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며칠간, 마당에서 테치테치하는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며칠 동안이나 계속 들려오는건 마당에 실장석이 기어든게 확실하므로 마당을 둘러보다가, 벽
아래 방치된 낡은 화분이 눈에 띄었다.
플라스틱제의 커다란 양동이 같은 모습의 화분은 이 집에 이사왔을때 부터 방치 되어있던 것
이다.
뒤집혀 있는데다가 옆구리가 깨져 작은 구멍이 뚫려 있기에 실장석 같은게 둥지로 삼기엔 딱
이다.
"얼씨구?"
게다가 뒤집힌 화분의 천장, 원래라면 바닥 부분에 해진 비닐봉투가 씌워져 돌로 눌러져 있었
다.
확실히, 이러면 바닥의 물빠짐 구멍으로 비가 새어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골판지에 비닐을 올리는 본능대로 한 것인지 아니면 요즘 잦은 가을비를 막으려 한 것인지는
몰라도,
남의 마당에서 제법 설치고 있는것이다.
깨진 옆구리의 구멍은 땅이 약간 파여 있었다.
성체가 드나들긴 빠듯한 크기라 땅을 파서 구멍 크기를 늘린것이리라.
"응..? 이런 젠장!"
그때 문득 느껴진 악취에 주위를 둘러보자 나무덤불의 그늘에 가려진 구덩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 안을 들여다보자 질척이는 녹색 대변이 가득 차 있는게 보였다.
아마 이 둥지의 성체가 팠을 테니 그다지 깊지는 않겠지만 주변에 나와있는 흙을 보건대
30cm는 파고 들어갔을 그 구덩이가 실장석의 대변으로 가득한 것이다.
"이 자식들 남의 마당에서 무슨 짓을..!"
테이...
"...?"
내가 분노하고 있을때, 화분의 깨진 구멍에서 새끼 한마리가 기어 나왔다.
그러더니 황당하게 바라보고 있는 내 앞을 지나 아장아장 걸어 대변 구덩이로 향한다.
눈을 비비며 흐느적 거리는게 아마 자다가 변의를 느끼고 나온거라 아직 잠이 덜 깬듯하다.
-푸드드드득!
텟츄우...!
그리고 대변 구덩이 가장자리에서 누런 팬티를 내리고 앉더니 엉덩이에서 녹색 설사를 뿜어내
며 기분 좋은 듯 한 소리를 낸다.
요도가 없는 실장석의 구조 상 무조건 설사인 대변이, 내 마당에 추가 되어가는 장면에 관자
놀이가 실룩이는게 느껴졌다.
츄우우...♥ ...테?
배설이 끝났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울음소리를 낸 새끼 실장석이, 그때서야 내려다보고 있
는 날 알아차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덜떨어지는 머리로 무슨 결론을 낸 건지, 고개를 기울인 그대로 오른손을 입에다
댔다.
텟츙~
-퍽!
얼굴을 걷어찼다.
텟푸웃-!!!
걷어 차이며 뭉개진 입에서 적록색 액체를 분수처럼 뿜어낸 얼굴에 떠오른 의문과 놀라움, 고
통과 공포가 가득한 표정은 곧바로 아래로 사라졌다.
-철썩
테챠아아아! 테치이이이!
워낙 대변이 가득해 걷어차여 떨어졌어도 어디가 부러지진 않은 새끼 실장석은 온몸에 묻은
대변을 보고 비명을 질렀지만, 곧 그 표정은 당혹감으로 바뀌었다.
치이! 테챠아아아!
15cm도 안 되는 새끼에겐 발이 안 닿는 대변의 늪에 점점 삼켜져 가는것이다.
순식간에 허리까지 잠겨 필사적으로 흙 벽을 긁어대던 새끼 실장석의 동그란 눈동자가, 내 눈
과 마주쳤다.
테... 테츄우우~
방금 차인것도 잊었는지, 어서 귀여운 자신을 구해달라는 듯 입에 손을 대고 아첨을 떠는 새
끼 실장석.
"......."
그 모습은 아무말 없이 내려다보는 내 발 아래서 빠르게 대변의 바다에 삼켜져 간다.
테... 테... 테치아아아 게보게복!!!
이 생명의 위기에서 구해줄 유일한 존재에게 '와타시의 귀여움' 을 어필하는것 말곤 할 수 있
는게 없는 채 눈물과 땀을 질질 흘리며 아첨의 자세를 유지하고 가라않던 새끼는, 목까지 잠
기는 순간에야 아첨의 자세를 풀고 버둥거렸지만 그 순간 입에 가득 들어찬 대변을 들이마시
며 완전히 잠겨버렸다.
녹색 대변의 늪이, 잠시동안 계속 꿈틀대고 있다가, 한참 뒤에야 커다란 공기방울이 하나 올
라와 터질때까지 나는 그 광경을 그저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잠시뒤.
대변구덩이의 일렁임이 완전히 멎자 나는 구덩이를 떠나 화분을 들어올렸다.
테... 테...
테치...
레치이...
"씁...!"
화분의 안엔 화분 모양 그대로 동그랗게 낙엽이 가득쌓여있었고, 낙엽에 파묻히듯이 몸을 둥
글게 말고 서로 달라붙어서 자고 있는 새끼 실장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변구덩이에 떨어진 자매의 울음소리에도 깨지 않은것같다.
평범한 새끼가 셋.
그보다 훨씬 작은 새끼가 하나에 벌레모양을 한게 둘.
