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깊은 숲 속.
숲이라기 보단 정글이라 해야 할 정도로 깊은 녹림지대는 험한 산지를 빽빽이 덮고 있었다.
그 아래는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침침했고 떨어진 낙엽들은 마르지 않은 채 축축한 흙 위에서
습기를 머금고 썩어갔다.
가끔씩 능선 사이의 분지엔 나무가 적어지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풀밭인 걸 제외하면 나
무들과 어두운 그늘이 보이는 것의 전부인 곳.
치아아아아?! 테치아아아!!!
그곳에도, 실장석은 존재했다.
약간의 조류와 설치류를 제외하곤 햇빛도 안 드는 어두운 정글바닥에 사는 건 곤충과 그 친척
들이었다.
그중 대표 격인 육지거머리가 목덜미에 달라붙은 자실장 한마리가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
고 있었다.
정글의 나무 위를 기어 올라가 아래를 지나는 동물을 감지하면 낙하해 달라붙는 이 거머리는
사람의 손가락 정도의 크기지만 자실장에선 자신의 팔 길이와 맞먹는 크기이다. 그런 게 등에
업히는 듯 한 모습으로 목덜미에 달라붙어 체액을 빨기 시작하자 자실장의 피부가 눈에 띄는
속도로 말라가기 시작했다.
데? 데스데스우웃!
그때 그늘에서 튀어나온, 붉은색이 아니라 회색과 녹색의 오드아이를 가진 친실장이 급히 달
려와 거머리를 떼어 내려 했지만 강력한 흡반으로 달라붙은 거머리는 쉽게 떨어지지 않다가
결국 우직 하는 소리를 내며 목덜미의 살을 한 움큼 물고 떨어져나갔다.
짓쥬우우우.....
분수처럼 적록색 액체가 솟구치는 목의 상처에 손을 대려 버둥거리는 자실장을 안아든 친실장
이 울면서 그늘로 달려가자 나무 사이 여기저기서 산실장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데에?
데스우!
데스데스!
그리고, ‘이웃’의 자가 죽어 가는걸 보자 모두 달려왔다.
몇 마리가 넓은 나뭇잎에 물을 떠와 상처를 씻기는 사이 장로인 늙은 산실장은 끈적이는 즙이
나는 나뭇잎을 돌로 짓이겨 씻긴 상처를 막아 피를 멈추게 했다.
테치이....
잠시 뒤에야 겨우 혈색이 돌아오며 잠이 든 자를 내려다보며 안심한 친실장은 장로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곤 자를 안아들었다. 5마리 있던 자는 거머리와 뱀에게 먹혀 이 자가 마지막 자였
다. 게다가 이 회색 눈의 실장석은 뱀에게 물린 독이 퍼져 붉은 오른쪽 눈을 옛날에 실명했
다. 더 이상 자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된 이상 이 자실장만이 ‘회색눈’의 모든 것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다.
나무뿌리 아래에 파진 굴로 들어간 회색눈은 넓은 굴 한쪽에 깔린 마른 낙엽에 자를 눕혔다.
치이.. 치이...
데스우...
그리고 잠시 자실장의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굴 안에 있던 눅눅해진 낙엽을 들고 굴을 나갔다.
이 산실장 마을은 약 성체와 새끼를 합쳐 약 60마리의 산실장이 살고 있다.
인간과의 접촉이 거의 없는, 완전한 야생의 실장석.
이 깊은 정글엔 가까운 마을도 없었고 인간도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스테이크와 콘페이도의 존재조차 모르고 페트병과 골판지도 없다. 마을을 만들어 골판지 대신
모두 함께 굴을 파서 살고 물은 계곡에 가서 마시거나 넓은 나뭇잎에 떠오는 수밖에 없지만
들실장하곤 다른 종으로 간주되는 산실장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분충성을 내포한건 동일하지만 그 비율과 정도는 들실장보다 현저하게 낮고 자를 낳는 이웃이
있을 때마다 장로가 엄격히 선별해 바로바로 솎아내 버린다. 날씨가 온난한 이 지역에선 겨울
도 사계절이 뚜렷한 다른 지역의 가을정도라 보온재는 필요 없기에 옷과 머리칼을 뺏지 않고
그대로 계곡물에 던져버린다.
보온재가 필요 없는데도 굴에 마른 낙엽을 까는 건 땅의 습기를 피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인간에게 기생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살아갈 수밖에 없는 실장석들.
어릴 때 거머리나 거미에게 죽지 않고 성체가 되면 위협이 되는 건 뱀과 쥐뿐이다. 굴의 식량
과 자들을 물어가는 들쥐는 무섭지만 먹이사냥을 나설 때는 항상 집보기 담당으로 몇 마리의
성체실장이 나뭇가지를 들고 지킨다.
여러 가지 고난이 있지만, 이렇게 모두가 힘을 모으면 살아갈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지역에 사는 산실장의 3분의 1정도는 5~6년의 천수를 누리고 죽는다. 그리고 죽
을 때 당시에 기르던 자들을 이웃들에게 부탁하고 죽고, 이웃들은 그 자를 기른다. 이런 마을
과 종을 보존하기 위한 습성이 들실장들에겐 자신이 편하게 살기 힘든 상황에서 ‘탁아’를 하
게 되는 습성으로 변질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나.
