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과 실장 1~5


 

충남 논산시 근처의 한적한 시골마을.
해가 벌겋게 뉘엿뉘엿 넘어가는 저녁시간때다.
웅철은 자신의 논과 밭을 둘러보고는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나긴 논둑을 따라 걷다보면 멀찍이 훈련장에서 막사로
돌아오고있는 훈련병들의 행렬이 보인다.
황금 물결사이를 가로지르는듯이 걷고있는 젊은이들.

웅철은 잠시 그들을 보며 짠함을 느꼈지만 곧 해야할 일들에
머리가 아파왔다.

"어여 들우와. 너 좋아하는 녹돼지된장찌게 끓여놨으야."

"야..알았슈 씻고 갈께유."

웅철은 어머니와 둘이서 살고있었다.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웅철은 많은 땅을 상속 받았지만 아직 그것을
팔아 좀더 편한생활을 하고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어머니가 이곳을 떠나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이 녹돼지 어디서 났슈? 오늘 장서는 날도 아닌디.."

웅철은 냄비안에서 혀를 내밀고 둥둥떠있는 자실장
한마리를 숟가락으로 뒤적이며 어머니께 물었다.
그러자 웅철의 어머니는 수저를 든손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는다.

"아까있잖여? 마당에서 우거지를 널구있는디. 녹돼지
애미랑 새끼둘이 대문밖에서 빼꼼 여 안을 보고 있지뭐여..?
그래서 나가 연기를 쪼까 혔지.."

웅철은 묵묵히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통통하게 익은
자실장 배에 젓가락을 꽂고는 부욱 찢어 고기를 발라낸다.

"무슨 연기유?"

"일부러 있잖여? 우거지 한단을 땅에 떨어뜨린겨."

다시 쿡쿡 웃기시작하는 웅철의 어머니

"워매 울 엄니 왕년의 솜씨가 또 나왔구먼"

"그리구는 있잖여? 나가 모른척~허고 부얶에 들어간겨.
그러니께 냅다 새끼한마리가 우거지로 뛰어오는거여."

사실 웅철은 실장석들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녀석들이 나타난것은 불과 5 년여전.
누군가 닭대신 키우면 좋다고 해서 닭장에서 키우다가
엄청난 번식속도에 사료값을 감당못해 놈들을 그냥
방생시키고 만것이다. 그 뒤로는 온 마을의 밭이며 논이며
농작물들에 심각한 피해를 입히고 있다.

"그래서 내가 우거지를 열심히 긁어모으고 있는놈 뒷덜미를
덜컥 잡아버렸제. 후후후.."

'데에엥.. 데스..데스우..'

'테에에에엥 텟찌아아아'

아하 그래서 아까부터 부엌에서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들린것이 이것 때문이었군.

"새끼를 턱 잡으니까말여. 애미랑 다른새끼가 동시에 나한테
달려오지뭐여? 모조리 잡아다 장독안에 넣어놨어야 ."

진한 된장의 맛. 잘 찢어낸 새끼의 고기와 국물을 밥에 넣고는
석석 비빈다. 그리고는 입으로 가져간다.

"많이 묵어. 낼은 애미로 자반구이 해줄꺼니께."

친실장으로 만드는 자반구이! 웅철이 가장 좋아하는
메뉴다.

저녁상을 물리고는 마당에 나가본다.

'뎃데로게 젯데로데'

'뎃데로게 뎃데로게'

가을밤. 더 이상 귀뚜라미들의 합창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추자를 낳기위한 들실장들의 태교소리만이 한적한
논산의 벌판을 채울 뿐이었다.

'뎃데로게 젯데로게'

'텟테레! 텟테레!'

벼를 수확하기 전까지는 아직 녀석들을 소탕하기 힘들다.
잘못하다간 온 볏단이 녹색똥으로 물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웅철은 조용히 담배에 불을 붙였다.

"데갸아악! 데샤아앗!!!!"

웅철의 어머니는 장독에서 친실장을 꺼내 능숙하게
옷을 찢고는 머리털을 뽑는다. 칼로 배를 따서 내장과
분대를 모두 꺼낸다. 그리고는 찬물에 안팤을 깨끗히 씻어
굵은 소금으로 박박 문지른다.

"데힛.. 덱..데엑.."

"테에에에엥 테에엥!"

홀로남은 자실장 한마리가 열심히 장독대 안을 두드리며
소리질렀다.
그러나 뚜껑을 덮으니 마치 우퍼스피커처럼 저음의
은은한 배경음처럼 들린다.

색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너덜너덜한 몸을 보는
친실장은 입만겨우 뻐끔거릴 뿐이다.

"살짝 아침꺼중 말렸다가 꾸득해지면 구워먹어야 하능겨."

"야.. 낼은 좀 바빠질것 같구먼유.."

"뭣허면 나도 갈랑께"

"어휴 됬슈. 엄니는 방이나 뜨뜻허게 허구 앉아계셔유.."

굵은소금이 적당히 묻은 친실장을 긴 대나무 끝에 달아
올린다. 새들이 먹을 염려는 없다. 소금기 있는것은
건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파--킨'

대나무 꼭대기에 올라가 너풀거리던 녀석은 이윽고
청명한 소리를내며 절명했다. 잠시 일대 실장석들의
태교소리가 멈추었지만 다시 합창하듯 시끄럽게
울어대는 녹돼지들.