늦가을인 지금 실장석이란 것 들은 모두 월동준비에 혈안이 되어 있을 시기이다. 이 시기엔
새끼를 낳지 않거나 낳은 새끼는 월동준비에 없는것 보단 나은 노동력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게 보통.
그러나 크기를 보니 가을에 낳은 새끼인데도 월동준비를 도우려 끌려 나가지 않고 화분속에서
자고 있다.
가을에 낳은 새끼를 둥지에 재운채 나간 성체.
아마도 이번 봄에 성체가 된 들실장일 것이다.
갓 성체가 되어 처음으로 새끼를 낳은 실장석은 새끼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인다고 한다. 그리
고 무슨 일이 있어 봄에 새끼를 못 낳으면 여름이고 가을이고 새끼를 가지려해서 자멸에 이른
다.
내 마당에 기어든 놈도 월동준비로 아비규환인 공원에서 버틸수도, 그렇다고 새끼를 버리지도
못 하고 공원을 떠났을 것이다.
"........"
나는 조용히 화분을 원래대로 덮고는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저녁
원래 마당엔 신경을 안 썼지만 오늘은 2층 창가에 기대 담배를 피우면서 마당의 화분을 내려
다보고 있었다.
잠시뒤, 벽의 배수구에서 성체 실장석이 고개를 내미는게 보였다.
"저런데서 드나들고 있었나..."
주위를 살피지만 2층의 창에 있는 날 눈치채지 못하고 기어나온 그 실장석은 손에 썩은 감자
하나를 들고 있었다.
해질녘까지 나가있다가 구해오는게 겨우 저것뿐이다.
역시 이번 해에 성체가 되어 아직 생활력이 떨어지는 개체같다.
그런 주제에 곧 겨울이 다가올 늦가을에 새끼를 낳고 구더기조차 솎아내지 않았다.
봄부터 자란 새끼는 월동준비에 손을 보탤수 있지만 가을에 태어나 아직 자라지 않은 저 새끼
들은 성체가 먹을걸 가져오기 전 까진 대부분 자면서 보낼 뿐이다.
'들어온게 내 마당이 아니었으면' 겨울을 넘기지 못 했을 것이다.
잠시뒤, 화분에 들어갔다가 당황해서 허둥지둥 기어나온 성체가 주변을 뛰어다니는걸 보며,
나는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데스....? 데스우우... 데스우우...
여기가 인간의 구역이라는건 아는듯 조심스럽게 작은소리로 없어진 새끼를 부르던 성체는 코
를 킁킁대며 대변구덩이로 향하기 시작했다.
데...
구덩이에 도착한 성체는, 계속 주위의 냄새를 맡다가 구덩이를 들여다 봤다.
데... 데...
물론 대변의 바닥에 가라않은 새끼가 보일리는 없겠지만 코를 찌르는 대변의 냄새 속에서도
자기 새끼의 냄새는 구분이 가는지 성체는 부들부들 떨며 구덩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데스우우! 데스! 데스! 데스으으으으-!!!
그러다가 소리를 죽이는것도 잊은채,
가장자리에 엎드려서 대변 구덩이 아래를 향해 울부짖기 시작했다.
데스우우우!!! 데스우우우-!!!
물론, 대변도 그 아래에 죽어 있는 새끼도,
대답을 할 리가 없다.
테이...?
테치이?
성체의 통곡소리에 겨우 일어난건지 화분 안에서 나머지 새끼들이 하나씩 기어 나오더니, 울
고 있는 성체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역시 예상대로, 성체는 새끼 한마리가 발을 헛디뎌 대변 구덩이로 떨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새끼들을 모아놓고 구덩이를 가리키며 데스데스 뭔가를 열심히 말 하곤 손을 흔들며 배수구로
기어 나갔다.
남겨진 새끼들은 잠시 마당을 돌아다녔지만 곧 모두 화분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심심풀이는 되겠군..."
나는, 준비해 뒀던 스프레이와 삽을 들고 일어났다.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건, 녀석들의 둥지의 형태와 일기예보를 보고 생각해낸 그저 심심풀이
다.
테치!
레....
그러나, 마당으로 나서려던 순간 새끼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화분의 깨진 곳 에서 꾸물거
리는 초록색 물체들이 보였다.
"음..."
지금 내 마당에 둥지를 튼 저 녀석 들에게 내 모습을 보이면 재미가 없어진다.
당분간 녀석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사고거나 전혀 영문을 알 수 없는 일 이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몸을 숨기자, 깨진 부분에서 새끼 한마리가 나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테
치테치 울자 작은 새끼가 벌레모습의 새끼를 안고 나왔다.
레후웅~
레치이...
그러더니 자매의 시체가 가라앉아 있을 구덩이 가장자리에서 조그만 새끼가 쭈그려 앉아 대변
을 보는 동안 보통 크기의 새끼는 벌레를 대변 구덩이 위로 들어올려 대변을 볼 동안 안전하
게 들고 있었다.
이렇게 모여서 대변을 보러 가는건 아마 어제의 사고로 새끼 한 마리를 잃은 어미가 가르친것
같다.
내가 지켜보는 동안 배설을 마친 새끼들은 화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벌레를 보통 크기의
새끼에게 맡긴 작은 새끼가 따로 떨어져 나와 레치레치 거리며 마당에 있는 큰 나무로 향했
다.
