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탁아 (敷金)






친실장은 지면에 묻은, 자실장과 빨강과 초록의 얼룩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것은 실장석의 생명이 다한 흔적이다.
탁아를 시도한 마지막 자식이 하늘의 부름을 받은 증거였다.

친실장은 무릎을 꿇고 그 얼룩에 볼을 비비며 용서를 빌었다.
자신이 무의미한 짓을 한 까닭에, 너를 죽여 버렸다, 라고.

탁아 때는 충분히 조심하고 있었을 터였다.
다른 실장석이 하는 리스크 높은 투척이 아니라
편의점 출입구 부근에 설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의 그늘에 숨어서
이거다 싶은 쇼핑객이 나왔을 때,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가 덩크슛으로 자실장을 비닐봉투에 집어넣은 것이다.

그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점프 연습을 했다.
키가 작고, 비닐봉지의 위치도 작은 노인들을 겨냥했다.
그런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오로롱하고 우는 친실장의 귀에 갑자기 인간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몸을 숨겨야 한다는 생각과,
아무래도 좋다, 이대로 나도 죽여 줬으면 하는 마음이 교차한다.

그 곳은 지은 지 오래된 2층 아파트의 정면.
노랫소리는 2층 통로에서 들려왔다.

어쩌면 노랫소리의 주인이 제 자식을 죽인 범인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한마디 불평해 주자, 그러다 잘되면 그 인간에게 빌붙어
사육실장의 자리를 쟁취해 주려고, 계단으로 향했다.
한 계단 한 계단 기어오르듯이 계단을 올라간다.
간신히 다 오른 2층 복도에 작은 여자아이가 앉아 있었다.

나이는 네 살 정도로 자신의 집 현관 앞 복도에 앉아 있었다.
복도 울타리 사이로 두 다리를 쭉 뻗어 흔들거린다.
상반신을 힘없이 그 울타리에 기대어, 노래를 부르고... 정확하게는 흥얼거리고 있었다.
계단을 올라온 실장석이 시야에 들어와 고개를 그쪽으로 돌렸다.
노래 허밍은 끝났다.

소녀와 눈이 마주쳐, 주춤하는 친실장.
이 녀석이 내 아이를 죽인 범인인가?
아니, 탁아한 것은 노인일 터였다.
어느 쪽이든, 인간에게 들키고 말았다.
머릿 속에서 경보가 울리는 동시에 한 계단만 슬며시 내려와 몸을 숨긴다.
몸을 웅크리고 벌벌 떨었다.

한참이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웽웽거리며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던 경보는
점점 소리가 작아져 간다.
친실장은 경계를 풀고 살짝 얼굴을 들어 내비쳤다.
눈앞에 무표정한 소녀의 얼굴.
친실장은 경천동지의 표정을 얼굴에 붙이고,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머리부터 1층으로 굴러 떨어졌다.



  ※



눈을 떠보니 그곳은 낯선 곳이었다.
몸의 마디마디가 상했지만, 상대는 실장석, 부러졌을 뼈도 재생하기 시작했고,
함몰된 두개골도 원상복구하고 있었다.

친실장은 아파트 뒤, 옆집 블록 담벼락에 낀 좁은 공간에 있었다.
습기차고 축축한 장소에 더러운 돗자리가 깔려 있다.
그 돗자리 위에 눕혀져 있었다.

분명 탁아한 아이의 안부를 염려해서 냄새를 쫓아 여기까지 왔다.
그랬더니 아이는 땅의 얼룩이 되어 있었고 머리 위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랫소리의 주인에게 불평을 해 주려고 했는데…….

"일어났어?"

인간의 말소리에 몸을 움츠리는 친실장.
그녀가 있는 좁은 공간에 그때의 소녀가 찾아온 것이다.
그곳은 소녀에게조차 비좁은 장소였다.

인간의 말이 실장석과 통한다고 생각하는지, 소녀는 친실장에게 말을 건넸다.
친실장은 계단을 굴러 떨어져 크게 다친 것.
자신이 이 비밀기지로 운반해 간호했다는 것.
옆방에 사는 노인이 탁아된 것에 화가 나서
2층에서 자실장을 땅에 내던진 것.