웅철은 녀석들을 한마리도 살려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것도 이놈들이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웅철은 잠에서 깨어났다.
문을 여니 검푸르스름한 하늘에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멀리서 장닭들의 우는소리가 간간히 들려왔다.
이미 부엌에선 밥짓는 냄새가 올라온다.

"이불 물러. 상들어가니께."

"야. 들어오세유."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서는 이불을 대충 아랫목 쪽으로
밀어두었다. 고봉밥에 감자국, 김치에 계란말이. 웅철은
뜨끈한 국에 밥을 말았다.

"배추는 좀 건질게 있나 몰러?"

"글쎄유.. 남은거라도 잘 챙겨봐야쥬.."

"순철이는 온댜? "

"야.. 온다구 했슈.."

순철이는 웅철의 토박이 친구이다. 어렸을때부터
함께 마을을 누비던 그야말로 뗄 수 없는 죽마고우다.
바쁠때는 서로서로 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웅철은 감자국에 만 밥을 한숟갈 듬뿍 퍼 그위에 김치를
한조각 올리곤 후루룩 먹는다.
뜨끈한 국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이거다.
하루를 시작할 힘이 생겨났다. 어머니의 밥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묘한 힘의 원천.

마당에 나와 세수를 하고 수건으로 얼굴은 닦는다.
부엌옆을 보니 어제 잡아놓았던 새끼녹돼지가 목에
노끈이 묶인채 아침잔반을 게걸스럽게 할짝이고 있었다.

'테챱 테챱.. 테츗 테츗.'

"뭐에유 엄니? 이거 키울거에유?"

웅철의 어리둥절한 표정에
그의 어머니는 똥범벅이 된 장독대를 씻으며 말했다.

"저 밥쳐묵는거 봐라. 애미를 잃어도 천진난만 한게
귀엽구먼.."

"엄니! 귀여운게 따로있쥬.. 아버지가 뭤땜시...."

"아구야..농담이여. 저건 가축으로 키울라고 하는거니께"

웅철은 잠시 흥분하여 소리를 높였지만 어쩌겠는가.
사실은 어머니가 더 괴로우실터.

"흐흐..나가볼께유."

"그려. 다녀와"

웅철은 곧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를 배웅하고 곧 웅철의 어머니는 빈그릇을 핥고있는 녀석을
손으로 들어올렸다. 자실장은 따뜻한 그녀의 손길이
기분좋은듯 '텟충' 하고 울어보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인자한 닝겐의 표정. 이미 자신의 마마와
오네챠는 기억속에서 잊혀진지 오래인듯 했다.

웅철의 어머니는 주황색 바가지에 가마솥에 덥혀둔
따뜻한 물을 한바가지 퍼올렸다. 그리고는 녀석을
그 안에 넣는다.

'테츄하아아아..'

차가운 몸이 따뜻한 물로 녹아내려간다.
자실장은 기분좋은듯 눈을 감는다. 그러자 물은
곧 짙은 녹색으로 물들어갔다.

그 사이 그녀는 마당에 자라고있는 쑥을 뜯었다.
그리고는 손으로 그것을 대충 짓이긴다.
눈을 감고 따뜻함을 만끽하고 있는 녀석을 들어올리자
반달눈을 지으며 한쪽손을 입가에 가져가는 새끼녹돼지.

웅철의 어머니는 곧 녀석의 붉은색 눈쪽에 짓이긴 쑥즙을
발랐다.

'텟텟? 텟츄우? 텟츗 텟찌이이?'

당황한듯 손을 버둥거리는 녀석. 곧 배가 서서히 부푼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다시 새 따뜻한 물을 퍼올리고는
녀석을 다시 집어넣었다.

"많이 많이 낳아라. 많이 많이 낳거라"

'텟데로게 젯테로게~ 텟테로게~'

새끼녹돼지는 곧 본능적으로 서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웅철은 자신의 친구 순철이와 함께 배추밭에 올라갔다.
상황은 어제보다 더 심각했다.
들실장들이 배추속의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잎을 먹기위해
배추에 묶어둔 새끼줄을 전부 풀러버렸던 것이다.

"이..쌍눔으 새끼들이.. 처먹지도 안을거.."

이미 유해조수로 분류된 녀석들은 똑똑하기까지해
먹지 못하는 부분까지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한다.
예로 배추라면 가장 맛있는 가온데 노란잎만을 파먹고
버린다던가. 자신의 양을 충분히 챙기고도 챙기지 못한
배추들에 자신의 똥을 바른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미 건질것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배추밭을 보며
웅철은 한숨을 쉬었다. 분명 어제까지 상황은
70 퍼센트는 건질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하루만에 이렇게 초토화 될 줄이야.

실장석의 똥이 묻은 배추는 잎이 곧 시들뿐 아니라
냄새가 워낙 독해 말린 시레기로도 사용하지 못한다.

배추밭 옆 돌담 사이에서 '데프프프' '치프프픗' 소리가
들리는것 같았다. 올해 김장은 망쳤다. 웅철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순철을 바라보았다. 매년 심해지는 실장석들의
횡포에 농사꾼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날 수 밖에 없는 현실.

