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퇴근길을 서두른다. 유미쨩의 방송은 오후 7시부터니까, 퇴근 시간에 조금만 늦어도 전반부 한참을 못 본다. 재방송이나 중계방을 통해서 보는 방법도 있지만 본방을 놓쳐서야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벌써 6시 47분이다.
"다음에 내리실 역은 상동, 상동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오른쪽 문입니다"
"꺅"
문을 열리지마자 서둘러 빠져나온다. 나오는 길에 어떤 여자 발을 밟은 것도 같지만 내 알 바 아니다. 현실의 여자 따위! 그럼 유미 쨩은 뭐냐고? 멍청한 놈, 유미쨩은 사람이 아니라 실장석이다. 인간 여자의 매력 따위, 실장석에 비할까보냐. 서둘러 개찰구를 빠져나와 집 근처를 향해 뛴다. 집과 역이 5분 거리인 점은 역시 좋다. 집 값도 싸고. 기차 소리가 좀 짜증나긴 하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집에 쌀이 떨어진 것을 떠올리고는 일단 집 앞 편의점에서 만두 한 팩과 맥주 한 캔을 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컴퓨터를 켠다 편의점에서 만두를 데우느라고 비록 3분 늦었지만 방송을 보기 시작한다.
"실장댄스부터 시작하는데스우!"
오오…. 유미쨩의 현란한… 아니 내가 아무리 유미의 팬이라고 해도 현란하다고는 곧 죽어도 말할 수 없는 둔탁하면서도 어색한 유미쨩의 실장댄스지만 너무나 사랑스럽다. 그것이 바로 매력이다. 콘페이토 포인트가 빵빵 터진다.
"시작부터 2,000알! 고마운데스우!"
[ 다카하시 ] 라는 닉네임의 시청자가 2천 콘페이토 포인트를 날린다. 22만원이다. 시작부터 조금 펀치력이 있다.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유미쨩 서포트 그룹의 지존 [ 벤틀리 ] 의 자존심이 있는데. 적립 콘페이토 포인트에서 바로 55만원어치, 5천개를 쏜다.
"데엣! 고마운데스! 5,000알! 5,000알의 과연 벤틀리 쨔마! 아리가또~한 데스우!"
곧바로 대화창에서는 "사스가 벤틀리....", "진짜 저 분 뭐하시는 분인지 궁금함", "사업하신다고 들은 듯", "금수저를 넘어 다이아수저ㅜㅜ", "저는 벤틀리 수집하신다고 들음" 하고 수근대는 시청자들의 웅성거림이 올라온다. 기분이 좋다. 나도 모르게 코가 벌름거려진다. 물론 인력소개소 막내인 내가 큰 돈이 있을 리 없다. 지금 남은 적립 포인트 95,000알, 약 950만원은 원래 지난 금요일에 재욱 아재들한테 줬어야하는 돈이다. 하지만 난 "사장님이 주말 끼었다고 다음 주 월요일에 주신대요"라고 둘러대고 쌩깠고, 오늘은 사장님이 출근 안 하는 날이라 또 재욱 아재 전화에 "사장님 오늘 병원 가셔서 내일 오셔요. 내일 드린대요" 라고 거짓말을 했다.
어차피 하루면 들킬 거짓말. 그래, 사실 내일은 내가 파멸하는 날이다. 하도 다들 나만 보면 부자 성님 갑부 성님 다이아 수저 성님 그래서 그 칭송에서 내려올 수가 없었다. 결국 돈을 구하지 못한 나는 공금에 손을 댄 것이다. 그래서 더 한 순간도 유미쨩의 방송을 놓칠 수 없다. 그녀에게 기억되고 싶다.
한참을 데승데승하며 춤을 추던 유미쨩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숨을 고르더니 대화를 이어갔다.
