기회며 뭐며 다 걷어찼다. 그래놓고서는 키워주네 어쩌네 그딴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제발 자비로운 분으로 돌아와 주시는 데스... 오로롱...”
“웃기고 앉았네. 난 한 번도 너 같은 놈에게 자비로운 놈이었던 적 없었거든? 진즉에 뭘 하든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내가 병신이지.”
“이러고 어찌 살라는 것인 데스까. 독라가 되면 공원으로 갈 수도 없는 데스…”
“내 알바냐?!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라!”

나는 가볍게 – 어디까지나 ‘가볍게’ – 놈을 걷어찼다. 내게는 가볍다지만 놈에겐 아니었던지 놈은 데갸악! 소리와 함께 날아가더니 땅에 부딪혀 널부러졌다.

그 모습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는지 자실장이 테에엥 울며 자기 어미쪽으로 토테토테 달려가기 시작했다.

저런 놈은 내 손으로 죽이는 것보다도 비참하게 만든 후 살려놓는 게 낫다. 어차피 계절은 겨울, 저대로 놔두면 추위 속에 고통받다 비참하게 죽을 것이다. 인간을 상대로 그 얕은 꾀로 기만을 저질렀으니 저 정도는 해야 내 마음이 후련하기도 하고.

테에엥 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눈도 돌리지 않고 집으로 걸었다.





집에 와 신발을 벗고 집안을 둘러보니 그 난장판이 마치 태고적 일인듯 고요하다. 오직 그 새끼놈이 싸질러 놓은 녹색 분변과 그 냄새만이 방금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조용히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하…. 

허무하다. 나름 호의를 베푼 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돌려받는 것이 인생에 한두번은 아니지만 이런 결말은 매번 경험할 때마다 허탈함에 나도 모르게 한 숨을 쉬게 된다. 문득 손에 쥔 목걸이형 링갈을 쓱 올려본다. 

이 물건도 이제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거실에서 무언가가 나와 내게 다가왔다.

“데스데스응?”
“어, 놀랐지 소피아. 이젠 괜찮아.”

나는 거실에서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며 나온 소피아의 목에 목걸이를 다시 채웠다.

“야 목걸이 잘 썼다. 덕분에 그 놈들이 무슨 짓거리를 꾸몄는가를 아주 생생하게 들었다.”

어떻게 거짓말을 해도 그딴 거짓말을 할 수 있나 모르겠다. 

“다행인 데스 주인사마. 갑자기 자실장이 나타나질 않나, 와타시더러 마마라질 않나 놀라서 말도 안 나온데스.”

우리 소피아는 불임인데 말이다.

최근 사육실장은 불임처리를 해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안구를 하나 적출하고 의안을 끼운다든가 분대에서 새끼를 생성하는 부분만 없앤다든가 해서 불임으로 만든다는데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고 여튼 그런 식으로 불임처리를 하기에 사육실장이 새끼를 낳을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러니 지가 우리 소피아 새끼라고 테치테치 나오는 놈은 뻔할 뻔자로 주변 들실장의 새끼가 몰래 들어와서는 자식 행세를 하는 것이다.

“소피아야, 미안하지만 저 창문 닫자 안되겠다.”

나는 베란다 창문에 작게 난 특수창 – 사육실장이 열고 닫을 수 있도록 만든 작은 별도창문 -을 가리켰다. 소피아도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와타시도 그게 좋을 거 같은데스 주인사마. 죄송한 데스. 너무 갑갑해서 환기 좀 시키겠다고 열어놓은 창문으로 새끼를 들이밀 줄은 몰랐던 데스.”
“됐어. 네 잘못아냐. 나도 그냥 괜찮겠지 싶어서 열린 거 방치해 놨으니.”
“그런데 집 더 뒤져봐야 하지 않겠는 데스까? 아까 그 자실장 말고 다른 자실장도 들어왔을 지도 모르는 거 아닌데스?”
“괜찮아. 나도 몰랐는데 이 링갈에 위석 서쳐기능도 있더라. 그거 돌려봤는데, 지금 잡히는 게 너 하나야.”

내 말에 소피아는 그제서야 다행이라며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혹여나 숨어있던 놈이 나와서 집안이 난장판이 되거나 하는 일은 없겠는 데스요. 그런데 정말이지 저기로 자기 새끼를 들어 넣다니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그럴 줄은…”
“하여간 들실장놈들 뻔뻔한 건 알아줘야해.”

나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분노로 씩씩거리며 특수창을 닫았다. 소피아도 한 숨을 푸 하고 내쉬더니 문득 궁금하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여기에 탁아를 했다는 데스?”
“내가 다른 사람과 달리 지보고 들실장이라고 쫓아내거나 하지 않고 가끔은 먹을 걸 줬다고 그랬 덴다. 그거 보고는 제놈에게 그 뭐라더라? 메로메로? 된 게 틀림없으니 지 자식놈을 밀어 넣으면 분명히 키워줄거라고 생각했다나봐.”
“데에…”

소피아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마 지금 내 표정도 그리 다르지 않겠지.

“뭐, 지 자식새끼놈 소피아 네 자식이라고 들이 밀고 우리 둘 다 그놈의 매력? 웃기지도 않네. 여튼 그 매력인지 뭔지에 홀려서 키우면 그제서 사실은 내가 저 자실장의 진짜 어미다! 하고 나타날 생각이었겠지 뻔할 뻔자로.”
“아니 무슨 생각을 해도 우지챠도 안 할 그런 단세포적인 생각을 한다는 데스까?”
“몰라. 혹시 알아? 이 추위에 이판사판이니 행복회로를 돌렸을지.”
“데스우…”

소피아도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곧 소피아는 밝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래도 주인사마 표정이 어느 정도 풀리신 것 같아서 다행인 데스. 아까는 너무 무서워서 차마 말조차 걸지 못할 정도였는 데스.”
“내 표정이 그랬어?”
“나름 주인사마와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표정을 지으시는 건 처음 본 데스요. 와타시는 이러다가 주인사마께서 그 들실장들을 찢어죽이시는 건 아닌가 걱정한 데스.”
“에이 너도 걱정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런 놈들 걱정해줄 필요 있어?”
“와타시는 그 들실장들이 죽는 건 상관없는 데스. 하지만 주인사마의 손을 더럽히게 되지 않냐는 데스요.”

소피아가 나를 걱정스레 쳐다보는 데 마음이 찡했다. 이러니 더더욱 그 들실장놈이 괘씸했다. 만약 불임수술이 아니었으면 소피아가 누명을 쓰고 잘못하면 처분당할 뻔하지 않았는가? 그런 건 하나도 신경쓰지 않고 남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지들 이익이나 챙기려드는 놈들이 들실장이다. 나는 가슴 깊이 그 점을 새겼다.

“이제 들실장놈들 보면 최소 때리고 쫓아내진 않아도 철저하게 무시해야 되겠어.”
“그러시는 게 좋을 거 같은 데스.”

나는 물티슈로 대충 놈의 새끼가 싼 분변을 닦아냈다. 제대로 된 물청소는 날이 밝은 후에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소피아가 나를 도와 꼼꼼하게 운치를 닦아냈다.

“어디선가 실장석 울음소리가 들리는 데스.”

소피아의 말. 나도 귀를 기울이자 자그마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녀석들의 울음일지 아니면 또 죽어가는 그저 그런 들실장들의 울음소리일지. 나는 감흥 없이 물티슈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밤이 점점 깊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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