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탁탁탁탁...
비상 계단을 뛰어 올라오는 가벼운 발소리에 자실장이 눈을 떴다.

"텟츄!"

주인님이다!
그늘진 골판지 상자의 옆면에 뚫린 구멍을 통해 기어나오면, 물탱크나
에어컨 실외기, 바닥을 가로지르는 파이프 등이 가득 늘어선 장소를 짧은 다리로 힘껏 달려나가
계단 꼭대기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주인님을 기다린다.

"테츙♪"

이윽고 발소리는 가까워져, 계단을 돌아 올라오는 7~8살의 남자아이의 모습이 보였을 때, 자실장은
몇번이고 펄쩍 뛰어 주인을 맞이한다.

서둘러 올라온 듯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땀을 뻘뻘 흘린 토시야가 계단 맨 위에 앉아서 
손을 뻗으면 자실장은 그 손에 착 달라붙는다.
어제 저녁부터 줄곧 혼자여서 외로웠던 것이다.

"미안해 꼬마야, 청소 당번 때문에 늦어버렸어"
"테치테츄, 텟츄우"

그 외로움을 호소하듯 연신 우는 자실장의 모습에 토시야는 가지고 온 작은
가방 안에서 비닐에 싸인 핫도그빵과 초코 스프레드통을 꺼낸다.
오늘 급식으로 쉰 반 친구 몫을 받아왔다.

순간 그 자실장, 꼬마의 시선은 거기에 집중된다.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며 입가에 군침이 흐르는 것을 소맷부리로 황급히 닦아낸다.

"자, 밥 먹을까?"
"테츙♪"

만세를 하며 기뻐하는 꼬마를 가슴에 안고 토시야는 물탱크 그늘로 이동한다.
언제나처럼 페트병으로 가져온 물을 두 개의 그릇이 안경형으로 연결된 강아지용
먹이통에 따른다. 그 한쪽에 초코 스프레드를 바른 핫도그 빵을 찢어서 넣어 주면
꼬마는 핫도그 빵조각이 담겨진 귀퉁이부터 주워 먹는다.

"맛있어? 꼬마야?"
"텟츄우♪"

입 언저리를 초콜릿으로 적신 채 꼬마는 기쁘게 울었다.

토시야가 이 폐빌딩 옥상에서 꼬마를 숨기고 기르기 시작한 것은 4, 5일 전부터다.
공원에서 놀다가 아기자기한 귀여움에 친실장의 눈을 피해 한마리를 데리고
와 버렸지만, 부친이 실장석을 싫어하는 것은 알고 있다.
아마 집에 데려가 봤자 키우는 일 따위 도저히 허락해주지 않을 것이다.

꼬마가 초코 스프렛이 묻은 핫도그 빵을 반쯤 다 먹은 시점에서 토시야는 허리를 들었다.

"...그럼 난 이만 갈게"
"테엣!"

토시야의 말에 꼬마는 놀란 소리를 질렀다.
오늘은 학원에 가는 날이다. 슬슬 가지 않으면 늦어져 버린다.

걷기 시작한 토시야의 등을 꼬마의 울음소리가 쫓아온다.
비상계단을 내려가다 층계참에서 뒤돌아보니 계단 꼭대기에서 꼬마가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토시야를 보고 있었다.

꼬마에게는 계단을 내려갈 수가 없는 것이다.
토시야를 쫓아 자기 키보다 큰 계단을 내려오려 한 적도 있었지만, 들여다본 앞쪽 발판 틈새로 보이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이와 공포감 앞에 꼬마는 그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그곳이 꼬마와 토시야를 가르는 절대적인 라인이었다.

"그럼 안녕, 내일 또 올게 안녕"
"태츄우우우..."






토시야가 손을 흔들자 꼬마도 쓸쓸한 듯 손을 흔들었다.

쿵쿵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다가 꼬마는 터벅터벅 먹이가 있는 곳으로 돌아와 다시 핫도그빵을 덥석 깨물었지만 웬일인지 하나도 맛이 없었다.
초콜릿의 달콤한 맛은 여전한데 왜 맛이 없을까.

꼬마는 배가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한숨을 쉬며 골판지 상자 안으로 들어가 잠자리 대신 토시야가 두고 간 트레이닝복에 싸여 눈을 감았다.
또 외롭고 허전하고 불안한 밤과 지루한 낮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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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서 초등학교의 종료벨 소리가 들려온 지 오래됐다.
이제 주인님이 올 시간이다.
골판지 집 안에 숨은 채로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탁탁탁탁...
곧이어 비상계단을 뛰어올라오는 가벼운 발자국 소리.

"텟츄!"

왔어 주인님이야!
여느 때처럼 서둘러 달려가 계단 입구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주인을 기다린다.

"기다렸어 꼬마야?"
"테츙♪"

좌우로 껑충껑충 뛰며 기쁨을 표현하는 꼬마

오늘은 계속 있을 수 있는 테치? 밥은 뭐인 테치? 뭐하고 놀아주는테치?
고독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끝없이 말이 쏟아진다.
자신의 발밑에서 쪼르르 움직이는 꼬마를 안아올리고 토시야는 안으로 들어가 편의점 봉투
에서 꺼낸 실장 푸드 상자와 물을 채운 페트병을 꺼내서 먹이통 그릇에 가득, 그것들을 채웠다.

"알았어? 오늘부터 너 이거 먹을 거야. 도서실 책에 써있었는데 넌 이거 먹으면 잘 큰대"

실장 푸드는 저렴하면서도 실장석의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포함하고 있는, 말하자면 실장에게 있어서 
최고의 완전식품이다.
이것만 먹으면 영양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

특히 자실장용으로 조정된 이것에는 부모로부터 떼어내어 모유를 먹을 수 없게 된 자실장에게 
부족하기 쉬운 성장호르몬과 여러 필수 영양소의 바탕... 분말상태로 으깨진 위석과 
무균배양된 실장석 고기를 추가하여 기존 푸드만으로 키우면 발육이 늦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해 놓았다.

"테에?"

꼬마는 본 적도 없는 그것을 하나 주워 냄새를 맡더니 입에 던져 넣었다.
씹는 순간 입안에 녹황색 채소의 맛이 번진다. 실장석이 꺼려하는 맛 중 하나다.

"퉤퉤퉤, 테에에..."
"참고 먹어. 우리 집에서 키우게 되면 이런 거 계속 먹어야 되거든."

혀를 내밀고 토라진 목소리를 내지만, 토시야가 그렇게 말하니 어쩔 수 없다.
토할 뻔한 것을 꾹 참고 꼬마는 그것을 꿀꺽 삼킨다.