다른 새끼들이 둥지인 화분 속으로 기어들어간걸 보고 조용히 걸어 나오자, 작은 새끼는 마당
의 나무 아래에 떨어진 열매에 달라붙어 갉아먹고 있었다.
마당의 큰 나무는, 감나무다.
아직 익을때가 아니라 단단하고 초록색이긴 해도 꽤 커진 감 몇 개가 바닥에 떨어져 있어서
새끼가 그걸 먹고 있는것이다.
레작레작레작...
하지만 자기 몸 크기와 비슷한 감 열매를 끌어안듯이 양팔로 붙잡고 열심히 갉아대도 약한 이
빨과 턱 힘으론 갉작대는게 전부다.
게다가 덜 익은 감은 단맛은 커녕 쓰고 아린 맛이 날게 뻔해 간신히 입에 들어온 껍질과 약간
의 과육을 쩝쩝대는 새끼의 표정은 찡그려져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런거라도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다.
어미는 오늘도 변변한 쓰레기조차 가져오지 못할것이다.
기껏해야 다른 녀석들이 헤집고 남은 과일껍질 혹은 실장석조차 손 대기 싫어할 정도로 심하
게 부패된 음식 쓰레기 정도일게 뻔한 상황에서 먹을 수 있는건 모든지 먹어둬야 한다.
아마 공원에서도 어미가 없는 사이에 풀이라도 뜯어먹고 있었을 것이다.
-툭
레츗?!
그때 새끼에게서 좀 떨어진곳에 감 하나가 떨어지며 둔한 소리를 울렸다.
인간의 입장에선 감이 떨어졌을 뿐 이지만 새끼는 벌어진 입에서 감 조각을 튀기며 깜짝 놀랐
다.
"......"
그 모습을 본 나는 어떤 생각을 떠 올리고는 삽을 내려놨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가도 별일이 없자 다시 덜 익은 감에 달라붙는 작은 새끼의 등 뒤로 다가
갔다.
레...!
떫은 감이나마 먹는데 열중해 갑자기 드리워진 그림자를 늦게 알아차린 새끼가 머리털이 곤두
서는게 보일 정도로 놀라며 돌아 보는 순간, 발 끝으로 가볍게 새끼 실장석의 머리를 밀었다.
레칫!! 레...
그러자 너무나 쉽게 벌렁 자빠진 새끼의 머리에 발 뒤꿈치를 올리자, 새끼의 비명은 신발 밑
창에 막혀 들리지 않았다.
...!! ...!
-탁탁탁
-우직
얼굴 자체가 짓눌려 아무런 소리도 못 내고, 내 신발을 양 손을 버둥거리며 필사적으로 탁탁
두들겨 밀어내려던 새끼의 두개골은, 무게를 가볍게 싣는것 만으로 허무하게 부서져 납작해졌
다.
그리고 발을 치우고, 아까 떨어진 초록색 감을 집어 아직 팔다리를 파들거리며 경련하는 새끼
의 납작해진 머리 부분에 올려 놓는걸로 마무리.
생각난 김에 해 본 장난을 끝낸 나는 다시 삽을 들었다.
그리고, 화분에 다가가 깨진 틈으로 스프레이 노즐을 밀어넣고 버튼을 눌렀다.
-치이이이이익
그리고 해가 저물어 간다.
어제와 똑같이, 2층 창가에서 담배를 빼문 내가 세대 정도를 태우자, 어미가 돌아왔다.
데스우... 데?! 데에?!
그리고 배수구에서 기어 나오자마자 마당에 떠도는 아이의 피냄새, 를 알아차리고 손에 든 살
이라곤 전혀 안 남은 닭다리 뼈를 툭 떨어트리더니 당황해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
다.
데! 데스우! 데스우우우-!!!
이 영역의 인간, 내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은걸로 경계심이 희미해졌는지 아니면 그것도 잊
을 정도로 불길한 예상에 사로잡힌 것인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듯 울음소리를 내며 뛰어 다
니던 어미의 발이 감나무 아래서 우뚝 멈췄다.
데... 데스우...?
감나무 아래 누워있는 작은 아이의 몸.
어미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조심스럽게 아이의 몸을 흔들었다.
데스우... 데스우..?
자고 있는 아이를 깨우려는 듯 흔들던 어미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아이의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에 놓여 있는 감을 쳐다보다 황급히 고개를 흔들며 시선을 돌리기를 몇번이나 반복한 끝
에,
데... 데....
떨리는 손을 내밀어, 감을 밀어냈다.
-데굴
데.....
성체는 쉽게 굴릴 수 있지만 작은 새끼는 나무아래에 있다가 맞아 죽을 수 있는 크기의 감이
굴러가고 드러난,
아이의 납작해져 내용물이 흘러나온 머리통
을 본 어미의 눈동자의 흔들림이 멍하니 멎었다.
데...데... 데아아아아아?! 데스우우우! 데스우우우!
멍해졌던 눈이 튀어나올듯이 절규하며 드러누워 있는 새끼의 몸을 흔드는 어미 실장석.
그래봤자 어제와 마찬가지로, 대답이 있을리가 없다.
데갸아아악-!!! 데스우우우우우우!!!
어제는 대변 구덩이에서 발을 헛디디고.
오늘은 나무 아래에 있다가 머리가 부숴졌다.
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 상황에, 연달아 사고로 아이를 잃은 어미 실장석이 몸부림을 치며 통
곡하는게 울려퍼지는 걸 들으며 나는 입가를 살짝 들어 올렸다.