"데, 항상 고마운데스. 그러나 인기실장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스! 유미쨩의 순위도 벌써 6위로 밀려버린데스. 이건 콘페이토 폭탄을 터뜨리지 않는 가난뱅이 시청자들 탓인데스. 무능한 시청자들 때문에 속이 많이 상하는데스"
그렇다. 유미도 어느새 성체 실장. 아무리 귀엽다고는 해도, 자실장의 귀여움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게다가 자실장 시절부터 보아온 올드 유저라면 몰라도, 신규 유저의 눈에 유미는 그다지 예쁜 외모는 아니었다.
"이런 식이라면 틀림없이 분기별 인기실장 탑 5에는 절대 오르지 못할게 뻔한데스"
그러더니 급기야 데에엥, 데에에엥하고 울기 시작했다. 이미 일전에 성체실장의 울음 '오로로롱'을 우는 것을 본 적이 있지만 어쨌든 귀여운 애교라고 생각하고 그 우는 모습을 감상한다. 마음이 쨘해진 호구들이 10개 5개 20개 3개 4개 이렇게 소심하게 콘페이토를 날리며 유미쨩의 마음을 달래려고 하지만 그 정도로 인기 BJ(brodcast jittsou)인 유미쨩의 마음이 달래질 리 없다.
나는 단번에 1만개를 날렸다. 남은 콘페이토 85,000개. 역시 이번에도 댓글창에 "대박........", "저 분 정건희 손자이신 듯", "금수저 금수저....", "핵수저네", "와.........." 같은 말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때였다. [ 다카하시 ] 라는, 아까 그 눈에 거슬린 놈이 무려 3만개의 콘페이토 포인트를 날렸다. 화면 가득 별모양 사탕이 와르르 쏟아지는 모습에
"데에엣! 다카하시 님 짱짱 최고인데스!"
유미가 2만개 이상의 콘페이토를 받았던 것이 언제였던가. 그녀가 저토록 신이 나서 유혹의 춤을 추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나 역시 3만 콘페이토 포인트를 쐈다.
"대박"
"오늘 미쳤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미 오늘 받은 별사탕만 7만 7천개가 넘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벤틀리에 이은 다카하시 갑부 등장"
"대박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유미 지금 인기BJ 순위 3위까지 올라감ㅋㅋ"
최근...을 넘어 이미 한참 전부터 하향세를 걷기 시작한 실프리카 TV. 그런데 난데없이 그것도 인기 순위 6위권 BJ의 방에서 연달아 3만개 별사탕이 터졌으니 단번에 이슈가 되지 않을 리 없었고, 유미의 방송은 간만에 풀방은 물론 중계방들이 연이어 생겼다.
유미는 신이 나서 '실장석 LOVE'와 '아마아마 별사탕 DAISUKI', '페로CHU 실장'의 노래 3곡을 연달아 불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은 악수(惡手) 였다. 사실 유미는 원래 자실장 시절의 빼어난 외모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이지, 딱히 춤이나 노래를 잘해서 인기를 얻은 것이 아니다. 말재주도 별 대단할 것 없는 타입이고. 그래서 성체가 된 이후로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한 것인데 하필이면 신이 나서 노래를 세 곡이나 불렀으니. 모처럼 방에 들어왔던 사람들도 다시 나가가 시작했다.
"노잼이네"
"역시 퇴물 실장ㅋ"
"저런거에 3만개 쏘는 호구는 뭐냐ㅋㅋ 핵노잼"
게다가 유미의 레파토리는 언제나 똑같았다. 실장석 러브를 비롯해서 알고 있는 노래는 다섯 곡이 전부다. 아마 세레브 실장으로 훈육 받던 시절에 배운 곡이 전부일 것이다.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토록이나 돈을 잘 벌어오는 실장석이 있다면, 나라면 노래를 좀 더 가르칠텐데. 주인 녀석이 게으른 것일까. 아니면 유미가 배움을 거절하는 것일까. 어느 쪽이던 주인이 더 나빴다. 내가 주인이라면 좀 더 인기를 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텐데.