들실장 따위하곤 다르게, 힘들고도 보람찬 나날을 살아가는 산실장들의 평화는, 이해할 수 없
는 재앙들이 일어나며 깨지기 시작했다.
그날도 평범하게 먹이를 구하러 굴을 지킬 몇 마리를 남겨두고 모든 성체실장들이 나왔었다.
산실장들은 축축한 낙엽을 헤치고 벌레의 유충을 잡거나 떨어진 나무열매를 줍고, 가끔씩 버
섯을 찾아내기도 했다.
데? 데스! 데스우.
그러다가 회색눈은 풀꽃 한 송이를 발견하고는 한 이웃을 소리쳐 불렀다
항상 어두침침한 이 정글에서 꽃은 자를 낳을 수 있게 해주는 귀한 물건이기에 꽃을 보자 자
를 낳고 싶어 하던 갓 성체가 된 이웃 산실장을 부른 것이다.
데...? 데스데스우.
얼굴을 붉히며 꽃을 받아들고는 자를 가질 생각을 하며 행복해하는 이웃을 보며 회색눈이 축
복의 덕담을 해 주려던 순간.
-두우우우우와아아아아아앙!!!!!
데이이이이?!?!
갑자기, 하늘에서 내려쳐지듯 들려온 엄청나게 커다란 소리에 놀란 산실장들이 놀라 사방으로
흩어지거나 그 자리에 엎드리며 모두 패닉에 빠졌다.
-두두두우우우우!!!! 두와아아아아아!!!! 두와앙!!!
데에에에에에!!!! 데에에에에에에-엑!!!!! 데!!!!!
회색눈도 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엎드린 채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몸 전체를 울리게 하
는 커다란 소리에 공포에 질려 눈물과 콧물을 줄줄 흘리며 목이 터져라 비명만 지르고 있었
다.
회색눈 말고도 주위에 있는 다른 산실장들도 자기 몸 크기의 반 정도 되는 팡콘덩어리를 엉덩
이에 달고 있었다. 생전 처음 듣는 커다란 소리에 놀라 본능적으로 유일한 방어수단을 사용하
고 있는 것이다.
데...데데....?
단지 장로와 나이 든 몇 마리의 산실장만이 엎드렸다가 일어서선, 고각이 안 올라가는 구조의
목을 힘껏 들어 하늘을 쳐다보려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뒤로 자빠지며 드러누운 장로의 눈에 하늘을 가린 나뭇가지들 사이로 빠르게
연달아 지나가는 커다란 그림자들이 보였다.
데에에?!
뭔지 알 수 없는 그걸 보며 귀청이 찢어질 듯한 소리에 떨던 장로와 산실장들은 그것들이 사
리지고 조용해 진 후에야 겨우 일어났다.
데스우...
데에에...?
데스...
아직도 위석이 진동할 정도로 놀랐던 산실장들이 여기저기서 나와 장로의 주위로 모였다. 다
들 눈물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고 팡콘을 달고 어기적대며 오는 엉망인 모습이었다.
데이... 데스우?
간신히 정신을 차린 회색눈도 옆에 서있는 이웃을 돌아보며 울었지만.
-털썩
이미 선채로 양 눈이 탁해져있던 그 산실장은, 들고 있던 풀꽃을 떨어트리며 뒤로 쓰러졌다.
데에에에?! 데스우? 데스우우!!!! 데...데에에에엥!! 데에엥!!
이 산실장들의 마을이 생긴 이래, 최초로 일어난 공포에 의한 위석붕괴였다.
데스....
데에에에엥....
오로로로......
오로로롱.....
그날 저녁.
산실장들은 계곡에 모여 죽을 산실장을 보며 울고 있었다.
산채로 계곡에 던져지는 분충자와는 달리 죽은 이웃은 얼굴과 옷을 잘 닦아주고 이 계곡물에
떠내려 보낸다. 죽은 산실장을 막 독립시킨 마마였던 이웃이 슬프게 우는 걸 침울하게 바라보
던 회색눈은, 약간 시든 풀꽃을 죽은 산실장의 가슴에 올려주었다.
데스우?
데스데스....
데스우....
죽은 이웃을 떠내려 보낸 뒤 장로와 나이든 산실장들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낮에 있었던 그 무서운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를 궁리했지만 장로가 본 ‘뭔
가 커다란 것들이 울부짖으며 하늘을 날아갔다’ 라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무가 적
은 분지에서 이웃이 매 같은 맹금류에게 채여 가는 일은 있었지만 아주 가끔 있는 일인데다가
새들은 그렇게 땅이 울릴 정도로 무섭고 큰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다.
결국 한밤중이 되도록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 장로와 산실장들은 마을 주변을 감시하는
담당을 늘리기로 하기로 하는 정도로 결론을 내곤 해산했다.
데스우....
해산하고 돌아가는 길에, 회색눈이 불안을 떨치지 못하겠는 듯이 한번 울었다.