처음에는 두려워하던 친실장이지만, 소녀의 표정에서 적의가 느껴지는 것은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녀는 상처받은 아기고양이나 강아지를 대하듯, 친실장을 대했다.
부드럽게 머리를, 그리고 몸을 쓰다듬는다.
소녀가 건드리는 순간은 크게 놀란 친실장이지만,
이윽고 오랫동안 맛보지 못했던 그 감촉에 몸을 맡겼다.

아직 자실장이었을 때 이렇게 마마에게 쓰다듬어지는 것을 좋아했다.
어쩐지 마음이 가라앉는다.

이렇게 되면 금세 실장석의 욕심 많은 면이 얼굴을 내비친다.
너 때문에 다친데스,
사과로 콘페이토와 스테이크를 가져오는 것이 상식인데스, 라고
소녀를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눈치가 빠른 소녀는 친실장이 배를 곯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주머니에서 먹다 만 쿠키를 꺼냈다.
이런 것 밖에 없지만, 자, 하고 친실장에게 내민다.
친실장은 훔치듯이 그것을 빼앗았다.

조금 베어 물면 입안에 달콤한 맛이 퍼진다.
친실장은 뺨에 홍조를 띠며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기쁜 듯이, 하지만 어딘가 슬픈 듯이 바라보는 소녀.
시선을 느끼는 친실장.
이 친실장도 역시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뭐인데스? 이건 이미 내꺼데스
몸을 돌려 쿠키를 소녀에게서 감추려 하지만,
소녀가 그것을 갖고 싶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배고픈 자실장 같은 눈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막 자식을 잃은 친실장은 그 눈을 무시할 수 없었다.
무언의 항의에 견딜 수 없어 친실장은 쿠키를 반으로 쪼개 내밀었다.



  ※



소녀와 실장석은 등을 맞대고 돗자리 위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소녀는 자기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허밍하고,
친실장은 답례로 "뎃데로게ー" 자장가를 불렀다.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누군가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소녀는 허밍을 멈추고 실장석을 향해 입가에 검지를 갖다 댔다.
발소리가 멀어지는 걸 확인하자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내일 보자."

그러면서 친실장을 남기고 비밀기지를 빠져나간 것이었다.



  ※



친실장은, 소녀가 준비해 준 신문지를 감싸고 밤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자식이 없어진 지금, 공원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도 의미가 없다.
게다가 계단에서 떨어져 지금까지 며칠간 여기서 자고 있었던 것 같다.
모처럼 만든 집이지만, 이미 다른 들실장이 점거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잠시 여기서 신세를 지어볼까.

거기에다 그 소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



동트기 전에 소녀가 나타났다.
친실장이 비밀기지에서 자고 있는 걸 보고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손에는 식빵 끄트머리와 우유, 그리고 소녀의 보물이 쥐어져 있었다.

입안에서 살살 녹는 메타볼릭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데스 등의 잠꼬대를 하는 친실장을,
몸을 흔들어 깨운다.

눈을 뜬 친실장은 목에 낯선 것이 감겨 있는 것을 발견한다.
소녀의 보물 펜던트였다.
그렇다고는 해도 플라스틱제의 싸구려이다.
좀더 말하자면, 인기가 없어서 중단된 여아용 애니메이션 프로그램의 캐릭터 굿즈였다.
양판점의 웨건 세일에서 백엔에 투매되고 있는 것과 같은 물건이다.

그래도 친실장은 기뻐했다.
「고귀한 내 몸에 딱 맞는 선물인데스」라고.

'비밀의 링 주얼리 펜던트'라고 명명된 해당 상품은
펜던트 부분이 열리게 되어 있었고 안에 반지가 들어 있었다.
하지만, 소녀가 주웠을 때에는 그 반지는 이미 없어서, 소녀는 대신에 다른 것을 넣었다.

비밀 기지의 안쪽에는 골판지 상자가 있어, 안에 소녀의 소꿉놀이 도구가 들어가 있었다.
모두 오래 사용된 실제 식기류였다.
이가 빠지고 금이 간 머그컵을 꺼내서 
거기에 우유를 부어 친실장에 내밀었다.