어제하고 달리, 어미의 통곡소리에 반응 한 둥지의 새끼들은 화분 바깥으로 나오지 않고 있
다.
단지 화분 안에서 테치테치 하는 아이들의 불안한 듯 한 울음소리가 들릴 뿐 이란 걸 한참 뒤
에야 겨우 눈치챈 어미는, 죽은 아이의 곁을 떠나 급히 화분의 깨진 틈으로 기어들어가려했
다.
데?! 데데데-!!!
그러나 기어 들어가던 어미의 몸이 기우뚱 거리더니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며 뒤로 기어 나오는
게 보였다.
내가 화분 틈에 내뿜은건 넴리 스프레이였다.
스프레이를 듬뿍 내뿜은 후, 화분을 들어 올리자 어제처럼 낙엽에 기어들어 자고있는 새끼들
이 보였다.
그 수는 한 마리가 방금 또 줄어 보통크기의 새끼 셋에 벌레가 두마리.
낙엽이 젖을 정도로 뿜어진 스프레이를 자는 동안 들이마셔서,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잠에 빠
져있다.
그러나 몸통이 작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걸 보면 살아있는게 확실한 그 녀석들을 집어 옆에 내
려놓은 나는 낙엽도 모두 치웠다.
그리고 흙바닥에 남은 자국대로, 화분 보다 좀 작게 구덩이를 파기 시작했었다.
그 깊이는 40cm정도. 성체의 키보다 깊다.
구덩이를 다 파고는, 깊어진 바닥에 낙엽을 다시 깔고 새끼들을 넣고는 화분을 덮어놨다.
겉으로 보기엔 변한게 없지만, 기어 들어가려던 어미는 깊은 구덩이의 허공에 손을 디디곤 허
우적대며 떨어질 뻔 하다가 겨우 돌아나온 것 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나는 다시 입가를 살짝 들어올렸다.
어미가 지금 굴러떨어졌어도 앞으로의 계획엔 상관없지만 바깥에 남은 쪽이 더 재미있어질것
이다.
영문을 모를 일에 당황한 어미가 화분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다니는 걸 보던 나는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올려다 봤다.
일기예보에서 말 한 대로, 내일부터 차가운 늦가을 비를 쏟아낼 검은 먹구름들이 지평선에서
몰려오고 있었다.
그 구름을 확인하고, 집 안으로 돌아 오던 내 눈에 책상 위에 세워진 작은 액자가 들어왔다.
젊은 여성이 갓난아이를 안고 밝게 웃고 있는, 약간 색이 바랜 사진이 든 액자.
"......."
-탁
액자를 엎어 놓는 메마른 소리가, 텅 빈 집안에 울렸다.
-쏴아아아아아
늦가을의 비가 내린다.
꽤나 쌀쌀해진 날씨에 내리는 비는 매우 차가워서 창가에 얹고 있는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
다.
데에... 데쟈아아아아! 데데데.... 데에...
그 늦가을비의 한 가운데.
거대한 물 웅덩이가 된 마당의 구석에서 실장석의 소리가 들려온다.
가끔씩 매서운 바람이 불어 올 때마다 그 소리, 추위에 덜덜 떠는 친실장의 울음소리가 비명
같은 절규로 바뀐다.
어미 실장석은, 자신의 몸으로 화분이 깨진곳을 틀어막고 있는것이다.
데데데... 데데데...
늦가을, 혹은 이미 초겨울의 빗방울이 고인 웅덩이는 살얼음이 언 듯 한 착각이 들 정도로 차
가울것이다.
그런곳에 웅크리고 있는 어미의 몸은 바닥의 물과 쏟아지는 빗줄기에 흠뻑 젖어 엄청나게 덜
덜 떨고 있는게 멀리서도 확실히 보일 정도.
그 와중에 휘몰아치는 바람은 비명을 지를 정도로 뼛속까지 시려와 가차없이 체온과 체력을
뺏어간다.
주말인 오늘 아침에 일어나자 하늘을 먹구름이 가득 덮고 있었다.
창문을 내다보자, 마침 어제 가져온 닭뼈를 화분의 아래에 있는 새끼들에게 떨어트려 준 어미
가 불안한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현재의 상황에서 미래를 예상할 정도의 지능은 있는것인지 구덩이에 갇힌 새끼들이 있는 화분
과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한 하늘을 바라다보고 있는것이다.
데스... 데스...
그런 어미의 걱정대로, 오후가 되자 이미 어두워진 하늘에서, 한두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데! 데스!
주위의 땅에 점점 빠르게 수가 늘어나는 검은 동그라미들을 보며 당황한 어미는, 사방을 두리
번거리다 화분 위에 씌운 비닐을 열심히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비닐을 끌어내려 화분의 깨진 틈도 막으려 했지만 비닐은 그 정도로 넓지 않다.
-찌직
데!! 데스?! 데스우?!
오히려 해진 비닐이 당겨지자 손쉽게 찢어져 버리는걸 본 어미는 놀라서 찢어진 비닐을 원래
대로 덮으려 했지만 이미 원래대로 돌아가지도 않고 화분 위엔 낡은 비닐 자투리들이 바람에
펄럭이게 됐을 뿐 이다.
데스우우....
-툭 투둑
데에에?!
-쏴아아아아아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어미 실장석의 녹색 두건 위로, 본격적으로 차가운 가을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되서 지금의 상황이 된 것이다.