실장 푸드에 문제점이 있다면 맛이다.
고급품이라면 실장석이 좋아하는 달콤한 양념이 되어 있지만, 토시야가 적은 용돈을
털어 산 질 좋고 견고한 가성비 제품으로는 그런 것까지 바랄 수는 없다.
게다가 검소한 음식에 길들이기 위해 일부러 야채의 맛을 강하게 해놓은 자실장용으로는 더욱 그렇다.

"그리고 꼬마야. 나 내일부터 여기 잠깐 못 오게 될 거야."
"테츄우"

잠시 말없이 꼬마의 식사를 바라보고 있던 토시야가 중얼거렸다.
맛은 없지만 왕성한 식욕은 이기지 못했고, 게다가 주인님의 명령은 거역할 수 없어 묵묵히
실장푸드를 먹고 있던 꼬마는 애매하게 대답을 했다.

'잠깐'이 얼마나 되지? 내일되면 또 멀리서 주인님이 오시는 신호소리가 들려올거라는 뜻일까?
별로 똑똑하지 않은 두뇌의 절반 이상을 끼니에 집중한 상태에서 꼬마는 생각한다.

"시골 아저씨가 돌아가셔서 내일 장례식이래. 아마 모레면 돌아올 테니까 
그때까지 외롭겠지만 기다려 줘."
"테츄"

기다리는 테츄, 착하게 기다리고 있는 테츄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지만 꼬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동이 틀 때까지 자고, 밥 먹고, 또 자고 기다리면 주인님이 와주시는... 
잠깐을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토시야의 손가락이 부드럽게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우리 기특한 꼬마... 빨리 돌아올게."
"텟츄, 텟츄♪"

그러자 칭찬받고 쓰다듬어진다는 사실이 기쁜 꼬마는 고개를 끄덕이고 또 끄덕인다.
그릇에 담긴 양을 3분의 1 정도 먹은 뒤 배가 부른 꼬마는 물에 얼굴을 담그고 물을 벌컥벌컥 마시다가 
벌렁 나자빠지며 트림을 했다.

"한 번에 이 정도면... 수북이 담으면 3일 정도는 괜찮겠지."

토시야는 다시 그릇에 물을 채우고 실장 푸드를 수북이 담았다.
그 나머지는 꼬마가 손을 댈 수 없는 계단 옆의 청소도구통 안에 집어넣는다.

실장석을 기른 적이 없는 토시야가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먹이가 있다면 그것을 배가 부를 때까지 계속 먹는 것이 실장석인 것이다. 
성장기의 자실장의 식욕으로 보면 이 정도의 양은 사흘은 커녕 이틀도 걸리지 않아 
남김없이 먹어 치울 것이다.

게다가 실장 푸드는 건조하기 때문에 계속 먹으면 몹시 목이 마른다.
작은 자실장이라지만 먹이도 물도 이 정도 양으로는 도저히 사흘치에는 충분치 않은 것이다.
패키지의 주의 사항에도 '언제든지 물을 마실 수 있도록'이라는 표시가 있는데, 책에
쓰여진 설명으로부터 '이 먹이를 주면 괜찮겠지'라는 선입견이 있었던 토시야에게는
그런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 꼬마야, 공놀이다. 간다."
"텟? 테츄-웅♪"

먹이 준비를 마친 뒤 토시야는 놀잇감으로 주었던 탁구공을 상자에서 꺼내 꼬마 앞에 굴렸다.

뒹굴거리던 꼬마는 탁구공이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자 벌떡 일어나 뒤쫓는다.
가벼워도 자실장치고는 큰 것이다. 
그것을 덮쳐서 멈추고 온몸으로 공굴리기하듯 밀어 토시야 쪽으로 굴려 온다.

"그래 이번엔 오른쪽이다"
"테츄-"
"왼쪽으로 갈게"
"테치-"

그런 의미없는 놀이를 몇 번인가 반복한 후, 토시야가 날린 탁구공이 엉뚱한 방향으로
튕겨져 나가버렸다.

"미안해, 꼬마야 주워와"
"테츄-"

탁구공은 작게 튀면서 둥둥 굴러간다.
바닥 위를 가로지르는 파이프를 뛰어넘어 에어컨 실외기 아래를 뚫고 굴러가는 
탁구공을 꼬마는 간신히 잡는다.

"테에.. 테엣!?"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헐떡거리며 그것을 안고 돌아오니 그곳에는 토시야의 모습이 없었다.
문득 장난끼가 발동한 토시야는 꼬마의 주의가 탁구공을 쫓는 것에 향하고 있는 동안에
발소리를 죽이고 슬그머니 돌아가 버린 것이다.

"...텟츄-웅♪"

몇 번이나 불러도 나타나지 않는 주인에게, 거기서 꼬마는 문득 생각나서 손뼉을 친다.

분명 '숨바꼭질'이 시작되서 주인님이 숨었구나!
그러니까 술래인 내가 빨리 주인님을 발견해서 놀래켜야지!

한창 놀고 싶은 꼬마는 아무 근거도 없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는 토시야의 모습을 발견하기 위해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주변을 찾기 시작했다.

"... 텟츄-? 텟츄-?"

그늘을 들여다보고 높은 곳을 올려다보며 꼬마는 토시야를 부르며 옥상을 뒤진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찾다 지친 꼬마가 외로움에 울음을 터뜨리며 포기할 때까지 상대 없는
혼자만의 숨바꼭질이 계속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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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텟!? 테테텟!?」

꼬마가 깨어나니 주위는 어둠에 싸여 있었다.
골판지의 집에서 황급히 밖으로 뛰쳐나가, 몇번이나 주인님을 불러 보지만, 역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역시 벌써 돌아가 버렸구나... 그 순간 외로움이 밀려와서 꼬마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테에에에엥, 테에에에엥!」

밤중에 잠에서 깨어나 외로움에 우는 거 여기서 키우게 된지 밤마다의 일이다.
하지만 목놓아 운다고 해서 이 자리에선 신경 써주는 사람이 없다.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고, 그러다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들어 다음날 아침까지 잠을 잔다.

그때 어둠 속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테엣!?"

정체 모를 것이 있을 공포에 눈물을 갑자기 멈추고 겁에 질린 꼬마는 
뒷걸음질 치며 어둠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달빛과 가까운 빌딩의 희미한 불빛 속, 먼 저수탱크의 바깥 테두리 안에서 그림자가 희미하게 움직이는... 
그것도 하나가 아니다. 여러 개의 그림자가 옆으로 늘어서, 
각각의 그림자 안에서 거리의 불빛을 비추는 한 쌍의 빛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구구국.

울었다... 비둘기다.

꼬마를 이곳으로 데려오기 훨씬 전부터 이곳에 있던 거주민들이다.
낮에는 인근 역이나 공원에서 지내다 밤이 되면 이곳으로 돌아온다.
꼬마도 이들의 존재를 알았지만 이들의 잠자리는 물탱크나 계단실 위여서 
이렇게 가까이 내려오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툭 한 날개 소리가 나자 그들은 서로 속삭이듯 지저귀기 시작한다.