그것이 이 산실장 마을에 일어난 첫 번째 재앙이자, 연이어지는 알 수 없는 재앙의 시작이었
다.
그날 이후로 해가 여러 번 떴다가 졌지만 별다른 일은 없었다.
그 알 수 없는 커다란 소리에 대한 공포와 이웃이 죽은 슬픔을 추스른 산실장들은 차츰차츰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데스우
데스!
데스데스우~
며칠간은 먹이사냥도 안 나가고 굴에 숨어 떨고 있었기에 모아둔 식량이 적어지자 간만의 먹
이사냥엔 자실장까지 데리고 나가기로 해서 40여 마리의 산실장이 굴에서 우르르 몰려나오고
있었다.
마을에 남은 성체는 엄지실장과 구더기들이 있는 굴의 입구에서 나뭇가지를 들고 손을 흔들며
배웅을 하고 있는 임신한 성체 한 마리뿐이다.
이 임신한 실장은 며칠 전에 죽은 산실장을 독립시켰던 친실장이었다. 갓 독립하고 자를 가질
희망에 부풀어 행복의 한가운데에 있던 그 자의 죽음에 크게 상심한 이 산실장을 안쓰러워하
던 마을의 이웃들이 굴 가까이에 핀 꽃을 발견해 만장일치로 건네준 것이다.
며칠 만에 크게 부푼 배를 쓰다듬으며 뎃데로게 거리는 그 이웃을 부러움과 흐뭇함이 섞인 눈
으로 쳐다보던 회색눈도 장로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테치? 테치?
굴에서 멀리 나온 적이 없는 자실장들이 분지에 도착하자 들떠서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런
자실장들을 성체들이 따라다니며 위험한 것과 먹을 걸 구분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며
회색눈도 먹이를 찾기 시작했다.
데스우~
한참을 낙엽을 뒤집고 땅을 긁던 회색눈은 썩은 나무둥치를 부스러트리다가 커다랗고 통통한
풍뎅이 유충을 발견하고 기뻐하며 집어 들었다.
데?!
그러다가, 문든 먼 능선을 올려다본 회색눈이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굳어졌다가 급히 장로를
불렀다.
데스! 데스!
데스우? ....데?!
능선에는, 인간이 있었다.
녹색과 검정색의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머리에도 이상한 두건을 쓰고 있어 나무들에 섞여 잘
안보였지만 확실히 인간이다.
데스우!
데스?
데!
테치!
인간은 두려운 존재, 라고 태교 때부터 들은 산실장들은 장로의 외침에 모두 풀숲에 납작 엎
드렸다.
실장석들이 입고 태어나는 녹색의 옷은 자연 속에선 훌륭한 위장색인 것이다.
데이...
풀 속에 섞인 채 장로는 조심스럽게 인간들을 살펴봤지만 매우 멀리 있는 인간들은 사방을 주
의 깊게 살피며 능선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인간들은 뭔가 검고 긴 막대기를 들고 있었지
만 그것이 뭔지 모르는 장로는 거리가 있으니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데스우...
장로가 낮게 울자 사방에 흩어져 엎드려있던 산실장들이 자실장들을 데리고 서둘러 굴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실장들도 두려운 인간을 처음 본 공포에 떨면서도 조용히 따
라왔다. 조금의 위협이라도 느끼면 바로 드러누워 손발을 버둥대며 울부짖기만 할 분충을 미
리 솎아낸 덕분에 산실장들은 조용히 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데? 데스우?
굴을 지키던 임신한 산실장이 평소보다 빨리 돌아온 동족들을 보고 의아해 했지만 그 무서운
인간을 본 공포와 굴로 돌아온 안도감에 산실장들은 털썩 주저앉을 뿐이었다.
한참 뒤에야 진정한 산실장들은 구해온 먹이를 굴 앞에 모았다.
인간을 보고 도망치느라 조금 잃어버리긴 했어도 작은 버섯, 풀의 열매, 먹을 수 있는 잎사귀
와 곤충들이 제법 모이자 회색눈은 아까 자신이 발견한 풍뎅이의 유충을 들고 장로에게 울었
다.
데스?
데? 데스데스우
장로가 고개를 끄덕이자 회색눈은 유충을 들고 굴로 내려갔다. 굴에 들어가자 밥을 본 엄지들
이 양손을 들고 레치거리며 뛰어왔지만 회색눈이 구석에 누워있는 자실장을 가리키며 울자 모
두 실망하면서도 물러났다.
데스우...
착한 엄지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회색눈이 자실장에게 다가갔다. 거머리에 물린 회색눈의 자
실장은 상처는 거의 나았지만 그래도 오늘의 먹이사냥엔 데리고 가지 않았다. 일단 약초를 떼
어 낸 회색눈은 물렸던 자리가 하얗게 새살이 돋아 자국이 남은걸 보곤 안심했다.
데스! 데스우!