비가 들이치기 시작하자, 어쩔줄 모르고 사방을 뛰어다니던 어미는, 구덩이 속으로 빗물이 흘
러들어가는걸 눈치채는게 늦었다.
그러다가, 머리 위로 올려다 보이는 깨진 틈에서 조금씩 흘러 들어오다 비가 거세지며 폭포처
럼 쏟아 들어오는 물이 들이차기 시작하자 구덩이 속의 새끼들이 지른 비명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결국 방법을 찾지못한 어미 실장석은, 입구에 웅크려 자신의 몸으로 물을 막고 있는것
이다.
물이 얼마나 찼는지는 모르지만 가끔씩 어미가 틈새로 머리를 들이밀어 내려다보다가 다시 웅
크리는걸 보면 새끼들이 전부 익사는 하지 않은것 같다.
"......."
예상한 대로다.
어제 어미가 같이 떨어졌으면 밤새도록 기어올라가려 발버둥치다가 구덩이에 들이찰 빗물에
새끼와 같이 익사.
떨어지지 않았으니 몸으로 깨진 틈을 막겠지만 이 추운 날씨에 계속 비를 맞으면서 동사하는
건 확실하다.
비가 그친다음에 화분을 치우면, 역시 동사했거나 익사한 새끼들의 불은 시체가 둥둥 떠 있을
것이다.
데스우우....
-덜컥
또다시 불어온 바람에 어미 실장석이 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은 창문이 닫히며 들리지 않게
되었다.
-타다다다다닥
집 안에서 식사를 하고, 주식을 체크하며 시간을 보내는 내내 빗방울이 창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시계를 올려다 보자 어느새 열한시가 넘어있었다.
"........"
나는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쇼파에 기대있었다.
그리고, 어제 뒤집은 액자를 문득 들어서 응시하다가 아직 비를 맞고 있을 어미 실장과 빗물
이 들이차고 있을 구덩이 안의 새끼들을 떠올렸다.
"........"
-쏴아아아아악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서자 어둠속에서 거울처럼 가로등의 빛을 반사하는 물웅덩이가 일렁이
고 있었다.
우산을 든 채 손전등을 키자 빗속을 뚫고 뻗어나간 한 줄기의 빛이 화분 앞에 웅크리고 있는
작은 녹색 물체를 비췄다.
만약 죽어있었으면 끝이지만, 그 녹색 물체는 조금씩 경련하고 있었다.
"살아있었나..."
데...스.....
그 녹색 물체, 목덜미를 잡고 들어올리자 희미하게 소리를 낸 어미 실장석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대로 어미 실장을 들고온 비닐봉투에 넣자 마개가 사라진 틈새로 빗물이 쏟아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퉁
테치....?
화분을 발로 차 치우자 아예 가장자리 전부로 싱크홀 처럼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 구덩이 안에
있던 새끼가 머리위에서 갑자기 들이치는 빗줄기와 눈부신 빛에 눈을 찡그리며 힘없이 고개를
드는게 보였다.
구덩이 안엔 새끼들의 허리위까지 물이 차 있었다. 지금 빠른속도로 물이 쏟아져 들어가는걸
생각하면 생각보단 덜 침수되고 있던 것이다.
순식간에 가슴까지 차오르는 빗물엔, 새끼 한 마리가 엎드린채 닭뼈와 함께 둥둥 떠있었다.
다른 새끼 두마리는 각자 벌레모습의 새끼를 한 마리씩 안고있었지만, 그 중 한마리는 이미
눈이 하얗게 변한채 차갑게 오그라들어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일단 살아있는 벌레를 안은 새끼를 들어올렸다.
테... 테치...
역광이라 올려다봐도 눈을 찌르는듯한 빛과 얼굴을 두들기는 거센 빗줄기에 아무것도 안 보일
터인 새끼는, 갑자기 빛과 비를 막으며 그림자를 드리우는 내 손에 놀랐지만 도망칠 힘도 없
는지 작게 울고는 벌레를 꼭 끌어안은채 달랑 들려 올라왔다.
다른 새끼도 잡아 봉투에 넣은 나는, 발을 돌려 집안으로 향했다.
남겨진 구덩이엔, 이미 거의 다 차오른 빗물 속을 죽은 새끼와 벌레모습의 새끼만이 떠돌고
있었다.
데스우...?
들고온 실장석들을 열대어를 키우던 수조에 넣고 잠시 지나자, 따듯한 집안의 공기에 떨림이
멈춰있던 어미 실장석이 부스스 일어났다.
데스..? 데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그 적색과 녹색의 눈동자가 유리 너머로 집안의 모습을 둘러보다가 수조
바닥에 펼쳐진 낡은 수건 위에서 기절하듯 탈진한 새끼 두마리에게 향했다.
데! 데스! 데스!
황급히 양팔에 새끼들을 껴안고 그 몸이 따듯한것에 안도한 어미 실장석이, 그제서야 내려다
보던 나의 존재를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데...데스...?
그 눈동자에 담긴 혼란과 의문.
그리고 안도와 구원자를 보는 시선을 느끼며 나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벽에 장식으로 걸린 하얀색 베네치아 사육제 가면의, 어두운 집안에서 섬뜩하게 보이는 새빨
간 입가처럼.
-투두두두둑
데스...
마당의 방치된 화분에 기어든 실장석들을 집 안으로 들여온 다음날.
기세가 줄긴 했어도 아직 내리고 있는 비에 완전히 물바다가 된 마당을 내다보던 어미가 또다
시 중얼거리듯 울음소리를 냈다.