아버지의 마음이 새삼스레 느껴지는 웅철이었다.

이미 건질것은 없었다. 웅철은 눈물을 삼키며 순철에게
고개를 저었다. 순철도 웅철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리고는 삽으로 배추밭을 모두 뒤엎기 시작했다.

"씨불놈들.. 반드시 다 죽여버릴거여.."

멀리서 새참을 들고오는 웅철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웅철의 어머니는 멀리서 웅철과 순철이 꾸역꾸역
삽으로 배추밭을 뒤엎는것을 보고 눈치를 챘다.
이미 올해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다행히 팔 배추들은
아니었기에 망정이지 논산훈련소와 계약된 다른 작물들은
어찌된단 말인가. 특히 정성들여 키운 무우나 쪽파등은
괜찮을까. 무엇보다도 가장 가슴아파할 아들 생각에
가슴이 쓰려왔다.

' 내가 실망한 모습을 보여주면 웅철이는 더 가슴이 아플거여.'

그녀는 머리에 인 새참바구니를 다잡으며 그들에게로
갔다.

"야야.. 새참먹고 혀라~"

".. 엄니 오셨슈? .."

웅철은 괜히 움츠러들었다. 어머니께
농사꾼으로서 못볼 꼴을 보여드렸다는 죄책감이
들었다. 친구인 순철은 웅철의 눈치를 보다가 먼저
털석 새참바구니 옆에 먼저 앉았다.

"아이구 뭘 이렇게 준비 하셨어요 ? 야 웅철아 얼른 앉어
먹고하자. "

"그려 너두 얼른 앉어. 먹으면서 뭔가 대책을
세워봐야 않것냐??"

"..야.."

바구니를 사이로 둘러 앉아 웅철어머니는 보자기를 열었다.
막걸리 주전자와 양푼대접 두개. 다른 비닐봉지 안에는
수많은 독라저실장들이 꿈틀대며 '레후레후' 짖고있었다.

"우와.. 이거 생저실장이잖아요! 엄청 신선하네!"

"후후 .. 태어난지 얼마 안된 놈들이여. 초장찍어 묵어."

"..아. 아까 그 놈한테서 받아낸 거에유? "

웅철은 아침에 나오면서 봤던 새끼녹돼지를 생각해냈다.
비닐 노끈에 묶여 잔반을 핥던 녀석. 다시 생각하니
어머니의 현명함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었다.

"레후? 레후우우"

웅철은 저실장 한마리의 꼬리를 잡아 손바닥위에 올렸다.
땅콩만한 녀석이지만 사람얼굴 비슷한걸 하고있다.
팔다리인지 작은 돌기 같은것들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 얼굴 비슷하다 함은 녀석이 지금 웃는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니후. 프니후..레후우우"

배를 뒤집어까고는 혀를 내밀며 땡글땡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저실장. 눈빛에 악의나 두려움은 없다.
웅철은 다시 녀석의 꼬리를 잡고는 머리부터 초장에 찍었다.

"레뺘아아앗!레후! 레훗! !"

마치 신선한 새우처럼 몸통을 펄떡인다. 웅철은 다른
한손으로 막걸리를 한대접 채웠다.

"..짠 ?"

"..짠은 개뿔.."

"짜식 무안하게.."

"어떡할거여? 날잡고 녹돼지 구제신고 해야않컸냐.."

어머니의 걱정을 들으며 웅철은 크게 한사발 들이킨 후
배가 통통해진 구더기를 입안에 던져 넣었다.

"레뺫!"

'파킨'

마치 신선한 굴을 씹는듯한 식감이다. 다른점이라면
저실장의 뱃속에서 터지는 날치알같은 식감이다.
톡톡터지는게 작은 비명소리들마저 들리는듯 싶다.
비위생적이라지만 시골에서는 이런 별미가 또 없었다.

"야. 내일 일단 논부터 쇼부봐야것슈."

웅철이가 대답하며 입맛을 다시는 사이.

"..데스? 데스우?"

어디선가 성체녹돼지 한마리가 웅철이들에게 슬금슬금
다가 오고 있었다.

"뭐야 이놈 이거?"

"뎃스! 데스우웃! 뎃스! 뎃스!"

닝겐 셋이 앉아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성체녹돼지는
짦은 팔을 붕쯔붕쯔 휘두르며 삽을 가르킨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걸 보니 화를 내는듯 싶다.

"데엣스! 뎃스우! 데샤아아앗!"

"..이 씨불헐놈이 뭐래는겨?"

"데뎃.. 뎃.."

웅철은 벼락같은 기세로 벌떡 일어나 녀석의 멱살을
턱하고 잡아올렸다.
들실장의 의도는 불을보듯 뻔한것이었다.

'왜 자신의 밭을 허락도 없이 뒤엎는가?'

'노예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 등등..

웅철은 녀석의 뒷머리털을 잡아 큰 돌위에 올리고는
돌바닥에 머리를 꾹 눌렀다. 그리고는 삽날을 세워잡고는
목덜미를 그대로 내리쳤다.

"데스우우..데스우웅..데갹!!"

