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최근 돌아가신 증조부의 유산 분배가 끝났다. 나에게 온 것은 외딴 곳에 있는 별장 한 채. 증조부가 유언장에 직접 써서 남기셨기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 했다. 증조부는 굉장히 오래 살았다. 심지어 돌아가신 것도 병이나 노환이 아니라, 실족사였다. 100살이 넘도록 정정하셨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앞으로도 10년은 더 살 거라고 가슴을 치며 말씀하셨던 분이 고작 실족사라니. 사람의 운명은 알 수 없는 모양이다. 증조부의 별장은 외딴 섬에 있었다. 외딴 섬이라고는 해도 꽤나 큰 편으로, 사는 사람은 증조부와 관리인 가족을 빼면 없었다. 관리인들도 증조부께서 돌아가신 후 이곳을 떠났다.

육지에서 4km 남짓 떨어진 섬으로 가는 배는 하루에 2번 올 뿐이다. 나는 그 배를 타고 증조부의 별장으로 떠났다. 별장에 뭐가 있을지를 은근히 기대하면서. 고미술품 같은 돈이 될만한 것이 있다면 땡 잡은 것이다. 설사 없다고 해도, 별장이 한 채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풍족한 삶이 아닌가. 여름에 도시를 벗어나 바다를 보며 사색할 수 있는 삶이라니. 막상 내가 증조부의 별장에 도착해 느낀 감정은 '실망'이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모델하우스마냥, 모든 장식물은 철저히 배제된 채 그저 잡다한 가구가 몇 개 놓여 있었을 뿐이다. 어느 방에서는 고약한 냄새와 함께 소독약 냄새가 났다. 너무 지독해서, 대체 무슨 방인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증조부의 침대에 누워서 천천히 앞으로 이 별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집 밑바닥에서 뭔가 움직이는 소리와 짐승 울음소리같은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든다. 뭐, 외딴 섬이니까 이런저런 짐승들도 있겠지. 골치 아프다. 내일은 지하실을 한번 조사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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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로 가는 문은 이상할 정도로 엄중하게 잠겨 있었다. 단 하나 뿐인 문은 쇠창살로 덧대어지고, 3개의 자물쇠를 채우고, 마지막으로는 암호까지 입력해야 했다. 다행히도 별장을 뒤지다가 증조부가 쓴 일지를 발견했는데, 일지의 겉부분에 쓰여 있었다. 자물쇠는 도저히 열 방법이 보이지 않았기에 강제로 뜯어냈다. 이 집에 장작 패는 도끼가 있어 정말 다행이다.

그렇게 자물쇠를 모두 따고도 지하실은 꽤나 길고 좁은 통로로 이어져있었다. 대체 지하에 뭐가 있길래 이렇게 긴 통로와 복잡한 자물쇠가 필요한가? 문득 생각난 증조부의 일지에는 그렇게 쓰여있었다. "지하실에 있는 것은 내 삶의 즐거움이다. 덕분에 난 이 나이까지도 즐거운 삶을 살았고, 내가 언제 죽더라도 후회하진 않는다. 다만 내가 남긴 이것들은 대신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기에, 이 집을 물려받은 후손에게 기록을 전해준다." 증조부의 즐거움이란 대체 뭐였길래? 지하에 목장이라도 건설했나?

긴 통로를 지나자 처음으로 보인 것은 고이 접힌 골판지 상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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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는 그다지 대단한 건 아니었다. 어디에나 흔히 있을 법한 물건이다. 그렇다면 혹시 이 지하는 쓰레기장일까? 육지로 가는 배편이 귀하니, 이 자리에 모아두고 버렸던 걸까?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긴 어려웠다. 그렇다면 어째서 굳이 지하에 쓰레기장을 만든단 말인가? 빛조차도 별로 없었는데, 심지어 여기까지 오니 숫제 전등조차 안 달려 있다. 나는 핸드폰의 조명을 켜고 닐 암스트롱처럼 조심스럽게 발을 딛었다.

내가 깜짝 놀라 발을 멈춘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두꺼비 울음소리같은 탁한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기 때문이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어떤 짐승의 울음소리. 어딘가 굉장히 사람 목소리를 닮아 기괴한 것이 기분나빴다. 하지만 그 소리는 이내 잦아들었다. 이것이 설마 증조부의 '삶의 즐거움'일까? 대체 증조부의 즐거움이란 뭐였나? 왜 그걸 나에게 주려고 하는걸까? 솔직히 더 이상 나아가고 싶지 않았다. 세상에 귀신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하지만, '만에 하나'라는 것도 있으니까.