어제 저녁에 정신을 차린 후 새끼 두마리를 허겁지겁 끌어 안았던 어미 실장석은 그 후 두리
번거리다가 비명을 지르며 현관으로 달려갔었다.
데! 데데! 데쟈아아아아!
눈에 핏발을 세우고 문을 두들기는 어미를, 나는 그저 내버려뒀다.
데쟈아아아! 데스! 데슷!
몇번이고 내쪽을 돌아보며 문을 두들기던 어미는 내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문과 날 번
갈아 보다가 결국 우유 투입구를 찾아서 기어나갔다.
테치?
테? 테테에에!
갑자기 어미가 사라지자 새끼들도 울면서 따라가려 했지만, 우유투입구를 들어올리지 못하고
발을 구르며 그 앞을 맴돌 뿐 이었다.
"........"
슬슬 시끄러운 소리에 짜증이 나서 적당히 식빵 가장자리를 던져주자, 주저앉아 울던 새끼들
의 적록색 눈동자 네개가 일제히 식빵? 가장자리에 고정됐다.
테? 테츄?
테츄웃!
그리고 방금까지 어미를 찾아 울던것도 잊은채, 허겁지겁 식빵을 끌어안고 우물우물거리는 새
끼 실장석들을 보며,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결국 이런 정도의 놈들이다.
내가 눈앞에서 어미의 목을 비틀면 저 작은 뇌속은 2등분 되어 공포와, 새로운 보호자라는 두
개의 단어만 가득해질 것이다.
그리고 그 앞에 식빵을 던져줬을때의 반응은 지금과 별 차이도 없을것이다.
문든 마당을 내다보자 비가 내리는 물웅덩이를 헤치고 걷는 어미가 보였다.
역시 두고 온 새끼들을 찾으려는건지 어미는 비에 흠뻑 젖어가며 넘어진 화분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발에 차여 날아갔던 빈 화분은 원래 녀석들의 둥지와는 좀 떨어진 곳에 있었다.
빗소리와 창에 가로막혀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쓰러진 화분을 들여다본 어미가 당황해서
주위를 두리번 거리는게 보였다.
화분이 둥지니까 화분안에 무조건 새끼들이 있을거라 생각한건지, 아니면 남겨진 새끼들이 비
를 피해 쓰러진 화분에 들어갔을거라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고 상관도 없지만 어미는 빗속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차피 어미가 애타게 찾아봤자, 구덩이 안에서 저체온으로 죽은 새끼와 벌레는 지금쯤 끝까
지 물이 차오른 구덩이에서 흘러나와 어디론가 떠내려갔을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미의 모습이 사라졌다.
원래 둥지가 있던자리, 물로 가득찬 구덩이에 발을 디뎌 빠져버린것이다.
"......"
창가에 턱을 괴고 가만히 쳐다보는 동안 첨벙첨벙거리며 허우적대는 어미의 머리가 물 밖으로
내밀어졌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그러다가 몇분이 지나서야 겨우 가장자리에 걸쳐진 어미가 기어나와 바닥에서 둥글게 몸을 웅
크리더 떠는게 보였다.
그런 추한 신파극을 찍으며 빗속에서 울던 어미가 다시 기어들어 왔을때, 새끼들은 이미 배가
볼록하고 입에 식빵부스러기를 가득 묻힌채 수조 안에서 타올을 말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었다.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내 어미는 창에 달라붙어있다.
자신의 주위에 없는 세끼 세마리가 아직 바깥에서 비를 맞으며 떨고 있을것이라 생각하는것같
다.
데스! 데스!
어미 실장석이 다시 내 바지를 잡아당겼다. 아침부터 몇 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행동이다.
데스! 데스!
새끼를 구하러 같이 가자는것이다.
"......"
테치?
데?
나는 어미를 무시하고 티슈곽에서 뽑아낸 티슈를 찢어 사방에 흐트러트리며 놀던 새끼 한마리
를 잡았다.
어미가 계속 안달복달하며 걱정을 하는 걸 보면서도 따듯한 공간과 맛있는먹을거리에 그저 좋
아하고 있었던 새끼.
보호자, 구원자의 손에 들린 새끼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어미.
나는 그 멍청해 보이는 눈과 헤벌려진 입을 내려다 보고는,
손을 힘껏 움켜쥐었다.
-우지지직
테치아아아아-!!!
데에에에...?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손가락 사이로 비어져나오는 적록색 액체들을
뒤집어쓴 어미 실장석의 머리 위로 새끼의 다리사이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녹색 대변이
철썩 달라붙었다.
데에에에에?!
갑작스런 상황에 멍하니 있던 어미 실장석이, 눈이 튀어나올 듯 한 표정으로 절규했다.
-철푸덕
데! 데스! 데스우우우!!!
바닥에 떨어져 꺾인 팔다리를 기괴하게 꿈틀대는 새끼를 안아들고 애타게 소리치는 어미 실장
석을 좀 떨어져있던 다른 새끼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그 새끼에게 손을 뻗자 안고 있던 새끼를 내려놓은 어미가 달려와 양팔을 벌리고 막아섰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뻗어가는 내 손을 보고 사색이 된 어미 실장석이 달려들어 내 손을
붙잡고 이빨을 드러내며 물려고 한 순간.
-딱!
데헤벡!
물려던 손가락을 그대로 말아서 튕기자 영거리에서 주둥이에 데코핀을 맞은 어미 실장석의 이
빨이 거의 다 부려져나가며 입에서 적록색 피를 철철흘렸다.