손을 입가에 가져간채로 오로롱거리던 녀석의
머리가 순식간에 바닥을 뒹굴었다.

얕은 구덩이를 파고 깔끔하게 분리된 녀석의 머리와
몸통을 던져넣는다.
아직도 입을 뻐끔거리며 열심히 눈알을 굴리는걸 보니
신경은 살아있는 모양이었다. 정말이지 대단한 생명력
이라고 생각했다.

웅철은 몸통을 말고 덜덜 떨고있는 남은 저실장들을 입에
털어넣고는 남은 막걸리를 비웠다.
순철은 구덩이에 있는 녀석의 시체에 나뭇가지를 대충
분질러 넣고는 녹색 옷에 성냥불을 붙였다.
처음만 잘 붙이면 나머지는 석유가 타듯이 활활 타오른다.

"어휴..얼마나 쳐먹었길래 살이 저리 찐겨..?"

웅철의 어머니는 새참그릇을 정리하고는 일어섰다.
그리고는 저녁준비를 위해 집으로 돌아갔다.

마치 삼겹살 기름이 불에 붙은듯 맹렬하게 타오르는
녹돼지의 몸뚱아리. 당연히 구운 고기냄새또한 밭 이곳저곳에
퍼져나갔다.

"데뎃? 뎃? 데스.. ?"

"테엣 텟 ! 텟츄우웅~~!"

농작물을 먹고사는 놈들이지만 위석에 새겨진
구운고기(스테이크)에 대한 본능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현명한 개체들은 자신의 허벅지를 나뭇가지로 찔러가며
냄새를 참아냈지만 그렇지 않은 녀석들은 홀린듯이
돌틈을 빠져나와 냄새가 나는쪽으로 모여들었다.

"야 웅철아 저기봐라. 엄청 모여든다."

"데스웅 뎃스우웅~"

"텟츄우우..텟추우웅?~"

녀석들 중 한마리가 불구덩이에서 고기를 꺼내려다
발을 헛디뎌 자신의 몸에도 불이 붙어버린다.

"데갸아악 데샤아아아악!"

순식간에 두배로 불어버린 고기를 보며 서로
눈치를 보는 녹돼지들. 새끼 한마리가 불 앞에서
입가에 손을 올리고는 '텟츄우웅' 하고 울어본다.
그러자 다른 녀석들도 따라서 불에게 아첨을 하기 시작했다.

"저런 멍청한놈들한테 당한게 더욱 열받는 점인겨.."

웅철은 잠시 허리를 펴고 녀석들의 짓거리를 관람한다.
아첨이 통하지 않자 성체 한마리가 팬티에 손을 넣고는
크게 한움큼의 똥을 퍼내었다. 그리고는 불속에 던진다.
'뎃프프프프' 반달눈을 하며 웃는 성체.

"데갸아악! 데스! 데스우우!! "

"테챠아앗 텟치 텟챠아아!!"

"뎃? 데뎃? 뎃스! 데스우우"

갑자기 녀석들이 불속으로 투분을 한 녀석에게 집단린치를
가하기 시작했다. 옷을 벗기고 머리털을 뽑고는 빙 둘러싸
흠씬 두들겨 패준다. 불을 오래보면 미쳐버린다더니..
그런것일까.

"뎃샤아 뎃샤! "

"데스.. 데스우우우.."

그리고는 녀석을 번쩍들어 불속으로 냅다 던져버리는 놈들.

"뎃샤아앗 데갸아아아아아아!"

"테프프프픗.."

"데프프프픗.."

세번째 희생자가 타오르는걸 보며 웃음을 감추지 못하는
들실장들. 입가의 침이 멈추지않고 흐른다.

웅철이 이런방식으로 들실장 구제를 한적은 많이 있다.
무엇보다 수고스럽게 돌아다닐 필요가 없이 저들끼리
자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똑똑한. 진정한 골칫거리들은 자신의
안전을 확신한 뒤에만 움직이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두어마리만 살아남아도 한달이면
다시 엄청나게 불어나 버린다.

불을 놔두고 웅철과 순철은 다시 열심히 삽질을
하기 시작했다.
미리 뒤엎어놔야 내년 농사를 시작할때 비료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데갸아악"

"텟찌아아악"

불속으로 20 마리정도가 사라지고 까맣게 재가
되버렸을때 그들의 삽질은 끝이났다.
주위의 들실장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불에 다 타버린건지.
뭔가 잘못된것을 느끼고 도망간건지 알 턱은 없지만
그것으로 웅철의 마음을 달래기엔 턱도없이 부족했다.

"배고픈디 오늘은 그만허자."

"내일 콤바인 빌려놓은거 맞지? "

"그려. 내일이 놈들 제삿날이여.."

숯덩어리가 가득 쌓인 불구덩이에 흙을 덮고는 발로 꾹꾹
눌렀다. 불씨하나로도 잘못 다루면 큰 산불의
위험이 있다.

웅철은 어머니가 잘 구워놓으신 녹돼지 자반구이를
생각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철이도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논둑길을 걸으며 다시 '뎃데로게 젯데로데' 합창소리를
듣는다. 내일이야말로 끝장을 볼 시간이다.
벼수확시기를 앞당겨 가면서까지 준비했던 일이다.
멀리서 훈련병들의 구령소리가 들려왔다.