잠깐 숨을 고르기 위해, 핸드폰의 불빛에 의지해, 증조부의 일지를 펼쳐 조금 읽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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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은 '실장석'이라고 한다."
"언청이 입에 어설프게 두 발로 걷는 인간과 흡사한 존재."
"그것을 알게 된 것은 정말 기쁜 일이었다. 매우 즐겁다."


조금 더 발을 내딛은 내 코에 찌르는 듯한 악취가 느껴졌다. 분변이 발효되는 듯한 지독한 냄새. 잘 생각해보니, 별장의 그 지독한 냄새가 나는 방에서 나던 냄새와도 비슷했다. 이것은 이 통로에 있는 실장석인가 뭔가 하는 그것이 내는 냄새인가? 애초에 실장석이 뭐지? 그런 생물은 듣도 보도 못 했다. 이 섬에서만 사는 어떤 생물일까? 증조부는 그것들을 기르는 것이 낙이었을까? 냄새를 생각해보면, 도저히 이놈들과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낙은 커녕 나는 이 실장석이란 놈들을 세상에서 모두 절멸시키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얼굴을 찌푸리며 조금 걷자, 어둠 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짤막한 팔다리를 뒤뚱거리면서 휘두르며 걷는, 녹색 넝마를 걸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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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람인가? 나는 비명이 새어나오려는 것을 참고, 조금 그것을 훑어보았다. 그것도 갑자기 나를 보며 놀란 듯 했다. 확실히 얼굴은 사람같다. 하지만 약 1m도 되지 않을 듯한 작은 키, 관절이 없는 팔다리, 심지어 손가락도 없는 손, 언청이 입, 일부만 남겨진 대머리, 그리고 악취. 지독한 악취. 마치 지옥의 오물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한 악취가 더욱 선명하고 강렬하게 풍겨왔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 괴물은 나를 보더니 기묘한 소리를 냈다.

"뎃! 데쥬우! 데즈웅~"

나는 그 소리에 눈알을 돌려 그놈을 보았다가, 그만 못 볼 꼴을 보고 말았다. 그놈은 갑자기 벌러덩 눕더니, 무릎관절이 없는 다리를 벌리고는 옥문을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는 괴기하게 꿈틀대는 것이 아닌가. 뭘 원하는 것인지 명백했다. 이따위 괴물이 대체 왜? 나는 그 자리에서 헛구역질을 하며, 쓰러진 괴물을 걷어찼다. 그러자 생각보다 별로 강하진 않은 이 괴물은 데에엥 거리는 울음소리를 내며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짧은 순간 나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다시 증조부의 일지를 읽어 내려갔다.

아니... 하지만 그 이후는 쓰지 않겠다. 도무지 쓸 수 없다. 나는 미쳐버릴 것 같은 정신을 다스리며, 더욱 깊은 곳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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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부의 일지가 사실이라면, 아니, 그 글을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실장석이라니, 바보 같은 일이다. 저건 그저 이 섬에 사는 어떤 토착 생물일 것이다. 아직도 지구 상에는 밝혀지지 않은 생물종이 무수하다. 그런 생물 중 하나겠지. 그렇겠지. 증조부가 그런 일을 했을 리가 없다. 하물며... 자신의 비밀스러운 즐거움을 위해... 그런 짓은...

나는 마음 속으로 제발 그것이 사실이 아니길 빌며 한 걸음씩 천근같은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나를 비웃듯, 내 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나는 이것을 쓸 수 없다. 글로 쓰면 그 광경이 생각날 것만 같다. 아직도, 생생하게. 수없이 늘어져 있는 닳아해진 골판지들, 그리고... 넝마를 걸친 난쟁이들... 실장석... 고문당하고 학대당한 흔적이 역력한 흉터가 남아있는... 피 냄새... 분변... 데스웅... 울음소리... 비명소리... 흐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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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찍이 사람들이 경험해본 적 없는 쾌락을 즐기고자 했다."
"그것들을 모으는 것은 돈만 있다면 어렵지 않았다. 집도 절도 없는 부랑자들이, 어찌 이런 생활을 마다할까?"
"머리통을 적당히 으깨 백치로 만든다. 이것은 쉽지 않았다. 섬세한 힘조절이 없으면 그저 죽거나 정신을 잃을 뿐이다. 몇 번의 반복 끝에, 나는 완벽한 타이밍을 잡아냈다."
"성대를 망가뜨린다. 이제 이 백치들은 두꺼비같은 둔탁한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한다."
"팔다리를 한 마디씩 잘라내 짤막하게 만든다. 견디지 못하고 죽은 놈은 갈고 빚어서 고깃덩이로 만들어 먹이로 주었다."
"이 팔다리 없는 백치, 실장석들은 영원히 지하를 떠돌며 살아간다. 그들이 살아갈 수 있게 골판지 몇 장을 넣어주었다. 내 허락 없이 번식할 수 없게끔, 남자 실장석들은 '마라' 몇 마리만을 남기고 거세했다."
"여자 실장석들은 새끼를 낳자마자 팔꿈치 아래와 무릎 아래를 물어뜯어 잘라내었다. 자신들과 같은 형상이 되게끔. 온전치 못한 자신들의 새끼는 사지가 온전하다는 것에 대한 질투심이리라. 자신의 새끼에게도 질투심을 느낀다니. 그것이 우리의 본질이다."

