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와 거지

 

"데에엥... 이런 거 싫은데스... 사육실장같은거로 태어나지 않는게 좋았던데스..."

오늘도 주인에게 흠씬 두들겨맞은 사육실장 콩콩이가 창가에 앉아 울며 중얼거린다. 똥을 아무데나 싸고, 장난감을 어지르고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번 얻어맞으면서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주인은 매일 콩콩이를 때린다. 하지만 콩콩이는 자기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 똥을 아무데나 싸는게 왜 잘못이고 장난감을 어지르는게 왜 잘못인지 모른다. 어차피 인간노예(주인)가 치워줄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무렇게나 해도 되는 것 아닌가?

"데에엥... 이런 거 싫은데스... 이대로라면 굶어죽고 마는데스..."

같은 시간 콩콩이가 사는 집의 창 밖을 지나가던 들실장 하나가 울며 중얼거린다. 겨우내 지내려고 마련해둔 말린 과일과 비스킷을 모두 분충 첫째와 둘째가 몽땅 먹어치운 것이다. 화가 나서 모두 죽여 육포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고도 엄지 두 마리가 남아있다. 자식들이야 얼마나 죽건 상관은 없다. 어차피 다가올 봄에 다시 낳으면 된다. 그렇지만 이대로도 턱없이 부족하다. 과연 살아서 봄을 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데에엥..."
"데에엥..."
"...누가 우는데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이 맞았다. 콩콩이는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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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실장이 싫다고 한데스?"
"그런데스. 와타시는 이제 사육실장따위 정말 싫은데샷!" 목에 걸린 목걸이를 풀어 집어던지며 콩콩이가 분통을 터뜨린다. 들실장은 참 배부른 소리를 태연하게 하는 콩콩이를 보고 어이가 없어진다. 누구는 평생 그걸 위해 살아가는데, 그게 싫다니.

"오마에는 좋아 보이는데스. 자유로워 보이는데스. 자를 가득 낳고. 운치도 아무데나 싸고, 어질러도 인간노예가 때리는 일은 없지 않은데스?"
"데..." 들실장은 그것보다 훨씬 더 위험한 학대파라는 인간들이 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넘어왔지만 참았다. 어쩌면 이 바보를 좀 구슬리고 잘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럼 와타시하고 바꾸는데스." "데에?" "와타시가 사육실장이 되는데스. 오마에가 들이 되는것인데스." "뎃! 좋은 생각인데스!" 콩콩이는 그 자리에서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들실장에게 옷을 내놓으라고 손을 내밀었다. 들실장은 속으로 비웃으며 옷을 벗어 콩콩이에게 줬다. 이것으로 콩콩이가 들실장이고, 들실장이 콩콩이가 된 것이다.

"와타시의 이름은 콩콩이인데스. 하지만 이제부턴 오마에가 콩콩이인데스."
"와타시의 집은..."

그렇게 두 실장석은 자의적으로 '바꿔치기'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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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콩콩이."
"데... 주인님, 안녕하신데스." 콩콩이가 된 들실장이 주인에게 인사한다.

"...뭐라고?" "데뎃?" "방금 너 뭐라고 했냐?" "데... 데... 주인님... 안녕하신데스라고 한 데스... 와타시 잘못한데스?" 주인의 표정이 심상찮게 변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환해진다. "너... 이제야 주인님이라고 불러주는거냐!? 잘 했어!" 그리고 뛸듯이 기뻐한다. 항상 자신에게 "인간" "노예" 같은 소리나 해서 언젠가는 학대용으로 써먹고 버려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갑작스럽게 '주인님'이라고 불러준다. 콩콩이가 된 들실장은 이 상황 전부가 이상했다. 그럼 평소엔 뭐라고 불렀길래?

"그러고보니 오늘은 똥도 아무데나 안 쌌네!?" "데에...?" "거 봐, 하면 되잖아!" 주인은 콩콩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콩콩이가 잘 하면 줘야겠다고 준비해둔 별사탕을 꺼내서 줬다.

"데에에...?"
"먹어. 앞으로도 이렇게 잘 해야한다?"
"데, 데! 감사한데스!" 콩콩이는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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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챠아아아! 쓸모없는 똥마마인레챠!!!!" 들실장의 집에선 엄지가 성질을 부리고있다. 보통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추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탓이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똑같으니, 어디 한 번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심정인 것이다.

"데에... 미안한데스... 하지만 오늘은 정말로..." 들실장이 된 콩콩이는 어쩔 줄을 모른다. 사육으로 태어나 폭력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들실장이 뭘 먹는지도 모른다. 들실장이 음식물 쓰레기를 먹는다는 생각은 한번도 안 해본 것이다. 지금까지 먹은 것은 푸드나 인간의 음식 뿐이다. 쓰레기는 쓰레기다. 그건 음식이 아니다. 그것이 콩콩이의 기본 사고였다.