구구구-
구구국, 구구국
구구국, 구구국
구구구-

딱딱한 그들의 발톱이 철골을 긁는 소리와 어울려서 마치 자신을 어떻게 해볼려고 
악의를 가지고 상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꼬마는 상상하고 만다.
그 타이밍을 엿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가만히 내 모습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구구구-
"테...테...테에에에에엥!"

잠시 뜸을 들이다가 짖은 하나의 비둘기 목소리를 계기로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감에 짓눌린 꼬마는 
비명을 지르며 이들을 등진채 달아났다.
뒤돌아보니 그들의 불빛을 반사해 반짝이는 눈이 꼬맹이를 향하고 있었다.
꼬맹이의 비명소리에 그들의 관심이 쏠렸을 뿐인데 꼬맹에게는 그것이 참을 수 없는 공포였다.

「 테히이이이! 테엣, 테에엣 ! 」

전속력으로 달린 꼬마는 그대로 상자 입구에 뛰어들자 잠자리 트레이닝복을 
입구 앞으로 밀어모아 바리케이드 대용으로 삼았다.
가장 안쪽에서 탁구공을 안고 몸을 움츠리고 있는 것은 숨어 있으려는 것일까.
비록 취약하기 짝이 없는 농성이지만 꼬마로서는 이것이 가능한 최선의 방어작이었다.

그래서 입구 쪽에서 결코 눈을 떼지 않고 꼬마는 계속 떨었다.
이따금 들리는 비둘기 울음소리에 이빨을 딱딱 떨고, 조그맣게 테흑테흑 울며 
그 작은 주인님을 계속 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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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스럭거리는 날개소리에 정신을 차려보니 날이 새고 있었다.
골판지 곳곳의 틈새로 햇빛이 새어 나오고 있다.

결국 그렇게 잠이 든 꼬마는 눈을 비비며 트레이너의 바리케이드를 넘어 비틀비틀 밖으로 나간다.
어제 주인님이 놓고 간 먹이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눈도 머리도 초점이 맞지 않은 채로 나아가, 눈앞에 무엇인가가 움직이고 있는 모습에 걸음을 멈춘다.

「・・・텟? 테에에엣!?」

깜빡이다가 겨우 눈의 초점이 맞춰지자 꼬마는 놀랐다.
먹이통에 담긴 실장 푸드를 몇 마리의 비둘기들이 쪼고 있었던 것이다.

「텟츄웃ー!!」

자기보다 몇 배 큰 비둘기떼에 꼬마는 두 손을 번쩍 들고 돌진해 간다.
순간적으로 놀랍기보다 내 음식을 더 많이 먹었다는 분노가 더 크게 작용했다.

그 날카로운 고함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자실장을 비둘기들은 조금 날갯짓을 해서 둥둥 떠서 피한 후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실장푸드를 계속 쪼아댄다.
기세등등한 꼬마는 급히 U턴해서 가까이에 있던 비둘기를 향해 씩씩하게 외치며 손을 번쩍 치켜든다.

"테챠아아아!"
구구국-

그때 고개를 획 돌린 비둘기들의 시선이 꼬마를 꿰뚫었다.
순간 어젯밤의 공포를 떠올리며 황급히 멈춰선 꼬마는 손을 치켜든 자세로 경직된다.

그중의 한마리가 홱 고개를 뻗고 꼬마 앞에 굴러다니던 실장푸드를 그 부리로 쪼아
깨뜨리고 넙죽 삼킨다.
마치 방해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텟・・・텟・・・테에에엥!」

꼬마는 차츰차츰 뒷걸음질치더니 다음 순간 울며 달아났다.
비둘기들은 꼬마가 없어지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실장푸드를 쪼기 시작한다.

「테치이・・・테챠아아・・」

주인님이 준 식사가 순식간에 휩쓸려 간다.
꼬마는 그늘에 가려 자신의 음식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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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산 너머로 진다.

학교 벨소리가 들린 뒤 노을이 옥상을 붉게 물들 무렵까지 꼬마는 계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다렸지만 
오늘도 토시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어도 오늘도 그 캉캉거리는 발자국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테츄우우우・・・」

외로움에 젖기 시작한 눈동자로 훌쩍 울고 난 뒤 꼬마는 고개를 숙인 채 골판지 상자로
돌아간다.
듣고 싶은 말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응석도 부리고 싶고 공놀이도 해 줬으면 좋겠는데.

주인님이 말한 「잠깐」이라는 것은 반드시 내일인 것이다.
그런 위로의 말을 자신에게 타이르며 집으로 돌아간다.







「테츄웅・・・테츄웅・・・」

꼬마는 낮 동안에 모아 둔 잡초를 울면서 입으로 가져간다.
딱딱하고 쓰고 너무 맛없다. 이것이라면 저 실장 푸드조차 맛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로부터 사흘이 지났지만 토시야는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다.
'잠깐만' 기다리면 토시야가 와서 또 다른 먹이를 줄 것이라고 낙관했던 꼬마였지만 
토시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예정대로라면 오늘은 여기에 올 텐데…

처음에는 물을 마셔, 어떻게든 공복을 달래 왔지만 먹이통의 물도 벌써 바닥나 버렸다.
허기에 휘청거리는 몸을 이끌고 마마에게 배운 대로 쓰레기통이나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찾아
보았지만 사람 출입 같은 건 전혀 없는 폐건물 옥상에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콘크리트 틈에서 자라난 약간의 잡초를 뜯어먹고 물탱크 밑의 붉은 녹이 섞인
흙탕물을 홀짝거리며 허기를 달래야 했다.






「테츄우・・・」

식사를 마친 뒤 꼬마는 다시 한 번 계단 앞으로 가보았다.
어두컴컴하고 은은한 실루엣만 보일 뿐인 비상계단 아래로 토시야가 올라와
오는 소리가 들릴까봐 귀를 기울이고 잠시 기다려 보았지만 들리는 것은
바람 소리뿐이어서 더욱 외로움을 더했다.

또 어디선가 비둘기의 날갯짓이 들린다는 사실에 놀라, 도망치듯 골판지 상자에 뛰어든
꼬마는 언제나처럼 트레이닝복으로 입구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가장 안쪽에서 탁구공을
끌어안고 홀로 잠을 청한다.
그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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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시간이 지나 그로부터 엿새가 지나도 토시야는 나타나지 않았다.

