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와 실장석

 

오후에 툇마루에서 책을 읽는데
전화가 울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큰아버지다.
"여행담도 있고,
오늘은 우리 집에서 저녁 밥을 먹지?"
고마운 얘기지.
나의 요리 레퍼토리는 두엇 밖에 없다.
이제 다른 음식을 먹고 싶었던 곳이다.
기꺼이 간다고 하니
마중 나오라고 하곤 전화는 끊어졌다.

10여분 후,
큰아버지의 낡은 소형 트럭이
요란하게 왔다.
운전석의 큰아버지는
그을린 얼굴로 손을 흔들고 있다.
농사를 짓는 큰아버지는
이제 초로의 나이지만
나보다 훨씬에 건강하고
기풍도 좋다.
나는 친척 가운데서도
성격이 밝은 이 큰아버지와
특히 사이가 좋았다.

소형 트럭의 조수석에 타고
큰아버지의 집으로 간다.
길은 시골답게 논두렁길 투성이다.
여행나갔던 동안 뭔일이라도 있었냐?
묻는 큰아버지께
실장석이 나타난 얘기를 했다.

"큰아버지, 이 근처에도 실장석이 나와요."
"아, 그렇구나."

큰아버지는 곤란한 듯 머리를 긁었다.
산속에
감당할 수 없게 된 애완 동물을 버리는 사람은
옛날부터 있었지만,
이제 실장석들도 그꼴이라 한다.
근처의 산에 버려진 실장석들은
착실하게 증가해서
이 근처에 돌아다니고 있다.

"그거 상당한 민폐생물 아닌가요?"

불과 한쌍의 친자 �문에
기분을 잡쳤던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
나의 질문에
큰아버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만서도……꼭 그런것만은 아냐,
저걸 봐."

큰아버지은 소형 트럭을 세우고
논두렁길 건너 밭을 가리켰다.
허수아비가 서 있다.
잘 보니 실장석이었다.
밭 안에 세워진 나무 말뚝이
실장석을 세로로 관통하고 있다.
두 팔을 벌리게 크로스 바를
팔 안으로 꽂은 모습은
어딘가의 성자를 방불시키지만
말뚝의 근원에 분뇨를 늘어뜨린
더러운 생물에 비유되면
온화한 성자라도 격노할 것이다.

아, 저 실장석은 살아 있다.
두건을 뚫고 말뚝 끝이 튀어나와 있지만,
그 주위의 살은 아물어서 굳어 있다.
직사 광선에 줄줄 땀을 흘리며
 "데이"
하고 신음하고 있다.

"우와, 저게 도움이 되나요?"
"되고말고, 보라고."

보니까,
까마귀가 날아와
실장석을 쪼기 시작했다.

"데엣! 데데뎃! 데에에엣!?"

까마귀는 실장석의 머리 위에 올라
녹색 쪽의 눈을 콕콕 쪼고 있다.
실장석은 아파 울면서,
목을 붕붕 휘두르고 있지만
까마귀을 어쩔 수는 없다.
오히려 까마귀는 재밌는 듯
여기저기 쪼았다.

"데즈우ー웃!"

"저렇게
까마귀의 주의를 끌어 주니
밭을 덜 망치게 되지"

부리에 쉽게 쪼이고 찢기는 주제에
회복력이 뛰어난 실장석은
언제나 신선한 반응을 한다.
그것이 까마귀에게 재미있는 것 같다.

"실장석도 스트레스로 죽는다는데, 괜찮아요?"
"그래서 수를 썼지."

백부는 조수석 쪽 상자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투명 필름 케이스 속에는
액체와 녹색의 돌이 들어 있다.

"이건 위석?"

액체는 설탕 물이란다.
이렇게 위석을 빼내
설탕물에 담가 두면
실장석이 좀처럼 죽지 않는단다.
몰랐다.
백부께서 위석을 다시 넣었을 때에 봤다.
이 스톱워치 같은 것은 실장 링갈이 아닐까?

"큰아버지, 이 실장 링갈 써 봐도 될까요?"
"아, 그래. 재밌을 거야"

시도한 적이 없어서
재밌는지도 모른다.
나는 링갈을 가지고 차에서 내렸다.
허수아비 실장석에 접근해
링갈의 스위치를 넣었다.
까마귀에 쪼이며 중얼거리는 것은

"아픈 데스우! 그만두는 데스우!"

