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장펜던스데이 : 실장 외계인

 


그 어느 날이었다. NASA의 중대 발표가 있었다. 목성 궤도 외곽에서부터 거대한 인공 구조물이 지구를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었다.그것은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증거였다. 사람들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은 평화로움을 숭상하는 ET 같은 외계인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느 존재들보다 폭력적이고 잔인한 존재들이었다.



NASA의 발표 일주일 후 그들은 지구에 도착했다. 샌프란시스코만한 크기의 거대한 우주선에서는 엄청난 수의 전투기 비슷한 그 무엇이 쏟아져 내렸다. 놀랍게도 그것은 날아다니는 데스쿠터를 탄 실장석이었다. 아니 외계 생명체임이 분명했지만 그것은 누가 보아도 실장석이었다. 

"맙소사"

그들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아 인류의 저항의지를 꺾어놓았다. 그들이 쏘는 녹색점액질 비슷한 그 무엇은 가공할 생화학 무기였다. 끔찍한 냄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맞는 즉시 전투 의지를 잃게 되는 그것은…

그래, 실장석들의 똥이었다. 문제는 이 외계 실장석들이 그 똥을 마하 20의 속도로 레일건처럼 사용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 날아다니는 데스쿠터에 장착된 레일건에서 발사되는 마하 20의 실장 똥은 전투기건 전함이건 탱크건 방탄조끼건 무엇이던 한 방에 파괴하기에 충분했다. 

북미 대륙 전체의 방공 전력이 불과 2시간 반 만에 초토화 되었다. 미국은 급기야 핵미사일까지 동원했지만 공중에서 요격되었다. 사정은 세계 어디던 비슷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상공에서 ICBM을 자폭시켜 수백만기의 전투 데스쿠터와 외계 실장, 그리고 수백만의 러시아 시민들을 맞교환했지만 그 처절한 희생도 보람없이, 크렘린 궁에는 50미터 규모의 실장똥이 쌓였다. 결국 러시아도 항복 선언을 했다. 



외계 실장과의 전쟁이 벌어진 1개월 반만에 UN은 인류의 패배를 인정한다. 물론 세계 각지에서 게릴라전이 이어지고는 있었지만 적어도 더이상 국가 단위 규모로 조직적 저항을 하는 인류의 세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외계 실장들의 기술력은 인간을 아득히 압도하고 있었고, 더 영리했으며 더 잔인했다. 

UN 사무총장과 세계 각국의 대통령, 수상들이 그 '실장석' 녀석들에게 머리를 숙이며 굴욕적인 항복 문서에 조인하는 모습은 충격을 넘어 실소를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다 싸인을 한 데스우?"
"네, 다 했습니다"
"데프프, 닌겐들은 독라인 지배자가 많은 것이 이상한데스우" 



이후 세상은 거짓말처럼 뒤바뀌었다. 외계 실장석들은 우주선에서 내려와 인간들을 노예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모든 과자 공장들은 그 생산을 멈추고 콘페이토만을 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스테이크는 실장석들의 식사가 되었다.

외계에서 내려온 실장석들 뿐만 아니라 지구에서 살던 실장석도 마찬가지였다. 외계 실장석들은 지구의 실장석들에 대해서도 인간들의 학대나 반항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인간들은 실장석이라는 이상 생명체의 기원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인간과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지능이 높은 생물인데 어째서 정작 자신들이 직접 문명을 세우거나 무언가를 생산해내지 못하는가. 어째서 그렇게나 근거 없이 인간들을 곧잘 "노예"라고 부를 정도로 고자세인 것인가, 생물학적으로 최약체에 가까운 생명체가 어떻게 멸종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인가... 

간단했다. 인간을 노예로 삼았었으니까. 어느 시기, 인간은 이미 그들의 노예였던 것이다. 아마도 언젠가의 과거 속에서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고도로 발달된 외계 실장석에 의해 인간들은 그들의 지배를 받았을 것이다.

다만 인간들을 노예로 부르는 세월이 너무 길어지자 편한 생활에 익숙해지고 직접 무언가를 하는 대신 모조리 인간에게 일을 떠맡기다보니 결국 그들은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줄 모르게 되어 문명이 퇴화되고 오늘날의 저질 생명체가 되어 오히려 인간에게 학대받았을 뿐인 것이지. 



모든 인간들은 실장석을 위해 살아야했다. 외계 실장석이고 지구 실장석이고 관계없이 모든 지구인들은 그들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든 해야했고, 그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심지어 실장석을 해하려 했다가는 우주 모선에서 감지되어 곧바로 체포되고 처형당했다.

인간들이 살지 않는 빈 집에는 실장석들이 들어가 살게되었다. 물론 실장석이 들어간 집은 채 한달도 되지 않아 엉망이 되었지만 실장석은 그러면 그 집을 버리고 옆 집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게다가 실장석이 주택가에 들어오게 되면 그 끝을 알 수 없는 더러움에 인간들이 공원이나 길가로 내몰렸다.

실장석의 개체수가 폭증하기 시작했다. 이미 인류 정부가 제 노릇을 못하는 가운데 정확한 숫자를 체크할 수는 없었지만 사실상 천적(인간)이 사라졌고 식재료가 풍부하게 공급되는 이상 실장석들의 출산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치직- 치직- 곧 인류의 날이- 치직- 다시 올 것입니다. 그들의- 치직- 은, 당장은 절망처럼 보일지라도, 치직- 의- 날은 곧 올 것입니다"


인류 레지스탕스들은 그 조짐을 빠르게 깨달았다. 실장석의 인구 문제는 심각함을 넘어 재앙 수준이었다. 인간의 아파트 한 동에 거주하는 실장석만 수십만 마리가 넘었다. 출산철이 되면 더 늘었다. 