끈적거리는 하얀 액체라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좋은 냄새가 나기는 처음이었다.
흥분하며 냄새를 맡아 안전을 확인한 뒤 입을 댄다.
한 모금 마신다--맛있다.
흥분한 친실장은 몸을 뒤로 젖히고 머그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켠다.
후아하고 숨을 몰아쉬며 오장육부에 사무치는 데스라고 흐뭇해한다.
그 먹는 모습을 넋을 잃고 보고 있던 소녀는 황급히 나머지 우유를 따른다.
또 단숨에 마시려고 했지만, 잘못해서 기관에 들어가 사레가 들렸다.
코에서 우유를 뿜어 버렸다.

배꼽을 잡고 웃는 소녀
그것은 소녀가 처음으로 지어보인 미소였다.
친실장도 웃었다.

"하나로는 부족하지?"

웃음을 끝낸 소녀는 일어나, 친실장을 손짓했다.
친실장의 상처는 완전히 아물고 있어, 종종걸음으로 소녀를 따라갔다.

소녀는 주택가를 걸어, 목적의 집으로 향한다.
친실장은 소녀의 집에 초대받을 것으로 기대해서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런데 소녀의 목적은 남의 집 현관 앞에 있던 우유통이었다.
주위를 확인하고 나서 살며시 상자를 연다.

친실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랐다.
소녀가 우유를 훔치려고 한다!
닌겐상의 물건을 멋대로 빼앗으면 반죽음 당하는데스
친실장은 소녀의 다리를 토닥토닥 때리고 고개를 흔들며 제지하려 한다.
그런 걸 하면 안 되는 데스
소녀는 움직임을 멈추어, 발밑에 달라붙는 친실장을 보았다.

"이 집 우유는 받아가도 돼.
엄마가 그랬어.
여긴 부자니까 들키지만 않으면 된대."

안 되는 건 안 되는데스.
남의 것을 멋대로 빼앗으면 분충이 되어 버리는데스

물론, 소녀에게는 친실장이 데스데스 외치는 것처럼 밖에 들리지 않지만,
그 톤으로 보아 자신이 한 일을 탓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소란을 집주인이 눈치챈 듯 문 너머로 현관 조명이 들어왔다.
네가 떠들어서 들켰잖아, 소녀는 악담을 내뱉으며 도망쳤다.
등 뒤에서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으며 친실장 역시 필사적으로 뒤쫓았다.



  ※



온 힘을 다해 달렸던 상쾌감 때문인지 소녀는 실장석에 악담한 것도 잊어버리고,
비밀기지에서 웃음을 되찾고 있었다.
친실장은 달랐다.
이 닌겐은 길이 덜 든 자실장 같은데스
그렇게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녀가 입는 헐렁헐렁한 패딩은 그렇지 않았지만
안에 입은 트레이너 복은 소맷부리와 목 언저리를 중심으로 더러워져 있었다.
머리도 부스스했다.
오히려 최근까지 야외생활을 해온 실장석이 더 깔끔해 보일 정도였다.

자식을 잃은 친실장 마음 속에서 모성 본능이 작용하기 시작했다.

"따라 오는 데스"

그렇게 말하고 이번에는, 친실장이 소녀를 비밀 기지에서 끌어냈다.
앞을 마주보고 가는 곳은 익숙한 공원이다.
우선 손씻는 곳으로 간다.

여기서 물을 틀어 얼굴을 씻는 데스라며 시범을 보인다.
물의 차가움에 몸을 떨면서 양손으로 첨벙첨벙 세수를 한다.
살을 에는 듯한 차가움이지만 기분은 좋다.
소녀는 재미있어 하며 친실장 흉내를 냈다.
친실장은 끄덕였다.

그 다음은 세탁
친실장은 옷을 벗고 손 씻는 장소에서 빨래를 시작했다.
물론 세제는 없으므로 물을 흘려보내면서 밟아야 한다.
평소에 깨끗하게 하고 있기 때문에 얼룩은 그렇게 나오지 않지만,
얼마전에 계단에서 떨어졌을 때 묻은 체액과 오늘 아침 묻은 우유가 흘러나온다.
춥다며 싫어하는 소녀의 트레이너를 벗기고 친실장은 빨래를 시작했다.
흐르는 물빛으로 실장복과 달리 상당히 더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젖은 옷을 그대로 입을 수는 없으므로
친실장은 소녀를, 자신의 보금자리로 안내했다.
다른 들실장이 점거하고 있는 것을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또 다른 비밀기지의 발견에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과연 소녀가 골판지 하우스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수풀 안쪽의 작은 공간은, 바깥세계와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소녀에게 있어서 꺼려지는 세상과.