라고 표시되고 있다
뭐, 예상대로이다.
접근하는 나를 눈치챈 까마귀는
실장석을 놓고 날아갔다.
안심해 한숨돌린 실장석도
나를 봤다.

그런데 뭘 할려나?
잠시 보고 있었다.

"데스, 뎃스ー?" (인간, 뭐 보는 데스우?)
"데뎃, 데스우," (나의 사랑스러움에 반한 데스우)
"데스, 데스 〜." (어쩔 수 없는 데스우, 특별히 기르게 해주는 데스우)
"데스뎃스," (식사는 스테이크로 봐주는 데스우, 당연히 후식이 포함되는 데스우)
"뎃슷스, ♪"(나의 귀여운 발을 핥을 권리도 주는 데스우)

논두렁 길은 돌멩이가 많다.
나는 적당히 하나를 집어 들어
크게 치켜 들었다.
전력을 담은 일투를
안면에 쳐 넣자
실장석은 "데규앗!?"하고 비명을 올린다.
이래뵈도 초등학교 때 소프트볼로는
라이트에서 9번이었어.
옛날에 익힌 솜씨!
링갈의 스위치를 끄고,
분연히 돌아온 나에게
큰아버지는 쓴웃음을 지었다.

"허, 참을 수가없었나?"

큰아버지의 집은 전형적인 농가다.
T셔츠 차림의 중년 여성이 반겨 준다.
백모이다.

"집봐줘서 고마워.
오늘은 백모가 맛있는 걸 해 주실거야"
"기대됩니다……그런데 그것인가요?"

내가 가리킨 것을
백모가 "이거?" 하며 흔들어 보이니
"테-츄-"하고 우는 소리가 난다.
백모가 가진 그릇에는
자실장이 여러 마리 들어 있었다.
나의 시선을 눈치채고

"텟츄♪ 텟추♪"

하고 아양을 떨고 있다.
백모는 아양하는 소리에
신경도 쓰지 않고
"이렇게 하는 거야" 하며
한마리를 잡았다.
잡힌 자실장은 선택된 기쁨에

"테-프-프♪"

하며 그릇에 남은 동속을 비웃는다.
그 웃음 소리가 사라지기도 전에
백모는 뜰에 자실장을 내동댕이쳤다.

"테에에엣? 테칫!"

뜻밖의 공중 유영에
당황의 목소리를 높이던 자실장은
얼굴로 땅을 들이받고 신음한다.
땅 위에 던져진 자실장은
코피를 흘리며 겨우 일어나
주위를 돌아보다
다가오는 위협을 깨달았다.
뜰에 방사된 닭들이
무서운 기세로 돌진해오는 것이다.

"텟? 테에에에에에엣!"

작은 자실장이 보면
닭은 몇배의 몸집을 가진 괴물이다.
그런게 몇마리씩 덮쳐 오는 두려움은
상상조차 어렵다.
자실장은 눈물, 콧물에 침으로
얼굴을 엉망으로 적시며 필사적으로 달린다.
하지만 더 느리다.
자실장의 작은 보폭으로는
대단한 속도 따위는 바랄 수가 없다.
더구나 정원의 끝,
나랑 백모가 서 있는 곳은
이중 콘크리트 블록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실장은 절대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절망적인 눈으로 우리를 올려다보는
자실장에게 닭들이 쇄도한다.
부리가 속속 내리찍히자

"테치, 치이이......"

곧 조용해졌다.
닭들은 자실장의 시체를 물어뜯고 있다.
맹금의 솜씨다.

"와일드하네"
"이렇게 산 먹이를 주면~맛있는 토종닭이 되지"
"뛰어다니니까요"

백모는 먹이 자실장을 더 던진다.
닭들은 실장을 뒤쫓아
정원 내를 뛰어다닌다.
이러면 운동 부족은 걱정 없다.
백모는 마지막 남은 두마리를 잡아
동시에 던졌다.

""테, 테츄츄!""

그동안 형세를 다 봐온 자실장들은
한눈도 팔지 않고 달아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역시 느린...
...데, 갑자기
한 자실장이
다른 놈의 발목을 물었다.

"테치이잇!?"

나자빠진 자실장.

"테츄츄ー!"

넘어진 자실장이
도움을 구하며 손을 뻗지만
배신자실장은
돌아다보지도 않고 열심히 달린다.
실장의 우정, 이로써 정점에 달해....
실장다운 자실장이다.
콘크리트 블록의 벽까지 도착해
벽을 두드리며

"테치! 테치!"

하고 도움을 청하는 자실장을
안아 올렸다.