헤베에!
바람이 새는 소리가 섞인 울음소리를 내는 어미를 내버려두고 새끼를 잡았다.
테... 테츄우~
손아귀에 몸통을 꽉 움켜쥐인채 위기를 느낀것인지 새끼는 아첨하더니 그 자세 그대로 가만히
굳어져 식은땀을 흘리며 인간의 반응을 기다렸다.
첫날에 대변구덩이에 가라않던 새끼와 완전히 똑같은 반응이다.
-또독
테에에에!!
그 입가에 가져다 댄 팔을, 등 뒤로 꺾어 부러트려버렸다.
뼈와 근육이 있을텐데도 너무나 쉽게 부러진 팔을 축 늘어트린 새끼가 발버둥치는 감촉이 손
바닥 가득히 느껴져온다.
테치이이이이이!
그리고 검지로 머리를 누른채 천천히 손에 힘을 넣자 짓눌려가는 새끼의 발버둥이 심해져갔
다.
새하얗게 짓눌린 몸통과 달리 팔다리와 얼굴에 붉게 피가 몰리던 새끼는 마침내 입에서 적록
색 액체를 왈칵 뿜어냈다.
테부에에엑!!!
입뿐만 아니라 아까부터 묵직한 팡콘 덩어리를 대롱거리던 다리 사이에서도 내장같은게 비어
져나온 새끼의 징그러운 모습은, 학대심이 아니라 불쾌감만을 준다.
데...데샤아아아아!
새끼들을 끌어 당기며 이제서야 나에게 원망과 분노, 의문과 당혹감이 섞인 위협을 하는 어미
의 위에, 수조를 거칠게 엎어씌워버렸다.
-쿵!
데데데!
거꾸로 뒤집힌 수조에 있던 타올과 남은 식빵, 그리고 화장실로 둔 일회용 접시가 실장석들의
머리위로 쏟아져 대변 범벅이 되자 어미 실장석이 비명을 지르며 묻은 대변을 마구 털어낸다.
마당에 대변 구덩이를 판 걸 보면 화장실에 대한 개념은 있는 개체니 대변은 더럽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을것이다.
거기서 난 처음으로 어미 실장석에게 말을 했다.
"어차피 내일로 끝이다. 대변 좀 뭍었다고 신경 쓸 필요없어."
데스우?!
내 말을 알아들은 어미실장석의 얼굴에 경악이 떠오르더니 온몸이 으깨진채 질기게 숨만 붙어
할딱이고 있는 새끼 두마리를 돌아봤다.
데스... 데스우..?
린갈같은건 가지고 있지 않지만, 태도로 충분히 전해진다.
상냥히 자신들을 저 빗속에서 구해주고 길러주던 인간의 표변에, 그저 의문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리라.
"......."
나는 대답을 하지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데... 데스우우우....!
방문을 닫기 전에, 어미의 비통한 통곡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비는 이미 그쳐 있었다.
나는 액자를 만지작 거리다가, 일어섰다.
데... 데에에...
마루로 나가자 뒤집힌 수조에 갇힌 어미 실장석이 더러워진 아크릴 너머로 나를 바라봤다.
그 품엔, 아직까지 이리저리 뒤틀려 있지만 밤새도록 조금씩 재생한 새끼들이 멍하니 안겨있
었다.
데! 데쟈아아! 데샤아아아!
수조로 다가가자 움찔한 어미가 새끼들을 끌어안고 등을 돌리곤 고개만을 나를 향해 힘껏 위
협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 눈엔 적의와 공포뿐.
수조를 다시 뒤집은 나는 걸레를 꺼내 바닥의 대변과 눅눅해진 식빵을 감싸서 그대로 수조에
넣고는 어미의 품에서 새끼들을 뺏었다.
데스! 데스으으!
더이상 구원자도 보호자도 아닌 인간에게 새끼들을 뺏기자 발을 동동 구르며 절규하는 어미의
눈 앞에서, 새끼들을 수조에 떨어트렸다.
테지...
그다지 높은 위치도 아니고, 걸레위에 떨어진 새끼들은 다치진 않고 그저 걸레 위에서 조금
꿈틀대며 희미하게 울음소릴 내고 있었다.
그대로 수조를 들고 바깥으로 나서자, 비가 그친 마당에선 거의 물이 빠져있었다.
데스! 데샤아!
짧은 다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여 쫓아오다 넘어지다를 반복해 너덜너덜해진 어미 실장석이 간
신히 나를 따라잡은곳은 물이 반쯤 찬 구덩이의 앞.
이 녀석들의 둥지였던 화분이 있던 곳이다.
데스우우우!
새끼들 내놓으라는듯 네발로 엎드려 침을 튀기며 위협을 하는 어미 실장석의 앞에서,
-첨벙!
데... 데스우우우?!
나는 수조를 구덩이 안으로 던져버렸다.
그다지 큰 수조가 아니라 간신히 구덩이 위로 나오지 않는 수조는 옆으로 쓰러져 순식간에 물
이 들어차 걸레와 새끼들이 휩쓸렸다.
테....
테쥬...!
한 마리는 희미한 울음소리를 내고 바로 흙탕물에 잠겨버렸지만, 다른 한마리는 몸이 물에 잠
겨가자 필사적으로 걸레위로 기어갔다.
"......"
삽을 가져오는 동안 어미가 할 수 있던 일은, 구덩이 가장자리에 엎드려 새끼에게 소리치는
것 뿐.