좁은 옥상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은 이미 다 먹어치우고 있었다.
잡초부터 시작하여 잡초 뿌리에 있던 이끼류를 흙째로. 바람에 날려서 옥상 구석 등에 누적되어 있던
낙엽이나 부스러기까지도 갉아먹고 삼킬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위에 넣어왔다.
자신의 똥을 다시 먹는다는 수단도 있었지만, 토시야의 명령으로 골판지 근처 
배수구에 볼일을 보던 꼬마에게는 그마저도 시도할 수 없었다.

의지하던 물탱크 밑의 흙탕물도 계속되는 날씨에 바짝 말라 꼬마는 굶주림과
목마름을 참으면서도 계단 앞에서 무릎을 꿇고 주인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꼬마는 영리한 부류의 자실장이 아니었다. 그저 우직했다.
어려운 일은 몰랐지만 주인님이 하신 말씀에 따라 이곳에서 그 방문을
기다리는... 그게 꼬마의 전부였다.

「테치이・・・테츄우・・・」

앙상하게 여위고 주름과 늘어진 그 몸에는 며칠 전의 모습은 없다.
통통했던 그 무렵이면 실장석을 모르는 인간이라면 인형 같다고 볼지도 모르지만 
여기에 온 이래로 목욕도 제대로 하지 않은 지금에 와서는
찌든 때와 스스로의 체취나 묻은 분뇨로 이상한 냄새를 풍기는 섬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가늘고 높은 목소리도 매일의 탄식에 찌그러져 닳아 버렸다.

「테에에・・・테에에・・・」

오늘도 아직 「잠시」가 아닐지도 모른다.
꼬마는 비로소 일어서서 벽을 따라 비틀비틀 걷기 시작한다.
울려고 해도 굶주린 이 몸에서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텟?」

꼬마의 위를 하나의 그림자가 지나 물탱크 위에서 날개 소리를 울리다 그쳤다.
비둘기가 돌아온 줄 알고 문득 올려다본 꼬마는 비둘기보다 두 배는 더 큰 칠흑 같은 새를
보고 비명을 지른다.

까아아악.

까마귀는 두 번 세 번 날카로운 목소리로 울었다.
그 목소리에 꼬마는 옛날의 엄습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마마가 부재중일때 자매가 납치된 적도 있고, 도망갈때 발로 짓밟힌채
부리로 머리를 마구 찔려서 크게 다친 적도 있다. 
그때 마마가 돌을 던져주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저 검은 새는 하늘에서 오는 가장 무서운 위협이었다.

「・・・테에・・・테에테텟・・・」

둘러봐도 근처에 숨을 만한 곳은 없다.
꼬마는 주저앉을 듯한 기력을 북돋워, 눈치채지 말길, 눈치채지 말길
하고 벽에 등을 비비면서 천천히 집을 향해 나아간다.
숨어야 할 골판지의 집은 계단실 건너편에 있다. 이대로 벽을 따라 걷다가
그곳을 돌아 들어가듯 이동해야 한다.

「테츄우・・・테츄우・・・」

꼬마는 잘 모를지 모르지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그 입에서 혼잣말이라고 할 만한 
울음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아마 「들키지 않게, 들키지 않게」라는 정도일까.
그 소리를 들은 까마귀는 꼬마 쪽을 언뜻 보더니 날개짓하며 내려앉는다.

까아아아악.

「테뱌아아악!」

몇 미터 앞서 내린 까마귀 소리에 꼬마는 절규한다.
몸과 같은 시커먼 눈으로 무표정하게 꼬마를 바라보면서 까마귀는 유유히 거리를 좁혀 온다.

골판지 상자까지 달려 도망가려고 해도 그 거리는 절망적이다.
새라지만 까마귀의 보폭은 자실장보다 더 크고, 하물며 배고프고 쇠약한 꼬마를
그 부리나 발톱으로 잡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도망치다가 등 뒤에서 노려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이전에 습격당했을 때처럼 까마귀가 쫓아올 수 없는 장소로 도망칠 수 있으면··· 꼬마의
눈이 발밑에 있는 배수구로 향한다.
쓰레기 방지 창살은 떨어져 나가고 철틀 한가운데 어두운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이 세로 구멍이 어디까지 뚫려있는지도 모르고 뛰어들면 다시 올라올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다.

딱딱한 그 발톱이 콘크리트를 치는 소리가 다가온다.
꼬마에게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테쟈아아악!」

까마귀의 부리가 덤벼들기 직전, 꼬마의 결사의 외침은 그 어두운 구멍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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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꼬마의 사라진 구멍 속을 들여다본다.

해질녘이라 어둑어둑하기는 하지만 그리 깊지 않은 위치에서 그 머리가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배수관의 굽은 부분에 막힌 쓰레기나 흙이 퇴적되어 있어 꼬마가 그대로 아래층까지
떨어지는 것을 막고 있었던 것이다.

「테히잇! 테히잇!」

구멍 바닥에서 붉은색과 녹색의 눈동자가 얼마 안되는 저녁놀에 반짝반짝 반사되는 모습에 까마귀들은 흥미를 보인다.

그것을 노리고 머리를 박아 부리로 따내려 하자 꼬마는 참을 수 없이 비명을 질렀다.

웅크리는 것이 고작인 이 자리에서, 머리 위에서 자꾸 물려는 부리 소리.
그것은 마치 자신들의 천적인 실창석이 휘두르는 대가위 같다.
한 번이라도 거기에 붙잡히면 간단히 집어 올리고, 여기저기 쪼이면서 먹히고 말 것이다.

게다가 까마귀가 체념해 준 곳으로 여기서부터 위까지는 자기 키의 두 배 이상은 된다.
미끌미끌할 뿐 이렇다 할 버팀목이 없는 파이프 위까지 오르는 것은 나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이다.
추락사는 면했지만 그 위기상황은 여전했다.

그때 문득 무언가를 알아차린 까마귀가 고개를 들어 비상계단 쪽을 바라보았다.

탓탓탓탓...

「꼬마야, 꼬마야!」

비상계단을 차는 소리가 뛰어올라온다.
고개를 든 까마귀는 자신이 기르는 실장의 이름을 부르는 토시야의 기척에 구멍 밑바닥에 있는 사냥감을
포기하고 바닥을 차고 날개 소리를 내며 퍼덕퍼덕 날아간다.

"꼬마야, 살아있으면 대답해줘-"

옥상까지 헐레벌떡 올라가던 토시야는 주위를 살핀다.
여느 때 같으면 계단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는 그 동그란 모습과 기쁜 울음 소리는 거기에 없었다.

시골에서 귀가한 직후 피로 탓인지 열이 나 쓰러진 토시야가 겨우 일어날 수 있게 된 것은 어젯밤의 일이었다.
깨어난 직후 두배의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닫고 한번쯤 포기해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포기할 수 없어 안절부절 못하고 이곳에 온 것이었다.