집에 도착하니 맛있는 구이냄새가 웅철의 코를 자극했다.

"어여와. 국 식는다"






결전의 날이 밝았다. 웅철이 눈을 떴을때, 언제나처럼
구수한 밥짓는 냄새가 올라왔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부엌 옆에 묶어놓은 새끼녹돼지의 '테에엥' 하는 울음소리가
함께 들린다는 점이랄까.

"이불 물러. 상들어가니께."

웅철은 제법 쌀쌀해진 공기를 느끼며 어머니를
아랫목으로 모신다.

"엄니 추워유 . 이쪽으로 와유."

"하나두 안추워. 뜨뜻하게 먹구 얼른 나가봐."

농협에서 빌려놓은 콤바인과 볏짚절단기가 곧 도착할
시간이다. 웅철은 흰 쌀밥을 시레기된장국에 말았다.
그리곤 한숟갈 떠서 후후 불어가며 입에 넣는다.
아침식사에 국물이 없으면 밥을 잘 못먹는 웅철을
잘 아는 어머니. 잘 익은 배추김치를 숟가락에 올려준다.

"뜨거워. 김치도 같이 묵어."

"야."

"계란후라이도 묵어."

"..엄니 ..우리 안쓰는 닭장 있잖아유."

"그건 왜?"

"오늘 좀 가득 채워볼까 해서유."

"흐흐..겨울 고기반찬 걱정은 없겄다."

"갔다 올께유. 힘드신디 새참은 안오셔두 되유."

"신경쓰지 말고 니 일이나 잘 혀."

웅철은 밥을 마저 먹고는 푸른 새벽녘의 찬 공기를
마시며 집을 나섰다.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다.
오늘에야말로 녀석들의 씨를 말린다. 다시 다짐했다.

몇분을 걸어 자신의 논에 도착했다. 아직 순철이와
콤바인을 싣고오는 트럭은 도착하지 않았다.
조용한 시골 새벽. 아직 훈련소의 기상나팔이 울릴 시간은
아니다.

담배를 물고 조용히 논둑에 앉아 귀를 기울여본다.
희미하게 들리는 녹돼지들의 코고는 소리.

'뎃푸우우우. 뎃푸우우...'

'테츄우..텟츄우우..'

'렛츄우우..렛츄우우...'

웅철의 앉은자리 옆 누렇게 시든 풀들 사이에서
나는 소리다. 웅철은 풀을 살며시 헤집어 본다.
역시나.딱 성체실장 크기만한 구멍에 스티로폼 조각이
엉성하게 끼워져 있었다. 안에서 놈들의 소리가 들리는걸 보니
이미 추자를 본 일가인듯 하다.
녀석들이 소리를 지르면 곤란했기에 살며시 스티로폼 조각
을 열고는 깊게 빤 담배연기를 가득 불어보내는 웅철.

"테.. 텟츄! 텍케에엑..!"

"렛켁! 렛켘.. 켁!!"

"뎃!? 데뎃 ? 데스! 데스우!뎃켁!!"

호흡에 민감한 새끼들이 먼저 콜록거린다.
좁은 굴에 가득찬 담배연기에 제대로 호흡이 될리
만무하다. 뒤늦게 일어난 친실장이 두리번거리며
상황을 판단했다. 크게 소리지르려 했지만 숨을 쉴 수 없었다.

"데샷 데샤악! 데샷.!"

"텟켁! 텟 케에엑! "

"렛츄우우켁! 츄우우웅켓켓!"

성체실장이 자식들을 먼저 탈출시키고자
겨우 목소리를 짜내었지만 자실장들은 마마를 꼭 붙든채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데뎃 ! 데스웃! 데샤악!"

희미한 빛이 들어오는 입구로 자들을 안고 기어나오는 친실장.
웅철은 이미 두꺼운 비닐로 된 비료포대를 벌려 입구에
맞대고 있었다.

"뎃! "

"테갹!"

"지벳"

빈 비료포대 안으로 굴러떨어지는 일가.
엄지는 이미 친실장의 비대한 몸에 깔려 압사하고 말았다.
반투명한 비닐 너머로 보이는 닝겐의 모습. 큰소리로
소리를 질러 다른 실장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려했지만

'퍽! 퍽!'

"데겍! 덱! 데갹! 데가야스!"

'팍! 팍!'

"텟! 텟게엑! 지벳."

비료포대의 입구를 모아쥐고 바닥에 마구 내려치는 웅철.
결국 자실장 한마리도 압사. 남은 친실장만이 피를 토하며
온몸의 뼈가 골절되어 퍼렇게 된 몸을 하고선 희미하게
골골대고 있었다.

"웅철! 아침부터 구제냐? 흐흐"

웅철의 자비없는 패대기를 보고 웃으며 도착한 순철.

"아직 죽이지는 말어. 이따 벼 베구나서 태울거니께. "

"그래. 태우는건 나한테 맡겨줘"

웅철은 기절한 친실장의 눈에 담배를 비벼 끄고선 멀리서
오고있는 트럭을 유도했다.

