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 네가 없어진지도 벌써 한달 가까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걸 받아들일 수가 없단다.
네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어.
너는 매일 아침 나를 깨워주고 방의 청소도 해줬었지.
내가 집에 돌아오면 언제나 환한 미소로 나를 반겨줬었고..
너랑 먹는 스시와 스테이크와 콘페이토는 정말로 맛있었어.
함께 욕조에 들어가 너의 몸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것이 낙이었단다.
아무리 싫은 일이 있었어도 너 덕분에 잊을 수가 있었어.
미도리... 네가 없는 생활이란.. 나에게는 믿기지가 않아..."
작은 묘석 앞에 무릎을 꿇고 청년은 말했다.
여기는 애완동물 전용 묘원이다.
전망 좋은 언덕 위에 개, 고양이, 그리고 실장석들이 묻혀있다.
수풀 밑 그늘에서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이 있었다.
묘원에 살고 있는 들실장들이다.
들실장들은 묘원을 방문하는 참배자들에게 공물로 가져온 과자나 과일을 달라고 치근대며 살아가고 있었다.
극히 드물게 사망한 사육실장 대신에 들실장을 데려가는 유별난 사람도 있기 때문에, 들실장들이 가망이 있어보이는 사람들을 알아보고 스스로를 어필하는 경우도 있다.
빈손으로 찾아온 청년을 보고 처음에는 혀를 찼던 들실장들도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바싹 긴장했다.
청년이 허리를 드는 순간을 가늠하여 들실장들은 청년 아래로 모여들었다.
"닌겐상, 쓸쓸하다면 와타시가 사육이 되어주는 데스!"
"전 사육실장인 마마한테서 사육실장의 훈육을 받은 테치! 와타시가 가장 우수테치!"
"무엇이든 돕는 데스! 절대로 지리지 않는 데스! 키워주는 데스! 키워라 데스!"
제각기 사육실장에 대한 열망을 표출하는 들실장들에게 둘러쌓인 청년은 그 자리에 멈춰섰다.
잠시 그러고 있는데 멀리서 한마리의 들실장이 찾아왔다.
그 들실장은 연보라색 괭이밥꽃을 한송이 가슴에 지니고 있었다.
신묘한 표정으로 묘비 앞에 선 들실장은 무릎을 꿇더니 공손한 자세로 묘석에 괭이밥꽃을 바쳤다.
"실례지만 몰래 이야기를 들었던 데스.
같은 실장석으로서 미도리상의 명복을 빌고 싶은 데스.
미도리상이 돌아가신 것은 정말 유감데스.
하지만, 멋진 주인님과 만났던 미도리상은 행복했을 것인 데스."
그렇게 말한 들실장은 무덤을 향해 합장했다.
뜻밖의 고차원 퍼포먼스를 지켜본 다른 들실장들은 기가 죽어서 할말을 잃고 눈 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묵념을 마치고 고개를 든 들실장은 옆에서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미도리는 장수하지 못했다. 너는 튼튼한 아이니?"
"보다시피 건강한 데스.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스!"
"...그래, 알겠다. 따라오렴"
청년의 마음에 든 들실장은 차를 타고 묘원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들실장들은 발을 동동구르며 안타까워 했다.
냉방된 차안은 시원했다.
그 상쾌함에 도취되면서 들실장은 조수석 시트 위에 깔려있는 신문지 위에서 편히 쉬고 있다.
"너의 이름도 미도리로 하자. 잘 부탁한다, 미도리"
"알겠는 데스! 멋진 이름데스. 정말로 기쁜 데스!"
도대체 몇마리째의 미도리인 걸까.
다정한 주인을 목적으로 경쟁하며 자신을 어필하는 들실장들.
청년은, 그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보고 싶어서 생면부지의 무덤 앞에서 생쇼를 했다.
말할 것도 없이, 학대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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