「테에에엣・・・테에에엣・・・」

"꼬마야? 어디 있어?"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주위를 둘러보지만 꼬마는 보이지 않는다.
토시야는 몸을 낮추며 주변을 살폈지만 그 사이에도 그 미미한 목소리는 단발적으로 들리고 있었다.






'여기다... 꼬맹이! 이 안에 있구나!?'

「테에에엣・・・테에에엣・・・」

배수구덩이 안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토시야는 셔츠 소매를 걷어올리더니 그 구멍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뻗은 손가락 끝에 더듬거리며 닿는 것을 잡고 건져 올린다.

「테에에츄우우!」

"꼬... 우엑"

토시야는 「꼬마」라고 이름을 부르려다 하지 못했다.
자신의 코끝으로 끌어올린 자실장이 뿜어내는 악취를 제대로 들이마셨기 때문이다.
무심코 바닥에 떨어뜨릴 뻔한 꼬마를 바닥에 놓고, 자신에게서 가능한 한 떨어뜨려 손에 매달리게 한다.

「테에에엥! 테에에에엥!」
'...어떡하지...'

까마귀로부터 살아났다는 것과, 간신히 주인을 만난 안도감에 꼬마는 토시야의 손에
매달려서 목쉰 소리로 흐느껴 운다.

그 꼬마의 모습과는 달리 토시야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토시야는 이대로 꼬마를 집으로 데려가 아버지에게 길러 달라고 부탁할 작정이었지만
그 결심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의 귀여운 꼬마라면 몰라도 지금 꼬마는 어떤가?
살아 있어 주었다고는 해도, 손도 발도 얼굴도 여위고 주름투성이에, 울음소리도 힘이 없고
몸도 꾀죄죄하게 더러워져 있어서 그냥 던져버리고 싶을 정도로 지독하다.
이런 더러운 실장석을 데리고 돌아가 부탁한들 아무래도 키워줄 것 같지가 않다.

"어쩔 수 없지... 씻기고 아버지한테 부탁해야겠다."

하지만 어떤 모습이 되든 꼬마는 꼬마다.
토시야는 그렇게 자신을 납득시키자 언제까지나 매달려 떨어지지 않는 꼬마를
골판지 상자에 던져 넣고, 뚜껑을 덮어도 풍기는 냄새에 질려하며 비상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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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팔짱을 낀 채 토시야는 고민하고 있었다.
세면대 위에는 벌거벗겨진 꼬마가 젖은 몸을 움츠리며 떨고 있다.

저 고약한 냄새를 풍겨서는 집에 데려갈 수조차 없다고 생각한 토시야는 도중에
한 공원으로 들어가 한쪽 구석에 있는 공중 화장실에서 꼬마의 몸을 씻겨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비치된 액체 비누를 발가벗긴 꼬마에게 골고루 뿌리고, 청소용으로 놓여 있던 스펀지로 
샅샅이 닦아보았지만 역시 배어든 냄새는 완전히 없어질 것 같지 않다.

옷도 일단 빨고는 보았지만, 과연 배설물로 사타구니가 기분 나쁘게 변색된 속옷은
만질 용기도 나지 않아서 손도 대지 않은 채 세면대 가장자리에 내팽개쳐진 상태다.

「테테테、테츄우ー・・・테치이ー・・・」

꼬마는 씻겨지는 동안 물을 듬뿍 마신 덕분에 쉰 목소리는 원래대로 돌아간 것 같다.
그러나 물이 들어간 정도로 그 야위고 마른 체형이 금방 원래대로 돌아올 리도 없고, 
대신 물이 찬 아랫배만 볼록 튀어나와 버렸다.
지옥 그림에 그려진 아귀같다.
토시야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지만, 『기분 나쁘게 생겼지만 왠지 귀엽다』는 표현을 범주에 넣는다고 해도 
솔직히 귀엽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테츄우ー、텟츄우ー!」

내 옷을 돌려주는 테치, 집 안에 넣어주는 테치...
미간을 찌푸린 토시야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꼬마는 연방 추위를 호소한다.

그때, 등 뒤에서 울린, 끼익하고 작은 삐걱거리는 소리에 토시야는 문득 뒤돌아 보았다.

「데엣!?」

칸막이의 문을 밀어 열고 나온 실장석은 토시야의 모습에 놀란 소리를 낸다.
황급히 안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발밑에서 스르르 나온 자실장을 잡으려고 하니
그 뒤를 따라 룸 안에 있던 자실장들이 잇달아 나온다.

변기 안의 물이 초록색으로 물든 것을 보면 출산 직후 같다.
꼬마를 씻기던 물소리 때문에 몰랐던 것 같다.

아이들을 정리해 들어올리고, 밖으로 도망가면 될 것을 다시 칸막이 안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친실장보다 먼저 토시야가 손을 뻗어 문을 잡는다.

「데스우!」

「「「「테츄-웅、테츄-웅♪」」」」

비록 영리하진 않아도 출산 직후에 인간에게 발견되어 버린 것에 친실장은 경계감을 드러내며
두 팔을 벌려 아이들 앞을 가로막아 지키려고 한다.
하지만, 자실장들은 처음보는 인간에게 흥미를 보이며, 마마가 가로막는 손을 빠져나가 토시야의
발밑을 뱅글뱅글 돌며 들뜬 목소리를 높인다.

"데, 데스우!?"
"아하하, 귀엽네."

쭈그리고 앉은 토시야가 손을 뻗어 가까이 있는 한 마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다음에는 자신의 차례라는듯 다른 자매를 밀어젖히고 자실장들이 쇄도해 온다.
자실장은 모두 5마리, 모두 한껏 애교를 부려 매우 귀엽다.
자실장들을 어루만지면서 토시야의 시선은 수중에 몰려있는 자실장들 하나하나를 쫓고 있었다.

아직 경계를 풀지 않은 친실장은 아이들에게 밖으로 도망치라고 외치지만 정작 자실장들은 
왜 도망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상냥한 인간밖에 없잖아.

"그래, 얘로 하자."

아이들이 말을 안들어 허둥대는 친실장의 뒤에서 토시야가 6마리째의 자실장을 집어들었다.
순간에 친실장의 얼굴에서 핏기가 휙 빠져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른 자매들이 토시야에 들러 붙어오는 가운데 유독 한 마리만 친실장 뒤에 숨겨져 있던 놈이다.
친구 타케시 말로는 친실장이 감추려고 하는게 우수한 아이라고 하니 이 녀석이 그럴지도 모른다.

「데스-우!! 데스우우!!」
「・・・테츄우?」

아이를 되찾으려는 친실장은 그 거리를 조금이라도 메우기 위해 손을 힘껏 위로
뻗어 발끝으로 점프를 반복하지만 그 모습으로는 키의 두 배가 넘는 곳에 있는 
자실장의 발조차 만질 수 없다.
그런 친실장의 필사적인 기세와는 반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수 없다는 모습으로 자실장은 
눈을 몇 번인가 깜빡거리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얘는 내가 가져갈게... 대신 얘 줄게."