질척한 진흙이 된 마당의 흙을 퍼서 던져넣자 투둑하는 소리와 함께 수조에 진흙이 쌓여간다.
데스우우! 데스우우우!
이 행동의 결과를 예상 할 수 있는지 어미 실장석은 반 광란이 되어 내 바지를 잡아당기거나
흙을 푸는 삽을 잡아 멈추려 했지만 바지를 잡은채 진흙바닥에 질질 끌려다니거나 삽날에 달
라붙었다 떨어져 그때마다 팔이나 다리 하나씩이 이상한 방향으로 꺾일뿐.
테...치...
마침내, 새끼의 울음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리곤 수조가 전부 덮이자 어미는 털썩 주저앉았다.
데...데스우우...
구덩이를 마저 메꾼 나는 집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뒤 나와서, 아직 그 자리에서 울고 있는
어미 실장석을 봉투에 집어 넣었다.
잠시뒤.
데...
어미 실장석은, 공원 구석의 수풀에 내가 놓은 골판지를 멍하니 올려다 보고 있었다.
돌변해 새끼들을 죽인 인간에게서 주어진 타올과 식빵, 페트병이 든 커다란 골판지 하우스.
나를 올려다보던 어미가, 이제 새끼는 한마리도 없으니 어미도 아닌 실장석이 조심스럽게 골
판지 안에 머리를 디밀고 안을 들여다 보는 걸 보며 나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후우우..."
한모금을 깊게 들이마셨다 내뿜은 뒤,
"어이."
데?
-치이이익!
데캬아아아아아아-!!!
돌아본 실장석의 초록색 눈을, 담배불로 지져버렸다.
데! 데! 데아아아아!
그리고, 눈을 감싸쥐고 바닥을 구르는 실장석을 발로 골판지 안에 밀어넣고는 공원을 떠나 집
으로 돌아갔다.
어릴때는, 실장석을 질투했었다.
어릴 적에 가정 폭력과 불화로 집을 나가버리신 어머니.
그것을 빌미로 나에게 폭력과 폭언 외에는 신경을 쓰시지 않았던 아버지.
학교의 운동회날, 부모와 도시락을 먹는 친구들과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나는 혼자 사온 도시
락을 먹었다.
그리고, 그 운동장 구석에서 실장석 가족을 봤다.
학교는 아이들이 많고 위생을 신경써야하기 때문에 실장석은 바로바로 수위 아저씨들이 잡아
죽여 둥지를 튼 개체는 없지만 운동회의 떠들썩함과 먹을거리가 넘쳐나자 이끌려 온 듯한 그
가족은, 어미가 주워온 흙투성이의 튀김 하나를 두고 모여앉아 있었다.
테치! 테츄우!
테치이~
데스? 데스데스우~
비록 땅에 떨어진 반찬을 집어와 먹는 광경이지만 어미와 새끼의 행복해보이는 그 광경에,
어린 나는 울면서 그 가족을 전부 밟아 죽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서는 마음의 고통도 덜해졌지만, 실장석이란 존재에겐 질투가 아니라 분
노를 느끼게 됐다.
봄만 되면 대책도 없이 새끼를 마구 낳아 행복하게 데스우 거리던 녀석들은, 여름이 되면 말
라죽고 굶어죽는 새끼들을 보고 쩔쩔매다가 인간에게 도움을 요구하고, 거절당하면 원망하며
새끼들이 죽는걸 인간의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 가을에 다시 새끼를 낳지만, 겨울이 다가오면 버려진 새끼들이 울면서 공원을 떠돌다
가 아첨을 해대고 아예 겨울엔 새끼를 씹어먹는 어미의 모습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주제에.
기회만 되면 가족놀이를 해 행복만을 맛보려하는 실장석이란 존재에게 나는 분노해 학살파가
되었었다.
하지만 그것도 나이가 들자 분노가 다했다.
가족이란걸 가질수 있으면서도 새끼를 쉽게 버리고 잡아먹는 녀석들의 모습에선 이제 경멸감
만이 느껴진다.
가능힐 관여를 하지 않고, 새끼를 돌보라고 요구하는 녀석은 무시, 집에 기어들어온 녀석들은
바로 음식쓰레기 건조기에 시체로 던져지는 정도.
마당의 녀석들도 처음엔 가벼운 장난이었다.
구덩이에 빠져 익사하거나 비를 맞아 얼어죽는 정도로 끝날일이었다.
하지만 새끼를 내팽개치지 않고 필사적으로 물을 막는 어미의 모습에,
짜증이났었다.
간만에 본 실장석의 가족놀이에 역겨움마저 느껴졌다.
그 결과가 이것.
잠시 동안의 편안한 삶을 맛보긴 했지만 독라가 되지도 않고, 골판지와 타올까지 손에 넣은
어미 실장석은 아마 겨울을 날 수 있을것이다.
그렇지만 봄이 와도, 눈이 지져진 그 실장석은 더이상 가족놀이를 할 수는 없다.
"......."
운동회날 처음으로 실장석 가족을 밟아죽이고 서서 울던 때의 씁쓸한 기억을 떠올린 나는, 담
배를 재떨이에 짓눌러 껐다.
-끝-
자기를 버리고 간 엄마의 모습을 실장석에 투사, 분풀이하는 레후
답글삭제똥분충이네 인간이
답글삭제아아 남의 집 마당에 들어온 분충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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