그날부터 친실장과 소녀는 서로의 비밀기지를 왔다 갔다하기 시작했다.
낮에는 실장석 보금자리, 저녁에는 소녀의 비밀기지로.

친실장은 소녀에게, 실장석과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주었다.
대부분은 불필요한 것이었지만 우유 도둑을 응징한 것처럼
실장석이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금기는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도 해서는 안 되는 행위였다.
물론 그 중에는 「그런 걸 하면 인간이 아니게 되는」 지식도 있었지만,
그런 가르침은 자연스럽게 소녀의 본능이 회피했다.

"아닌데스, 교태를 부릴 때는 오른손을 입가로 가져갈 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허리를 쫙 펴서 상대방에게 어필하는 데스.
허리가 안 들어가 있는데스, 제대로 하는 데스."

이런 식으로 친실장은 돌팔이 배팅코치 같은 지도로 아첨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도 소녀는 할 수 있는 범위에서 기꺼이 친실장 흉내를 냈다.
비록 상대가 실장석이라고 해도,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배우는 것이 기뻤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노래하고, 함께 노는 것이 무엇보다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들이닥쳤다.
친실장은 멀찍이 그것을 바라보다가 문득 의문스러운 점이 있었다.
이 소녀는 매일 자신과 만나고 있지만, 저 무리--유치원생 중에서 동료는 없을까?
거기에 취약한 자실장이라면 당연한거라서 개의치 않았겠지만,
소녀의 손이나 발에 찰과상과 약간의 상처가 눈에 띈다.
그에 비해 눈앞의 아이들 피부가 깨끗하다는 것.
소녀도 그 광경을 목격하자 몸을 숨기듯 친실장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친실장의 가슴 깊은 곳이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 불쾌한 예감은 현실로 나타났다.

보통은 저녁 전에 소녀의 비밀기지로 이동하는 것을,
그날은 좀처럼 친실장의 보금자리에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공원에서 즐겁게 노는 동갑내기 아이들과 만난 것이 충격이었던 것이다.

친실장의 재촉을 받고, 간신히 공원을 나와 아파트로 향했다.
발걸음은 무겁고 표정은 어두웠다.

비밀기지는 가지 않고 '안녕'하며 계단을 올라갔다.
친실장은 외로워 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



친실장은 오랜만에 편의점에서 쓰레기를 수집해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양은 많지 않았지만 소녀가 집에서 식량을 구해 주었다.
그건 우유처럼 어디서 훔친 게 아니라
소녀의 모친이 사온 편의점 도시락의 남은 음식이었다.

이만큼 안정적으로 식량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탁아 따위는 하지 않았을텐데.. 라고 친실장은 생각했다.
그러나 탁아가 없었으면 소녀와 만날 일도 없었고,
먹는 둥 마는 둥의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자가 없어도 외롭지는 않았다.
친실장에게는 소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잠을 잘까 하고 골판지 하우스에 누운 순간,
수풀을 흔드는 큰 소리가 들렸다.
황급히 뛰쳐 나가는 친실장.
마른 잎을 쌓아 만든 침대 위에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
얼굴은 고왔지만 온몸이 타박상에 멍이 든 상태였다.

'이건 학대데스'

친실장은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는 것을 느꼈다.
우리들 실장석은 위석만 깨지지 않으면 어떤 봉변을 당해도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회복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그냥 둔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

소녀의 호흡은 약하고 불규칙해 위험해 보였다.

친실장은 보금자리를 뛰쳐나갔다.
밤의 장막이 내렸고, 그리고 지금은 추운 겨울이지만,
이런 공원에도 성욕을 주체하지 못한 닭살 커플은 존재한다.
스스로는 어쩔 수 없지만 큰 인간이라면 어떻게든 해 줄 것이다.