아무리 인류의 식량생산능력이 실장석을 위해 전용된다 하더라도 이미 천억을 넘겨 경이적인 숫자의 개체로 불어난 실장석들을 모두 지탱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게다가 한결같이 입맛이 고급화 된 이 실장석들은 이미 콘페이토와 스테이크가 아니면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콘페이토와 스테이크의 공급이 수요에 맞추지 못하기 시작했다. 


"스테이크가 아니면 먹을 수가 없는 테치!"
"무능한 똥닌겐!"
"데샤아아아아!" 

원나라 시대, 한족 다섯 가족이 몽골인 가족 하나를 부양했다고 하던가. 처음에는 한 인간 가정이 실장석 일가 하나씩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인간 가정 하나가 실장석 500마리를 부양해야 하는 꼴이었다. 당해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실장석을 돌보는 인간들은 스트레스를 못 이겨 죽거나, 부양을 실패한 죄로 외계 실장석들에게 처형당하거나,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먼 숲으로 도망치기 시작했고 남게 된 실장석들은 굶다 못해 스스로를 잡아먹기 시작했다. 



외계 실장석들은 몰라도, 지구의 실장석들은 철저히 쓰레기 같은 족속임에는 틀림이 없는 생물이다. 오만하고, 분별 없으며, 생산성이 없는 무능한 생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똥과 새끼가 전부인 열등한 생물. 


지구를 지배하기 시작한 외계 실장석들 입장에서도 그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자신들의 전설에 따라 머나먼 우주로 떠나 살기좋은 행성을 찾아내어 그 별의 미개한 원숭이들을 노예로 부리며 진화시키고 거대한 석축 문명을 발달시켰으며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다고 알려진 고대의 조상들. 

피나는 노력 끝에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그 별(지구)를 찾아내었지만 정작 그 별은 닌겐이라는 원숭이 노예들이 지배하고 있었으며 자신들의 조상은 피눈물 나는 처지에서 학살당하고 있는 비참한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것을 구해내었건만 이미 자신들의 조상은 철저히 미개하고 저능하며 무능한 민폐 벌레로 전락해있었다. 사회성이라고는 오로지 가족 단위의 이기적인 단계에만 남아있었으며 그것조차도 일부에 불과했다. 그저 눈 앞에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배 부르면 똥을 싸고, 살만하다 싶으면 새끼를 낳는 것이 전부인 철저히 미개한 생물로 퇴화한 자신들의 조상이라니. 


사령관 실장에게 부사령관 실장이 다가왔다.

"이대로라면 우리까지 굶어죽을지도 모르는데스. 우리의 조상은 분별이라는 것이 없는데스. 끝없이 새끼를 낳기만 할 뿐인데스"
"............."
"아무래도 지구는 포기하는 편이 좋은데스"
"그것은 안되는데스!"
"이 별의 주인은 이미 닌겐의 것인 데스. 비록 우리가 그것을 역전시켰다고는 하나, 이대로라면 기껏 만든 문명은 물론이요 아예 이 별 자체가 다시 문명을 잃고 원시의 별로 돌아가버릴 뿐인데스"
"..........."
"이 별을 닌겐에게 돌려주는 것이 오히려 우리의 조상들이 최소한의 삶이라도 영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인데스"
"알았데스"
"그럼 우리는 다시 모성으로 돌아가는데스"
"......"
"이 별의 참상을 알리고 앞으로 우리의 미래는 저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리가 이 별로 오게된 진정한 이유인지도 모르는데스"




결국 식량공급이 붕괴되고 대량의 실장석 아사 사태가 일어난 시점에서 외계 실장석들은 자신들의 통치 미스를 인정했다. 그들은 식민통치를 위해 남겨두었던 닌겐 수반들과 관료들을 불러 통치권을 다시 돌려주는 조약을 맺었다.

물론 그들이 떠나고 나면 인간들에 의해 지구의 실장석에게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는 불보듯 뻔했으므로 단 하나의 조건만을 남긴 채.

[ 만약 실장석이 지구에서 멸종될 경우, 그에 대한 합당한 응징이 있을 것 ] 

멸종만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실장석 학살은 상관없다는 내용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생존 역시 불가능한 수준으로 실장석의 개체수는 늘어난 상태였으니까. 




외계 실장석이 떠난 이후, 지구에서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처절한 대살육극이 벌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전쟁 기간 그 하찮은 실장석 따위에게 죽어나간 인간이 몇이며 그들에게 지배당하는 동안 당한 굴욕은 또 몇이며 그 똥만 싸는 짐승들 먹여살리느라 대신 굶어죽은 인간은 또 얼마인가. 


재건된 미국 정부 대표는 UN 총회에서 이렇게까지 말했다.

"최소한의 개체 보전을 위한 1만 마리는 미국 정부 산하의 비밀 연구소에서 철저히 관리할 것입니다. 또한 UN 산하의 동물보호기구에서도 관리할 것입니다. 그런만큼, 다른 나라는 안심하고 마음껏 학살하셔도 좋습니다. 물론 학살보다는 학대를 더 추천드립니다"


그리고 10년 후, 영국에서는 최초의 실장학대를 위한 세계대회, '학림픽(Abuse Olympic)'이 개최된다.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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