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지 멀쩡한 실장육이 더 비싸냐고?”
G는 자실장을 굽다말고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새로 생긴 식실장 구이 식당. 나는 오랜만에 식실장 공장에 근무하는 친구 G와 만나 회포를 푸는 중 오랫동안 궁금했던 것 하나를 문득 떠올리고 질문을 던졌다.
“아니 생각하면 좀 웃기잖아.”
“그게 웃길 게 있나?”
“테취아!! 테츄아아아!! 테붹!!” (이거 놓는 테챠!! 이 보배를 건드리면 오마에 찌저주기는 테챠!! 테뷁!!)
나는 불판에 올라간 자실장을 가리켰다.
“아니 봐봐. 자, 일반 식실장 고기는 다른 고기, 소고기나 돼지 혹은 닭고기처럼 다 부위별로 손질되어 나오지?”
“그렇지.”
“그런데 이런 가게에서는 그냥 한 마리가 통째로 나오잖냐?”
끄덕끄덕. G가 긍정한다.
“테챠아아아악!!! 테샤악!!!!” (와타치사마의 세레브하고 고져스한 몸을 이런 식으로 다룰 수는 없는 테챠아아아!!!!)
시끄러운 놈의 성대를 익혀버릴 심산인지 G는 자실장을 뒤집어 버렸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렇게 통째로 나오는 놈들은 굳이 손질할 필요도 없고 그냥 세척하고 출하하기만 하면 되는데 일반 실장육을 사서 한 마리 만드는 것보다 비쌀 이유가 있냐는 거지. 생각해보면 마치 저지방 우유가 지방을 빼는 추가공정이 들어갔으니 더 비싸다라는 급의 헛소리 아닌가 싶어서.”
G는 이야기를 듣더니 팔짱을 끼더니 흐음하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이 친구야 고기 탄다. 안 구울 거면 집게는 이리 주고 고민해라.
“테치아아아아악!!! 테챠!!!!(뜨거운 테챠!! 고귀하고 존엄한 레이디인 와타치에게 무슨 짓인 테챠!!!)
내가 집게를 잡아 자실장을 뒤집자 온 몸에 검은 선이 그어진 자실장이 우렁차게 외쳤다. 그걸 보더니 피식 웃은 G가 입을 열었다.
“너 현미밥 먹어본 적 있냐?”
“갑자기 그건 왜?”
“아니 일단 대답해봐.”
“음, 있지. 가끔 현미밥 해 먹어.”
“너 그러면 뭔가 이상한 거 못 느꼈냐?”
“뭐가?”
“현미가 뭐냐? 수확한 쌀에서 껍질을 덜 벗긴 거지? 다 벗기면 우리가 흔히 먹는 백미가 되는 거고.”
“어 그렇지? 도정을 덜한 쌀이지.”
“그런데 현미가 백미보다 더 비싸지?”
“어?”
“테에에에엥!! 테치 테치 테챠!!!!! (똥닝겐은 그만 떠들고 고귀하고 세레브하신 와타치를 뜨거뜨거에서 구하는 테챠!!!!!)”
G는 씨익 웃더니 내게서 집게를 다시 받아들고는 자실장을 꾸욱 눌렀다.
“테챠아아아!!!!!!!!!”
“생각해보면 이상하지 않냐? 백미보다 더 도정을 덜했다는 건 공정이 덜 들어간 건데 왜 백미보다 현미가 비쌀까?”
“어…생각해보니 그렇네?”
“자, 내가 설명해줄게. 첫째로 도정기를 보면 요즘은 거의 다 백미용으로 나와.”
“테츄아악!!!! (마마! 불행하기만 했던 와타시를 구하는 테츄아아아아!!!)
“그러니까, 너나 다른 일반적인 사람들 생각과는 달리 도정기로 조금만 깎으면 현미, 더 깎으면 백미 뭐 이런 게 아니고 오히려 백미를 깎는데 최적화된 기계가 있는 거야.”
“흠, 그렇구만?”
“그런 상황에서 현미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면? 정미소는 현미만을 깎는 기계를 하나 더 들여놔야 하는 거지.”
“테찌이이이이!!!! 찌이이이이!!!!” (찌이이이이!! 와타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찌이이이이!!!)
몰랐다. 그러고보니 현미가 비싼데도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사먹고 있었다. G는 맥주 한 모금을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 막말로 도정정도에 따라 현미, 백미 도정이 둘 다 가능한 기계가 있다고 쳐도. 일단 현미를 깎으려면 셋팅을 다시 해야한단 말이지? 그리고 그 셋팅이 빨라도 최소 30분 정도는 잡아먹을 거고 말이야.”
“야, 아무리 그래도 그거 셋팅하는데 30분은 좀 오바다.”
“솔직히 30분이면 빠른 거야. 평균적으로 한시간은 걸려.”
“아니, 무슨 셋팅이 30분에서 한시간이나 걸려?”
