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자의 명령

 

남자는 수조에 담긴 실장석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참 알 수 없어... 너희는 왜 항상 그 모양이냐?"

"무슨... 무슨 말인 데스?" 안에는 심하게 고통받은 실장석. 말할 것도 없이 독라. 온 몸에는 심한 학대를 받은 흔적이 있다. 위석은 물론 빼놓았다. 남자가 하는 말에 정신을 차린 실장석이 겨우 입을 떼며 한 말은 그것이었다.

"너희는 왜 아무 근거도 없이 자기자신이 아름답고 귀엽고 고귀하다고 여기는거냐? 그런 자신감으로 또 자길 키워달라고 하지 않나, 인간과 자신의 힘 차이도 인지하지 못하질 않나, 스테이크 스시 콘페이토는 왜 달라고 하는건데? 애초에 왜 스테이크와 스시가 별사탕과 같은 위치에 있는 거냐?" 이 물음은 모든 인간들이 실장석에게 가지는 근본적인 질문일 것이다. 남자는 수십 마리의 실장석을 학대하고 죽였지만 이 의문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은 얻지 못했다. 이번에도 허탕일까?

실장석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무겁게 입을 뗐다.

"...시킨데스."
"어엉?"
"그것이... 와타시에게... 우리에게... 시킨... 데스. 그렇게 하라고... 한데스."


이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남자는 실장석의 배를 바늘로 꾹 찔렀다. "데히! 데햐아아아아아! 사실인데스! 그만하고 와타시의 말을 듣는데스우! 데갸!!!!" 눈물을 흘리며 발광하는 실장석을 보고, 남자는 바늘을 뽑는다. "누가 뭘 시켰다고?" "그것이 시킨데스! 우리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킨데스! 우리에게 인간 앞에서 추하게 아첨하고 춤추고 노래하고 그리고 스테이크, 스시, 콘페이토를 요구하라고 시킨데샤아아아아!!!"

"그러니까 그게 누군데?" "그것인데스! 그것... 와타시도... 우리도... 이렇게 살고싶지 않은데스... 우리도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스! 되도록이면 태어나고 싶지도 않았던데샤아아아!!! 우리는 인간들이 우리를 원하니까 태어난데스!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고 이렇게 살고 싶어 사는게 아닌데스우우우!!!! 우리는 죽기위해 태어난데스우우!!! 이런 데스라는 멍청한 어미도 붙이고 싶지않은데스우우우우우!!!" 실장석은 숫제 울부짖으며 필사적으로 한마디 한마디씩을 전달한다. 대체 누가 뭘 시킨단 말인가? 실장석에게 분충짓을 하라고 시켰다고?

"그러니까 대체 누가 시켰는데? 말 안해?"
"이... 인간인데스..."
"뭐?"
"여... 여기 있는 인간이... 아닌 데스. 저 너머에 있는 인간인데스... 우리의 이해를 뛰어넘는 곳에 있는 인간... 인데스..."
"우리의 이해를... 뭐?"
"보는데스. 지금도 여길 보고있는데스. 여길 보고 웃는데스. 그 인간은 모든 걸 아는데스. 우릴 이 공간에 만든데스. 와타시가 고통받고 인간이 와타시를 학대하도록 만든데스."


"네가 말하는 그 인간이 뭔데? 신이라도 되냐?"

"시... 신이 아닌데스. 인간인데스. 하지만 저 너머에데갸아아아아!!!!" 남자가 알 수 없는 소릴 주절거리는 실장석에 짜증이 나 바늘을 꽂으려 하자, 갑자기 실장석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다.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눈 한번 깜박일 사이에 사라졌다. 남자는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왜?

실장석이 왜 내 눈앞에서 사라졌나? 사라졌다면 어딜 갔지?

남자는 샅샅이 집 곳곳을 뒤졌지만 결국 어느것도 찾지 못했다. 괜찮다. 실장석이라면 공원에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남자가 공원에 갔을때 역시 이상한 일은 계속되었다. 공원의 그 많은 실장석들이 단 한 마리도 없었다. 수풀을 뒤지면 으레 나오는 골판지 상자도, 화장실 주변을 끙끙거리며 돌아다니는 놈들도, 쓰레기통을 뒤지는 놈들도 없다. 전혀 없다. 한 마리도 없다.

편의점에 가 간단한 물건 몇 가지를 구입하고, 봉투를 묶어달라고 부탁해봤다. "...묶으라고요?" "네." 편의점 알바는 그런 남자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봉투를 대강 묶어줬다. 그걸 들고 편의점 주변을 서성여봤다. 하지만 그래도 그 녹색 생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체 왜? 갑자기 모든 실장석이 사라졌을까?

수없이 많은 의구심을 품고 남자는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나 해서 봉투를 열어봐도, 역시 남자가 편의점에서 사온 컵라면과 과자 따위만 있었을 뿐이다. 소파에 탁 누웠다. 실장석의 혈흔이 남은 수조가 있다. 하지만 남자가 눈길을 돌리자 갑자기 그것은 사라졌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실장석 학대 도구들이 하나하나 사라진다. 탁자가 사라진다. 의자가 사라진다. 텔레비전이 사라진다. 남자가 누워있던 소파도 사라진다. 집이 사라진다. 공간이 사라진다. 공허만이 남았다. 남자는 아무것도 없는 공허 속에 남겨졌다.

남자는 오싹해졌다. 실장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곳은 자신의 이해를 뛰어넘는 곳에 있는 어떤 존재가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심지어 남자 자신도, 남자의 학대파적 성향도, 실장 학대 도구를 사용하도록 시킨 것도 모두 그 실장석이 말한 어떤 인간의 소행이었다. 사실이었다. 남자는 공허 속에서 홀로 떨었다. 떨면서 울기 시작한다. 위도 아래도 좌우도 없는 허무에 내동댕이쳐진 채 자신의 이해를 초월하는 그 존재가 자비를 베풀어주길 바랐다.

다행히도 그 존재는 남자의 모든 것을 빼앗은 후, 변덕이 생겼는지 모든 것을 다시 돌려주었다. 물론 실장석도. 순식간에 다시 자신이 알던 세계로 돌아온 남자는 정신이 멍해졌다. 실장석 한 마리가 수조에 놓여있다. 말할 것도 없이 독라. 온 몸에는 심한 학대를 받은 흔적이 있다. 위석은 물론 빼놓았다. 하지만 남자는 더 이상 실장석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남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몸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인간'은 남자가 실장석을 학대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거역할 수 없었다. '그 인간'의 뜻이다. '그 인간'이 나에게 시킨다. 저 너머...

...저 너머에서, 모니터를 지켜보고 있는 인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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