테이....? 테테! 테치~
자를 깨워 유충을 건네 준 회색눈은 커다랗고 부드러운 고기에 기뻐하며 유충을 양 손으로 꼭
쥐고 먹는 유일하게 남은 자, 마지막 자인 자실장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굴 바깥으로 나왔
다. 모두 모여서 밥을 먹고, 굴에 있는 마을의 자들에게도 밥을 가져다주어야 하는 것이다.
3주정도가 지나 완전히 원래의 생활로 돌아온 산실장들은 그날도 먹이를 찾으러 나서고 있었
다. 다시 비축이 생겼기에 자실장들은 굴에 두고 또 그 임신한 이웃이 지키기로 하곤 성체들
은 모두 굴 바깥으로 나섰다.
이웃들이 모두 떠난 뒤.
자실장들이 굴 안 여기저기서 엄지나 구더기들과 놀며 푸니푸니를 해 주거나 엄지를 안고 어
설프게나마 텟테로케 거리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임신한 한실장도 노래
를 부르기 시작했다.
뎃데로게~뎃데로게~젯데로게에에~
‘레~’
‘레루~’
데? 데에! 데스데스!
그때, 이미 다 자란 태낭속의 자들이 마마의 노랫소리에 희미하게 울음소리를 내는 걸 처음으
로 느낀 산실장은 최고의 기쁨을 맛보며 목청을 높였다.
데스데스우~ 뎃데로게에~ 보에에에에~~~ 보에에에~~~~~
-쿠콰과아아아아앙!!!!!!
-구우우웅....
데.....?
굴에서 먼 능선까지 올라가 먹이를 찾던 산실장들은, 멀리서 낮게 울려 메아리치는 묵직한 소
리를 듣고 모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능선 위에서 멀리까지 내려다보이는 숲
에서, 검은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데? 데?
데에에...
또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에 불안해진 산실장들은 모두 수풀로 뛰어가 엎드려선 고개만
들고 그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쿵... 쿠우웅...
몇 번 더 그 소리가 멀리서 울리고 흙먼지가 더 일어난 후, 조용해졌다. 그러자 그때까지도
먹이도 다 떨어트린 채 엎드려있는 산실장들을 장로가 급히 재촉해서 일으켰다.
그 흙먼지중 하나는, 굴이 있는 근처에서 올라왔던 것이다.
데히....데히.....
데스우....데.....
데히....데뎃?!
먹이도 다 버리고 숨이 턱에 찰 정도로 급히 굴을 향해 달리는 산실장들. 그 맨 앞에서 달리
던 회색눈은 굴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발을 멈췄다.
실장석의 걸음으로 굴까지 2분정도 걸릴 정도로 가깝고 익숙한 그 주변은, 동그랗게 땅이 팬
채 산산 조각난 나뭇조각과 흙먼지를 뒤집어 쓴 풀들, 그리고 매캐한 연기가 가라않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데스우....?
장로도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코를 킁킁대며 조심스럽게 다가가다가 매캐한 냄새가 강해지자
얼굴을 찌푸리며 물러났다. 그리고 급히 굴로 다시 뛰기 시작했다.
회색눈도 끔찍한 모습이 된 숲과 굴의 모습을 겹쳐보며 온 힘을 다해 달리고 있었다.
데!
수풀을 헤치고 굴이 보이는 곳으로 나온 산실장들은,
떠나기 전의 모습 그대로 멀쩡한 굴과 주변을 보고 안심했다.
땅이 패거나 나무가 부서지지도, 알 수 없는 매캐한 냄새가 나지도 않았다.
데스우...
긴장이 풀린 회색눈은 제일 먼저 굴로 들어갔다.
데스우?
데에에...
데?!
그리고 소리쳐서 이웃을 부르자, 굴 안쪽에서 괴로워하는 듯한 그 이웃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색눈이 급히 굴 안쪽으로 들어가자.
텟테로게~
텟테로게~
레치~
데에이?
갑작스럽게 출산이 시작 된 듯 굴 안에서 자를 낳는 이웃의 모습과 이미 점막이 핥아져 자실
장과 엄지가 된 새로운 자들이 보였다.
놀란 회색눈은 일단 굴 바깥으로 소리쳐서 장로와 이웃들을 부르곤 급히 점막에 쌓인 구더기
실장을 한 마리 안아들었다.
레후~?
데스우~
물이 없는 굴 안에서 점막은 빨리 마르지만 다행이도 친실장이 점막을 빨리 핥아주고 있었고
회색눈과 이웃들도 돌아왔기에 자들이 구더기가 될 위험은 없어보였다.
그리고 들어온 장로와 이웃들이 모두 힘을 합쳐 물을 떠오고 점막을 핥아주며 법석을 떤 끝
에, 8마리의 자실장과 한 마리의 엄지실장이 훌륭하게 태어났다.
테치이~
테치~
레치~
데스우~ 데스웅~
일제히 ‘붙임성’을 보인 후 품에 안기려 우글우글 모여드는 귀여운 자들을 보다가 행복하게
젖을 먹이는 이웃을 보며 회색눈과 다른 산실장들도 미소를 지었다.
알 수 없는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고 이웃이 죽는 슬픈 일이 있었지만 새로운 자들이 태어났
다.
이 자들은 새로운 희망의 상징인 것이다.