「데에에엣!?」
「테챠아아아아!!」

토시야의 일방적인 말에 친실장은 경악한다.
이어 어깨 너머로 쭉 뻗은 토시야의 손가락이 자신을 가리키자 꼬마는 친실장 못지 않은 목소리로 
비명과 놀라움이 섞인 고함을 질렀다.

「테텟, 테치-잇! 테츄우-웃!!」

"왜냐면 지금의 너 전혀 귀엽지 않거든. 그리고 빨아도 냄새나고"

왜 버려지는지 모르는 꼬마는 열심히 울며 그 이유를 물었으나 
어렴풋이 그 외침의 의미를 이해한 토시야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아까부터 고민했던 것도 집에 데려가지 말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이렇게 귀여운 자실장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러면 이런 냄새나고 쭈글쭈글한 자실장 따위는 필요 없잖아?

"그럼 나 그만 갈게.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엄마한테 혼나니까."

토시야는 세면대 위에서 울고 있던 꼬마를 집어들어 친실장 앞에 아무렇게나 놓고 
손을 흔들고 공중 화장실에서 나간다.

「테챠아아아아! 테햐아아아아!」

꼬마는 그 옥상에서 반복되었던 이별 때처럼 토시야의 뒤를 따랐다.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두고 가지 말라고 안간힘을 썼다.
여기는 비상계단처럼 토시야와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없다.

울고 소리치고 계속 달려서... 10미터나 달린 근처에서 조약돌에 걸려서 꼬마는 굴렀다.
힘껏 구르는 바람에 찰과상이 난 배의 통증에 더욱 더 울음을 터뜨리며 
떠나는 주인을 부르지만 토시야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앞으로 네 이름은 꼬마야 잘 부탁해"
"텟츙-♪"

손바닥에 얹히며 토시야가 그렇게 말하자 꼬마는 엄지손가락에 매달리며 뺨을 문지른다.

친실장은 태어나자마자 안전한 주거로의 이동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태어난 이 자실장은 안아 주지도, 젖을 주지도 않았다.
그래서인지 친실장이 마마라는 인식이 적어서 마마나 언니들과의 이별에 그다지 슬퍼하는 기색은 없다.
각인으로 토시야를 보호자로 인정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테・・・테테테・・・」

다른 자실장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려지고, 주인님과 즐겁게 서로 웃으며 멀어져 가는 모습에, 
꼬마는 토시야에게 기다려 달라고 부를 수도, 일어나서 토시야를 쫓아갈 수도 없었다.

꼬마는 이제 주인 곁에 자신이 있을 장소가 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형체가 있는건 아니지만, 폐건물 옥상에서 꼬마와 토시야를 사이에 두고 있던 비상계단이라는 경계선은
지금도 꼬마의 눈앞에 가로놓인 것이다. 
토시야의 뒷모습을 볼 수는 있어도 그 사이에 있는 거리는 무한하다.
이제 꼬마가 그것을 넘어 토시야에게 당도하는 것도 토시야가 그것을 넘어 꼬마 앞에
나타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다.

이윽고 공원 밖으로 토시야의 모습이 사라진 후, 꼬마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입 속에 들어간 모래를 토해내고 배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공중 화장실로 되돌아간다.
벗겨진 옷을 입어야 하고, 거기에는 아직 골판지로 된 나의 집도 놓여져 있다.

꼬마는 자고 싶었다.
저 집 속으로 도망쳐서 트레이닝 복을 뒤집어쓰고 모든 것을 잊고 자고 싶었다.
그리고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언제나처럼 그 빌딩 옥상에서 눈을 뜨는 것이 아닐까?

그런 부질없는 기대가 무릎을 꿇고 쓰러질 것 같은 꼬마의 두 다리를 앞으로 내딛게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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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텟・・・테에엣!? 테에에엣!?」

없어? 집이 없어!?
공중화장실 앞까지 왔지만 입구 옆에 분명히 놓여 있었을 골판지 집은 어디에도 없었다.
얇은 골판지 한 장이라고는 하지만 무서운 것뿐인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준 소중한 거처와 자그마한 가재도구의 상실에 꼬마는 창백해져 공중화장실 주위를 찾아 헤맨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꼬마가 토시야를 쫓아가는 동안 막내 자실장을 빼앗긴 친실장이 그 골판지 상자를 가져가 버렸다.
애를 낳아 비좁아진 우리 집의 별채로 삼자. 이불이 될 트레이닝복에 아이들의 장난감이 될 탁구공도 들어 있다.
비록 한 마리 잃어버렸지만 그 대신 얻은 것은 컸던 것임에 틀림없다.

「테치이이・・・테츄우우우・・・」

자욱한 밤바람이 벌거벗은 꼬마에게서 체온을 빼앗아 간다.

주인님, 골판지 집, 이불, 장난감... 다 없어졌어.
나에게 소중한 것이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상실감과 허탈감에 온몸에서 힘이 빠져간다.
배고픔에 기력마저 송두리째 빼앗기면서 꼬마는 비틀거리며 공중화장실 안으로 들어간다.

내 옷 찾아야 되는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것, 소중한 마마의 선물이다.
자신에게 남겨진 것이 있다면 그것밖에 없다. 그것이 마지막이다.

「테치잇! 테치잇!」

세면대 앞에는 와봤지만 꼬마에겐 미처 올라갈 길이 없었다.
자실장이 아래서 깡총깡총 뛰어 봤자 도저히 닿을 수 있는 높이가 아니다.
무언가를 잡고 올라가려고 해도 실마리가 되는 것은 없고, 반들반들한 타일의 벽을 기어오르는 일 따위를 그저 자실장이 할 수 있을 턱이 없다.

「・・・텟!?」

잠시 타일이나 배수관을 오르려고 헛된 방법을 시도하다 보면 밖에서 모래 밟는 발자국 소리가 다가온다.
꼬마가 문이 반쯤 열린 청소용구칸 바구니에 숨는 것과 동시에 퇴근길의 직장인 남자가 당황한 듯 뛰어들어와 소변기 앞에서 지퍼를 내렸다.
조록조록 물소리가 나자 남자는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닌겐을 놓치면 다음은 없을지도 모르는 테치...
꼬마는 마음을 먹자마자 남자의 발걸음으로 달려가 슬랙스 자락을 끌며 호소했다.

「테츄우ー! 텟치、텟츄우ー! 텟츄우우ー!」

제발 닝겐상! 저 위에 있는 내 옷을 좀 집어주는 테치, 제발!

꼬마는 사내 주위를 맴돌며 세면대 위를 가리키며 옷자락을 잡아끌고 간곡히 부탁한다.
이렇게 하면 주인은 부탁을 들어 주었다.