"근친으로 태어난 놈들이 워낙 많아, 유전병이 심하다. 특히 언청이 입은 모든 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보인다."
"태어난 새끼들은 어미가 정상이 아닌 만큼, 제대로 된 학습은 하지 못한다. 어미의 아무 의미없는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자연스럽게 백치가 되었다."
"하지만 고통을 주었을 때의 쾌감은 그야말로 극치. 인간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울부짖는 모습이 즐겁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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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니 사타구니 사이로 늘어진 흉물을 빳빳이 세운 실장석 하나가 다른 실장석을 붙들고 그짓을 하고 있었다. 이것이 조부가 말한 '마라'라는 놈들인가? 이 꼴이 되고도 성욕만은 남아 있는 것인가? 문득 내가 처음 보았던 그 '실장석'이 떠올랐다. 나는 토악질을 하며 있는 힘껏 비명을 질러댔다. 내 큰아버지, 삼촌, 어쩌면 내 사촌일지도 모르는 저 추악하고 뒤틀린 흉물들을 향해. 마구 발길질을 해대며 골판지 상자를 보이는 대로 때려부수고, 눈 앞의 실장석들을 모두 때려눕히고 짓밟았다. 이 놈들은 흉물이다. 미치광이가 만들어낸 흉물. 내 증조부는 미쳤다. 그놈은 미쳤다.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짓을 어떻게 태연자악하게 한단 말인가? 나는 미친놈의 자손이다. 나도 미쳤을지도 모른다. 미쳤으리라. 미쳤다.

사실대로 말하면, 놈들을 걷어차는 것이 즐거웠다. 굵고 낮은 비명을 지르며, 반쯤 없는 다리로 사방팔방 느릿느릿 달아나는 놈들의 표정을 보았는가? 놈들이 자비를 구걸하는 모습은? 죽음을 직감하고 갑작스럽게 나에게 아첨하는 모습은? 공포에 똥을 지리자 부풀어오른 넝마가 늘어지며 안 그래도 걷기 힘든 몸을 더욱 걷기 힘들게 한다. 바보같은 모습이 우스웠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정신을 추스렀다. 이런 인간 이하의 행동에 즐거움을 느낀다니, 말도 안 된다. 나는 미치지 않았다. 나는...
지하의 공기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더 정신이 이상해지기 전에 맑은 공기를 마셔야한다. 긴 복도를 달려, 내가 자물쇠를 부숴버린 것을 후회하며, 주변의 모든 가구들을 그러모아 문을 막았다. 하지만 놈들이 어디선가 땅굴이라도 파고 있을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배를 타고 섬을 떠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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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별장을 다시 찾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 후였다. 내 손에는 석유 한 통이 있었다. 지하에 불을 놓아 놈들을 하나도 남김 없이 말살해버릴 작정으로.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 꼴이 된 것은 가련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지하를 떠돌며 영원히 고통스러운 삶을 사느니,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존귀한 생물의 가장 추악하게 추락한 모습이라. 그리고 그런 모습을 설계해낸... 광인의 섬뜩한 미소가 떠올랐다.

나는 그 좁고 긴 통로를 걸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몇 시간, 그 후면 세상에 그 광인이 남긴 유산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지하를 완전히 메울 것이다. 새빨간 화염에 휩싸여 비명을 지르며 뛰다가 목숨이 다한 '실장석'들과 함께. 놈들은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 실장석이 화염에 휩싸여 뛰어다니는 모습을 상상하자,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실장석은 불에 탈 때 꽤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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