데스우웅~
행복해하는 이웃을 바라보던 회색눈도 이웃을 지나쳐 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자신에겐 단 한 마리의 자만이 남아있지만 자신도 자를 훌륭하게 키우고 그 자가 다시 자를
낳는 모습을 그리며 자를 돌보려 가는 것이다.
-꾹
데에?
그때, 자를 안고 앉아 있던 이웃이 지나치는 회색눈의 옷자락을 잡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의아해하며 아래를 내려다 본 회색눈은,
배가 터져 바닥에 쓰러진 상반신에서 사방으로 태낭과 내장을 흩뿌린 채 자신의 옷자락을 당
기는 산실장의 적록색 피투성이 얼굴이 자신을 올려다보는것과 눈이 마주쳤다.
데에에에에에에에에!!!!!
-쿠콰과아아아아앙!!!!!!
곧 태어날 자들을 위해 행복의 노래를 불러 주던 임신한 산실장은, 몸에 충격을 느끼는 순간
굴 안에 있던 자들이 허공으로 붕 떠오르는 모습을 봤었다.
그리고 자신의 몸도 떠오른 걸 깨달은 순간, 자들이 일제히 폭발하듯 배가 터져나가며 허공에
적록색 액체와 풀어진 내장이 가득 흩날리는, 이상하게 천천히 흘러가는 그 장면을 똑똑히 봤
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조금 무너져 흙더미가 쏟아지는 굴의 벽에 그 ‘자들이었던’ 물체들이
철썩철썩 달라붙는 광경을 멍하니 보는 자신의 시야 아래에서, 찢긴 뱃가죽과 내장의 사이로,
녹색의 태낭들이 날아오르고 있었다.
.......!
그것이 자신의 배가 찢겨 나온 태낭, 자들이라는 걸 안 순간 산실장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갑자기 바닥이 올려쳐온 듯 한 그 충격에 자들과 산실장이 떠올라 터지는데 걸린 시간은 2초
도 안 되지만 그 2초 사이에 모든 게 끝났다.
데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린 산실장은 이미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는 몸을 질질 끌고 일어나려했지만,
하반신은 이미 없었다.
데! 데헤에....!
그때 산실장은 주위 여기저기에 흩어진 태낭을 보고 비명을 지르곤 필사적으로 기어가려했다.
태낭은 출산 후 점막으로 바뀌어 잠시 동안 보호를 해 주지만 오래 방치되면 오히려 구더기실
장의 초기변이를 막고 굳어지면 자들이 질식사를 하게 된다.
본능적으로 그걸 알 고 있는 산실장은 어떻게든 태낭채로 뱃속에서 꺼내진 자들의 태낭을 제
거해주려 움직이려 했지만 기어가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데...히....데에에에.....
방금 전만 해도 뱃속에서 레~ 거리며 힘껏 대답을 해주던 자들이, 지금은 태낭채 흙바닥에 내
팽개쳐진 채 죽어가고 있다.
그걸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산실장의 상반신 앞에서 몇몇 태낭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아마 뱃속에서 혹은 떨어질 때 충격을 받고 태낭 속에서 적록색 죽이 되어있었지만
운 좋게 낙엽이 쌓인 곳에 떨어지거나 저 멀리 있는 하반신채 떨어진 태낭은 무사한 것 같았
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태낭이 굳어가자 괴로움을 느끼는 듯 태낭안의 구더기들이 꿈틀대
기 시작했다.
데히....! 데아아아아아!!
아직 ‘태어나지도 못한’ 자들이 괴로워하는 그 모습에 산실장은 피눈물을 흘리며 손을 뻗었지
만 그게 할 수 있는 것의 전부. 구더기들은 본능에 따라, 팡콘조차 할 수 없는 구더기실장의
유일한 방어수단인 둥글게 몸을 만 모습으로 부들부들 경련하다가 질식해 죽어갔다.
데아아아아!!!
모든 태낭이, 구더기실장이 움직임이 없어진 걸 본 산실장은 처참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러다가, 회색눈이 뛰어 들어왔던 것이다.
데이이?!
그러나 굴 입구의 참상을 본 순간 멍하니 굳어진 채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회색눈에게 소리치
던 산실장은, 마지막 생명을 다해 기어갔다.
그리고, 현실도피를 위해 행복회로를 발동시키고 있던 회색눈의 옷을 잡아당겼던 것이다.
데에에에에에에에에!!!!!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
굴에는, 굴 안의 자들에겐 아무런 일도 없다.
이제 곧 이웃이 자를 낳을 것이다.
바깥은 아무런 이상이 없는 굴에 안심하며 들어간 순간,
입구 쪽에 동강난 채 죽어가는 임신한 이웃을 발견한 순간 큰 충격에 발동 됐던 그 행복회로
에서 깨어나 비명을 지르는 회색눈의 아래서, 이웃의 손이 툭 떨어졌다.
데이이이?!
데스! 데스!
데스우우우우!!!
그 뒤로, 먼저 굴로 들어간 회색눈의 비명을 듣고 장로와 이웃 산실장들이 우르르 들어와선
끔찍하게 박살난 산실장의 시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데스데이슷?!