분한 마음도 잠시. [ 다카하시 ] 놈은 "노래 잘 들었어요 유미쨩(하트)" 하는 말과 함께 무려 4만 별사탕을 쐈다. 나가려던 유입 유저들은 또 다시 눈이 휘둥그래졌다. 5~6년 전이라면 몰라도 요즘 같은 때에 3만개 이상의 별사탕이 이렇게 뻥뻥 터지는 일은 지극히 드물다.
"나 별사탕 5천개 이상 쏘는거 처음 봄ㅋㅋㅋ 화면이 다 가려지는구나"
"와............"
"다카하시가 짱이네"
"다카하시! 다카하시!"
"다카하시 성님 리스펙합니다ㅜㅜ"
나도 몇 만 개나 쐈는데 어느새 나는 잊혀지고 있다. 대화창에는 다카하시만이 연호되고 유미쨩마저 "다카하시 다이스키데스!"를 외치는건 물론 심지어 캠을 향하여 "뎃츄우우우웅~"하는 아침과 유혹의 동작을 보내고 있었다.
유미쨩이 자실장 시절 첫 방송을 할 때부터 오로지 나 혼자만이 받을 수 있었던 유혹의 동작인데....
대기업 3년차 직장인으로서 잘 나가던 내가 유미의 노예를 자처하며 실프리카TV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하고, 월급은 물론 모아놓았던 적금을 깨고, 잘 타고다니던 새 차를 팔고, 은행권 신용대출을 받고, 카드 대출을 받고, 회사 대출을 받고, 제 2 금융권 돈을 한도까지 땡겨쓰고, 근무태도 불량으로 권고 사직을 당한 이후로 퇴직금을 쏟아붓고, 대출금 빵구 난 이후로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에 뒤늦게 부모님께 손을 벌려 노후자금과 집을 팔아 겨우 사채 이자 빚만 막은 이후로 절대 실프리카TV 안 보겠다고 했지만 결국 지난 달에는 아버지의 차 담보 대출을 받고.... 신용불량자가 되어 취업이 안 되는 와중에 아버지 아는 분 소개로 일하게 된 인력사무소에서 또다시 공금에 손을 대고....
그렇게까지 해서 지켜온 내 사랑, 유미의 저 동작인데...............
나는 비명에 가까운 고함을 지른 후 눈물을 훔치고는 남은 55,000개의 별사탕을 단박에 쐈다. 이제 대화창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는 엄청난 속도로 스크롤이 올라가면서 나를 빨아댔고, 유미의 인기BJ 순위도 1위로 올라섰다. 내 인생 모든 것을 건 별사탕 배팅의 결과는 대단했다. 드디어 몇 달 만에 유미가 다시 인기 BJ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유미쨩은 빵콘까지 해가며 기뻐했다. 그랬다. 유미쨩 기쁨의 빵콘. 뉴비 놈들은 뭣도 모르면서 저게 뭐냐고 혀를 차며 방을 나섰지만 올드팬들은 '유미빵콘빤쭈빵콘'을 연호해가며 기뻐했다. 유미의 빵콘은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정의 기쁨을 느꼈을 때만 나오는 그녀만의 행동이다.
팬티가 불룩해지다못해 가랑이 사이로 흘러내리는 그녀의 녹색똥에 우리 올드팬들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내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봐! 보라고! 씨발! 내가 해냈어! 내 모든 걸 바쳐서!" 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서 소리를 치르고 있던 그 순간, 등 뒤에서 또다시 빰빠바밤 하는 팡파레가 울렸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멈춰섰다.
별사탕 10만개가 터질 때 나오는 소리. 나 역시 전설의 학대파 BJ(brodcast jakey) [ 토시아키군 ] 이 자신이 애지중지 키우던 '그린'쨩의 목을 가위로 자르던 순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전설의 별사탕 10만개.