어느새 훈련소의 기상나팔이 울린다. 웅철 앞에
콤바인과 볏짚절단기를 싣고 온 트럭이 도착했다.
논둑길은 비포장 도로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제법 넓찍하다.
10톤 트럭의 엔진음이 땅을 두텁게 울려대자 성체 들실장
몇마리가 논둑 비탈의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데갸아아앗! "

"데갸앗 데갸아아악!

"순철아! 한마리도 놓치면 안되는겨! "

"놈들이 도망가 봤자지!"

비대한 몸을 뒤뚱거리며 벼 속으로 숨어들려는 놈들을
재빨리 낚아챘다.
녹색 똥이 볏단에 묻으면 큰일이다.
쌀의 상품성이 떨어지는것은 물론 소의 여물로 쓸 볏짚도
버려야하기 때문이다.

"죄다 임신한 놈들이네? "

"새끼 깐놈들은 도망 못가. 요놈들은 아직 임신중이라
혼자서 도망갈 수 있는 것이고. "

"뎃스우웅 ~~♡"

"뎃스우웅~뎃스? 데스우? "

"데뎃? 뎃?? 데스웅 데데뎃!"

양쪽눈이 초록으로 물든 임신실장들이 웅철들을
향해 아첨포즈를 짓지만 곧 뒷머리채를 모아 잡히자
이내 고통에 항의하기 시작한다.

"뎃스! 데스우! 데샤아앗!!"

"데뎃! 뎃 ! 데샤아앗!"

자신의 만삭인 배를 가르키며 공중에서 붕쯔붕쯔
거리는 놈들의 행동이 재미난지 순철은 깔깔 웃었다.

" 아이고 고놈들 참 실~허다.."

"요놈들 가져가실래유? 어차피 다 죽일 놈들이라.."

콤바인과 볏짚절단기를 트럭에서 내려놓은 농협직원이
임신실장들을 보며 입맛을 다신다.

"어휴.. 다 먹지도 못혀.. 고.. 고놈 한마리만 가져갈께유"

"그래유. 절대 풀어주거나 하지 마셔유..큰일 보니께.."

농협직원은 입을 꼭 다물고 콧김을 내뿜으며 가장 힘찬
팔동작으로 붕쯔붕쯔 거리는 녀석을 건네받고는
걱정말라며 트럭을 타고 돌아갔다.

"일단 벼부터 얼른 베자구.. "

"구제 신고는 했냐?"

"이장님헌테 이야기 했으. 이따 오신댜.."

웅철은 능숙하게 콤바인에 올라타고는 천천히
논으로 내려갔다. 제법 큰소리를 내는 기계라
임신한 놈들이 안전한곳을 찾기위해 몇마리 더
튀어나왔지만 순철은 잽싸게 놈들도 모두 잡아내었다.

"아이구 이거 손이 모자르네 .."

"거거.. 노끈 뭉치 있응께. 그걸로 엮어놔야!"

기계로 벼를 막 베기 시작하던 웅철은 순철에게 웃어보였다.
노끈 뭉치의 매듭을 찾던 순철또한 그 의미를 금방 눈치채고는
큭큭거리며 웃었다.
매듭끝에 달린 낚시바늘. 순철은 투명한 눈물을 닦는척
자신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는 임신실장 한마리를
능숙하게 독라로 만든 후 낚시바늘로 입천장을 꿴다.

"데갸악! 데갹 데갸아아아악!!!"

그리고는 코로 바늘을 빼내자 붉은 노끈이 주욱하고
꿰어졌다.

"데에에엥..데에에엥.. "

"자자..이제 다음 놈 ."

그제야 투명눈물이 색 눈물로 바뀌며 아픔에 우는 녀석을
보며 다른 놈들도 차례차례 정성스레 입천장을 뚫어
줄줄이 노끈에 꿴다.

"데에에에엥..데에에엥.."

"데샤아앗!데샤아아악!"

"오로로롱.. 오로로롱.."

"뎃데로데.. 젯데로게.."

꿰인모습은 똑같지만 놈들의 반응이 조금씩 다른건
흥미롭다. 운치를 지리며 엉덩이를 쳐들고 위협하는 놈.
뭉툭한 손으로 초록눈물을 흘리며 노끈을 빼내려는 놈.
이 와중에도 자들을 생각하며 태교를 서두르는 놈.

순철은 노끈을 나무에 묶어놓고 다시 논둑 비탈을 유심히
살펴본다. 몰래 살금살금 도망가는 놈이 있다. 뒷머리를
낚아채고는 줄줄이 달려있는 녀석들의 행렬에 동참시켰다.

"어이구 아침부터 고생이여? "

"오늘 무슨 잔치허나? 뭘 이리 잡은겨? 깔깔깔"

빈 바구니와 호미를 든 동네 아주머니들이 시끄럽게
울고있는 녹돼지들을 지나가며 웅철들에게 인사를 건낸다.

"이따 오셔유. 오늘 잔치에유! "

콤바인은 부지런히 벼수확을 해나갔다. 낱알이 털린 빈 볏짚이
옆에 줄줄이 떨어지는데 이것 또한 잘 챙겨야 했다
그대로 놔두면 녹돼지들이 월동준비로 전부 주워가 버리기
때문이었다.