-툭
....데!
소리를 지르며 굴 안쪽으로 뛰어 들어가는 한 산실장이 어깨를 치고 지나가며 정신이 든 회색
눈도 급히 굴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굴의 안쪽엔 마을의 자들과 함께 자신의 유일한 자가 있다.
데스우! 데스우!
굴 안에서 멍하니 서 있는 이웃들을 밀치고 나선 회색눈의 눈에, 적록색 세계가 펼쳐졌다.
바닥. 낙엽. 천장. 무너진 벽.
모든 곳에 적색과 녹색의 액체와 고기. 그리고 질척하게 젖은 옷 조각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데에에에에!!!
오....오로로로롱....! 오로로롱!
데에에엥.... 데에에에엥!!!
그때서야 충격에서 벗어나 산실장들이 울부짖으며 자들을 주워 모으는 가운데를 회색눈이 비
틀거리며 걸어갔다.
데스우....
무너진 벽의 흙에 하반신이 묻힌 자실장 한 마리.
이미 눈이 탁해진 채 죽은 그 자실장의 목에 하얀 상처자국이 있는 걸 확인한 회색눈은 그 자
리에 쓰러져서 오열했다.
데아아아아아!!!!! 데아아아아아!!!!!!!
마지막 자.
다시는 자를 가질 수 없게 된 자신의 마지막 희망.
그 자의 허무한 죽음에 울던 회색눈은 울면서도 자의 손을 잡았다.
하다못해 깨끗하게 만들어 계곡에 떠내려보내주려고 한 순간.
-주르륵
하반신이 흙에 묻힌 게 아니라,
이미 배가 터져 두 조각으로 찢긴 몸을 흙이 덮었을 뿐이었던 자실장의 상반신은 쉽게 들려
올라왔다.
데....데.....데아아아악!!!!
자실장의 손을 놓은 회색눈은 뒤돌아서서 정신없이 굴 입구로 향해 뛰었다.
이게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며, 꿈이길 바라며 뛰던 회색눈은 입구에서 발이 걸려 쓰러졌다.
오.....오로로로로로!!! 오로로로롱!!!! 오와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대로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피눈물을 흘리던 회색눈의 귀에, 작은 소리가 들렸다.
레....
데!?
사방에서 들리는 이웃들의 통곡 소리.
굴을 지키던 이웃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젓는 장로.
아직도 살아있는 자가 있을 거라 믿으며 시산혈해를 뒤적이는 산실장.
그런 소란의 가운데서, 희미하게 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회색눈은, 동강난 하반신의 내장 사이에 묻
힌 태낭 하나를 발견했다.
물이 아닌 친실장의 피에 젖어 아직 마르지 않았기에 살 수 있었던 단 한 마리.
회색눈이 급히 태낭을 꺼내 핥아주자 구더기실장의 모습인 채로,
그 자는 회색눈을 올려다보며 레후~ 거리며 천진하게 활짝 웃었다.
그 애처로운 탄생과 웃는 얼굴을,
그래도 살아 있어준 마을의 마지막 자를,
회색눈은 꼭 끌어안아주며 다시 울었다.
데스우....
데이.....
데.........
다음날.
모든 자들을 잃은 마을의 산실장들은 넓은 잎사귀로 만든 보따리를 하나씩 안은 채 줄지어 정
글 속을 걷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피난민의 행렬 같은 그 줄의 맨 끝에, 유일하게 남은 구더기실장은 안은 회색눈
이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연이은 참극과 공포에 장로는 결국 반쯤 무너진 굴을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기로 결정
한 것이다. 결정이 내려지자 밤새 그나마 남은 먹이를 무너진 굴속에서 파낸 산실장들은 정처
없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 산실장들을 덮친 비극의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상 굴을 옮긴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지만,
결국 실장석인 산실장들로선 정든 굴을 버리고 도망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데이....
그리고 그저 걸었다.
마을을 옮길 장소를 정한 것도 아니고 가능한 멀리 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기에 일단 장로 산
실장은 다른 계곡이 나올 때까지 가기로 했지만 그게 어디 있는지는 모른다.
데스!
그때, 뭔가를 발견한 장로가 울음소리를 내 행렬을 멈췄다.
나무와 나무의 사이, 성체실장 가슴정도의 높이에 은색의 굵은 거미줄이 수풀에 가린채 쳐져
있었다. 그러나 흔히 보던 거미줄과는 달리 매우 굵고 이상한 냄새가 나는 그 거미줄을 살펴
보던 장로가 결국 거미줄을 끊고 지나가려 했지만 거미줄은 끊기지 않았다.
데? 데이스으으!
장로가 왠지 끊기지 않는 거미줄을 몇걸음 밀고 나간 순간.
-뻐어어어엉!!!
데
데아아악!!!
레훗?!
갑자기 나무중 하나에서 귀가 멀 듯한 큰소리가 울리며 장로의 마지막 울음소리를 끊어버리
곤, 거센 충격을 받은 회색눈을 앞에 서 있다가 날려 온 이웃의 몸이 부딪혀 날려버렸다.