[ 다카하시 ] 였다. 대화창은 흥분의 도가니였고 역대 한 방송 최대 별사탕 실프리카 기록이 깨졌다며 난리가 났지만 나는 조용히 로그아웃을 누를 뿐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위해 투자했고 희생했는가. 누구를 위해? 당장 내일이면 나는... 우리 인력사무소 사장님의 동생은 조폭이다. 뒤늦게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건가 싶었다. 서둘러 가방을 하나 꺼내 짐을 대충 쑤셔박았다. 도망치려면 오늘 밖에 없다.
"씨발"
엄마 아빠는 어떡하지. 사장님이 우리 원래 집 주소 알텐데. 씨발. 몰라. 엄마 아빠는 나보단 그래도 더 오래 살았잖아. 씨발. 그렇게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노라는데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엄마 전화가 왔다. 그래, 차라리 엄마 아빠도 당장 어디 피신해있으라고 전화해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들려오는 소리는 섬뜩한 어느 남자의 목소리였다.
"혹시 또 몰라서 니 부모님 집에 내 사 마 먼저 들렀는데 제깍제깍 전화 받네. 하이고 뭐 효자니까 걱정 없겠네"
"누구...세요?"
"아 누구긴 누구게서. 우리 형 동생이지. 니는 우리 형님 밑에서 일하는 막내 아고. 안 그르나?"
"......왜, 왜 전화하셨어요?"
"아 빌건 아이고, 혹시 니 토낄까 배 여부터 왔제. 늬이, 돈 관리 똑바루 안했다믄서. 와 돈 천마원이 똑똑히 안 가는데?"
"아 그, 그건요..."
"됐고, 도둑질을 하건 강도를 해오건 돈 딱 마련해서 내일 사무실에 가즈다 놔라. 안 그름, 니 어머이 저 멀리 배 타고 다시는 몬 돌아오는 곳으로 가 삔다. 가믄 아지매 참 흠한 일 마이 당할기다. 아즈미가 나이 오십인데 아직 얼굴도 반반하이. 큰일난다. 알긋제? 니 애비도 발목 끊어놓고 못 도망가게 해놓고 디질 때까지 일해야 되니까네, 우리 효자는 돈 꼬옥 마련해오라이? 알긋제? 끊는다. 아! 토낄 생각은 안 하는게 좋을끼다. 튀어야 잡히고, 그때는 이래허나 저래하나 답이 없다. 알았제? 그럼 내일 아침에 보자"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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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고하셨습니다"
실프리카 TV의 알바생 이 군은 여자친구와의 데이트를 위해 먼저 인사를 하며 일어섰다. 간만의 칼퇴근이다. 게다가 계약직
직원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요?"
"어어, 암만. 야, 실프리카TV 역사상 알바생이 10만개 별사탕을 유도한 적은 처음이다 임마. 그 벤틀리인가 그 호구 새끼 니가 포인트 뿌리니까 혼자 열받아서 뻥뻥 쏘는거 봐라. 아 대박. 져주는 척 하면서 계속 자극하는건 어디서 배웠어?"
"그냥, 그럴 거 같았어요. 며칠 전부터 그 호구 하는거 봤거든요"
"어휴 요 에이스. 사장님한테는 아까 보고 올라갔어. 이번 주 회식하라더라. 아 그리고 그 니가 쓴 포인트는 다시 회수해놨지?"
"네, 아까 정산팀에 말해뒀어요"
"잘했어"
"아 근데"
"어"
"그럼 유미는 어떻게 되는거에요?"
과장님은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는 다음 달부터 걍 직스 모델로 섹TV에 처분될거라고 했는데, 글쎄 모르겠다. 10만개 포인트 터졌으니까 아마 좀 미뤄지지 않을까?"
"다행이네요"
"그래봐야 뭐 몇 달이나 버티겠냐. 그런 호구가 흔한 것도 아니고. 여튼 수고했어. 들어가봐"
"네 수고하세요"
"옹야"
이 군은 기쁜 얼굴로 회사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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