웅철은 금세 한마지기 되는 논에서 벼를 수확했다.
콤바인에서 분리된 낱알포대기를 꺼낸 후, 바닥에
질서정연 하게 늘어놓은 볏짚은 볏짚절단기로 작업했다.
금새 바닥에 하얀 비닐의 크고 둥근 마시멜로 같은 덩어리가
생겨났다. 소키우는 집이나 양계장 등에 몇만원 주고 팔 수
있었기에 풀리지 않게 단단히 매듭을 묶었다.
허술하게 하다간 들실장들의 월동용품이 되어버리는 사태도
생겨버린다.

볏짚 덩어리는 한쪽 구석에 안전하게 옮겨놓고 순철과 웅철은
본격적인 들실장 구제작업을 시작한다.
이미 임신한 놈들은 대부분 잡았을 터이다.
그렇다면 남은 놈들은 이미 추자를 낳은 일가들.
일단 배추밭 때처럼 구덩이를 파고 웅철이 반 죽여놓았던
비료포대 안의 친실장과 녹색 반죽같이 되어버린
새끼들을 거기에 탈탈 털어 놓는다.

"데에에... 데히...."

조금이나마 재생이 된 탓일까. 친실장이 눈물과
똥이 범벅된 몸을 꿈틀거리기시작했다.
순철은 작은 나뭇가지를 모아와 녀석에게
덮고는 신문지를 뭉쳐 불을 붙였다.

"데갸아아...데햐아아.."

친실장은 자신의 위로 화르륵 붙어가는 불을 보며
좀더 힘차게 꿈틀거렸지만 어림없다. 자신의 무능력함에
색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금새 지방덩어리의 몸은
휘발류에 불이 붙듯 맹렬히 타올라 갔다.

"데뎃..뎃.."

'파킨'

나뭇가지가 타는 소리 비슷하게 놈의 위석의 깨졌다.
그야말로 자다가 봉변당한 일가의 최후.
동시에 맛있는 실장구이 냄새가 다시 빈 논에 가득 퍼진다.

"데..데에에..?"

"테에엣.. ?텟츄웅 텟츄우우.."

배추밭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다. 논둑의 비탈면에서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많은 들실장들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열심히 주위를 살피고 있던것이다.

"데뎃..뎃..데스우"

"뎃뎃.? 데스..데스우.."

고개만 내민 놈들끼리 뭐라고 쑥덕쑥덕 거리더니
그제야 비대한 몸뚱아리를 끌고 조심스레 구멍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웅철과 순철은 이미 논둑길에 올라서서 녀석들의 행동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마 놈들이 조심스레 행동하는건
방금전까지 시끄럽게 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데햐아앗?데햐앗! 킁킁.. 데스우웅!"

"킁킁..뎃스! 데스우우? 데데뎃?"

"테츄우웃 테츄아아.."

"레츗.. 레츄우웃!"

금새 빈 논바닥에 수십마리의 크고작은 실장석들이 나와
불을 둘러싸고 뭔가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우와.. 이거 생각보다 엄청 많네...."

"쉽지 않겄는디 이거?"

둘은 자세를 낮추고는 놈들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아무리 재빠른 둘이었지만 몇십마리나 되는 놈들을
모두 잡기란 불가능했다. 한두마리만 있어도 농작피해를
입기 마련인데 논 한마지기 정도에 이정도로 많은
유해조수가 살고 있었다니.. 일단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웅철은 이장님께 재빨리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들실장들은 어째서인지 불을 둘러싸고는 패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 '닝겐들의 함정이다 파' 와 '이 불고기는
착한일을 한 우리를 위한 하늘의 선물이다 파' 가 한바탕
붙은 모양이었다.
큰놈 작은놈 할것없이 이빨로 물어뜯고, 멱살을 잡고 불로
서로 집어넣으려고 하는 놈들. 갑자기 빈 논은 개판이
되어갔다.싸움에서 진놈들은 얄짤없이 불구덩이에 들어갔고
불은 점점 거세져갔다.

"워매.... 이거 불이 이렇게 커지면 곤란한디.."

논을 태우는건 보통 월동하는 해충을 태워죽이기 위해
봄에 행한다. 그것도 반드시 면사무소에다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건조한 가을철에 불을 크게 붙이는건 범죄다.
놈들의 머릿수를 차마 예측하지 못한 웅철과 순철의
패착이었다.

"젠장.. 어쩔수 없구만.."

둘은 할수 없이 들실장들의 아수라장에 참전했다.
그리고는 서로 엉겨붙어 토닥거리고 있는 놈들의 뒷머리채를
잡고는 논 옆 배수로로 달려갔다.

"덱? 데데덱? 데에에에?"

"데샥 데샤아악! 뎃뎃 데데덱?"

닝겐이 나타났는데도 싸움을 멈추지 않는 녀석들.
머리채를 잡힌 놈들만 '데덱?' 거리면서 동료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눈이 뒤집힌 멍청한 놈들에게
그런 소리가 들릴턱이 없다. 단지 내 앞에 있는 놈을 죽여
통바베큐로 만들어 먹고 말겠다는 의지 뿐.
승자들이 패자를 굽고있는 사이 또 다른 놈들이 승자를
불구덩이로 밀쳐 구이로 만든다.

