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5녀는 자신의 몸이 묵직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 식사량이 늘어났다는 사실을 마마에게 종종 지적받아왔기 때문에, 몸이 불어났다는 사실을 들킨다면 한동안 잔소리 세례에 시달릴 것이 뻔히 보였다. 암울한 기분이 드는 가운데 5녀는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마와 세 자매들은 모두 곤히 자고 있었다. 차녀 오네챠는 자실장이었던 때의 버릇을 버리지 못했는지 마마에게 달라붙어 품 속으로 파고들려 하고 있었지만, 성체가 되어 몸이 비대해진 지금으로써는 고문에 가까운 행위일 뿐이다.
터무니 없이 성장해버린 자식을 품으려고 끙끙거리는 마마의 모습을 보던 5녀는, 가족들을 깨우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것이 무색하게도 작은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데프프..."
상상 이상으로 걸걸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놀란 5녀는 철퍼덕 엉덩방아를 찧으며 신음을 흘렸다.
"데에에.. 오늘은 뭔가 이상한데스... 감기라도 걸린데스? 어쩐지 천장도 낮아진 듯한... 데?!"
온 몸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며, 5녀는 크게 소리쳤다.
" '테치' 가 아닌데스우우우!"
기쁨을 만끽하며 수선스럽게 가족들을 깨우는 5녀의 뒤로, 독립의 날을 알리는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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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정말 좋은 시점인데스. 으슬으슬인 겨울씨는 갔고, 이제 포근포근 봄씨가 시작되는데스. 골판지는 마마와 너희들이 충분히 준비해 두었으니, 미룰 것 없이 오늘 출발하는데스."
경악과 기쁨, 축하와 다독임의 시간을 거쳐, 친실장은 그렇게 상황을 정리했다.
"데에엥... 오늘을 기다려왔을 텐데 이 눈물은 무엇인 데스우..."
"오네챠, 울지 마는 데스! 이제는 활짝 웃을 일만 가득한데스!"
눈물을 글썽이는 차녀의 옆에서, 밝은 어조로 위로를 건네는 것은 3녀이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의 눈에도 투명한 것이 맺혀있는 건, 여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기 때문일까. 5녀가 3녀의 말을 거들었다.
"잊지 마는 데스! 여기서 헤어져도, 와타시타치는 여전히 가족인 데스!"
"그런데스. 가족간의 우애는 영원히 가는데스."
친실장은 5녀의 말에 흐뭇하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서글프게 눈물을 떨구던 장녀도, 결국 이 따스한 위로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5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말했다.
"마마, 때로는 엄격했지만 모두 와타시타치를 위한 일이었다는걸 이제 아는데스.
차녀 오네챠, 듬직하면서도 친절해서 항상 좋아했던데스.
3녀 오네챠, 슬퍼서 울고 있을 때면 항상 오네챠의 노래와 춤이 좋은 응원이 되어준 데스우.
6녀 이모토챠, 밤이면 사랑스럽게 와타시의 품으로 들어와서 얼굴을 부비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던데스. 와타시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을 때는 조금 놀랐지만 기뻤던데스.
다들, 진작에 독립할 수 있었을 텐데 와타시를 기다려주서서 고마운 데스."
골판지 하우스 안의 일가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사랑스럽고 귀중한 것을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시선으로. 좋은 분위기를 깰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6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른 자매들도 함께였으면 더 좋았을 것인데스"
"....데...."
"........."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는 자매들을 보며, 친실장은 회한 어린 충고를 했다.
"마마는 바보여서, 많은 것을 신경쓰지 못한데스. 자들이 마마가 된다면, 먹을 것은 항상 구비해놓는데스. 마마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영리하고 착한 자를 잃은데스우...."
4자매가 7자매였던 시절이었다.
"자들, 다녀온데스."
친실장이 귀가하자, 아직 어린 자실장들이었던 7자매가 일제히 달려들었다. 가뜩이나 비상식도 없는 상황에서 며칠간 큰 수확이 없었던 탓에, 자매들은 모두 굶주림에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였다.
"마마, 밥 주세요테치.."
"혹시 오늘도 없는테츄?"
"테츄아아아! 불합리한테치! 똥마마 때문에 오늘도 배를 곪는테치이!!!"