"으앗, 그만해 멍청아! 우와악... 바보야, 거기 만지지 마! 꼬마녀석!"

하지만 남자의 반응은 토시야의 것과는 달랐다.
느닷없이 나타나 위협을 받은 것도 있지만 발밑에 달라붙는 꼬마에게 혐오감을 느끼고, 
멈추지 않는 소변에 자리를 움직이지 못한 채 다리를 떨며 목소리로 위협해 어떻게든 피하려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들실장이란 어디서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생물이므로 무리도 아니다.
그 자세한 생태를 몰라도 대개 멀쩡한 사람은 스스로 즐겨 관여하려 들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텟츄우ー♪」

그에 반해 꼬마 쪽은 우연히 남자가 입에 올린 꼬마 녀석이라는 표현에 반응한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이 닝겐은 자기 이름 같은 것을 입에 올렸다... 
단지 그랬을 뿐이지만, 꼬마는 이 닝겐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이 닝겐 씨라면 분명 도와줄 것이 틀림없는 테치
저 높은 곳에 있는 나의 옷을 집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테치
주인보다 큰 이 닝겐 씨라면 아주 간단한 일인 테치

「텟츄우♪  텟츄우♪」

이 닝겐씨에게 용기내서 말을 걸길 잘한 테치
틀림없이 옷을 높은 곳에서 꺼내서 입을 수 있는 테치
꼬마는 기뻐서 한껏 소리내어 만세를 반복하며 남자 뒤에서 덩실덩실 춤을 춘다.
기쁠 때 주인님 앞에서 해 보이고 매우 칭찬을 받았던 춤이다.

「・・・텟츄우♪ 텟츄테에ー♪」

그런 테치! 내일 되면 마마들 찾으러 가는 테치
주인님이 키우신 후로 계속 만나지 않았는데 다들 건강한지 궁금한 테치
왠지 무척 보고 싶어진 테치

어쩐지 멍한 눈으로 태츄테츄 웃으며 가족을 생각하는 꼬마.
여러 가지를 잃고 빼앗기고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꼬마의 마음이 요구한 것, 
그것은 괴로운 현실을 외면하고 공상에 젖어보려는 도피였다.

"빌어먹을... 이 씨발! 내가 왜 이 꼴을 당하고 있지?!"

행복한 망상에 젖은 꼬마의 새된 목소리를 등뒤에서 쫓기며 소변기 앞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실장에 발밑에 매달리게 하지 않으려고 번갈아 한 발을 흔드는 모습이 옆에서 보면 우스꽝스럽긴 했지만 
남자로서는 절실한 문제였다.

"아... 아아..."

하고 남자가 비틀거리더니 한심한 소리를 질렀다.
비틀거리는 바람에 기세가 약해진 소변이 주축발이 돼 움직일 수 없는 쪽 다리를 적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굴욕적인데 거기에 꼬마가 그 다리에 매달려 뺨을 비비고 있었다.
토시야가 손가락을 내밀었을 때 했던 친애의 표시인 응석부림이었다.

하지만 남자 입장에서는 그런 게 아니었다. 
자신을 놀리듯 떠들어대는 썩어빠진 들자실장, 어떤 환경에서 살아왔는지 모르는 그것에 몸서리가 쳐진다... 
그것은 더러운 걸레를 문질러대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야, 꼬마 새끼야."

지퍼를 올리며 남자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분명히 분노를 머금은 성색은 꼬마에게도 느껴지는 것이 있었는지, 한때의 달콤한 망상에서 깨어나 남자에게 몸을 돌렸다.
내가 이렇게 어리광 부리고 너무 좋아한다는 걸 보여줬는데 왜?

뒷걸음질치는 꼬마가 주뼛주뼛 사내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그 순간 쿵, 하는 소리가 나더니 바로 앞에 남자의 다리가 떨어졌다.

「텟、테치이잇!?」

반들반들하게 닦여진 가죽구두의 표면에는 당황한 자신의 얼굴, 그것이 금세 공포로 질려 간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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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어."

남자는 계속해서 발을 굴렀다.

나는 왜 이 꼴을 당해야 하는가.
그것도 옷도 입지 않은 깡마른 자실장 따위한테 위협 당해 소변도 묻히고 비참하게 굴어야 하는가.

바닥을 구르듯 도망치는 꼬마의 앞을 가로막듯이, 그리고 짓밟지 않도록.
당장 죽음이라는 해방을 주지 않는 것은 무슨 속셈인지 실컷 인간님을 놀려 댄 이 웃기는 자실장을 주무르며 속을 풀기 위해서다.

「챠아아아!」

공포에 휩싸인 꼬마는 계속 실금과 구토를 한다.

뛰어 달아난 곳에도, 굴러 달아난 곳에도, 가죽신은 반드시 꼬마가 도망치려는 앞을 가로막듯 눈앞에 떨어진다.본심이라면 쉽게 실행할 수 있는 그 살의를 꾸준히 자제하고, 의도적으로 계속 빗나가는 남자의 일격에 꼬마는 필사적으로 도망치며 갈팡질팡한다.

부탁했을 뿐인 테치!
큰닝겐씨라면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했을 뿐인 테치!
모른테치, 모른테치... 왜 이렇게 화내는 테치?

꼬마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부탁」은 남자에게 불쾌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춤」은 남자에게 놀림받는 것과 같았다는 것도.
「응석」은 남자에게는 오물로 문질러지는 것과 같은 의미였던 것도.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남자의 분노를 샀던 것을.

「테챠아아、테챠아아、챠뱌아아아!」

미안한테치! 죄송한테치! 죄송한테치!
영문도 모르고 용서를 빌지만 사내가 꼬마를 향한 악의는 그치지 않는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꼬마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마마한테는 그런 일은 들어본 적이 없고, 주인이랑 있을 때는 이런 일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위험한 물건으로부터 도망친다' '발견되지 않도록 숨는다' 두 가지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테히・・・테햐・・・테히・・・」
"자아, 빨리 도망가지 않으면 밟힌다 꼬마놈아"

마음 먹고 사내에게 등을 돌리고 밖으로 도망치려 했지만 네 발로 기어도 30cm도 안 돼 미끄러져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사내가 꼬마 주위를 차도 그때마다 몸을 떨 뿐 꿈틀거리는 기색도 없다.

꼬마의 체력은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절식에 약한 몸으로 생사를 걸고 도망치기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였다.
손발을 구부리고 몸을 움츠리고 떨면서 본능적으로 방어자세를 취한다.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린 이상, 꼬마에게 남겨진 수단은 가만히 참고, 그 무반응인 모습에 이 폭력 행위가 변덕을 부려 사라져 주는 것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리치는 철퇴의 바로 아래에서 「이것이 닿지 않게」라고 신에게 기적을 비는 행위나 다름없다.