"너 참 대단하군"
"테츄♪"

칭찬 받았다고 생각했는지
기쁜 듯이 우는 자실장.

"이런 지독한 놈은 처음이네"

나는 드로우-인 해서
배신자실장을 뜰로 던졌다.

"테, 테치ー잇!?"

배신당한 자실장을 쪼고 있는 닭들중
한마리의 등에 튀며 땅에 떨어진다.
칼같은 제구력.
중학교 축구에서
드로우-인 전문 후보였던 만큼 자신이 있다.
닭들은 다시 모이가 던져진 걸 깨닫고
일제히 배신자실장을 봤다.

"테, 테치..."

자실장은 기다시피 도망 치려고 하지만
갑자기 그 움직임이 멈춘다.
배신자실장의 발목을
누군가가 붙잡고 있다.

"테·치이이이..."

배신당한 자실장은
무수히 부리에 유린당해
이미 밑판이 사라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희미하게 운다.
그 음성은 원한 섞인 조소로 얼룩져 있다.

"테, 테에에에에엣!?"

절망의 소리를 지르는 배신자실장을
닭들이 일제히 부리로 쪼기 시작했다.

찢기는 자실장을 보면서

"어떻게 모이의 보충을 하고 있나요?"

하고 물었다.

어찌어찌,
뒤뜰에 업무용 젤리 깡통을 이용해
장치를 마련한 것 같다.
젤리통 윗부분을 따고,
4cm정도 남기고 땅에 묻는다.
이 금속제의 함정 속에
설탕물을 좀 넣어 두면 된단다.
4cm의 높이를 넘을 수 있는 자실장이
설탕물에 꼬여 자꾸 걸리는 것이다.
높이가 있어 다른 벌레는 걸리지 않는다.
또, 성체실장이 바닥의 액체를 맛보려다간,
머리부터 넣다가 설탕물에
질식사 할 형태이다.
그래서, 생기있는 자실장만
포획할 수 있단다.

저녁은 치킨 커틀릿을 메인으로
백모 특기의 향토 요리가 측면을 굳힌 포진.
큰아버지는 맥주를 마시며
여행담을 말해 줬고
술이 별로인 난
먹는데 전념하며 큰아버지의 말을 들었다.
백모가 커틀릿과 후라이를 가져온다.

"이것도 먹어 봐"

백모가 새로운 커틀릿을 내 앞에 둔다.
10cm 정도의 커틀릿 이다.
입에 넣자 닭가슴의 연한 살 같은 맛이 난다.
더 담백하고 단아한 인상이다.

"이게 무슨 커틀릿이죠?"
"자실장~"

뿜었다.

생각 없이 얼굴이 파랗게 질진 나에게,
백모는 웃으면서 설명해 준다.
성체 실장석은 그 생활습관도 있고 해서
고기가 먹을 게 못되지만,
아직 불결할 걸 별로 먹지 않은 자실장이라면
요리하기 따라 맛있는 음식이 된단다.

"해삼도 벌새끼도 먹어 온 일본인이
새삼 실장 따위를 사양할까?
산에서 잡은건 다 산신령의 은혜야."

큰아버지는
주저하는 나를 호쾌하게 웃어 넘기며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킨다.
큰아버지의 눈앞에도 접시가 추가됐다.
노랗게 튀겨진 자실장들이
통째로 나란히 있다.

자실장 누드튀김.

큰아버지는 젓가락으로 한마리를 잡아
아무렇게나 입에 던져 넣는다.
맛있게 음미하다가
수박씨를 내는 요령으로
위석과 적록의 눈을 뱉아낸다.

"요건 못 먹겠다"

하시며 맥주를 들이킨다.
정말 맛있어 하는 기색에 끌려
한입 넣어 보았다.
머리부터 깨물면,
닭고기 비슷한 맛이 입 안에 퍼진다.
혀끝으로 신중하게 눈알과 위석을 선별해 뱉고
거듭 되새겼다.
확실히 맛있다.
가운데 정도에서 쓴맛이 섞인다.
소라 통구이 비슷한 느낌이다.
확실히 술안주에 딱 좋을 것이다.

"나쁘지 않네요."
"그렇지."

큰아버지가 맞장구친다.
나도 따라 계속 먹었다.
자실장 커틀릿은 정말 맛있다.
소스를 듬뿍 뿌려 잘게 썰어
양배추를 곁들이면
식욕이 나지 않을 수 없는 데스우

...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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