"거짓말마는레챠아!" "똥마마 혼자 숨겨두고 처먹고 있는거 아는테챠아아아!!!" 엄지 두 마리가 동시에 성을 내고 팔을 휘둘러댄다. 들실장 콩콩이는 어쩔 줄 몰라한다. 엄지를 죽인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데... 데데... 다시 갔다오는데스." 콩콩이는 추운 날씨에 몸을 움츠리며 다시 걷는다. 하지만 여전히 음식물 쓰레기를 주워모을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디서 인간이 실장푸드라도 뿌리는 것은 아닌가 내심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 추위에 나올 인간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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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이와 들실장이 서로 바뀐 지 일 주일이 지났다. 날이 꽤 풀려, 콩콩이가 된 들실장은 주인과 산책 중이었다. 주인과 함께 간 공원은 바로 현재의 콩콩이가 들실장이던 시절 살고 있던 그 공원. 갑자기 새끼들이 생각나지만, 뭐, 아마도 잘 살고 있을 것이다. 이제 내 새끼도 아닌데 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한다.

주인은 콩콩이를 묶어두고 잠시 화장실에 갔다. 그리고 그 사이 정말 우연인지, 들실장이 된 콩콩이가 그 옆을 지나가다 사육실장이 된 들실장을 보게 되었다. "데데! 와타시데스! 콩콩이데스!" "콩콩이? 오마에가 콩콩이인데스?" 둘은 처음 만났을때처럼 눈이 마주친다.

"들 생활은 도저히 못 하겠는데스... 이제 틀린데스. 와타시랑 다시 바꾸는데스."
"...바꾸다니 뭘 바꾸는데스?" 콩콩이가 어이없다는 듯 대답한다. "오마에는 이미 들실장이 되겠다고 한 데스. 그리고 와타시가 이제 사육실장인데스. 사육실장은 편한데스. 규칙만 지키면 인간이 먹이와 잠자리를 주는데스. 한 자리에 운치를 싸고, 어지른 물건을 치우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던데스?" "데뎃...?" "자는 안 낳아도 상관 없는데스. 그런 건 낳아봤자 골칫덩이인데스. 와타시는 인간과 함께 사니까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한데스." "데이...?"

사실 들실장이 봤을때 콩콩이가 '사육실장 하기 싫다' 라면서 말했던 이유들이 상당히 어이없었던 것이다. 똥을 사방팔방 뿌리고 다녀 혼났다, 어질러서 혼났다, 인간의 말을 듣지 않아 혼났다, 마음대로 음식을 집어먹어 혼났다... 들실장이라도 알만한 일이다. 아무리 들실장이라도 아무데나 똥을 뿌리고 다니거나 마음대로 보관해놓은 음식을 다 먹거나 하진 않는다. 콩콩이는 그것조차 하기 싫어서 스스로 고행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그럼 충분히 와타시는 반성한데스. 이제 다시 와타시가 사육실장이..."
"들분충이 무슨 소리인데스? 그것보다 오늘 먹이를 안 구해가면 굶어야 하는거 아닌데스?"
"데... 뎃샤아아아아아!!!!" 결국 들실장이 되어버린 콩콩이는 분노가 폭발한다. 사육실장을 때리려 하지만...

"임마! 똥벌레새끼가 어디서!" 마침 화장실에서 돌아온 주인이 그걸 보고 들실장 콩콩이를 힘껏 걷어찬다. 콩콩이는 날아올랐다가 지면과 격돌하고 구르며 피투성이가 된다. "데... 데게..."

"레프프... 똥마마가 걷어차인레치." 그걸 보고 고소해하는 것은 원래 들실장의 자식들이었던 엄지들.
"저런 똥마마보단 와타치를 키워주는 게 좋은레치!" 엄지들은 일제히 콩콩이의 주인 앞으로 다가가서 아첨과 함께 꼴사나운 몸짓으로 춤을 춰댄다. "레츄우~ 와타치를 키우는 걸 허락하는레치~ 저런 똥마마보다 와타치가 더 좋은레치~"

"아... 뭐야... 똥벌레새끼들이 꼬이는구만." 주인은 무감정하게 내뱉고 발을 분주히 움직인다. "레!" "쥬우!" 엄지 두 마리는 순식간에 적록색의 납작한 살점으로 변해버린다.

"콩콩아, 가자."

콩콩이는 자신의 새끼들이었던 둘의 죽음에도 별 감흥이 없다. 이제 자신은 사육실장이고, 들 시절의 잔재들과는 가까이 하기도 싫은 것이다.

"콩콩이는 여기인데스우~"
피투성이가 된 진짜 콩콩이가 사라지는 주인의 뒷모습을 향해 처절하게 절규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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