"뭐야, 벌써 끝이야? 재미없네"

의외로 어이없었던 모습에 다소 불만을 느끼면서도, 그 마무리에 꼬맹이를 짓밟으려고 남자가 들어올린 다리를 내렸다... 꼬맹이 옆으로 천천히.

남자의 시선은 밖을 향하고 있었다.
해가 떨어져 어두컴컴해지고, 켜진 가로등 불빛에 음료수대 상부에서 수도꼭지가 둔탁한 은빛 빛을 머금고 있었다.
끝이 둥글게 부풀어오른 수도꼭지 모양은 남자가 어렸을 때부터 변함이 없다.

'...그래 오랜만에 그거나 할까...'

문득 생각난 것을 실행하기 위해 남자는 공중화장실을 나왔다.
그 발끝으로 긁듯이 꼬마를 가볍게 차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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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레, 발차기가 툭, 발차기가 툭."

「텟・・・테칫・・・테텟・・・」

힘조절해서 잘못 죽이지 않도록 조심조심 굴렸고, 그런 대접을 받고도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 꼬마를 열 걸음 정도 굴려 모래먼지에 덜컥덜컥 내려앉은 꼬맹이를 건져올려 식수대 꼭지 위에 세웠다.
공 모양으로 된 선단 위에서는 불안정한 자실장에는 혼자서 설 수 없기 때문에 남자의 손이 그 몸을 지탱하듯 가해져 있다.

「테치・・・테테치・・・테치・・・」

용서해 주는 테치, 용서해 주는 테치.
어떻게 하면 좋은지 와타시는 모르는 테치.
용서해 주는 테치, 용서해 주는 테치.

남자의 손에 몸을 의지한 채 꼬마는 말문이 막힌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내가 한 일이 뭐가 나쁘고, 어떻게 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지... 결국 아무것도 모른채 눈물을 흘리며 사과한다.

장난치다 마마한테 혼났을 때도 그랬다.
엉덩이를 자꾸 맞아 혼났지만 그걸 참으면 풀려났다.
그러니까 조금만 참자, 참으면 아픈 건 분명 끝나니까.
나쁜 짓을 하면 혼난다...그러니까 나쁜 일을 한 나는 혼나지 않으면 안된다.
꼬마는 자각도 없이 책망 당하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각 없는 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혼나고 아픔을 견디면 꼬마는 해방될 수 있을까?

"......옛날에 내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는 손가락 인형 놀이가 유행했어."

남자가 갑자기 입을 열어 다른 한 손이 올라갔다.
매를 맞는다고 꼬마는 몸을 웅크려 힘을 주고 다가올 아픔의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통증이 아니라 머리에 얹힌 차가운 손바닥 감각에 안도하며 긴장을 푼다.

쓰담쓰담 해주는 테치? 사과해서 용서해 주는 테치?

"너같은 자실장을 수도꼭지 위에 올려놨었지..."

「테치・・・테치・・・」

그리고? 그리고 어떻게 하는 테치?
살짝 미소를 지으며 꼬마의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남자의 말에 꼬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남자의 손이 꼬마의 머리를 단숨에 밀어내렸다.

"테쟈아!!!"

공원에 꼬마가 내뱉은 더할 나위 없이 큰 비명소리가 울려 퍼진다.
온몸을 벌렁 드러내고 하늘을 우러러 수면에 떠오른 산소결박의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뻐끔 벌리고 있지만 첫 비명 외에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사내가 두 손을 천천히 놓지만 꼬마의 몸은 수도꼭지 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꼬마의 사타구니는 수도꼭지 끝에 꿰어져 있었다.
동그란 끝은 곡면을 미끄러진 두 다리를 갈라내고 그 안쪽에 있던 꼬마의 작은 부분을 억지로 벌려가며 깊숙이 태내로 파고든다.
그 모습은 남자가 말한 대로 손가락에 끼워진 손가락 인형 같았다.

"이렇게 하는거지... 재밌지? 오랜만인데 잘 됐다"

「테・・・테・・・테・・・」

사내의 말은 이미 꼬마에게 닿지 않았다.
통증과 충격에 휘둥그레진 눈동자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았다.
하늘을 우러러본 꼬마의 입에서 경련에 맞춰 끊임없이 목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을 뿐이다.

몸통을 형상 그대로의 실루엣으로 변형시킬 만큼 굵기를 가진 것을 태내에 비틀려 조금만 힘을 주면 몸이 두 동강 날까 싶을 정도로 총배설구를 벌리면서도 꼬마는 살아 있었다.

자실장을 죽이지 않고 상처없이 수욕대의 수도꼭지에 꽂는다.
남자가 말하는 잘됐다란 이런 뜻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계까지 확장된 몸은 파괴되고 총배설구와 내장은 이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대로 해방된다고 해도 오래 살지도, 자를 낳을 수도 없다.
얼마 안되는 수명을 기다릴 것도 없이 걷지도 못하는 몸으로는 금세 공원 내를 배회하는 동족의 식사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어떤 선택지가 선택되든 꼬마의 미래는 밝지 못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봐줄게, 그럼 이만, 꼬마 녀석"

「테・・・테・・・테・・・」

남자는 손가락 인형의 성공에 만족한 뒤 음수대 옆 수돗가에서 몇 번 손을 씻더니 콧노래를 부르며 손을 흔들고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꼬맹이 꽂힌 수도꼭지를 돌리고 나서

"...태...태...개보!?"

순간 몸이 움찔하며 크게 경련하자 꼬마의 입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호흡기에 물이 들어가는 고통에 두 손을 버둥거리며 마치 물에 빠져 공기를 구하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는데 아무리 헤엄쳐 보여 봤자 몸 안에서 솟아나오는 물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리 없다.

그 부릅뜬 두 눈에 서서히 눈물이 어린다.
죽음 중 가장 고통스럽다는 질식의 고통은 손가락 인형이 된 충격에 어딘지 멀리 날려버린 꼬마의 의식을 억지로 이곳으로 불러오고 있었다.
그때 죽었다면 아직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가고 싶다... 가고 싶다...
저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혼탁한 의식 속에서 꼬마는 옥상에서 길러지던 기억을 떠올리며 울었다.
혼자 있을 때는 외로워 견디기 힘들었지만, 저 골판지 집에서 자고 기다리면 반드시 주인님은 맛있는 밥을 가져다 주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친 후에 짧은 시간이지만 놀거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했는데

저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꼬마는 없는 수면 위의 공기를 찾아 발버둥을 쳤지만 이윽고 힘없이 떨어졌다.
물줄기가 쏟아지면서 꼬마의 머리는 고개를 끄덕이는 듯 흔들거렸다.







- 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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