"....오늘은 먹을 것을 가져온데스..."
친실장은 힘이 풀린 팔로 편의점 봉투를 열어젖혔다. 썩어가는 열매 몇 알이 실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테... 나눠먹기에는 너무 적은테치이..."
"마마.. 응석이 아니라 정말로 죽을 것 같은 기분테츄.."
친실장은 귀를 막고 싶은 기분을 느끼며, 애써 치닫는 눈물을 삼키고 열매를 조각내 나누어주었다. 자실장들은 한 입 거리도 안되는 식사를 최대한 잘게 으깨가며 입에 오래도록 굴려 먹었다.
무언가 목에 막힌 듯 7녀가 신음소리를 내며 괴로워했지만, 고개라도 돌린 친실장을 빼면 그 누구도 반응하지 않았다.
"........맛 없는테치."
"4녀."
"맛 없는테치이이이! 어째서 이런 운치같은 것을 먹어야 하는테츄아아아아-!"
"4녀, 조용히.."
"맛도 없고 양도 적은테치! 배가 정말 너무너무 고픈 테치!"
4녀는 절규하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다른 자매들은 동조하기도 귀찮은 듯 메마른 눈으로 골판지 바닥만 쳐다보았다.
친실장은 더이상 4녀를 제지하지 않았다. 4녀가 분충이 될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은 친실장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영리하고 착해서, 오히려 내심 기대하고 있던 아이였다.
그것은 분충의 투정보다는 살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에 가까운 처사였다. 집 안의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4녀는 힘이 빠진 듯 바닥에 누운 채로 속삭였다.
"밥은 이틀에 한 번, 구더기 꼬리만큼 나오는테치..."
"잠이라도 자는테치."
"아무리 오랫동안 녹여먹어도, 맛을 느낄 수가 없는테치.."
"......"
"한번이라도 좋으니, 배불리 먹어보고 싶었던테치..."
"목욕이니 아와아와니 하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테치.."
"죽고 싶지 않아 테치, 정말 죽고 싶지 않..."
밤은 깊어갔고, 눈물을 삼키던 자매들이 하나하나 잠들어가는 가운데, 어느 순간엔가 4녀는 마지막 숨을 내쉬었다.
다음날, 친실장은 집 옆의 야생화 사이에 4녀를 묻었다.
자매들의 시선이 잠시 허공에 머물렀다. 색이 뚜렷한 두 줄기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지만, 누구 하나 소리내어 우는 이는 없었다. 그리움이 빚은 환상인지, 자매들의 눈 앞에 수고했다고 말하며 밝게 웃음짓는 4녀가 언뜻 보인 듯 했다.
"다들, 훌륭히 자라서 4녀의 몫까지 잘 살아가고 있는데스."
월동 준비가 한창이라 식량 경쟁이 치열한 가을, 그리고 식량을 구할 길이 없는 겨울.
두 계절에 걸친 자매들의 유년기는 그야말로 빈곤의 역사였다. 굶주림과 치열하게 싸워가며 생존을 거머쥔 네 자매의 눈은 약간의 그리움과, 타오르는 각오로 빛나고 있었다.
"이제는 봄이 온 데스. 오마에들도 먹이를 안전하게 구할 수 있는 어른이 된 데스."
그렇게 말하는 한편, 친실장은 또 한 마디의 충고를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닝겐들을 조심해야 하는데스. 나쁜 닝겐과 착한 닝겐을 구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데스."
친실장의 눈이, 잠시 5녀의 팔에 머물렀다.
"닝겐상, 그럼 잘 부탁드리는데스. 똑똑한 자만 골랐으니 후회하는 일은 없을 것인 데스우."
"그래, 걱정하지 마."
친실장의 몸은 흥분으로 달아올라 있었다.
결코 먼저 부탁하지도, 하다못해 먹이를 구걸하지도 않았다. 길러주겠다는 제의는 남자로부터 먼저 들어온 것이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큰 행운이었다.
'그 대신, 딱 두 마리만.'
'데에?'
'나도 사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거든. 될 수 있으면 가장 훌륭한 자 두 마리를 가려 뽑아 주었으면 좋겠구나.'
친실장이 고심 끝에 뽑은 두 자실장, 장녀와 7녀는 테엥테엥 울며 친실장의 치마를 붙들고 있었다.