첫 번째 벤치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는 커플 앞에서 울부짖는다.
「시끄럽다」라고 남자에게 일갈 당하고 걷어차였다.

걷어차인 앞의 벤치에서는, 두사람은 이미 전투 상태에 돌입해,
서로 옷을 걷어 넘기며 체온을 점검했다.
친실장이 울든 소리치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시간낭비라며 친실장은 포기했다.

다음 벤치에서는 남자는 득의양양하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는데 여자는 지루해 하고 있었고
남자의 반대편에서 왼손만 사용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치고 있었다.
친실장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도래했다고 생각했다.
축 늘어진 여자의 왼손에서 휴대전화를 빼앗는다.
그리고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선 여자가 벌떡 일어났고, 그것을 쫓듯이 남자가 벤치에서 일어나 친실장을 쫓기 시작했다.

먼저 출발하긴 했어도, 실장석의 발은 느리다.
이제 조금 있으면 보금자리의 덤불이 도착하는 곳에서, 친실장은 남자의 태클로 제압되었다.
남자는 여자에게 남자다운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올라타 친실장을 때리고 있다.
여자는 그런 것보다, 친실장이 가지고 달아난 휴대전화가 걱정스러웠다.
태클 당한 순간에, 친실장이 저쪽으로 내던져 버렸던 것이다.

마침 착신이 있었고, 소리와 빛으로 휴대전화가 제 위치를 알렸다.
그 희미한 빛이 상처입은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잘된 데스……"

친실장은 얼굴 가득 피투성이가 된 채 미소를 지었다.



  ※



소녀는 네그렉트, 즉 육아 방치 당하고 있었다.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았고, 그렇다고 모친의 비호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모친은 생활보호를 받으면서도 남자를 방으로 불러들였고,
일의 한창 때는 소녀를 방에서 내쫓았다.

소녀는 비밀기지가 편했다.
방에서 남자를 만나면 폭행을 당하는 일이 있었고 엄마도 언짢아했다.
비밀 기지에 있으면 누구에게도 맞는 일도 없고,
남자가 방을 나가는 것도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자식을 잃은 친실장은 소녀를 걱정했다.
소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느꼈다.

비밀기지에 들르지 않고 계단을 올라간 그날 소녀는 어머니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유치원에 보내달라고
그것이 안 된다면 적어도, 실장석 -친구와 함께 살고 싶다고.
그러나 현관을 열어젖힌 앞에서는 사랑의 영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더럽혀진,
남자와 여자의 욕망의 충돌이 전개되고 있었다.

그 후 소녀에게 찾아온 비극에 대해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소녀는 상처입은 몸으로 안전한 곳으로, 자신이 있어야할 곳으로,
그리고 자신을 생각해주는 친실장에게 도망친 것이다.

하지만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정사를--정확히는 그것에 이르는 것을--방해 받은 남자가
구급차를 불러 소녀는 목숨을 건졌다.
거기에 모친도 나타났다.
소녀를 생각해서가 아니라 학대가 드러날까봐서였다.
그래서 그녀는 소녀가 실장석에 상처를 입었다고 유달리 소리쳤다.
친실장이 어떤 말로를 이뤘을지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아파트 2층에서 추락사 당한 자실장이 훨씬 행복할 정도로
잔혹한 처사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사건 후 남자는 모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왕이면 마라 실장한테 씨를 심어서 괴물 같은거나 낳게 하면 좋겠는데,
구경거리 점포에 팔아 치우면 돈이 좀 되지 않을까?"

모친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막연히 얼마쯤 될까 하고 생각했다.

소녀의 병실에 그 펜던트가 배달되었다.
나쁜 실장석으로부터 구해줬다고 경찰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소녀는 콤팩트 뚜껑을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친실장에게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전단 뒷면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이었다.
소녀와 실장석이 태양 아래 나란히 웃고 있는 그림이었다.

"우린 친구야, 언제까지나 친구야"

그림 이상으로 서투른 글씨로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고도 소녀는 아무런 감정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러나 콤팩트 안에서 넣은 기억이 없는 콘페이토가 굴러 떨어졌을 때,
그녀의 여린 마음은 감정에 복받쳐 오열할 수 밖에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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