“아닐 거 같지? 셋팅만 하면 다냐? 일단 쌀 투입해서 셋팅한데로 깎이는지 확인하고 그게 아니면 다시 쌀 넣고 그걸 될 때까지 해야해. 그러면 그거 하자고 쌀 낭비하고 시간 쓰지.”
“아…그렇겠네.”
“너도 나처럼 경제학 전공한 대졸 나부랭이니까 알 거 아니냐? 이거 한다고 할 동안 까먹는 시간은 뭐다?”
“그 시간에 백미 도정하는 걸 포기한 기회비용이지.”
“그렇지. 그리고 아무래도 현미는 백미에 비해 수요가 적지? 그러면 생산도 많이 안 할거고 그 찔끔 생산한 현미에 고정비용, 도정비, 그리고 기회비용까지 녹이면?”
“아, 그러니까 양 적은 현미에 백미 생산하는 비용의 곱절이 얹어진다는 말이구만?”
“빙고.”
G는 가볍게 박수를 쳤다. 이런 게 뭐라고 나는 살짝 들떠서 굽고있던 자실장을 나도 모르게 꾸욱 눌렀다.
“테에에에….테지이…테? 테챠아아악!!!!!” (살려주는 테치. 와타치는 닝겐상의 노예인 테치. 살려만 주면 흑발의 자를…테? 테챠악!!!!)
“그리고 이걸 아까 네가 말한 식육용 실장석에 대입해봐.”
“너네 공장도 그러냐? 전용기계가 있고 막 그래?”
“어. 우리 공장은 식실장육 생산의 거의 전 공정이 자동화가 되어 있어. 사람이 손으로 하는 건 실장석을 투입하는 것과 포장된 실장석의 품질을 검증하는 것뿐이지.”
G는 무언가를 투입하는 듯한 손짓을 하며 설명했다.
“실장석을 투입하면 일단 세척모듈이 용액을 분사해서 옷과 머리털을 녹이고 물로 씻어내. 그 다음엔 다음 모듈이 팔다리를 썰고, 다음은 척추를 들어내는 모듈이 몸을 가르고 척추를 들어내지. 이런 구조로 흘러가.”
흐음. 나는 계속하라는 신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걸 사지 멀쩡하게 내놓으려면 팔다리를 써는 모듈, 머리를 써는 모듈, 뼈를 빼내는 모듈 거기에 기타 등등의 모듈을 끄고 거기에 사람이 들어가서 일일이 끄집어 내서 포장기에 넣어야 한다는 거야.”
“아. 자동화된 모듈 중간에 사람이 들어가야 되는 거구나.”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사지 멀쩡한 놈들 생산한 이후에는 다시 기계 모듈 연결하고 재가동가며, 그거 제대로 된 건지 다시 셋팅 확인해야 하지.”
“하, 거 완전 난리구만.”
“그러고서도 그 사지멀쩡한 놈들 생산량이라도 많은가 하면 그것도 아냐. 사람이 다 손으로 해야하기 때문에 기계 공정 대비 생산성이 한 1/3 나오나? 그러면 그 인건비에 그 시간동안 일반 실장육을 생산했을 시 얻을 수 있는 기회비용까지 더해지면 볼장 다 본거지 뭐.”
“테에에에엥…”
“아니 그런데. 그러면 그런 사지멀쩡한 놈만 뽑을 수 있는 라인을 만들면 되는 거 아냐?”
내 질문에 G는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안돼. 라인을 따로 깔 수요가 없는데 그걸 어떻게 해.”
“엥? 수요가 없다고?”
“흔히 우리 같은 학대파라는 양반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지들이 뭐 세상의 절대다수인줄 알아요.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싸고 맛있는 고기를 먹고 싶어하지 고기를 학대하면서 먹는 취미는 없단 말이지. 안 그러면 학대용 식실장 파는 식당이 이만치 희귀하겠냐고.”
뼈아픈 소리다. 학대파들은 모든 식실장 식당이 실장석을 학대하며 먹는 줄 알지만 그런 식당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다. 당장 나와 G가 앉아있는 이 식당만 해도 이 수도권 남부에 단 2군데 밖에 없는 곳 중 하나다.
“수요도 적어, 돈도 안 돼, 비용은 갑절이야. 그러니 사지 멀쩡한 놈이 훨씬 비쌀 수 밖에.”
“하,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구만.”
“유구한 역사지. 왜 교수님이 경제학은 이걸로 시작해서 이걸로 끝난다고 했는지 알 거 같다.”
“테에에엥…” (와타치를 먹지 마는 테에에엥…)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벌겋게 익어버린 자실장을 둘로 찢었다.
“테찍!!!”
“누군가는 가위로 써는 게 좋다지만 이렇게 젓가락으로 거열형을 집행하는 게 최고지.”
“죄인 자실장은 역적죄로 거열을 받으라~”
“미친 ㅋㅋㅋㅋ”
고기굽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두 남자의 술잔이 짠 하고 맞부딪힌다.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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