"테에엥, 테에에엥-! 마마, 마마도 같이 가는테치!"
"오네챠들도 함께 가는 테치이..."
다른 자실장들은 아쉬울 것이 분명한데도 침착한 태도로 그 둘을 배웅하고 있었다.
"7녀는 이제 와타치들과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사육실장이 되는테치. 고집부리면 못쓰는테치."
"장녀 오네챠, 7녀 이모토챠, 보고 싶을 것인테치.."
"테에.. 반드시 행복해져야 하는테츄우.."
남자는 씁쓸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친실장은 남자가 생각을 바꿀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며, 두 자실장의 등을 떠밀었다.
"자, 이제 이별인데스. 어서 가는데스."
"테에에..."
"절대로, 절대로 마마와 오네챠들을 잊지 않는테치!"
"그런데스. 그거면 되는데스. 오마에들은 우수하고 영리하니, 반드시 행복을 손에 넣는데스."
장녀와 7녀는 친실장을 바라보며 울먹이다가, 다음 순간 마음을 굳힌 듯 주먹을 쥐고 고개를 돌렸다. 색이 진한 눈물이 둘의 눈가에서 반짝였다. 똑같은 색의 눈물이, 어느샌가 친실장의 엄격한 얼굴 위에서도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허리를 숙여 두 자실장을 향해 양손을 내밀었다. 잠시 손을 바라보며 갸웃거리던 둘은,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각자 다른 손에 올라탔다. 남자는 두 자실장이 다치지 않도록 손을 살짝 감아쥐고, 등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반드시, 행복해지는데스! 꼭인데스! 오로롱-!"
꿋꿋이 엄격한 태도를 고수하려던 친실장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친실장의 울음에 이어 자매들도 각자 참고 있던 눈물을 쏟아내었다. 남자의 손 안에서 울음소리로 점칠된 이별의 인삿말을 들은 두 자실장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뒤를 보지 않으려는 듯 몸을 떨었다.
그리고, 남자는 양손에 힘을 주어 둘을 터트렸다.
"테벳-"
"짓!"
".........데?"
피가 혈관을 찢어발기고, 오물이 내장을 뒤엎었다. 압력에 나가 떨어진 눈구멍에서는 적녹색 혈액이 분수처럼 솟아나왔고, 총구부터 귀, 코, 입에 이르기까지 구멍이란 구멍은 걸쭉하게 반죽된 장기들의 부산물로 메꿔졌다.
두 자실장은 온몸에 피와 살을 두른 채 죽었다.
"아, 미안. 생각해보니 우리 집에 개가 있었구나. 없던 일로 하자."
".....데, 데.... 데...?"
"수고들 해."
남자는 만면에 띄운 미소를 흐트러트리지 않은 채로, 팔을 크게 휘둘러 두 고깃덩어리를 날려 보냈다. 자실장의 자그마한 유체는 투석기에 얹혀진 바위처럼 완만히 날아가며, 붉은 핏방울을 뱉어 푸른 하늘을 수놓았다.
"데갸아아아아아! 네놈 무슨 짓을 한 데샤아아아아-!"
친실장은 폐부가 찢어지는 고함을 질렀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자실장들은 운치를 흘리며 친실장에게 안겼다. 공황 상태의 작은 생물들을 보며, 남자는 무어라 하지 않고 다만 더 큰 미소를 지었다.
"죽어버리는 테챠아아아-!
"데? 5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5녀가 달려들었다. 친실장이 손을 뻗어 제재하려 했지만, 5녀는 그 손을 무시하고 남자를 향해 질주했다.
핏발 서린 눈, 광포한 비명과 함께, 5녀는 남자의 발치에 몸을 들이박았다. 남자가 살짝 물러나는 듯한 느낌이 드는가 하면, 5녀는 바로 몸을 돌려 팔을 휘적이며 난타를 가했다.
"너 같은 건 이렇게! 이렇게 해버리는 테챠아아아아!"