.........!! .............!
............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과 데굴데굴 굴러가며 빙빙 돌던 시야가 멈추고 잠깐 정신을 잃었던
회색눈은 바로 일어나 품안의 구더기를 내려다봤다. 날려온 이웃의 몸이 방패가 된 것인지 그
충격과 거친 바람 속에서도 구더기는 눈을 뒤집고 경련을 일으키고 있긴 해도 살아있었다.
고막이 터진 듯 윙윙거리는 소리만 울리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지만 회색눈은 주위를 둘러봤
다.
........!
행렬의 뒤쪽에 있던 이웃들은 모두 산산조각 나서 팔다리가 사방에 굴러다니고 있었지만.
장로가 있었던 앞쪽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
터져버린 고막은, 자신의 길고 긴 비명조차 전해주지 못했다.
데슨.... 데슨....
해가 저물어 가는 숲속.
어느 정도 고막이 재생된 회색눈은 울면서 구더기를 안고 걷고 있었다. 또다시 알 수 없는 일
이 일어나 마을의 모두가 죽었다.
레후...?
데? 데스우....
그러나 아직 마지막 희망이 있다.
자신은 자를 낳을수 없는 몸이지만 이 자가 고치를 만들어 자라준다면 새로운 마을을 만들수
있다. 그때까지 이 자를 돌보는 게 회색눈의 마지막 사명이었다.
레후~ 레훙~
꼬리를 탁탁 치며 먹이를 조르는 구더리극 내려놓은 회색눈은 낙엽을 들춰보다가 땅을 조금
파서 지렁이를 잡았다.
레훙~
작게 토막낸 지렁이 고기를 입에 물고 행복하게 우물거리는 구더기를 보며 회색눈은 다시한번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뎃데로게~ 뎃데로게~
따스한 햇볕이 비춰지는 나무뿌리 아래서 회색눈은 행복하게 노래하고 있었다.
걷고 또 걷다가 우연히 도착한 다른 계곡의 근처에 마을을 만들기 적당한 곳을 찾아낸 회색눈
은 이동을 멈췄다.
그리고 그곳에 굴을 파기 시작했다.
혼자선 자신과 구더기가 들어갈 작은 굴을 파는것도 벅찼지만,
얼마뒤 그 굴 안에서 고치를 만든 구더기를 보는 순간 모든 고생과 노력이 보답받았음을 알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었다.
보통 고치에겐 태교의 노래를 불러주지 않지만 자를 가질수 없는 회색눈의 갈곳없는 모성이
무엇보다 소중한 희망의 존재에게 노래를 불러주게 하고있었다.
뎃데로게에~ 보에에에~~
이제 엄지가 될 이 자가 더 커서 성체가 되면 자를 낳을수 있다. 예전같이 여럿이서 함께 살
수 있다.
게다가 이 구더기짱은 고치를 만들기 전날, 와타시를 마마라 불러주었다.
집단생활, 집단육아를 하는 산신장들도 친실장과 친자는 확실히 구분한다. 설령 죽은 이웃의
자를 기른다 해도 다른 ‘아줌마’를 ‘마마’라 부르는 일을 드문일이다.
하지만 구더기는 회색눈을 마마라 불렀다.
다시는 들을수 없을거라 생각했던 그말에 회색눈은 다시 찾아온 행복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자가 커서 자를 낳는 모습을 보면 원없이 눈을 감을수 있을것 같았다.
젯데로게~
그런 행복속에 회색눈은 성실하게 고치를 돌봤다.
햇볕이 좋은 날은 습기찬 굴속에서 안고 나와 햇볕을 쪼여줬다. 고치가 따듯해야 자의 성장이
활발해지는 것이다.
-두두두두두두두....
데!
그러나 그 행복을, 악몽의 시작인 그 소리가 깨트렸다.
기억에 박힌 그 소리에, 하늘을 나는 그 무서운것이 여기까지 쫓아왔다는걸 안 회색눈은 급히
고치를 안아들고 서둘러 굴로 뛰어갔다.
-솨아아아아아아
데...?
그러나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끝없이 들리던 옛날과는 달리 이번엔 그 소리가 금방 작
아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갑자기 숲속에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하며 나무와 바닥이 촉촉히 젖기 시작했다.
데에이...?
여름엔 안개비가 흔하지만 지금은 안개비가 올 때가 아니라는걸 아는 회색눈이 의아해한순간.
데엑?! 케에에엑!!!
‘안개비’ 에 젖은 회색눈의 눈과 코, 입과 귀에 격통이 닥쳐왔다.
데!!! 데!!! 데에!!!
코와 눈에서 피가흐르며 눈물과 콧물이 넘쳐 흐르자 회색눈은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고치를 들
고 굴로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고치를 낙엽위에 올려 두곤 황급히 굴을 나와 계곡으로 달려갔
다.
데히! 데스우...
저 ‘안개비’ 가 아프게 했다는걸 깨닫고 얕은 계곡가에 뛰어들어 뒹군 회색눈은 물에 몸이 담
궈져 통증이 좀 덜해지자 돌 위로 기어올라왔다.