순철은 재빨리 엉겨붙어있는 놈들을 배수로의 고인물에
잠수시켰다.

"데베벳! 뎃푸! 꼬로록.. 뎃푸우웃"

"덱! 데샤.. 푸.. 푸우웃.. 꼴꼴꼴.. "

실장석이라는 생물은 자고로 수영을 할 줄 모른다.
뒷머리만 잡고 물속에 담궈두면 알아서 물을 잔뜩 쳐먹는다.

"데헤.. ."

"게게겍.."

물을 있는대로 마셔 살아남겠다는 놈들의 계획대로
꽤 커다란 물풍선이 된 녀석들.
순철이는 그대로 그것을 불속에 던져넣었다.

'뎃!. 퍽! 데겍! 퍽! 푸슈슈슈슈..치이이이이익'

물몸통이 터지며 불이 꺼진다. 그제서야 싸움을 멈추고
두리번거리는 녀석들. 몇몇은 몸통에 불이 붙은채 소리를
지르며 달리다 웅철에게 짓밟혀 챱스테이크가 된다.

"지벳"

"테벳"

"데갸아아악! 데샤아앗! "

"텟챠아아앗 텟치아아앗!"

상황이 파악된 들실장들. 귀신같은 얼굴을 한 웅철과 순철을
보고서는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지금 놈들을 하나라도 놓치면 내년 농사는 헛것이 되버린다.

"데벳! 뎃! "

"테벳! 텟! "

"지벳"

"안돼.. 도저히 못잡겠어.."

"놓치면 안되는겨! 절대!"

열심히 달려가 놈들의 머리를 밟아 깨트렸지만 역부족이다.
몇몇은 수로로 점프. 몇몇은 논두렁을 넘어 다른 논으로
넘어가려고 시도했다.

"아이고 이게 뭔일이여 이거! "

순철의 연락을 받고 몇몇 아저씨들과 달려오던 이장님은
우선 다른 논의 벼사이로 들어가려던 놈들을 잡고는
재빨리 목을 비틀어 버렸다. 다행이 논둑을 넘는 놈들은
없었지만 자신의 집인 구멍으로 돌아간 놈들이 태반이었다.

"아이구 이 멍청한 놈들아! 논에사는 녹돼지는
그렇게 잡는게 아니여!"

이장님은 둘을 보고 매우 화를 냈다. 함부로 불을지펴
다른 논에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던 점. 도망간 실장들이
아직 수확되지 않은 논으로 도망갔을 때의 피해. 등등
마을 전체의 피해가 될뻔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머릿수를 보세요..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았다니깐요.."

"웅철아 잠깐 와봐라."

"야.."

"여기 녹돼지 구제 허가서 ."

이장님은 웅철에게 허가서와 요상한게 담긴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게 뭐에유?"

"이제야 나라에서 심각한걸 알았나벼..일본에서 온
녹돼지 전용 구제약이라구 허니께 나눠서 잘 써.
다른 사람 논으로 도망가지 않게.또 불지르지 말구"

몇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라에서 심각한걸 알아주다니..
웅철과 순철은 몇년간 실장석에게 시달리던 나날들이
머릿속에서 스쳐지나갔다. 나라에서 조금만 더. 적어도
1년만 빨리 신경써줬더라면 아버지도 불붙은 성체녹돼지
에게 둘러싸여 돌아가시지 않으셨을거다.

"..어떻게 쓰는거래유?"

"몰러. 그냥 멕이면 뒤지는거 아녀?"

별사탕처럼 생긴. 왠지 사람도 먹고싶어지는 모양이다.
이게 과연 녹돼지들에게 효과가 있는것일까.
웅철은 한 구멍에다가 별사탕 약을 던저넣었다.

"데뎃? 뎃? 데샤아악!"

"테츙? 테츙 텟츄우우웅!"

저절로 집안으로 굴러들어온 극상의 먹을것을 본 친실장은
그만 혼이 빠져나갈 뻔 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는
자실장들을 꼭 붙잡았다. 그러나 눈앞의 보물에 이성을
잃어버린 자실장들의 집념을 막을 수는 없었다.

"테찌아아아아! 텟챠앗!"

약을 들고는 구멍을 박차고 나오는 새끼녹돼지.
뭉툭한 손으로 그것을 잽싸게 입에 집어넣는다

"텟츄우웅 ♡테츄우우우"

"뭐여 이 새끼들 이거 좋아하는데?"

약에 코팅된 달콤한 설탕맛에 강렬하게 반응한다.

"테엣? 텟..텟.. 테교봇.테갸아앜... "

'파킨'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고통에 몸부림치며 온몸에서 체액을
뿜어낸 채 순식간에 절명해 버렸다.

"효과는 제법인디?"

"우와 즉사하는건 처음봐요"

이장님과 순철이 감탄을 하고있는 사이 웅철은 죽은 녹돼지
새끼를 논바닥에 던져버린다.

'툭.'

"이건... 못쓰겠네유.."

웅철은 다시 약봉지를 이장님께 건넸다.

"아니 뭐,..뭐여? 못쓰것다니 그게 뭔소리여?"

"그게.. 별로 즐겁지가 않아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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