남자는 담뱃불을 비벼 끄는 느낌으로 발을 문댔다. 발을 토닥이던 간지러운 타격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남자는 손에 묻은 두 자실장의 파편을 멍하게 서있는 일가의 머리 위에 뿌려주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미소와 함께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일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머리로부터 흘러내리는 자실장의 파편은, 살갖을 옥죄는 겨울 바람으로부터 일가를 따듯하게 감싸 주었다. 그 포근함을 음미하듯 눈을 가늘게 뜨고 "데... 데.." 중얼거리던 친실장은, 그 느낌이 퍽 감동적이었는지 눈을 까뒤집으며 졸도했다.
5녀가 죽지 않은 것은 실로 행운이라 할 만한 일이었다. 단단한 구두 앞코에 몸이 채여 왼팔이 떨어져나갔지만, 출혈과 내상이 크지 않았다는 점 덕분에 가족들의 조잡한 간호만으로도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차마 사체를 긁어모을 엄두가 나지 않아, 친실장은 간신히 수습한 두 벌의 피투성이 옷만을 4녀의 곁에 묻었다.
"불합리하고 힘든 일의 연속일 것인데스.
여름에는 식량이 썩고, 겨울에는 식량을 모을 수도 없는 데스. 봄과 가을에 모은 식량은 금세 사라져버리고, 분충 자들이 몰래 훔쳐먹는 경우도 있는데스. 밤중에 약탈당하는 경우도 허다한데스.
닝겐들은 먼저 접촉하지만 않으면 안전하지만, 간혹 이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서 와타시들을 공격하는 닝겐들도 있으니 알 수 없는 것들인데스. 사육실장같은 환상은 일찌감치 버리고, 닝겐이 주는 어떤 것도 욕심내면 안되는 데스우.
자들을 다루는 일은 고행인데스. 아무리 정성들여 가르치고 사랑을 주어도 멍청한 자나 분충 자들은 소용없는데스. 다행히 마마에게 그런 자는 없었지만, 그런 자들 때문에 파국을 맞은 일가는 수도 없이 봐온데스. 자들은 솎아내기에 있어서 망설이지 마는데스.
여름의 더위는 끔찍한데스. 바깥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다간 백옥같은 피부도 붉게 쪼그라드는데스. 물도 구하기 쉽지 않으니, 봄이 끝나갈 때 미리 많이 구해두는데스.
겨울의 추위는 한 술 더 뜨는데스. 그 시려움과 무서움은 대비만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닌데스. 마마는 그러지 못했지만, 자들은 만약의 경우 자신이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버티는데스. 오마에들이 죽으면 어차피 오마에의 자들도 죽는데스.
자실장일 적에도, 독립할 적에도, 독립 이후에도, 실장석이 겪는 것은 불합리한 일들 뿐인데스.
하지만, 그 일들을 이겨내고 원하는 것을 이룬다면, 반드시 모든 슬픔을 덮고도 남는 감동이 찾아오는데스. 지금 마마가 느끼는것이 바로 그 감동인데스. 그 감동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온전히 자들의 몫인데스."
친실장의 말을 경청하던 네 마리의 자매는, 마지막 말을 듣고 새삼 서로를 돌아보았다. 이 독립은 자신들에게만 의미 있는 일이 아니다. 자신들은 이제 막 삶의 한 모퉁이를 돌았을 뿐이다. 그에 반해 마마는, 어찌 보면 실장석 인생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일을 완수해낸 것이다.
"...그런데스, 지금부터는 와타시들의 몫인데스."
"절대 포기하지 않는데스!"
"나중에, 혹시라도 와타시들의 자를 독립시키는데 성공한다면 반드시 마마의 이야기도 해주는데스!"
"오네챠들도, 와타시도, 마마만큼이나 훌륭한 들실장이 되는 데스!"
친실장은 데프프 웃고는 등을 돌려 물이 반쯤 찬 페트병을 번쩍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그 밑의 땅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문을 표했지만, 친실장은 말없이 그 행위에 매진했다.
이윽고 조그만 상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영롱한 빛을 내는 모조 보석까지 박혀있는, 공원에서는 보기 힘든 고풍스러운 물건이었다. 끙끙거리며 상자를 꺼낸 친실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흙투성이 손을 물로 헹구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3녀가 질문했다.
"마마, 그 상자는 무엇인데스?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상자인데스."
"자들이 태어난 직후에, 마마가 준비했던 선물인데스."
"선물 데스우?"