데....데에.....게보옥!!!
그러나 고통은 덜해졌지만, 갑자기 치솟는 메스꺼움을 느끼고 주저않아 구토를 시작했다.
데게에에에엑!! 게에에엑!!!
뱃속에 든걸 모두 토해내고도 내장까지 토해낼 기세로 헛구역질은 하던 회색눈은, 토사물 위
로 쓰러져 기절했다.
데에에에....
며칠이 지났지만 기절했다가 간신히 굴로 돌아온 회색눈은 힘이 없었다.
그 무서운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지만 내릴때가 아닌데 내렸던 안개비 처럼, 이상하게도 낙
엽이 질 때가 아닌데도 갈색으로 말라붙은 잎사귀들이 팔랑이며 떨어지는걸 올려다보던 회색
눈은 들고 있던 죽은 벌레를 입에 넣고 씹었다.
몸에 힘이 없어도 왠지 숲속에 벌레들이 많이 죽어 있어서 그나마 먹이를 구할수 있었지만,
데....데웨에엑!!!
잠시뒤 회색눈은 먹은걸 모두 토해냈다. 며칠동안 계속 메스꺼움에 시달리며 구토를 한 회색
눈은 뼈와 가죽만 남은듯한 모습으로 바싹 말라선 머리카락카지 빠져가고 있었다.
데이....
스실스실 빠져가는 소중한 머리카락을 보며 회색눈도 자신의 몸이 이상하다는걸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자가, 자신을 마마라 불러준 엄지가 고치에서 나오는 모습을 보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식을 가르쳐주기 전까진 죽을수 없었다.
데스우... 뎃데로게....
옆에서 햇볕을 받고 있는 고치를 회색눈이 퀭한 얼굴로 미소를 지으며 쓰다듬었다.
-퍼석
데에?
고치가,
세게 힘을 준 것도 아닌데 마른소리를 울리며 우그러졌다.
데에에?! 데스우우?!
고치를 만들어 엄지가 된 마을의 자들을 봐 온 회색눈은 이렇게 쉽게 부서질리가 없는 고치가
찢어진것에 놀라며 고치를 들여다봤다.
그리고.
고치안에서,
팔다리가 조금 길어진채 흐물흐물하게 부패해 있는 구더기와 눈이 마주쳤다.
-철퍽
그리고 그 순간, 불어터진 구더기의 얼굴에서 녹색과 적색의 안구가 흘러내려 고치 바닥에 고
인 썩은 고기 국물에 떨어지며 질척한 소리를 울렸다.
데....데....
그 이상한 안개비에 고치도 젖었던 것.
데.... 데이이.....
이미 안에서 죽어 썩어가는 고치를 돌보며 며칠을 견뎌왔다는것.
이 자가 마지막 희망이었다는것.
다시 마을을 만들수 없다는것.
마마라고 불러주는 소리를 다시는 들을수 없다는것.
모든걸 깨달은 회색눈은 마지막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게, 끝나있었다는것.
데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데하아아아악!!!!!!!
-파기기기긱
케...케에엑!!!
절망감에 비통한 절규를 지르던 회색눈이 가슴을 움켜쥐더니, 고치 옆에 쓰러졌다.
데...데스...우...
-파긱!
데케엑!!!!
쓰러진 채 고치를 향해 마지막 힘을 다해 내밀던 손이, 한번 크게 떨리더니 고치에 닿지 못하
고 바닥에 축 늘어졌다.
회색눈이 꿈꿨던 새로운 마을의 마지막 모습은, 작고 초라한 구멍 하나와 썩은 고치 옆에 쓰
러진 산실장 한 마리의 시체라는 모습이었다.
1964년 벌어진 베트남전에 개입한 미군은 정글에 숨어 게릴라전을 펼치는 베트콩(남 베트남
게릴라) 들을 상대하는데 애를 먹었다.
정글에서의 이동을 위해 헬기가 대량으로 사용 되었고.
당시 신형소총인 M-16을 든 미군이 정글을 헤맸다.
포격을 동원해도 넓은 정글 어디 있는지 모를 베트콩에겐 거의 효과가 없었고.
정글에 가득한 부비트랩에 병사들을 희생되어갔다.
결국 해충구제를 명목으로 고엽제의 살포까지 감행해 베트남인은 물론 미군과 참전국가의 병
사들에게 심각한 피해와 후유증을 남기는 행위까지 감행하였으나 결국 1973년 철수하며 미국
이 유일하게 이기지 못한 전쟁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끝-
실장석에게 일어난 사건들은 베트남전 설명 순서대로입니다.
헬기소리에 놀라서 죽고, 탄착충격에 몸이 터져 죽고, 수류탄 걸어둔 철사 밀어서 죽고, 결국
엔 베트남전의 상징 고엽제....
원래는 이것저것 더 있었으나 분량과 내용 때문에 제외했습니다.
굶주린 베트콩들이 산실장들을 발견하고 달려와 허겁지겁 산채로 뜯어먹는다던지...
베트남전을 다룬 대표적 소설인 안정효 작가님의 '하얀전쟁'을 참고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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