친실장은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상자 주변을 기웃거리던 네 자매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벌리고 혀를 빼물었다. 색이 생생한 콘페이토 여러 알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데?! 콘페이토 데스우우우!!!"
"와타시들이 먹는데스? 기대되는데스!"
"처음 보는데스! 신기한데스!"
"데프프, 착한 닝겐에게서 힘들게 얻은 것인데스. 마음에 드는 것 같아 다행인데스."
친실장은 그렇게 웃고는, 별안간 고개를 떨궜다.
"데? 마마? 무슨 일인데스?"
"그 콘페이토는, 마마가 자들의 수에 맞춰서 받은 것인데스우. 받고 나서 생각했던데스. 이 콘페이토는, 꼭, 나중에 자들이 독립할 때, 함께 둘러앉아 먹자고."
"......"
".....데...."
일곱 알의 콘페이토 중 세 알은 주인을 잃었다.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주인을.
문득 차녀가 말을 꺼냈다.
"...같이 둘러앉아 먹는데스."
"데스?"
"장녀도, 4녀도, 7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와타시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믿는데스. 세 자리를 비워두고, 함께 둘러앉아 먹는데스."
"........."
"마마가 말한데스. 가족간의 우애는 영원히 가는거라고."
"...데프프, 데프프프! 그 말이 맞는 데스!"
친실장의 웃음소리가 신호탄이 되어, 일가는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
"장녀 오네챠의 자리는 여기인데스!"
"4녀는 와타시의 옆에 앉는 데스!"
콘페이토를 하나씩 꺼내어 들고, 좁은 집 안이지만 세 자리를 어떻게든 만들어서 비워놓는다. 입으로 바람을 불어 콘페이토에 묻은 흙먼지를 날려보내고, 세 알의 콘페이토는 각각의 자리에 놓아둔다.
홀로 콘페이토를 들고 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친실장은 즐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닝겐들은, 기쁜 일이 있을 때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축포라는 것을 터트리는데스."
차녀 역시 즐거운 표정으로 응수한다.
"그럼 이 콘페이토는, 와타시들의 축포인 데스우?"
"축포도 이 콘페이토처럼 밝고, 화사하고, 짜릿한데스."
어쩐지 형용할 수 없는 발작적인 즐거움에, 5녀는 한껏 크게 외쳐본다.
"하나, 둘, 셋 하고 다함께 축포를 터트리는데스!"
즐거운 얼굴, 유쾌한 얼굴, 기쁜 얼굴, 그리운 얼굴. 난관과 절망의 연쇄 뒤에야 지을 수 있었던 표정들. 죽은 자매들도, 산 자매들도 한 목소리로 원했던 것들. 그저, 내일이 있기를.
"하나, 둘, 셋!"
죽은 자들도 똑같이 원했다면, 지금 이 순간 함께 존재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일을 맞은 자매들도, 내일을 맞지 못했던 자매들도, 즐거운 웃음을 지으며 콘페이토를 입에 털어넣는다. 이 한 순간, 죽음과 삶의 경계는 그 의미를 상실했다.
"데보아아아악!"
"데갸아아아아아아-!"
"데벳-"
"데챠아아아아아! 게보아아아아아!"
한순간 허물어졌던 죽음과 삶의 경계는, 자비없이 더러움이 들끓는 해수들을 죽음으로 끌어내린다. 멋대로 자신들이 내일을 맞이했다 단정지었던 머저리들을 본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려보낸다. 그들의 말마따나 죽은 자매들도 함께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그들은 자매의 두 번째 죽음을 손수 알선한 셈이다.
위장용 코로리는, 흙바닥 속에서 긴 인고의 시간을 거친 끝에 마침내 그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
뒹굴거리며 내장을 토하던 네 자매들은, 토해낸 장기와 핏덩어리들이 얽히고 설킨 끝에 마침내 더러운 흙바닥 위에서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 사이가 좋았던 넷으로서는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말이라 할 수 있으리라.
"데... 데에....? 데..슷...."
콘페이토를 먹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걸까?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친실장은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한동안 거품을 물고 켁켁거리던 녀석은, 어떤 청량한 파열음과 함께 움직임을 멈추었다.
남은 세 알의 축포는 피로 질척이는 바닥을 조용히 뒹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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